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거듭난 삶을 살 수 있을까? (시 18:20-36)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이 죄에서 승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 보면 다윗의 담대함이 눈에 뜨입니다. 어떤 모함을 당해도, 어떤 시련을 만나도 다윗은 강하고 담대하였습니다.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기도에서 드러납니다.
6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다윗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29-30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다윗이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1-24절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의 기도는 다릅니다. 담대합니다.
약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그러나 누구나 기도해도 이런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도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에는 확신도 담대함도 없습니다.
시 18: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적은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도 죽은 자가 살아나도 여전히 죄짓고 미워하고 우울하고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그 기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고난을 당하더라도 죄 안짓고 산다! 이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사랑만 하며 살리라.” 이것이 기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9절부터 13장에 걸쳐서 가장 큰 은사, 가장 좋은 길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일본을 위하여 기도하고 성금을 모으다가 독도 문제로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다윗의 믿음이 훌륭한 것은 기도 많이 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기도를 하되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려고 애를 쓰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왔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두 번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다윗이 힘이 강하고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군사를 이끌고 광야에서 숨어지내는 다윗을 죽으려고 왔을 때입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정말 믿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윗의 시편을 설교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다윗처럼 기도하지 못합니다. 계속 죄를 짓고 살면서 다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에 머무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계속 지고 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변화는 죽고 난 다음에 올 줄로 생각합니다. 사는 날 동안은 죄에 끌려다니며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가서야 바로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죽고 난 다음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변화된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인데, 말이 됩니까?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이지 죽고 난 다음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려 하심인데 죽고 나면 다 변화된다면 왜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진정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죽고 난 다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믿으면 변화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족들과 형제들의 변화를 믿지 못합니다. 자신도 변화되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려니까 그런 것입니다.
변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매일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소리지르니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물 위로 내려섰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풍랑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이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왜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 안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옛 사람과 함께 죽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심으로 거듭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자신을 붙잡고 계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32-34절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정말 믿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은 우리에게 변화된 삶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직접 우리 안에 오십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을까요?
우리는 돈이 없을 때 돈을 구하고 건강을 잃었을 때 건강을 구하고 위기 상황에서 구원받기를 구하지만 잠시 오는 도움 능력 기적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위로는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제 안에 살면서 저와 통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진정한 답입니다. 해결입니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에 오시라고 부탁하는 것이 너무 심한 요구가 아닐까 걱정될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 교회에 오는 모습을 보면 얼굴이 피곤함이 가득하고 아무 표정이 없고 신경질 충만한 얼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도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만 하지 실제 믿음의 실험을 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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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들어도 실제 검증해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실험하였습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기도로만 고아들을 먹여 보았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였습니다.
머린 케로더스 목사님은 모든 일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 방법으로 영성일기를 써 보시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안에 거룩한 무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불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도 너무나 악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이런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거룩한 삶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거룩한 무리가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요즘 젊은이교회 청년들에게 산상수훈으로 설교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는 운동을 일으키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청년들에게만 맡길 일은 아닙니다. 어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 가지고도 거룩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한사람이라도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일 때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고 거룩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결심으로 안됩니다.
그러나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 되어집니다!
나도 거룩한 삶을 살고 거룩한 운동을 일으키기 원하는 이들은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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