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 (엘 2:23~32)

by 【고동엽】 2022. 3. 15.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  (엘 2:23~32)

사람들의 마음에는 잘하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학생도 공부 잘 하고 싶고 사업가는 사업을 잘 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예수를 잘 믿고 싶어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몇 가지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1)원리대로 믿어야 합니다.  원리는 성경입니다.  처음부터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으려고 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뭐라 하는 가? 를 생각해보면서 믿어야 합니다.

2)기쁨으로 믿어야 합니다.  즉,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믿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부담스럽다 찾아오는 것도 부담스럽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를 좋아하여 찾아오는 성도들이 고맙다 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3)만족하게 믿어야 합니다.  불만이 불순종을 가져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만족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4)처음부터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이며 믿고 구할 때에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약속입니다.  23절을 보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하였는데 이 늦은 비는 말세에 부어주시는 성령의 약속입니다.  

  28절에는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고 하였는데 성령 받을 대상은 만민이라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택된 사람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신약에서는 만민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9절에는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다”고 다시 약속합니다.  남녀차별이 있을 때 남종에게 주신 성령이 여종에게도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첫째, 성령이 임할 때에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23절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 하나님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행 6:15)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1) 담대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하고 돌을 던져도 담대하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2) 거룩한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죄악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3) 자비한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에 끌리지 않고 원수 맺지 아니한 그리고 악독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4) 기쁨의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소망 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기쁨은 행복입니다.  아무리 좋은 여건 조건을 갖추었어도 기쁨이 없다면 이는 불행입니다.  기쁨은 참으로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고 하는  ‘와나메이커’(1838-1922) 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체신부 장관을 지낸 모범적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가장으로, 대사업가로 체신부 장관을 지내면서 교회에서 주일학교의 지도자로 봉사하였습니다.  삶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그의 사업 60주년 기념파티에서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큰 사업가로 그리고 모든 일에 성공자가 되었는지? 원인이 무엇이었나?” 질문에 대하여 83세의 와너메이커씨는 간단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합니다.  기쁨으로 사는 것이 성공비결입니다.  기쁨으로 살면 건강해집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건강입니다.  건강을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으로 운동요법이 있습니다.  자꾸 움직이면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식이 요법이 있습니다.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고 소식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게 있습니다.  심리요법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약물요법도 있습니다.  적당한 약을 사용하는 것입다.  그러나 성령요법이 제일입니다.  성령은 기쁨입니다.  자꾸 기뻐하고 웃으라는 것입니다.  웃음은 생리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면역체를 강화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완화시킵니다.  기뻐하고 웃으면서 식사를 하면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기에도 덜 걸린다고 합니다.  위산을 줄여주고 암의 확산을 늦추게 한 답니다.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합니다.  정신 없는 사람 즉 미친 사람 아픈 것 보았습니까? 자꾸 웃으니까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예쁩니다.  왜 잘 웃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400번 이상 방긋 방긋 웃을 때 더욱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웃음이 적어진다고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기쁨이 있을 때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어떤 이가 하는 말 요즈음 웃을 일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이 주어집니다.  기쁨의 목록을 기록해 보세요.  우리에게는 기뻐할 이유가 많습니다.

(1)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기쁩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대하던 관계가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대로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과학을 주었고 예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2)주님께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사람들이 별 볼일 없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우리를 선택하여 사용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면 기쁨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축복을 받으면서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으니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몸이요, 둘째는 몸 안에 담겨 있는 인격입니다.  셋째는 선천적인 재능입니다.  넷째, 후천적인 기술입니다.  다섯째는 시간과 재능인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보존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바르게 사용할 때 세계는 평화가 올 것입니다.  

(3)무엇보다 성령이 충만할 때에 기쁨이 옵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성령은 희락입니다.  즉, 기쁨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모두가 기뻐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항상 기뻐하면서 삽시다. 기쁨은 공부해서 얻는 게 아닙니다.  낙천적인 삶을 산다고 하여 온전한 기쁨이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주안에서 살기에 기쁨이 생깁니다.  가난하여도 실패하여도 지속적인 기쁨이 있었습니다.  기쁨은 고난을 극복하게 합니다.  핍박이 와도 기뻐하면서 승리하였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환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이 임하였을 때 꿈을 주십니다.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꿈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하늘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늘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사람이라는 말은 헬라말로 안드로포스입니다.  이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타락한 이후에 땅을 바라보고 삽니다.  땅의 것을 추구합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비전이 생겼습니다.  하늘에 별과 달이 있습니다.  너희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 하십니다.

  1.  꿈이란 미래에 대한 그림입니다.
설계도입니다.  하나님이 그려주신 그림이 비전입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꿈은 밤에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계획을 세우고 성취하겠다는 다짐도 아닙니다.  꿈이란 야망이 아닙니다.(ambition) 야망은 욕망의 산물입니다.  야망이 큰 사람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줄 수 있습니다.  서구 백인들은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강탈하였습니다.  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인도하시는 중에 주시는 거룩한 그림입니다.  소명입니다.

  2.  꿈이란 삶에 대한 목표입니다.
삶에 대한 방향제시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지 아니합니다.  목표가 분명하기에 바르게 살아갑니다.  요셉은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이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 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여인이 유혹을 할 때에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목표가 있기에 그는 움직이지 아니하였습니다.

  3.  꿈이란 미래 소망입니다.
비전이 무엇이냐 할 때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란 도전과 응전으로 펼쳐진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는 충격과 반응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충격이 오고 도전이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응전하느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불평하고 좌절하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 받아 주시는 미래의 꿈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긍정적으로 받고 응하면 창조적인 미래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분명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  니다.  이런 때에 성령이 임하여 새로운 꿈을 갖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 꿈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하였습니까?

  1) 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노력하였습니다.  꿈이란 머리보다 마음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나는 것은 죽은 꿈입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하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2)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계획한대로 되지 아니합니다.  그런 때에 포기 하고자 하는 나약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때에 마음을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1963년 3월 8일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 때에 한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꿈이 있다.  꿈만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망의 동산에서 희망의 반석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꿈만 놓치지 않는다면 미국 내에 꽉 차있는 불협화음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심포니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번 시련이 와도 조금도 나약해지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님은 꿈을 이루는 성공자가 되기 위하여 네 가지 C자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 ‘Curiosity’(호기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험심이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은 없다.  단지 모든 것에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Noting venture, noting win”이라 하였습니다.  모험 없이는 승리도 없다는 말입니다.

(2)‘Confidence’(신념, 확신)입니다.  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믿음 가질 것을 요구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 9:23)

(3)‘Courage’(용기)입니다.  꿈을 가진 이들은 담대하여야 합니다.  조금 어렵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4)‘Concentration’(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집중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꿈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꿈을 가진 이는 활력이 넘칩니다.  박력이 있고 패기가 넘쳐 납니다.  삶에 생기가 넘칩니다.  살 맛납니다.  성령이 임하여 새로운 꿈을 가지고 그 꿈 이루어지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이 임하면 이적이 일어납니다.  

30절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중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불치의 병이라도,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성령 받은 이들이 기도하다가 치유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인이라면 누구라도 이적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인들 10명중에 8명 이상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을 믿으며 그 중에 반수 이상은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교회에 처음 나온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 질문을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예전에는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왜 계속하지 아니 하시나요? 그를 바라보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기적을 행하시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그걸 바라볼 여유가 없더군요.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삽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임하면 기적이 나타나는데 바로 변화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변화입니다.  물론 기적이라 하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어떤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 기적은 제자들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진흙에서 반석이 되었고, 요한은 온 마을을 불사르자고 말하는 과격한 성품의 사람이었는데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쉽지 아니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야말로 대단한 기적입니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되 오직 성령으로 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여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 합니다.  

무엇이 변화되어야 합니까?

1)가치관이 변해야 합니다.
  마음이 달라지지 아니하였는데 무엇이 될 것 같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이것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친구가 우선이었고, 가족이 제일이었는데 마음으로부터 주님이 제일이 되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억만금을 주어도 그것을 사양하고 나는 예수 위해 살다가 죽으리라 이러한 자세로 살게 되었다면 변화입니다.

2)언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무엇으로 상처받습니까? 언어입니다.  말 한 마디 잘못하여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생깁니다.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하게 됩니다.  방언이란 언어의 변화됨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합니다.  격려합니다.  축복하는 말을 합니다.  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3)생활이 변화됩니다.
  예수 믿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울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를 보면 두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Pletheis’입니다.  이는 사역을 위하여 주시는 은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행 2:1-4, 4:8, 7:55절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하나는 ‘Pleres’ 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삶이 변화되는 게 이적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변화된 이적을 보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임하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성령 받기를 사모하세요.
    2.  약속을 믿고 기다리세요.
    3.  뜨거운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죄는 과감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5.  부지런하고 신령한 욕심을 가지세요.  

  그러다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 새로운 비전을 보면서 기쁘게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