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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고전 6:19-20)

by 【고동엽】 2022. 2. 12.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고전 6:19-20)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중대한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내 인생'이라고 부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다 내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세상 떠날 때 빈손으로 갈 것이면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오래 살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죽음은 나와는 무관하고 찾아오더라도 먼 훗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인생착각'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인생착각이 우리 인생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마치 비행착각이 조종사들의 비행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인생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조종사들이 비행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생각보다 계기 판을 의지하고 비행하듯이 우리가 인생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인생착각을 벗어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 몸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받은바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대답하기를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청지기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할/ ◀제목 소개!▶

 

여기서 청지기란 말은 '책임을 맡은 자'란 뜻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닌 주인의 것을 잠깐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인의 권리를 위임받아 일정한 기간동안 관리하는 자를 말합니다. /할/
구약의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청지기요(창15:2),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이었으며(창39:4), 구스는 헤롯왕의 청지기이었습니다(눅8:3).
세상에는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싸우는 일들이 많습니다.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싸웁니다. 전쟁이 그래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실 때에 동산의 관리자로 세우셨습니다(창2:15).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청지기들입니다. 벧전4:10절에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청직'(廳直)이라는 말은 원래 '관청의 문을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관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책임 있게 잘 관리하는 생활을 '청지기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할/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한 가지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올 때 모두 맨손으로 왔고 빈 몸으로 왔습니다. 그런 뜻에서 지금 우리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으로부터 가정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거기에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자녀가 있고, 재산이 있고,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재능을 받았고, 지식을 받았고, 직장과 사업장도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들이 받은 것들입니다. /믿/
여러분,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재주가 있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자신에게 재주가 있어서 부자가 되고, 잘살게 되었고, 재능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재주가 있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부를 남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재주를 악용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부와 재능이 자꾸만 함부로 사용되고, 악용되고 있는 것은 모두 그런 의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와 재능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고 믿는 믿음 안에서는 절대로 그 부와 재능이 남용되거나 악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정신부터 가져야 합니다. /아멘!/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살되 온전하게 살고, 진지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할/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관리해서 뜻 있게 살아가는 생활을 가리켜서 '청지기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그 삶의 내용에 굉장한 뜻이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은 심오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또 기적 같기도 합니다. /믿/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그냥 대충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청지기 생활은 '살아가는 뜻과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잘 관리하며,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우리들의 '몸'입니다. 육체입니다. /할/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 삼라 만상을 자세하게 한번 살펴보면 참 신기하고도 정교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를 보면 과연 경탄할 만 합니다. 모두가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 신비하고, 하나님 자신도 참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창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몸을 한번 찬찬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 오묘합니다. 먼저 머리를 보십시오. 머리는 육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입니다. 그 속에는 수천 개의 세포 조직이 들어 있습니다. 수많은 조직들 중에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속에 수많은 경험을 기억시킬 수 있고,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오묘한 장치들이 들어 있습니다. 머리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중요한 머리를 두꺼운 두개골로 덮어서 든든하게 보호하시고, 그 위에 다 잔디를 입혀서 완전하게 보호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머리입니다.
그리고 눈을 보십시오. 얼마나 맑고, 정밀하고, 사물을 보고 식별을 하고, 또 색깔을 음미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오묘하고도 신비한 기구입니까? 거기다 눈은 전자동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저절로 조리개를 크게 열어 주고 밝은 곳에서는 조금만 열어 줍니다.
그리고 위험이 올 때는 셔터를 순간적으로 닫아 버리고, 먼지가 들어 올 때는 물을 내어서 닦아 냅니다. 얼마나 신기한 정치입니까?
또 손을 보십시오. 창조물 가운데서 유독 인간만이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물들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만 손을 주셔서 그 손으로 발명하고 창조해서 문화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만 역사가 있고, 창조가 있고, 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숭이는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2천년이 지나도 원숭이는 여전히 원숭이일 뿐 원숭이가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서 식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손은 이렇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할/
여러분, 손을 가만히 살펴보면 손가락 다섯 개가 다 다릅니다. 굵기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릅니다.
우선 엄지손가락은 굵고 힘이 셉니다. 그래서 악수할 때 힘이 있게 하고, 무엇을 잡을 때 가장 힘있게 작용을 합니다. 둘째손가락도 참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자들이 군에 가서 총을 쏠 때 이 손가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손가락이 없으면 군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에 가기 싫은 사람은 이 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이 둘째손가락이 중요하기는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장할 때 크림을 찍어서 바르는 것을 보니까 모두 이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가운데 중지는 옛날부터 자가 없을 때 잣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규빗'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손가락의 중지 끝에서 팔꿈치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이것이 모두 손가락의 중지가 하는 역할입니다. 또 출28:16절을 보면 치수를 잴 때 완전히 편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의 거리인 뼘을 사용했습니다. 그 길이가 22.8㎝입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도 묘한 일을 합니다. 언뜻 보면 짧고 가늘어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귓구멍이 가려울 때 이 손가락이 얼마나 요긴한지 모릅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손가락의 쓰임새가 가히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디 손가락뿐이겠습니까? 코, 귀, 가슴, 다리의 역할은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정교하게 우리의 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몸으로 자신의 삶을 살되 몸을 망가트리지 말고 건강하게 잘 관리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멘!/
▶오늘 청지기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①몸의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기본정신입니다. /할/ 왜 내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까?

 

⑴내 몸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알고 보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을 보면 '너희 몸은 값을 주고 산 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개념부터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 몸의 실질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내 몸이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도 있습니다 내 몸이 병들면 우선 하나님이 손해를 보십니다. 그리고 국가가 손해를 보고, 가정이 손해를 보고, 사회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아멘!/
유교의 정신에서 보면 육체는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상하거나 병들거나 추하게 굴리면 불효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한 차원 더 높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잘못 관리해서 병들거나 추하게 만들면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이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결과가 옵니까? 그때는 내 몸을 함부로 사용하게 됩니다. 범죄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내 몸을 방탕으로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술로 망가트리고, 마약으로 병들게 하고, 음행으로 추하게 만들고 맙니다.
또 내 몸을 상품화해서 사고 파는 매춘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살을 해서 죽기도 합니다. 왜 이러한 결과들이 발생합니까?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악한 시대에 몸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 때 바로 내 몸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할/

⑵내 몸은 '성령의 전'이 때문입니다(19).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 몸 속에 성령께서 내주 해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더럽힐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 성령 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
여러분, 길을 가다가 양지 바른 곳에 아름답게 지어 놓은 집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좋게 보입니까? 그래서 여러 번 쳐다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의 모양이 아니고 그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집은 아주 예쁘고 좋은데 그 집 주인이 강도라면, 아주 부패한 사람이라면, 무엇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집은 값어치 없는 집입니다. 그 집이 아주 좋은 집이라고 해도 그 집은 이미 가치가 없는 집입니다. 그러나 아주 초라한 집이라도 그 집에 성자가 살고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그 집이 오히려 값이 있는 집입니다.
사람이나 그 집이나 겉모습이 화려하고 예쁘게 단장되었다고 해서 가치가 있고, 품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집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아무리 몸이 잘생겼고 아름답게 생겼어도 그 속에 강도의 심보가 들어앉아 있으면 그 사람은 값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값이 있는 것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이 귀한 것은 그 속에 성령께서 내주 해 계셔서 그분이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 마음속에 좋은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마음 속에 좋은 이상을 품고, 좋은 뜻을 품고, 아주 좋은 정신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마음속에 성령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그 성령이 나를 지켜 줍니다. 그 성령이 나를 만들어 줍니다. 또 그 성령이 나를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지켜 줍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삶'입니다. /아멘!/할/

 

⑶내 몸은 '하나님께 드릴 몸'이기 때문입니다.
롬12: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수많은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고, 제물을 태워서 향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들은 생명이 없는 제물입니다. 호흡이 중지되고 활동이 멈추어진 이미 죽은 제물입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은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산 제사라는 말은 '정신을, 뜻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제물이 아니고 살아 있는 나의 삶을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즉 '지정의'의 인격을 드리는 것입니다. 즉 나의 몸을 드리고, 나의 영혼을 드리고, 나의 생각도, 뜻도, 이상도 드리고, 심지어는 나의 인격도 드리고, 지식도 드리고, 감정도 드리고, 의지도 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산 제사요 진정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이 몸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더럽히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나태하지 않도록, 방탕하지 않도록, 술 취하지 않도록,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할/
사람이 몸이 더러워지면 우선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정신과 마음이 더러워지면 하나님을 자꾸만 피하고 싶어지고 멀리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몸이 병들게 되면 영적 생활하는 데 힘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꾸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주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버려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도 그 몸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신앙적으로 사생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할/
여러분, 몸은 신선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은 깨끗해야 하고, 영은 청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내 안에 강하게 내주해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거기서 심오한 잠재력과 영적 자질이 나오게 됩니다. 그때 나오는 은혜의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위력이 있는 것이고 그때 나오는 음성으로 찬양할 때 그 찬양이 은혜가 있고, 그때 나오는 마음과 생각으로 봉사할 때 덕을 쌓게 되고, 그때 나오는 영적인 힘으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 이 시대는 몸을 깨끗하게 간수하며 살아가기가 아주 어려운 때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오염시키고, 마음을 병들게 하고, 몸을 더럽게 하는 유혹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어려움입니다. 우리는 까딱 잘못하면 순식간에 몸과 마음을 더럽히기 쉬운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간수하고 살아갈 청지기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몸을 맡은 청지기의 생활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멘!/

 

②자녀의 청지기가 되자!
⑴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 시127: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즉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식은 내가 낳았기에 내 자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내 자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합니다(신6:1-13).
어떤 사람은 자식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 마음대로 양육하는 일이 있습니다. 곧 자기의 소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닮도록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을 닮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⑵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아멘!/ 이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이 그 인생을 성공자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믿/
⑶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입니다. 전12: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할/
⑷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후손이 강성 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시128: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12:2절에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⑸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으나 노엽게 하지말고(엡6:4),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딤후3:15-17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할/

 

③물질의 청지기가 되자!
⑴우리의 물질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전3:13절에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아무리 자기가 노력해서 물질을 얻었다 하더라도 제멋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재물을 많이 얻은 줄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아멘!/
⑵재물 얻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신8:15-18절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더 이상 내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의 일에 쓰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할/
욥은 본래 물질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 때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십니다'고 고백합니다(욥1:21). 그 믿음으로 그는 후에 두 배의 축복을 받습니다(욥42:10).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④시간의 청지기가 되자!
사람은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마치 천년 만년을 살 것 같지만 강건해야 칠십 팔십입니다.
시90:9-10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 세월도 신속히 날아갑니다. 사람은 시간을 잡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시간에 살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살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얼마를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십니다.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굵게 산 사람들입니다. 주기철목사님은 일사각오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어도 주의 것이요, 살아도 주의 것으로 살았습니다. /할/

⑤맡은 자(직분)의 청지기가 되자!
⑴우리는 맡은 자들입니다. 눅12:44절에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주인이 청지기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은 자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것들은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위임받아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할/
▶옛날에 농촌에는 이런 풍속이 있었습니다. 농부가 송아지를 위탁받아 정성을 다해서 소를 키웁니다. 2년 정도 키우면 어미 소가 됩니다. 이제 다 키운 어미 소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대신 송아지 한 마리를 받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자기가 키운 어미 소를 돌려줄 때 무척이나 서운합니다. 마치 자기 소를 빼앗기는 것처럼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맡은 자들입니다. 내 것은 없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내 것처럼 누리고 살다보니 정말 내 것이 줄 착각하고 삽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달라집니다. 여섯 살 전후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다른 아이 장난감을 빼앗기 일쑤입니다. 자기 것을 먹다가 남의 것을 내 놓으라고 때를 쓸 때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섯 살 전후해서 '타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나와 남을 구별할 줄 알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줄 몰라서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영적으로 철이 들면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정말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전4:7절에서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모두가 다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놓고 왜 자기 것 인양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습니다. 정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살면서 하나씩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얻었습니다. 환경도 얻었습니다. 돈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건강도 얻게 되었습니다. 학력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입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청지기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우선 우리는 다만 맡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⑵우리는 주의 일꾼입니다.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합니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지혜 있는 일꾼, 진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진실하다'는 '신실하다 또는 충성스럽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을 믿고 신실하게 사는 모습입니다. 사람을 보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할/
⑶맡은 자들이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고전4:1-2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일군'은 '아래서'와 '배 젓는 자'의 합성어로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서 배에서 노를 젓는 자를 가리킵니다.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자는 노예 중에서도 하급 노예를 가리킵니다.
영화 '벤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만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노를 빨리 젓기고 하고, 늦게 젓기도 합니다. 저들은 쇠사슬에 메여 있어 도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배가 침몰하면 배와 함께 죽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이 가진 자유가 있다면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자유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교회의 사명자들의 삶이 이렇게 살아야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망의 방주의 선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며 배 밑에서 부지런히 노를 젓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군!' 이것은 그 소속이 예수께 속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께 소속이 되어 있는 일군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골1:27절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전2:7절에서는 이 비밀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비밀이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영광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복음, 사죄의 복음,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 천국의 비밀은 성도들에게는 알도록 허락된 비밀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그런 비밀입니다(마13:11).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이 영생의 복음을, 생명의 복음을, 구원의 복음을 맡은 자들입니다. 여기 '맡은 자'는 '집'과 '다스리는'의 뜻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은 청지기라는 말입니다. /할/
⑷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여기 '구할 것'은 필사적인 추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사명자가 추구해야 할 것은 '충성'입니다.
주님의 위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충성은 지식에 있지 않고 말에 있지 않으며 행함에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충성이 요구됩니다. 여기 '충성'은 '믿음', '사랑'과 같은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우리가 일을 맡았으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가운데 중, 마음 심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성은 말씀 언과 이룰 성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말씀대로 사는 사람 즉, 신실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신약의 원어의 뜻은 '신실하다, 맡길 만하다,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충신하면 고려 말 정몽주가 떠오릅니다. 이방원이 '하여가'로 유혹해 보지만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하며 끝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여가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100년까지 누리리다.'
이에 비해 단심가는 이렇습니다.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그렇습니다. 충성이란 이렇게 단심(丹心)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하여가'처럼 유혹이 밀려옵니다. 이런 저런 그럴듯한 이유로 마음을 바꾸기를 유혹합니다. 때로는 죽음으로 마음을 바꾸라고 협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단심가처럼 늘 같은 마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아멘!/
⑸충성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중, James라는 한 목동을 만나서 길을 좀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안됩니다. 저는 남의 집 양을 치는 목자인데 양떼를 놔두고 길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 월급의 3배를 줄 테니 좀 안내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저는 이 양떼를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총을 겨누며 '안내하지 않으면 쏴 죽이겠다'고 하니까 '예, 죽을지언정 당신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그러나 길을 말로는 안내해 드리지요. 저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20분간 가면 도로가 나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자 일행은 길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자 James를 불러 재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의 무엇을 보았습니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그 충성심을 보시고 나라의 재상으로 세웠습니다. /할/
▶언젠가는 청지기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 사람을 보지말고 주를 보고 충성하라. 그러면 더 큰 것을 맡기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청지기에는 반듯이 땅의 축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할/
▶어느 사람이 건축회사를 다니다가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사장이 마지막으로 집을 하나 더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를 부려먹는다는 생각에 속이 상해서 뚝딱뚝딱 대충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는 날 사장이 말했습니다. '참 수고했습니다. 이 집은 평생 이 회사에서 수고한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 사람은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재료로 잘 지을 걸!'하고 후회했으나 이미 기회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에게는 다 생각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생각이 없겠습니까?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맛있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다시 사러 오고 또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할머니는 장사가 더 잘되는데도 기뻐하기는커녕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마을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한 마을에서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떡을 샀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와서는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소년이 이 할머니에게 금화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화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어요'
이 할머니는 그제야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이 어린 소년을 꼭 껴안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일가친척도 없이 큰 부자이고 또 큰 사업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후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야말로 자기의 후계자가 되어 그 많은 유산과 사업을 잘 관리하고 올바른 곳에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할머니처럼 올바른 마음자세를 가진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또 청지기는 외길정신으로 헌신의 자리를 지켜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⑹청지기들에게는 프로정신이 필요합니다. 프로정신이란 어떤 일에 대해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그 전문적 능력을 부단히 발전시켜 가는 정신을 말합니다.
▶송병락 교수가 쓴 '이야기 경제학'이란 책에 '골프 인생의 네 단계'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1단계는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만나는 사람마다 골프를 권한다는 것입니다. 골프가 운동 중에 가장 좋고,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2단계는 어느 정도 골프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만나는 사람에게 골프를 가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출장을 갔는데 새벽 4시에도 깨워 가지고 '골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한답니다.
3단계는 제법 골프를 잘 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만약 누가 물으면 '잘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4단계는 골프 실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누가 물어오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배우지 말고, 비디오를 보거나 일류 프로에게서 제대로 배우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4단계까지는 아마추어이고 그 다음은 프로단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로들에게 '프로의 정신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프로는 배우고, 또 배운다', '프로는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프로는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아마추어는 끝까지 헌신할 수 없습니다. 헌신의 자리를 지켜가려면 프로정신이 필요합니다. 프로정신은 늘 배우고 늘 연구하고 늘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헌신의 자리를 지켜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할/
▶얼마 전 온라인 상에서 강남의 초등학생들 사이에 '명품지우개'가 유행한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그 명품지우개의 사진과 함께 홍보하는 내용이 떴습니다. 갑자기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우개 가격이 무려 14만원이나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들이 기 죽지 않게 하려고 앞을 다투어 사주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댓 글이 수 없이 달렸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14만원자리 지우개를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사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 한 달 생활비가 14만원 밖에 안 되는 어려운 이웃들도 많이 있는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 돈주고 내가 사 준다는데 당신들이 뭐 길래 떠들어!'
그렇습니다. 자기 돈주고 자기가 자기 자식에게 14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100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뜻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 내 것일까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물과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전5:19절에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솔로몬은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누리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살았습니다. 바로 자기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그래서 그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
욥1:21절을 보면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큰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가진 재산 모두를 다 잃어버리고 난 후 고백한 말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누리던 것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가져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내 것인 줄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게 되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나 욥처럼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임을 깨달을 때 겸손헤 집니다. /할/
여러분! 우리는 청지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을 깨닫고, 바른 청지기의 삶을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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