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갈망하는 예배를 드리자 시27:1~6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고,
또 매일 밤 10시에 우리가 매일 합심기도도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이
때때로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꼭 기도를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역시 기도를 했기 때문에 잘 됐구나, 이왕 기도할 거, 더 했으면 좋았을 걸'
이런 마음이 듭니다.
기도는 그냥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도를 하고 나면,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왜냐면 기도 중에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를 드리든지, 기도는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제가 부산에 있을 때, 참 존경하는 장로님 한 분이 있어서
그분의 간증을 들었었는데
그 장로님이 간증 중에, 자기가 새벽 기도를 끝내고 나오면
산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담대함이 속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그런 고백을 하셨어요.
기도는 정말 놀랍습니다. '어디서 이런 믿음의 담대함이 일어나는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도의 역사는 우리 안에 너무나 뚜렷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본문 시27편을 보면, 다윗이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이건 정말 무슨 호러 영화도 아니고 '살을 먹으려고 왔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만큼 지금 다윗의 처지가 굉장히 끔찍하고 두려운 형편에 있었다는 거죠.
사람들이 자기 살을 씹어먹으려고 올 정도로... 이런 표현을 했을 정도입니다.
3절에 보면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이렇게 표현했는데, 지금 군대가 나를 치려고 왔어요.
한 사람이 나를 위협해서 내게 위해를 가하려고 와도, 이게 보통 두려운 일이 아닌데,
군대가 나를 대항하여 진을 쳤다니... 그리고 전쟁의 위협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북한과의 전쟁의 위기 속에, 온 국민의 마음이 두려움 속에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금년에 전쟁이 난다'고까지 말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점은 좀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될 일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은 굉장히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죠. *2017년 초 트럼프 시절
오죽했으면 사드 미사일 배치까지 하겠습니까.
중국과의 관계가 이렇게 어려워지면서까지, 우리나라는 뚜렷하게
지금 전쟁의 위기 가운데 있긴 합니다.
여러분, 바로 이 두려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지?' 이런 두려움이 다윗에게 있었어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다윗이 당당했다는 겁니다.
27: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이건 정말 대단한 믿음이죠. 그냥 평소에 이렇게 노래한 게 아니고,
군대가 자기를 치려고 오고, 전쟁이 일어날 위기 속에
사람들이 자기 살을 (씹어) 먹으려고 오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고백과 담대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 때문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다윗을 이렇게 담대하게 만든 거예요.
▲본문 시27편은 구조가 독특합니다.
기도와 믿음의 선포가 계속 반복됩니다.
1~3절은 믿음의 선포이고, 4절은 기도,
5~6절은 믿음의 선포이고, 7~12절은 간절한 기도,
13~14절은 다윗의 믿음의 선포예요.
그러니까 시27편은 '기도와 믿음의 선포' 이게 반복됩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면
기도하면 담대해지고, 기도하면 또 담대해서 믿음을 선포하게 된다는 뜻이죠.
다윗의 이 믿음은,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담대한 믿음이 가능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줘요.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게 믿어지면
그러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한 선포를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가운데도 기쁠 수도 있고, 그런 가운데도 평안해 하죠.
문제는 믿어져야 하는 거거든요.
이 믿어지는 역사는, 그냥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기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겁니다.
▲목포 사랑의교회 백목사님이,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서 간증한 내용이 아주 생생합니다.
집안이 너무너무 어려운 형편에서, 어머니가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갔는데
교회 처음 갔던 날부터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때부터 그분의 어머니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새벽기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먼 교회까지 가서 새벽기도 드리고, 철야기도 늘 드리고,
1년에 두 번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늘 자주 금식기도 하고,
어머니가 정말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백목사님이 어릴 때,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으면, 무슨 역사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한 번은 엄마가 어느 집사님한테 돈을 빌리러 가시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학비를 빌리러 간 거예요.
자기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학비가 없으니까 빌리러 갔어요.
그런데 (백목사님 어릴 때) 너무너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우리 엄마는 새벽기도 그렇게 매일 빠지지 않고 드리는 집사님이고,
그 집사님은 새벽기도 전혀 안 하는 집사님이세요.
'그런데 새벽기도 매일 하는 집사님이
새벽기도 전혀 안 하는 집사님한테 돈 빌리러 간다...'
그럼 기도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 중학생 때 자기가 그런 갈등이 있었다는 거죠.
중학교 2학년 때 몸이 아파서 자기가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아니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면,
그러면 나는 건강해야 되잖아...'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자기 엄마처럼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없었대요.
근데 그 집 애들은 다 건강해요.
'그렇게 기도 많이 하는 우리 엄마인 아들인 나는,
왜 이렇게 병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되나?
기도해도 별 소용없구나.. 기도해봐야 아무 소용없구나...' 이게 확실하게 믿어지더래 요.
어느 날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던 엄마가, 새벽기도회에 안 가시는 거예요.
'어머니, 왜 기도회 안 가시냐고?' 그랬더니
'이제는 집에서 기도하려고 그래!'
힘이 전혀 없는 소리로 그러시면서,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시는데,
조금 지나니까 막 통곡을 하는 겁니다.
소리소리 지르면서 엄마가 기도하시는데,
자기가 문밖에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하나님, 아무개 집사가 기도해도 별 소용도 없다고 합니다.
내가 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누가 나를 보면, 기도하고 싶어 지겠습니까? (기도해도 그 모양 그 꼴이니까)
내가 기도해야 될 사람들 기도 못하게, 교회문을 잠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난 부끄러워서 기도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회에 안 나가신 거예요.
그렇게 기도하는데도, 삶의 환경이 해결이 안 돼요.
집안의 어려움이, 재정 문제도 해결 안 되고, 애는 아프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 체험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건 알겠는데
그래서 기도할 마음은 생기는데... 가시적인 눈에 보이는 역사가 안 나타나는 거죠.
사람들이 자기 엄마 집사님을 보고, 뒤에서 수근수근 거린 거예요.
'저 집사님은 그렇게 기도 많이 해도, 되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머님이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그렇게 믿는구나...'
그러니까 너무 창피한 거예요.
오히려 자기가 교인들의 기도문을 가로막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벽기도회도 안 나가고, 집에서 기도를 하겠다는 건데,
엄마가 일주일 만에 다시 교회를 가시더래요.
'집에서는 기도가 안 돼!' 그러면서 일주일 뒤에 다시 교회를 가셨다는 거예요.
그때 그 어머니를 보면서, 당시 어린 소년 백동조 목사님은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은 아무 역사를 안 하시나?'
어릴 때 그런 기도에 대한 의심, 좌절이 있으셨대요.
그런데 지금 가만히 돌아보니까, 어머니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백목사님과, 그분의 교회와, 목회를 위해 엄청난 역사를 일으킨 것을
당신이 생생히 경험한다고 해요.
목포에 내려가면 정말 대단한 교회가 하나 있어요. 사랑의교회와 백동조 목사님,
그분 몸 자체가 너무너무 보기만 해도 연약해 보여요.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 사역이 강하죠?
'어머님의 기도가 하나도 떨어진게 없구나' 그렇게 느낀다고 그런 고백을 하셨어요.
여러분, 그 백목사님의 어머니가 응답이 안 되는 가운데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힘이 뭐예요?
기도 중에 계속 하나님을 만나니까요. 이건 기도하는 사람만 알아요.
기도 중에 계속 하나님을 만나니까, 그러니까 이겨낼 힘이 있는 거예요.
또 계속 기도할 힘이 생기는 거죠.
처음에는 두려움과 염려 속에 기도를 시작했다가, 기도하는 중에 담대함이 생겨요.
참 기도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죽을 것 같이 생각이 들다가,
그래도 억지로라도 기도하다 보면, 갑자기 마음에서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일어나고,
처음에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웠는데, 계속 기도하다 보면,
용서할 마음이 생기고.. 사랑할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은, 처음에는 의심이 되다가..
기도하다가 보면 그게 맞다는 확신이 돼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기도하면 할수록 계속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뭘 기뻐하시는가, 뭘 원치 않으시는가?' 알게 됩니다.
이유는, 기도 중에 진짜 주님을 만나는 거예요.
눈으로 못 뵙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이럴 때가 있지만
기도하면 '아~ 영이신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그걸 알게 된단 말이에요.
기도의 역사는 참 놀랍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일 천 번제를 드렸죠. 그때 하나님이 놀라운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너에게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하는 황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부도, 존귀도, 명예도, 권세도 구하지 않고
'내가 백성들을 다스려야 되는데 지혜가 부족합니다.
제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 구해서,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셨어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기도가 있거든요.
그때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았던 모든 걸 다 주세요.
부도, 존귀도, 권세도 다 주십니다.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도 없다고 하잖아요.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를 드린 거예요.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더니,
그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그렇게 들었어요.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너는 내가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오늘 말씀하시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기도를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은, 무슨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시려고 하세요?
우리는 평소에 늘 생각하는 걸, 기도로 드리는 거예요.
솔로몬이 어떻게 그런 대답을 했을까요?
솔로몬의 마음속에 '내가 누구길래 이 백성들을 다 재판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그 문제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그게 가장 솔로몬의 마음에 중요했으니까,
(기습적 질문에) 그 대답이 툭 나온 거죠.
그렇지 않고 솔로몬이 평소에, 돈 생각만 하고, 권세 생각만 하고,
영토 넓힐 생각만 했으면... 지혜를 구하는 대신, 그런 걸 하나님께 구했겠죠.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우리가 매일 합심 기도할 때, 무슨 기도하지요?
돈 달라고 기도하고, 병 고쳐달라고 기도합니까? No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여러분 40일 릴레이 금식기도! '무슨 기도를 그렇게 금식하면서 하세요?'
누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요.'
저는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참 귀하고 복이 있다고 믿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네게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 때, 우리가 평소에 늘 기도하던 그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민족의 복음 통일을 위해,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그걸 이루어 주십시오'
(솔로몬의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거죠)
저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기뻐하실 거라고 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늘 드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에요.
▲미국 벧엘 한인교회에 김한효 목사님이 쓰신 글에 보면
"순교와 순대"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이 조금 독특해요.
아프리카 선교사님들에게 '뭘 보내드리면 좋겠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순대를 보내달라고 하더래요.
'선교사님들도 한국 떠나서 지내다 보니까, 어릴 때 먹던 것이 생각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순대구나...
정말 순교를 각오하고 가셨던 그 선교사님도 순대 먹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억제하기가 어려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순대를 좋은 걸 사다가, 진공 포장해가지고
또 얼음에다가 재워서 잘 포장해가지고 그렇게 보내드렸답니다.
선교사님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순대를 받아들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몰래 내외간에 드시려고 했대요.
애들은 어려서 순대를 안 먹어봤기 때문에 좋아할 리도 없겠고,
애들 잘 때 꺼내가지고, 데워서 두 분이 순대 데이트를 하는 중에,
옆집 선교사님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이게 뭐냐? 웬 순대냐?' 이러면서, 그냥 다른 선교사님들까지 다 오라고 해가지고,
앉아서 그냥 꺼내놓은 순대를 훌쩍 다 먹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더 없냐?'고 그러는데 '없다' 그랬대요.
냉장고에 있는데...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아깝고, 너무 분하고, 그래서
거짓말로 '순대 없다'고...
그래서 이제 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기도하는데, 스스로 너무 창피한 거예요.
아프리카 갈 때는 순교도 각오하고, 그렇게 가 놓고...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가, 공짜로 받은 순대를, 그걸 냉장고에 넣어놓고
'순대 없다'고 거짓말을 했던 걸 생각하니까 너무 창피했다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고... 그런 고백의 간증을 메일로 보내오셨대요.
그래서 그걸 보고, 그 선교사님의 솔직한 고백도 참 귀하기도 하지만
목사님은 자기 생각을 했다는 거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도 하고 목회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 마음속에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나가 걸려서,
하나님 영광 가리는 것은 없나?'
▲여러분이 진짜 예배하는 게 뭐예요?
그게 계속 그냥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나와서 예배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진짜 예배하는 게 또 따로 있어요.
이번에 장신대 봄 사경회를 오늘까지 인도하고 왔습니다.
'사경회'라고 해서, 나는 성경을 풀어주는 말씀 집회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광고시간에 '사경을 헤매는 모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수님들에게 부탁하기를 '교수님들도 함께 사경을 헤매달라고
우리 학생들만 이렇게 내버려 두지 말고, 함께 사경을 헤매달라고...'
뭐 이런 광고를 하길래 '아 이게 사경을 헤매는 집회구나'
그래서 제가 '사경을 헤매지 말고 그냥 죽으시라'고 그랬어요.
'괜히 사경만 헤매다가 (안 죽고) 끝내지 말고,
아예 확 죽으면, 그 다음에는 예수님으로 다시 살게 되니까,
아주 명확하게 하자고!' 그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사경회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사경회 첫 번째 날 설교에서, 제가 '우리가 주님 앞에 부름받은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는 종으로 부름받은 거다.
여러분 대접받을 길을 생각하며 가지 말고, 고난의 길 가십시오' 그렇게 설교했더니
그 학생이 막 화가 난 것 같아요.
'강사 자기는 큰교회 담임목사면서, (영광을 받으면서)
고생하는 신학생인 우리 보고는 고난의 길을 가라고 그런다'고
굉장히 막 분에 차서 '왜 우리를 고난에 내몰려고 그러냐?' 이러면서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 신학생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저도 신학생 때 '아골 골짝 빈들에는' 못 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얼마 동안 안 불렀던 적도 있었어요.
제가 그 신학생을 탓할 마음도, 자격도 아무것도 없어요.
단 하나, 절대로 고난을 무작정 예찬하는 게 아니에요.
고난이라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그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
그게 너무 놀랍다는 것을 말하는 거죠.
굳이 대접받고, 굳이 높아지고, 이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예수님을 알고 나면, 주님과 개인적인,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나면,
그 다음에는 고난의 길을 담대하게 갈 수 있다... 그 말씀을 전했는데,
제가 내용을 분명히 전했어요.
그런데도 (신학생이) 듣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듣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준비되셨나요?
하나님이 너무 좋으니까, 하나님 한 분이면 정말 충분하니까,
어떤 어려운 길, 고난의 길이라도, 주님 가시는 길이라면
주님만 나와 함께 하신다면
저는 어떤 곳이라도 어떤 길도 좋습니다! 라고 고백하십니까?
▲기도를 하면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는, 기도 중에 계속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다윗의 기도는 좀 특별한 면이 있어요.
오늘 시27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그저 다윗이 지금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그러면 무슨 기도를 해야 정상적인 기도일까요?
'하나님, 저를 지켜주세요.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저 대적을 물리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가 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다윗의 기도는, 4절에 보니까, 자기에게는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One thing,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지금 전쟁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자기에게 달려들어서, 자기 살을 그냥 파먹으려고까지 하는...
이런 끔찍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지금 하나님께 자기는, 하나님의 집(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다는 거예요.
27:6절에도 보면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지금 현실 상황과 잘 안 맞는 이야기를, 다윗이 하고 있는 거예요.
'예배 드리고 싶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다윗이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실제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다급한 환경 속, 다급한 상황 속에서,
다윗의 마음 속에서 사모했던 건 예배예요. 왜요?
예배 때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예배 때 늘 하나님을 만나니까!
지금 다윗의 마음속에는, 죽고 사는 이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갈망이 하나밖에 없어요.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뭐가 두려우며,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인데, 저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말이에요.
다윗의 믿음의 비밀은, 기도였기도 하고, 또 실제로 살아있는 예배였어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집회를 하는데, 이건 정말 놀라운 시간이에요.
살아있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기도 시간이고, 또 예배 시간이에요.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를 보면, 그의 하나님과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요.
예배가 너무 기쁜 사람, 예배 때 충만한 은혜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거죠.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과 이렇게 예배 중에 친밀하게 교제하고 만나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세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예배자예요.
요4:23절에 '...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근데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실 뿐만 아니고,
우리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면,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돼요.
우리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고, 하나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기도를 통해 갖게 되면,
그게 기도 시간이고, 예배 시간이에요.
혹시 여러분 중에 예배가 부담이 되고, 예배 시간에 졸리기만 하고...
이러신 분들이 있다면, 나중에 강단에 올라와서 기도해 보세요.
계속 졸다가 집에 돌아가지 마시고... 그렇게 계속 가면 안 됩니다.
예배가 계속 지겹고.. 예배가 지루하고.. 예배 시간에 졸리기만 하고...
이런 상태를 계속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예배 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체험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이렇게 예배를 드리다 보면, 그는 영혼이 완전히 죽어지게 돼요.
세상에서 그는 절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건 대단히 두려운 일이죠.
▲어느 목사님이, '왜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하고, 수련회가서 예배 드릴 때,
은혜의 역사가 다를까?' 그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셨어요.
교회에서 늘 일상적인 예배를 드릴 때는
예배 준비 자체가 아주 갈급한 마음이 없이
늘 드리는 예배니까.. 순서에 따라 사회자, 기도자가 자기 순서를 따라 인도하고
그리고 설교도 늘 하던 대로... 그렇게 예배를 드렸는데 (그 결과 큰 은혜가 없는데)
그런데 수련회를 가면, 마음이 처음부터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또는 몇 개월 전부터,
수련회를 위한 찬양 준비도 하고,
수련회에 대해서 또 준비 기도회도 하고,
그리고 수련회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말씀 준비도
미리부터 특별하게 준비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중보기도 부탁을 하고..
'이번 수련회 때 은혜가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하고 부탁도 하고,
그리고 이제 수련회 날짜가 다가오면, 더 마음이 간절해지고
찬양팀은 찬양팀 대로 저녁 밤늦게까지 찬양 연습을 하고...
그리고 이제 수련회가 진행이 되니까,
수련회 때는 똑같은 목사님이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 같은데도... 역사가 달라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집중이 다른 거예요.
'그렇구나.. 예배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는
하나님에 대한 집중이 (수련회 같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구나!'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성령집회에 나오셨는데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언제부터 어떠셨느냐에 따라서,
이 시간에 예배가 달라져요.
▲과거에 한동안 순복음교회가 엄청나게 부흥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보수교단들에서는 한때 이단시 취급을 받기도 했었죠.
그러면서도 엄청난 교세로 성장하고 그랬었죠.
그 당시에 기관 목회를 하시는 어느 목사님이
여러 교단, 교회들을 방문해서 예배를 드려보시고는, 그 소감을 이야기하시는데
벌써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한 30년 전 얘기인데, 그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순복음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한 30분 전에 벌써 예배당에 사람이 꽉 차 있더라는 거예요. 예배 시간 30분 전에!
그런데 뭐 하나 보니, 다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더래요.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들은, 예배 시간에 지나서 들어오는 교인도 많고,
설교 시간이 다 됐을 때, 그때 들어오는 교인들도 많은데,
또 일찍 온 교인들은 대부분 주보를 쳐다보거나, 다른 교인들하고 이야기하거나...
이러면서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 순복음교회는 예배시간 30분 전에, 간절히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느낌이 드냐면 '지금 내가 저 강단에 올라가서 오늘 설교에도
꼭 은혜 받겠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거예요.
벌써 예배시간 30분 전부터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은혜 받을 준비는 다 되어있는 것 같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 여기가 괜히 이런 부흥이 오는 게 아니구나!' 그런 글을 그분이 쓰셨어요.
여러분, 예배 한번 드릴 때, '내가 이 예배 때에,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여기서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고,
내가 오늘 여기서 마음껏 하나님께 찬양하고 그래야 되겠다...'
그렇게 너무 마음이 간절해지고, 그걸 위해서 준비하고...
'내가 그냥 어떻게 예배시간이 벌써 시작했는데, 늦게 들어갈 수 있겠나?
하나님을 알현하는 시간인데..'
'내가 미리 가서 기도해야 되겠다. 그래야 내가 오늘 주시는 말씀 제대로 듣고,
은혜도 제대로 받지...'
예배를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않고,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걸 정말 믿고,
그렇게 주님을 주목하는 예배를 여러분이 드리시면,
여러분, 예배 드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여러분 자신에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요.
다윗이 그 증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도 그는 하나님께 소원이
'나는 예배 드리고 싶다'고 이렇게 나온 거예요.
예배가, 전쟁을 능히 이기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믿으니까요.
▲우리가 예배하는 일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그러면 쉽게 우리는 무너져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요소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이번에도 장신대에 가서 어느 교수님 한 분을 만났는데
아이가 고3 때,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고쳐줘야 될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작정을 하고, 그 뒤에 아차 산이 있는데,
그곳으로 산기도를 매일 가서 '하나님 우리 아들 고쳐주세요. 이거 고쳐야 됩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대요.
그래서 자기가 삐쳤대요. 그 다음부터 6개월 동안은 기도도 안 했대요.
'하나님, 기도해도 소용없네요' 뭐 그래가지고 삐쳐서
6개월 동안 자기가 기도도 안 하셨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참 부끄럽기도 한 이야기지만, 자신의 솔직한 고백을 그렇게 말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그 신학대학의 교수님도, 한순간에 믿음이 무너지는 일이 생겨요.
여러분 하나님에게 삐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도 억지로 교회에 나오긴 했지만, 영 삐딱하게 지금 앉아서
'하나님 섭섭해요...' 지금 이렇게 혹시 생각하지 않나요?
우리 부목사님의 그 어린 아들이 삐쳐가지고
요즘 그 아이와 화해하느라고 아주 고생을 한다고 그래요.
근데 아이가 왜 삐쳤냐고 물어더니, 감기약 먹이는 것 때문에 삐쳤대요.
그 애 입장에서야 억지로 감기약 먹이는 아빠가 참 원망스럽기도 하겠죠...
우리 수준이 꼭 그런 수준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다 하신 건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이 안 든다고... 우리는 이렇게 쉽게 삐쳐요.
이렇게 우리는 영적으로 연약한 자예요. 어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지 몰라요.
그러니까 예배의 건성으로 드렸다가는,
여러분 절대 우리의 주어진 삶 속에 믿음으로 살아내지 못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여자 대학 채플에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아서 갔는데 '꼭 13분 동안 설교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참 이렇게 짧게 무슨 설교를 하나?'
그러나 13분이라고 그러길래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그 다음에 또 연락이 왔는데 '목사님, 설교 13분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기억하고, 명심하고, 13분 안에 설교를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인도하러 갔는데
자기를 맞이해주는 학생회 임원이 '교수님, 설교는 13분 해야 됩니다.'
이제는 화가 나더래요. '아니 알았다고, 내가 13분 안에 끝내겠다고..'
그랬더니 이제 기도하고 예배가 시작이 되고
이제 설교하러 올라가야 되는데, 누가 쫓아와서 자기 옆에 오더래요.
'교수님 설교 13분만 하세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들으니까 너무 속상하더래요.
그래서 이제 13분에 설교는 마쳤는데,
교목님하고 만나서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느냐?
아니 13분 설교하라고 그랬으면, 알아들었으면 됐지...
뭘 그렇게 계속 그렇게 이야기하고, 설교하러 올라갈 때도 또 그 이야기를 하느냐?
그래서 너무 마음이 좀 언잖았다고...' 그랬더니
그 교목님이 너무 미안해하면서
'우리 학교 애들은 설교가 15분이 딱 되면 일어나서 나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강사님한테 너무 실례가 되잖아요.
설교는 15분까지는 견뎌준대요. 암묵적인 합의예요.
15분까지는 하여튼 자리에 앉아서 들어주는데,
15분이 딱 넘으면, 그때는 일어나서 나가버린대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강사님에게도 너무 죄송하고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13분 안에 끝내달라고...
우리 학생 임원들이 이야기를 드렸는데...
제가 그 설명을 미리 못 드려서 미안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래요.
절대로 예배를 이렇게 드리면 안 돼요.
제가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그 목사님은
한 시간 내로 설교 끝내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왜 그러십니까?'
장로님 한 분이, 한 시간 딱 지나면, 예배 중인데도 뚜벅뚜벅 걸어나가신대요.
그것도 예배실 한 가운데 복도로 이렇게 걸어나가신대요.
'오늘 예배가 너무 길고 늦었다. 시간 많이 걸리네...'
그걸 아주 과시하듯이 뚜벅뚜벅 걸어나가신대요.
여러분, 예배를 절대로 형식적으로 드리거나, 의무감 때문에 드리거나,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건 바보 중에 바보예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뵙는 시간인데,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날 때도 너무 좋으면,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건데...
그러니까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런 형식적인 예배인 거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
예배는 우리 안에 엄청난 역사를 이룹니다.
▲제가 정말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렸던 경험이, 군목 훈련 받을 때
첫째 주간의 수요일 예배였는데,
그 훈련소 규정상 첫 주간에는 절대 예배를 못 드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목사들이에요. 신학생 때 평소에 수요예배를 그렇게 열심히 나가진 않았지만,
수요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그러니까 그때부터 막 흥분이 되는 거죠.
'우리가 목사인데 수요예배를 못 드리게 하다니...'
그러니까 부대에서도 난감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조건이 훈련 다 마치고, 그 다음에 식사시간도 줄이고,
씻는 시간도 주지 않고, 그래도 그렇게 예배를 드리겠느냐?
이왕 고집을 부린 거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고'
그래서 일과를 끝나고, 급히 내무반에 들어와서,
성경 찬송을 가지고 또 교회까지 뛰어갔어요.
그리고 이제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당 들어갈 때부터 울었어요.
무슨 찬송에 은혜 받은 것도 아니고, 설교에 은혜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예배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한 3일 정도 훈련소에 있었어요. 근데 마치 뭐 30년 있은 것 같은 느낌으로,
예배당 가서 그렇게 눈물이 펑펑 나고, 감격스럽고,
'예배가 이렇게 좋은 건가?' 그랬어요.
그리고 설교시간에 무슨 소리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울기만 하다가 나왔는데,
씻지도 못했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벌써 훈련소에서 지내는 마음이 확 달라져 버렸어요.
수요일 저녁에 한번 예배드리고, 거기서 찬송하며 울고 기도하면서 나왔는데,
훈련소 생활이 확 달라져 버렸어요.
예배는요,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줘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안 그렇게 되면 이상한 거죠.
예배드리고 나왔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럼 정말 이상한 일인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이렇게 집회가 끝나고 같이 기도하고 그리고 예배당을 나갈 때,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걸 여러분이 아마 느끼실 거예요.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이 암수술을 받을 때,
목사님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모님을 기도해드리고
그리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너무 마음에 걱정이 많고 답답한 가운데 그렇게 있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더래요.
'너 힘드냐?'
'네, 하나님 제가 힘듭니다.' 즉각 대답했어요.
'너 고통스러우냐?'
'네, 하나님 제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앞으로 목회 문제, 아내가 살지 죽을지도 모르는 문제,
애들은 어떻게 키우며...'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더래요.
근데 하나님이 '너 불행하냐?' 이렇게 질문하는데, 대답을 쉽게 못하겠더래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것 가지고 불행하다고 해야 되냐?'
자기가 생각해 봤어요. '내가 불행한가?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그래서 '하나님, 제가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 또 물으시더래요.
'그러면 너 행복하냐?'
불행하지 않다고, 그렇다고 또 행복한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또 즉각 대답을 못하겠어요.
'하나님, 내가 진짜 행복한 건가요?'
그런데 참 놀랍죠. 그 걱정이 많은 그 시간에
'내가 그래도 행복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왜냐면, 내가 예수 믿었죠. 구원받았죠.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받았죠.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죠.
암수술을 받고 있지만, 내가 옆에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었죠...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실 거라고 믿지요. 영생의 천국은 이미 얻었지요.
사명자의 길을 가고 있지요. 뭐 생각해보니 받은 은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아내가 암수술 받는 거 하나가 지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 일도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니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행복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래요. '행복합니다!' 한마디 했는데
그리고는 그 보호자 대기실에서, 목사님 혼자서 그냥 부흥회를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웁게도 염려 근심 다 사라지고, 걱정 다 사라지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충만하고 기쁠 수가 있는지...
그게 예배거든요. 그 걱정, 근심이 많은 그 순간에
목사님에게 예배가 열리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님이 그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이길 힘을 얻게 된 거죠.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주님을 그렇게 만납니다.
오늘 이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만나 주시는 시간,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힘,
문제를 이길 힘, 그리고 여러분 안에 묶였던 거 다 풀어주시고,
충만한 은혜를 회복시켜주시고, 그리고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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