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사 40:1-3/27-31)
지금부터 약 2600여 년 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침략을 받아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왜 그들이 망했습니까? 이 백성들이 예배는 드리고 있으나 그 예배들이 아주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 탐욕, 사치, 향락이 만연하고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불의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머나먼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가서 처참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해 두 해가 아닙니다. 10년 20년도 아닙니다. 4-50년 반세기가 지나 6-70년의 세월이 흘려갔습니다. 그러함에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될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 속에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종 이사야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주시고 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새 힘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소망의 메시지입니까? ◀제목 소개!▶
①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1-3).
1700년대의 위대한 음악가 헨델은 24일간의 침식을 잊은 채 놀라우신 하나님을 주제로 곡을 쓰기 시작해서 낸 곡이 바로 헨델의 '메시야'입니다. 이 메시야의 첫머리는 무엇으로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입니다.
즉 오늘 읽은 본문의 첫 절이 바로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기쁜 소식을 외쳐 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절에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닿도록' 무엇을 외치라고 합니까? 역시 2절에서 보면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으며,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을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지은 모든 죄로 말미암아 치러야 할 죗값을 두 배나 치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자신들의 죗값을 두 배나 치른 것은 아닙니다. 두 배는커녕 본래의 죗값도 다 갚을 수 없는 이스라엘입니다. 다만 그들이 갚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다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그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일 뿐입니다. 여기에 크나큰 위로, 넘치는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할/
또 다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힘껏 그 아름답고 기쁜 소식을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백성을 위로하라고 다시 명령하십니다.
9-11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할/
여기 '너희 하나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 분이 전능하신 주권자로 오시고 의로우신 심판자로 오시며 선하신 목자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후1:3)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인 줄 알았다가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드러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조작이나 속임수가 없으시며 우리를 허탈감에 빠뜨리는 일이 결코 없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극치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내놓으시고 그로 하여금 우리가 우리의 죗값으로 치러야 할 모든 고난을 대신 짊어지게 하신 일입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고난 때문에 우리가 받는 위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후1:5)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아멘!/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어 우리를 도우십니까?
그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 인칭대명사를 눈여겨보십시오. 이사야는 그 분을 '너희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너희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특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초하루 보름만이 아니라 일주일 이레 어느 날이나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여러분의 기도에 '오냐, 도와주고 말고'하시며 응답하십니다. /아멘!/
▶1970년, 한 17세의 백인 소녀가 실수로 임신했습니다. 상대 남자는 흑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낙태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집에서도 낙태하든지 아니면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흑인 남자는 도망가 버렸고 자신도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길에서 한 부인을 만나 하나님의 사랑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영접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아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도 잘 몰랐고 기도할 줄도 몰랐지만 그냥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일에 써주소서'
그 아들이 자라면서 놀라운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픔과 상처를 노래로 승화시키고 복음성가를 만들면서 예배를 도왔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찬양 인도자로 유명한 '이스라엘 휴톤'(Israel Houghton)입니다. /할/
㉡성경은 위로의 하나님을 여러 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51:12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희는 어떤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풀같이 된 인자를 두려워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또 사66:13절에서도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고후1:3-4절에는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위로의 대상입니다. 세상은 모두 상처받은 인간사의 역사입니다. /할/
㉢하나님은 어떤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까?
⑴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시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91:14-1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할/
⑵낙심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시62:5-6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오늘 본문에도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을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줄 아느냐? 인간이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다. 하나님의 콧김에 일순간에 말라버리는 풀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스스로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라'는 메시지입니다. /아멘!/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풀과 같이 다 시들고 엎어지고 지나가고 마는 미미한 것들이지만 영원토록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무엇으로 창조되었습니까? 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열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말씀으로 창조되었기에 말씀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어디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⑶공포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사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⑷근심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요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⑸죄악 가운데서 고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사1:18절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또 요일1:9절에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할/
⑹고독한 자에게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히13:5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⑺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요11: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할/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환난 중에 있는 자, 낙심 중에 있는 자, 공포가운데 있는 자. 근심 중에 있는 자, 죄악 가운데 있는 자. 고독한 자,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위로가 되어 주십니다. /아멘!/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가 우리의 큰 힘이 됩니다. 여기 '위로하다'는 말은 단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향해서 몇 마디의 말을 던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다시 일으켜 세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위로는 말뿐일 수 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위로는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낙망한 자가 다시 일어서는 길은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렸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야말로 참된 위로이며,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위로입니다. 우리의 발목과 손목과 허리에 새 힘을 주시며, 지금의 고난을 이겨나갈 힘을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할/
②넘어진 사람에게도 다시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27-31).
세상 사람들을 우리는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사에 자빠지고 넘어지는 사람들, 한마디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패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욥5:18-19절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아멘!/
사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요람(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 성공만 한다면 세상 살 맛 날것입니다. 그러나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언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도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한 후에 성공하는 경우입니다. 성공하고 잘 살다가 실패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멋진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서고 새 힘을 얻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번 얻은 성공을 지켜나가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러나 실패를 딛고 다시 재기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할/
㉠어떤 사람이 넘어지는 사람입니까?
⑴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입니다(27).
이 말씀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불 신앙과 의심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사정을 몰라준다고 의심하고 불평하니 이게 웬일이냐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인간 욕심으로 살아갈 때 그 이름이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것은 '승리자'로 바꿔진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희들이 은혜 안에 있을 때나 은혜밖에 있을 때나 왜 그리 불 신앙이 그득하냐는 질책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이 택해주신 선민인 우리가 왜 이방 나라 바벨론에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놓아주셨는가? 그들이 양식을 다 약탈해 갔음으로 이스라엘은 헐벗고 굶주리고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있는데 왜 이런 사정을 하나님이 몰라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몰라주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약속도,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의 권능도 정말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스라엘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그들의 오해입니다. 더 나아가 불신이며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할/
▶'원통함'이란 '송사' 또는 '권리'로 번역되는 말로 인간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원통한 것을 수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시103:14절에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임을 아신다'고 했고, 시69:5절에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도 아시고 심지어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행위도 모두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사정도 원통함도 모른 척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의심은 불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마14장에 보면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베드로가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께서 명하니 베드로는 물 위로 걷다가 풍랑을 보고 바다를 보다가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하시고 꾸짖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약1: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할/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 편에서 일하십니다. 의심하는 자는 물 속에 빠집니다.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결국 패배이며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의심이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믿/
히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⑵원망하는 사람이 넘어집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입을 잘 못 놀리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27절 하반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앞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니 '하나님이 이게 웬 말이냐?'고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아신다면 갈 길을 열어 주실 텐데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느냐?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몰라주신다.'는 원망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좀 잘되면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자신의 잘되는 것만 보면서 교만해집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지도 않고 자기의 어려운 것만 생각하면서 낙심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뭐가 좀 잘되고, 무엇인가 좀 했다고 해도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겸손해야 하며 또 좀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표준이 되어 교만해 합니다. '낙심했다, 원망했다, 타락했다'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평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하더니 무엇을 들어주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더니 별 볼 일이 없네!' 하면서 하나님을 과소 평가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경배의 대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의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과 원망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다시 일어나는 에너지이고, 원망은 넘어뜨리는 에너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나 원망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십니다. 민2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하는데 에돔 사람들이 통과 시켜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길 때문에 그들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사방에서 불 뱀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민21:6절에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러분, 원망하지 맙시다. 생활 속에, 환경 속에, 불 뱀이 옵니다. 결국 원망하면 남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고 맙니다. /믿/
⑶원통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포로로 잡히고, 있는 것을 빼앗기고, 멸시 당하고 천대를 당할 때, 그때는 원통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왜 내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습니까? 왜 원통함을 풀어주지 않습니까?'하고 낙담하기가 쉽습니다. 극한 고난에 빠질 때 인간은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눅18:7절에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렇습니다. 원통함과 원한을 풀기 위해서 밤낮으로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때가 되면 역사 해 주십니다. /믿/
▶요즘 사람들을 보면 울화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희의료원에서 많은 중풍병자를 대상으로 그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 200명중 약 30%가 그 병의 원인이 울화병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에게 돈을 떼였다든지, 남에게 무시를 당했다든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서 근심 걱정에 빠졌다든지, 또는 시댁 식구와 갈등을 느꼈다든지 어쨌든 울화병이 결국은 중풍을 가져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기쁘게 살며, 감사하게 살며, 생기 있게 살아야 건강합니다. 울화병에 시달리고, 화병에 시달리고, 분노에 시달리고, 더 나아가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원통함을 당합니다. 이럴 때 그 원통함을 푸는 방법이 딱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원수를 값아 야지' 하는 보복하겠다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용서하자'는 마음입니다. 보복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복하겠다는 앙심을 가지고 독을 품는 그 순간부터 우리 자신도 해를 당하게 됩니다. 남한테 흙을 던지려면 자기 손에 흙을 만져야만 합니다. 남한테 해를 끼치려면 생각도 마음도 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면 결국 그 마음도 평안해지고 안정을 얻게 됩니다. 내 사정과 원통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앙망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어떤 사람이 넘어졌다가도 일어나는 사람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⑴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삼박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힘입니다. 28-29절은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못난 놈들, 너희가 어찌하여 쉽게 낙심하느냐?'고 탄식하시면서 그들의 죄를 깨닫기 위해 다시 한번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느냐?' 무슨 소리입니까? 너희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냐? 또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할 때 베푸셨던 그 많은 기적들을 잊었단 말이냐?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28절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⑵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영원한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 그리고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상의 권력자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와 대 우주를 운행하시면서 지치거나 피곤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과해도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밤만 꼬박 세워도 지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치고 피곤해서 넘어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런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들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할/
본문의 주님의 심정은 '너희가 어찌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너희 인생들처럼 생각하고 함부로 의심하고 원망하느냐?' 하시면서 자신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여기 명철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 성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백성의 요구에 대한 그 어떤 사정도 이해하고 동정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칼까지도 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명철이 많으신 그 하나님은 '피곤하고 무능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9절 에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왜 넘어지고 실패합니까? 사람들은 피로 때문에 지쳐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무능 때문에 도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믿/
세상도 건강한 자, 지식 있는 자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강을 주시고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쓰십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 누가 강한 자입니까? 누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입니다. /아멘!/ 아멘이 나올 때 아멘으로 화답할 줄 아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크게 아멘 합시다!
㈄30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젊은 청년도 피곤해서 넘어지고 장정도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재벌 기업들이 쓰러집니다. 정치가들이 권력남용으로 감옥 속에 들어갑니다. 인간의 권세가 막 땅에 떨어집니다.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없어집니다. 재물도 날개 치며 날아가 버립니다.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인간의 실체라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자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큰 소리 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34:10절에서 다윗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풍족하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일어서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입니다(31).
'오직'이란 이길 뿐이지 다른 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앙망은 하나님만 바라고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신의 아픔을 느낍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새 힘을 얻어 힘차게 일어나게 됩니다. /믿/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앙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믿음의 주인이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
㉣새 힘이 어떤 힘인가? 몇 가지로 알아보겠습니다.
⑴건강의 힘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돈)가 최고가 아니라 건강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이 힘이 임합니다. /아멘!/
⑵지혜의 힘입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혹 육신의 힘이 약하다 하더라도 이 지혜의 힘만 소유하면 만사에 똑 소리가 납니다.
⑶물질의 힘입니다. 물질도 대단한 힘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모든 성도들이 물질의 새 힘을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물질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신8: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창26:12-14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멘!/
⑷권세의 힘도 주십니다. 대권을 잡게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는 권세의 힘도 그 분이 주셔야 합니다. 이 권세를 누가 받았습니까? 요셉이 받았고, 다윗도 받았고, 다니엘이 받았습니다. /할/
⑸성령의 권능도 받습니다. 왕하2:12절에 보면, 엘리사는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사를 바라보며(앙망하며)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고 부르짖다가 성령의 두루마리가 입혀졌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받기만 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가 나타납니다. 능력 박은 사람이 귀신을 꾸짖으면 귀신이 쫓겨갑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저주를 몰아내면 저주가 떠나갑니다. 새 힘은 성령의 힘을 말합니다.
▶리빙스턴은 이 말씀하나를 붙들고 아프리카를 정복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힘을 우리가 받아야 삽니다. 이 힘을 받아야 선하게 살 수 있고 사랑 할 수가 있고 의롭게 살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힘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이 힘을 받아야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시46: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신앙은 인생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줍니다. 그래서 나 홀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아 주십니다. /아멘!/
㉤새 힘을 받은 사람은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복을 받습니다(31).
독수리는 새 중의 왕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독수리의 마크는 벌써 바벨론 시대 때부터 힘과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문장에도 독수리 마크가 사용됩니다. 푸른 창공을 높이 솟아오르는 독수리의 모습은 참으로 시원한 승리의 모습입니다. '넘치는 힘, 승리의 힘'입니다. 해병대의 엥카가 독수리입니다. 바로 이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그런 힘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⑴독수리가 하늘을 나를 때 그 나르는 방법이 네 가지입니다.
㈀비행입니다. 양 날개를 쭉 펴서 고정시킨 채 비행기처럼 비행하며 관찰합니다.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날아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하강입니다. 땅을 향해 쏜살같이 바로 내려꽂히는 것입니다. 공중을 빙빙 돌다가 적당한 먹이를 발견하면 바로 하강해서 낚아챕니다.
㈃비상, 즉 치솟아 오릅니다. 창공을 향해 마치 로켓처럼 수직으로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독수리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 하강과 비상입니다. 그대로 땅으로 내려 꽃이고 하늘로 치솟습니다. 이것은 독수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솟아오릅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이와 같습니다. /믿/ 비행기를 타보면 지상에서는 비가 쏟아져도 구름 위의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구름이 지상 1000m 정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독수리는 비바람과 폭풍우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지상의 장애물을 넘어 높이, 높이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⑵'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무슨 복입니까?
㈀올라가는 복입니다. 과장이 부장이 되고, 부장이 전무가 되고, 전무가 사장이 되고, 사장이 회장이 되는 승진의 복입니다. /할/ 이 복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사업의 지경이 넓어지는 야베스에 복입니다.
똑같은 새라도 참새와 까마귀는 독수리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참새가 나는 한계가 있고, 까마귀가 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창공의 왕자입니다. 독수리는 보통 날 보다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그의 실력이 발휘됩니다.
본문의 독수리와 같이 올라간다는 말은 남이 따라오지 못하는 성공 자가 됨을 의미합니다. 경쟁자들이 못 따라오는 성공! 남이 상상도 못하는 성공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이 복을 받았습니까? 요셉이 받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미 자신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새 힘을 주시니 지혜가 넘쳐 단번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할/
㈁승리자의 복입니다. 조건이 어렵고 환경이 복잡해도 하나님은 그 조건도 환경도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믿/ 하나님은 원수 마귀 틈 못 타게 지켜주시고, 사망의 음부에서도 건져내 주시고, 환난 날에도 피할 길을 주시고, 결정적인 순간, 승리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믿/
▶오래 전에 미국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였고 너무 가난에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질 못했습니다. 22살에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열었으나 파산하고 말았고, 23세에는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습니다만 낙선했습니다. 다시 사업을 시작했으나 자본이 부족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여인은 그를 떠났고, 훗날 결혼을 하였지만 불행한 결혼이었습니다. 상원의원, 부통령에까지 출마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의 생은 한 마디로 실패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가 이 많은 실패와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그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실패와 어려움을 이기고 마침내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믿/
그렇습니다. 무능한 80세의 노인, 모세를 불러 새 힘을 주셔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셨고, 농사꾼이던 기드온을 불러 그에게 새 힘을 주심으로 3백 명의 군대로 수만 명의 미디안의 적군을 쳐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소년 다윗에게 능력을 주시므로 그가 도저히 상대 할 수 없는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하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할/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앙모해서 새 힘을 얻으십시다! 새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요 성령의 불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그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재벌 한 사람이 새로 등록해서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까? 아니면 정치적인 실권자가 새 성도가 되어 교회에서 말 한마디만 하면 해결되는 그런 힘입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새 힘을 갖는다는 것은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고, 영적인 예배가 있고, 살아있는 교제가 있고,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고, 원칙에 따라서 치리를 하는 것이 교회에 새 힘을 줍니다. 강한 교회를 만들어 줍니다.
초대 교회에는 유력한 성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도자(사도)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어부 출신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많은 분은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진정한 교회였기 때문에 새 힘이 넘쳤습니다. 이 힘 가지고 무엇을 이겼습니까? 로마를 이겼습니다. 그 당시 로마를 이겼다는 것은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할/
우리 모두 새 힘을 받아 2013년도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 길에 위대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두려워 말라! (사 43:1-3) (0) | 2022.02.12 |
---|---|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8:5-7) (0) | 2022.02.12 |
성탄의 계절입니다! (눅 2:10-11) (0) | 2022.02.12 |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눅 2:25-39) (0) | 2022.02.12 |
야곱의 인생고백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창 47:7-10) (0) | 2022.0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