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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아직도 십자가 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요18:1~11

by 【고동엽】 2024. 11. 22.

아직도 십자가 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요18:1~11    

 

 

▲가슴 설레는 설교본문

 

이제 요한복음 강해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요한복음18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생애 마지막 기사가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큰 은혜가 있는 부분입니다.

 

 

제게는 요한복음 18장부터의 강해가 가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등산으로 말하면 산의 정상 부분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처음 듣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우들은 너무나 많이 들었던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십자가가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십자가” 사건으로 생각하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놀라운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마16:24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자꾸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시는 ‘복’ 기대하지 마십시오. 복은 사실 받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지향점은 아니고, 지향점은 십자가 입니다.

 

복 받으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지고 사명감당하는 목표로 신앙생활 합니다.

 

'십자가' 그 자체가 '고난'이 이미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쳐야 비로소 '부활의 영광, 참된 복'에 이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아마 상당히 많은 분들은 여전히 마음이 두려우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니!

 

이 말씀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하신다면 착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anyone'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에 예외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두려움> - 어떻게 해결?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신자들

 

보다 근본적 문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냐’가 아니라,

 

‘십자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늘 그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당당한 사람과, 두려운 사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당당하신 예수님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당당함>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똑바로 서서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무리들을 만나셨습니다.

 

오히려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병정들이 누가 나사렛 예수인지를 물을 때 ‘내가 바로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권세에 병정들이 쓰러졌습니다.

 

병정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가는 것인지, 호위해 가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때 당당하셨습니다.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셨습니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

 

그러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붙들려 가실 때

 

그들은 대단히 두려웠고, 십자가 앞에서 우왕좌왕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래도 수제자라고, 예수님이 병사들에게 붙잡히는 모습을 보고,

 

이를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검을 휘둘렀습니다.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칼 쓰는 솜씨는 없었거나, 겁을 먹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결국 붙들려 가시자, 그는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막14:52절에,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한 제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옷도 못 갖춰 입고, 황급히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닥치면 흔들립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던 바울 사도

 

그러나 누구나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빌3:7-12,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십자가의 길을 억지로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길을 적극적으로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모든 유익한 것을 다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 혹시 지금 이 시간까지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두렵다>고 할지라도

 

오늘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여러분 마음을 바꾸어주셔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이 길을 <달려가노라>고 고백하게 될 줄 믿습니다.

 

 

 

▲십자가 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 두려움의 유/무의 문제

 

십자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느냐,

 

아니면 십자가의 길에 대한 두려움이 다 사라졌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갈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그것은 핵심이 아닙니다.

 

보다 핵심 문제는 -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느냐/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길이 정말 사는 길이고,

 

또한 그 길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길임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데서 발생하는 대가는...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려운 사람에게는

 

아무리 작은 십자가라도... 그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두려울만한 일이 있어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의 영’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이만 들면서, ‘혼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두려움이 어떤 실체가 있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고,

 

두려움의 영 때문에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두려움으로 우리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풀무불과 사자 굴로 위협합니다.

 

사람들에게 돌을 맞게 합니다.

 

목적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여 예수님과 분리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나도 있고,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을 나도 가야 하는데

 

그 길이 십자가를 지는 길일 경우에.. 마귀는 두려움으로 나를 묶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나는 못할 것 같아, 나는 도무지 할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합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면서도,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힘들어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두려움 = 불신

 

요한계시록 21:8에 보면 지옥에 던져지는 사람들 리스트가 나옵니다.

 

가장 첫 번째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 같습니까?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

 

 

여러분, 두려워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입니까?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핍박과 환난을 두려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중간에 떠난 자들을 말합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가지 못합니까?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자니 겪어야 될 고생이 있고 희생이 있고

 

져야 될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이킨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결코 소홀히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 = 두려움이 없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심각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끝까지 동행하기 위하여, 굶어도 좋고, 망해도 좋고, 죽어도 좋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에 아직도 두려움이 있습니까?

 

정말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봐 두렵습니까?

 

내가 망한다 하더라도, 내가 혹 죽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예수님계신 곳에 내가 있고,

 

주님이 가시는 그 길에 내가 갈 것이라고 하는 답이 와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여러분 안에 만약에 굶을까 두렵고, 망할까 두렵고, 죽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아직까지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아직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으로는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다고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두려워하면, 참된 은혜 못 누린다.

 

이제는 두려움의 영적인 실체와 뿌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 두려움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복을 받는 길을 열어주셔도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에 내가 겪어야 될 어려움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혹시 힘들어서 십자가지는 것을 외면하고, 안락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입니까? 정말 십자가를 지는 길을 외면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어 행복한지 알고 싶습니다.

 

 

▲십자가 회피하면... 비참한 인생 된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는 다행히 십자가의 고난을 피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졌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하였을까?’ 예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전혀 기쁘지도 않았고

 

고기를 잡으러 돌아간 것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한 베드로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서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어주셔서

 

겨우 회복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두려움의 해결책 - 성령충만

 

 

▲성령은 '예수의 영'

 

그러면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두려움의 영이 떠납니다.

 

십자가의 길이 복 받는 길임을 알게 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 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님은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가셨던 ‘예수의 영’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셨으니..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예수의 영)이 오신 사람은, 예수님처럼,

 

두려움이 사라지고, 당당히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고 담대해진 사도행전의 제자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제자들은 두려워서 다 떠났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고 완전히 변했습니다.

 

담대하게 전도하고 하루에 3천 명씩, 5천 명씩 구원시키는 사도가 되었고

 

순교로 그 사명을 마치는 대 역사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서, 두려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가고, 주님이 계신 곳에 있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된다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움 많던 설교자가 변화된 것도 <성령체험 때문>

 

저는 어릴 때부터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버님이 목회하시는 것을 보고 자라면서 목사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목사가 되었지만 고생스런 삶, 특별한 사역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토밭 사역지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옥토가 되라고 했지,

 

‘옥토밭’만 찾아다니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그 정확한 뜻을 모르고 나름대로 해석하였습니다.

 

편하고 대접받고 편안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복이고 성공인 줄 알았습니다.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체험하고 달라졌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기에 더 좋다면 한 쪽 다리를 바치고

 

장애인이 되겠다고 기도했던 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대학원 졸업을 포기했던 일,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

 

돌짝밭 사명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서원했던 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으시고, 두려움을 이기시라!

 

여러분, 십자가로 져야 할 어려움이 큰 것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어떤 고난도 두려워지지 않는 기적을 더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 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여전히

 

“목사님, 저는 왜 안 되지요? 저는 여전히 두려운데요.”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좌절하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렵게 하는 것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떠나고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예수님께서는 주를 바라보는 자는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요18:9

 

 

 

예수님은, 자기를 잡으러 온 병사들에게, 제자들은 가게 놓아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어서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때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지 않고는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예수님은 아셨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책망 한 번 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전도자의 길을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두려움을 이기게 해 주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문제는 고난이 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이기 힘을 주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두려움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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