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이긴 사람, 야곱! (창 32:22-32)
정말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부터가 모순이 있는 제목 같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숭배의 대상이지 대적하거나 대결의 대상은 아닙니다.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논할 때 다음 몇 가지로 표현합니다.
⑴전지성: 하나님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시므로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모든 지혜를 소유하신 분이다.
⑵전능성: 한마디로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지금도 모든 세상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관할하시며, 역사 속에 섭리하시는 모든 능력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믿/
⑶편재성: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며,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평양에서도 계시고, 저 미국 LA에서도 계십니다.
⑷절대성: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상대적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하셨습니다(출3:14).
⑸영원성: 하나님은 영원 전에 계셨으며, 세상 끝 이후에도 계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할/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위대하신 하나님과의 대결에서 이긴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28절을 보세요!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우리는 본문 속에서 그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과의 싸움에서 져 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이긴 하나님을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응답을 받을 수도 있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절대자이시며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야곱이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는가 보았더니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겼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민족 고유의 씨름이 있습니다. 씨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많은 민족 가운데 있습니다. 인디언들에게도 있고 남미 사람들에게도 있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씨름이 있고, 중국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씨름은 일본과 함께 몽고에서 전해 내려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우리 씨름과 일본 씨름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⑴일본 스모는 우리처럼 5판 3승, 혹은 3판 2승제가 없고 단판에 승부를 끝장냅니다. 그냥 단판에 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본 사람들의 정신을 볼 수 있는데 '한번이라도 지면 안 된다'라는 철저한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⑵일본 스모는 심판이 판결을 내리면 한 사람도 지금까지 반항하거나 불복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불만이 많습니다. 달려들고, 소리 지르고, 코치와 함께 뛰쳐나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일본은 심판의 권위 앞에 한 사람도 반항하지 않습니다. 질서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종하고 모든 분야에 권위에 대해 인정을 하니까 온 나라가 평안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본의 정신은 본 받을 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 씨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생은 씨름과 같습니다. 한 평생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샅바를 붙잡고, 땀 흘리며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씨름에 비유합니다. 신앙은 씨름과 같다고 합니다.
엡6: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약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정말 씨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씨름에 이기듯이 영적인 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죄악과 불의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할/
창세기는 이 야곱에 대한 얘기를 상당히 길게 얘기하고 있는데 야곱은 타고난 씨름꾼입니다. 야곱은 여러 번 싸움(씨름)에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 자 입니다.
●1라운드에서 6라운드로 그의 인생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1라운드: 선두를 뺏기 위한 주도권 싸움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 쌍둥이로 태어난 야곱은 앞에 있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꽉 잡았습니다. "내가 먼저 나갈 거야, 내가 선두가 될 거야" 이 처절한 1라운드의 싸움에서 야곱이 발목은 잡았는데 에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야곱을 발길로 탁 차버리고 에서가 먼저 뛰어 나오므로 선두를 빼앗기고 비참한 실패를 합니다.
인생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다른 사람보다 앞지르는 것 즉 '경쟁'입니다. 야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싸움에서 패배했지만 다음기회를 노립니다. '내가 나오기는 늦게 나왔지만 기막힌 찬스에 이것을 만회하리라.'
▶2라운드: 명분 싸움입니다. 세상에 기상천외하게 무슨 재주로 형과 동생이 바뀌는 둔갑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그 형의 자리를 얻어냈습니다. 형은 워낙 배가 고프니까 먹고 보자는 식으로 그러면 '너 가져'하고 죽을 먹었는데 죽 먹고 난 뒤 오리발입니다.
▶3라운드: 주권 싸움입니다. 아버지 연세가 많아 죽기 전에 맏아들에게 모든 주권을 양도, 축복하는 안수를 합니다. 아버지가 에서를 불러 '별미 음식'을 해 오라고 하여 형이 사냥간 사이, 절박한 순간에 야곱은 형으로 둔갑해 아버지를 속이고 주도권 싸움에 끼어 듭니다.
새치기,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이는 사기 극으로 주도권을 받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이 3라운드 게임은 너무 기가 막힙니다. 극적으로 형이 돌아오기 전에 3라운드의 사기 극은 끝나고 아버지는 잘 잡수시고 장자의 복을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도권 싸움에서 몇 시간 후 형이 돌아오고 사기 극은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형이 죽이려하므로 이 주도권 싸움도 실패하고 부모, 형제, 집, 고향을 다 버리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4라운드: 사랑싸움입니다. 라헬을 보는 순간, 그가 뿅 가버렸습니다. 그를 차지하는 대가로 7년 동안 머슴으로 살았습니다. 드디어 7년이 가고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유대인은 결혼식을 밤에 하는데 첫날밤을 지내고 아침에 보니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큰 딸 레아입니다. 따졌더니 동네 풍속이 언니부터 차례로 가야 된다며 다시 7년을 봉사하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라헬을 주겠다고 해서 다시 7년을 머슴을 삽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에서도 패배자가 된 것입니다.
▶5라운드: 재산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엄청난 재물의 복을 얻게 됩니다. 승리한 것 같고 이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이 날강도 같은 놈, 도둑놈, 사기꾼,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강탈해 낸 놈"으로 낙인을 찍고 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밤중에 두 번째 도망을 칩니다. 비겁한 도망자, 날도둑이 되어 도망가는 패자가 된 것입니다.
▶6라운드: 오늘 본문의 얍복강가의 싸움입니다. 모든 싸움에서 실패를 경험했던 야곱은 이 얍복강가에 혼자 남아서 마지막 싸움에 마지막 혼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재산, 아내, 종들, 모든 소유'를 모두 건너보내고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털고 완전히 공수로 피나는 자기와의 싸움을 그 밤에 싸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야곱은 실패자의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승리자의 이름입니다. ▶야곱이 이겼다는 것은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신앙의 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야곱과 같은 신앙의 원리대로 살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무엇으로 이겼는가?
1. 큰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니면 지혜로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눅1: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과 '말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할/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일반적인 믿음과 구원론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믿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믿음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 나가 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을 믿고, 병원을 믿고, 비행기를 믿고 탑니다. 기차도 자동차도 믿고 탑니다. 음식을 사먹는 것도, 높은 APT에 사는 것도, 사회적인 제도와 또한 기술적인 안정성에 대한 모든 것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삽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론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시인하고 내가 죄인인 것과 예수의 보혈로 씻김 받아 의인이 된 것과 천국의 시민이 된 것을 믿는 성도의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말씀 안에 있는 믿음이요,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할/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⑴믿음은 '빛'으로 오신 예수를 품고 사는 것입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믿음은 그러니까 생명입니다. 요1: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쉽게 말하면 예수가 곧 빛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 빛을 품고 살아갈 때 불의를 멀리하게 되고, 죄를 멀리하게 되고, 멸망에서 멀어지고,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빛의 자녀'라고 합니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두움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⑵믿음은 '소망'입니다. 즉 천국행 티켓을 소유한 것입니다. 시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예수님이 내 어두운 인생 길에 빛을 비춰 주십니다. 깜깜하던 인생 길에 빛이 비추니까 순식간에 어두움은 물러가고 감추어져 있던 길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빛이 있는 생활은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에 약속된 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내세를 내다보고, 천국을 소망하며,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사는 사람과, 내다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⑶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배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깨웁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얼어나시며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이 말을 직역하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눈 뒀다 보지 않고 무엇 하느냐?"는 뜻입니다. 이 말은 방금 전 우리가 배를 타기 전에 온갖 병자들을 기적같이 고쳤는데 그 고치는 모습을 보고서도 지금 의심하느냐는 그 말입니다.
▶마6장에 나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제자들에게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새가 농사를 짓더냐. 백합이 길쌈을 하더냐! 그런데도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하시기 때문이니, 그것을 보고서 믿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보는 생활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꽃과 새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이웃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보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보고, 심판을 보고, 내일을 보고, 우리의 미래의 운명을 보는 그것입니다. /할/
⑷믿음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영안이 열렸다고 합니다. 수5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완전 무장한 장군 하나가 칼을 빼들고 서 있습니다. 깜짝 놀란 여호수아가 "너는 누구냐?"하고 물으니, 그가 "나는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다"라고 합니다.
그가 바로 천사장 미카엘입니다. 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 그때 여호수아가 비로소 신령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여기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가나안, 그곳이 천국이었고 바로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발견한 것은 하나님이 이미 그들의 앞에 있는 적들과 싸워 이기게 하기 위해서 군대 장관인 미카엘을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호수아는 그때부터 마음놓고, 안심하고 싸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나 혼자가 아닌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혼자인 줄 알고 두려워도 했고, 무서워도 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내 곁에 하나님이 계셨고, 내 앞에 주님이 계시고,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 해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뭘 주저할 것입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담대함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눈을 떠서 지금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⑸믿음은 '싸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적당히 살았고, 적당히 먹었고, 적당히 눈도 감았었는데, 그래서 마음에 거리끼는 것도 별로 없었고, 사탄과 싸울 일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과 한통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알고 나니까 모두와 싸워야 합니다. 모두가 부딪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이 싸우게 됩니다.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원수 마귀와 싸우게 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성경은 경건을 연습하라고 했습니다(딤전4:7).
⑹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11:1). 이 말은 믿음은 감히 인간으로서는 바라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여기 '실상'은 '기초, 근거, 받침대, 기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 주시고, 기반이 되어 주시고, 받침대가 되어 주십니다.
⑺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주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확신'이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120년 후에 홍수를 믿음으로 보았고 확신했습니다.
⑻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고,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⑼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이고, '믿고 바라보는 자에게는 좋은 것으로 상'을 받습니다(히11:6)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을 기뻐하십니까? 그 분이 살아 계신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상을 주십니까?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⑽이런 믿음의 출처는 어디에서 오는가?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런 믿음으로 잘 정돈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큰 은사를 주십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해 내는 능력입니다.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며,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소망 적인 마음을 품고 삽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
성경에 보면 이런 큰 믿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8장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믿음의 은사를 활용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께 찾아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사정하니 예수님이 흔쾌히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고백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주님을 좇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할/
백부장의 믿음에 예수님이 감탄하셨습니다. 백부장의 이 귀한 믿음이 예수님을 이겼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또 한 사람 믿음으로 예수를 이긴 사람이 있습니다. 마15:21-28절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입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 여인을 스로보니게 여인이라고 부릅니다. 그 여인에게는 귀신들린 딸 하나가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한 말씀해서 보내소서."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시자 이 때 여인이 더 큰소리로 애원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니 예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강한 거절과 멸시의 대답을 합니다. 한마디로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 여인에게 그런 모욕적인 언사로 대하셨을까요? 한마디로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입니다. /믿/ 이만하면 누구라도 존심이 상하고 억울해서 욕을 퍼붓고 떠나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인은 더 큰 목소리로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한마디로 개 취급을 해도 좋으니 딸만 고쳐달라고 다시 강하게 도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이기게 합니다. 그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깨끗하게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할/
여러분! 예수님이 말재간이 없어서 그 여인에게 져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끈질긴 그의 믿음 때문에 져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큰 믿음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할 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는 믿음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 /믿/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멘!/
2. 무엇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가? 기도로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은 기도로 하나님을 이긴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창27장에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큰아들이 받아야할 장자 권을 빼앗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건은 속인 자도 잘못이고, 속은 자도 잘못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 때문에 형 에서는 야곱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동생을 죽이려고 작정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이 할 수 없이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야곱은 무려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하나님이 간섭하시여 많은 재산도 모았고, 처첩도 네 명이나 두었고, 열한 명의 자녀도 두었고, 많은 양떼와 소 떼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이 그리워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떠나는데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자기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완벽한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맨 앞에는 형에게 뇌물 공세를 폈습니다. 소 떼와 양떼와 하인들까지 붙여서 보내었습니다. 한마디로 선심공세 뇌물작전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진영에는 세 부인들과 그 부인들에게서 난 자식들을 세우고, 제3진에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요셉을 세우고, 맨 마지막에는 자기 혼자 남아서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먼저 강을 건너게 한 다음 만일 에서가 화를 풀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자기혼자 도망갈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습니다. 그 배경을 본문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야곱 앞에는 강물이 말없이 흐르고 있으며, 어두움이 그의 온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의 처자식과 소유를 한발 앞서 보낸 지금, 야곱은 20년 전 하란을 향하여 도망갈 때와 같이 또 다시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덜고 있습니다. 왜? 에서의 한 맺힌 칼날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이처럼 홀로 남을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고,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모르는 아내의 고민이 있고, 아내가 모르는 남편의 고민이 있고, 부모가 모르는 자식의 고민이 있고, 자식이 모르는 부모의 고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고독합니다. 그리고 홀로 있을 때 사람은 진실해지기 시작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은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고통과 고난 속에서 홀로 있을 때 인간은 허세를 부리거나 자존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이제껏 악착같이 모은 재산도 아내도 자식도 다 떠나보내고 그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습니다. 그처럼 가면을 쓰고 자존심을 쓰고 모았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야곱은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혼자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야곱과 단 둘이서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군중 속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재산을 관리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야곱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처자식을 보살피느라고 정신 없는 그런 야곱과도 만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아무 숨김없이 일 대 일로 만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할/ 이것은 다른 의미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지나간 날들을 결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더글라스 맥밀란'은 이 <홀로 남음>을 가리켜 '은혜로운 고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진실해 질 수 있습니다. 야곱이 혼자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에게 저질렀던 죄를 깨닫고 반성한 줄 믿습니다. 또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전능 자를 찾게 됩니다.
여기 24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했다" 했는데, '어떤 사람'은 누구이고, '이름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①어떤 사람은 누구인가? ⑴천사로 보는 견해도 있고, ⑵천사장 미가엘로 보는 견해도 있고, ⑶성육신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⑷창16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사자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②'씨름'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⑴'먼지를 일으키다'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즉 땅에서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한 것을 표현한 말로 보는 견해입니다. ⑵'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라는 말로, 즉 필사적인 싸움을 암시한 말로 보는 견해입니다. ⑶씨름 선수들이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실제 씨름하듯 영 육간의 모든 힘을 쏟아 눈물을 쏟으며 꽉 붙잡고 필사적으로 간구하는 야곱의 기도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해 준 말로 보는 견해입니다. 어쨌든 씨름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과의 싸움을 의미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싸움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힘입니까? 능력입니까?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가 기도요, 가장 무서운 무기가 기도입니다. /할/ ▶그러니까 야곱은 위기 앞에서 자기 수단과 방법으로는 안 되어 실패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생사의 기로에서 야곱은 밤새 천사를 붙들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위대한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기도는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건이 해결되고, 닫힌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기도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통회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열심 있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울부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③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언제나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어야 합니다. 혼자 하는 대화는 독백이고 푸념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교량입니다. 내 문제가, 내 사정이 하나님께 건너가는 교량 역할이 기도입니다.
④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환란 당한 자가 기도해야 합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가 기도해야 합니다(마11:28).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렘33:2-3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주 앞에 나온 사람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할/
⑤언제 기도해야 합니까? ⑴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롬12: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⑵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⑶특별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시46:5절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⑷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골4:2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⑸믿음의 능력이 필요한 자 기도해야 합니다. ⑹영적 침체 속에 있을 때 더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할/
⑥어떻게 확신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⑴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세요!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⑵믿음으로 기도하세요!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3. 압복강가의 야곱의 모습을 한번 정리해 보자!
'얍복'이라는 뜻은 '털어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자기 처지를 솔직하게 하나님께 털어놓은 곳이 얍복강입니다. 기도는 솔직하게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⑴야곱은 기도로 천사를 이겼습니다(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⑵기도하다가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환도뼈란 의학적인 말로 하체와 상체를 떠받쳐주는 뼈로 힘의 근원을 상징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는가? 지금가지 자기 수단과 방법만 의지했던 야곱을 완전히 꺾음으로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자아의지를 꺾지 않고는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육을 처리하지 않고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환도뼈를 치신 것입니다. 환도뼈는 힘의 상징, 자기 중심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의 환도뼈를, 어떤 사람은 사업의 환도뼈를, 가정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왜 치십니까?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경고입니다. /믿/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자기 힘으로 형 에서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강, 자존심, 지식, 물질에 기대를 걸고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부러져야 할 환도뼈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할/ 저도 지난날에 하나님께 환도뼈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선줄 믿습니다.
야곱은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습니다. 그 몸에 흔적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고통이나 아픔,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여러분 몸에, 여러분의 생애에 남겨진 예수의 흔적 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아멘!/
⑶야곱의 끈질긴 인내와 불타는 소원을 보십시오! 26절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환도뼈가 부러질 때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놓지 않겠다." 말로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수도 없고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살수가 없다"는 간절한 간구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빼앗는 자의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진 환란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호두나무 과수원을 하는 농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딱 1년만이라도 날씨를 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과수원 지기는 호두나무에게 가장 좋도록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했습니다. 햇볕이 필요할 때는 햇볕이 쪼이게 했고, 비가 필요할 때는 비가 내리도록 조정했고, 덜 여문 호두가 떨어지게 하는 바람은 불지 못하도록 조정을 했고, 폭풍우나 천둥치는 일도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한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수확의 계절을 맞아 예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주인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산더미처럼 쌓인 호두 중에서 하나를 깨어 보았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커다랗게 잘 자란 호두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빈 껍질뿐이었습니다. 잔뜩 성이 난 농부는 하나님을 찾아가 항의를 하기를 "하나님,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시련이 없는 것은 알맹이가 없단다. 폭풍우 같은 방해도 있고, 가뭄 같은 갈등도 있어야 껍데기 속의 속알이 깨어나 알맹이가 여무는 법이지. 네가 좋은 날씨만을 준 것은 호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호두를 죽인 거란다." /할/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깨닫는 것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할/
⑷기도 후에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27절을 보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그러자 28절을 보면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붙잡다'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싸우다'의 합성어로 '하나님과 싸운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기도하고 응답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날마다 이기는 삶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5:57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름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역시 이름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삶이 변해야 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이요 울며 간구한 야곱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제 야곱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기꾼이 아닙니다. 남의 인생의 발꿈치만 잡는 그런 인생도 아닙니다.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후로는 하나님의 왕자로서의 인격을 갖추고 하나님의 왕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누가 강한 자인가? 시대마다 강자의 개념은 달랐습니다. 로마시대에는 '군대의 용사들'을 강자라고 했고, 헬라시대에는 '지식이 많은 사람' 즉 철학자들이 강자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강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 시대에서는 누가 강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돈 많은 사람'을 강자라고 할 수 있고, '권력자'들을 강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강한 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이깁니다. 야곱이 강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새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⑸31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갔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그 앞에 은총의 밝은 빛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시30:5절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표현된 성도의 기쁨이 야곱에게 찾아온 새 아침이 된 것입니다. /할/ 우리 모두 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⑹기도 후에 야곱이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경쟁만 해 왔습니다. 형과는 하나님의 축복 경쟁에서 이기었고 라반과는 재산 증식 경쟁에서 이기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가 스스로 겸손해 졌습니다.
33:3절에 형 에서를 보고 "일곱 번 땅에 절"을 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의 모습인줄로 믿습니다. 제일 큰 변화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⑺가치관이 변했습니다. 화해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재물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었는데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목임을 깨달았습니다. 큰 선물을 에서에게 주었고, 욕심을 버렸습니다. 자신을 버려 형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니 형과 화해했습니다. 자신을 희생시키니 형의 싸움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믿/
⑻에서도 변했습니다. 33:4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동생을 죽이겠다고 400명 장정을 동원해 출동했던 에서였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동생을 만나자 달려와 껴안고 입 맞추고 대성통곡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야곱이 목숨 걸고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먼저 내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합니다. 이것은 기도의 공식이고 변화의 절차입니다. "내가 변하면 네가 변하고 네가 변하면 우리가 변합니다." /할/
기도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막9: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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