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7:37~39, 딤전6:11
딤전6:11절에 보면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그렇게 부른 구절이 나옵니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뛰더라고요.
여러분도 아마 그 본문을 큐티하실 때,
그 구절을 특별한 감동으로 읽으셨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우선 저를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것 같은 느낌,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부르시는 것 같았어요.
여러분도 주님이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부르시는 것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누구를 부르시지?'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이런 자의식이 없는 사람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죠.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부르심에, 내 마음이 뛰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이 '너 하나님의 사람아!'
'아~ 나를 부르시는 거구나!'
이렇게 여러분의 심령이 반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을, 재확인해 주는 그런 말씀이었어요.
하나님이 제게 언제부터인지
'하나님의 사람을 네가 주목하라, 하나님의 사람을 네가 만나라,
하나님의 사람과 교제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을 서로 연합시키라!'
그런 특별한 어떤 소명 같은 말씀을 주셨었어요.
그래서 어디든지 가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만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을 혹시 만나지 않을까?'
물론 실망스러운 때도 많아요. 그렇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분명히 스스로 느끼는데
제가 여러분을 잘 몰라보고 있다면, 저를 찾아와 주세요. 제가 찾아가기가 쉽지 않죠.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저를 찾아와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놀라운 기쁨이에요.
그 소명을 다시 일깨워주시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너 하나님의 사람아!'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을, 내가 만나야겠다...'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 모르는 이들이 있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하나님의 사람인데, 너무 하나님의 사람처럼 안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완전히 마음이 무너진 사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담대히 부르지 못하는...
주님과 친밀함 속에 살지 못하는 사람...
겨우 그저 교회만 다니는... 이런 참 안타까운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일깨워내는 일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에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일깨워주는 일!
오늘 이 밤에 오신 여러분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너무 강하게 부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여러분이 오늘 이 밤에, 이 집회에 오기가 어려워요.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시면, 사실 오기가 어려운 자리거든요.
여러분들 안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임이 더 분명하게 느껴지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밤에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안 계신 줄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지를 알아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렇습니다.
딤전6:15~16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이 구절로 하나님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언급해요.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딤전6:15~16
여러분 주의력이 산만한 분들이 있어요. 애들 중에도 그렇고요.
뭘 하나에 집중을 못해요.
테레비를 보는 건지, 숙제를 하는 건지...
둘 다 안 되는 그런 애들도 있죠. 요즘에는 점점점 그렇게 되어져 가요.
근데 성도들 중에 말씀에 집중이 안 되는 분이 있어요.
성경을 읽어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딴 생각하면서 읽는 거죠.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신가?'
이 딤전6:15~16절 말씀은 참 너무나 소중해요.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에요.
그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알면 알수록 내 삶이 그냥 바뀌어버려요.
◑하나님을 막연히 믿으면 안 됩니다. 주1)
◑생수의 강도 좋지만, 샘물도 소중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오늘 본문에 하셨어요.
마치 그림같이 하셨어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7:38
'정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체험이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면..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예수님은 너무 과장을 심하게 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실제로 그러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자기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사람!'
그게 성령을 받은 사람에 대한, 정확한 우리 주님의 예언이에요.
저뿐만 아니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이 주신 예언이에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삶을, 여러분이 살게 되어 있어요.
이건 정말 너무 흥분되는 일이에요.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이왕 예수를 믿으셨으면, '내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참 안타까워 하실 거예요.
예수를 믿고도..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지 않는 거예요.
우리 주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거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마음에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주님, 말씀이 제게 그대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제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하고 같이 살 때,
내가 일터에서 사람들하고 같이 일할 때,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이렇게 교회를 세워갈 때,
주님 제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도 제목이죠.
그리고 실제로 이것을 우리가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부흥이 왔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주님의 마음은
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이런 놀라운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되냐면
우리 안에 '샘물'과 같이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주제
(여기서 생수의 강은 큰 은혜, 샘물은 작은 은혜를 뜻합니다. 강이 샘보다 크니까요)
많은 성도들이 생수의 강이 철철 흘러나오는 것만 자꾸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죽을 때까지 경험 못하고 끝날 수 있어요.
'왜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은혜를 안 주시나?
이왕 예수 믿으면, 그렇게 충만하고 강하게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경험을 하게 해주시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는데, 좀 그렇게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데,
왜 나에게는 그렇게 허락 안 해주시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여러분 속에 샘물(↔생수의 강)과 같이 역사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주목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 안에 임하여 계십니다.
고전13: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정하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님은 이미 여러분의 마음에 계세요.
그것부터 먼저 여러분이 분명히 믿고, 실제로 누리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즉 작은 것을 잘 누리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큰 것이 옵니다)
즉 이런 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요4장에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을 '샘물'에 비유하셨습니다.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장에서는 '샘물'이라고 했고,
요7장에서는 '(생수의) 강'이라고 그랬어요.
근데 순서적으로 '샘물'부터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강'이 있는 거죠.
그냥 '강'부터 먼저 경험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 역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속에 지금 '(생수의) 강'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지금 경험하지 못할 수 있어요.
여러분 중에 지금 성령의 역사가, 강과 같이 흘러 넘치는 역사가 있는 분들이
아주 적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중에 (작은) '샘물'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한 사람도 없어요.
우리는 '강'과 같은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영적으로 답답해하는데,
'샘물'과 같은 은혜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기뻐하지 않아요. (샘물도 기뻐해야 해요)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샘물과 같이 역사하는지/ 안 하는지는
여러분 스스로 한번 가만히 점검해 보세요...
▲이 샘물의 역사는 무슨 역사냐 하면, 생명의 역사예요.
여러분 목말라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샘물이나 강물이나 물이면 되는 거죠. 똑같아요.
꼭 강물이 아니라도, 솟아나는 샘물이 있으면 그는 살아요.
우리가 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내 영이 살았어요.
예수님 믿었죠. 예수님이 나의 구주되신 걸 믿었죠.
오늘도 여러분이 교회에 오셔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경험하고 있죠.
여러분의 영이 살아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영적인 갈망이 있어서 이 집회에 오셨잖아요.
기도를 잘하고/ 못하고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 기도하는 사람이잖아요.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느냐, 말씀을 알아듣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말씀 자체에서 은혜를 받잖아요.
여러분 속에 성령이 샘솟는 샘물과 같이 역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는 샘물, 강의 차이가 없어요)
고전2: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성령님이 그렇게 하고 계신 거예요.
'내 안에 지금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구나'
강물과 같이 (크게) 역사하지 않으시더라도,
지금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것만큼은 분명하잖아요.
여러분, 기적 기적 그러고, 능력 능력 그러지만
가장 큰 기적과 가장 큰 능력이 뭘까요?
그건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잖아요.
그렇죠.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보다 더 큰 기적, 더 크고 놀라운 능력이 어디 있어요?
지금 우리가 가장 놀라운 큰 기적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 장본인들입니다.
내 영이 죽었다가 지금 다시 살아났잖아요. 죽었던 우리가 살았잖아요.
엡2:1절 말씀처럼! 그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잖아요.
그러니 이 '샘물'과 같은 역사를, 절대로 작게 여기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우리 속에 일어나는 이 샘물의 역사를
작게 여기는 거예요.
'말씀의 은혜 받는 거, 그걸 가지고 뭐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는 거야?'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거, 그게 내게 돈을 벌게 해주는 거야?
그게 내 문제를 해결해 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큰 것만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안에 오신 성령님께서 마음이 어떠시겠어요?
세상에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여러분께 계속 주시고 계신데...
여러분의 영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요.
하나님을 알게 했어요. 하나님을 믿게 만들어 주셨어요.
은혜를 갈급해 하는 마음이 생겨요. 영이 살았어요. 구원받았어요.
이걸 놀랍게 생각하고, 이걸 너무 감사하게 여기고,
그렇게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을 내가 찬양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사람에게
강물과 같은 역사도 일어나는 거예요.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역사하시는 것을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렇게 여긴다면...
성령님께서 어떻게 더 강하게 역사하세요?
여러분 안에 오신 성령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고, 느껴지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오셨겠지... 이렇게 생각은 들지만, 별로 실감이 안 납니다'
하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꼭 그렇게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이렇게 해야 믿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 안에 지금도 성령님이 와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도무지 부인할 수 없게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성경책이에요.
그 사실을, 눈으로 그냥 보고 읽을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여러분 이 성경책은 성령께서 기록한 말씀이에요.
'성령님이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신다' 이 사실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해서 못 믿겠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성경책을 주신 거예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다 자기 심령에 생명의 감동을 받아요.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니까요!
이렇게 확실해요. 우리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게 이렇게 확실해요.
종종 성령 충만함을 얻으려고, 기도원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요.
마음에 작정을 하고 '이번에 꼭 내가 큰 은혜를 받고 와야 되겠다'
그때 그 큰 은혜가 주로 '강물과 같은 역사'예요.
△어떤 사람은 '생수의 강과 같은 역사가 내게 좀 경험되면 좋겠다'
그런 소원을 갖고서 기도원에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성령의 체험을 하고... 이런 분들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그런 갈급함으로 기도원에 올라갔지만
무슨 역사가 안 나타나요.
기도를 해도 그렇게 뜨거워지지도 않고.. 자꾸 졸리기만 하고..
자기 마음에는 그렇게 간절한 기대가 있는데, 무슨 역사는 없는 것 같아요.
'주님은 왜 내게는 역사를 안 하실까?'
주님이 마치 나를.. 아주 지칠 때까지 나를 끌고 가시는...
참 너무 잔인하기도 하시고, 너무 무정하시기도 하시고,
아주 애간장만 태우게 만드시는... 이런 하나님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다가 기도원에서 하루를 지나고, 이틀을 지나고,
마음에 원하던 특별한 체험이 없고 그러면
'아휴 그만 내려가야 되겠다.'
그냥 기도원에 올라왔던 것만으로 의미를 찾는 거죠.
'혹시나 했는데 또 역시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끝나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 안에 이미 역사하고 계신 성령님에 대해서,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감사도 안 하고,
그 성령님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으면서,
자꾸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해 주시기만을 자꾸 기다리니까.. 그런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원이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성령의 역사예요.
갈망 자체가 성령의 역사라니까요!
은혜에 대한 갈망 자체가, 여러분 안에 이미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렇게 강하게 역사하고 계신 것 자체에 먼저 주목해야 돼요.
▲여러분이 오늘 성령집회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기대한 만큼 어떤 역사를 안 해주시고 계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 그분을 주목해 보세요.
여기와 앉아있게 하시고, 마음에 간절함을 주시고
여러분 안에 찬양을 주시고, 여러분에게 지금 믿음을 주시고...
이건 상상이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은혜예요.
이런 은혜를 전혀 못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우리는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모여있기 때문에
전부 다 그런 줄 알지만,
사실 성남이나 서울 전체를 보면, 얼마나 적은 숫자예요?
△여러분 캄캄한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이 이렇게 올 때, 그때의 대지를 한번 보셨어요?
어둠이 지나가면서 환한 아침이 오는 아침, 그 지평선이나 산의 능선,
그때 어둠이 지나고 밝은 아침이 올 때, 엄청난 소리가 들리나요?
대자연이 굉음을 내면서 아침이 오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어둠이 지나고, 아침이 와요.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그걸 아주 예민하게 보지 않으면, 언제 밝은 아침이 왔는지도 몰라요. 벌써 환해졌어요.
어둠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 정말 놀라운 변화인데.. 아무도 모르게 순간에 바뀌어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꼭 그렇게 일하세요.
우리 스스로 아주 예민하게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으면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그 자체를 몰라요.
▲한 번은 저희 둘째가 중학교 2학년 때예요.
그때 저희 교회가 한참 예배당 공사를 하고, 건축을 마무리 짓고
그리고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 번 했는데, 그때 오셨던 강사님이 박보영 목사님이셨어요.
참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이런 은혜가 있었어요.
집회가 다 끝나고, 강사님 가시는 것을 배웅하고,
제 사무실에 올라갔는데 중2인 둘째가 제 사무실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웬일이냐?' 그랬더니 울먹울먹 거려요.
'무슨 은혜를 받았길래 얘가 또 그런가?' 물어봤더니
그게 아니고 은혜를 못 받아서 울고 있는 거예요.
'아빠, 오늘 저녁에 많은 분들이 회개도 하고, 기도도 하고, 너무너무 집회가 뜨겁고
자기가 보기에도 참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는데, 자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자기는 무슨 마음에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도가 뜨겁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너무 마음이 힘들다는 거예요. '아빠, 나는 왜 이러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울어요.
중학교 2학년 되는 딸이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다들 은혜를 많이 받는데
자기는 은혜가 안 된다고 우는 그 아이를, 아빠로서 제가 이렇게 쳐다보는데
한편으로는 참 너무 안타깝고, 그렇게 울기까지 하는 딸을 보니까 너무 안타깝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요. 참 묘한 두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잘 달래줘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기뻐요. 그래서 우는 아이를 끌어안아 주면서 제가 속으로 웃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딸에게 말해 주었어요...
'여러분, 왜 나는 은혜를 못 받을까?' 하면서 우는 이게 은혜예요.
다들 은혜를 받는데.. 다 회개가 터지고 은혜를 받고 하는데 '왜 내게는 아무런 역사가 없을까?'
이런 마음의 간절함이.. 은혜를 받은 증거예요.
정말 은혜를 못 받았으면, 그냥 집에 가서 자기 방에 가서 자는 거죠.
그렇지만 '은혜를 나는 못 받았다고...' 갈등하는 그 자체가 은혜를 받은 마음인 거죠.
그건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죠. 근데 아직 분별을 못하는 거죠.
성령님의 역사인데 그걸 분별을 못하니까 낙심해 있는 거예요.
오늘 밤에, 이 성령집회에, 과거에 저희 둘째 딸 생각이 났어요.
여러분들 중에 '나는 은혜가 안 되는데.. 나는 왜 이러지?
나는 기도가 안 되는데.. 나는 왜 이러지?'
그게 바로 성령의 근심이고...
여러분에게 계속 심령에 갈급함이 있다면, 그건 성령의 역사예요.
그때 여러분이 '은혜가 안 되네...' 이러고 하면서 집에 돌아갈 수도 있고,
'주여 저를 붙잡아 주세요!' 라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도 있는 거예요.
이때 여러분이 성령님에게 잘 반응하면
그때부터 성령님이 여러분 가운데 강과 같은 역사를 허락하세요.
▲제가 한 번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정말 제 마음 심령에 큰 은혜가 안 돼요.
'성령님 역사해 주세요. 정말 강하게 역사해 주세요!'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내가 지금까지 이만큼이라도 역사하시는 그 주님을 내가 찬양해야 되겠구나!
내가 언제까지 하나님께 더 강하게 역사해 달라고만 해야 되나?
내게 역사하시는 은혜가 지금도 얼마나 큰데...'
그래서 제 기도를 바꿨어요.
심정도 답답하고, 마음에 뭔가 느껴지는 것도 없고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혜가 있어요.
'하나님, 제 속에 성령께서 오신 것을 제가 너무 분명히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습니다.
제 안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게 뭐 뜨겁게 기도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심령이 답답한 가운데 드리는 기도니까요.
그냥 정말 조용히 조금 넋두리 같은 기도들 드렸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자도 주님께서 계속해서 일깨워주시고, 그래도 말씀을 주신 것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주님 더 말씀해 주세요.. 제가 주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기도가 잘 안됩니다.. 그런데 제가 마음의 기도를 정말 더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점점점 주님이 제게 역사하셨던 게, 이렇게 계속 깨달아졌어요.
-제 마음을 주님이 다스려주셨던 것
-제가 어떤 죄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신 것
-그러면서 주님이 제 안해서 계속해서 일하셨던 것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고백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고백을 해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도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 시작은 '오늘 내가 정말 은혜를 받기가 어렵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점점 기도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통곡하기 시작했어요.
우는 것은, 울고 싶다고 울어지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깊은 곳을 만지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 울게 돼죠.
그건 한 순간이에요. 그렇게 기도가 안 되다가 기도가 딱 열리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이에요.
방언이 터지고, 정말 마음의 심령에 뜨거운 기도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제가 그때 깨달았어요.
이미 역사하시는 주님에 대해서 내가 반응하는 일이
큰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미 역사하고 계신 주님께 반응하는 거예요.
'주님,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잖아요.
주님, 제가 오늘 기도하게 해 주셨잖아요.
주님, 지금 제 마음속에 있는 이 무거운 마음,
주님, 제 마음속에 끊어버려야 되겠다고 하는 이 생각... 이거 다 주님이 주신 거잖아요.
주님, 저는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정말 저를 만져주세요. 역사해 주세요...'
여러분이 성령님께 반응하고 나가보세요.
이미 여러분 안에 '샘물'같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여러분 안에 있잖아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사야 1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러분 안에 와 계시는 성령께서, 지금은 여러분에게 별로 강하게 역사 안 하시는 것 같아도
그분 자신은 엄청난 분이세요. 하나님 그분이시라니까요!
'샘물'같이 역사하시나, '강물'같이 역사하시나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의 믿음의 분량의 차이 때문에 그런다 할지라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다른 건 아니에요.
성령님, 그분은 하나님이세요.
여러분이 그 사실을 정말 알고, 그 (여러분 속에 내주해 계신) 성령님께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끌고 가기 시작하세요.
이 일이 오늘 밤에, 이 성령 집회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밤에, 이미 여러분은 굉장히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계시고 있어요.
여러분을 이끄시고,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주님께
여러분이 반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붙잡으세요.
그리고 그 성령께서, 여러분을 오늘 깊은 기도의 자리로 이끄시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오늘 생수의 강과 같이, 여러분 속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이
역사해 주시기를 정말 기대하세요! 요7:38
주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환상 중에 주님을 만났다고도 합니다.
그런 간증을 들을 때마다 괜히 마음의 위축감도 느껴지죠.
'왜 내게는 꿈속에서도 역사 안 하시고, 환상 중에서도 역사 안 하시나?'
그런데 이미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성령님이신데,
왜 꼭 꿈에서 만나야 돼요? 이미 여기 와 계신데!
이미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고 계신데!
꿈에서 만난 체험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요?
나는 지금 생생하게 맨정신으로 체험하고 있는데,
맨정신으로 지금 성령님을 체험하고 있어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고 오늘 저녁에 집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너무 저 자신이 놀랍더라고요.
'이렇게 강하게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임재하시는 것을, 내가 어떻게 이렇게 알게 됐을까?'
저도 한때는 '하나님이 진짜 계신가? 나를 알기는 아실까?' 이랬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함께 계시고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생생하게 확신을 가지고 너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것이
제 스스로 너무나 깜짝 놀라웠어요. 여러분에게도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주1) 하나님을 막연히 믿으면 안 됩니다 (중략된 부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삶이 안 바뀌는 이유는
솔직히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막연하게 믿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세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짜 믿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세요.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셔!
지금도 나와 함께 계셔!'
여러분이 진짜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렇게 나오셨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짜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렇게 기도회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세요.
여러분은 문제가 많아서 마음이 힘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시는 마음이 너무너무 기쁘세요.
하나님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간단해요.
내가 진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분이 누구신지 정말 알게 되면... 그의 삶이 바뀌어요.
딤전6:17~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이 믿어지면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요.
이 세상의 재물에 부자되는 것에 마음 없어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높아지는 거... 별로 내가 마음(관심) 없어요.
하나님을 모를 때는, 그게 다 신경 쓰이는 일이에요.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에는 내가 더 이상 세상에서 높아지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내게는 별 의미가 없어져요.
재물, 더 이상 거기에 내 소망을 두지 않아요.
내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어요.
그리고 선을 행해요. 하나님이 진짜 믿어지는 사람은, 정말 선하게 살고 싶어요.
더 이상 악다구리 쓰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선한 사업, 나누어주는 거, 선교헌금 하고 싶어요.
제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너그러운 자가 돼요. 막 화내고 싸우고... 그러지 않아요.
하나님이 진짜 믿어지면, 화날 일도 많고, 싸울 일도 많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이 진짜 믿어지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불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이 생기면, 고난도 두렵지 않아요.
전에는, 예수를 믿지만 고생할까 봐 두려웠고,
'혹시 예수 믿고 나면, 하나님이 나에게 순교의 사명 주시는 거 아니야?'
이럴까봐 불안해 하고,
'혹시 나보고 목사하라는 거 아니야?'
중학교 애들도 목사되는 거는, 그렇게 무서워하더라고요.
어느 목사님이 청소년 집회를 인도하는데
애들이 그렇게 강사의 말을 안 듣고, 자세가 삐딱하고... 중등부 애들이 그래요.
근데 일거에 딱 제압이 되더라고요.
그 강사님이 나오셔가지고 '나도 너희들 때 지금 너희들처럼 그랬어...
예배 드릴 때, 삐딱하게 껌 씹고, 설교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러다가...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 찍혀가지고) 내가 성령 받고 목사가 된 거야!
만약에 너희도 그렇게 자세가 삐딱하면 (하나님께 찍혀가지고)
은혜 받고 (빼도 박도 못 하게) 목사될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애들이 곧바로 자기 자세를 딱 바로 잡더라는 거예요.
'까불면 너 목사 된다'고 그러니까, 다 자세가 딱 바로 잡히더라는 거죠.
목사 되는 거를 진짜 무서워하더라고요. ... 라는 얘기를 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불길한 생각이 들고,
'내가 은혜 받아서 혹시 내가 목사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보면,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주의 뜻대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싸악 없어져요.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기게 되죠.
▲딤후1:12절에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암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고난을 당해도 부끄럽지 않아요. 두렵지도 않아요.
내가 그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요.
여러분, 노아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었는지 아시죠?
창6:5절에 보면, 노아가 살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게 노아 시대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으면..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근심하셨다는 거예요.
그런 시대에 노아가 살았어요.
그런데 노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어요. 무슨 말씀이 임했냐면
'산 위에다 거대한 배를 지으라'는 거예요.
아니 은혜로운 시대에, 늘 성령 충만하고, 모든 사람이 큐티하고,
너도 나도 하나님의 음성 듣고, 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하고...
이런 시대에도 그런 주님의 지시를 받으면
'이게 진짜 주의 뜻일까? 하나님이 너무 지나친 걸 맡기시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만도 한데,
하나님의 뜻을 듣는 사람, 말씀을 듣는 사람,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하여튼 악해도 얼마나 악한지 몰라요.
이런 시대에 노아가 살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산 위에 배를 지으라. 이제 홍수가 날 텐데 네가 방주를 지어라!'
그런데 노아가 그걸 순종해요.
이게 정말 상상이 안 되는 일이죠. 어쩌서 그랬을까요?
노아가 하나님이 진짜 계심을 믿었으니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게 믿어지니까!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도, 이런 순종이 가능한 거예요.
이 노아 시대에 되어진 일들, 또 노아의 이 순종을 생각해 보면
영성일기 쓰기 힘들다는 말 못할 것 같아요.
아니 산에다 방주 지으라! 그것도 1년 동안 짓는 것도 아니고,
10년 동안 짓는 것도 아니고, 무려 120년을 지었어요.
120년을 산 위에서 방주를 지었다니까요, 노아가!
우리가 매일 저녁에, 늘 주님 바라보았던 것을 한번 기록해 보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게 어렵다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죠.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집을 그냥 무조건 떠나, 어디로 갈 줄도 모르고
'내가 지시할 곳으로' 그냥 떠났어요.
백세에 아들을 얻긴 했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
아브라함은 다 순종했어요. 왜요? 하나님이 믿어지니까!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으니까'
실제로 이삭을 죽이려고까지 했잖아요.
하나님이 정말 믿어지면,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순종이 따라와요.
하나님이 믿어지는 게 이렇게 중요해요.
이번 성령집회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자'고
이렇게 제목을 정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야, 비로소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해요.
'내가 할 수 있다, 없다' 이런 개념도 없어집니다.
'그 일은 쉽다, 어렵다' 이런 개념도 없어져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순종이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내가 믿는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눈이, 더욱 열려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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