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 설교
본문 : 왕하 22:8-13
종교개혁의 불씨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당시 로마 가톨릭이 안고 있던 부패와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첫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종교개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의 종교개혁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 가운데 일어났는가를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서방교회는 황금기로 불리던 11-12세기를 지나 13세기 이후 계속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황제까지도 교황 밑에 예속시켰던 교황청의 권세는 몇 날이 못 되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쫓겨 가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때로부터 이미 교회의 권위는 서서히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교회의 권위를 다시 찾기 위해 교회가 택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폐쇄적 계층구조식의 성직체제를 더욱 견고히 하고, 7성례전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성례전은 더욱 미신적 요소들이 가미되게 되었고, 폐쇄적 구조의 성직 체계는 부패와 타락을 더욱 양산해 내게 되었습니다. 성직매매, 수도승들의 타락, 고위 성직자들의 사치와 불륜으로 인한 문제들이 점점 사회에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청은 오로지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데 관심이 있었고, 그들 역시 말할 수 없는 사치와 안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미 독일의 제후들과 귀족, 중산층들은 교황청에 내는 세금을 거부하는 등, 로마 가톨릭의 간섭에 항거하기 시작했고, 오직 우매한 백성들만이 타락한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교회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개혁에 대한 필요성과 그것에 대한 백성들의 열망이 없었다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치 장전된 화약고와 같은 그들의 마음에 개혁의 불화살을 당겨 준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빛과 그늘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한지 어언 1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계 교회사 속에서 본다면 참으로 짧은 역사지만, 한국교회는 이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감당해 왔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세계가 놀랄만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특별히 선교 초기, 한국 교회는 복음 전파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힘썼고, 7-80년대에는 독재청산과 민주화를 위해서도 큰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성장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 전 천만 그리스도인 시대를 지나 인구의 1/4 이상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이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교회의 초고속 성장과 부흥의 이면에는 그늘진 역사도 늘 함께 존재해왔습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세 확장과 성장이라는 빛만을 좇느라, 그 안에 드리워진 그늘을 제대로 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교회는 성장 둔화, 정체의 시기를 거쳐 교세감소라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최근 한국교회가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다시 돌아보며 심각하게 자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교회가 동일하게 고백하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이제는 한국교회도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120년 간 한국 교회가 이룩해 놓은 아름다운 전통 반대편에 함께 쌓아 올려 졌던 세속주의와 성공지상주의의 악습을 이제는 개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에 대해 모든 교회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개혁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 바로 오늘의 한국 교회입니다. 마치 16세기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올랐던 그 때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오늘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근 교회성장의 둔화 내지는 침체로까지 표현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단순한 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개혁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개혁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개혁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때론 매우 자주, 개혁은 그동안 익숙해져 온 모든 것들과의 단절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고 두려운 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아픔이 따른다 하여도, 다이아몬드가 아름다운 빛을 내기 위해서는 제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해 내야 하듯, 교회가 교회로서의 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이라는 바로서기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칼뱅으로부터 우리가 물려받은 개혁교회의 소중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다시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라고 하는 개혁정신입니다. 제 아무리 타락한 로마 가톨릭을 개혁하면서 새롭게 출발한 개혁교회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 할 자기개혁을 멈추어 버린다면 또 다시 교회는 개혁교회라고 이름 붙여진 전통 속에 갇혀 버리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과거 로마 가톨릭이 걸었던 타락과 세속화, 그리고 부패의 길을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500여 년 전 독일에서는 루터가 그 개혁의 불씨를 점화했듯이, 오늘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한 불화살이 당겨져야 할 때 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더욱 철저하게 우리 교회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개혁의 작은 불씨가 활화산이 되어 타오르도록 더욱 개혁의 기치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시행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왕하 22장과 23장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으로 매우 유명한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선왕이었습니다.(왕하 22:2) 그러나 그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는 온통 이방의 우상과 신상들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마음을 품은 요시야가 이 우상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그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언젠가는 저 우상들을 폐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높이 세우리라’ 바로 종교개혁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요시야 주변에는 그를 적대하는 많은 신하들과 관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믿는 신은 대부분 바알과 아세라를 중심으로 한 이방의 신들이었을 것입니다. 요시야가 왕이 된 지 무려 18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그들의 정치, 종교적 방해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오래 참고 또 참아왔던 그 때가 드디어 찾아 왔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된지 18년째 되던 해에 그는 종교개혁의 첫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종교개혁을 위해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하였던 것은 성전 맡은 자들로 하여금 성전의 부서진 곳을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요시야의 마음속에는 구체적인 종교개혁의 방향은 없었던 듯 보입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성전의 허물들이나 닦아 내고, 부서진 곳이나 보수해야 되겠다는 정도가 계획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대 제사장 힐기야가 오랫동안 성전 안에 방치되어 있던 한 권의 책을 발견합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여호와의 율법책 이었습니다. 힐기야는 그 책을 발견하자 매우 기뻐하며 서기관 사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힐기야의 눈에 그 율법책은 보통의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보물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서기관으로 하여금 왕 앞에 그 책을 읽게 합니다. 수 십 년 간 성전 한 구석에 내버려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왕 앞에서 읽혀지는 순간, 왕은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왕은 자신의 옷을 찢으며 자신의 죄를, 아니 온 이스라엘의 죄를 통회하며 자복합니다. 그 이후 요시야는 종교개혁의 방향을 바로 잡습니다. 성전 수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주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 즉시 요시야는 모든 백성을 성전에 모이게 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줍니다. 요시야는 모든 백성에게 선포되어진 언약의 말씀대로 다 따르겠다는 다짐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역시 요시야는 오직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진행해 나갑니다.
개혁이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이 개혁이라 하면 성전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시스템을 정비하고, 새롭게 무엇인가를 꾸미는 것을 개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에 가죽을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개혁의 과정 속에는 반드시 그러한 변화들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참된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는 개혁이 되어져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완성해야 할 종교개혁은 인간이 보기에 좋은 개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인정받을 만한 그런 개혁을 시행해야 합니다.
개혁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힘 있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그 개혁이 반드시 말씀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개혁의 방향성과 모든 과정들이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개혁의 바로미터, 개혁의 척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 이외의 어떤 것도 개혁의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할 때에 그 개혁에 파워가 생기고, 잘못된 전통이 깨어지며, 잊혔던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직 말씀으로...
1521년 4월 마틴 루터는 보름스 국회로부터 출두명령을 받습니다. 이 보름스 국회에 파송된 교황의 사절은 알레안더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루터에게 황제와 국회 앞에서 그간의 저술들과 주장들을 모두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루터는 하루 동안 고민한 뒤,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황제 폐하와 군주 각하들께서 간단한 대답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저는 뿔로 치받거나 이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답변하고자 합니다. 제가 성경의 증언이나 분명한 이성에 의해 확신한 것이 아니라면 (저는 교황이나 공의회를 신뢰하지 않는데, 이는 교황이나 공의회는 흔히 오류를 범하고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인용한 성경에 의해 구속을 받으며 저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양심에 반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으며 옳지도 않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멘.”
여기 루터가 말하는 양심은 하나님 존전 앞에서의 양심이요, 말씀에 사로잡힌 양심을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황의 권위도 1500년간 축적되어 온 로마 가톨릭 전통의 힘도 아니었습니다. 외적인 여건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원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는 말씀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전통에 의해 이상하게 옷 입혀져 있던 참 된 복음을 말씀 속에서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루터로 하여금 국회 앞에서 그토록 담대하게 진리를 붙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주 많은 순간, 우리는 개혁을 위해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잣대로 현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전통을 비판을 위한 잣대로 들이대곤 합니다. 그러나 루터의 고백처럼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한 것이며, 전통 또한 로마 가톨릭의 그것처럼 부패되고 변질될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바뀐다 하여도 개혁에 있어서 절대 변하지 않는 잣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개혁의 힘이 나옵니다.
개혁으로의 부르심
오늘날 한국 교회의 여기저기서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외침들은 많은데, 정작 변해야 하는 그 교회에서 나부터 변하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의 개혁을 말하면서 정작 변해야 하는 나는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1절입니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귀에 꽂히자 그는 가만히 앉아서 말씀을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일어나 자신의 옷을 찢으며 울부짖습니다. 말씀 앞에 자신의 죄악과 추함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비춰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개혁시키기에 앞서 먼저 요시아 한 사람을 개혁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역시 먼저 개인 안에 개혁을 경험한 사람들로 인해 개혁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뱅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개인적 개혁을 맛보지 못했다면 그들의 개혁 시도는 그저 시도로 그쳤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개혁을 맛본 다른 개혁자들을 통해 교회의 개혁을 계속 이루어 가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한국 교회의 개혁을 바라보시면서 개혁을 위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500년 전 루터와 칼뱅을 찾으셨듯이, 그리고 더 오래전 요시야를 찾으셨듯이, 오늘 이 땅의 교회 개혁을 위해 자신 안에 이미 개혁의 기쁨과 소망을 맛본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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