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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은혜를 기억하면 홍해도 건널 수 있다 시114:1~8

by 【고동엽】 2019. 12. 15.

은혜를 기억하면 홍해도 건널 수 있다     시114:1~8          

 

▲1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묶여 있다가 풀려났는데요,

이것을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자유인이라고 살지만, 우리가 다 죄의 종노릇하고 살거든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은 여전히 죄의 종이구나’라고 하셨죠. 요8:33~34

오늘날 우리도, 종의 신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종노릇하며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묶여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풀려나려고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도 모르면, 거기에 그냥 안주하며 계속 살게 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그런데 혹시 성도들도 물질에 묶여서, 세상에 묶여서, 정욕에 묶여서.. 살 수도 있어요.

더 나아가, 자기가 거기에 묶이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초신자들도 있습니다.

묶이는 게 차라리 더 행복하게 보이는.. 그런 미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 풀려나야 할지 알아야 하며,

또한 과거에 어디서 풀려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이제껏 신앙생활 하시면서, 어디서부터 나오셨나요, 어떤 것에서 자유케 되셨나요?

앞으로 더욱 자유하게 되어야 될 분야는 어디인지요?

만약 이런 것이 없이, 그저 예수님을 내 인생 항해에 보호자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자기 신앙을 출발점부터 철저히 재고해 봐야 됩니다. 

 

▲2절.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여기서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뜻합니다. 성전의 성소란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위 2절처럼, 하나님이 그에게 동행, 임재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의 가정이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그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그의 영토'가 됩니다.

 

▲3~6절,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3~6절은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홍해도, 요단강도, 산도, 언덕도 막았던 길을 풀어주고 오히려 돕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사는 동네에는, 산들이 아름다운 삶의 휴양지와 쉼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사람은 그 바다가, 그 강이, 그 산이, 그 언덕이

오히려 장애가 되도록 하십니다.  *10가지 재앙에서 보듯이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애굽 군인들은 그 물로 죽음을 당했고,

더 이상 애굽 사람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차단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산과 동산에는, 여러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오히려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사랑하면.. 자연환경, 직장환경이 나를 도와주시고

내 주위의 환경이 내게 '여호와의 동산, 물댄 동산'처럼 됩니다.  창13:10 등

 

그러나 반대로, 오늘 내가 우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내 주위의 환경이 내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됩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바다가 나를 향해 덮치고, 요단 강물이 내 위로 넘치는 것입니다!

  

▲8절,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광야란 곳은, 가 보시면 알겠지만, 도저히 물이 솟아날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것도 2백만 명이 매일 마시려면, 컨테이너 수 십대 분의 물이 매일 공급되어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8절에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이 말씀을 신약적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내가 (기적적으로 먼저) 바뀌어야 .. 누군가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 환경이 바뀔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뀌어야 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단초가 생깁니다.

 

이 세상이 안 바뀐다면.. 교회가 바뀌지 않은 탓입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크리스천들이 바뀌지 않은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먼저 바뀌는 경험입니다.

도저히 바뀔 수 없는 나 자신이 바뀌는 경험을 해서, 내가 나를 보고 놀라야

그래야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죠.

 

나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너는 바뀌어라!’ .. 그게 무슨 전도가 되겠나요?

나도 잘 안 믿는 주님을 전해 봐야, 어느 누가 그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일까요?

 

우리 인생에, 참된 열매, 신앙의 열매,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런 변화가 내게서 일어나야, 또 다른 분야에 변화가

전기 감전 되듯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오직 목적 하나를

‘나 자신의 변화’로부터 먼저 출발하게 되기 바랍니다.

‘저 사람 변해라’고 기도하지 말고, ‘주님 나부터 좀 변화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게 되기 바랍니다.

 

‘내 육신이 죽게 해 주세요. 내 자존심, 내 자아가 산산조각 나게 해 주세요!’

이런 변화가 내게 있어야, 내가, 누군가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 많은 교회들이 변화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하나님이 교회를 (잠시라도) 문 닿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럴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우리가 다시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 변할 수 없는 제가 변하는 경험을, 제 자신이 하게 하옵소서’ (내 반석에서 먼저 물이 나와야 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제 삶 가운데 일어나게 하옵소서!’

‘내 힘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되어지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게 하옵소서!’

 

 

 

◑적용 / 은혜를 기억하면 홍해도 다시 건널 수 있다

 

세상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삶으로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출애굽의 10가지 재앙과 기적, 홍해가 갈라짐, 애굽 군대들의 수장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심..

 

또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나라들과 싸워 이기게 해 주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들..

우리는 성경을 보고 믿지만, 저들은 직접 그 기적들의 수혜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 그런가요? 여러분은 그런 일 안 당 하셨나요?

이스라엘만 그런 복을 받았을까요?

 

본문을 읽다가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스라엘은 그런 복을 받았는데...'

 

제가 문득 깨달았어요.

'비슷한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내 삶에도 동일하게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똑같이 역사하시고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김동호 목사) 는 625 전쟁 중에 피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지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태중에서 제가 장기가 다 발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태어난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게다가 남다른 재능이나 탁월함도 제게는 없고,

세상 말하는 빽도 없고

금수저를 잡아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나라 중에 하나였던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오늘에 이를 수 있었을까?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고,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이.. 돌이켜보니 내 삶 속에도 그대로 재연 되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길 수 없는 싸움..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졌구나, 이제는 끝이구나!' 할 만한 싸움에서

지지 않고, 죽지 않고, 패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마 폐암 극복

오늘 여기까지 승리하는 삶, 성공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이 누구의 힘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물맷돌을 잘 던졌기 때문일까요?

무슨 재능이 있어서였을까요?

저를 돕는 큰 물주가 있어서였을까요?

아니요, 저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보잘 것 없는 나를 사랑하시되,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게 까지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럼, 제게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나의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사히 홍해를 건너서, 기적 같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데요

하늘이 뚫리는 복을 받아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요

다시는 홍해를 건너는 일이 없을까요?

 

이제는 다 건넌 걸까요?

다시는 요단강 건널 일이 없을까요?

다시는 제 삶에 광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요?

 

안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만..

홍해..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 다시 홍해가 나타난다고 해도.. 제가 당황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얼마든지 나에게도 욥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누구와 만나서 같이 식사 하는데

그가 자기 아버님 얘기를 하시는데

이제 80세 정도 되셨는데, 폐암 4기로 중환자실에서 고생하시는 이야기를 잠시 나눴습니다.

 

오늘도 이 유튜브 사이트에 달린 댓글에 보니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말기암 환자가 올리신 댓글을 읽었어요.

 

몸이 아파서, 진통제도 듣지 않아서 자다가 깬다고...

그러면서도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그 내용을 읽었습니다.

 

더 이상의 항암 치료가 의미 없어 보여서

낫지 않고 회복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점점 부작용이 심해지니까

'이제는 포기하고 자연치료를 해야 되나?' 하는 그런 결정 앞에서

고민하는 댓글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요? 얼마나 아플까요? 얼마나 두려울까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 그런 생각을 하니 참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염려하는 것이,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두려움이 저에게도 문득 문득 닥치곤 합니다. (혹시 재발 우려)

 

▲저는 본문 시114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기자가 왜 이 시편을 썼을까? .. 를 생각해 봤어요.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 이 시편을 썼을까? 추측해 보았습니다.

 

혹시 시편 114편의 기자가

제가 지금 두려워하고, 또 함께 마음 아파하고 하는 그런 상황,

인생에 있어서 그런 무섭고, 두렵고, 아프고, 힘든 그런 상황에서

혹 본문 114편을 쓰지는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저라면 이런 시편을 쓸 것 같아요.

즉 지금 힘들 때, 과거에 하나님이 건져주신 출애굽기 사건을 기억하는 거예요.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고, 가나안 전투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이 전쟁에서 보호하시고.. 하는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때 참 기뻤지, 산들이 뛰었지, 산양들이 뛰었지..' 이런 표현들,

 

길길이 뛰고 좋아하고 환호성을 질렀던 그런 일들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오늘의 고난과 역경을 이길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이 시편을 쓰지 않았을까?'

 

현실이 너무 힘드니까 그것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서

과거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기적 같은 일들,

즉 홍해가 갈라지는 그런 역사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제 생각대로 그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 홍해도 건넜는데.. 요단강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

광야에서 아무 것도 먹고 살 게 없을 때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먹고 살았는데..

가나안 여리고 성,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는데..

그때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니 뚫고 나갈 수 있을 거야!'

라고 하는 담대한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 믿음의 용기를 얻기 위해서 이 시편을 쓰고

과거에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그 역사를 기억하고, 찬송하고, 찬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제가 해 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려움과, 아픔과,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어려울 때, 앞이 깜깜할 때,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약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거에 어려웠을 때,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 기억이 약이 되고, 그것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는 다시는 홍해를 안 건넜으면 좋겠어요.

암이 재발 안 됐으면 좋겠어요. 다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곱게 편안히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해요.

 

그러나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달리, 나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 본문 시114편에서 배웠어요.

 

나도 시114편의 기자처럼,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기적과 구원의 역사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기억함으로 힘을 얻어서, 그 고난을 뚫고 나가야지!

하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오늘도 힘드신 분 계시죠?

홍해가 가로막힌 것과 같은 암담한 상황에 있는 분 계시지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지금이 제일 힘든 것 같지만,

이정도의 힘들고 어렵고 막막했던 때를

과거에 우리는 몇 번씩 겪어서 오늘날 여기까지 이른 거예요.

 

그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어요.

그러므로 지금 현실이 힘들고 답답해도,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으면

이 홍해도 능히 건너갈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돌리는 날이

우리를 위하여 장차 예비되어 있는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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