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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꿈과 해석을 알게 하라(2:5-7)

by 【고동엽】 2022. 4. 12.

제11강 꿈과 해석을 알게 하라(2:5-7)

 

2:5-7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왕이 된 지 이년이 되었을 때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특이한 꿈이었습니다. 두려운 꿈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는데 꿈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꿈이란 신이 자기에게 계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었는데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면 신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길한 꿈이라도 꿈을 기억해서 꿈을 해석을 하면 불길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두려운 꿈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번민하였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박사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내가 꾼 꿈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꾼 꿈이 무엇인지 내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 술사들이 왕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자기가 꾼 꿈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갈대아 술사들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그 꿈을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왕과 갈대아 술사들 사이에 있었던 두번째 대화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명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한번 이야기했으면 됐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느냐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성격이 온유했겠습니까? 불 같았겠습니까? 불 같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꿈을 말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해석을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까? 무슨 꿈이었는지 꿈을 먼저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꿈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석을 말하기 전에 먼저 꿈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두 가지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라고 했고, 둘째로는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벌은 고대 사회에 흔히 있던 것이었습니다.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하고 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임금 때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싸움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자기 공명심 때문에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살렸습니다. 나중에 한 선지자가 그것을 알고서는 직접 아각을 찍어 쪼갰습니다. 그 선지자가 누구였습니까? 아각을 찍어 죽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사울 임금을 책망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한 선지자입니다. 예, 바로 사무엘입니다. 삼상 15:33 이하에 보면 나옵니다. 사무엘이 아말렉 왕 아각을 찍어 죽였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옛날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벌이 있었습니다. 무슨 형벌입니까?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입니다.
두번째 벌은,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흔적조차도 없이, 재기하지 못하게 완전히 파멸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왕하 10:27에 보면 예후가 바알 산당을 다 헐어버리고 거기다가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변소를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다시는 바알 산당을 세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반대로 6절을 보면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들입니까?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큰 영광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줄 수 있는 큰 영광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이 직접 상을 내리는 것도 큰 영광입니다. 또 신하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도 큰 영광입니다.
또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임금이었을 때 신하였던 다윗이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를 주었습니까? 자기 딸 미갈을 주었습니다. 다윗을 사위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도 신하에게 있어서는 큰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딸이 있다면 딸 중 하나를 주어 사위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갖 상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느부갓네살 임금의 명이 아무리 엄해도 갈대아 술사들이 보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리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하고, 아니면 아무리 큰 상을 주겠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꾼 꿈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누구만이 알 수 있습니까? 은밀한 곳을 살피시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해주시면 다니엘처럼 가능합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꿈을 말씀하여 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7절과 4절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4절에서 갈대아 술사들이 첫번째로 한 말과 7절의 두번째로 한 말을 보면 7절에 한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하나 더 들어가 있을까요? 7절은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왕이여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까? "청컨대"라는 단어입니다. "please"라는 말입니다. 왕이 죽이겠다고 하니까 신하들이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별별 수단을 다 써도 사람은 남이 꾼 꿈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해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공중에 올라가시기도 하시고,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기도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가기도 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물위를 걸어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아주 힘들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번 그려보세요. 제자들이 힘들게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니까 밤중에 누가 물위를 걸어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겁을 먹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너무나도 반가워서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예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사람은 물위를 걸어갈 수 없는데 예수님이 허락하시니까,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예수님이 능력을 주시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도 물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실 때 느부갓네살 임금이 꾼 꿈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석까지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물결을 바라볼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에 베드로는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급하게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이 자비와 긍휼의 손을 펴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실패를 하셨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복잡하게 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졌듯이 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물에 빠졌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했으면 물에 빠진 것입니다. 왜 물에 빠졌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니까, 물질 바라보니까, 사람 바라보니까 빠진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해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펼쳐주셔서 우리를 다시금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베드로가 다시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손 붙들고 주님만 바라보시면서 물위를 걸어가시는 승리의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위를 걸어가는 우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물위를 걸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물위를 걸어가시는 우리의 생업과 기업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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