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과 부족함 없는 적절함의 지혜 잠27:7
잠27:7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도 혹 기억나시겠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사과가 먹고 싶어서
첫 번째 사과를 깎으면 맛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과 하나를 다 먹고 나서
똑같은 사과를 그 다음에 먹으면
똑같은 맛인데
아까보다는 맛이 없다는 거예요. 왜?
이미 맛에 배불렀기 때문에!
근데 이게 세 개쯤 먹고 네 개쯤 되면
나중엔 더 이상 못 먹게 되지요.
그것만 계속 나중에 먹다 보면 질려서
사과 보기도 싫어지는 데까지 이르지 않겠습니까!
근데 굉장히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사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요.
하나 더 먹을까 할 때 딱 끊는 거겠죠.
그런 절제가 된다면
사과를 늘 맛있게 먹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이게 어려워요. 절제가 어려워요.
먹는 거 절제하는 것도 어렵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 절제하는 것도 어렵고
그래서 지나치게 되면은요..
오늘 재미있는 말씀 하잖아요.
'배부른 자는 꿀도 싫어한다.' 잠27:7
꿀이 얼마나 달고 좋아요.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먹으면
꿀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나중에 싫어하게 된다..
'다시는 꿀은 보기도 싫어
냄새만 맡아도 싫다.'
여러분, 꿀도 싫을 만큼
지나치게 배부른 사람이 행복한 걸까요?
쓴 것도 단것처럼 느껴지는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한 걸까요?
제 대답은 이거예요.
'꿀을 언제나 꿀은 달다고 느낄 만큼
꿀을 먹고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요?'
전 가난도 행복하다 생각 안 해요.
가난해도 살겠지만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구태여 가난해야 된다고
가난을 훌륭한 것처럼
그렇게 미화하는 일은
또 하나의 속임수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은요.
절제, 적당할 줄 알아서요.
늘 꿀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게 참 지혜가 아닐까요?
그래서 '너무 부하게도 마옵시고
너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하는 잠30:8
그 기도가 그런 기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가 부르면 꿀도 싫어진다'는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에요.
▲저는 1982년도에
처음으로 자가용을 탔어요.
제가 영락교회 부목사로 갔는데
그때 영락교회가 처음으로 부목사에게
자가용을 한대씩 줬을 때예요.
그때는 시내에 차가 얼마 없었어요.
자가용이 있으면
심방을 꽤 여러 집을 할 수 있었어요.
그때 제 기억에
서울시내 어디라도 약속하면, 승용차로 30분만에 갈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버스나 택시 타고 심방을 다니면
하루에 10가정을 심방한다면
자가용이 있으면 20가정을 심방할 수 있으니까
그게 교회 목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때 교회가 처음으로 부목사에게
자가용을 한대씩 사 줬죠.
선배 목사님들은 새 차를 받았고요.
저는 제일 꼴찌 막내 목사였는데
교회에 있던 제일 낡은 차를 배당받았어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포니
비 새는 차..
혹시 여러분 비 새는 차 타보셨는지요?
차체가 녹이 슬고 삭아가지고
비가 떨어지는 건 아닌데
어디선가 빗물이 스며들어서 바닥에 고이고 그랬어요.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빗줄이 스며들어서 고이니까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 앞에 놓으면
옆에 탄 구역장 권사님이
가끔 차 창문을 열어서
그때는 버튼 눌러서 내리는 창이 아니잖아요.
손잡아서 돌려서 내리는 창, 그걸 돌려가지고는
물을 버렸어요. 무슨 보트 타고 가는 것처럼
그러다가 그 차가 너무 낡고 보기 싫어서
1~2년 더 타야 될까 보다 싶어 가지고
제가 차를 공업사에 맡겨서
새로 칠(도색)하려고 맡겼는데
칠하려고 뭘 뜯었다가
하도 삭아서 다시 붙이지를 못했어요.
그 바람에 영락교회가 제게 새 차를 사줬어요.
그래서 선배들이 굉장히 부러워했었어요.
저는 그 바람에 굉장히 새 차를 일찍 탔잖아요.
그때 대우 '맵시나'라는 차가 있었는데
그 차 타고 얼마나 행복하고 좋아했던지...
그렇게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차를 꽤 많이 바꾸고 그랬었는데요.
제가 은퇴하고 지금 굉장히 좋은 차 타거든요.
제 아내가 선물로 줬어요. 은퇴 기념으로.
지금 행복할까요?
행복하죠. 그렇지만
그때 영락교회에서 맵시나 새 차를 받았을 때처럼
그런 맛은 없죠. 그저 그렇고 그래요.
여러분, 가치는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효용의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으로써 만족하고
세상에 부함으로 배부름으로
만족하고 행복하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지를 않으셨어요.
▲세상에서 제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 1등을 꼽으면
사람들은 솔로몬을 꼽지 않을까요?
근데 솔로몬이 이렇게 고백했어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물은 연하여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도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오듯이
부귀, 영화, 쾌락이 솔로몬에게로 흘러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강물이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이 자기의 삶을 채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게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예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잘살고 행복하고
만족하려고 했던 것이 어리석었다. 헛됐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러분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얻으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어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듯이 여러분
꿀도 싫을 만큼 배부른 부자가 행복할까요?
쓴 것이라도 달게 먹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할까요?
차라리 후자일런지 모르죠.
근데 조금 전에도 얘기했잖아요.
적절한 게 좋다고!
적절해서 꿀을 늘 달게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부요함,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꿀을 늘 준비할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그 적절함!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 싶고
사실은 제가 은퇴할 때 하나님 앞에
그 정도의 요구를 했어요.
하나님 나 요만큼 하게 해주세요.
그게 뭔지 아세요?
하나님, 은퇴한 후에 교회에 폐 끼치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립하게 해주세요.
친구들 만났을 때 점심 사는 것
부담스럽지 않게 해주세요.
손녀들 만났을 때 용돈 주게 해주세요.
뭐 요 정도예요.
딱 하나님이 그 정도의 여유를 제게 주셨어요.
여러분 이만한 여유도
제 나이에 만만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요. 좋아요. 꿀이 늘 달아요.
지나쳐서 싫어지지도 않고요.
모자라서 쓴 것을 먹어야 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기도를 참 잘 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적절함이라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여러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고 만큼만 벌고 딱 그만두는 게 옳은 걸까요?
적절히 먹는다고,
먹을 것을 벌지 않고 거기서 포기하는 게 좋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대로
많은 것을, 5천 명분을 먹일 수 있을 만큼
버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5천 명분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5천 명을 먹인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그러니까 내가 배부를 만큼 쌓아 놨는데
혼자 먹지 않고
나는 요만큼만 먹어야지
더 먹으면 나중에 꿀도 싫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해
나를 위해서는 요만큼만 쓸 거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나누고 베풀고 흘려야지..
이럴 수 있다면 이게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요?
▲제 인생의 참 큰 충격을 주고 감동을 준 것은
마태복음 20장 1절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였어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설명하려고
'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라'라고 시작하는 말씀이거든요.
근데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했어요.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새벽에 장터에 나가서
인력 시장에 가서
일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그리고 오전 6시, 9시, 오후 3시
심지어는 오후 5시까지 장터에 나가서
나와 있는 사람만 보면
무조건 포도원에 들여보냈다는 거예요.
오후 5시에 들어간 사람은 1시간밖에 일 못했는데
1시간밖에 일 못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줬다.. 하는 것이 그 비유의 말씀이거든요.
제가 그 성경을 읽다가
'아, 이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위해서 일꾼을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일꾼에게 품삯을 주고 싶어서
포도원을 경영한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아, 그때 제가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런 마음씨를 가지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런 인생관과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땅은 하나님 나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돈 벌어서 내 배만 채우려고 그러지 말고
그걸 자꾸 채우면
꿀도 싫어지는 어리석음에 넘어가게 되니까
바보같이 그러지 말고
늘 꿀이 맛있을 정도 만큼만
내 삶은 절제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쓴 것을 단 것처럼 먹는 사람에게
꿀도 먹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산다면
그게 정말 잘 사는 삶이 아니겠나...
제가 날기새에서 자주 얘기해서
반복하는 예화 중에 하나가 이거예요.
우리 큰아이가 고 3때
공부를 조금 게을리하는 것 같았어요.
저희집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소리를 잘 안 하는 집안이거든요.
우리 부모님 때부터
그런데 딱 한 번, 꼭 큰아이에게 공부하라는 얘기를 해 봤어요.
'공부 좀 해야 되지 않겠냐?
공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겠냐?'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고, 이렇게 얘기했어요.
'소위 성공한 사람 중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하나는 5천 명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
또 하나는 5천 명을 먹이는 사람!
사람들은 5천 명 분을
혼자 먹는 사람을 잘 산다.. 말하지만
성경은 그를 잘 산다 하지 않고
그냥 부자라고 그래.
그는 부자이지, 잘 사는 사람은 아니야.
잘 사는 사람은
5천 명 분을 먹이는 사람이야!
'공부에서 남 주냐' 그러는데
그건 기독교적인 말이 아니야
공부는 남 주려고 하는 거야
공부해서 남 줘라!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돼라!'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게 우리 아이한테 큰 감동을 준 것 같았습니다.
그날 자기 책상 바람벽에 *바람벽 : 집중을 위해 책상 양 옆을 두꺼운 종이로 가림
딱 써 붙이더라고요.
'공부해서 남 주자!'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하나 더 썼더라고요.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지금 결국은 교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자기를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고
그걸 넘어서면은요.
배부름이 싫어진다고요.
배부름이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고요.
당뇨병도 생기고, 관절염도 생기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모든 질환, 절제하지 못함에서 병이 생기는데
그런 게 생기는데
여러분 꿀이 싫어진다.. 그게 얼마나
대표적인 어리석음이겠습니까.
항상 꿀이 달게 느껴지도록
그 정도의 삶을 욕심내고 살고
쓴 것을 단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꿀을 먹게 할 수 있는 삶을 산다고 하면
5천 명분을 혼자 먹으려고 그러다가
꿀이 싫어져서 꿀 맛도 모르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이 꿀을 맛보고 행복하게 사는
그런 삶, 그게 기독교적인 삶인데
그런 삶을 연습하고 흉내 내면서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식구들 되면 좋겠습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잠27:7
오늘 말씀에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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