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디서 당신을 만나시는가? 사51:1~3
얼마 전에 어느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맨 마지막에 가서 제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목사님은 이제 남은 소원이 있다면, 뭐가 있습니까?' 그런 질문을 하셨어요.
뭐 여러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늘 제 마음속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서
대답을 드렸어요.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한 제 마음에 소원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약간은 좀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였기 때문인지
'한국교회의 부흥'이라는 것이 그렇게 썩 마음에 좋지 않게, 그렇게 느껴진 모양이에요.
표정이 그런 표정이었죠.
'한국교회의 부흥, 그건 교회가 또 성장한다는 뜻인가?'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좀 설명을 드려야 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부흥이라는 것은, 단순히 교인 수가 많이 늘어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또 이렇게 기도회로 모이는...
우리 모두가 다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체험이,
제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부흥입니다...' (라고 설명했어요)
▲이 점은 여러분들과도 좀 같이 나누고 싶어요.
오늘 금요일 성령집회에 오신 여러분들과도
우리가 기도의 초점을 같이 맞추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흥을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또 함께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다 같이 경험하는 겁니다. 이건 엄청난 일이에요.
이건 정말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고,
오늘도 하나님이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부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영성일기를 쓰시도록 권해드리는데,
그런데 이 일은 어디까지 가기를 원해서 시작한 것이냐면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경험하는 단계까지 가기 위하여
우리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한국 교회의 변화를 위해서 시작하는 겁니다.
영성일기를 쓰자고 한 것은, 한국 교회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 이건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 갈망이 있는 걸 보면 '하나님이 내 안에 역사하시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아직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에라도,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원하는 갈망이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51:1절에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라고 이렇게 표현했어요.
'여와를 찾아서 구하는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다가 아주 비참한 상태에 빠졌어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은 다 황폐해지고...
하나님이 완전히 버린 것 같은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그걸 내다보고 예언합니다.
그때 참 놀랍게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일어나요.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다가, 무서운 징계를 당하고
그제야 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갈망이 일어나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깊은 좌절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실까?'
'우리에게 다시 오실까? 우리에게 다시 부흥이 일어날까?' 믿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옛날의 그 믿음을 회복하고 싶고,
우리 이스라엘에 다시 하나님이 정말 복을 주시는 다윗의 시대와 같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있는데,
'이게 될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게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 말을 들으라!'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그걸 더 갈망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세요.
사51:1b~2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참 표현이 재미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보라'
이건 굉장히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하여, 돌을 가지고 와서 성전을 짓잖아요.
옛날에는 돌을 어디서 구해와요? 큰 바위 산에서 돌을 깎아서 떠내지요.
또는 땅 속에 있는 돌을 파내지요. 그러면 바위 산에, 돌을 떠낸 자국이 생기죠.
또 땅 속에서 돌을 파냈으니까, 거기에 큰 구덩이가 생기죠. 그걸 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모든 과정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그걸 다 내가 한 것인데, 내가 어떻게 너희를 잊겠느냐?'는 거예요.
바위산에서 그 돌을 떠내가지고, 그걸 다듬어서 성전 기둥으로 삼고, 성전 벽을 쌓고,
그렇게 했는데... 그 돌을 떠낸 바위 산에 움푹 파인 그 자리는
그건 도대체 어떻게 메꾸냐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느냐, 그게 어떻게 사라질 수가 있느냐?'
'큰 돌을 땅에서 떠냈는데, 그렇게 해서 생긴 그 웅덩이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를 잊은 적이 없다...
너희가 나를 찾고 사모하는 것 비교할 수 없이,
나는 너희를 정말 사랑하고 회복하기를 원한다.'
그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가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뭔가요?
사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오늘 우리가 보혈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회복을 구했는데
하나님이 그 약속을 주시고 계세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회복하게 해주겠다',
'다윗 시대의 그 영광을 회복하게 해주겠다' ..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여러분 지금 현재 우리 한국 교회 형편은, 이사야 51장 당시 때보다는 낫습니다.
지금도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고,
한국교회가 옛날만큼은 못하게, 지금 많이 쇠약해져가고,
점점점 전도의 문이 막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징조들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 이사야 당시 때처럼, 하나님이 무섭게 치셔서
그렇게 징계하시고 있는 건 아니에요.
정말 끔찍한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죠.
결국은 북한 문제가 터져서, 며칠 간이라도 전국이 아수라장이 되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제서야 다들 정말 하나님 앞에 아주 작은 죄까지도 회개하는... 아마 그렇게 되겠죠.
그때는 아마 기도가 미어 터지겠죠. 그때는 진짜 깨닫게 될 거예요.
'하나님 밖에는 우리를 살려줄 분이 없으시다.'
이스라엘이 지금 그런 처지를 예언하는 거예요. 완전히 나라를 다 잃어버렸어요.
다 포로로 잡혀가고... 그제야 이스라엘 안에, 진정 하나님을 찾는 갈망의 기도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꼭 그와 같은 최악의 상태로 가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을 회복하고, 기도를 회복하겠습니까?
벌써 이만큼쯤 되어도, 이제는 정신 차릴만 하잖아요.
'하나님, 이제는 정말 기도하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죄를 다 버리겠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진짜 예수 믿는 생활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해야 돼요.
그리고 우리가 진짜 '하나님, 하나님 우리에게 부흥을 주세요!'
부흥은 그저 예수 믿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게 아니고,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임재를 아는 거예요.
우리가 결국 믿음으로 바로 살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심을 여전히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육신의 눈으로 안 보이니까, 주님이 안 계신 줄로 생각하고,
그러니까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도 함부로 하고, 돈도 함부로 쓰고,
시간도 함부로 사용하고...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다 허랑방탕하게 써버리는...
그런 의미에서 탕자가 우리예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 눈이 뜨이고 나면, 확 바뀌어버립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데, 어떻게 옛날처럼 살아요?
이런 은혜가 한국교회 전체에 필요 해요. 이건 정말 큰 기도 제목이잖아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기도 제목이죠.
▲세상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희들 자신이나 좀 변화되라,
나라 걱정하지 말고, 세상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스스로라도 좀 변화되라' 입니다.
여러분 교회는요, 지금 이 땅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있느냐? 있죠. '교회에 와서 보라!'
그런데 교회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교회에 왔는데도 하나님의 나라는커녕,
교회 안에도 꼭 세상을 보는 것 같이, 비슷한 일이 막 벌어지니까.. 지금 이게 위기거든요.
이걸 회복하자는 거예요. 교회에 와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돼요.
세상이 깜깜하고 어두워도, 어디서 작은 불빛이라도 하나 밝혀지면,
그러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불빛을 주목하게 돼요.
그게 무슨 큰 산불이 아니어도 좋아요.
지금 이 예배당에 불이 다 꺼져서 깜깜해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기에 조그만 촛불 하나가 밝혀지면,
이 예배당 전체가 벌써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빛은 작아도 강력한 것이에요.
한국교회가 정말 빛의 사명을 감당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이 진짜 빛이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어요.
교회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뭔가 기분이 달라지고,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 같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느낌도 생기는 것 같거든요.
이 역사가 세상이 원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갈망하는 것입니다.
영성일기을 왜 써요? 일기 쓰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해서?
정말 성도의 생활이 변하느냐는 거예요.
예수 믿고 진짜 삶이 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싶은 거예요.
계속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그러면 집에서 삶이 달라지고,
일터에서 달라지고, 교회 생활이 달라지고... 이렇게 삶이 달라지느냐?
저에게 인터뷰 온 인터넷 매체들이 한결같이 묻는 거예요.
'영성일기를 왜 쓰려고 그러십니까?'
'영성일기를 쓰면 진짜 사람이 달라집니까?'
저는 아주 담대하게 이야기했어요.
'나는 우리 교인들을 보니까 영성일기를 쓰고 삶이 달라진다고 확신합니다.
일기가 바꾼 게 아니고, 주님이 그 사람들을 바꾸시더라고요'
'내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하게 말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조금은 들기는 하더라고요.
제가 여러분들의 생활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영성일기 추천글에 올라온 일기를 쭉 읽어보면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이 정말 너무나 놀랍게 일하시는구나. 주님이 하셨구나'
이런 마음의 고백이 계속 되어서... 제가 (인터뷰 때) 그렇게 선포했어요.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부흥은, 주님의 임재에 눈이 뜨이고
주님의 임재에 눈이 뜨였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죠.
이것이 한 개인, 개인이 아니고, 한국 교회 전체에 이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것이 제가 바라는 부흥이거든요.
이것이 이사야 당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급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하나님이 더 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부흥을)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변화를, 다시 회복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동안의 한국교회는, 부흥회를 했을 때도 주제가
항상 구원, 그 다음엔 축복으로 넘어갔어요.
보통 부흥회 포스타에 보면 '속죄함의 은혜, 속죄함의 비밀, 거듭남의 비밀'
그리고 난 다음에는 '축복 대성회' 이렇게 건너갔어요.
그 사이에 뭐가 빠졌냐면 '성화'가 빠졌어요.
성화가 한국 교회는 이상할 정도로, 이 성화 문제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했어요.
지금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민낯이 뭐냐면
구원의 확신도 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축복에 대한 갈급함, 은사도 많이 경험했는데,
성화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전혀 그동안에 관심도, 초점도 없었거든요.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정말 주시려고 하시는 게 뭘까요?
여러분이 정확히 아셔야 돼요.
우리에게 이 속죄의 거듭남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한 회복도 주시지만
그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성화'예요.
영성일기 쓰면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자고 하는 것은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 바로 그게 성화거든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 예수님이 내 왕 되시는 삶.. 이 삶을 원하는 거예요.
▲우리 선한목자교회는 감리교회입니다.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전통을 계승해요.
요한 웨슬리는 두 가지 영적인 체험을 했어요.
1) 하나는 1738년 7월 24일에 런던의 올더스게이트에서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얻었어요.
'아 믿음으로 나는 구원받았구나' 이 체험이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입니다.
이건 엄청난 체험이에요. 구원의 확신은 그냥 생기는게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생긴 거예요.
여러분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을 한 겁니다.
구원의 확신, 믿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웨슬리의 신앙체험은 그게 끝이 아니에요.
2)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이 있은지, 6개월 뒤에 런던의 페터레인에서
1739년 1월 1일, 송구영신예배 기도회로 모였어요. 이게 페터 레인의 체험이에요.
60명 정도가 모라비안 교도들이 중심이고,
웨슬리 목사님, 동생 찰스 웨슬리, 휫필드, 잉햄 이런 분들이 같이 모여서
그때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6개월 전에 그들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어요.
감격스러웠고요. 그러나 뭔가 아직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거예요. 능력이 없는 거예요.
그들은 내적으로는 너무 기쁜데,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의 열매나 능력이 없어요.
뭔지 모르게 부족해요. 성경에 있는 약속이 그들에게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더 큰 은혜를 달라고' 그들이 기도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그냥 철야기도가 됐어요.
저녁에 시작한 기도가, 새벽 3시쯤까지 계속 기도가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새벽 3시쯤에, 이 페트 레인(지명) 기도회에 모인 60여 명이
동시에 성령의 체험을 합니다. 그들이 다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너무너무 기쁨의 탄성, 그리고 그들이 바닥에 다 쓰러졌어요.
성령이 너무 강력하게 그들에게 임하니까, 그들이 앉아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다 쓰러졌어요.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주님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그저 나의 구주 정도가 아니고, 자기들과 지금 함께 하시는 주님이세요.
예수님이 내 주님, 예수님이 내 왕.. 그 점에 대해서 마음에 조금도 의심도 없고
갈등도 없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왕 되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들 가운데 충만했어요.
이것이 페트 레인의 체험이에요.
그 페트 레인에서의 성령의 체험은, 모두가 다 같이 체험을 했어요.
올더스게이트의 경험은, 그 기도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
웨슬리 목사님 혼자서 체험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안 했어요.
그런데 페트 레인에서의 체험은,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체험했어요.
페트 레인에서의 체험 이후부터 웨슬레 목사님의 사역에는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나고, 병자도 고침받고, 귀신도 떠나가고,
사람들이 막 물밀듯이 구름같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하면 회개가 터지고,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역사들이 막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게 감리교회 운동이 된 겁니다.
페트 레인 체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거예요.
*웨슬리 목사님의 성령체험 https://rfcdrfcd.tistory.com/11150561
그게 당시에 웨슬리의 부흥입니다.
그리고 이 페트 레인 체험 이후에, 삶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이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정말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자'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하나님이 그 때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저는 그것이 한국교회의 부흥을 여시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이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도 그걸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유럽지방 성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성회가 끝나고 이태리를 쭉 여행을 한 주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고대 로마의 항구였던 오스티아 안티카 라는
옛날 로마의 항구를 가 보았습니다. *로마시 근교
그곳 유적지를, 현지에 있는 목사님이 안내를 해주셨어요.
거기는 유명한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어거스틴과 어머니 모니카가 함께
영안이 열려서 하늘이 열리는, 신비한 체험을 했던 곳입니다.
거기에 기념 성당이 지어졌어요. 그 성당에 들어가 보니까
어거스틴과 그 어머니가 함께 기도하다가, 하늘이 열리는 신비한 체험을 했던 장면이
거기에 그려져 있더라고요. 제가 그 그림을 이렇게 가만히 보았어요.
어거스틴과 그 어머니 모니카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지요.
여러분, 두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이건 혼자서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이에요.
여러분의 속회가 그렇게 되기를,
'정말 어느 속회에서 하나님이 그 시작을 알리실까?' 여러분의 속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모하는 분들만 아마 그런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어느 교구 어느 속회에서 '속회 예배드리다가 그들이 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럼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두 사람이 같이 로비에서 서로 손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또는 1대1 양육을 하다가, 두 사람이 함께 어거스틴과 모니카처럼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어요... 이건 정말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기도회 하고 예배할 때,
'하나님, 우리가 다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지금은 우리는 믿음으로 알아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그러나 여기 있는 분들 중에, 아직도 여러 분들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게 뭐지?' 그러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 거는 설교하는 목사에게나 보이지,
나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게 뭔지' 전혀 모르는 분...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부흥이 이 정도인 거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금요일마다. 모여서 함께 또 찬양하고 또 기도하고
또 한 주간 동안 내내 준비했던 말씀과 기도를 같이 서로 나누고 기도하고,
또 주님을 계속 바라보는 말씀을 나누고, 보혈로 찬송하고...
이렇게 한 주 한 주 지나가면서, 결국 어느 하나님의 때가 우리 가운데에 왔을 때,
그때 아주 강력한 주님의 임재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려요.
사실 오늘도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여기로 왔어요.
'주님 오늘입니까?' 우리 같이 그날을 같이 경험하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건 불씨 역할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임하는 부흥이 임할 때는, 사람들이 다 알게 돼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본인이 실제로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눈이 뜨이고, 분명한 체험과 확신을 갖게 돼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미 그 전에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 혹 오늘 없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달라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강단에 나와 기도하든지,
안수기도를 받으러 나오든지, 또는 뒷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기도하든지,
뭐 다양하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알아요. 내 마음이 변화된 것을!
안 믿어지던 게 믿어지고,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내 안에 사랑이 일어나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말씀이 내게 분명히 깨달아지고...
그렇게 기도가 뜨겁게 열리고 하면
'주님이 내게 강하게 임하시는구나' 이런 개인적인 체험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금요 성령집회에 부흥이 있는 거죠. 이 일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하나님이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부흥의 때가 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 제가 불씨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흥이 일어나고 구경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내가 불씨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1)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우리 중에 누가 불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 제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그런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믿음도 없는 것 같고,
또 공개하기는 그렇지만 너무 은밀하게 죄 짓는 것도 많고..
나는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오늘도 은혜가 있으면, 은혜를 받을까 하고 왔지..
내가 무슨 불씨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 사람이 '수상한' 사람이에요.
보통 부흥이 일어나서 간증시켜보면, 꼭 그 전반부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여기 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나는 참 이렇게 너무 비참하게 살았고
너무 부끄럽게 살았고, 나는 정말 은혜가 뭔지도 몰랐고, 나는 간증할 줄도 몰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고, 말씀하시고,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모든 게 달라 보이고, 나뭇가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고,
새소리도 찬양소리로 들리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난 아닌 것 같아!' 이런 분들이
'오 주여 저입니까?' 이렇게 기도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김승현 목사님이 인도네시아에 가서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
인도네시아 부흥을 위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도네시아의 부흥은 도대체 누가 일으킬 것 같습니까?
인도네시아의 부흥은 누구로부터 올 것 같습니까?'
그러면서 그 신학생들한테 도전했어요.
'당신을 통해서 인도네시아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집니까?'
아무도 믿어진다고 하는 사람이 없더래요.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저 친구인가?' 하는 눈초리였어요.
'나를 통해서 주님이 그 일을 하시기 원합니다.'
이렇게 고백이 안 나오는 것 때문에 너무너무 안타까워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바꾸시라고...
다른 사람 자꾸 쳐다보지 말고,
'주여 인도네시아의 부흥이 나를 통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주목하고 계세요.
지금 이사야 51:1절에서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
정말 여호와를 간절히 찾고 구하는 자에게
주님이 '내 말을 들어라' 그렇게 하셨거든요.
여러분 안에 부흥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말 하나님이 임재를 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진짜 한국교회 부흥을 정말 사모하고 있다면,
그러면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쓰시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믿으세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원하세요.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자리에 앉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전체로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 전체가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 주신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다 각자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거예요.
지금도 꼭 같아요. 옆에 앉은 사람이 있고, 앞뒤에 앉은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확히 보고 계세요. 조는 것도 보고 계세요.
여러분이 그 점을 분명히 믿으셔야 돼요.
오늘 말씀의 사51:2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청성하게 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을 언제 하나님이 만나 주셨나요?
혼자 있을 때 만나주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이 나를 언제 만나 주실까?'
'그게 기도원일까, 교회일까?' 장소가 문제가 아니고 혼자 있을 때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정말 만나 주시고 싶어 하시는 그 상황이 언제냐면
혼자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때때로 혼자 있게 하세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과만 시간을 갖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주목하시는데,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드리지 않으면
그러면 계속 하나님과의 임재의 경험은 자꾸 뒤로 미뤄집니다.
물론 혼자 있다는 것은, 무슨 어디 기도원에 올라가 있어야 된다든지..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서도 계속 집 생각만 하고 있다면, 가나 마나예요.
몸만 기도원에 가 있지, 계속 금식하면서 짜장면만 생각하고 있다면,
집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렇게 같이 앉아 있어도, 여러분이 주님을 주목하고 있다면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은, 사실은 혼자 있는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아브라함처럼 가질 수 있어요.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정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목요일 새벽에, 남성 모임이 다 끝나면
남자 성도님들이 이제 서로 허깅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은 어느 남자 성도님께 허깅하려고 다가가는데
그 분은 제가 다가가는 걸 전혀 모르고, 딴 사람을 쳐다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이렇게 안으려고 하는데,
그 분은 옆에 있는 사람을 안으시더라구요. 제가 너무 뻘쭘해졌죠.
그래가지고 저도 그냥 아무나 근처에 있는 딴 사람을 이렇게 안았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하나님도 나를 이렇게 잘 지켜보고 계시다가,
뭔가 말을 걸려고, 하나님이 뭔가 행동을 하시려고 할 때,
내가 계속 주님을 주목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주님은 나에게 자꾸 다가오시는데, 나는 엉뚱하게 딴 쪽만 바라볼 수 있겠구나'
아브라함만 혼자 있을 때 아브라함을 만나 주시려고 하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 사실을 정말 믿으세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주목하고 계세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광야로 내모셨어요.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사도바울도 이 신약에 나오는 복음의 모든 비밀을 알기 위해서
아라비아 광야로 나가야 됐고,
세례요한도 광야로 하나님이 내 모셨어요.
하나님과만의 만남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여러분도 이따금 하나님이 모든 관계를 다 끊어버리고
'나만 이렇게 외롭게 만드시나?'
그때가 사실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나려고 하시는 때일 가능성이 거의 100 %예요.
'주님이십니까?' (주님이 제게 찾아오셨습니까?)
주님께로 여러분들이 관심을 돌리세요.
그러나 꼭 혼자만 있는 어떤 시간이 아니라도,
가족들하고 같이 있는 시간, 또 이렇게 예배 드리는 시간이라도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그건 여러분의 마음의 갈망에 달려 있어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의 갈망,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주세요.
여러분이 압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주님이 지금 내게 임하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구나, 주님이 나에게 뭔가 지금 행동하고 계시는구나'
여러분이 알게 되었어요.
오늘 이 밤에 여러분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간절한 기도를 했어요.
한 분 한 분에게 주님을 만나는 눈이 열려지는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전체 집회 중에, 하나님이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는 것을
특별하고 이상한 체험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자꾸 혼란스럽고, 그리고 주님의 이끄심을 잘 경험 못 하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마치 여러분들이 가족들끼리 서로 만나고, 서로 대화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요.
주님은 여러분 안에 이미 와 계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에요.
여러분의 모든 삶 속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여러분을 이끄세요.
그러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세상 없는 체험을 한 것도 아닙니다.
못 듣는 사람이 이상하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듣는 거예요.
주님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정말 세상 없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거 아니에요.
이제 여러분들이 잔잔히 주님의 임재를 경험해 보기 시작하면,
'아 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거구나'
▲제가 안식년을, 미국 달라스 에서 7월달 그 무더운 때
달라스가 미국에서도 굉장히 무더운 도시예요. 거기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사람들이 다 저를 이해하기 어려워해요.
거기 있다가도 휴가를 얻어서 시원한 곳으로 나오는데
왜 그런 곳으로 7월 한 달 동안을 보내려고 가느냐?
실제로 달라스에 가보니까 진짜 덥더라고요. 갈 데도 없어요.
너무 바깥이 더우니까 나가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끝없는 평원이 쫙 펼쳐지고, 파란 하늘이 있고,
하늘이 그냥 땅에 닿을 듯이 느껴지는 그런 곳인데,
그렇기 때문에 거기가 좋더라고요.
24시간 주님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그래서 달라스에서 한 달을 지냈는데, 한 번은 제 아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가고
제가 한 4시간 정도 집에 혼자 있어야 될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가는 곳에 내려다 주고, 그리고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숙소 열쇠를 아내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 무더운 달라스의 땡볕에, 한낮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그 마당에서 4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아 정말 난감하더라구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처음에는 뭐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가
'기도하자, 이 4시간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인데 기도하자!' 이런 착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그늘이라도 덥지요.
마음에 짜증스러운 생각이 들고, 기도가 집중이 잘 안 돼요.
그래도 4시간 동안 다른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억지로라도 기도하고, 또 성경을 읽고...
여러분 처음에, 은혜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일찍 끝내면 안 됩니다.
기도를 할 때, 성경을 읽을 때, 처음에는 좀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들고
마음에는 계속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때 그 고비를 넘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 단계를 조금 지나고 나니까, 너무나 기도가 깊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이 은혜가 되고,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은혜가,
제가 기도하는 게 아니고, 기도를 막 시키시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께 기도를, 제 입으로 하고는 있지만,
제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나온 기도라기보다는,
마치 하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기도가 막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있는 메모지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제 기도를 막 받아 쓸 정도였어요.
그때 그 기도가 어떤 내용이었냐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되, 강하고 분명한 음성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말아라.'
강하게, 분명하게, 마치 육성으로 듣듯이,
이렇게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마라..
주님의 음성을 듣기는 듣지만, 뜨겁고 강한 체험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되기를 기대하지 말아라..는 거죠.
'오직 너 자신의 죽음을 분명히 고백하고,
주님이 반드시 말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기만 하라.
강하고 극적이고 놀라운 체험은, 오히려 너를 실족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이미 죽은 자임을 믿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생명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
성경을 읽으며 주님께 귀 기울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깨우쳐 주실 것을 믿으라...'
그런 내용이었어요. 나중에 정리해 보니까 그게 핵심이에요.
그날 너무나 강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때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제게 가르치신 거예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동행하고 하는 것이, 특별한 체험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특별한 어떤 체험이 있어서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지 말아라..
'무슨 특별한 소리가 들리고, 무슨 신기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는 큰 미혹에 빠지게 될 것이야...'
늘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깨우쳐 주신 것을 믿고 나가면
그러면 주님이 하나하나 깨우쳐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제가 그때 달라스에서 경험했던 것이
제게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되어서
영성일기를 쓰고, 매일 칼럼도 쓰고 하는 것에 적용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 저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렵니까?'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들리지도 않고, 육성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제 컴퓨터를 열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하나씩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신기해요. 그 다음 글이 생각나고, 그 다음 글이 생각나고...
성경구절이 생각나고... 그렇게 해서 또 하루 칼럼을 써요.
지나고 나면 '내가 쓴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마음에 든다는 뜻)
그렇게 지금까지 한 6, 7년을 지나와요.
주님과의 동행함은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게 진짜예요. 가장 안전하고요. 이 은혜의 눈이 여러분에게 열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밤에도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실 겁니다.
........................................
주1) '중국 교회'라는 벙커 C유에 불붙인 심지 같은 청년들
지난 3~40년 사이에, 중국 교회에 놀라운 부흥이 있었다.
수 십 만 명이던 기독교인들이.. 1억 가까이로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그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어째서 중국에 이런 일이..?’
간단한 대답으로 ‘성령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지난 3~40년 사이에, 중국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기사와 표적이 그대로 중국에 재현되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도, 심지가 있어야 타오른다.
이것은 비유로 설명하면, 마치 벙커C유와 같다.
벙커C유는 원유를 정제할 때, 가장 나중에 나오는, 가장 뻑뻑한 기름이다.
그래서 휘발유와 달리, 성냥불을 벙커C유에 갖다 대도, 오히려 성냥불이 꺼져버린다.
벙커C유에 불이 붙으려면..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단 불이 붙기만 하면, 벙커C유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갖고 타오른다.
설교자가 성령의 역사를 벙커C유에 비유하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곳에는, 누군가 심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심지처럼, 희생/고난/십자가의 길을 간 것이다.
그 심지를 통해서, 전체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중국에 큰 부흥이 일어난 이유도
수많은 성도(젊은이)들이, 그간 3~40년 사이에, 자기 인생을 심지처럼 내어드렸다.
십자가를 지고서, 고난의 대가를 치렀다.
그 심지들을 통해, 중국 전역에서 성령의 불이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여러분, 이것은 중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2천 년간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났다.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특별히 귀하게 사용하신 사람들의 공통점도 한 가지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서, 자기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사람들이다.
마치 심지처럼, 자기 삶을 불태워 드렸고,
그 심지를 통해서, 그 시대 전체에 불이 붙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추천인 명설교편◑ > 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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