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의 놀라운 은혜 히8장
새언약은, 비유하자면, 하나님의 재혼 퍼로퍼즈와 같습니다.
왜냐면 새언약은 렘31:31-34, 겔36:25~27 등에 나오는데,
이 시기는, 남유다의 멸망, 바벨론 포로 시작 시기입니다.
그러니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혼인이요,
약 1천년 후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은,
그 혼인 언약이 삐걱거리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마침내 깨어졌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거두어지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지요.
그런데 바벨론에 잡혀가자마자, 하나님은 새언약을 약속하시는데, 렘31:31-34, 겔36:25~27, 11:19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신부인 이스라엘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다시 합치자!'고.
재혼 프로퍼즈인 셈이지요.
그 새언약, 다시 말해 재혼이 효력을 나타낸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고, 이어서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 신약 성도들과 다시 합쳐졌는데,
이는 한 번 이혼했다가, 다시 재혼한 것과 같은 것인데...
옛언약보다 더 강력하고, 더 완전한 언약으로 다시 합쳐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본문 히8:6~13절은, 그 새언약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8: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렘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은 어느 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10지파와 이미 이혼했는데, 너희 두 지파도 이혼하기를 원하느냐?’ 라는 뜻이죠. 렘3:8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편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마저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이혼은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과 이혼하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십니다. 말2:16
결국 이스라엘과 다시 재혼하기를 늘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언약을 선포하시고, 좋은 소식(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새로운 언약을 제시’하십니다.
말하자면 이혼했던 부부가, 다시 재혼하는 식이지요.
그것이 바로 신약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중에도, 하나님과의 결혼 언약을 깨뜨리고, 이혼한 신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배도했거나, 배도 직전에 이르른 신자들이지요.
이제 저자는, 그들에게, 옛 언약에 머물려 하지 말고, 새 언약으로 들어오라고 촉구합니다.
그 새언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래 설교문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언약의 놀라운 은혜 -이 단락 출처-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천상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그 분 앞에 담대히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성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곳일까 궁금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양식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하늘의 성전을 보여주시면서,
그대로 만들라고 하여 만들어진 성막을 건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5
율법에서 정하신 성막과 제사의 모든 것의 원형은 하늘에 있습니다. :5
우리가 오늘 예배를 드리는데, 이 예배의 실상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예배당을 보면서 천국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그려 보아야 합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이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제사장과 비교하여 “더 좋은 언약의 중재자”라는 말씀입니다.
6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그가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하여 세운 더 좋은 언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새번역)
“더 좋은 언약” “새 언약”이라고도 말씀하였는데,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누려야 할 은혜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 언약을 완전히 이해하고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더 좋은 언약이라 하였으니, 옛 언약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하신 약속을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이것이 율법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마음껏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받은 백성인 이유는 이와 같은 언약을 가진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을 길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 이 율법을 경솔히 여기고 지키지 않을까봐,
율법을 어기면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라고도 약속하셨습니다.
갈3:10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언약이 선포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다 준행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출 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상황이 이와 같이 되자 하나님께서 첫 언약을 폐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랬다 저랬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첫 언약을 깨뜨리신 것은
만약 그 언약대로 하자면 이스라엘을 영원히 멸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완전 폐기가 아니라, 보완입니다.
하나님이 잘못해서 보완하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못 지키니까, 보완하신 것입니다. 요즘 말로 개정판이죠.
하나님의 마음은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지켜 복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새 언약입니다. *히8:6~13, 렘31:31-34, 겔36:25~27, 겔11:9 등
그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서 완전하고, 거룩하고 선합니다.
율법이 주어질 때, 출19:18절에 보면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히12:21절에서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웅대하고 장엄하게 사람들에게 계시된 것이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살 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요, 완전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은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새 언약이 오늘 본문에 언급된 것입니다.
8:10절 ...'그 날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다가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마음을 뒤집어 변화시키시겠다, 즉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시겠다'는 뜻입니다. :10
하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게 하시려 한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을 것입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시고, 모든 술이나 마약을 다 없애시고, 벼락으로 죄지은 자를 다스리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억지로는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
어쩔 수 없어서 겉으로, 억지로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기로 언약하신 것입니다.
바로 성령을 통해서, 변화된 우리 마음을 통해서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은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렘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런 엄청난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죽으신 것은
우리를 속죄하심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령님을 우리 안에 보내주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본 제자들이 “이제는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나 보다.
가서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자” 할 때, 예수님께서 “아직 아니야” 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행1:4~8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고후1:22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누구나 마음에 하나님께서 임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11절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기 이웃과 자기 동족을 가르치려고,
주님을 알라고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꼭 꺼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여러분 안에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계십니다.
“예수님, 나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배드리러 나오신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셨기에, 이제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괴로운 것입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서 복을 받고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근심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심이라도 감사한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근심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겔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빌2: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여러분, 왜 이렇게 살지 못합니까? 이런 체험이 없습니까?
성령님이 오신 것은 알지만, 친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을 머리로 알기만 하지, 누리고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라는 권면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의 복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기도 시간이 너무 적다고 괴로워합니다.
매번 앞으로는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실패합니다.
오래된 습관, 육신의 힘 그리고 온갖 유혹들로 가득한 주변 환경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기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낙심합니다.
왜 이런지 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도하라는 요청’을 모세의 음성으로,
율법의 명령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 제 마음은 너무나 냉랭합니다.
저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께서 부드러운 사랑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수 없다. 너는 내가 너를 ‘기도하지 않는 죄’에서 건져낼 것이다.
네 힘으로 승리를 얻으려는 노력을 중단하라. 나를 믿기만 하라. 내가 기도하게 해 줄 것이다!"
(단 선수로 대신 뛰어주시는 게 아니라, 코치로서 도와주십니다. 선수 자기가 계속 뛰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은 다른 모든 복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모든 것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기도 생활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믿고 의지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실험해 보고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거룩하게 사는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한걸음씩 순종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과 꾸준히 친밀함을 훈련해 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이 사실이 너무나 귀한 은혜요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 귀하게 여기고 집문서나 주식이나 증권, 패물을 귀하게 여기시지요.
건강도 귀하고, 명예도 귀하고 성공도 귀하지요,
그러나 진짜 귀한 보물은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입니다.
▲옛언약과 새언약에 대해, 이해가 쉽도록 예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주1)
▲새언약에 관한 추천 설교
8:6, 9:15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더 월등하다 / 잭 푸닌
◑절별 해석 .......................................................................................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위대한 분이심을 시사한다.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성소와 참 장막'은 문자적으로 '참 장막인 성소'(the sanctuary, the truetabernacle)를 의미한다.
'성소' 와 '참 장막'은 그리스도께서 중보 사역을 행하시는 하늘 처소를 가리킨다(롬 8:34, Heitt).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지상의 장막과는 다른(9:11,24)
주께서 직접 이루신 하늘 처소에서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중보 사역을 행하신다.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일'을
그들은 소제물과 수소, 수염소, 수양, 비둘기 같은 번제물로써 1년에 한 번씩 속죄 제사를 드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도 드려야 할 제물이있어야 한다.
저자는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드려야 할 제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드려야 할 것은 '흠 없는 자신'이었다(7:27, 9:14).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라는 말은 반어적(反語的)인 표현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제사장이 되셨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께서는 지상의 어느 성소에서도 제사장직을 수행한 적이 없다.
이 땅의 성소에는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아론 계통의 레위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막 밖에서 잡은 짐승의 피를 기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다(레 4:4,5).
그와 같이 예수께서는 이땅에서 대속의 피를 흘린 몸을 가지시고
하늘에 있는 참된 성소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중보 사역을 수행하신다(7:25, 9:12,24).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지상의 성소에서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모형에 불과하다.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본문은 출 25:40의 인용이다.
이외에도 동일한 문구가 출애굽기의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다(출 25:9, 26:30, 27:8).
그래서 혹자는 모세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상에 있던 성소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式樣)대로 지어진 것이었으며
이같은 식양을 따라 세워진 성소와 성소의 각종 기구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를 지닌 모형에 불과하다(출25-40장).
이러한 상징적인 모형들은 언젠가 실체에 의해 대체(代替)될 수 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대체되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바쳤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마 27:51)은 더이상 이 땅의 성소가 필요 없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심으로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로,
인간의 제사장 사역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행하시는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처소이다.
예수께서 얻으신 직분이 아름다운 이유는 대제사장의 가장 본질적인 임무인 속죄 사역에 있어서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순종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렘 31:31-34에 예언된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여셨다. 새 언약은 과거에 맺었던 옛 언약과는 비교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언약으로 예수께서 지상에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 사역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자는 '첫 언약'과 '둘째 언약'의 비교를 통해서 '첫 언약의 불완전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둘째 언약'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저 첫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
즉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가리킨다(출 19:3-8, 24:7, 신6:1-3).
그리고 '둘째 것'이란 '새 언약'(8절), 즉 하나님께서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세우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완전한 언약을 가리킨다(막 14:24, 요19:30).
새로운 언약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옛 언약이 불완전하였음을 시사한다.
모세의 중재로 주어진 율법은 외적인 면만을정결케 할 수 있었을 뿐 인간의 내면
즉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었으며(9:9, 10)
인간이 온전히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좋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본절에서 12절까지는 렘 31:31-34의 인용이다.
저자는 이 인용을 통해서 첫 언약을 대체한 새 언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본절의 '날이 이르리니'나
10절의 '그 날 후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주 사용한 표현으로(렘 30:3, 31:27,31,38)
미래에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것은 옛 언약 즉 모세의 율법을 폐하심을 암시한다.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지 않았음을 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 열조(列祖)들을 구원해 주신 후 그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언약을 맺었으나(출 19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언약을 준행치 아니하였다.
그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에 맺어졌던 옛 언약의 효력은 상실되었으며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진노의 심판을 선고 받았다(렘 22:5).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저자는 예레미야서를 인용하는 가운데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일이 사람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그 날후에'가 언제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으로'라는 말로 보아서 예레미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져 있었던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 하나가 될 그 어느 미래를 내다보며 예언한 표현일 것이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새롭게 세울 언약은 '첫 언약'(7절) 즉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는
다른 것이었다. 후자가 외적인 것으로서 돌판에 새겨진 것이었다면(출 32:15,16),
전자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으로서 돌판이 아닌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은 옛 언약이 할 수 없었던
양심의 정결(9:9,10) 곧 인격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하나님은 더이상 의문(儀文)에 의해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기를 원하지 아니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의 법을 자기 백성의 심비에 새겨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순종하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0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새 언약의 특성이 열거되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계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세대가 다 죽은 이후의 세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 호 4:1,6).
그러나 새로운 언약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는 개개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새 언약은 10절에서 언급된 대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진리를 먼저 받아들인 자가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여 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도 사역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주된 사역 가운데 하나이다(눅 10, 1-16, 고전 1:21).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안에는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한다는 약속이 들어있다.
옛 언약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할 때마다 제사장에게 가서 속죄 제사를 드려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6절) 단번에 신자들의 모든 죄를 속해 버리는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7:27, 10:10).
따라서 하나님은 새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구약 시대의 제사와같은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필요한 것은 범죄할 때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요 5:14, 갈4:8,9).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저자는 이제 새 언약의 내용에서 관심을 돌려 '새 언약'의 '새'(카이넨)에 초점을 맞춘다(8절).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셨던 옛 언약
즉 율법의 효력을 폐기시키셨음을 암시한다.
옛 언약은 불완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통해서 옛 언약을 폐기시키고(7:11,12)
불완전한 구약 시대의 율법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완전히 대체시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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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옛언약과 새언약에 대해, 이해가 쉽도록 예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 예쁜 정원과 꽃밭이 있었고, 연못도 있어서 물고기도 살았습니다.
그 앞에는, 정원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로, 출입금지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놀다 보면, 공이 그 정원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고,
또 예쁜 나비를 따라서, 그 정원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거기에 있는 파란 잔디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정원에 들어가는 학생도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마다 선생님은, 금지 팻말을 넘어가는 학생들을 찾아내어
엄하게 야단을 치고, 사안에 따라서 심한 경우에는 벌도 주었어요.
그러자 일부 학생들은, 차라리 정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정원이 없으면, 정원 속으로 들어가는 일도 없고, 그러면 야단 맞을 일도 없다는 거죠.
그리고 매일 교내방송을 통해서, 한 명만 어겨도 모든 학생들이 잔소리를 들어야 되고,
정원에 들어가지 말라고 선생님이 교내방송을 하니까
정말 정원이 있는게, 보기에는 좋지만, 학생들에게 점점 짐처럼 무겁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또 이런 학생도 일부 있는 거예요.
정원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까, 더 들어가 보고 싶은 거예요.
‘뭐가 신비한 것이 숨겨져 있기에, 저렇게 들어가지 말라고 날마다 훈시를 하시는 걸까?’
이래 저래 그 정원은, 학생들에게 이제 점점 짐덩어리가 되어 갔고,
어떤 혜택을 주기 보다는, 많은 잔소리와 훈시와, 어기면 벌을 받게 되는.. 불편한 게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해 왔어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정원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어요.
-정원에 함부로 마구 들어갔다가, 진드기 같은 미세한 기생충에 물리게 되면 병에 걸린다는 것과
-정원의 꽃을 함부로 만지게 되면,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은 피부병에 걸릴 수도 있으며
-정원의 물고기를 함부로 잡아서 만지다가 손을 씻지 않으면, 해충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거였죠.
그러면 정원을 없애버리면 아예 더 좋겠지만,
정원은 원래 정원을 만든 목적대로, 학생들의 정서 생활에 도움이 되고, 학교 경관에도 좋으니
다만 거기에 들어가서 망치지 말고, 잘 관리하기만 하면.. 두기에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정원 앞에 계도하는 알바 helper 선생님을 한 분 세웠어요. *성령님
그래서 학생들이 깜박 잊고서, 정원에 함부로 들어가려 할 때에, 알바 선생님이 호각을 불어 주시죠.
주의하라고요!
이제 학생들은,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한 다음에, 그 정원을 만든 본래 목적을 이해하게 되니까,
자원에서 그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기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혹시 잊어버릴 때는, 알바 선생님이 호각을 불어서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학생들은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무리하게 이런 예화를 만든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행복을 위해, 율법(옛언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10:13등
그런데 구약의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율법을 오용 또는 남용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지키지 않고, 외적으로 지키는 척만 했습니다.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새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장차 율법을 마음으로, 진심으로 지키게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렘31:31-34, 겔36:25~27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새언약의 복음을 전파해 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산상수훈
그리고 본문 히8장은, 예수님을 ‘새언약의 중보자’로 소개하면서,
예수님이 렘31장과 겔36장 등에 예언된 새언약을 신약 성도들에게 가져다 주셨으며,
또한 성령님을 보내사,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새언약을 지키는 길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참고로, 옛언약, 새언약 이라고 할 때,
옛언약은 잘못된 것이라서 버려버리고, 폐기처분해 버리고
완전히 새것을 새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문 13절이, 그런 오해를 불러 일이키기에 딱 알맞습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그러나 예수님이 마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셨듯이,
새언약이란, 구약에 사람들이 율법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나
잘못 사용했지요. 오용, 남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계도하고 잘 지도하는 보헤사 helper 성령님까지 세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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