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후'를 기억하라! (히 9:27-28)
▶아동 작가 정채봉씨가 쓴 '만남'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리고 했습니다. 왜?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차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귀중한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그렇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그렇습니다. /할/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인생의 세 때에 대하여 상고하려고 합니다. /할/
▶한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어머니, 사람은 몇 살에 죽어요?' 아들의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그 아들을 데리고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얘야, 무덤의 비석에 씌어진 사람들이 몇 살에 살다가 죽었는지 연수를 헤아려 보아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수많은 비석을 살펴보고 나서 '사람의 죽는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복음을 주고 예수를 영접시키고 훌륭한 믿음의 아들로 키웠답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노인은 죽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습니다.
이 죽음의 길은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죽음의 길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죽음은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건만 죽음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같이 살아갑니다. 이건 아주 큰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보세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기 '정한 것이다'라는 말은 '정해 놓은 것'이란 말로 '앞에 가로 놓여 있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운명'이라는 말입니다.
'호라티우스'는 '이 세상의 부나 권력이 끝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니 갈 장사가 없습니다. 정든 집을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아내를 두고 가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것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붙잡아도 가야 합니다. 내 앞으로 등기된 땅도 집도 채권도 저금통장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생명의 정지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죽음은 심장이 멈추어지고 호흡이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 가슴속에 있는 심장은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뛰고 있습니다. 국경일도 없이, 휴일도 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 심장이 멈추어 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죽음은 무자비합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이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종지부가 아닙니다. 전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두렵지 않습니까?/할/
▶로마 '우르반' 대학의 정문에는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이라는 글이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인즉, 이 대학에 법대를 다니며 장래가 촉망받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한 부자를 찾아가 학비를 부탁하자 그 노인은 그 청년의 학비를 대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는 법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하려는가?' '변호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집을 짓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차를 사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청년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노인은 청년에게 '그 다음에는 죽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리켜 주었답니다. 크게 깨달은 그 청년은 세상을 공들여 살다가 그 학교에 총장이 되어 젊은 청년들에게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바로 알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는 자가 되라는 묵시적인 교훈입니다. /할/
▶헬라제국을 통치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 왕에게는 이상한 신하하나가 있었는데 이 신하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이른 아침에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왕이시여.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필립' 왕은 깜짝 놀라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안개 같은 인생,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지. 이 귀중한 날을 내가 헛되게 보낼 수 없지' 그리고는 부랴부랴 진지 상 앞에 왕이 앉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신하는 자기 몸 안에서 흉측하게 생긴 해골바가지를 끄집어내어 왕의 진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밥을 먹으면서 연신 그 해골을 쳐다봅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빌립 왕은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할/ ◀제목 소개!▶
사람에게는 저마다 잊지 못할 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국가도 국가마다 국경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8/15일이 광복절, 3/1절, 그리고 6/25 같은 날들은 잊을 수가 없는 날입니다. 또 어느 단체나 보면 창업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 들에게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난 날이 잊을 수가 없는 날입니다.
그런 날들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결혼기념일을 평생 잊을 수가 없는 날로, 특히 여성들은 남편이 그 날을 기억해 주는 것을 관심의 기준으로 보고 사랑의 척도로도 봅니다. 그 정도로 그 날들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그 날들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들이 우리들에게는 있습니다. 이것을 소위 '인간 운명의 세 때'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날들은 우리들이 신앙인 이라고 할 때 더더욱 뜻이 있고 중요한 날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날과 세상을 마치는 날과 하나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아멘!/
사람이 때를 알고 산다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성경은 때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전3:1절 이하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으면 평화로울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때의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상고하겠습니다. /할/
①인생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생일날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김소란권사님의 따님과 예비 사위가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점심 때 중국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려 오셨습니다. 바로 어머니 김소란권사님의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할/
누구에게나 생일이 있습니다. 이 날이 우리 인간 운명의 첫 번째 날입니다. 이날을 우리들이 좀 깊이 음미를 해보면 굉장히 중요한 날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날이 없었더라면 지금 저와 여러분의 존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해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이고, 기적입니다. 이것이 생일날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이 태어나면 축복을 해 주고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이 기쁨의 날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날로 바꿔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낳자 맞아 길바닥에 버려지는 생명들이 있는가 하면, 해외로 입양되는 생명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가끔 신문에 보면 입양아들이 커서 고국 땅에 와서 생모를 만나고 싶다는 하소연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컸겠습니까?
그뿐입니까? 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지금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음지에서 낙태되어서 땅 속에 버려지고 있습니까? 그렇게 버려진 수많은 생명들이 지금 땅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다 듣고 계십니다. 아벨이 죽어서 피를 흘렸을 때도 그 소리를 들으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버려지지도 않았고, 해외 입양도 안됐고, 부모 밑에서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 인들은 임신 때부터 어린 생명들을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 주신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하고 신앙 안에서 키워야 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때인 태어난 날은 우리 모두 축복의 날입니다. /아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이 인생을 이 땅에 보내셨느냐?' 이 사실을 알아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요리 문답 제1문은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묻고, 답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함이라'고 했습니다.
전12: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잠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롬11: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할/
②인생은 마치는 날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죽는 날'입니다.
인생의 두 번째 때인 이 죽음의 날도 우리들이 피할 수 없는 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죽음의 날이 배당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할/
사람이 죽음을 바로 알아야 겸손해 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삶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약4: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사람이 죽을 때는, 장갑을 끼었다가 벗을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때에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보며 신비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던 17세 난 소년은 죽기 직전에 '아! 베드로가 보인다.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니까, '큰일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걱정을 하다가 '엄마, 나는 먼저 천국에 갈 테니 엄마는 나중에 오세요'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내일 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 성가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내일 일을 모르고 삽니다. 어김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은 불시에 인간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큰 나무를 톱질하다 보면 아무리 굵은 나무라도 언젠가는 잘라지는 것처럼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감에 따라 우리의 제한 된 생명은 끊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을 바로 알아야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죽음은 절대 사실이고 '만인의 공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만인이 필히 가야할 길입니다. 남자도 죽고, 여자도 죽습니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손자도 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약한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배운 사람도 죽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죽습니다 노인도 죽고 어린 아기도 죽습니다. 임금도 죽고, 신하도 죽습니다. 검은 사람도 죽고, 흰 사람도 죽습니다.
스승도 죽고, 제자도 죽습니다. 진자도 죽고, 이긴 자도 죽습니다. 환자도 죽고, 의사도 죽습니다. 시인도 죽고, 백정도 죽습니다. 아내도 죽고 남편도 죽습니다. 죄수도 죽고, 판사도 죽습니다. 부모도 죽고, 자식도 죽습니다. 귀족도 죽고, 노비도 죽습니다. 미녀도 죽고 추녀도 죽습니다. 사병도 죽고, 장군도 죽습니다.
정복자들도 죽었습니다. 중국 대륙, 구라파 제국, 러시아 변방까지 손에 넣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슴에 품은 징기스칸도 죽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무적의 황제 알렉산더도 일생 33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구라파의 광대한 땅을 어머니 앞에 자랑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도 죽었습니다.
세계의 절세 미인들도 죽었습니다. 애굽의 클레오파트라. 중국의 양귀비가 죽었습니다. 세계의 미스 유니버스들도 때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이 진하면 죽을 것입니다. 화려한 배우들도 죽었습니다. 은막의 여왕 마릴린 몬로, 잉그릿드 버그만, 오드리 햅번, 서부의 사나이 죤 웨인도 죽었습니다.
독재자들도 죽었습니다 히틀러, 호메니, 마르크스, 스탈린, 김일성도 죽었습니다.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베토벤, 바하, 슈베르트, 모차르트가 죽었습니다. 밀레, 고호, 미켈란젤로, 피카소가 죽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죽었습니다. 뉴우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이 죽었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도 죽었습니다. 처칠, 워싱턴, 케네디, 이승만씨가 죽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스승들도 죽었습니다. 조만식, 김구, 윤봉길씨가 죽었습니다.
갑부들도 죽었습니다. 오나시스, 록펠러, 이병철씨가 죽었습니다. 통일의 꿈을 앉고 1000마리 소 떼를 몰고 방북 했던 정주영씨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호메트, 공자, 부처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죽고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사들도 죽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3;2절에 '죽을 때가 있나니' 욥34:15절에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로다' 오늘 본문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에도 있고, 낮에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죽음은 전쟁터나 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도 있고, 산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습니다. 죽음은 전쟁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시에도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가르쳐 주거나 배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은 찾아옵니다. 죽음은 연습 한 적이 없는데도 죽게 됩니다. /믿/아멘!/
㉡죽음은 절대 비밀입니다.
누구나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죽는 날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웃기는 사람입니다. /할/
㉢죽음은 항거할 수도 없습니다. 도피할 수도 없습니다. 연기도 불가능합니다.
내가 돈 벌어야 된다고, 결혼해야 된다고, 박사학위를 받아야 된다고 죽을 수 없다고 대항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또 자식들을 길러야 되겠으니 연기해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피해도 산과 들로 피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믿/아멘!/
㉣이 죽음 앞에는 슬픔도 계산 착오입니다.
어떤 남자는 부인이 자궁 외 임신으로 갑자기 죽었습니다. 입관하는 날 이 남자는 몹시 울며 시체를 붙들고 입관을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내가 우리의 남편이 영원히 내 아내 내 남편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계산 착오입니다. 아내도, 남편도, 아들도, 딸도, 집도, 재산도 영원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내 곁에서 떠나가게 마련입니다. /할/
㉤죽음은 모든 계획을 다 허무하게 만듭니다.
⑴가정계획도 허무하게 합니다.
눅7장의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상여로 나갑니다. 나인성에 사는 이 과부는 결혼하여 행복을 꿈꾸었지만 남편이 죽어버리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유복자가 하나 있어 그 아이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데 그 독자 마저 죽은 것입니다. 가정계획은 제 아무리 근사하게 세워도 죽음은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⑵죽음은 사업 계획도 허무하게 합니다.
약4:13-14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일제시대 조선일보 사설에 <일금 천 원은 누구의 것이냐?>란 제목의 글이 기재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한 사람이 그 당시 인력거를 끌며 천 원만 예금하면 집을 사고, 가게를 내고, 알뜰한 부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리라고 야무지게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고 달리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금통장의 액수는 점점 늘어가고 마침내 천 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찬 앞날을 생각하며 기뻐했지만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앓다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가족도 없던 그였기에 시청에서 그의 시신을 장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남아 있는 일금 천 원이 문제였습니다. 황천에 우체국이 있다면 부쳐주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사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 밤, 낮 없이 뛰고 달리며 사업을 확장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됩니다. 재산이 많다고 죽은 다음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다고 하는 생각도 계산 착오입니다. 그러므로 사업 때문에 신앙생활을 등한히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할/
⑶죽음 앞에서는 정치도 야망도 허무하게 됩니다.
'뉴 프론티어'를 외쳤던 케네디는 세상 적으로 유명한 대통령이었지만 흉탄에 맞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니 그의 정치 야망도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자유당시절 신익회씨는 야당 대통령으로 출마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전북 이리로 유세를 떠나는 날,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고 맙니다.
그 뒤 조병옥 박사도 대통령으로 출마했는데 몸에 이상이 있어 미국에 가서 입원했는데 치료를 받고 거의 완쾌되었다고 하더니 갑자기 죽어 싸늘한 시체로 김포공항에 돌아왔습니다.
민주정치를 꿈꾸며 많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던 신익회씨도 조병옥씨도 죽음 앞에 정치 계획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기붕이라는 사람은 한 때, 부러울 것이 없는 세도를 누렸지만 세상이 바뀜에 따라 아들 강석이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동생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습니다. 네 식구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할/
죽음 앞에서는 권력도 권세도 더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복 있는 죽음도 있습니다.
▶눅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둘 다 일생을 마치고 함께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죽던 날, 부자는 최악의 날이 되었고, 거지 나사로에게는 최상의 날이 되었습니다. 부자는 살아생전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는데 그만 예수 밖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간 곳은 이를 갈며 슬피 울어야 하는 음부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어렵게 살았지만 주안에서 살다가 떠났기에 낙원에 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할/아멘!/
▶그러나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온갖 수고를 다 했으면서도 마지막 생을 마치는 모습은 모양새가 아주 흉물스러웠습니다. 주님을 배반한 자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반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던 우편 강도는 일생을 험하게 살고 죽어갈 때 저주의 형틀에 매달린 채 죽어갔지만 그의 끝의 모양은 가롯 유다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눅23:42-43절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 이런 죽음(예수 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된 죽음입니다. /아멘!/
여러분! 태어날 때도 복된 탄생이 되어야 하고 죽음도 이런 축복된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교의 대부 '칼빈' 목사님은 그의 마지막 임종하는 시간에 롬8:18절인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어떤 권사님은 마지막 운명할 때, 활짝 웃으면서 '주님이 나를 오라고 하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가셨답니다. 얼마나 성스러운 종말입니까? /할/
여러분! 왜 죽음을 이렇게 오래 설교하겠습니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느 날 그 시간이 옵니다. 우리가 죽음을 바로 알아야 바로 살 수 있고, 바로 믿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살고 바로 믿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멘!/
③죽음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본문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우리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때입니다. 사람들은 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관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일입니다. /할/
⑴심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죽은 자는 부활의 심판으로 저 영원한 천국으로 가지만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영혼들은 음부에 가두어 버리고 맙니다. 이 죽음이 비참한 죽음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예수 믿는 자들은 심판하시는데 바로 행위에 대한 심판입니다. 천국에는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 책이요, 다른 하나는 행위 록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한 일과 이웃에게 한 일 모두를 하나님은 다 행위 록에 기록해 놓으시고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산 자는 엄청난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 상급도 없습니다. 여기서 상급이 많은 사람이 영광의 날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치욕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학교 다닌 사람은 졸업 때에 졸업장은 다 똑같이 받는데, 상 받는 것은 자기가 공부한 대로 몇 사람만 받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시민권은 다 받습니다. 그러나 면류관 상을 받는 것은 믿음을 지킨 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날을 위해서 살라고 했습니다. 그 날 받은 삶을 위하여 지금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아멘!/
빌3:13-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할/
⑵우리는 이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노라' 푯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란 말은 한번 세워 놓은 푯대를 놓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좇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가끔 보면 푯대를 놓치고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간 방황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신앙 안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푯대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일들은 수 없이 있습니다. 누구나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붙잡혀야 된다고 했습니다. 빌3: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아멘!/
또한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나는 없고 오직 예수님만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십시오, 주님은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연합의 힘은 큽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해서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혼자 있지 말고 예수 안에 들어와서 주님과 함께 연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듯이 주안에 들어와서 주님과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르심의 상을 소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이 상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일본 도쿄에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이봉주선수가 뒤에 우승 소감을 말하기를 '뛰는 도중에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죽고 싶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왜 끝까지 뛰었습니까? 바로 상 때문입니다. 그 상이 그를 뛰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그때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을 것입니다. /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뛰어야 합니다. /믿/ 그렇습니다. 인생은 운명의 세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와 죽을 때와 주님 앞에 서는 때입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할/
▶우리는 누에를 잘 압니다. 누에 잠자는 '하늘 천' 밑에 '벌레 충'자를 쓴 것으로 하늘벌레라는 뜻이 있답니다.
누에는 뽕을 먹고 자라는데 먹고 자는 일을 되풀이하며 자랍니다. 마지막 잠자는 동안 누에는 먹는 것을 다 내어 가지고 누에고치를 만듭니다.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집을 잘 지은 누에는 그 집에 들어가 죽은 후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집을 잘못 지은 누에는 영영 죽어버리고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죽음이 오기 전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내가 서기전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믿/
⑶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사후에 영원한 두 세계가 있습니다.
영생복락을 누리는 천국이 있고, 영원토록 고통받는 지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할/ '설마, 그럴라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보내시렵니까?
천국은 밤이 없습니다. 밤은 죄악과 불안과 공포의 상징입니다. 천국은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천국은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할/ 그리고 천국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은 다 변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곳입니다. /아멘!/
또 천국은 아름다운 도성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해함도 없고 악함도 없고 위험도 없는 성입니다. 병원도 술집도 형무소도 없는 곳입니다. 열두 진주 문이 있고 거리에도 순금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기쁨과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슬픔, 고통, 근심 대신에 기쁨과 행복만이 넘치는 곳입니다. 생명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에는 온갖 생명과실이 열립니다.
천국은 아름다운 집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할/ 예수께서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인가? 너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곳입니다. /할/
④어떤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인가?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남은 날을 계수하며 죽음을 준비합시다. 시90: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또 암4:12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앞에서도 인용했습니다.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야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있고 지식도 있는 사람인데 죽은 다음에 꽃 한 송이 가져오는 사람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도 없이 고독하게 죽어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며 부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 앞에서 '악하게 굴더니 드디어 죽고 말았구나' 하고 속 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노인이 갑자기 염라대왕에게 불려 갔습니다. 노인은 당황하면서 염라대왕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불러오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내가 정리할 것도 있고 죽음에 대하여 준비했다가 와야 하는 거 아니요. 예고라도 해주어야 지, 날씨도 예고 해주는데 왜 죽음은 예고하지 않느냐?'고 따졌답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이 사람 기가 막힌 사람이군. 내가 여러 차례나 예고해 주었지 않았오. 먼저 눈 밑에 잔주름이 있게 한 것이 1차 예고요, 머리색깔이 희어지게 된 것이 2차 예고요, 잔주름이 3차 예고, 목 주름이 생기게 한 것이 다 죽음의 예고인데 무슨 딴전을 피우고 되레 큰소리냐?'라고 호통을 치더라는 우스개 소리입니다. /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⑴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축복입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그리고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막9: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빌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믿음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믿/아멘!/
⑵날마다 나를 쳐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고전15: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도 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죽음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로마 박해 속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mori)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는 이 고백을 자랑거리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이 고백을 우리도 받아드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이 옵니다. /믿/
그런데 죽음은 제대로 죽어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죽으면 안 됩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완전히 죽어야 새싹이 납니다. 산모가 목숨을 걸고 이 생명을 탄생시켜야겠다는 각오로 해산의 고통을 감수합니다.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만사가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해야 합니다. 죽음도 제대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살아납니다.
▶바울은 죽음을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5:24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것을 바울은 십자가에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우리의 정욕을, 불 신앙을, 인색함을, 교만과 거만과 오만함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믿/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전9: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영적인 싸움은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날마다 죽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죽여주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이것은 하나님이 죽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죽여야 합니다. 내가 나를 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믿/
그렇습니다. 날마다 죽는 자는 날마다 깹니다. 날마다 죽는 자는 날마다 의를 행합니다. 날마다 죽는 자라야 날마다 죄를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라는 이 개념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⑶하늘 창고에 저금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필요시 백지 수표를 주십니다.
마6:20-21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3: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갈6:7-9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할/
⑷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주일을 성수 하는 것, 성도의 기본이고 축복의 기본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축복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제단에서 일 천 번제를 통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다가 그 가정이 복을 받았습니다.
대상13:14절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할/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아멘!/
㈁기도생활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 과학입니다. 기도는 만능키입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바로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더 귀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왜 전도하지 못합니까? 이유는 안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의 부모 형제부터 전도하여 구원시키고 이웃을 전도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상중에 가장 귀한 상은 바로 전도의 상입니다. /믿/
㈃감사생활입니다. 감사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감사, 표현으로 감사, 드림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사업가 '하이네'는 사업에 크게 실패하여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마지막 가족들을 위해 남겨 두었던 천만 원을 주님 앞에 감사로 드렸더니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미국의 10대 재벌 중에 하나로 세워 주셨습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의 세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 삶은 영원한 천국에서 상을 바라보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인생 운명의 이 '세 때'를 잘 기억하며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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