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민족을 위한 기도
출 32:7-14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
노하시나이까 ....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3∙1절이 1919년에 일어났으니까 벌써 90주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3∙1절 세대는 거의 사망하고 3∙1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선조들이 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른들에 비해서 행복한 세대들입니다. 현재 8-90세가 된 세대들은 참 기구한 시대를 살아오신 세대들입니다. 우선 그분들은 일제의 압제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냥 압제가 아니고 주권도 말도 나라도 이름도 뺏기고 살았으니 그 고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식민지 역사에서도 그런 압제의 사례가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고민이 많은 삶을 살으셨습니다. 그렇게 인내하며 살아오시다가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가 싶었는데 다시 6∙25의 난리를 겪었습니다. 6∙25의 전쟁도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승자도 패자도 다 손해 보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찾아온 것은 극심한 가난이었습니다. 그때의 가난이 제 어린 시대까지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때 이후 얼마나 배고픈 기간을 보내야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부모님세대들은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평화도 안정도 주어지고 이제는 먹고 살만큼 되니까 돌아가셨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참 행복한 세대입니다. 너무 행복해서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늘 젊은 세대들은 이 나라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오늘 현재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만 생각하고 불평을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 청소년 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중∙일 3국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비교 연구한 통계를 보니까 우리 청소년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3국 청소년 2천명에게 물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나라에 태어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한 우리나라 청소년은 59.9%, 중국 49,4%, 일본 38,8%로 우리나라가 단연 우세였습니다. “국가에 대한 만족도”는 한 66.9%, 중 88.9%, 일 87.6%였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한 70.1%, 중 95,7%, 일 76,0%였습니다. 이 통계는 현재 우리 청소년들의 국가관이 너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가 희박하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국민은 국가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알고 보면 참 좋은 나라입니다.
700여회 외침 받은 나라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외침을 700여회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오늘까지 건재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민족은 참 불가사의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어느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고 침략한 일이 없는 민족입니다. 오히려 얻어맞기만 한 민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점이 우리민족의 약점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우리민족의 강점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오래된 민족은 모두 지배를 받은 민족이고 침략을 받은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지난 주간에 하노이를 잠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 천 년간 지배를 받았고 프랑스로부터 100년간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잠간 지배를 받았고 미국과 19년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까지 건재하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도 비슷합니다. 지배하고 칼을 사용하고 독재하였던 나라들이나 권세자들은 모두 도중에 부러졌거나 칼로 망하였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칭기즈 칸, 나폴레옹, 히틀러, 이등박문, 무소리니, 로마, 바벨론 등 모두 영원할 것 같았지만 오늘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얻어맞은 우리민족은 오늘까지 건재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강자는 소멸하고 약자는 영원한 것이 하나님이 뜻이고 섭리입니다. 넓은 평원을 보십시오. 그곳은 맹수들 천하입니다. 초식동물들을 마구 잡아먹습니다. 초식동물들은 맹수들로부터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먹을 때에도 눈치를 보며 맘 졸이며 먹습니다. 그러다 한눈팔면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힙니다. 얼마 가지 못해 초식동물들은 다 잡아 먹힐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초원의 주인은 초식동물들입니다. 잡아 먹혀도 여전히 늘어나는 것은 초식동물들입니다. 그런데 맹수들은 자꾸만 도태되고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우주의 질서입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우물을 팝니다. 이웃 부족들이 와서 우물을 뺏으면 말없이 줍니다. 아주 바보같이 그냥 주고 떠납니다. 이사 가서 우물을 또 팝니다. 파면 또 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삭은 그런 이치를 아니까 싸우지 않고 달라면 그냥 주고 떠나 또 우물을 팠습니다. 우리들이 겉으로 보면 이삭이 우매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이삭이 강자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 망했어도 이삭은 영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바보같이 살아야 합니다. 약고 강하게 살면 안 됩니다. 강하면 부러집니다. 강자는 당장은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곧 사라집니다. 곧 부러집니다. 반드시 꺾입니다. 이와 혀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와 혀가 싸우면 상대가 되지 않지만 좀 멀리 보면 어느 이빨도 혀를 이기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틀니를 해 박은 사람은 있어도 지금까지 틀 혀를 해 박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민족은 그렇게 유약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강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 나라
그럼에도 우리민족은 오늘까지 유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재수도 아닙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일본이 강압으로 우리민족과 이 땅을 정복해서 합병하려고 이름도 말도 성도 다 뺏었습니다. 아주 화학적으로 하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함석헌이 “일본이 힘이 있어 우리의 주권을 뺏고 이름도 뺏고 나라도 뺏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뺏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힘이 있어 우리를 오랫동안 지배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해방이 도적같이 왔다, 그래서 오늘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6∙25 승리나 8∙15해방은 우리들이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때 우리민족이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애굽에서 압제받던 이스라엘 민족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출애굽을 시키셨듯이 우리민족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해방도 6∙25의 승리도 주셨습니다. 6∙25가 발발하고 종전되는 과정에 있었던 국제적인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직간접적으로 역사하셨는지를 보고 모두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남궁억은 당시 독립운동을 일본이 너무 강하니까 힘으로 못하고 글을 통해서 했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독려했습니다. 여기 “일하러 가자”는 말은 “독립 운동하러 가자”는 말입니다.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이었던 어느 장로는 조선의 여인들은 수를 놓을 때 “무궁화”를 수놓으라고 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방금 떠오르던 태양이 지금 교회 종탑위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시를 썼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희망과 소망과 기댈 곳은 오직 교회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단재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있었는데 일본으로부터 사임압박을 받다가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로 가서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대야에 물을 떠 놓고 뻣뻣이 서서 세수를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광수가 무슨 세수를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나는 조선이 독립하는 날까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세수를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와 우리민족이 약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강합니다. 이런 강한 정신과 의지와 호소 때문에 하나님이 이 민족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오늘 사람들이 좀 불만족하고 부족하다고 다시 태어나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고마운 이 나라를 위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수고자 헌신자가 많은 나라
종교철학자 르낭은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으로 구성된 거대한 조직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지난날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평화가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국립묘지에 가 보십시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나라에 평화가 주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워싱턴에 가시거든 웰링턴 국립묘지를 꼭 한번 가 보시기 바랍니다. 묘지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 편 섹션으로 가보면 그곳에 3,193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전사자들의 묘역이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 이 나라에 와서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합니까. 유관순이 14세살 때 이화학당 고등과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15살이던 1919년에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다녔습니다. 천안 ,연기, 진천을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독려하다가 체포되어 재판받는 도중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본인 검사에게 의자를 집어 던져서 괘씸죄까지 보태져서 7년형을 받았고 마침내 옥사해서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벌였던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고 강경초등학교 여교사였고 강경성결교회 여집사였던 김복희였습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펼치다가 아이들은 모두 퇴학당하고 김복희교사는 면직 당했습니다. 한 나라나 국가는 이런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지탱되고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잘 팔리는 책이 “한국은 망해가고 있다”라는 책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지금 망해가고 있는 징조를 몇 가지 제시를 했는데 그중 하나는 과소비입니다. 미국 LA에 가면 베버리 힐스라는 고급동네 앞에 로데오 거리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비싼 옷과 보석류를 팔고 있는데 그곳의 단골은 한국인들이라고 합니다. 그곳으로 원정가서 물건을 사더니 이제는 서울에 로데오 거리를 똑같이 만들어 놓고 고급물건을 파는데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꼬집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저축은 안하고 차부터 구입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기업인들은 노사분규로 기업 문을 닫고 은행에 돈을 넣어놓고 편히 살려고 한다고 했고 한국은 고임금의 나라라서 기업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국제경갱력을 상실해서 이제 곧 한국은 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와 같은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 조정에서는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웠습니다. 나라를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 먹은 것입니다. 6∙25 전쟁도 해방 후 이 나라가 안주하면서 공산주의의 조짐을 알고도 대비를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절단 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미리 연구하지 않으면 국가도 기업도 교회도 개인도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방력은 무기나 병력수가 아니다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지키는 일은 국방력이나 병력 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67년 6월 5일 중동전이 발발했습니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가 연합군을 형성해서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인구 2억 명이 인구 500만인 이스라엘을 침공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곧 망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개전 2시간 만에 연합군의 주력부대가 마비되었고 48시간 만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를 정복하고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6일 만에 끝내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전에 비해서 두 배나 늘렸습니다. 이런 결과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때 종군기자가 전투에 참여한 이스라엘 여군에게 “전쟁하기에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죽는 것 보다는 낫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벙커에서 전쟁을 진두지휘한 것 이 아니고 방송국에 앉아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을 향하여 시편 27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일어나 나를 치려하여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라”는 말씀을 낭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그 나라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전쟁은 무기나 병사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 책임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사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중보 기도하는 일 즉 나라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력 있는 기도는 중보의 기도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가장 빛나는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 산에 올라가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이 백성들에게 신물이 났다, 이제 내가 이 백성을 멸하리라, 그리고 네 자손으로 다시 나라를 세우리라(10).” 이 말씀은 모세 개인에게는 영광의 말씀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 백성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심판받아 마땅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것은 자신에게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눈물로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찌하여 이 백성을 여기까지 끌고 나와서 죽이려 하십니까, 이 백성이 언제는 의롭고 선했습니까, 여기서 이 백성을 죽이시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어떻게 되며 애굽 사람들은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이 백성을 용서치 않으시고 여기서 죽이신다면 나도 이 백성들과 함께 죽겠습니다(11-13).”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나만 잘 살고 잘 먹겠다고 골몰하는 것은 직무유기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를 살면서 나라를 걱정해야 합니다. 내 나라가 건강해야 내 삶과 내 가정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5-60년이 지나면 다 소멸하고 사라질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영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우리 자손들과 우리민족이 영원히 살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지금까지 700여회의 외침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일제로부터 하마터면 합병될 번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6∙25때 하마터면 이 나라가 공산화 될 번하였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민족은 경제성장을 이룬 매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민족에게 이제 할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들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 우리민족이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잘 사는 것만 목적은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사명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어야 한다. 모세와 같은 중보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나라와 내 민족 살려주소서.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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