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되어야 할 개혁
대하15:8-15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가 기도 중에 천국을 보게 됩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감리교 목사들이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가 여기 저기 알아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웨슬레는 “그러면 장로교인은 얼마나 왔습니까?”. 천사는 또 한참 뒤지다 말하기를 “미안하지만 장로교인도 한 사람 없네요”. 웨슬레는 더욱 놀라며, “그렇다면 도대체 천국에 어떤 교인들이 왔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웃으며 “천국에는 예수를 진실 되게 믿는 사람들만 온답니다”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천국 가기에 합당한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가는 신앙생활 하십시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487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여러분들은 개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교회든 개인이든 사회이든 사람의 관점에서 보지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개혁입니다. 지금까지 사람의 생각과 욕심에 의해 움직여 왔다면, 개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꾸자는 것이며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영국의 강해설교가 데니스 레인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향하여 뼈있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큰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을 통하여 변하지 않으면 시대 속에 버려진 창고나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히 여겨야 합니다. 100년전 영국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회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하고 자랑스럽던 영국교회가 지금은 텅텅 비어있고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혹은 100년 후 한국교회가 지금의 영국교회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어떤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일으킨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기념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개혁이 계속되어지려면,
첫째, 자신부터 갱신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신앙개혁이 선행되어야 교회개혁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려고 95개 조항을 내걸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톨릭 교회를 뒤엎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이룩하리라” 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루터의 개혁운동은 혁명적 개혁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습니다. 바깥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을 개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 의 구호들은 모두 개인의 신앙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안을 개혁하면 자연스럽게 바깥의 개혁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의 근본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은 나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개혁은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너부터의 개혁, 밖으로부터의 개혁은 언제나 소리는 요란하지만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개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아갱신 시켜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고, 내가 변해야 교회가 변하고,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면 아사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먼저 자기 마음을 강하게 결심하였다고 했습니다. 아사왕은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 자기생신을 한 것입니다. 루터 역시 종교개혁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죄를 깨닫고 자기갱신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죄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는가?” 를 고민했습니다. 이러한 자기 갱신의 몸부림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개혁은 제도나 프로그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개혁은 끊임없는 자기갱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개혁되기를 원하십니까? 자신부터 갱신하고 내 신앙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개혁을 외치면 세상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끊임없는 자기갱신만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작금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행위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지 모르고, 죄 인지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기의 죄를 과소평가 합니다. 오히려 자기도 죄인이면서 남의 죄를 정죄하는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부터 갱신함으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둘째,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익광고 가운데 나오는 내용입니다. 경찰관이 처음 임관할 때 모습을 비추면서 그때 그 다짐대로 하자고 호소합니다. 간호사들이 처음 캡을 쓸 때 모습을 비추면서 그때 그 각오대로 하자고 호소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던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초선 의원 때 선서했던 그 다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는 것이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당시 중세 천주교는 초대교회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종교로 변질되었습니다. 성경말씀과 달리 복음의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들을 가르치고 지키게 했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면죄부를 사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수한 신앙에서 벗어나 마리아 숭배사상을 가르쳤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선행이나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성경에 없고,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에도 없던 것들입니다. 중세 교회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첨가시킨 것들입니다. 루터는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을 벗어나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전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나 우리가 잊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던 것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 개혁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반대방향에 서 있다가 신앙의 본질적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개혁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이후에 유대나라가 태평하고 흥왕 했습니다. 이는 아사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비본질적인 요소를 버리고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8절에 “아사가 이 말을 듣고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또 여오화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12절에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의 모습들은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모습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아사왕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라고 15절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혁은 신앙의 본질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 주님과 만났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핵심인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계속되어야 할 진정한 개혁의 모습입니다.
셋째,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직전에 마틴 루터는 로마의 ‘스칼라 산타’ 성당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시던 예수께서 올라가셨다는 계단을 보게 됩니다. 모두 28개의 계단으로 되어있는 이 나무계단은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뜯어내어 스칼라 산타 성당에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중세 천주교회는 이 계단을 신성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 사함 받고, 심지어 연옥에 있는 죄인도 이곳에서 기도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당시의 루터 역시 죄로부터 놓임을 얻기 위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며 계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다 올라가 보아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섬광같은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롬 1:1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루터는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죄의 문제는 면죄부도 아니고 고해성사도 아니고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는 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루터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개혁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알고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를 외치게 됩니다.
역대하 14장 11절을 보면 아사왕은 구스와의 전투에서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라고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사의 믿음은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의 ‘오직 믿음’ 이었습니다. 약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하나님밖에는 도와줄 이가 없다고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구스의 100만 대군을 쳐서 승리하게 하심으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아사에게 응답을 주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헌금이, 우리의 봉사가, 심지어 우리의 순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타나는 열심, 믿음으로 드리는 봉사, 믿음으로 바치는 헌금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성가시게 해 드리고 안타깝게 해 드립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진정 믿음으로 사는지, 오직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건물을 고치는 것이 개혁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개혁이 아닙니다. 방법과 내용이 성경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현대교회는 기도보다 생각이 앞서고 사람이 앞서고 돈이 앞서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개혁을 내 자신의 갱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비본질적 것에서 떠나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처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속되어야 할 진정한 개혁입니다. 부디 참된 개혁을 통해 변화되어지는 교회와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4-10-30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성탄절) (0) | 2022.04.10 |
---|---|
부활의 주님을 만나라 /눅24:28-35 (0) | 2022.04.10 |
맥추절을 지키면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는다. /출애굽기 23 : 20 - 33 (0) | 2022.04.10 |
맥추감사절, 어떻게 지켜야 하나?출애굽기 34 : 21 - 24 (0) | 2022.04.10 |
(김동호목사 성탄절 설교)예수를 잃어버린 사람들:눅2장 41절 ~ 절 (0) | 2022.04.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