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안식으로 채우라
출애굽기 20:8-1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후에 우리들에게 살 수 있는 가장 큰 삶의 원리를 안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고 오묘한지 우리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엿새동안 일하고 이레째 날은 안식일인즉 너희는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만약에 안식일이 없었다면 인류가 얼마나 일만 하고 쉬는 날도 없이 고생했을까 하나님께서 엿새 일하고 하루 쉬게 하는 삶의 원리를 주신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안믿는 사람도 엿새 일하고 하루 쉽니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했느냐? 창세기 2장 1절에 보면 엿새동안 완성하고 이레째 날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날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인간이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쉬어야 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 쉬는 것은 휴식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고백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은혜로 산다.’ 이런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농사를 짓고 이른 아침부터 해가 맞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우리는 일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천지창조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엿새동안 일하고 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 은혜를 받고 일하러 가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오늘까지 일한다면 무엇을 거부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게 됩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나는 내 노력으로 살 수 있다.’라는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하루를 쉬면서 예배드리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늘과 땅 천지만물의 모든 것까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명기 5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안식일을 지키라 했느니라”
이것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속을 받은 것은 안식일을 지키므로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표징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안식일을 못지켰습니다. 일만 노예로써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백성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린다는 것은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고백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날은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 갈라지는 날입니다. 엿새동안 일할 때는 똑같습니다. 직장에서 과장이나 계장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주일날이 되면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로, 세상 사람들은 공일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지옥으로 하나는 천국으로 갈라집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기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는 것은 기적입니다. 강한 손과 편팔로 이끌어 내었다는 하나님의 기적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기적입니다. 내 노력으로도 안되고, 힘써도 안되고, 울어도 안되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천국백성이 되었으니 이 기적을 체험하는 은혜의 날이 바로 이 날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거룩한 삶의 고백인데 출 31장 12절에 보면 “ 거룩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했다’ 이 날은 거룩해지는 날입니다. 거룩해지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거룩해집니다. 성경을 읽어도 거룩해집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바치느냐? 물질을 바치면서 거룩해집니다. 속된 내 마음을 물질로부터 갈라놓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말입니다.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강대상을 ‘성물’이라고 말합니다. 목회자가 하는 일을 ‘성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됨이 하나님 편에 속하면 ‘성인’이라고 말합니다. 또 주일날은 ‘성일’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공휴일’이라고 말합니다.
‘공휴일’이라는 말은 빌 ‘공’(倥)자를 써서 공휴일이라고 말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돈 벌어서 전부 이 날 때문에 망합니다. 엿새동안 바삐 일할 때는 버느라고 정신이 없지만 토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에 토요일 밤에” 하다가 다 털어버립니다. 도박으로 털고, 룸싸롱에서 털고, 놀러 가서 털고 다 털어버립니다. 그래서 ‘공휴일’입니다. 이 날을 공휴일로 보내는 사람은 삶 전체가 공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룩으로 채우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 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의 복 가운데 최고의 복은 거룩의 복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거룩’을 많이 찾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생활과 삶 전체가 하나님 편으로 많이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세상을 생각하면, 계돈을 생각하고 집안 아이들 생각하면 거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회에 못나와서 “내가 교회에 가야 되는데” 그러면 교회에 안나왔어도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 가운데 최고의 거룩은 잠자는 것입니다. 잠잘 때 거룩해집니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냉정히 생각하면 잠자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 중에도 악의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미운 사람을 생각하거나 탐욕으로 기도하면 거룩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거룩해집니다.
사람이 일을 할 때는 일의 노예가 됩니다. 돈의 노예가 되고, 세상의 노예가 되고, 지위의 노예가 됩니다. 그런데 일을 중단하면 그때 내 마음은 거룩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스톱한 상태,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 편으로 자기 자신을 맡겨버리는 경지가 바로 거룩입니다.
‘내 집을 채우라’ 할 때 내 집을 거룩으로 채워야 됩니다. 여기 오면 올수록 내 자신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항상 주일날이면 저를 데리고 가서 매주일 고구마 넝쿨을 뒤집습니다. 고구마 넝쿨을 뒤집을 때 보면 마디 마디에 흰 뿌리가 나서 땅에 뻗어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습니다. 제가 나중에는 너무 귀찮으니까 “어머니, 왜 이렇게 고구마 넝쿨을 매주일 뒤집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안뒤집으면 뿌리가 땅에 뻗어가지고 열매를 맺지 않고 넝쿨이 성해가니까 뒤집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이 흘러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주간 지나다 보면 세상에 뿌리를 다 내립니다. 돈에 내리고, 공부에 내리고, 권세에 내립니다. 이것을 한 번 교회에 올 때마다 목사님이 뒤집습니다. 뒤집을 때 끊기니까 아프지만 끊어야만 하나님의 거룩의 열매를 맺습니다. 놓아두면 세상에 뿌리를 내려가지고 세상에만 넝쿨이 흥하면서 ‘내가 돈 잘 번다. 내 지위가 올라간다. 내가 세상에서 잘 났다.’ 하면서 망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얻은 것, 열매없이 얻으면 마지막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이 날은 거룩을 얻는 날입니다.
어떤 때는 목사님이 뒤집을 때 조금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끊을 때 아프지만 아픈 것을 참고 확 뒤집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것이 다 끊어집니다.
우리가 처음에 교회를 한주 빠질 때는 ‘빠지면 안되지’ 그럽니다. 두 번 빠지면 ‘오늘이 무슨 날인가’ 그럽니다. 그런데 세 번 빠지면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3주쯤 빠지다가 목사님이 전화해가지고 나와서 쓴뿌리 뒤집어놓으려면 너무 깊이 들어가가지고 당겨도 안빠집니다. 그래서 넝쿨이 끊어집니다. 그러니까 한주간마다 뒤집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거룩의 은총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내가 자유인이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인간이 약해서 어디에 매이면 그때부터 노예가 됩니다. 그런데 나를 하나님 편으로 세워놓으면 자유하는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애굽의 노예도 아니요, 종살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유인이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은 이 날입니다.
우리가 엿새동안 살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속박을 당합니다. 직장에서 속박당하고, 가정에서 속박당합니다.
제가 어제 병원에 갔더니 한 부형이 당뇨병으로 누워 계셔요. 그래서 왜 이렇게 누워계시느냐고 했더니 스트레스 때문에 당뇨가 왔다고 그래요. 스트레스가 왜 왔느냐고 했더니 자기 완벽주의 때문에 출근도 1분만 늦어도 안되고 일도 정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성격 때문에 왔다고 그래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자신도 용서해야 됩니다. 잘못했다고 자기를 너무 죽이면 안됩니다. 자기를 용서하십시오. 남도 용서해야 되지만 자기도 용서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실수했을 때 자기 자신을 축복하십시오. ‘너는 복있는 사람이다.’ 말로 누가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자기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세요. 자기를 용서하세요. 자기를 격려하세요.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아물도록 하세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사58:13)
오늘 올 때도 ‘참 즐거운 날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을 ‘죽이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성일은 존귀한 날이다’ 우리가 살면서 이 날처럼 내가 존귀함을 입는 날이 없습니다. 나 자신이 최고로 존귀히 여김을 받는 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8-9절)
엿새동안은 힘써서 일을 해야 합니다. 엿새동안 노는 사람은 안식일에 거룩이 안옵니다.
옛날 시골 교회 장로님 댁에 머슴이 있었는데 주일날이면 일하지 않는 재미로 그 집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다른 집 머슴은 한달에 한 번 쉽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댁 머슴은 매주일 쉬는 것입니다. 일주일이면 일절 일을 안하니까 얼마나 머슴 살기가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게으른 머슴이 주일날만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도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1년이 지난 후에 주인이 머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므로 자네와 같이 있을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게” “주인님, 제가 주일날마다 따라 교회에 갔지 않습니까” “자네는 주일은 잘 지켰으나 ‘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된다’는 말씀은 어겼네 그래서 자네는 나와 함께 지낼 수 없으니 돌아아게”
엿새동안 부지런히 일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엿새동안은 열심히 일하므로 그 날을 지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원래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천지창조의 토요일이 안식일이고 안식 후 다음날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키는 날은 주일날입니다. 그러니까 안식교가 토요일날 안식일을 지키면서 예배드리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므로 복을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으므로 복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십계명도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명이지 십계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안식일은 곧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느냐 하면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직장도 문을 닫고, 슈퍼마켙도 문을 닫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만 되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습니다. 이때는 칼질도 안하기 때문에 손으로 뜯어먹습니다. 저들은 안식일이 되면 부지런히 음식을 미리 만들어놓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안식일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는지 후에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잘 지켰더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지켜 주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데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다른 계명을 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하나가 곧 계명을 지키는 기본 원리입니다. 이 날을 범하고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날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친구 부인은 부산의 고려파 교회에 다닙니다. 고려파는 주일날 밤 12시 전에 공부하는 것은 안되고 12시 넘어서 공부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 정도로 철저하게 훈련을 시킵니다. 또 어떤 유대인은 자녀가 안식일날 고기 잡으러 갔다고 때려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구속을 시키기는 했는데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죽였다고 후에 석방시켰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우리는 주일날도 없이 공부시키지만 노벨상 하나도 안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암이 없습니다. 가출 청소년이 없습니다. 범죄하는 소년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말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를 개척할 때 서부에 가면 금광이 많고 노다지가 많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험악한 서부 계곡을 마구 달립니다. 그런데 안믿는 불신자들은 마구 달렸고 그리스도인들은 엿새동안 달리고 하루 쉬면서 달렸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까 먼저 달린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요. 계곡에 시체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마구 달리다가 심장마비로 과로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엿새동안 달리고 하루동안 쉬어서 가가지고 드디어 서부지역을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서부에 큰 교회가 다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유산이 그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전 세계의 축복은 주일을 잘 성수한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소망을 하늘에 두어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신령한 신자가 되어야 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신비한 비밀이 있습니다. 노아가 40일동안 홍수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방주에 깨끗한 짐승 두쌍 부정한 짐승 두쌍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그쳤을 때 노아가 밖에 까마귀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온통 썩은 시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으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둘기를 내놓았더니 비둘기는 돌아왔습니다. 썩은 것 위에 앉으려니 냄새가 나고 발을 붙일 수가 없으니까 돌아옵니다. 또 일주일 후에 내놓았더니 감람잎을 물고 왔습니다. 또 일주일 후에 내놓았더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물이 다 빠졌다는 신호를 남기고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까마귀 신자가 들어가는 곳은 초상집을 만들어놓습니다. 남 흉보고, 비난하고, 안좋은 얘기를 해서 분위기를 어둡게 만듭니다. 그런데 비둘기 신자는 은혜를 받아가지고 내보낼 때마다 ‘나 집에 돌아갑니다.’ 하면서 거룩한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으로 가는 사람이 아니고 이 집으로 계속 돌아오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인데 비둘기는 깨끗한 것만 먹습니다. 주인의 것만 먹습니다. 까마귀는 아무것이나 먹습니다. 까마귀는 아무하고나 싸웁니다. 비둘기는 창공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줍니다. 성도는 언제나 주일에 돌아올 때마다 자기 삶의 거룩의 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새 것이 움트고 돌아오고 돌아와 결국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 데 반 의 얼 굴 사도행전 6:8-15 (0) | 2022.01.03 |
---|---|
우리집을 주님의 교회로 고린도전서 16:19-20 (0) | 2022.01.03 |
예수님의 향유- 마 26장6절~13절 (0) | 2022.01.03 |
예수를 배우라.- 마11장28절~30절 (0) | 2022.01.03 |
예수님의 인격- 막 10장45절 (0) | 2022.01.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