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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죽어서도 갖고 가는 교회의 직분인가?

by 【고동엽】 2008. 3. 20.
 

     죽어서도 갖고 가는 교회의 직분인가?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개념은 "그것으로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곧 그가 영구한 세계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바라보며 삽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이 우리를 유혹할지라도 거기에 개념치 않고 영구한 하늘의 도성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 기쁨이 있는 행복함!, 생각해 보셨습니까?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껴 보셨습니까? 그 세계가 기다려집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서는 가장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의아한 일을 겪습니다. 그것은 고인의 명정(銘旌)과 비석에 다음과 같이 쓰는 글귀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명정에는 '執事密陽朴氏之柩'(집사밀양박씨지구), 비석에는 ''執事密陽朴氏之墓'(집사밀양박씨지묘), 이렇게 고인의 명정에 교회의 직분을 명기해 넣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이 아닌 '聖徒密陽朴氏之柩'(성도밀양박씨지구(묘)) 라고 '성도'(聖徒)를 명기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이 없는 신자, 곧 교인들에게나 해당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떤 분은 죽어서도 교회의 직분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이 없었던 분이 성도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교회의 직분은 죽어서라도 갖고 가는 것일까요? 교회의 직분은 말씀 안에서 성장하면서 이런 또는 저런 일에 교회를 섬겨 봉사할 수 있는 자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성도를 교회가 그들의 능력에 적합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사를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교회의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직분을 주심에 따라서 교회의 직분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직분은 은사의 성격을 갖습니다.

 

  이 직분은 교회의 정치 체제에 따라서 그 임기가 '한시직'(년한제)이거나 '항시직'(항존제)으로 수행됩니다. 그러나 어떤 직제에 의한 것이든지간에 이 직분은 그가 교회원으로서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 일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으로 맡고 있는 것이며, 교회의 필요에 의하여서 이 직분이 은사로 주어져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 결코 영구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믿음이 있어 칭찬 듣는 사람을 선택하여 그가 교회의 직분을 충성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직분을 어떤 경우에서도 매관매직하듯이 해서는 안 되며, 명예직으로 남발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성도의 장례식에서는 그 고인의 명정에 교회의 직분을 기록함으로써 그가 어떤 직분자로 살다가 갔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인의 명예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 한 요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집사라든지, 장로라든지, 또는 목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도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앞에 설뿐입니다.

 

  우리가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성도로 살다가 성도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성도'(聖徒)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를 이루고 있는 자가 어떤 자인지를 잘 알게 해 주고 있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또한 그의 백성으로 있는 우리도 거룩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거룩한 자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성품적으로 지니고서 발휘하며 사는 자입니다. 그 능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은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교회의 직분은 그 은사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은사는 그가 교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동안에 교회의 생명체를 위하여 수고하여 봉사하여 쓰여집니다. 그런 그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보이는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로 옮겨졌을 때 그동안 그가 맡아 봉사하였던 교회의 직분은 거두워집니다. 이제 그 직분은 또 다른 믿음의 형제가 맡아서 봉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온 성도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의 혜택을 그를 통하여 받아 누려 나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언제나 교회의 직분자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히 해병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하듯이,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요 한번 장로는 영원한 장로요 한번 집사는 영원한 집사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나가시는 일을 위하여 어떤 사람은 남달리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아는 지식과 그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음 안에서 잘 준비해 나가셨다가 이제 그가 지닌 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야만 할 때가 이르면 교회의 기도와 추천에 의하고 선출하는 방식을 통하여 그 특별한 능력에 적합한 직분을 은사로 주십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에 특별한 능력을보이는 자에게 목사요 교사를, 남달리 성도와의 사귐을 잘 가지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도를 잘 살피고 권면하여 어그러짐 없이 바르게 서 가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이는 자에게 장로를, 남달리 자비를 베푸는 마음이 커 가난하고 어려운 자를 보면 가만히 있지 않고 물질을 나누어 돌보면서 선을 행하며 병약한 자를 찾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등에 특별한 능력을 보이는 자를 그렇게 믿음 안에서 잘 준비되어 온 자를 집사로 세워 봉사하게 하였는데, 그 봉사는 그들만이 희생하여서 헌신적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온 교회가 그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 여건이나 가정의 사정이라든지, 고령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든지, 직분의 임기가 다 되었다든지, 아니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든지 하는 때문에 더 이상 봉사할 수 없을 때는 그 직분은 거두워져서 능히 그 직분을 맡아 수행할 수 있는 자가 맡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직분은 영원한 직분으로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직분자로 있는 것도 문제인데 게다가 죽어서도 직분을 가지고 가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봉사하였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갈 때는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가는 것이 아니고 성도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격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그를 혹 비문에 "아무개는 모교회의 성도로서 모직분을 맡아 수고하다가 이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살아 생전에 그가 교회에 행한 행적을 알려 온 교우들로 하여금 그가 보인 믿음의 본을 배울 수 있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어떤 직분자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여!,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 아름답게 불려지고 쓰여지는 명칭이 있는데 왜 성도로 불려지려 하지 않습니까? 왜 굳이 아무개 집사, 아무개 장로, 아무개 목사로 불려지고자 하십니까? 그래서 이 직분을 고집하고 또 한번 직분을 맡았으면 평생을 끝까지 붙들고 죽어서도 놓지 않으려 하십니까? 성도란 명칭은 사실 교회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직분보다도 더욱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상태는 처음부터 성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직분을 세상에서 대통령을 지내고 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내고 해서 죽어서 명정과 비석에 '大統領密陽朴氏之柩(墓)'(대통령밀양박씨지구(묘)) 하듯이 하는 것 같기에, 그리고 이런 사고 방식이 교회의 직분을 맡고 있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나 직분을 맡고 있는 것이 마치 명예와 권위를 지녀야만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며 그래서 또한 지켜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기에, 이젠 이런 의식으로부터 변화를 갖고 자유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머리(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위임된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목사요 장로요 집사이기 전에 정작 그리스도에게서 목사요 장로요 집사의 긍휼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사는 성도입니다. (*) (이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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