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요! (행 20;22-25, 36-38)
고난 주일입니다.
고난 주일에 고난당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 그렇게 고난당하며 산 바울의 생애를 들여다 보고 고난의 의미를 배우고 싶습니다. 인물을 보면 인격이 보입니다.
고난 당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 고난을 당하며 사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은 수상으로 일하다가 사퇴하였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수상이 되고 싶어 하시는 사람은 많지만 인생의 밑바닥에 들어가서 일할 사람은 없지요.>
고생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그렇게 고생하며 살기에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벤구리온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제 공항 이름을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월남전쟁에 참가하였었습니다.
그 후 향수같은 묘한 감정이 있어서 월남에 가보았습니다. 월남사람들은 모두 호지명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호지명이 살던 집을 가보았습니다. 평생 두 벌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 흰 두루마기 한 벌과 군복 한 벌입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갈 때에는 군복을 입었고, 대통령 관저에서는 흰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신발로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스리퍼 한 켤레를 신고 살았습니다. 집도 그렇게 검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금으로 궁을 만들어 놓고 살던 후세인은 사형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지명은 죽을 때 유언하였습니다.
<내 몸을 불살라 조국에 뿌려 달라. 내 시신을 흔적도 없게 하여 달라.>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국무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호지명의 유언을 듣지 않는다. 조국을 위하여 그렇게 일한 호지명 시신을 영원히 보관한다.>
그래서 미이라로 만들어 온 국민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난받지 않아도 되는 대통령이 그렇게 고난을 받은 모습을 온 국민은 그렇게 존경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막사이사이 대통령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직업은 땜쟁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땜장이 노릇을 계속 하였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땜쟁이 일은 고만 두시지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대통령이지 내가 대통령이 아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땜쟁이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받지 않아도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존경스러울 가요?
가장 놀라운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난 당하지 않아도 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그런 사람중에 하나가 바울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입니다. 권력이 대단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위층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온 세상을 로마가 지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어느 곳에 가든지 당당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최고학부를 나왔습니다. 그런 바울이 고난을 자초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 곳 저 곳 복음을 증거하다가 오순절 명절 안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급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밀레도에 머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자기가 개척한 교회 에베소 교회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자 에베소 교회 장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당당하게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울면서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19)
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울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앞에서 진정으로 울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통곡하시며 하나님께 매달리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바울도 아시아에서 온 이후 계속 울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울었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5-6)
히스기야 문제 해결의 방법은 오직 하나 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울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온 이후 계속 일하면서 힘들어서 울고, 슬퍼스 울고, 아파서 울고, 억울하여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더 잘 하고 싶어서 울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울면서 혼자 아파 하면서 혼자 삭이면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차피 혼자 태어나 혼자 죽을 것이니 아픔을 혼자 삭이며 울며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울은 울면서 살았습니다.
2. 나는 참으며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어려운 시험이 있어도 참으면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시험거리가 있을 때 참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참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미드라쉬를 보면 솔로몬은 자기 반지 속에 이런 글을 써서 끼고 다면서 늘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과 시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갑니다. 참아야 합니다.
3. 나는 주님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주를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일가요? 주님을 섬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 같으니...>(엡5;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은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 40)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에 와서 성막중 특강을 한 김 철환 목사님이 옆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나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옆 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느 여대생이 남자 대학생을 소개받았습니다. 남자는 여대생을 너무나 좋아 하게 되었는 데 여대생은 그 남자를 좋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여대생을 만날 때마다 지극히 극진하게 대하였습니다. 앉고 설 때마다 의자를 빼어 주고 넣어 주고 하였습니다. 만날 때마다 여대생에 좋아하는 초코렛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둘이 6층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둘이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빼 마시려고 하는 데 고장이 나있었습니다. 커피 자판기는 1층에 또 하나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대생이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눈치를 알고 잽싸게 1층으로 뛰어 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을 들고 뛰어 올라 왔습니다. 커피가 흔들려 엎질러 져서 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두 잔 커피를 한 잔으로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두 잔을 빼 왔지. 자! 한 잔 들어요.>
여대생은 두 가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그 남자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도저히 혼자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여대생은 남자가 자기를 그렇게 섬기는 것을 보고 믿음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커피를 받자 빈 컾도 달라고 하여 다시 나누어 마시며 사랑이 자랐습니다.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섬기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섬기며 삽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예배입니다. 히브리어로 섬긴다는 말은 <아바드>입니다. 그런데 예배라는 말도 <아바드>입니다. 예배와 섬기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예배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나는 월남 전쟁에 참가할 때 배에서 예배를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산항구에서 월남 파병 군인들이 1200명 탔습니다. 9일 걸립니다. 내일이 주일입니다. 군목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때 신학교 2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나는 미국인 선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선장님! 내일이 주일입니다. 나는 앞으로 목사 될 사람입니다. 지금 이 배에는 500명 가량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선장이 말했습니다.
<나도 기독교인이요. 잘 되었어요.> 그는 나를 7층 강당으로 인도하였습니다. 1000명 정도 들어가는 홀이 있었습니다. 나는 마이크 방송을 하였습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동지 여러분! 내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주일입니다. 이 배 7층에 예배실이 있습니다. 모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도 다 오시기를 바랍니다. 전쟁터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 다시 방송을 하였습니다. 나는 몇 명이 왔을 지 몰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너무나 놀랐습니다. 1000명 좌석이 거의 다 차있었습니다.
그 날 예배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사회보던 친구, 기도하였던 친구, 설교하였던 나 세 명은 지금도 그 때 감격을 되새기며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려고 하는 데 한 사람이 소리질렀습니다.
<우리 배에서 할 일도 없는 데 새벽기도도 드리십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 날부터 새벽에도 깨어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나는 배에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줄을 서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인사하였습니다. 월남에 도착하였을 때 통역으로 불려 나가 월남 생활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압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예수님을 잘 섬기면 예수님이 축복하십니다. 바울은 주를 섬기며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4. 나는 예수님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20)
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중국을 복음화시킨 유명한 중국 사람중에 하나가 죤성입니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들이 해야하는 세 가지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1) 회개
(2) 구제
(3) 전도 이 세가지는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주님을 위하여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각 집에서나 꺼림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지난 주간 219기 성막 쎄미나가 끝났습니다. 이 곳에서 첫 성막 쎄미나였습니다. 준비하여 주신 온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숙식할 수 있는 침구 150조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든 목사님이 행복을 느꼈습니다. 좋아 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보면
1. 환경에 반하였습니다. 더구나 봄 개나리가 피어나고 있는 한강 뚝섬 아침 산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2. 식사와 식사하는 식당에 반하였습니다. 한강을 내려다 보는 식당은 워커힐보다 낫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3. 공부하는 환경을 좋아하였습니다. 첫 쎄미나를 마치고 모두가 흐믓했습니다. 기도하여 주시고 협력하여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하루 더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큰 힘을 얻고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세미나에 광진 경찰서 최 경사님이 주차, 행사를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떻게 그렇게 잘 돌보아 주신 것일가요? 목욕하다가 제가 전도한 분입니다. 적라라하게 만났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며 전도한 분이 가장 큰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신 분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고 하나님에게 어떻게 영광을 돌릴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두 가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별빛나 축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갈릴리 축제>입니다.
5월 13일 교단적인 입당 예배를 드리기까지 한 명이 한 명씩 전도하는 축제입니다. 이번 모두가 우리 교회 1300석을 차고 넘치게 하기 위하여 동참하는 계기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금년말까지 50명이상 전도하는 이에는 성지순례 전액 무료, 30명 이상 전도하면 반액 무료로 갈릴리에서 축제를 가지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혼 구원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5. 나는 매여서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22-25)
바울은 돈에 매여 살지 않았습니다. 명예나 쾌락에 매여 살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사명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유대인들이 배교자라고 잡아 죽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명에 매여 올라간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길이라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즈음 화제의 두 젊은이가 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 연아와 수영선수 박태환입니다.
김연아는 지난 주 3등을 하고 말했습니다.
<도전자가 좋아요.>
지난 주 월요일 호주 멜버른에서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400m 경기에서 경기고등학교 박 태환이 1등을 하였습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입니다. 모두가 환성을 올렸습니다.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박 태환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매일 15000m 수영 연습을 하리고 정하고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오늘 밤 12시까지만 1등을 즐기고 내일 아침부터는 매일 15000m 씩 강훈련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는 언제 1등을 하였냐는 식으로 열심히 연습을 하더니 수요일에 200m에서 동메달을 또 땄습니다.
내가 나를 매면 나는 나에게 기적을 줍니다.
매면 죽음보다 강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환란이 뻔히 보여도 매임을 받아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자기가 자기를 매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은 날은 벌금을 1000원씩 내리라.>
<전도하지 않은 날은 성경을 한 시간 읽으리라.>
<전도하지 않은 날은 전보대 위에 올라가 한 시간 벌을 서리라.> <전도하지 않은 날은 목욕탕에 들어가서 물속에서 30분간 코까지 채우고 있으리라.>
<전도하지 않은 날은 한 끼 굶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매지는 마십시오.
<전도하지 않은 날은 뚝섬에 가서 빠져 죽으리라.>
매면 능력이 됩니다.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이렇게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36-38)
이런 말씀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애국자요 감리교 장로님이셨던 남궁억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찬송가를 작사하신 분이십니다. 장로님이 1931년 연세 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내가 여러분을 보려고 놀미재라는 높은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간 밤에 눈이 많이 와서 눈으로 온 대지가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이 하나 있어서 따라 오다 보니 엉뚱한 길이었습니다. 나는 발자국을 따라 다시 되돌아 와서 방향을 찾으면 눈을 쓰면서 왔습니다. 내 뒤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누가 간 발자국이라고 해서 따라 생각없이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수많은 사람이 따라 온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방향으로 걸으렵니까?
교육의 혜택도 없고 문화의 혜택도 없고 헐벗고 굶주린 우리 동족을 구하려고 농어촌으로 고난을 자초하며 가지 않으렵니까? 강한 자에게 붙어 부스러기 권세에 만족하지 말고, 약한 자를 도와 강하여 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우리의 과업입니다.>
고난 주일입니다.
고난스럽게 살면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깊이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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