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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언제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행7:54~60

by 【고동엽】 2024. 11. 22.

언제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행7:54~60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7장 본문은 <스데반 순교 사건>입니다. 
순교라는 게 우리에게 주는 충격이 있잖아요.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그의 순교 사건이 오늘 본문인데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일단 딱 충격으로 와 닿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그 자리에서 잡힌 여인도,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그런데 부활의 주님을 증거했던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서  
왜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았나요? 
그런 마음이 들만 해요. 정말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죠. 

그런데 사실 이 사건 자체가 주는 의미는 굉장히 크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있습니다. 

'순교'라는 것에 너무 매이지 않고, 오늘 말씀을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라는 관점으로 들어 보십시오)

▲2007년 7월 25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아프간 단기봉사팀 피랍사건의 실상 rfcdrfcd.tistory.com/15981423

그때 배형규 목사님이, 단기선교 팀을 이끌고 가시다가 탈레반에 납치되고 
그리고 심성민 형제와 함께 순교를 했습니다. 

그때 한국 교회가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다른 일도 아니고, 전도하러 선교하러 갔는데 
왜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셨나?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도대체 어떻게 전도할 거냐?' 그런 혼란스러움이 한국교회에 있었습니다. 

근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충격 받을 일도 아닌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잖아요.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까..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신 거예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 
그 생각을 하면, 순교가 뭐 특별하게 이상하거나 충격 받을 일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막8:34

그러니까 선교 나갔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은혜고, 
배형규 목사님처럼 순교할 수도 있는 거죠.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도, 
우리는 그게 참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오늘 본문 행7장 스데반의 순교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예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까이 북한의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현재도 그런 상황 속에 있어요. 

우리가 본문에서 '스데반의 순교'에 주목하기보다, 
'스데반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첫 번째 순교자가 되고 싶어요. 저를 그렇게 써주세요.' 
그렇게 기도한 것도 아닐 겁니다. 

스데반은 그저 성령에 충만했던 거예요. 
그리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죠. 
병든 사람 고쳐주고, 귀신 들린 사람 살려주고.. 그런 일이 스데반에게서도 일어났던 겁니다. 

그때 사람들이 스데반에게 아무래도 관심을 갖게 되고 귀를 기울이잖아요. 
스데반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 분이 그리스도다' 라고 전했던 겁니다. 
그 말에 사실 유대인들이 화가 났던 거죠. 

사실 스데반은,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탈북자나 조선족, 고려인 이런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 사실 탈북자나, 고려인이나, 조선족 같은 분이 
만약에 어떤 말씀을 전하거나,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때 
우리 한국 정서도 쉽지 않잖아요.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정통 유대교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단 스데반은, 약간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부류의 사람인 거죠. 

근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니까, 그리고 율법과 성전을 폐하려고 하고, 
예수님이 성전도 허물겠다고 하셨다... 뭐 이런 말을 곡해해서 
공의회로 끌고 와서 재판을 받게 한 겁니다. 6:12~13

그때 스데반이 담대하게 그 말을 해요. 
'여러분들이 그동안 하나님을 사실 배반하고 살았지 않았습니까? 
율법을 어긴 것이 누굽니까? 여러분들이잖아요.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여러분들이 죽였잖아요. 
결국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겁니다.' 

긴 설교였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데반이 그 말씀을 한 거예요. 
'여러분이 죽인 그 예수가, 사실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격분을 하고, 이를 갈았다 그랬어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4

일단 상황 자체가 무섭게 변한 거예요. 
그때 스데반이 하늘을 쳐다보는데,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서 내려다 보시는 장면이, 자기 눈에 보였습니다. 

그 모인 사람들 앞에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인자가 서신 것을 보노라' :56
그렇게 외쳤어요. 그로 인하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스데반이 죽게 돼요. 순교하게 돼죠. 

스데반은 애초부터 순교를 하려고 작정을 했다거나, 
하나님이 '너는 순교자가 될 거라'고 말씀하셔서, 그날 순교했던게 아닙니다. 

그 상황을 가만히 읽어보면, 스데반이 어느 순간에 
'아, 내가 여기서 죽게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물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이 상황에서 나를 건져줄 수도 있지만 
내가 죽게 되는 거구나' 

특히 이제 하늘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내려다 보시는 순간에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나도 죽는구나..
이게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구나!' 그래서 스데반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스데반은 그 순간에 당황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것처럼 '내 영혼을 부탁합니다' :59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를 할 수 있었어요.

이 기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은, 이 기도 때문에 사실 
스데반 순교 사건의 주동자 역할을 했던 사도바울이 
얼마 후에 죄사함도 받고, 그리고 사도로 택함을 받게 됩니다. 

스데반의 그 기도가 응답되었던 거죠.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을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요

◑핍박과 순교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걸 겸허히 받아들인 스데반

근데 스데반이 하나님께 그 기도를 드립니다. 
그건 그날 하나님이 스데반에게 '너는 순교하게 될거다. 너가 죽고 이제 내게 올 거다'
그 하나님의 뜻을, 스데반은 최선이라고 받아들인 거예요. 

이건 굉장히 중요해요. 하나님은, 복음이 온 세계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시지만 
억지로, 강제로 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아주 겸손함과 사랑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세요. 
항상 그 방법을 쓰십니다. 

물론 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때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참고, 심지어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십니다. 

이유는 딱 하나예요. 스스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라고 믿고, 
전적으로 그 뜻에 순종하는 종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스데반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2007년에 배형규 목사님이 순교하셨을 때, 그 날 얼마 전에 
제 아내가 아주 흡사한 상황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피랍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납치범에게 제가 붙잡혔고, 범인들은 석방의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가, 그 거액의 돈이, 결국은 교회 성도들의 헌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장로님들이 그 일에 대하여 준비하려고 할 때, 
절대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막았던 것 같아요. 

'헌금을 어떻게 납치범들에게 보낼 수 있습니까?' 
(꿈에서) 그때 잠깐 저하고 통화가 됐대요. 

그때 제 아내가 전화통화로 제게 '당신은 거기서 죽어! 
헌금을 몸값으로 주고 당신을 석방시킬 수는 없어! 당신은 그냥 그 자리에서 죽어!' 그랬대요. 

그리고 꿈에서 깼는데, 새벽에 엄청 울더라구요. 그러면서 깨서 저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해요. 
그런 참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에 자기가 저보고 '죽으라!'고 했다고... 

그 얘기가 기분이 별로 좋은 건 아니지만 '참 이상한 꿈도 꿨다' 그랬는데 
얼마 뒤에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팀 순교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배형규 목사님이 그렇게 순교로 세상 떠나는 일이 생긴 거예요. 

그때 마치 제가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꿈 이야기와 연결이 되니까, 
마치 제가 죽은 것 같은... 

그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는 건가?' 에 대한 
아주 깊은 성찰을 하게 됐어요. 

'하나님께 순종한다. 순종한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야 되는 건지... 
그게 스데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했어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이것이라면, 그러면 죽는 자리까지 가는...' 
빌2:8절에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했다'고 그랬습니다. 스데반이 그랬던 거예요. 
죽기까지 순종했던 거예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라고 믿었어요
욥이 까닭 없이 무서운 고난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 같지 않는데, 
벌을 받아도 이렇게 혹독하게 받을 수가 없을만큼.. 무서운 그런 벌을 받는 것 같아요. 

종들도, 자녀들도 다 죽고... 가진 재산 다 잃어버리고, 온몸에는 악창이 나고... 
그 순간에도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면 받아야지...' 
기본으로 그런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이해는 안 되지만. 

다윗이 하나님 성전 짓기를 그렇게 원했어요. 그게 뭐 나쁜 일도 아니죠.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세요. 다윗의 손으로 짓는 것은 허락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실 다윗에게 있어서는 시험들만한 일이죠. 
그렇지만 그때 다윗이 '예' 하고 받습니다. 
'하나님 뜻이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습니다. 

밧세바와 사이에 낳은 아이가 병들어서 죽어 가요. 
다윗이 그렇게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그런데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냥 즉시 일어나서 씻고 그리고 식사를 해요. 
'아니 아직 죽기 전에 그랬던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더 식사를 폐하고, 더 슬퍼해야 되잖아요? 

다윗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내 아이가 아직도 살아있을 때는 살려달라고 기도는 할 수 있겠지만, 
죽고 난 다음에는.. 그걸 하나님의 뜻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기본적으로 그런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압살롬이 반역을 했을 때도, 자기 아들과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내어주고 피신을 갑니다. 

그때 사울 왕 지파 사람 시므이가 좇아오면서 다윗을 저주해요. 
다윗이 이제 왕위를 내려놓고, 완전히 사람 꼴이 말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격분해요. 시므이를 단 칼에 죽이겠다고 나섭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이 그리하라고 하셨을지 모르잖아? 
하나님이 다윗을 욕하라고 하셨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받아들여요. 

그리고 '만약에 이게 억울한 거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실 거야' 
다윗의 믿음이 그런 믿음이었던 거예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하고 받아들였어요.

요셉도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다.. 라면서 받아들여요. 
그래서 형들을 무조건 용서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서 다 먹이고 살립니다. 

 자 우리에게도 있어서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설교 제목

그 믿음을, 오늘 스데반의 순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때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결국은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스데반 순교 사건을 읽을 때 '이런 일도 있었구나...'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충성스러운 종을 죽게 내버려 두시나?' 
이렇게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지나갈 일도 아니에요.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와 그대로 연결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다 순교하자... 이런 뜻은 아닙니다. 
'죽기까지 순종하게 되는 바로 그 순종!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것이 최선이다!'  *설교제목
그 믿음은 스데반이나 우리나 다를 이유가 없어요. 우리도 똑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는 거죠. 

▲오래 전에 제가 한 선교단체에, 수련회 인도하러 갔어요. 
근데 어느 한 자매가, 그 선교단체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제게 상담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뭘 상담하고 싶으냐?' 물어보니, 아주 조심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가 성경도 읽고, 성경 공부도 하고, 설교도 듣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일까?' 하고 의심이 자꾸 든다는 겁니다.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 선교단체에 가장 중요한 핵심 리더인데,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일까?' 하는 의심이 자꾸 생긴다는 거죠. 

오늘 본문 스데반 순교 사건만 봐도 그렇죠.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면, 뭔가 술술 풀려야 되는데,
사실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삶이 꽉 막히고, 오히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가 많죠.

그때 제가 그 자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말씀을 읽고, 지식으로 알고만 있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게 하실 것입니다. 아~ 말씀이 진리구나!' 

말씀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 거예요.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말씀의 역사가,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걸 사람들도 알게 되고요. 

우리가 장차 스데반처럼 순교하게 될지..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만약에 여러분 중에 순교자가 나오게 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감당할 힘을 주실 거예요. 스데반처럼!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제가 순교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나는 절대로 순교는 못해요...' 이렇게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심이 최선이고, 그때 감당할 힘을 반드시 주십니다. 

▲중국이 공산화될 때에, 그때 글래디스 아일워드 라는 
아주 키가 작은 영국 선교사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중국에 와서 선교하고, 굉장히 많은 사역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가 되고, 공산당이 무자비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합니다. 

결국 이제 자기 주위에 기독교인이 300명만 남았어요. 나머지는 다 떠나든지 변절했어요.
이제 그 지역에 성도는 300명만 남았는데, 당국은 그들을 인민재판에 회부예요. 

당국자들은 그때 19살 된 한 자매를 군중들 앞에 내세웁니다. 
그 자매는 이미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얼굴 표정이었어요. 
한 2개월 동안 말할 수 없이 고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 앞에 그를 내세우면 '나 예수 안 믿겠습니다' 
그런 말이 툭 튀어나올 만한 상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 믿는게 얼마나 허상인가?'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 자매를 군중들 하며 내세운 거예요. 

그리고 '네가 한번 예수 믿는 거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 했을 때,
그때 그 자매가 갑자기 어디서부터 그런 담대함이 생겼는지 

'제가 공산당으로부터 세뇌를 2개월 동안 받았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자 자매는 그 자리에서 못 배임을 당합니다.
공산당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 자리에서 그 자매의 목을 베어버렸어요. 

그걸 아일워드 선교사님과 300명의 성도들,
끝까지 믿음을 지키겠다는 성도들이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봐요. 
그 중에 한 사람도 동요하지 않고, 300명이 그날 다 죽습니다. 

그 전에 아일워드 선교사는, 영국에서 선교사로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교단체에 가서 '나를 선교사로 보내 달라'고 그랬는데, 학력 미달이에요. 

선교사로 나가려면 그래도 기본적인 학력이 필요한데, 
학력이 전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허락해 주지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일워드 선교사는 '그러면 선교사가 안 된다면, 
선교사 집에 가사도우미 라도 하겠다...' 그래서 겨우 허락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온 거예요.

이 아일워드 선교사에게는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겠다!'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는 능력은 없었지만,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겠다'는 생명력 있는 믿음이 하나 있었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내게는 순종 밖에 없다' 하고 나아갔던 거죠. 

그 생명력 있는 믿음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중국에서 순교자의 반열에 섰고, 
자기와 함께,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진 순교자 성도들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글래디스 아일워드의 생애 1 중국을 품은 147cm의 독신여성선교사 유튜브.com)

▲여러분 저절로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제게 메일 보내온 자매도, 결혼식이 눈앞인데 
아버님이 돌아가실 지경이 됐어요. 아주 처절한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하나님이 안 믿어지려고 한다'는 거예요. 

한 2년 동안을, 암말기인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살아날 것 같으신데 또 악화되고... 살아날 것 같으신데 또 악화되고... 
근데 결국은 결혼을 하기 얼마 전까지 이런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뭐냐? 나는 하나님이 안 믿어진다'는 거죠. 
그 자매의 정말 절절한 고백이, 그렇게 제 가슴에 느껴지더라고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항상 최선인가?' 
실제로 우리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안 믿어지는 순간이 굉장히 많이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그렇게 안 믿어져요. 

스데반이 그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바라보였기 때문에 
그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최선으로 받을 수 있었던 거예요. 

▲제가 목사님들께 '예수동행 일기'를 교우들에게 쓰게 해 보시라고 
이렇게 권하면... 많은 목사님들이 힘들어 하세요.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실패할까 봐 시작을 못 하겠다'는 거예요. 

괜히 교인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고, 그게 열매가 없으면, 목회에 큰 어려움이 오는 거니까, 
거꾸로 목사님들이 두려움이 있으시더라고요. 

제가 그 목사님들께 그렇게 부탁을 드렸어요. 
'이게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묻지 마시고, 
주님이 기뻐하실까? 그것만 물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 일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게 잘 될까/ 안 될까?' 하는 문제에 너무 걱정이 되는 거죠. 

'주님이 기뻐하실까?'라는 것이 실제로 나에게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될 때, 
그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인게 믿어지는 거예요. 

저도 실제로 교우들에게 '예수동행일기'를 쓰게 한지 얼마 안 돼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일이 앞으로 실패할거다'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게는 엄청 충격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결국 실패할 거라면, 그러면 그 일(동행 일기 쓰기)을 계속 해야 되나? 
근데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그러면 실패할 거라고 안 할 거냐?' 또 그렇게 물으세요. 
제가 너무너무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생각나게 하신게 스데반이에요.  
스데반은 사실 실패자 라고 해야 되잖아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전했는데... 돌에 맞아 죽었어요. 
그러면 외면적으로는 실패인 거죠. 스데반은 아무런 결실을 얻은게 없잖아요. 

그러면 스데반은 실패인가? No! 
그로 인해서 사도 바울이 나오고, 복음의 열매가 엄청나게 맺어집니다
주님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하여, 엄청난 일을 하셨어요. 그러면 실패가 아닌 거죠. 

그제야 제 마음에 '아~ 내가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성공하실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제가 실패할지라도 하겠습니다!' 라고 주님께 기도드렸어요. 

그때 정말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실패하는 길을 가겠다'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예수동행 운동은 굉장히 많은 열매를 맺고 있어요. 
실패해도 가겠다고 약속드렸기 때문에, 힘들어도, 안 되는 것 같아도, 반응이 없어도, 
14년 동안 꾸준히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기로 써보세요. 그리고 그 일기를 나누면서 살아보세요.' 그렇게 해 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 14년 동안 계속 했던 주님과 동행하는 삶 때문에 
지금 이런 열매가 맺어진 거죠.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스데반처럼 순교하자'가 아니에요. 
'하나님,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순교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것도 아니에요. 

우리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정말 내 안에 계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도 주님은 지금 내 안에 계시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주님은 내 안에 계신다' 
하는 사실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대하여, 그게 뭐든지 
최선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생겨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라면, 이게 최선이구나!' 
그 다음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바실리아 슐링크 여사의 인생 모토는 
'하나님으로 두 번 말씀하지 않게 하자'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 하나님! 저도 하나님으로 두 번 말씀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고나서, 제게 있어서 굉장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동안에 제가, 하나님께 두 번 세 번 말씀하게 해드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걸 그제야 알았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두 번, 세 번 말씀하게 한 적이 많았다는 거죠.

▲열왕기상 1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번 솔로몬에게 
'이방신을 따라가지 말라' 하고 말씀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 번씩이나 듣고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나아갔고, 
결국은 이스라엘이 말할 수 없이 어려워지는 길로 가요.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어요. 하나님이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는데도 
어떻게 안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근데 제가 실제로, 주님이 두 번 말씀하지 않게 하겠다... 
그 말은 '마음에 뭔가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다'고 느끼면, 무조건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실제로 살아보니까, 제가 주님이 수도 없이 말씀하셨는데도, 
순종하지 않았던 일이 많더라고요. 
그러면서 '솔로몬이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을 알아듣고도 그렇게 안 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주님, 이제 앞으로는 주님이 두 번 말씀하지 않도록 할게요' 
그런 마음 딱 가지고 살아보니까, 순간순간 깜짝 제가 놀라요. 

'주님이 말씀하셨잖아.. 주님이 나에게 벌써 깨닫게 하셨잖아.. 
주님이 원하신다는게 뭔지 내가 알았잖아..'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조건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 안에 계세요. 
성령께서 계속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세요.
이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돼요.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항상 최선입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되고, 지금은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하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이 알게 돼요.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실제가 되시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이 드러내신다는 거죠. 

우리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합시다. 
오늘 스데반 사건을 통하여 '주님, 저에게 스데반처럼 동일하게 
주님이 제 마음 안에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항상 최선이구나...' 이렇게 결론 짓고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나도 스데반과 똑같은 반열에 서기를 원합니다. 
스데반처럼 비록 순교하는 자리까지 내가 갈지/ 어떨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스데반처럼 주님이 원하신다면 무조건 순종입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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