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더 이상 몸부림 치지 않았다 창50:1~14
▲천국만 바라보고 살았던 야곱의 노년
오늘 창세기 마지막장인 50장에서 눈여겨 볼 것은
야곱의 장례식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야곱이 죽어서 가나안 땅에 장례 지냈더라.’ 이렇게 짧게 쓰면 될 것을,
상당히 긴 분량으로 성경은 야곱의 장례식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야곱의 장례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말씀하시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죽고 난 뒤에 애굽에도 좋은 매장지가 많이 있지만,
굳이 가나안 땅까지 먼 길을 가서 매장을 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강력한 유언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야곱이 애굽에 와서 17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 야곱이 한 일이라고는
자기를 반드시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요셉에게 부탁한 것뿐입니다.
①창47장에, 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이 죽거든
가나안 땅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장사해 달라고 아주 신신당부합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창47:30
②그 정도로 야곱이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아서 31절에 보니까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그렇게 요셉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곳으로
당시 아브라함의 소유가 된 유일한 땅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삭도, 리브가도, 레아도 장사되었습니다.
③야곱은 임종 직전에도, 자기가 죽으면 가나안에 장사 지내달라고 당부 합니다.
내가 네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창49:29
결국 요셉은 바로에게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 장사 지내고 오겠다는 청을 하고, 허락을 받게 됩니다. 창50:5
▲애굽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야곱
야곱이 그토록 자기 장례식을 가나안 땅에 가서 치러달라고 계속 말했음을 봅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야곱은, 그 당시 최강대국인 애굽에서 17년 동안 여생을
살면서 다른 일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오직 가나안 땅에 장례 치러 달라’
그것 하나 밖에는 야곱이 관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야곱은 일생 동안
‘어떻게 하면 잘 살아볼까?, 어떻게 하면 재물을 많이 모을까?’
그것 때문에 몸부림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형 에서와 누가 먼저 태어나서 장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고,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와서 배가 고픈 것을 보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 축복을 사버린 사람이 야곱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눈이 어두운 틈을 타 몸에 짐승의 털을 붙이고 에서라고 속여서
장자 축복을 빼앗았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리고 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을 갔을 때,
삼촌 라반은 대단히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카 야곱의 인건비를 착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 라반보다도 한 수 위였어요.
나중에 삼촌 라반의 집에 있는 소 떼, 양 떼, 염소 떼를 자기 재산 삼아서
모조리 끌고 나온 사람이 야곱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강을 건너 보내놓고
‘만약에 에서가 진짜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면 자기 혼자라도 도망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했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이 당시 최고의 강대국 애굽 땅에서 17년을 살면서
애굽에서 어떻게 잘 살아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먹는 것과 입는 것 등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않았고
아들이 주는 대로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애굽에서 산 17년 동안 야곱은, 전혀 야곱 답지 않게 살았습니다.
야곱은 사실 눈치나 처세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총리의 아버지이지만, 기근을 피하여 피난 온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를 의지해 양식을 얻어 생활해야 했으므로
바로를 우러러 보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과거의 야곱 같았다면 바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했겠습니까?
과거에 삼촌 라반의 집에서 전 가족과 재물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와 만났을 때,
야곱은 형을 ‘내 주’라고 칭했고 자기를 ‘작은 종’이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왜요? 그렇게 해야 관계가 좋아지니까요.
그래야 형 에서로부터 끝까지 자기가 목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요.
야곱은 ‘어떻게 해야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저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될까?’
그런 눈치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와서 야곱은 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나가자마자 바로를 위하여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바로의 지위가 자기보다 높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바로가 자기보다 높지만,
영적으로는 바로가 자기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를 위하여 당당히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왕을 축복한 사람이고, 총리가 그의 아들이므로
바로 왕이나 아들 요셉으로부터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총리인 아들 요셉에게 애굽에 사는 동안
자기를 위하여 어떻게 해달라고 한 마디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부탁한 것은 오직 하나, ‘가나안 땅에 가서 나를 장사 지내달라’
그것 하나 밖에는 야곱은 아무 것도 원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질문이 ‘어떻게 해서 야곱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몸부림쳐 보았는데, 자기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보고서야, 그동안에 자기 일생동안 몸부림치며 살았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어놓으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았어요.
그 요셉을 하나님이 일찍 애굽에 데려다가 거기 총리로 삼아놓으셨어요.
그리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기근에서 구원해 내시고,
뿐만 아니라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큰 민족을 이룰 발판을
애굽에 다 만들어 놓으셨는데...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자기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야곱은 일생 동안 잘 살아보아야 되겠다, 복을 받아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사랑하던 요셉이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때 정말 야곱은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
겨우 마음을 위로받았던 베냐민마저 애굽에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때는 정말 낙심했습니다. 베냐민마저 다 잃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지나놓고 보니까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야곱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애굽 왕 바로를 만날 때 야곱은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그동안에 너무나 몸부림치면서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남은 것은 험악한 세월 살았던 경험 밖에 없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니, 하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완벽하게 다 이루신 것입니다.
애굽에 가보니까 기가 막힌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고,
하나님은 그 애굽에 자기와 가족들이 살 길을 마련해 놓으시고,
거기서 큰 민족이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비로소 야곱이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애굽에서 야곱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은 잘 살아보려고
자기가 막 몸부림치면서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사는 동안에는 총리인 아들 요셉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여기서 살라고 하면 거기서 살았고,
이것 드시라고 하면 이것 먹었고,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요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분명한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몸부림치는 것이 헛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애굽에 와서 더 이상 몸부림치며 사는 것을 그쳤습니다.
그가 붙잡은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죽은 후에 어디에 장사되어야 하는 것에 관하여
그렇게 철저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야곱의 말년의 모습에서, 우리는 야곱이 참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야곱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말년의 야곱에게서 자아가 완전히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애굽에서의 야곱과 같아집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몸부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너무나 중요한 교훈입니다.
◑핵심 하나를 붙잡으면, 사소한 것은... 괜찮다.
▲예수를 모르면... 몸부림치며 삽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어요.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놀라운 복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면 우리 인생이 꼭 애굽에서의 야곱처럼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또는 예수님을 믿어도 정확한 복음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진짜 내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했을 때는
우리도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잘 살아봐야 되니까, 먹고는 살아봐야 되니까.
그러니까 사람 눈치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이 계획 저 계획 세우고.
어떻게든지 잘 살아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 잘 살아집니까? 우리의 본성은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내 생명이고 내 주님이 되시기 전에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을 보여주는 한 사례
이번에 미국에 가서 친척 집에서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6살 된 아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아이가 오고 가는 친척들과 손님들이 귀엽다고 주는 용돈을
제법 많이 모았답니다.
하루는 그 아이를 테스트해 보려고 아빠가 아들의 마음을 한번 떠보았답니다.
“엄마랑 아빠랑 너랑 셋이서 놀이공원에 가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라는구나.
두 사람 밖에는 갈 돈이 없어. 어떻게 하지?”
그랬더니 이 아이가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그러면 엄마는 못 가겠네!”
그러더라는 것이에요. 돈에 대한 이 엄청난 집착!
하여튼 6살 된 아이도 돈에 대해서는 무섭습니다.
아빠도 그 아이 돈 꺼내 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세상과 재물과 명예에 집착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야곱이 달라지듯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생을 소유한 성도의 삶은 더 이상 몸부림치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하나를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4~35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 확인하는 척도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내 삶의 근심 걱정 다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잘 살아봐야 되겠다.’ ‘성공해야 되겠다.’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몸부림칠 것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다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나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하나에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게 될 모든 약속과 승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모든 복음의 결론입니다.
애굽에서 야곱이 붙잡은 것이 ‘오직 가나안 땅 하나’였듯이,
예수님 믿고 우리가 붙잡을 것은 ‘오직 사랑’ 하나입니다.
모든 근심 염려 다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몸부림, 발버둥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하는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나고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해야 잘 사는 줄 알고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고 배우는 학습의 양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어떻게든지 승진해야 되니까
끊임없이 공부하고 훈련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생각처럼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애굽에 오기 전의 야곱처럼, 인생의 진정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신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만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세상에 두고
그저 세상 사는 것이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발버둥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구나. 언약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점에 대해서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자기가 노력해서 잘 사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몸부림치며 사는 성도들은
오늘 야곱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잘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목회의 중압감도, 발버둥을 내려놓습니다.
(2006년 9월) 지난 화요일 1시 반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탔습니다.
‘이제 한국에 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에 도착하여 바로 감당해야 할 사역들, 담임목사로서 져야 될 책임이
생각나는데...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미국에서 짧은 한 주간이었지만, 담임목사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았던 모양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익숙해서 잘 몰랐는데,
잠시 짐을 벗었다가 다시 지려니까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제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제 생명이시고 제 주인이십니다.’
그제야 마음이 평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이 교회의 되어지는 모든 일은 예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지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지.
이 교회는 예수님이 이끄시는 것이지 담임 목사인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지.’
내 안에 믿음이 일어나면서 너무나 놀라운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담임목사인 저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양떼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제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셨듯이
교역자들을 사랑하고 장로님들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인생의 중압감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인생의 짐이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가정을 생각해도 가족을 생각해도 경영하는 회사나 기업을 생각해도
여러분이 맡은 교회 책임을 생각해도, 마음이 오그라들듯이 무거운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이 내 생명이고 주인이신데 책임을 지시면 예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말은 구원받았다고 하는 말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것에서부터 완전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지요? 사랑하는 것입니다.
집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정 생활 책임지는 것 아니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하나 밖에는 명령을 주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제 마음에 너무나 놀라운 기대감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행하시는 일을 빨리 가서 보고 싶은 것입니다.
교회 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마음이 무겁더니
갑자기 교회 빨리 가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실 일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그렇게 넘치는 것입니다.
▲본질 하나를 붙잡고, 몸부림을 그친 야곱
야곱의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정말 야곱은 마음의 짐이 다 내려놔졌고 이제는 몸부림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붙잡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국제 예수전도단(YWAM) 설립자 로렌커닝햄 박사가 쓴「네 신을 벗으라」
책에서, 그는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증합니다. (여기 클릭!)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 외에는 아무 것도 붙들 것이 없다는 것을
애굽에 가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정말 알고 나면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몸부림치고 괴로워하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예수님을 알기 전의 일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내 생명의 주인되시면
나는 예수님 한 분만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제까지 몸부림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야곱처럼 다 내려놓습니다. 이제 내게 몸부림이 다 그쳤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정말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직 한 가지 명령,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사랑하고 살겠습니다.
저를 사랑하셨듯이 저도 그렇게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주님께서 오라 하실 때까지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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