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 경건한 젊은 목회자 1. 인적 사항 ① 디모데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라는 뜻. ② 모친은 유대인 유니게, 부친은 헬라인, 외조모는 로이스(행 16:1;딤후 1:5). ③ 루스드라 출신(행 16:12). ④ 바울의 제자이며 동역자(행 16:3;살전 3:2). ⑤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음(딤후 3:15). ⑥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딤전 1:3). 2. 시대적 배경 A.D.1세기 후반 경에 주로 활동, 이 시기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초대 교회 성도들의 전도 활동으로 인하여 로마 제국 전역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곳곳마다 교회가 설립되던 초대 교회의 확장기였다. 그러나 대내적으로 초대 교회는 유대인 및 이방인 출신 성도가 함께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게 되었으나 미처 조직이나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된 과도기에 즈음하여 구약과 신약과의 관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등에 관한 신학적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혼란을 겪기도 하던 때였다. 더욱이 대외적으로 로마 제국의 핍박과 교회에 대한 이단의 공격도 교회의 혼란을 야기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격변기에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동역 자로, 또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고향 루스드라에서 좋은 평판을 들은 것으로 보아 유순하고 인정 많은 자(행 16:2). ② 바울로부터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칭찬 받은 것으로 보아 책임감 있고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고전 4:17;딤전 1:2). ③ 바울이 계속해서 격려 편지를 보낸 점으로 보아 정서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을 소유한 자(딤전 1;2;딤후 1:2). ④ 바울이 병을 위하여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한 것으로 보아 병약했으며,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한자(딤전 5:23). 5. 구속사적 지위 ① 초대 교회의 격변기에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서 교회 조직과 제도 정비 및 성도들의 바른 신앙 생활 교육에 힘쓴 자. ② 순교하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 일생을 바친 자. 6. 평가 및 교훈 ① 디모데의 경건한 신앙은 어려서부터 외조모와 모친의 철저한 신앙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딤후 1:5). 이는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이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 주며, 세속 학문을 익히기 위한 학교 교육에 치중하여 신앙 교육을 소홀히 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 가정에 훌륭한 귀감이 된다. ② 디모데가 자신의 내성적 성격과 병약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복음 사역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동역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그리고 기도 때문이었다(고전 4:17;딤전 5:2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인간의 연약함을 들어 오히려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사실(고전 1:27)과 복음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기도해 주며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동역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요삼 1:8). ③ 바울은 디모데를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칭할 정도로 그를 믿음으로 양육하였으며(고전 4:17;딤전 1:2) 또 자신의 후임으로 에베소 교회를 돌보도록 하고(딤전 1:3) 격려 편지를 보내는 등 디모데의 목회를 위해 힘써 협력하였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 자신만을 돌아보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양육한 것처럼 후세대를 힘써 양육하고 애정으로 협력해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7. 핵심 성구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1:2)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은 약 3년이 걸렸으며 때는 주후 50-51년경입니다. 2차 선교여행의 기록은 행15:36-18:23까지의 기록입니다. 행15:40절 이하에 보면 안디옥교회에서 다시 선교사로 파송한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 먼저 간 곳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입니다. 바나바는 해로로 자기 고향 구르보 섬을 찾았고, 바울은 해안을 따라 육로로 자기 고향 길리기아 다소 성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더베와 루스드라'에 온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5년 만에 들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곳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사도바울이 생각하기도 싫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박해를 받았습니까?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실신까지 한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곳에 다시 갔습니다. 왜 갔습니까?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씨가 '어떻게 되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복음을 피로써, 희생으로써, 눈물로써 심은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그곳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갔더니 디모데라고 하는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뼈저린 박해의 곳이지만 그곳에 가보니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라는 말은 바울의 제자도 되지만 그 이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크리스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5년밖에 믿지 않았지만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제자였습니다. 물론 그는 어려서도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성경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뜻인데 그는 참으로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고 후계자가 될 만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좋은 인물을 키우고 후계자들을 키워 가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물을 얻는 것은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교회는 바로 제자를 키우는 곳입니다. 교회는 많은 성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붙잡혀 쓰임 받는 일꾼은 더 귀합니다. /믿/ 우리 모두가 그런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입니다. /할/ ⑴디모데는 혼혈아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의 모친은 유대여자요, 그의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대 풍속으로 보면 유대인 남자가 이방 여자와 결혼하든, 유대인 여자가 이방 남자와 결혼하든 간에 그것은 율법이 금지하는 결혼이기에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많은 이방인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혼혈아로 자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가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자가 이방 사람이면 유대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자식 교육은 어머니의 영향력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음의 신실한 유대 여인으로서 그 이름은 '유니게'였습니다. 딤후1:5절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니까 그의 할머니도 신앙이 좋았고, 그의 어머니도 신앙이 좋았습니다. 신앙이 좋은 부모 밑에 신앙이 좋은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⑵디모데는 믿음의 뿌리가 깊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자였습니다. 딤후3: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믿음의 뿌리는 말씀 안에 내려져야 든든합니다. /믿/ 제1차 선교 여행 때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 들려 전도 집회를 열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예수를 구주로 믿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 중에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겠다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달려 나와서, 한창 집회에 열중하고 있는 바울 사도를 붙잡아 끌어내어 그냥 돌로 마구 쳤습니다. 그리곤 죽은 줄 알고 쓰레기통에 내어 버렸는데, 그 성에 예수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쓰러진 바울 주위에 둘러 서서 웁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눈을 뜬 바울이 입을 여는데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이와 같은 환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루스드라를 떠났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사람 중의 하나가 디모데입니다. 그 디모데가 그 때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러한 각오를 하고 믿어야 되는구나, 더구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이런 각오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하고 출발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외할머니로 시작하여 어머니를 거쳐 내려와 뿌리내린 신앙입니다. 뿌리를 죽 내려주는 믿음. 이런 믿음을 소유한 자는 마치 뿌리깊은 나무가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할지라도 능히 버티고 견뎌내어 꽃 피우고 열매 맺듯이 귀한 신앙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 성공합니다. /아멘!/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얕은 자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뿌리 얕은 나무가 가뭄에 병들고 시들어 말라죽듯이 뿌리가 없는 신앙은 쉽게 병들고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일꾼이 나오게 된 것은 루스드라에서 피를 뿌린 결과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 것처럼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뿌린 피의 열매가 디모데를 맺은 것입니다. ⑶디모데는 형제들에게, 이웃에게 칭찬을 들은 자였습니다. 2절에 봅시다!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신앙의 힘은 위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오지만 그의 행실은 사람들로 인하여 평가를 받습니다. 디모데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딤후1:5절 '이는 네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디모데가 어느 정도로 칭찬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 고향 '루스드라'라는 그 큰 도시에서는 말할 것 없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 도시인 '이고니온'에까지도 소문이 나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는데 형제들이란 육신의 친척 되는 형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믿음의 형제를 말합니다. 즉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어떤 교인을 칭찬합니까? 뒤에 와서 구경하는 구경꾼들은 10년을 나와도 칭찬할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은 구경꾼인지, 열심히 봉사하는 참 일꾼인지 더 잘 압니다. 구경만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안 합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이 칭찬을 받고, 칭찬하게 마련입니다. 교인들에게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그 만큼 봉사를 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봉사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은 이것저것 기가 막히게 많이 하는데 칭찬을 못 받습니다. 왜냐 하면 기껏 봉사하고 기세를 부리거나, 봉사 좀 했다고 도도하게 거만을 떠니 그 꼴을 누가 보아줍니까. 칭찬은 고사하고 오히려 욕을 먹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까? 충성스런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적은 일을 맡겨도 잘하고 큰일을 맡겨도 잘하고, 높은 자리에서도 잘하고, 낮은 자리에서도 잘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롬14: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할/ 사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하면 시기하고 잘못하면 비난을 일삼는 것이 민심입니다. 더욱이 젊은 사람이 남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함에도 디모데는 모든 사람들 앞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후에 믿음의 아들로 세웠습니다. 고전4:17절 "내가 주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바울이 디모데를 선교 파트너로 세웠습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21세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당시에 세계 선교사로 언어의 장벽을 넘은 자이기에 아주 합당한 자입니다. 헬라어에 능한 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기에 앞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왜 논란이 일어났는가? 바울 사도가 할례 의식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갈2:3절에 보면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그런데 여기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구원의 방편으로 준 것이 아니고 선교적인 차원에서 준 것입니다. 사실 디모데는 할례 받을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은 것은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두루마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갓을 쓰고 다니면서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나라 양반사회에서 복음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부친이 헬라인이고, 모친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전도하는데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먹지도 않고 상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디모데를 데리고 유대인들에게 전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유익을 위해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면 그 당시 할례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실 적에 네가 할례를 받으면 네 몸에 흔적이 남아 죽을 때 가지 지울 수 없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과 약속을 한 민족, 언약을 맺은 민족이다!' 항상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표징으로 준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런 몸의 흔적쯤 그것이 문제이겠느냐? 사실상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몸에 흔적만 가지고 마음은 전혀 할례와 상관없는 자세를 가지고 산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사도 바울 주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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