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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게 삽시다(민 33:24-29)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5.

능력있게 삽시다.

민수기 33:24-29

 

 

 

 

 

이미 봉독하신 말씀 가운데서 25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기리로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하신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대로 그 발이 기름에 잠겨 윤택한 축복을 받고 문빗장은 철과 놋처럼 단단해서 누가 침입하지 못하게 되고 그 앞날에 주의 능력이 함께 할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이 말씀이 이 자리에 참석하신 갈보리교회 모든 식구와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일년 동안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범한 실수는 주님께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허물은 성령이 우리를 교정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게 했습니다. 우리의 방황하는 모습은 선한 목자를 필요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찾으시고 다시 양의 우리 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밤을 좋아하지 않지마는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언약한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언약한 상태에서 우리를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온 누리를 은세계로 만드는 흰 눈은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에게 한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진리는 우리 인간이 연약하다하는 사실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세요. 햇빛이 찬란한 낮에는 별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별을 찾기 위해서는 깊은 곳, 어두운 곳에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이 캄캄하고 어두워야 별이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형편이 대낮처럼 밝을 때, 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형통할 때는 고통과 환난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능력의 약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다는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연약함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능력을 주세요. 주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이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연약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께 구했기 때문에 "내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간증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무능함을 느끼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되고, 이 일을 감당할 때 놀라움과 감격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보잘 것 없는데, 이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된 것이 말하자면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통해 일어난 기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준비하면서 지난 40여년의 목회생활을 회상하면 감사와 감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만번 이상은 설교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적인 표현으로 하면 도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단에 설 때마다 긴장됨을 멸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설교하고 나서는 제 아내에게 반응을 물어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당신 설교가 왜 탄력이 없지요?" 할 때면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우리 애들한테 묻곤 했었습니다. 요사이는 손자들한테 반응을 묻곤 합니다.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들고 설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 했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말씀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 마음이 용광로와 같이 뜨거워야 할 때 차디찬 어름으로 식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내 입에서 말씀이나가 여러분에게 전달될 때 뜨겁고 감격해야 되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말라죽어 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맡은 일을 감당해 나가실 때 이런 경험을 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밖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연약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의 연약함이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건강할 때,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어갈 때, 성공할 때, 사람들은 모두가 강해 보입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강해 보이고 자신감이 넘쳐 보입니다. 그러나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고,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아니하고, 앞이 참담하고 막다른 골목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탄식하며 낙심하고, 절망하며 심지어 죽고 싶어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렇게 연약합니다. 야고보의 말대로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고 솔로몬의 말대로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금보다 좋은 신앙을 가져 보겠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가지 못합니다. 옛말대로 "작심삼일"입니다. 주님을 이전보다 더 사랑해야겠다고 마음에 강한 다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스스로 발견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자신을 전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나니 후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얼마나 좌절에 빠집니까?

 

사도 바울도 이런 체험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노라고 했는데 실제로 육신은 죄악에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하고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강하고 확신에 찬 신앙으로 아무도 그를 움직이거나 넘어뜨릴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유혹의 태풍이 불고 나면 그만 변절해서 믿음에서 떠났다는 소문을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땅위에 쓰러져 있는 처량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시험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나는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그것이 바른 생각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나는 절대로 시험에 들지도 않고, 나는 절대로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장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시면 시험의 창에 걸리고 유혹의 올무에 다 걸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약으로 조금씩 쓰던 술을 이제는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몸이 하도 괴로워서 진통제를 조금씩 쓰다가, 어떤 분은 마음이 하도 허전해서 마약을 조금씩 쓰다가 마약 중독자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다가는 망하는데, 하면서 점점 의지가 약해져서 솟아나기 어려운 심연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의 결심이란 이렇게 약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고 육신으로는 저의 법을 따르면서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절대로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귀해서 그대로 살려고 하지만 우리 몸이 그대로 말을 듣지 않아서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실제적인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깜짝 놀랍니까?

 

다른 사람이 범죄할 때 손가락질 하기는 쉽습니다. 침을 뱉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그런 처지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베드로를 보세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맹세였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어전 비자가 와서 "당신도 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오?" 할 때 베드로는 무서워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베드로가 그렇게까지 비겁했을까? 그렇게 약했을까? 생각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베드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동안 살아 온 것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 모른다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산 적은 없습니까? 한번만 아니고 여러 번 이렇게 주님을 우리 삶 속에서 부인한 적은 없습니까? 누가 감히 베드로에게 침을 뱉고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 잡힌 간음하던 여자, 사람들이 끌고 와서 '이 여자를 돌로 치랍니까?' 하면서 살기 등등해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이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땅에 글을 쓰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러선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물러나고 아무도 이 여인을 돌로 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 이 여인을 돌로 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약한 사람들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귀가 사람을 아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가 들어갈 수 있는 샛길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두 사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고, 다른 하나는 지옥을 향해 내려가는 사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사다리를 걷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삼손을 보세요. 그렇게 강했던 나실인 삼손, 그의 마음에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그 허점이 드러나기 전에는 얼마나 강했습니까? 인류 역사이래 전에도 후에도 삼손 같은 장사가 없었습니다. 삼손 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무서워했습니다. 삼손의 능력이 발휘될 때는 썩은 당나귀 뼈 하나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일 정도였습니다. 삼손 앞에 블레셋 군인들은 아예 적수로 상대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삼손은 강했습니다. 삼손은 담대했습니다. 삼손은 용감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삼손을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삼손이 블레셋 여자 간첩 들릴라 앞에서 그만 그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던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를 홀로 있게 하신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이 사실을 바로 시인해야 합니다. '나는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 어떤 모양으로 넘어 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그만큼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만큼 우리는 또한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진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눙력이 있으리로다" 이 놀라운 약속은 보장된 약속입니다. 약속이란 성취에 대한 보장이 없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약속은 했지만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시고, 약속의 성취가 보장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면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영원하신 목적을 가지시고 섭리하십니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 피곤하시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의 하시는 일에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의 하시는 일에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했다가도 자기의 능력이 부족할 때는 본의는 아니지만 약속을 어기기 때문에 약속을 믿고 있던 사람을 실망시키는 수가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약속어음을 쓰지 않습니까? 아무날 찾아 쓰라고 약속하고 어음을 발행합니다. 그런데 내 은행잔고에 그 액수의 돈이 없으면 부도가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부도가 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그의 자녀인 우리를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에 "네 부모는 혹시 너를 버릴 수 있어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필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인 너희를 입히시고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건전하게 바로 살 수 있도록 주관하십니다. 저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꼭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원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이 약속은 보장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이것 보세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약속은 네가 사는 한 주간 동안이 아닙니다. 네가 사는 한달 동안도 아닙니다. 금년 일년동안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네 사는 날"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월요일에 받을 은혜를 월요일에 받고 금요일에 받을 은혜는 금요일에 받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 날에 받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적게도 아니고 그 날에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도 그날그날 받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며 광야에서 지낼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주셨습니까? 매일 매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그날 먹을 것을 그날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매일 매일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환란을 이겨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잘 이기면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환난 당한 후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환난의 날이 우리에게 밀어닥치더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될 줄 믿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다시 솟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팔이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끝으로, 능력 있게 살려면 의심을 버리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의심, 염려, 근심, 걱정이 있는 동안 능력 있게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근심하지 아니하고 능력 있게 살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히 임해서 제자들은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비겁해서 어린 비자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었지만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능력을 얻어 공회앞에서 다시는 그리스도를 저하지 말라는 위협 앞에서도 "내가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옳겠습니까? 나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고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동안 겁낼 것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능력 있게 살게 됩니다.

 

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의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오늘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 약속이 이루어져 이 세상에서 능력 있게 살아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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