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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녹취 9

by 【고동엽】 2022. 2. 12.
오늘은 복음서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개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마가복음입니다. 제일 짧기도 하고 가장 권위 있는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탄생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래서 탄생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가복음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보시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상이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을 보시면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던 요셉과 마리아가 원래 베들레헴이라는 곳에 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러다가 천사의 명령을 받아 애굽으로 피신하셨다가 그다음에 헤롯 대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래의 집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하다가 헤롯보다 더 잔인하고 폭군이었던 아켈라오가 다스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갈릴리 나사렛 지방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마태복음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보시면 요셉과 마리아가 살고 있는 곳은 갈릴리 나사렛 지방입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선포한 호적하라는 명령을 듣고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내려왔다가 그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집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어디에 누이냐면 구유에 누이게 됩니다. 이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탄생하고 나서 동방 박사가 와서 경배를 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 목자들이 와서 경배합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전날 성탄 연극을 하면 이 두 내용을 섞어서 연극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리 지방에 있다가 베들레헴에 호적 조사하러 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를 구유에서 출산을 하고 그 다음에 동방 박사와 목자가 와서 경배를 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이야기가 조금씩 섞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의 탄생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왜 복음서가 4개가 있을까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4개의 복음이 똑같은 이야기를 강조한다면 굳이 4개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한 강조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겁니다. 유대인이 오랜 세월 기다렸던 메시아가 예수이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은 하나님이셨던 예수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이 땅의 가장 낮고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예수의 모습은 자기를 낮추심, 한없이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집에서 출산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낳으신 예수를 누가 경배합니까? 외국의 사절들인 동방 박사들이 경배합니다. 그 왕을 만나러 나올 때 뭐를 준비합니까? 황금과 몰약과 같은 값비싼 예물을 준비하죠. 그런데 자기를 한없이 낮추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강조하고 있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누가 경배하냐면 당시 인간 취급받지 못했던 목자들이 경배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목자하면 굉장히 우호적인 친근한 그런 느낌을 많이 갖고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목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던 존재입니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 때문에 하나님은 목자, 우리가 왠지 기대고 싶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분으로 많이 생각하는데 시편 23편은 시인이 자기를 양에 비유한 겁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공동체라는 인간 사회 안에서 목자들은 인간 취급받지 못했던 가장 밑바닥 존재입니다. 왜 목자들이 당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냐면 목자라는 존재는 몇 가지 것들과 동의어로 취급되었습니다. 첫째 목자는 노숙인입니다. 목자는 동성애자입니다. 목자는 수간자입니다. 목자는 도둑놈입니다. 목자는 스파이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목자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목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았냐면 이스라엘 땅에서 목자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아침에 양과 염소를 끌고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위 유목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그래서 10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비가 많이 내립니다. 이것을 우기라 합니다. 이 우기 때는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끌고 유목을 하지 않습니다. 이 우기 때 비가 많이 내리면 풀이 자랍니다. 3월 중순부터는 소위 건기가 시작되는데 건기가 시작될 때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끌고 풀을 따라 계속 이동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양과 염소를 끌고 풀을 따라 이동하는 기간이 거의 6~7개월이 됩니다. 왜 목자를 노숙인이라고 하냐면 양과 염소를 끌고 나가서 6~7개월 동안 바깥 생활을 하는 겁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겠죠. 요즘도 중동에 가서 베두인족을 만나보면 굉장히 나이 들어 보이는데 나이를 물어보면 40살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훨씬 늙어 보입니다. 왜 이렇게 베두인족들이 나이에 비해 굉장히 늙어 보이냐면 들판 생활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뙤약볕에 계속 노출되어 있고 잠자리도 들판에서 6~7개월 동안 생활하다 보니까 굉장히 나이 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목자 하면 노숙인인 겁니다. 이 6~7개월 동안 바깥 생활을 하면서 남성 목자들이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는 겁니다. 하나가 뭡니까? 같은 남성 목자들에게 성욕을 해소하면 동성애가 되는 것이고 양과 염소와 같은 짐승에게 해소하면 수간이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시면 동성애자나 수간자들을 돌로 쳐 죽여라, 이것이 어떻게 보면 1차 타겟이 당시의 유목민들입니다. 목자들입니다. 그리고 왜 목자를 도둑놈이라 하냐면 목자들이 풀을 찾아서 이동하면서 양과 염소에게 풀을 먹이는데 사실 그 풀은 자기 풀이 아니죠. 다른 사람의 풀을 먹이니까 도둑놈인 겁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이 뭐냐면 목자는 풀을 따라 계속 이동합니다. 지난달에는 에돔에 있었습니다, 이번 달은 모압 지방으로 올라옵니다, 다음 달에는 요단강 건너서 이스라엘로 건너 옵니다. 이런 목자를 한 국가의 정치 권력자들이 뭘로 활용을 많이 했냐면 에돔 땅에 있다가 모압 땅에 넘어오게 되면 모압의 권력자들이 목자를 부릅니다. 그리고 에돔이 지금 어떠한지 에돔의 정세를 목자를 통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한 마디로 목자는 스파이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모압 사람들이 목자에게 에돔에 대한 정보를 들었지만 이 목자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되면 자기 나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것 아닙니까. 한 마디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목자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만큼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던 대표적 밑바닥 인생이 누구냐면 목자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보시면 자기를 한없이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도 집에 누이지 못하시고 구유에 누여야 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경배합니까? 인간 취급받지 못했던 목자들이 와서 경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으로 태어나심을 강조하는 마태복음에서는 이방의 동방 박사들이 와서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귀한 예물을 바치면서까지 경배하고, 자기를 낮추셔서 이 땅에 오신 한없이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누가복음에서는 당시 인간 취급받지 못했던 목자들이 예수를 경배하는 모습, 이것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게 되냐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공생애를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마가복음의 출발이 누구로 시작되냐면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시작됩니다. 세례 요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예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와서 행한 가장 중요한 사역이 뭐냐면 회개의 물 세례를 시행한 겁니다. 여러분 당시 유대인들에게 물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물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정결 예식으로 물을 거니는 그런 의식은 행했지만 물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물 세례는 누가 받는 겁니까?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려고 할 때 받아야 될 세 가지 예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물 세례였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물 세례를 받지 않았는가?. 우리가 물 세례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세례하면 물을 뿌리는 것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세례 요한이 베푼 것은 물을 뿌리는 세례라기 보다는 물에 온 몸이 잠겼다가 다시 올라오는 침례입니다. 침례는 뭐를 상징하죠? 물에 잠기었다라는 것은 하나님과 무관했던 우리 옛 삶을 죽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에서 다시 올라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유대인들은 이런 침례를 받지 않았나요?.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맺는 자라는 자의식이 있었습니다. 침례나 세례는 누가 받는겁니까?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이방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 라고 할 때 받는 것이 바로 세례와 침례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겁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것을 유대인들에게 받으라고 운동을 일으킨 겁니다. 한 마디로 세례 요한은 뭐를 강조한 겁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실제 당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삶을 청산하고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어라 이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물 세례를 베푼 겁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회개의 물 세례는 유대 율법에 근거해보면 말도 안 되는 행동입니다. 왜 말도 안 되는 행동이냐면 세례 요한은 회개의 물 세례를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었습니다.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런데 토라를 보시면 죄를 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뭐를 해야하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양이나 염소나 소나 비둘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이 동물을 바칠 만한 재력이 없으면 곡식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제사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은혜의 장치가 바로 이 제사 제도였습니다. 율법에 근거해보면 우리가 하나님만을 믿겠다고 언약을 체결했는데 그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언약을 체결했던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원래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범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지 아니하시고 나 대신 짐승이 죽임 당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제사 제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뭘 이야기 하냐면 그런 짐승을 바치지 않고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물 세례를 받으라는 겁니다. 이것 자체가 토라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세례 요한을 뭐라고 공격하기 쉽냐면 세례 요한은 이단인 겁니다. 토라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그런 내용을 시행하고 있는 거니까 세례 요한은 토라에 근거해볼 때 이단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라고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은 세례 요한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물 세례를 베풀었을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 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권력과 세례 요한이 갈등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가셔서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옳다고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옳다고 인정을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도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예배나 찬양이나 기도나 회개라고 할 때 이 모든 것에는 형식이 있고 또 하나 본질이 있습니다. 형식과 본질 이 두 개를 다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만약 본질과 형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우리는 본질을 선택해야 되겠죠. 회개의 본질이 뭐죠?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했을 때 그 본질은 뭡니까? 한 3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회개의 본질은 내가 저질렀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통회 자복하는 마음이 회개의 본질이겠죠. 그다음에 우리가 죄를 범하면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습니다. 피해를 입습니다. 뭐가 회개의 본질입니까? 나로 말미암아 피해 입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 피해를 보상하고 배상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회개의 본질입니다. 세 번째는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결단 이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이런 회개의 본질을 감싸 안는 형식이 뭐죠? 그게 바로 대속 제사입니다. 대속 제사라고 하는 것이 의미를 갖추려면 이런 회개의 본질을 그 안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 거냐면, 잘 보세요. 토라에 근거해보면 사람이 죄를 범하고 나서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속 제물입니다.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개의 본질은 전혀 갖추지 않으면서 형식만 갖추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자기가 범했던 죄에 대해 통회 자복하는 마음도 없고 자기 때문에 손해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미안해 하는 마음, 그 피해에 대해 배상과 보상을 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결단도 전혀 없는 사람이 짐승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면 뭘로 인정받냐면 회개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겁니다. 본질을 갖추지 않았지만 형식을 갖추면 사람들은 뭐라고 판단하냐면 이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서 회개를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 이렇게 인정받는 겁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겁니다. 회개의 본질을 다 갖추었는데 짐승을 살 만한 경제력이 없는 겁니다. 본질은 갖추었지만 형식을 구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습니까? 회개할 줄도 모르는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낙인이 찍히는 겁니다. 이것을 이용한 사람이 누구냐면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입니다. 지난 시간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백년 동안 다스릴 때 대제사장의 평균 임기가 5년이었습니다. 원래 대제사장이라는 사람은 종신직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 사역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A라는 대제사장이 죽고 나면 새로운 대제사장이 세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시면 예수님을 죽였던 사람들의 목록에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대제사장이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백년 동안 다스릴 때 대제사장의 평균 임기가 5년이었습니다. 5년마다 물갈이를 한 겁니다. 어떤 사람으로 물갈이를 한 겁니까? 총독에게 또는 헤롯 대왕에게 뇌물을 많이 갖다 바친 사람들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한 겁니다. 이 사람들이 대제사장이라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10억, 20억의 뇌물을 갖다 바친 겁니다. 그런데 나보다 누가 더 많은 뇌물을 바치게 되면 언제 짤릴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한 번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뇌물을 바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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