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1)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 소식지 2011년 7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1)
기본 전제와 일반 은총에 대한 강조를 중심으로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가 다시 한 번 더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해서 (Cf.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서울: 킹덤북스, 2010].) 카이퍼에 대한 논의를 좀 더 하면 좋겠다는 김승욱 교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몇 차례에 걸쳐 간단한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이야기는 한국 기독교인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카이퍼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논의를 위한 기본적 전제를 먼저 밝히고,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한 번에 하나씩 논의를 해 볼까합니다. 먼저 카이퍼와 끌라스 스킬더(Klaas Schilder, 1890-1952) 같은 분들의 논쟁을 중심으로 카이퍼 등의 사상에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논의하려고 합니다. 이 분들의 생각을 다 검토한 후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소한 차이로 이 논쟁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이 논쟁을 중심으로 카이퍼를 보고 읽는다는 것은 카이퍼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카이퍼를 특정 교회의 목사와 신학자로만 여기며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카이퍼를 그냥 역사의 한 인물로만 보면서 논의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일단 카이퍼가 제시한 그리스도인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이 세상에서의 활동에 대한 카이퍼의 이야기를 가장 건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모습을 제시한 것의 하나로 보면서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이 때 우리들의 기본전제는 카이퍼가 얼마나 성경에 충실하게 생각하면서 논의하려고 했는가 하는 점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논쟁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카이퍼가 어떤 점에서는 틀렸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좀 지나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기본적 논의는 성경에 충실하려고 했던 그의 의도를 중심으로 그에게 접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건전한 그리스도인과 가장 건전한 교회의 모습을 카이퍼의 논의로부터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에 소개받은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lvinism)을 읽으면서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Eerdmans, 1931). 당시는 박영남 옮김, 『칼빈주의』 (서울: 세종문화사, 1971)라는 번역본이 있었다. 지금은 김기찬 목사의 더 좋은 번역으로 『칼빈주의 강연』(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6)이 나와 있습니다.) 가장 처음 받은 인상도 그가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얼마나 건전하게 소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부터는 카이퍼는 한국 교회에서는 더 이상 멀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람이 아니었고(사실 카이퍼가 활동하던 그 때 한국 교회는 막 시작되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때였지만)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잘 듣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 전체로 보면 심지어 건전한 교회들에서도 그의 건전한 제시는 한 구석에 있을 뿐이었고, 오히려 많은 분들이 불건전한 성령 운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 동안 이 세상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고 하면서 세상과 신앙을 완전히 구별해 내는 일종의 이원론적인 경향에로 몰려가고 있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 카이퍼는 우리들을 그야말로 건전한 신앙, 건전하고 성경적인 신앙 생활에로 초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반 은총(혹, 보편 은총, communis gratia)에 대한 카이퍼의 강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은총에 대한 카이퍼의 논의는 결국 특별 은총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의 여러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에 그를 비판하는 분들의 논의와는 달리) 궁극적으로 카이퍼는 특별 은총의 빛에서 일반 은총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일반 은총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집니다. 특별은총이 없이는 일반 은총도 없으며, 특별은총의 빛에서만 일반 은총 논의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빛에서 일반 은총을 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점은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을 구별하지 않거나, 은총을 아예 배제하게 되거나[그러면 결국 종국적으로는 인간과 물질만이 있게 됩니다], 아니면 특별 은총의 빛에서 일반 은총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카이퍼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적용받는 특별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에 감격하는 것만으로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면서 따라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당신님 자신께서 일하시는 것(일반 은총)과 같이 그의 영적 자녀된 (특별 은총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 열심히 일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 카이퍼가 제시하는 가장 건전한 가르침의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원론적 경향을 나타내 보이는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도 십자가 구속과 성령님의 특별 은총적 역사와 성경을 매우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이퍼와 그가 토대로 하고 있는 칼빈(John Calvin) 등은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교회 생활을 바르고 열심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건전한 신앙 형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은총에 대한 강조가 그리스도인들의 문화 활동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때 그리스도인들의 문화 활동의 원동력은 하나님 나라라는 특별은총에서 온다는 것을 잊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특별 은총에 근거해서 활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할 때 마다 이 점을 말할 수는 형편이니 때로는 그리스도인들도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말이 때때로 오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말은 다 의도와 그 맥락 전체를 따라서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언제나 쓸데없는 논쟁들이 나타나고 그 결과 분열이 나타나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카이퍼를 통해서 특별 은총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카이퍼가 “일반 은총의 영역”이라고 말한 문화적 영역에서도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건전한 그리그도인들과 같이 이제는 목사직이나 선교사의 일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거룩한 일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 카이퍼가 제시하는 건전한 기독교 신앙의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학문, 모든 기업, 모든 예술 활동이 모두 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추구될 수 있으며, 그 일에 힘쓰는 것이 거룩한 일이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강하게 말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목적과 성경에 충실하려고 하는 기준 중시와 성령님을 따라 가려고 하는 기독교적 삶의 양식인 영적 삶의 태도에 충실할 것이 요구됩니다. 이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사실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원칙만 남고 실제는 자신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만 남으며,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혀 기독교적인 하나님을 위한 학문, 하나님 나라를 위한 활동,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되고 맙니다.
이것은 카이퍼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을 위한 모든 학문을 연구하도록 하기 위해 1880년 10월 20일에 개교했던 참으로 성경적인 기독교 대학의 원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화란 암스테르담의 자유 대학교의 변천을 생각해 볼 때에도 잘 드러납니다. 처음에 진정한 기독교 학문을 하도록 하기 위해 세운 자유대학교에서 그런 정신을 가지고 가르친 교수들과 학생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고, 볼렌호번(D. H. Th. Vollenhoven, 1892-1977) 같은 철저한 기독교철학자가 그 학교에서 형성되고 나타났음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11년 자유대학교에 입학해서 헤르만 비방크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914년부터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서 1918년에 “유신론적 관점에서 본 수리 철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하고 1921년에 목사가 되어 목회 하다가 1926년에 그의 은사인 게싱크(W, Geesink) 교수 후임으로 자유대학교의 철학교수가 되어 1935년에 도여베르트 등과 같이 개혁주의 철학회를 창립하고 1936년부터 개혁된 철학(Philosophia Reformata)를 발간해 낸 가장 대표적이고 철저한 기독교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헤르만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라는 걸출한 법철학자의 활동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대학교의 미술사 교수였던 한스 로끄마커(Hans R. Rookmaaker, 1922-1977) 같은 분들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 과연 자유대학교의 모든 교수님들이 다 철저한 성경적 원리에 따라서 성령님께 의존하면서 각 학문 분과를 연구하며 학문 활동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리하시는 분들이 개중에 있고, 논문 방어식이라는 매우 공식적인(formal) 행사 때에 각 분과의 교무처장(dean)이 하도록 되어 있는 기도에 참으로 카이퍼적인 사상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06년 가을 학기에 자유대학교 신학부 초빙으로 방문교수로 자유대학교에서 연구할 때 박사 학위 심사 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던 신학부 박사 논문 방어식에서 당시 신학부 dean이었던 Abraham Van de Beek의 공식적 기도문이 얼마나 카이퍼적인지를 발견하고 신학 이외의 다른 분과에서도 같은 기도문이 사용되는 지 질문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학문이 사용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그 기도문은 카이페리안(Kuypertian)적인 기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기도로만 끝나면 그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카이퍼의 문화적 사역에 대한 강조가 우리에게 의미 있으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우리가 학문 분과 등 여러 문화 영역에서 힘써 일해야 하며, 그 때에 참으로 하나님과 성경과 성령님께 충실하려고 해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에서도 어떤 일을 그저 시작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님께 의존해서 우리의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카이퍼의 목소리를 의미 있게 듣는 것이 됩니다.
출처: 이승구 교수 블로그 http://blog.daum.net/wminb/13718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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