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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심 (겔 39:25-27)

by 【고동엽】 2022. 3. 15.

성령의 열심  (겔 39:25-27)

사람은 대체로 3 부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본능을 따라 사는 육체 주도적 인간입니다. 둘째는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삶을 추구하는 이성 주도적인 인간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깨달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령 주도적인 인간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이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그러기에 과연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성령의 역사 안에 살고 있는가, 과연 나는 성령 주도적인 존재로 살고 있는가, 돌이켜 보아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 속에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단 종파의 발생은 주로 성령론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은 곧 끝장난다, 나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나는 귀신을 쫓아낸다, 병을 고친다, 미래를 예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곧 나와 함께 하는 성령의 역사다 라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분이 만나자고 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목사님을 찾아가라고 하십디다. 그래서 100만원을 달라고 하면 목사님이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여기에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기 좀 앉아 계시죠. 누가 올테니 그 사람에게 100만원을 주라 하는 성령의 계시를 아직 내가 받지 못했으니, 이 계시가 올 때까지 좀 기다려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 모두는 성령을 잘못 이해하였거나 곡해한 것입니다. 성령을 너무 주관적으로 이해합니다. 자기감정을 마치 성령의 역사처럼 착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꾼 꿈을 성령보다 더 중요시하고, 자기의 경험을 성경의 진리보다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 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바르게 깨닫고 체험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로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 성자 예수님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노인을 등에 엎고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합니다. “노인장은 참 효자를 두셨군요.” 그랬더니 젊은이가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이 분은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렇습니까, 노인장 아들이 아니었습니까?” 물으니, “아닙니다. 이 녀석은 내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젊은이는 아들이 아니라고 하고, 노인은 내 아들이 맞다고 합니다. 어떻게 확인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아들의 어머니에게 확인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네 아버지다 하면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있다 한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한다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어머니의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고 보증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 앉아 있다고 다 교인이 아닙니다. 성경 찬송을 들었다고 다 신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평화 교회에 등록했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해야 합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아직 믿음의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나의 구주되심을 확실히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이여, 내 속에서 역사하셔서 나에게 이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도록 내 마음 속에 믿음을 주시는 영이 곧 성령이십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성령을 다 믿으시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은 능력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는 능력의 영이십니다.

자,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다가 실패했다면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실수하기 쉽고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삶의 목적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운 목적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큰 것을 원했으면 그만큼 수고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자가 되려 했으면 열심히 공부했었어야지요. 음악가가 되려 했으면 열심히 연습했었어야지요. 내가 지불해야 될 진실과 열심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실패의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믿은 때문입니다. 세상에 내 자신처럼 믿을 수 없는 존재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과연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아직까지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지식, 내 판단, 내 감정, 이 모든 것, 도대체 믿을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확실하고 얼마나 바릅니까? 모름지기 내 자신을 내가 믿을 수 없다는 것, 내 자신을 내가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살려고 애써본 적이 있습니까? 정욕을 이기려고, 죄를 이기려고 몸부림쳐 본 적이 있습니까? 쓸데없는 일입니다. 한 가지 고치고 두 가지 결심하고, 맹세하고, 노력하고, 이 모든 일이 과연 얼마나 이루어 졌습니까?

그저 우리는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할 뿐입니다. 성령이시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옵소서. 나는 내 자신을 포기합니다. 능력의 영께서 온전히 나를 주장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길 때, 거기 내가 나를 이겨 나가는 비결이 있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활을 점차 거룩한 길로 나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나에게 임하면 나의 생활에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관과 함께 내 생활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입맛이 변합니다. 이 나의 입맛도 나이와 시대와 환경의 변화와 함께 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면 나의 삶의 입맛이 변하게 됩니다.

전에는 세상일들이 즐거웠습니다. 전에는 세상 쾌락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에 내가 사로잡히게 되니,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쁩니다. 찬송 부르는 것이 즐겁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보람입니다.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이켜 보니 내 믿음이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이만큼 거룩한 존재로 변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이 성령의 능력에 붙잡힘을 받아 은혜롭고 능력 있는 생활을 힘차게 달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령은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무슨 극적이고 이상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상한 힘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전적으로 우리 인간성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기 컵이 하나 있습니다. 이 컵에 지금 더러운 공기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빼 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 컵에 맑은 물을 부으면 됩니다. 맑은 물을 가득 채우면 더러운 공기는 밀려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채우지는 않고 무리하게 공기만을 빼내고자, 진공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유리컵은 깨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로 성령 충만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성령 충만의 생활을 수영에 비유해 말하기도 합니다. 저기 해운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한다고 할 때, 물이 무릎까지 왔을 때에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물이 가슴까지 넘칠 때에도 그런대로 내가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목 위로 올라오는 깊은 곳으로 나가면 내 몸은 이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바닷물에 내 몸을 맡길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슴을 열고 성령 충만의 역사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온전히 순종해 보면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또 한번 성령의 뜻에 순종하면 내 의지가 바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순종하면 내 몸이 뜨거워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마침내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아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가던 육체 주도적 인간이었던 내가, 이제는 성령의 도우심, 성령 충만 가운데 살아가는 성령 주도적인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바람직하게 변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 에스겔 39장 2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열심을 내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열심을 기울이겠다고 하십니다. 열심, 뜨거운 마음을 갖고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며, 긍휼을 베풀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누가 열심을 내야 합니까? 내가 열심을 내야 합니다. 믿음이 시원치 않고, 생활이 바르지 못하며, 삶의 목적도 의미도 뚜렷하지 못한 내가 열심을 내야 합니다. 바른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지금 내 모습 이대로는 안 됩니다. 변해야 합니다. 뜨거워야 합니다. 보다 열심히 믿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 열심은 바로 나의 몫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열심을 내겠다고 하십니다. 성령은 열심의 영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영이십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그 영혼이 거북이 등짝같이 말라서 쩍쩍 갈라진 분이 계십니까?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시달려 먼지만 풀풀 날리는 황폐하고 거칠어진 심령을 안고 사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역경 속에 이제는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오직 절망 가운데 자신을 맡기고 싶은 분은 안 계십니까? 참 생명의 길, 참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는 영혼은 없습니까?

성경을 보면 진정 성령은 거룩한 바람입니다.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거룩한 생명의 바람입니다. 나를 위해 열심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이 성령의 역사에 우리 자신을 맡기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은 거룩한 강물입니다. 내 심령이 메마른 광야 같고, 내 생활이 의지할 곳 없을 때, 나의 적막한 이 고통을 누가 풀어줄까, 신음하면서 암담하고 답답하고 마음 부칠 곳 하나 없는 이 세상 지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성령은 거룩한 강물이 되어 우리 심령과 생활을 촉촉이 적셔 주십니다.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민둥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성령 안에 거하며, 성령을 좇아 행하는 존재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뜨거운 열심으로 나에게 은혜를 끼치고 믿음으로 살게 하며, 축복의 길을 걷게 하고자 애쓰시는 성령께 내 모든 것을 맡겨 복된 하루하루를 사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의 감화 속에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간구 하옵기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생활을 하지 말도록 도우시고, 성령을 탄식케 하는 자리에 있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열심으로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배반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순종함으로 더욱 더 충만하여 성령과 말씀의 열매로 사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담대하고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오직 성령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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