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by 【고동엽】 2022. 2. 12.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미국에 한 갑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로 사는 사람인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골동품이 있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쫓아가서는 그것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골동품 잡지를 뒤적거리다 정말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유럽의 어느 왕가에서 사용하던 도자기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저것을 내 손에 넣어야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의 그림이 실린 잡지사에 연락해서 그 도자기가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잡지사에서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도자기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서 유럽까지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우연히 미술잡지를 뒤적거리다 자기가 찾고 있는 도자기의 행방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도자기는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소장자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잡지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얼른 창고에 가서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자기가 애타게 찾던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그 도자기를 소유했지만 그것을 한 번도 눈 여겨 쳐다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엉뚱한데 가서 그것을 찾느라고 괜스레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할/
바로 본문의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 각자에게 나름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 소중한 은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더 커 보이는 은사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에게 소중한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받은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은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러는 은사 때문에 자만에 빠지는 사람도 생겼고, 반대로 은사 때문에 풀이 죽어서 열등감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잘못된 은사관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위대한 사랑장인 고전 13장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할/
오늘 본문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명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방언을 해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여인이 결혼을 해서 4-50여 년 동안 한 남편을 섬기며 가정을 위해 봉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쁜 일손에 쫓기면서도 사랑과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봉사하여야 할 것인데 어느 사이에 짜증이 나고 신세 타령만 하고 앉았다면 그 손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을 먹고 건강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열렬하게 추구하고 흠모했던 은사들을 받았고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에게는 있어야할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은 없고 은사 체험만 있다 보니 그들은 게바파를 만들었고, 아볼로파를 만들었고, 바울파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은 그리스도파를 만들었고 결국 교회는 갈기갈기 찢기어지고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다보니 그들은 같은 교인들끼리도 서로 세상의 법정에 고소를 하고 서로를 욕하며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와 같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너희들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아주 강한 어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은 실로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사랑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내가 살아 있다는 모든 의미와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할 존재의 가치조차도 없게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2장에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준엄한 말씀으로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빨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너희가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졌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허영이요, 위선입니다. 사랑이 없는 수고는 노예 생활에 불과합니다. 어디까지나 사랑이 기준이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기쁨을 줍니다. 사랑은 벅찬 감격을 줍니다. 행복을 주며 모두를 유익하게 합니다. 사랑은 삶의 힘을 줄뿐만 아니라 소망이 넘치게 합니다. 그리고 보람과 긍지에 살게 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고는 '사람은 항상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할/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대학 다닐 때 수석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는 있는데, 맘에 드는 유대인 아가씨를 만나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의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칼 야스퍼스' 교수에게 큰 시험이 왔습니다. '당신, 지금 유대인 여자와 살지? 그 여자와 이혼하던지 아니면 우리 학교를 떠나시오' 벌써 상부 지시로 학교 당국에서 결정을 그렇게 하고 통보를 한 것입니다.
그때 '야스퍼스'는 고민을 하다가 선택을 합니다. '나는 절대로 아내를 못 버린다. 내가 교수직을 버릴지언정 아내를 버릴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주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대학 교수라면 사회 최고의 지위요, 권세요, 여러 가지 자기 인생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지가 오는데 '저술하지 말 것, 다니면서 강연하지 말 것, 여행 다니지 말 것' 완전히 갇힌 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더 사랑을 하면서 아내를 지켜줍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히틀러가 항복을 했습니다. '야스퍼스' 부부는 사랑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다 이기고 극복했습니다. /할/


▶덴마크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말을 타고 시골로 사냥을 가면서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길에서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여인이었기에 그만 첫 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생각나고 그리웠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내 사랑의 진실을 믿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는 괜찮지만 여자 쪽에서 볼 때 신분의 격차도 있고 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그 여인도 자기를 사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궁리를 합니다. 날마다 쉽게 자기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저도 자기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던 끝에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가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세 얻고 목수가 됩니다. 목수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박한 생활 속에 엄청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동네 사람들과 정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여인하고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듯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찾아왔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 여인은 왕자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믿고, 깨닫고 받아들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언젠가 위대한 힘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통하게 마련입니다. /아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한 가지 소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위한 소원을 묻습니다. 그때 아기의 엄마는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엄마로서의 간절한 소망을 말합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이 아이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할 줄 몰랐고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큰 고민에 빠져 우울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노인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간곡히 소원을 말합니다. '제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제 아이가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소원을 다시 빌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비밀은 받는 것보다 나눠줄 때 그 기쁨이 커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행복한 것입니다. /아멘!/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사랑을 5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⑴사랑은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만나는 많은 사람 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⑵사랑은 존경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것이 존경이고 이 존경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⑶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란 말을 '아래에 서다'란 뜻으로 이 단어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낮추고 상대방을 바라볼 때 가장 올바른 이해가 될 수 있다는 중요한 말입니다.
⑷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과 권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매사에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 책임감이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⑸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 이전에 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작품 중에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 날에도 향을 묻힌다'는 제목의 판화가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아픔을 주는 도끼 날에 독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향을 묻혀준다는 것이니 얼마나 사랑의 극치입니까?
▶옛날 어느 가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사이에 아들이 끼어서 늘 입장이 난처했습니다. 이쪽 편을 들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저쪽 편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늘 양쪽에서 면박만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궁리 끝에 아내를 불러서 넌지시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여보, 누가 그러는데 밤을 삶아서 그 밤의 껍질을 까고 삶은 밤에 꿀을 발라먹으면 위가 퉁퉁 붓는다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대'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아내는 얼른 시장에 가서 밤을 한 말 사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침저녁으로 밤을 푹 삶아서 거기에 꿀을 듬뿍 찍어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을 조금 수상하게 생각했지만 일단 맛이 좋으니까 잘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시어머니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손자도 잘 돌보아주지 않던 시어머니가 이제는 손자를 잘도 업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며느리를 대신해서 집안 청소도 해주고 또 물도 길어다 주었습니다. 또 그 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 욕을 했는데 이제는 며느리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시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볼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해 드렸기에 그렇게 변하셨는가? 우리를 볼 때마다 며느리 칭찬을 하시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드렸소?' 그러니 며느리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며느리는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남편에게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여보, 내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무엇에 씌었는지 밤을 삶아서 꿀을 발라 어머니에게 많이도 먹여드렸습니다. 벌써 어머니의 위가 퉁퉁 부어서 이제 머지않아 돌아가실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안돼요. 어머니를 살릴 방도가 없을까요?'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서 우선 모른 척 하고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세상에 이런 못된 여편네가 있나? 글쎄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밤을 삶아서 거기다 꿀을 찍어서 드려?'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으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껄껄 웃으며 아내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여보, 밤을 삶아서 거기에 꿀을 찍어 먹는다고 해서 죽기는 왜 죽겠어? 당신이 어머니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니까 내가 보기에 딱해서 꾀를 조금 부렸지'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이 변합니다. 내게 사랑이 있으면 우선 나 자신이 변합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도 변하게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변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할/ 왜 사도 바울이 사랑 장을 기록했겠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아직도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변화시켜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랑 장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할/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지식과 학식이 풍부하고, 언변의 폭이 넓고, 인격의 수준이 높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우러러 보이는 품성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사랑이 없는 히틀러의 웅변 때문에 수많은 나치의 전사들이 총칼을 들고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을 복음화 한 것은 리빙스톤의 웅변이 아니라 리빙스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원주민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했음을' /할/
우리는 말의 위대함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말 한마디로 평안을 줄 수도 있고, 한 마디의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로 새 힘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고, 말로 용기를 빼앗고 속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빠진 인간의 말은 시끄럽고 요란한 꽹과리의 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창한 논리적인 말보다는 사랑이 가득한 말로 네 이웃을 위로해 주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절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하는 능력',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 이런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러나 참된 사랑이 빠진 예언, 사랑의 발이 바쳐주지 못하는 불안전한 믿음, 사랑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만용은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자아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은 은사입니다. 은사는 끊임없이 활용할 때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끊임없이 주어야 합니다. 한없이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예언의 은사는 그 사람을 일등 종교 사기꾼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랑이 충만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3절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무슨 말인가? 한 마디로 전 재산을 털어 구제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구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매스컴을 보면 전 재산을 털어 대학에 기부하고 자선 단체에 헌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사건이요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적 같은 일 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자선 사업 차원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때, 반드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구제헌금을 전달했습니다. 왜? 생색을 내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항상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제는 사랑의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멘!/

3절⑵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현대어 성경은 '또 복음을 전하다가 화형을 당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여러분, 순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그래서 계20장에 보면 순교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별들'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 마지막날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다면 그 순교까지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들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 모두가 사랑의 공급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전도가 안됩니까? 내 속에 만인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한때 대학생들이 분신하여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 속에는 사랑보다는 증오와 미움과 권력 타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헌신은 사랑의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페스탈로찌'는 '사랑은 세상을 한데 묶는 줄'이라고 말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랑으로 헌신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며 교회를 바르게 섬겨야 합니다. /아멘!/



▶4-7절을 보면 사랑의 본질이 15가지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하여 오해를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무지개 빛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랑은 모두 즐겁고 포근하며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편지는 구구절절 핑크빛이 뚝뚝 떨어지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상당한 아픔과 고통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눈물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것을 모른 채 사랑하다가는 실패하기 쉽습니다.


⑴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여기에서 오래 참는다는 말은 그저 '참는다'고 하는 단순한 표현만 가지고서는 의미의 전달이 크게 부족합니다. 이것은 결코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참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참는다'고 하는 것은 오래 참으면서 불평 없이 참는 것, 그리고 참는 이유를 알고 기뻐하는 참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그릇된 대우를 받고 잘못 취급받아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는 능력이다' 그 당시 희랍 철학은 적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에 이것을 반격하여 승리하는 것이 강자의 미덕이며, 참는 것은 비겁한 약자의 태도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의 선언은 혁명적인 교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할/
특별히 본문에서 오래 참는다는 말의 원 뜻은 '마음을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오래 참는다는 것, 마음을 오랫동안 지탱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참는 것에 대한 미덕이 너무 부족합니다. 쉽게 짜증을 냅니다. 너무 쉽게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참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래 참는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의 은총 안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렇게 거듭난 새로운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할/
⑵사랑은 '온유하며'입니다.
여기서 '온유하다'는 것은 부드럽고, 인자하고, 친절한 행동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성품이 유순해야 합니다. 말이 거칠지 않아야 합니다. 표정이 상냥하고도 겸손해야 합니다. 정겨워야 합니다. 상대가 대하기에 거북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특별히 온유하다는 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상태의 온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여 온유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정적가운데 한 사람으로 '스탠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링컨을 '교활한 어릿광대'라고 욕했습니다. 혹은 공중 석상의 연설에서 링컨을 '오리지널 고릴라'라고 조롱하면서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멋진 고릴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라고까지 비꼬았습니다.
그런데 후일에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내각의 각료를 임명할 때 놀랍게도 그를 국방장관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링컨은 조용히 '그 자리에는 그 사람이 적임자요'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링컨이 암살되자, 그의 시체 앞에 선 스탠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꿇어 엎드려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여기 세계가 지켜보았던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누워 있노라!'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던 모세는 그 온유함이 모든 지면의 사람들보다 승하였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온유한 사랑을 소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⑶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입니다.
여기서 '투기'라는 말은 '시기' 내지는 '질투'라고도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부요함, 명예, 행복을 보고 마음이 상해서 분노가 그 속에 끊어 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형제가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의 제사는 열납지 아니하시고, 동생의 제사만 열납하셨습니다. 형은 동생에 대해서 시기했습니다.
결국은 동생을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가인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결국은 시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시기했습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할/
⑷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투기의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자랑의 초점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투기는 타인의 업적을 무로 돌리고, 자랑은 자기의 업적을 극대화시킵니다.
서양 속담에 '빈 수레가 큰 소리를 낸다'는 말이 있고, 우리 속담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빈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솔직히 여러분, 사람이 잘나봐야 얼마나 잘 낫겠습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닙니까? 정말로 뛰어나고, 잘난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얼마나 겸손한지 모릅니다. /할/
⑸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기 '교만'은 '자만심으로 툭 튀어나온 부풀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랑이 지나치면 이것이 바로 교만이 됩니다. 교만은 아주 노골적인 행동으로 아예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무시하고, 남을 짓밟는 행동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시원찮고 나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입니다. 잠16: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할/
⑹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결코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무례하다는 말은 '창피한 행동을 한다', '비열한 행동을 한다' '보기 흉한 짓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사랑은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옛 말에 '가깝고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깝다는 것 때문에, 서로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서로가 지켜야할 예의 범절을 잊어버리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함으로써 상처를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무례하다'는 말은 '공적 상황에서 질서를 범하므로 그 사람의 태도의 아름다움이 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무례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전체의 질서가 깨트려지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행동이 질서에서 이탈하며 버릇없이 방자하고 안하무인격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할/
⑺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이 시대에 특징 중에 하나가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본의로,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남이야 어쨌든 나만 배부르고 나만 편하고 나만 출세하면 된다는 의식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처사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반드시 청지기의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나누게 되고, 베풀게 되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주고 베풉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나인 더 쓰리'라는 작품 중에서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무렵 군인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허기진 어머니와 세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빵 한 개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빵을 받자 맞자 세 등분하여 세 아이에게 나누어줍니다. 이 모습을 본 한 병사가 말하기를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그때 상사가 말합니다. '야, 이 바보야! 바로 그게 어머니야' 어머니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기를 극복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 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노래합니다. /아멘!/
⑻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심하게 늘어난 것이 혈기와 분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경쟁 사회에서 살다보니 자연 혈기가 나고 분이 폭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절대로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은 분내고 성낸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성내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⑼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으면 악한 행동이 유발됩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범죄도 생각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한 마음을 다 내어버리고 미워하는 마음 시기, 질투, 분내는 마음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할/
⑽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절대로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불의를 행할 때 그들을 징계합니다. 불의의 결과가 너무나도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부모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불의는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할 때 그 결과가 매우 위험하게 나타납니다.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⑾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실, 참, 정직'을 말합니다. 가장 힘있고 능력 있는 자는 진실 되고 정직한 자입니다.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⑿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덮는다', 또는 '감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을 가리키는 말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는 지붕과 같다는 말입니다. 남의 허물이나 또는 남이 자기에게 한 잘못을 들추어내어 고발하거나 공개하지 아니하고, 덮고 감추어주느라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벧전4: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할/
여러분, 참된 사랑은 모든 것을 가리워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떤 허물이나 약점이나 문제나 잘못이라 할지라도 우선 덮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의 과오나 허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는 부모가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어내지 않습니다. 덮어주고 가리워 줍니다. 그리고 아들의 허물과 잘못을 내 허물과 잘못으로 알고 가슴 아파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비리나 과오를 들추어내어 비난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믿/
⒀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진실된 사랑은 믿음에 관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을 때, 그 믿음의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⒁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바램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바라고 기다립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인간 이성이 소망이 없다고 단념할 때에도 사랑은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쉽게 잊혀지거나 포기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 속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바란다는 것은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나타나지 아니한 긍정적인 요소들이 언젠가는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말합니다. 사실상 사람은 여러 차례 변신을 합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고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보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함께 변화할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⒂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어떤 한 고난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참고 견디어 냅니다.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견디어 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고난도 견디어 내셨습니다. 여러분 어렵습니까? 견디십시오, 끝까지 견디십시오. /할/



▶8절에 보면, '사랑은 영원'합니다!
⑴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특성을 마무리하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과 사랑은 완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여기서 '떨어진다'라는 단어는 '잎사귀가 시들어 버린다' 혹은 '무대에서 배우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결코 그침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속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양적으로 볼 때 풍성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할/
또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모자라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영원히 성장하고 영원히 새로운 것일 뿐, '이만 했으면 족하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멘!/
⑵'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여러분, 이 말은 은사를 구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언의 은사가 소중하고 방언의 은사도 귀합니다. 지식의 은사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천국까지 가서 써먹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언이 필요가 없습니다. 또 주님과 직접 대화를 하는데 무슨 방언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천국은 우리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곳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다 폐하고 그치게 됩니다. 특별히 여기 '폐하리라'는 말은 일정한 기간이 지남으로 무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 앞에 서면 '작용이 중단되고 효력이 소멸된다'는 의미입니다. /할/


▶13절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경은 그 어디에도 돈과 명예와 향락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도리어 돈에 대하여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다'(전5:10)고 했습니다.
⑴항상 있을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반석 같은 믿음은 '항상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 즉 의심입니다. 의심은 내게 주어진 행복의 기회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불행의 늪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52년 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며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게시에 따라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노병은 물러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 힘으로 2차 세계대전을 치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전쟁을 했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게시에 의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
믿음은 세상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요일 5:4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할/
⑵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이 땅의 것만 아닙니다. 이 땅의 것은 모든 것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소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만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셨습니다. 고후5:1절에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할/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 박사는 임종이 가까워오자 곁에서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왜 우느냐?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죽음은 천국의 현관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할렐루야 찬양을 해다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는 이화여대생 천명이 넘는 대형 합창단들이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곧 영원한 소망을 지닌 사람의 모습니다. /아멘!/
⑶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할/
동물은 먹이를 먹고살지만 인간은 사랑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사랑에도 가짜와 진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 즉 육체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잘 변합니다. 육체적 사랑은 조건적 사랑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났다가 헤어지며 괴로워합니다.
나훈아씨는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고 노래했습니다. 왜 그런 노래를 불렀습니까? 조건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을 땐 사랑했는데 돈 떨어지고 나면 버리는 사랑입니다. 젊고 예뻤을 땐 사랑했는데 늙고 병들면 버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가짜입니다. 가짜의 특징은 기대를 갖게 하다가 실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고 복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
그렇다면 진짜 사랑은 무엇입니까? 죄지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끝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49: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귀의 자식과 하나님의 자녀를 구분하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