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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추수 감사설교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 23:9-14)

by 【고동엽】 2022. 4. 8.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 23:9-14)

 

 

 

 감사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기쁜 날입니다. 감사절은 참으로 복된 주일입니다.

여러분,  감사절이 얼마나 복된 날인지 잘 모르셔서 맥추 감사 주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맥추 감사 주일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성령 체험을 하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은 감사절이 참으로 복된 날인 줄 압니다. 왜냐하면 이 맥추절 절기에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을 경험하신 분들은 맥추 감사절의 은혜와 복을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는 매 주일이 감사 주일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맥추 감사절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운 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감사절이 복된 날인지 몰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의무감 때문에 지킨 것 뿐이고, 특별 헌금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저처럼 모태 신앙인인 경우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도 감사절이 오면 ‘교인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그런 생각만 들었습니다. 모두 저 같은 줄만 안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 맥추 감사절을 정말 정성껏 지키는 교인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이사야서를 읽다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부담스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사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 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아니 감사절이 되면 제물을 준비하여 바쳐야 하는 우리가 부담이지,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왜 짐이 되십니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감사 제사를 받으실 때 그것이 지기 힘든 짐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하나님이 감사절이 더 부담스러우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묵상 중에 성령님께서 깨eke게 하셨습니다.
감사절은 하나님의 백성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절기였던 것입니다.
(잠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감사를 형식적으로만 드렸는지 말라기 1장 8절에 보면 기가 막힌 말이 나옵니다.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복은 주셔야 하겠는데, 복을 주실 수 없으니 하나님에게 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겉으로만 감사를 드렸지, 마음이 없는 감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계획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흥미로운 통계를 내었습니다.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신혼 여행을 가서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린 부부는 이혼율이 0.01%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표현되어져야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통로가 감사입니다.


  저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 대하여  큰 애는 속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표현이 없다. 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사랑하는 것도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말로 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더 진실한 사랑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어머님을 사랑하는 줄 모르셨다고 하였습니다.  표현이 없어서!  표현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표현되기까지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정말 은혜를 받았다고 느껴지면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표현이 없다면, 그에게 별로 도움이 안되거나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광고 전단지를 받고  감사합니다!  하십니까? 아닙니다. 귀찮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할 때, 그는 은혜 받은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표현이 없는 사람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복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표현하십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 중에 살았음을 믿습니까? 그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오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예배에 오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에는 오시기는 했는데, 감사의 표현이 만약에 없었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전혀 은혜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감사는 하나님이 복주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섭섭하고 원망이 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해 주시지 않고 계속 어려움만 주시는 것 때문에 낙심한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지 못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하여는 감사하였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없는 자의 삶은 결코 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무서운 죄 중의 하나가 원망과 불평의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도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이것이 감사가 없는 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감사가 없다, 원망과 불평의 죄를 가지고 사는 지를 모릅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화를 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자녀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들을 야단치지 말고 부모인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은 위로부터 아래로 흐릅니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영적 영향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녀들에게 불평과 원망이 있고 감사가 없다면 감사가 없는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제 삶을 돌아보니 감사할 사람이 참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몇 년 전 폭탄 테러 사고로 100여 명이 사상자가 난 타지키스탄의 현지인 교회에 집회를 요청받아 갔을 때, 장로님 한 분이 동행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 권사님께서 목사님이 위험한 곳에 가시는데,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신이 대신 죽으세요! 하고 보내셨음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저를 살펴주셨는지.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감사를 다 표현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교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일일이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똑같은 사랑을 받고 사역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믿음의 조상들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선교사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된 우리나라 첫 교인 중에 한 분입니다. 당시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목사가 된 첫 번째 목사님들 중의 한 분입니다. 당시로서 너무나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때 순교하셨습니다. 목회자의 아내였던 저의 어머님은 40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감사할 것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도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태평양의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저 뿐만이 아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뉴욕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29세 나이로 순교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 선교사의 일기에 보면 그가 회심하기 전에 하나님과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께 화가 났답니다. 그가 성경에서 하나님에 관한 네 가지 진리를 발견했는데, 그 하나 하나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답니다.
  첫째, 하나님은 완전한 의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완전한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구주를 보내주셨고 그를 믿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화가 났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 믿음을 주실 수도 있고 주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 33:19)
  이것은 또 무엇인가? 네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하실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공의로우시다. 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에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브레이너드는 절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불꽃곽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고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해 주셔야 하는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특별한 감격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그냥 지나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도를 받게 하셨고, 믿음을 주셨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살 집이 없어서 힘들 때, 어떤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집을 한 채를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굳이 줄 이유가 없는데 집을 주었다면 평생 감사할 것입니다 .
집 하나 은혜로 얻어도 평생 감사할 것이라면, 영생 구원을 은혜로 받았음을 깨달으면 어떤 감사를 드리게 될까요?

우리는 아무런 받을 자격이 없는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비켜가지 않으시고 나를 택하시고 내게 은혜를 주시고 내게 믿음을 주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이런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감사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되게 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감사 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애급으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무교절이고, 둘째는 첫 열매를 추수하여 드리는 맥추절, 셋째는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면서 드리는 수장절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 중에 가장 독특한 감사절이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감사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 
많은 분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감사절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놓져 버립니다. 그리고 추수 감사절은 큰 감사절이고 맥추 감사절은 작은 감사절로 아는 분도 많습니다. 또는 맥추 감사절은 안 지켜도 되는 절기로도 압니다.
일반적으로 맥추 감사절이 추수 감사절만 못한 감사절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4절) ...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여러분, 첫 번째 맥추절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내내 40년 동안 한 가지 만나만 먹었습니다. 곡식을 먹는 것을 몰랐습니다. 애굽에 살 때 그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전부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만나 밖에 먹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손으로 농사를 지어 첫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첫 이삭을 얼마나 먹고 싶었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맛일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리 침을 놓으셨습니다. 절대로 첫 이삭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0절)  ... 위선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4절)  ...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시작부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를 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끝난 후에 감사할 생각을 하지 말고 시작부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시작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작다고, 어렵다고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끝난 다음에 계산해 보고 “하나님, 주신 것이 많네요.” 이렇게 감사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첫 열매를 땄을 때 하나님께 드리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은 올해 주신 첫 열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결코 소홀히 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첫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구별하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절이 절대로 작은 감사절이 아닙니다. 첫 열매 감사가 없으니 추수 감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맥추절 감사 신앙에 눈이 뜨인 것은 저 자신이 첫 열매를 드린 경우에 해당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버님의 신앙이었습니다. 제 인생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으나, 이제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개인도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들려오는 것은 다 마음이 무너지는 소식 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감사는 이 때 나타납니다. 감사는 모든 삶을 뒤바꾸어놓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감사와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후에 있게 되는 찬양 축제가 성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형편과 처지는 노래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놀라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가 도착하기는 102명이었지만 출발한 사람은 153명이었습니다. 약 두달간의 항해, 3개월 동안의 추위와 또 갖가지 어려움 때문에 51명이 해상에서 죽고 겨우 102명만이 상륙할 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겨울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기 전에 그 추위 때문에, 질병 때문에, 굶주림 때문에, 인디안의 습격 때문에 거의 반수가 죽었습니다. 생존자 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장정이 21명이었고 소년이 6명이어서 남자는 모두 27명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어느 정도의 농작물을 추수하기는 했지만 이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들의 마음에는 염려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래서 1주일 동안의 특별 금식기도를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과 여전히 근심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또다시 한 주간 기도회를 더 연장하자는 그런 제안도 나왔지만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서 사랑하는 가족과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은혜를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농사하여 추수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금식 기도는 그만하고 기분을 바꾸어서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렇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 찬미하고 감사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온 회중이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여서 감사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 청교도들이 드린 첫 번째 감사 예배가 축복 속에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평안한 가운데, 성공했을 때, 다 건강할 때 드린 것이 아닙니다. 153명 중에 거의 100명이 죽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죽음 곁에서 가난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링컨대통령에 의해서 추수 감사절이 국가 공휴일로 정해진 것도 평화와 축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북 전쟁의 참화 속에서 경제가 어두워지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하고 있을 그때 감사절을 지키도록 온 국민들에게 공포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정 위기, 경제 위기, 환경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 명령하셨습니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 동안 우리가 잘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많이 썼습니까? 그러나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번영과 안정과 축복과 성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죽음과 질병과 가난과 고난 속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적 불꽃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사실에 전율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암몬과 모압 연합군과 싸우러 나갈 때, 찬양대를 앞세웠습니다. 병력 수로는 절대 부족하고 도무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을 때 찬양대를 앞세웠던 것입니다. 그 때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암몬과 모압 연합군이 다 죽었습니다.
사도 사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한 밤중에 찬양했습니다. 그 때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려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일을 우리 가운데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질병과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저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믿음은 하루 아침에 생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가 늘 들어 아는 주제이지만,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밥도 못먹는 사람이 있다. 병상에 누워만 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니?” 감사하라고 들었지만 실제로 감사한 것은 너무 나이 들어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감사를 방해하는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눈이 어두워서, 때로는 삶의 분주함 때문에, 때로는 고통의 무게에 눌려서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감사가 살 길입니다. 감사로 개인과 가정이 일어납니다. 교회마다 드려지는 감사로 우리 민족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감사를 통해서 이 민족 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감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제 안에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의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제 심령 안에 빛으로 역사하옵소서. 제가 찬양하고 감사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과일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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