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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복음서 녹취 10

by 【고동엽】 2022. 2. 12.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내가 2~30억 뇌물을 바쳐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한다면 내가 대제사장으로 봉직하는 기간 동안 모든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겠습니까? 갖다 바친 이상을 회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들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겁니다. 돈벌이의 수단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성전에 있는 돈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냈던 헌금이나 십일조를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가 사람들이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 제물을 바쳐야 되는데 이 제물을 비싼 가격에 판매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시장에 가면 10만원에 살 수 있는 양을 2~30만원 파는 겁니다. 그런데 안 살 수 있습니까? 시장에서 양을 사오면 부정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무 짐승이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에 의해서 정결하다고 인정받는 것들만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집에서 기르는 짐승 아니면 시장에서 산 짐승을 가져오면 제사장들이 다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판매하는 짐승들은 정결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성전에서 이 제물들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감람산에서 그리고 유월절 같은 명절에는 감람산과 이방인의 뜰에서 짐승들을 판매했습니다. 거기에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 살 수가 없는 겁니다. 한 마디로 당시 성전이 한 마디로 종교 사업을 한 겁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그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뒤집어 엎잖아요. 그리고 뭐라고 하십니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될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사람들의 돈을 강탈하는 그런 강도들의 본부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권력자들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토라에 근거해보면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동물 속죄를 바쳐야 되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비싼 가격에 짐승을 팔면서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형식을 파괴한 겁니다. 동물 속죄가 아니라 자기 죄를 진정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죄사함을 얻을 수 있는 물세례를 준 겁니다. 세례 요한은 한 마디로 뭘 한거냐면 형식은 파괴하고 회개의 본질을 회복한 겁니다. 여기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 갑니다.


세례 요한에게 어떤 사람들이 몰려갔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과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분노한 사람들이 몰려갔겠죠. 또 하나, 회개의 본질은 갖추고 있지만 짐승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던 사람들 그래서 회개할 줄도 모르는 죄인이라고 끊임없이 낙인 찍혔던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가게 되니까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면 몰려갈수록 예루살렘 성전의 수입은 반토막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은 세례 요한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세례 요한 저놈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세례 요한을 뭐라고 공격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반율법주의지다, 왜 반율법주의자입니까? 율법에 근거해보면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동물 속죄를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동물 속죄가 아니라 회개만 하면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물세례를 베풀었으니까 종교 지도자들의 관점으로 보면 형식을 파괴한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권력자들과 세례 요한 사이에 갈등이 첨예해졌을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옳다고 인정하십니다. 나중에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서 죽임 당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예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 성전 권력자들이 헤롯 안티파스의 행동을 지지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이지만 누구의 묵인과 협력이 있었냐면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의 묵인과 협력이 있던 겁니다. 한 마디로 헤롯 안티파스라는 정치 권력자와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의 협력을 통해서 세례 요한은 죽임을 당한 겁니다. 이 세례 요한의 죽음은 누구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나중에 예수님이 어떻게 죽임을 당합니까? 본디오 빌라도라는 정치 권력자와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의 협력을 통하여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하나의 복선인 것이고 왜 세례 요한을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은 그렇게 싫어했는가, 한 마디로 자기들이 행하고 있던 종교 사업을 세례 요한이 방해한 겁니다. 세례 요한을 책망했던 중요한 내용은 반율법주의자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형식은 파괴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뭐를 회복한 겁니까? 회개의 본질을 회복한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정한 겁니다.


마가복음을 보시면 예수님은 본격적인 사역 전에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시는데 이 세 가지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사탄이 요청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죽기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메시아가 되실 것을 시험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관련해서 하나 보셔야 될 것 가운데 하나가 많은 한국 교인들은 예수님과 12제자의 관계를 얘기할 때 12제자가 예수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30세 즈음에 공생애를 하셨으니까 청년 예수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예수님의 12제자는 털이 수부룩한 중년 정도의 나이였을거라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누가복음 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이 30세 즈음에 공생애를 시작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정확히 30세가 아니라 30세 즈음이라는 표현입니다. 30세라고 예수님이 자기 나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를 그렇게 평가한 겁니다. 30세쯤 되었겠지 라고 말한 겁니다. 예수님과 12제자 가운데 누가 더 나이가 많았을까요? 우리가 영화 등에서 본 예수님은 굉장히 얼굴이 깨끗한 모습이고 베드로와 12제자들은 털이 수부룩한 중년 아저씨들입니다. 그래서 12제자가 예수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7장 24절부터 27절을 보시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 예수는 성전 싫어하니까 성전세 안 내지, 이렇게 질문합니다. 베드로가 낸다 라고 답변을 하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세금을 내냐, 안 내냐 얘기하시면서 그러나 저희로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네가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던지면 물고기 한 마리가 잡힐 터인데 그 물고기의 입을 열면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다 그 한 세겔을 나와 너를 위하여 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전세는 20세 이상의 유대 남성들이 내는 세금입니다. 얼마냐면 반 세겔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한 세겔을 물고기 입에서 얻게 될 텐데 그것을 나와 너를 위해서 내라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12제자 총 13명이죠. 그 13명 가운데 성전세를 내야 될 사람은 예수님과 베드로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예수님과 12제자 가운데 20세 이상의 유대 남성은 예수님과 베드로밖에 없는 겁니다. 실제 복음서에 보시면 베드로는 장모가 있다는 표현이 계속 나옵니다. 베드로는 결혼한 기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뭐냐면 복음서가 쓰여진 1세기 맥락에서 유대인의 나이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은 보통 33-35세 정도에 결혼을 많이 하고 여성들도 30-32세에 평균적으로 결혼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를 상상해 보십시오. 조선 시대 남성과 여성들이 몇 살 정도에 결혼했을까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했을 때가 몇 살이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남성과 여성은 몇 살 정도에 결혼했을까요? 당시 유대 남성들은 보통 18세에서 22세 사이에 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유대 여성들은 12~14세 사이에 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당시 여성들은 초경을 할 때가 결혼 연령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이 야이로의 12살 된 딸을 살리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 12살 딸이라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아닙니다. 당시 12살 된 딸이라는 것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처녀라는 말입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했을 때가 12~13살 정도인 겁니다. 그래서 AD 1세기에 엄마와 첫 아이의 나이 차이가 15살을 거의 넘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 남성들은 보통 18~22세 사이에 결혼을 하고 20세 이상의 유대 남성들이 내는 세금이 성전세이고 마태복음 17장 24-27절을 보면 예수님과 12제자 가운데 성전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베드로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30살 정도 되었을 때 바울은 한 25세, 베드로는 21~22세, 나머지 모든 제자들은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라도 봅니다. 요한복음을 보시면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했던 제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은 요한복음을 쓴 요한이라고 봅니다. 그 요한은 한 15세 정도였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청년이고 나머지 제자들은 중년의 아저씨가 아니고 예수님이 제자들보다 월등히 나이가 많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D 1세기 유대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40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30세 즈음에 공생애을 시작했다는 말은 정상적으로 예수님이 결혼을 하셨다면 30세 즈음이면 결혼을 앞둔 딸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30세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로 얘기하자면 66세 정도 되는 겁니다. 결코 청년의 나이가 아닙니다. 굉장히 나이가 드시고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 AD 1세기의 배경, 그 당시 사람들은 몇 살 정도에 결혼했는지, 30세 즈음에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오늘날로 이야기 했을 때 몇 살 즈음인지 총체적인 배경을 이해하시라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 마가복음에 대한 내용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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