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윌리엄 틴데일 (William Tyndale, 1495-1536) (영국)

by 【고동엽】 2021. 11. 13.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1495년경 웨일스(Welsh) 국경 마을 슬림브릿지(Slymbridge)에서 태어났다. 그는 맥댈런 대학(Magdalen College),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고 152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헬라어에 능통했으므로 성경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체험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있기를 바랬다. 당시에는 4세기에 제롬(Jerome)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성직자들과 라틴어를 구사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은 성직자와 귀족들만의 책이었다. 그는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성경의 근본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방법은 영국에서의 대중적인 언어인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한 고위 성직자가 "성경을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교황뿐이오. 교황의 법 없이 사는 것 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법 없이 사는 것이 훨씬 더 낫소"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틴데일은 "만일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주신다면 수 년 안에 쟁기를 끄는 소년이 당신보다 더 많이 성경을 알수 있게 할 것이오"라고 응수하였다.


틴데일은 '뭄무스'라는 부유한 상인이 제공한 집에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헨리8세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였고. 고위 성직자들은 성경번역을 반대했고, '뭄무스'에게도 틴데일을 돕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상황이 악화되자 틴데일은 영국을 떠나 독일의 함부르크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영국 카톨릭의 주교들과 성직자들은 첩자들을 고용하여 성경번역과 출판을 계속 방해하였다. 틴데일은 거기에서 신약번역을 착수하여 1525년 콜론(Cologn)에서 인쇄하여 4절판(quarto edition)으로 출판하였다.이것은 최초의 영문판 신약 인쇄본이었다.


그러나 어느 인쇄공이 성경인쇄 사실을 밀고하여 신변에 위협을 느낀 틴데일은 '보름스'라는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신약을 8절판(octavo edition)으로 출판하여 3천 부를 비밀리에 영국으로 반입하였다. 반입은 위클리프의 일파인 롤라드파(Lollards)에 의해 이루어졌다. 통 속에 넣어 다른 상품처럼 위장하고, 밀가루 속에 숨기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영국으로 반입한 것이다. 반입된 성경들은 발각되는 즉시 불에 태워졌다. 그렇지만 더 많은 성경이 계속 반입되었고 이제는 관리들도 그것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워햄(Warham) 대감독은 독일에 있는 상인을 통해 인쇄된 모든 성경을 사들여 불태워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번역성경이 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패킹턴'이라는 포목상이 있었는데 그는 틴데일의 번역작업에 동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번역성서의 출판과 배부를 위하여 많은 돈이 소요됨을 알고 있었다. 패킹턴은 한가지 꾀를 내었다. 그는 대감독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이 위장하여 성경을 사들이겠다고 하면서 틴데일이 독일에서 비싼 값에 팔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대감독은 페킹턴의 요청에 "최선을 다해 전부다 매수하도록 하시오. 그 일에 얼마가 들던지 지불할 용의가 있소. 나는 그것들을 전부 불태워버릴 것이오."라고 반겼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틴데일에게 값을 풍족히 치루고 성경을 매입하여 영국으로 가져왔다. 물론 틴데일은 성경을 판매한 풍부한 자금으로 성경 재판작업을 더욱 원활히 해나갈 수 있었다. 어리석은 주교는 성경을 모두 태워버렸을 때 영어 성경이 절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성경이 인쇄되고 반입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나 관리들이 더 이상 반입을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때 인쇄된 것은 모두 18,000부였으며 그중 2부가 현존하고 있다. 1534년 그는 신약성경 개정번역판을 냈으며, 구약성경의 번역에 착수했다. 1536년에 모세오경과 요나서가 출판되었으며, 여호수아와 역대하가 번역되었을 때, 그가 호의적이고 진실하다고 믿고 있었던, 실제로는 주교가 보낸 첩자였던 '필립스'라는 자가 또 한번 밀고하였다. 산책을 하며 밤공기의 서늘함에 잠시 마음을 놓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군대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틴데일을 결박하여 이송한 후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틴데일은 투옥된지 2년째가 되던 1536년 10월 6일 재판도 없이 이단으로 몰리어 화형장에 끌려 나왔다. 화형대에서 남긴 틴데일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였다.


틴데일은 튜더(Tudors, 헨리7세-1603)가문 출신인 헨리 8세(1491-1547, 1509년에 즉위)에 의해 화형을 당하였지만 그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통치 말기에 영국의 의회가 성경번역을 논의하였고 엘리자베스 1세 이후 튜더(Tudors)가문이 문을 닫고, 스튜어트(Stuarts,1603-1714)가문의 초대 왕인 제임스1세가 틴데일이 화형을 당한지 75년만인 1611년에 틴데일의 영어번역 성경을 기초로 일명 '킹 제임스 성경'(흠정역, King James Version)을 발행하였다. 틴데일이 화형대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는 75년이 지난 후 응답되었다. 영국 왕의 눈이 떠진 것이다. KJV성경의 80퍼센트는 틴데일의 문체로 알려지고 있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1495년경 웨일스(Welsh) 국경 마을 슬림브릿지(Slymbridge)에서 태어났다. 그는 맥댈런 대학(Magdalen College),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고 152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헬라어에 능통했으므로 성경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체험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있기를 바랬다. 당시에는 4세기에 제롬(Jerome)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성직자들과 라틴어를 구사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은 성직자와 귀족들만의 책이었다. 그는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성경의 근본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방법은 영국에서의 대중적인 언어인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한 고위 성직자가 "성경을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교황뿐이오. 교황의 법 없이 사는 것 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법 없이 사는 것이 훨씬 더 낫소"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틴데일은 "만일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주신다면 수 년 안에 쟁기를 끄는 소년이 당신보다 더 많이 성경을 알수 있게 할 것이오"라고 응수하였다.


틴데일은 '뭄무스'라는 부유한 상인이 제공한 집에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헨리8세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였고. 고위 성직자들은 성경번역을 반대했고, '뭄무스'에게도 틴데일을 돕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상황이 악화되자 틴데일은 영국을 떠나 독일의 함부르크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영국 카톨릭의 주교들과 성직자들은 첩자들을 고용하여 성경번역과 출판을 계속 방해하였다. 틴데일은 거기에서 신약번역을 착수하여 1525년 콜론(Cologn)에서 인쇄하여 4절판(quarto edition)으로 출판하였다.이것은 최초의 영문판 신약 인쇄본이었다.


그러나 어느 인쇄공이 성경인쇄 사실을 밀고하여 신변에 위협을 느낀 틴데일은 '보름스'라는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신약을 8절판(octavo edition)으로 출판하여 3천 부를 비밀리에 영국으로 반입하였다. 반입은 위클리프의 일파인 롤라드파(Lollards)에 의해 이루어졌다. 통 속에 넣어 다른 상품처럼 위장하고, 밀가루 속에 숨기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영국으로 반입한 것이다. 반입된 성경들은 발각되는 즉시 불에 태워졌다. 그렇지만 더 많은 성경이 계속 반입되었고 이제는 관리들도 그것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워햄(Warham) 대감독은 독일에 있는 상인을 통해 인쇄된 모든 성경을 사들여 불태워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번역성경이 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패킹턴'이라는 포목상이 있었는데 그는 틴데일의 번역작업에 동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번역성서의 출판과 배부를 위하여 많은 돈이 소요됨을 알고 있었다. 패킹턴은 한가지 꾀를 내었다. 그는 대감독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이 위장하여 성경을 사들이겠다고 하면서 틴데일이 독일에서 비싼 값에 팔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대감독은 페킹턴의 요청에 "최선을 다해 전부다 매수하도록 하시오. 그 일에 얼마가 들던지 지불할 용의가 있소. 나는 그것들을 전부 불태워버릴 것이오."라고 반겼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틴데일에게 값을 풍족히 치루고 성경을 매입하여 영국으로 가져왔다. 물론 틴데일은 성경을 판매한 풍부한 자금으로 성경 재판작업을 더욱 원활히 해나갈 수 있었다. 어리석은 주교는 성경을 모두 태워버렸을 때 영어 성경이 절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성경이 인쇄되고 반입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나 관리들이 더 이상 반입을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때 인쇄된 것은 모두 18,000부였으며 그중 2부가 현존하고 있다. 1534년 그는 신약성경 개정번역판을 냈으며, 구약성경의 번역에 착수했다. 1536년에 모세오경과 요나서가 출판되었으며, 여호수아와 역대하가 번역되었을 때, 그가 호의적이고 진실하다고 믿고 있었던, 실제로는 주교가 보낸 첩자였던 '필립스'라는 자가 또 한번 밀고하였다. 산책을 하며 밤공기의 서늘함에 잠시 마음을 놓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군대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틴데일을 결박하여 이송한 후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틴데일은 투옥된지 2년째가 되던 1536년 10월 6일 재판도 없이 이단으로 몰리어 화형장에 끌려 나왔다. 화형대에서 남긴 틴데일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였다.


틴데일은 튜더(Tudors, 헨리7세-1603)가문 출신인 헨리 8세(1491-1547, 1509년에 즉위)에 의해 화형을 당하였지만 그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통치 말기에 영국의 의회가 성경번역을 논의하였고 엘리자베스 1세 이후 튜더(Tudors)가문이 문을 닫고, 스튜어트(Stuarts,1603-1714)가문의 초대 왕인 제임스1세가 틴데일이 화형을 당한지 75년만인 1611년에 틴데일의 영어번역 성경을 기초로 일명 '킹 제임스 성경'(흠정역, King James Version)을 발행하였다. 틴데일이 화형대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는 75년이 지난 후 응답되었다. 영국 왕의 눈이 떠진 것이다. KJV성경의 80퍼센트는 틴데일의 문체로 알려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