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복음’에 집중하십시오.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명령하십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십시오.
주님은 생명의 소식을 알릴 영적 영웅들을 찾으십니다.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입금하시면서 당부한 말이 있습니다. 그 1,440만원을 오늘 하루동안에 다 써야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쓰되 좋은 일에 써라는 것입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그냥 하루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은행에서 또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당신 계좌로 1,440만원이 입금됐으니 마음대로 쓰십시오. 어제 당신이 쓰지 않은 돈은 입금한 사람이 찾아갔습니다.” 그는 “에라 모르겠다”하며 마음대로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도 1,440만원이 입금되고 잘 사용하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매일 1,44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그는 즐겁게 쓰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생겼습니다. “이러다 1,440만원이 입금돼지 않으면 어떡하나”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440만원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1,440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자유롭게 쓰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란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루 1,440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맡겨진 시간을 보람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시간을 구원해야 합니다. 쓸데없이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천하를 얻고 난 후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영혼의 귀중함을 아시고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지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동역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 훈련시켜 제자로 세워 파송하십니다. 죽음과 어둠과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예수님의 전도 전략
인간을 위해 지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사 하늘로 승천하셔서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도록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를 시킨 후 탁월한 전략과 전술을 짜서 보내십니다. 5,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께서 죽어 가는 영혼들을 바라보시고 “너희는 세상으로 나가라. 그리고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명령’이라는 단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파라겔레인’이라는 이 단어는 네 가지 경우에 사용됐습니다. 첫째는 지휘관이 자신의 전술과 전략을 설명하고 지킬 것을 명령할 때 사용하던 군사 용어입니다. 주님께서 마치 제자들을 지휘관처럼 지휘하시고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둘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때 친구에게 그 내용을 부탁하고 지시하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로 부르셔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랍비들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잘 따르도록 지시할 때 사용했습니다. 주님께서 선생으로서 제자들이 자신의 계명을 잘 지키도록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사용하는 법적 용어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명령을 전달하려고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위탁하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권대사로 파송받아 세상으로 나가는데 주님께서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길로도 가지 마라”고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좋은 사람만 부르신 것이 아니고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부르셨습니다. 언젠가는 사마리아 여인도 만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북쪽 시리아로도 가지 말고 동쪽 데가볼리 지방으로도 가지 말며 남쪽 사마리아 지방으로도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왜 주님은 열두 제자들이 처음 나가는 전도 여행을 갈릴리, 유대 지방으로 제한하셨을까요? 세 가지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 이뤄진다고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유대 땅에 보냈습니다. 유대인들이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갈망하며 예루살렘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직도 이방인을 전도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이방인 전도를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실을 간파하시고 같은 경험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탁월한 사령관은 자신의 공격 목표를 제한할 줄 압니다. 목표물을 향해 총력을 기울여 공격해 정복하는 전략을 세웁니다. 만일 힘을 분산한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은 수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유대, 갈릴리 지방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가정에서 시작
갈릴리는 제자들의 출신지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갈릴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복음의 출발점은 세계, 이웃 전도가 아니라 가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사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버리고 ‘세계 복음화’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가족과 동족과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신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 민족을 넘어서 세계로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버려진 땅에 있는 영혼조차 혈육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가족에게 전도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진리를 가르치려 해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 가족을 포기하는 사람은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가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가족 전도 방법
하용조 목사님께서 제안한 가족 전도 방법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 전도입니다. 아무리 잘난 형도 못난 동생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굳어지고 딱딱한 마음을 녹여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전도할 때는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희생 전도입니다. 제가 광명부천 공동체를 맡았을 때 어떤 순장님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그분은 네 형제 중에 장남입니다. 가족을 시골에 두고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 혼자 믿음 생활을 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쌍심지를 켜고 쳐다보더랍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동생들의 눈빛에 당황했습니다. “형은 어렸을 때부터 대접을 잘 받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그동안 들여다보지도 않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까 왔다”는 식이었습니다.
순장님은 고민하다가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모아 놓고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음이 어려운 것을 잘 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살아 있는 형제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남겨 두신 재산이 조금 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나는 직장이 있어 어느 정도 안정됐으니 재산을 삼등분해 너희들에게 나눠주겠다. 그리고 장례를 잘 치러보자”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쌍심지를 켜고 있던 형제들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마음이 녹았답니다. 동네 목사님을 불러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어머니께서 교회에 출석하시고 형제들이 구원의 문을 통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남이 유산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했을 때 가족의 영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말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섬김과 희생은 감동을 줍니다. 가족은 미워하면서도 사랑의 대상입니다. 가족이 원하는 것은 사랑의 확인입니다. 그래서 가족을 전도할 때 사랑을 나타내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셋째, 지속 전도입니다. 가족에게 전도하면서 한번 실패했다고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중단 없이 하는 것입니다. 칠전팔기의 정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가족 전도입니다. 제가 교회 일로 남한산성에 있었을 때입니다. 어느 순장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매형이 암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실 때가 됐는데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저는 “2시까지 가도록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지만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급하게 가신 후 두시쯤 제가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세례를 잘 받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순장님이 “그럼요, 지금은 의식이 없지만 세례를 받을 때는 말똥말똥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구요, 손도 흔들었습니다.” 얘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왜 내가 왔을 때는…. 내가 좀 부족한가 보다’. 그렇지만 저는 두 가지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하나, 구원의 때는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인간이 정할 수 없듯이 구원의 시간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을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는 것입니다.
둘,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시지 않은 생명은 내가 포기하지 않은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천국 열쇠로 닫힌 마음을 열고 생명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전도자와 동행하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전략과 전술이 뛰어나더라도 활로 총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강력한 무기를 주셨습니다. 생명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신 무기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7~9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들은 단순히 입으로만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하늘나라를 주시는 메시아’인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증거할 수 있도록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을 깨끗이 낫게 하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만능키를 주셨습니다. 누가 귀신들린 사람을 데려오면 기도합니다. 손을 얹고 “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떠나갈지어다”할 때 떠날 것을 믿습니다. 각종 병든 사람, 문둥병자들이 찾아오면 기도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믿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해도 낫지 않으면 의사에게 데려 가십시오. 기도해서 병이 나아도 의사에게 데려 가서 완치 여부를 확인하십시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질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위암이 발생했을 경우, 위암으로 발전하기까지 다른 부위들도 함께 병들어 온 것입니다. 육체만 병든 게 아니라 정신, 영혼이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비록 눈에 보이는 질병은 치료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을 위로하고 영혼을 따뜻하게 치료합니다. 약을 바르고 또 바르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마다, 믿음을 표현할 때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혼을 치료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의 일 곧 나의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역사할 것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전도 대상자를 좋게 대접하여 겨우 교회에 데려와도 좋은 소리 못듣고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대가로 우리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복음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거저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랑으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애를 돈으로 계산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10억 원만 있으면, 100억 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100억 원이 생기면 보고들은 것을 누리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하는 식입니다. 결코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닙니다. 질기고 질긴 것이 생명입니다.
욥이 병들었습니다. 몸이 가려워 기왓장으로 몸을 긁었습니다. 뼈가 불거져 나올 정도로 긁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고 안믿고 상관없이 죽지 않습니다. 단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질 뿐입니다.
일전에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때문입니다. 호화 여객선이 바다에 침몰하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안간힘을 쓰며 이웃을 돕는 영웅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주하는 악단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악단의 단장은 ‘웰리스 하틀리’입니다. 그는 실존 인물로 타이타닉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하기 위해 동승합니다. 타이타닉호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 승선한 사람들, 그러나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하틀리는 밴드 팀원들을 안정시키고 침착하게 음악을 연주합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을 가까이 하십시오. 예수는 소망입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그는 찬양을 연주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그는 목소리 높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쳤습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분이 소망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의 복음을 전할 진정한 영적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들은 주님의 제자들처럼 부족합니다.
어부이기도 하고 세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가르치시고 세우셔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진정한 영적 영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장 귀한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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