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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사랑설교 108편

거기에 더 얹어서 요일4:7

by 【고동엽】 2024. 12. 31.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요일4:7                            

 

 

생각해보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굳이 하실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계명이라고 하실 필요가 있을까 ... 생각됩니다.

 

왜냐면

우리 인간이 사랑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유행가를 잘 듣지 않지만 유행가가 대부분 다 사랑 타령이고,

어떤 가사들은 정말로 심오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전유물이거나

덕이 많고 고상한 사람들만 좋아하고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좋아하고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지 말라고,

그런 사랑을 할 거면 아예 사랑하지 말라고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 같지 않은 사랑,

사랑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오염시키는 사랑은 말라고..!

 

▲어제는 일 때문에 경남 악양을 갔고 돌아올 때 시간이 좀 있어서

바람이 차가웠지만 섬진강 뚝방길을 조금 걸었습니다.

 

그런데 ‘은모래 길’이라고 쓰여 있어 그 길로 들어섰더니

은모래 길이 쓰레기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길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 아름다움을 망가트렸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좋아하면서 그 좋아하는 것을 망가트린 것입니다.

좋아만 하고 사랑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싫어하는 것도 사랑하는데 좋아하는 것도 망가트리다니!

그러니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부모로써 자녀에게, 또한 교우끼리..

각자 자기 입장에서 나름대로 성경말씀에 따라 사랑한다고.. 다들 말도 하고, 또한 자기 스스로 믿고 있지만

사실은 '망쳐놓는 사랑' 일 때가 많습니다.

 

결과가 그럴 바에야 아예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예 없었더라면

망치지도 않을 것인데... 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 보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완전하시지만..

우리 인간은 너무 불완전하여..

도무지 그 사랑을 제대로 해 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사랑치 말라’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라’하십니다.

저 같으면 사랑할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을 포기할 텐데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요한1서 3: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1서 4: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요한1서 4: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1서 4: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는 요일4:7절은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7

 

이 말을 뒤집으면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앞서 섬진강 예에서 봤듯이, 또는 우리 가정과 내 삶에서 보게 되듯이

우리는 좋아하기만 하고 오히려 망가트리게 되고

그럴 경우 우리는 서로가 사랑의 상처만 입고, 결국 사랑을 포기하게 되겠지요.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으면 사랑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요6장의 5병2어의 기적과 연결시키면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은 겁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 가지고는 사랑할 엄두도 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려해도 그것 주고나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랑의 현실입니다.

얼마 안 되는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니 이내 바닥이 날 것이고,

이제는 너의 사랑으로 바닥난 나의 사랑을 채워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요구하는데도 돌아오는 사랑이 없으니, 그 사랑했던 것이 미움으로 바뀝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이 체험을 우리는 수없이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것인데, 괜히 기대치가 높으니까 실망과 상처도 큰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광야의 제자들처럼

'어디 가서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빵을 살 수 있겠냐'고

그 막막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모범을 보이십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제자들처럼 쓸모없다 않으시고

오히려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것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하니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거기에 더 얹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 해주실 것을 확신하기에

요청의 기도를 하기보다 아예 그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도 가진 것 별로 없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을 포기치 말고

<하늘에서 오는 사랑>을 받아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가진 것에 더 얹어서 사랑하기로

오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굳게 결심하고 다짐하며

<하늘에서 오는 사랑>을 주십사고, 성령님께 도움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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