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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죄 지을 수 없는 이유? (시 17:1-15)

by 【고동엽】 2022. 1. 9.

성도가 죄 지을 수 없는 이유? (시 17:1-15)

 

 

저는 사람이 죄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 자신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유혹을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 달라졌습니다. 죄짓지 않고 살 수 있구나! 성경이 제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계속 주십니다. 시편 17:1-5절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제 생각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확증시켜주셨습니다.
시 17:1-5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정말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누가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마 어떤 분은 이런 고백에 대하여 거부감이 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적당히 죄도 짓고 사는 거지!’ 하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고백인 것입니다. 만약 다윗처럼 고백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비정상인 것입니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성도들은 당연히 죄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죄의 대가가 너무나 무섭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둘째인 하영이를 아침에 학교까지 운전하여 데려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좀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였습니다.“아빠,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더니 제일 좋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니 어려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님이 계셨데요. 그 다음에는 어려운 개척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이 계셨고요, 그런데 지옥에 갔더니 제일 첫 번째 층에 누가 있나 보았더니 큰 교회 담임하던 유명한 목사님들이 있었데요,”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도 하영이도, 그러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서인지“지옥 제일 밑바닥은 아니래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그래 참 다행이다. 아빠는 유명하지도 않고 큰 교회를 담임하지도 않으니.”

여러분, 정말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큰 일입니다.

이번 주간에도 여러 가정에서 장례가 났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 배우려 하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는 배우려 하지 않아서 큰 일입니다.

다윗은 아무렇지도 않게 죄 짓는 사람들에 대하여 9절-14절 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10절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4절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돈이면 제일이고 마음에는 욕심이 가득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교만하고 자녀들에게 재산 물려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끝나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고 나면 죄가 더 이상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지 않은 것은 죄가 더 이상 유혹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한 비참한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죄의 대가가 꼭 죽고 난 다음에 지옥에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판과 지옥에 대하여 시큰둥하게 반응합니다. “누가 알 수 있어?” 심판이나 지옥은 사람들에게 너무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우리를 지켜 줄 힘이 없습니다.
성도가 죄를 짓지 않은 이유는 죄를 지으면 나중에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지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시편 17편을 보면 다윗은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시 17: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
3 주께서 ...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너무나 친밀히 동행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 다윗의 기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창세기 21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했고 창세기 26장 3절에 보면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했고 창세기 31장 3절에 보면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했습니다. 요셉도 창세기 39장 2절에 보니 애굽에 노에로 팔려 가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했습니다. 이 점은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하나님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이 복은 예수 믿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여기에 성도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죄 짓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이런 친밀함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게 한 후,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어린 아이가 죄를 지으면 그 좋던 엄마 아빠가 두려워집니다. 엄마 아빠는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이 갑자기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손해보고 고생을 하고 죽을지언정 죄는 짓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것입니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자처럼 ‘죄짓지 말아야지.’ ‘죄 짓지 말아야지.’ 하면 안됩니다. ‘완벽해야지.’ 하는 것은 병적인 증상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죄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짓지 않되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잘못하면 겉으로만 죄 짓지 않았지 무서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는 자였습니다.
율법에는 죄인들과는 한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서 먹고 주무셨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프다고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서 까먹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옹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규정으로만 따지면 안식일을 범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보기에는 이 예수야말로 율법의 파괴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도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도대체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냐?” 죄를 짓지 않는 동기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차디찬 율법이란 몽둥이 하나만 들고 ‘때려잡을 놈 없나?’ 하고 돌아다니다가 조금이라도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 보이면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죽여 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같이 죄 짓지 말자는 것이지만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큰 일입니다.

죄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너무나 귀하지만, 죄 지은 자를 벌레 보듯 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더 큰 죄입니다.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간음한 여인이 끌려왔을 때, 모세의 율법대로 하면 돌에 쳐 죽여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면서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내가 받은 용서는 당연하고 남이 받은 용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죄냐 아니냐?’를 물을 때, 이것이 사랑인가?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실 때, 제사장은 강도 만나 매맞고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율법에 의하면 정결해야 하는데 죽은 시체에 손을 대면 율법의 정결 규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 제사장은 법은 잘 지켰을지 모르지만 사랑은 빠졌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왼편에 서게 되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우리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절대 착각하면 안됩니다. 결코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죄 짓지 않는 이유는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다윗은 15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24 시간 바라보는 영성일기를 쓰다 보면 죄짓던 생활 다 청산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10일 만에 다시 쓰는 일기다. 10일을 돌아보면‘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느낀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예전처럼 나의 생각과 나의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니 더욱 나를 쳐서라도 주바라기를 해야겠다.

교통 체증이 심하다. 오늘은 돌아봐야 할 곳도 많은데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교통 체증은 짜증나는 일이었는데, 오늘은 찬양을 들으며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오히려 감사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 자체만으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저녁 늦게 퇴근해서 가정예배를 인도하는데 아이들의 짜증이 장난 아니었다. 순간‘예수님, 여기서 화내면 제가 사탄에게 지는거죠?’바로 주님의 마음을 품어본다. 아이들을 달래서 말씀 읽고 묵상하고 기도했다.‘주님, 저희 가정에 주신 복된 선물로 허락하신 이 아이들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원합니다. 예배를 방해하고 어린 영혼을 미혹하는 악한 영의 궤계를 파하시고,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음을 아이들이 깨닫게 하옵소서.’그리고 민수기 6장 24~26절 말씀으로 축복하고 가정예배를 마무리 지었다.
하루의 마지막을 주님께 영광돌림으로 마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면 죄짓는 것이 지옥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죄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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