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요일5:18
▲죄 짓는 것보다, 죄 안 짓는 것이 더 쉽다 - 일리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짓는 것이 무엇이 힘 드는가? 죄 안 짓는 것이 힘들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와서 한번 죄 지어보세요.
자리 마련해 드릴 테니까. 조명까지 비춰 드릴 테니까.
여기서 음란한 행위를 한번 해보세요.
음란의 유혹을 이기기 그렇게 힘들다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 뻔히 보는 앞에서
남의 물건 도적질할 수 있습니까? 거짓말할 수 있습니까?
부부 싸움할 수 있습니까?
혈기 부리고, 욕하는 습관 끊어버리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교인들 뻔히 보는 앞에서 혈기를 부리고 욕을 할 수 있습니까?
사실은 죄짓기가 힘든 거예요. 죄 안 짓고 살기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1. 전적 부패한 인간이라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죄 짓기 어렵다.
여러분, 죄 짓기가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전제 조건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가 붙으면... 죄 짓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람들 안 보는 자리에서는 혹시 몰라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정말 죄짓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원래 죄를 싫어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본성은 철저히 죄덩어리로 우리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렘17:9
그런 우리인데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죄 짓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우리 교인들이 다 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몰래 죄 짓기 어렵습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라고 생각해야!
사람만 보고 있어도 죄 짓기가 어렵다면,
우리 마음 중심까지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마음속으로 혼자 짓는 은밀한 죄도 지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민감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에요.
▲성화될수록.. 은밀한 죄 짓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저는 은밀한 죄짓는 데는 선수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주 행실이 바르고 성실하고 칭찬을 듣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않는 때는, 감추어진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란과 욕심과 거짓, 교만의 죄가 제 안에 얼마나 강하게 역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밀한 죄를 짓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셨음을, 정확히 알고 난 다음부터 입니다.
제 신앙이 점점 더 성숙되고, 성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은밀한 죄를 버렸습니까?
우리에게 은밀한 죄가 있는 지 살펴보면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밀한 죄가 있으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즉시로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어서
이제는 죄 지을 생각도 안 들고, 죄가 정말 싫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본성은 똑같아요. 여전히 우리 속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가득한 죄 덩어리에요.
그러나 예수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고 사는 수준에 이르면,
주님이 뻔히 보시고 계시는데, 어떻게 뻔뻔스럽게 마구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처럼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성령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5:18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약4:5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성숙되어져야
그러나 진실한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자기의 은밀한 죄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얼마든지 훌륭하게 보일 수 있어요.
얼마든지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들 보지 않는 자리에서는 은밀한 죄,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 자신의 본성이 죄덩어리니까요...
죄는 노력해서 안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노력해서 죄 안 지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 보고 노력을 좀더 하라고 하셨겠지요. 노력해서 죄 안지어지지 않아요.
죄 안 지으려고 노력할수록 율법주의자가 될 뿐입니다. 위선자라는 뜻이지요.
(물론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동행, 임재)을 보는 눈이 뜨이지 않아서 입니다.
▲3. 허다한 증인들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1~2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기 전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증인 witness>이란, ‘목격자’란 뜻입니다.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사람이요, 우리는 그 증인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보다도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가신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것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은밀한 곳이 있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꿋꿋하게 살아가면
그 증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우리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귀에 그 응원 소리가 들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 은밀한 죄에 빠져버린다면
그 많은 증인들이 탄식을 터뜨립니다. 그것을 들으실 수 있어야 돼요.
물론 우리가 ‘증인’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런 ‘예수님의 임재 의식’, ‘증인들의 존전存前 의식’으로 살아가야 하며,
억지로 그렇게 사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저절로 그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 힘들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그랬어요.
신앙생활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절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까?
정확하게 표현하면, 내가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체험이 없거나 식었고, 영적인 성숙도가 아직 미숙해서
자꾸 율법주의적으로 살려고 하니까,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나면
내 육신의 본성대로 살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부흥인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이 무엇입니까?
부흥은 교인들이 늘어나 예배당에 사람들이 꽉 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당에 사람이 가득 차도 우리 대다수가 은밀한 죄를 짓고 산다면,
그래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산다면
이것은 부흥이 아니고 그냥 살찐 것입니다.
사람 몸이 살찌면 온갖 병이 다 생기는 것처럼,
사람이 많아지면, 문제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부흥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동행, 임재)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이 말, 저 말이 없어져요,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는 것도 없어지고.
거짓말하지도 않고. 은밀하게 죄짓는 것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제목이 무엇입니까? 경제 회복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고 돈 많이 가지면, 다 죄짓는 것 아십니까?
경제 부흥은 필요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기도 제목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눈이 정말 열리면, 직장에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그러면 경제가 부흥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진짜 기도 제목은,
먼저 믿는 성도들부터 온 민족이 하나님을 진짜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은밀한 죄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not 행위)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렘31: 33~34
▲부흥의 가장 큰 징조가 무엇입니까?
먼저 믿는 성도들에게 은밀한 죄가 애통함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 보는 앞에서만 문제 없으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보고 안 보고가 상관이 없어요.
내 속에 있는 은밀한 죄가 견딜 수 없이 아파요. 심각한 문제라고 느껴요.
이제는 사람이 보든 안보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어요.
그것이 부흥의 조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눈이 그만큼 열렸다는 뜻입니다.
▲제가 1984년 광주 통합병원 수술 대기실에서 처음 성령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 제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졌던 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어째서 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제 속에 그런 죄가 있었는지 자체도 몰랐어요.
은밀한 것이 더 이상 은밀한 것이 되지 않는 역사, 이것이 부흥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부터는
우리는 점점 더 죄짓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것이 큰 복입니다.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주여, 은밀한 죄도 지을 수 없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정에, 교회에, 이 민족에 이런 부흥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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