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목사/말 보다 삶으로 믿음을 증거하라! (시 12:1-8)
시편 기자인 다윗은 지금부터 3천년도 넘는 옛날 사람입니다. 당연히 시편 기자 당시의 사회 문화는 오늘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12편을 읽다보면 그 당시 사회가 지금 우리 시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시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
8절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저는 시편 12편을 읽으면서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습니다.” 탄식하였습니다. 애통하였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시편 12편의 다윗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온갖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5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두려움과 갈등에서 벗어납니다.
6-7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세력을 장악하고 다윗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들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과 너무 다르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만이 진실되고 확실한 약속임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다윗을 다윗되게 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이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시편 12편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6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찌꺼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저 자신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가에 대하여 깨달아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주 사역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라우며 완벽하며 순수한가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나는 얼마나 순수하고 온전한 사람인가를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고 거짓을 입에 담는 이들의 영적 실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4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는 말은 내 말은 항상 옳다는 뜻입니다. “우리 입술을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하는 말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다 말하고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언제나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혀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런데 ‘나는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고 순수하지만 저는 부족하고 더러운 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말을 많이 하고 지냈는가를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눈이 뜨인 후, 빠진 함정은 진리에 대하여 논쟁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는 진리에 대하여 너무 모르니 마음이 안타까와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주장하고 가르치려 했는데, 결과는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도 상하여 고통당하게 되고, 상대방의 영혼도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이 디모데후서 2장 14절에 나옵니다.
딤후 2: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사도 바울은 당대의 최고의 논쟁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논쟁으로는 결코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순수하지만 우리 말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논쟁하면서도 자신의 온전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논쟁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진리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늘“자 자신을 항상 변호하려는 욕망을 고쳐주소서” 라고 반복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능력있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850명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영적 전쟁을 제안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세벨 여왕이 여전히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자 열왕기상 19장 4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0절에서는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19장 18절에서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깨닫고 보면 우리가 한 입으로 믿음을 말하고 복음과 진리를 말하지만 또 그 입으로 탄식하고 원망하고 실언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변증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물으면 기쁘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간증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논쟁이 시작되면 조용히 일어나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논쟁이 되면 일어나야 합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도 논쟁이 되면 일어나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 임마누엘, 성령의 내주하심, 다 논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오직 주님이 직접 가르치셔야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진리를 알고자 하면 성경 을 읽기만 해도 쉽게 깨달아지지만 논쟁을 하면 더욱 마음이 닫혀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재판을 받으실 때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하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 말로 가르치고 주장하고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얼마나 불완전한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 내외가 늘 다투며 살았습니다. 싸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괜히 싸웁니까?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실시한 부부세미나에 참석하였다가 이 부부가 잘못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만 화를 그치라" 해도 계속하고 "용서하라. 섬기라" 해도 거부하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전혀 세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자녀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 마음에 가고 싶으면 교회에 가고, 너희 마음에 헌금하기 원하면 너희 돈으로 헌금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으로 헌금하고 싶지 않으며 주일에도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면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잘 나간다고 여겼던 자녀들의 신앙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그 동안 이 아이들은 교회에서 사랑과 용서에 대하여 배웠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활에서 체험되는 것은 미움과 다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직 아이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이였기에 부모들의 변화된 모습으로 인하여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때도 말로 해서는 안됩니다.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저절로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사람은 돈버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합니다. 낚시, 등산, 골프 등 돈들고 시간이 많이 들어도 좋아하는 일이라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어려우니, 힘드니,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마음이 없어서 힘든 것입니다. 삶이 바뀌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마음이 바뀝니다.
겔 36:26-28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저는 은밀한 죄 짓는데는 선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모범생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 앞에서는 행실이 바르고 성실했고 칭찬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않는 때에도 항상 올바르고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감추어진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란과 욕심과 거짓과 교만의 죄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죄책감 때문에 목회를 그만 둘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밀한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품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안에 계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요한일서 4장에 두 차례 나타납니다(8,16절). 이 말씀은 사랑을 구하려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으니 사량을 구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랑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가 사랑입니다!
최근에 추천사를 써 달라고 요청해 온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재 작년 임원 훈련의 필독서였던 [종의 마음]이라는 책을 쓰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이빗케이프 목사님의 책이었습니다. [예수를 위한 바보]라는 제목으로 새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던 데이빗케이프 목사에게 주님은 어느 날 갑자기‘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무 당황스런 부르심이라서 14개여 월간 그 부르심을 거듭 확인한 후에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온 가족이‘길거리 세족사역’에 순종하게 된 분입니다.
“예수님이 씻긴 발은 행복한 발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대야가 붙은 십자가를 들고 주님이 명령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만나는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순종하여 간 곳이 요하네스버그 근처의 소웨토라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범죄로 악명이 높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부랑자 일곱명에게 끌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목사님을 보호하셨습니다. 케이프 목사님을 죽이려 하던 그들의 발을 씻어 줄 때 그들이 주님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조직폭력배, 알콜중독자, 동성애자, 한센병자에서 군장성, 시장,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었고, 초자연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중독이 치유되며 조직폭력배가 발을 씻겨준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하며 그와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데이빗케이프 목사님을 왜 설교 사역에서 발씻어주는 사역으로 내모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설교 사역은 대우받는 사역입니다. 발씻어주는 사역은 바보같은 사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로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 것 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면 답이 온 것입니다.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영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논쟁할 것은 아닙니다. 될 일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믿고 삶으로 증거해야 할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정말 바보같았습니다. 얼마든지 싸울 수 있는데도 그는 쫓기고 도망다니며 살았습니다. 죽일 수 있는 순간에도 두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삶을 증거하였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의 산 증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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