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대하20 :12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대하20 :12
▲저는 목회하면서 여러 고비를 겪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하고,
제가 해결해 나가야 될 문제들이 늘 끊임없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그 어려운 고비들과 해결해야할 과제를
해결하는 비결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데...
이게 지금까지 제가 목회하면서, 터득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것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만 철저히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너무 싱거우신가?
이게 말(이론)은 쉬운 것 같지만,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것은
많은 훈련과 연단을 통해.. 점점 그렇게 우리 각자가 변화/성숙되어져 가는 것이다.
▲처음에 저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문제를 만날 때
끊임없이 무능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좌절하시는 분들이, 꽤 많으실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없다’
‘나는 이런 과제를 해결할 능력/자원이 있다/없다’
‘나는 여건이 좋다/나쁘다’
‘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나서 태어났다’ 등
사람은 항상 자기중심적이며, 끊임없이 자기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결국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
빨리 무너지느냐.. 천천히 무너지느냐.. 그 시간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무너진다는 결론은..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다.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승리의 비결이 이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이 원리는,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부, 사업가, 직장인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크리스천의 삶의 원리이다.
오늘 이 금요철야의 밤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찾아 나오신 분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권면은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분이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도.. 자기를 자기 능력을 바라보다가는..
교만해서 넘어지거나, 타락해서 넘어지고 만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만, 그가 성공했다 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답이 생긴다. 살길이 열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헤쳐 나가려는 용기가 내 속에서 생기게 된다.
내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내면이 달라진다.
내가 ‘한 번 부딪혀 보자. 뚫고 나가보자!’하는 용기의 사람이 된다.
상황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상황인데.. 신기하게도 내게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돌봐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그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불끈 불끈 생기게 된다.
▲사례1. 자녀를 보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기도드리기
이따금씩 부모들이 자기 어린아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많은 경우, 아이가 아직 어린 데, 중병에 걸려 심히 아플 때이다.
어린아이가 큰 수술을 하기에 앞서.. 기도해 드리면서도 제 마음이 참 아프게 된다.
그런데 제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몸이 크게 아픈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줄 때,
‘주님의 뜻이, 단순히 그 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님이 그 질병을 통해
그 아이 스스로가 어려서부터 기도를 세게 하도록 시키시든지,
또한 그 부모가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도록 시키시는
그런 어떤 감춰진 이면적 섭리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해 드린다.
‘주님, 이 아이를 고쳐주시고, 이렇게 기도를 시키시는 까닭을 우리로 깨닫게 하옵소서!’
아이의 몸이 안 아프고 건강하면, 부모 입장에선 그보다 더 다행스런 게 없다.
게다가 아이가 커면서 부모 말도 잘 듣고, 학교에서 공부까지 잘 한다면,
아이가 부모의 자랑이 될 정도다. 아이를 쳐다볼 때마다 부모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나중에 한참 지나고 보면.. 믿음의 부모들은 깨닫는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 아이를 위해, 평소에 기도를 많이 못하고 키웠다는 것을!
그래서 자랄 때는 참 잘 자라준 것 같은데, 어느 날 부모는 깨닫는다.
커서보니 아이가 참 ‘신앙적으로 답답해져 있더라'는 것이다.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들어서 세상적으로는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바라보니, 아이에게 <믿음의 중심>이 세워져 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는,
하나님이 그 자녀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시키시기 위해서
그 가정의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큰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신다. 주로 질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외적으로 드러난 그 어려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어려운 일 속에는, 어떤 신비한 주님의 역사가 감춰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서 심히 좌절될 때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 자녀를 바라보며.. ‘어렵다, 힘들다’하며 탄식하지 말자.
그 어려움 속에 감춰진, 주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내가 평소에 잘 안 되는 깊이 기도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란다.
주님을 바라보시라.
그러면 답이 생긴다.
그 어려움을 주시는 주님의 섭리와 뜻을.. 내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생긴다.
주님의 뜻 가운데 자기가 지금 행하고 있으니까! .. 이게 좌절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사례2. 사역자가 내게 도움을 청해 올 때, 주님만 바라보기.
제가 성남에서 제법 큰 교회를 목회하다 보니까,
이따금 어려운 형편에 처한 목회자들이,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개인적으로 이때 참 제 마음이 안타깝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여건만 되면,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을 다 돕고 싶다.
그런데 주님이 도무지 도울 수 있는 여건을, 제게 주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다.
교회 재정도 그 사용처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또 남아있지도 않다.
또 목회자가 그 재정을 임의로 집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제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정한 범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요청하는 모든 도움에, 다 부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면,
‘아,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 분을 돕지 않게 하셨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역자가 주님의 도우심을 직접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특히 그렇다.
물론 주님은, 저를 통해서, 지금 그 어려움에 처한 분을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제가 덜컹 너무 쉽게 그 분을 도와주면,
그 분이 훈련받아야 할 어떤 부분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막으셔서, 지금 그 분을 돕지 못하게 하신다’는 경우를
제가 가끔 깨닫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사역훈련을 받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주님으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는 훈련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 때는 주님이, 내 주변 사람의 도움을 다 막으셨다.
사방팔방으로 철저히 막으셨다.
물론 그 때는 제가 너무너무 힘들었다.
‘나는 왜 이리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
그러나 주님이 일부러 이렇게 나를 사지로/궁지로 몰아가신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리하여 나는, 남은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금식을 하든지, 재를 뒤집어쓰든지, 오직 결사적으로 기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옷자락만 간절히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주님만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갔다.
이런 법을 몇 번의 체험을 통해 터득하고 나면,
어떤 어려움이 또 새롭게 내게 닥치더라도, 어떤 영적인 맷집이 생긴다.
‘내가 주님 한 분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런 믿음의 용사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하나님이, 도움을 요청하는 그를 훈련시키시느라,
저를 막으셔서, 도무지 그를 도와줄 수 없게 하신다.
이때,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죄송하다.
그러나 속으로 기도를 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깨닫고,
그냥 속으로 간절히 기도만 해 드린다.
그런데 정말 지나고 보면,
‘그 분이 직접 하나님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이 직접 그 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간증을 듣게 되고,
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도울 때에도, 반드시 기도하고 나서.. 도와야 한다.
하나님이 대개는 응답을 잘 주신다. 내가 나서야 할 때인지, 아닌지..
내게 아무 감동이 없고, 물질도 없을 때에는.. 내가 나서야 할 때는 아닌 것이다.
▲사례3. 아버지나 선배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기
제 아버지는, 감리교에서는 연륜이 오래 되신 목사님이다.
그래서 제가 신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가만히 있어도 아버지의 후광을 입게 되는 경우가.. 사실 있었다.
그냥 제 아버지의 성함 석자만 말씀드리면, 감리교에서는 다 통했다.
‘아~ 그 목사님의 아드님이세요?’
그 다음부터는 저를 대하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이 이런 일을 별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아버님의 도움이, 제게서 저절로 다 끊어졌다. 주님의 섭리였다.
아버지를 의지해서, 제 목회 임지를 얻어 보려는 소원,
철없던 신학생 시절에는, 그런 소원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될 리가 없다.
주님이 어느 순간부터, 그런 헛된 소원들을 제게서 다 차단시키셨다.
저는 강남의 아주 큰 교회에서 부목사를 했기 때문에,
이런 큰 교회에서 일하면,
‘나중에 지교회를 세우려 할 때,내가 좀 발탁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인간적인 기대를 품었던 적도 있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런 인간적인 기대를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교회를 의지하던 기대를.. 다 끊게 하셨다.
하나님은
제 아버지도, 제가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도..
그 어떤 인간적 대상도, 제가 의지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당신만 의지하는 것을 원하셨다.
그래서 제가 새벽기도 때 교회당 맨 구석에 가서,
그런 모든 인간적 기대를 다 끊고서, 깨끗하게 하나님께만 간구했다.
‘하나님, 제 앞길을 좀 열어주십시오! 저룰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제가 부목사로 섬기던 그 큰 교회에서,
나를 지원해서 개척시켜 주는 기대를 깨끗이 접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
멀리 부산제일교회에 가서 10년 정도? 목회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이제 성남에 올라와서 복정역 근처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
▲여러분, 정말로 오직 주님만 의지하시기 바란다.
사람을 의지해 보시라!
주님이 그 도움 받는 길을 의도적으로 다 차단하실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직접 구해야지..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철저히 주님 한 분만 의지하는 것이다.
‘주님은 왜 나에게 지지리도 복을 안 주시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뜻임)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신 것이,
사람을 의지해서 일을 처리한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는 것을
지나고 보면 다 깨닫는다.
▲마치는 말
목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목회가 좌절에 빠지고,
제 자신이 스스로 시험에 들어서 바닥을 헤맬 때
그 모든 이유는, 제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계속 겪으면서,
제가 깨달은 승리의 비결은
‘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이런 믿음의 연단을 거친 후에
이제부터 더 이상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어!’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끝내 버린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좌절할 건더기가 없어져 버린다. 내가 죽었으니까!
그것은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기도 하다.
제 자신을 바라보면.. 넘어지니까, 좌절하게 되니까,
어쩔 수없이 제 자신을 바라보기를 중단하고, 주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와 함께 계시고, 저와 동행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몫은,
혹시 이런 경험을, 아직 못 해보신 분은,
앞으로 여러분의 각자 삶의 현장에서
이 원리를.. 실제 자기 경험으로 경험해 보는 가운데.. 자기 스스로 확증하는 것이다.
'◑추천인 명설교편◑ > 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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