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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설교 11편~20편

by 【고동엽】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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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해를 바라보며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1월 09일

본문 : 마11:25-30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없으면 귀중한 시간과 금전과

노력이 그만 허비되고 맙니다. 물론 인간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예측 불가

능한 일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그래도 목표가 분명하고 계획이 명확하면 어

떠한 우발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대처 능력과 지혜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가온 1994년 새해를 맞이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정하는 태도에

따라서 이 해가 성공적일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잘 정리, 다음과같이 목표를 잘 세워서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

리는 한 해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1.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새해

 

성숙한 신앙안이 되기 위해 새해에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될 것을 목표

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

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므로 정의로운 삶을 살 것을 크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있어 그 발걸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드러나는 사

람은 정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없는 사람

은 그 발걸음이 자행 자지하며 불의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정의

가 사라진 사람은 협잡꾼, 공갈배, 모리배가 되기 쉽습니다. 즉 인격적인 파

탄을 가져오게 됩니다. 정의를 잃어버린 인간은 인간의 길을 포기한 동물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마음 깊이 하나님의 계명을 새기

고 우리의 발걸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행

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정의가 있는 올바른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결혼계약을 무시하고 자행자지하고 아이들도 부모의 뜻

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 가정은 파탄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사회도 정의가 사라져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이 없는 자를 무시하고 짓밟

으며 폭력이 난무하면 머지않아 파탄이 오고 말 것입니다.

 

국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스빈다. 국가 정의가 사라지고 부정 부패가 팽배

하면 곧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새해에는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정직한 사람으로서 새해를 살도록 마음에 각오해야 하겠

습니다. 마음에 거짓이 가득한 사람은 신뢰를 잃고 맙니다. 우리는 신뢰를

잃은 사람의 말로를 이솝의 우화를 통해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한 소년이 들에서 양을 치다가 무료해서 "늑대가 나왔다"고 소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바쁜 일손을 멈추고 소년에게로 달려왔습니다. 그 소년은

빙긋이 웃으며 거짓말이었다고 했고 사람들은 그를 꾸짖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지난후 이 소년은 다시 외쳤습니다. "사람 살려요,늑대가 나왔어요."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급히 뛰어 왔으나 또 속은 줄 알고는 책망하며 돌아갔

습니다. 그후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 소년은 목청껏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그

 

 

 

러나 아무도 그를 구하러 뛰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늑대에게 희생당했습니다. 신뢰를 잃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자꾸만 하면 신뢰를 잃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를 그쳐야 합니다.

 

바야흐로 국제화시대, 개방화시대를 맞은 우리는 이제 신뢰를 가지고 살아

야 됩니다. 신뢰받는 개인,신뢰받는 민족이 되어야 그 개인과 민족이 살고

번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거짓의 모든 누더기를 벗어비리

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새해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새해에 우리는 깨끗한 사람이 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음

란, 방탕하게 살면 거치른 세파에 휘몰려서 침몰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또 새해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섬기

고 있는 교회, 속해 있는 사회나 단체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

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더러운 것 중의 하나는 배반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함으로 인류 역사에 영원히 버림받고 말

았습니다. 배신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자신이 배반한 상대방을 모함하며 위협

하는데 이런 사람은 이미 인격 파탄자로서 그의 인생도 파멸하고 마는 것입

니다.

 

또 새해에 우리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잘

길들임을 받아 순종적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세계 어느 곳엘 가나 사람들은 몰인정하고 사나우며 무서워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

고 살아야 합니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오르는 억세고 사나운 사람이 기업을 차지할 것 같지만 성경

은 온유한 사람이 풍부한 화평을 즐기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새해에 우리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분

수를 알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분수를 넘어서 탐욕으로 날뛰다가 실패

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받은 것이 아니라 주

는 것입니다. 관심을 주고 시간, 물질, 도움을 주고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

다. 이러므로 새해에는 어찌하든지 나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

을 줌으로 해서 모두가 잘 사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 해를 만들어

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삶

 

우리는 인본주의라는 암에 걸려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맡기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네 짐을 야웨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면 너를 돌

보아 주겠다"고 말씀하고 곗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

 

 

 

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어찌하던지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 실

력과 노력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기도함으로 믿음이 마음속에

생겨나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서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성경 5장을 읽고 하루에 30분 이상 기도하는 것을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

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홀로 지어서 인간들로

하여금 누리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면 주

님께서 책임지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고 내 수단

과 방법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며 하나님을 제외시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멍에 밑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

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가 있으면 실제 멍에는 예수님 목에 걸려 있고 우리

목에는 멍에가 걸리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멍에를 힘차게 끌고 가시고 우

리는 그 멍에 밑에 들어가 쉽고 가볍게 은혜로써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받아

서 그 은혜로 사는 새해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3. 하늘나라를 세우며 사는 삶

 

현재의 우리의 삶은 모두 모래성과 같습니다. 현재 보와 권세, 명예를 만

족할 만큼 가졌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옛 바벧론의

영화가 어디 있습니까? 저 거창하던 로마의 영화도 오늘날 거름무더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의 것은 다 지나가고 맙니다. 더욱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

운 이때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취하는 모든 것은 모래벌판의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께서 오라고 하시면 이 땅에 쌓아놓은 모래성을 저버리고 우리

는 천국으로 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현재의 삶을 우리의 삶의 목적

으로 삼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는 일중에는 주된 일이 있고 부속족인 일이 있

습니다. 나의 주된 일, 주업은 예수님을 섬기고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

야 하며 인생을 사는 것은 부업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바꾸

면 모든 일이 잘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을 여러분 삶의 주업을 삼으시기를 주님의 일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에서도 먼저 해야할 일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먹고 자고 지장에

나가는 그런 하숙행같은 생활이 주업이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주 앞

에 조용히 앉아 기도하며 주의 음성을 듣는 큐티(QT)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읽고 새로 깨달은 바나 의문나는 것을 함께 나누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먼저 해야할 일이 있고 나중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영업이면

그 직장은 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시작해

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반드시 하나님과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것입니다. 주님

께서는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일은 주님으로부터 일

주일의 남은 날들을 축복받고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날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맡은 봉사가 끝나면 곧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십시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주님께 예배드리고 귀가하여 가족들이 단란하게 대화하며 지내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악한 세대에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 진행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진행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삼 일만에

부활 승천하심으로 성령께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시지 않습니

까?

 

우리는 우리의 영혼 구원을 언제나 최대의 중대사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먼저 섬겼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원하실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배에 모시고 섬긴 베드로의 배에서

나오시면서 예수님은 빈손 털며 "고맙네. 열심히 살게나!"하고 떠나시지 않

았습니다. 그렇게 무책임한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베드로를 보시더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야, 이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니 잡힌 것이 너무 많아서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로 하나님은 무책임하게 떠나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드

리는 자에게는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다시 안겨주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살자

 

조국은 우리 삶의 터전입니다. 조국은 친정과 같습니다. 친정이 잘삼녀서

친정에서 아무것도 안도와줘도 가슴을 펴고 삽니다. 그러나 친정이 못살면

친정을 도와주지도 않는데 온 시집식구들이 "뭘 훔쳐서 친정에 안가져다주

나?"하는 의심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사는 것이 고달프고 애달픈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잘살면 해외에 가서도 어깨를 쭉 펴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못 살면 어느 곳에 가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옛날에 제가 어려서 시골에 살 때 저희 집에서 개를 많이 길렀습니다. 저

희 집 개가 동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부잣집 개가 내려온다고 해서 개조차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들이 대접을 받지, 나라가 연약하면 국민들은 대접

을 받지 못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조국을 잃었던 때를 잊지 말아야 합니

다. 일정 36년 동안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이름도 문자도 말도 빼앗기고,

잃어버린 땅에서 천민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6.25 때는 또 얼마

 

 

 

나 많은 사람이 무참히 생명을 잃고 짓밟혔습니까? 이러므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민족의 지도자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오염을 막는 일에서부터 나라와 민족을 사랑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없이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파괴

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해에는 어찌하던지 솔선하여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자연사랑

으로부터 시작, 쓰레기도 줄이고 환경을 정화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중도덕을 지키고 국가 재산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공원의 벤치나 공중변소, 공중전화 등도 함께 깨끗이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

는 것입니다.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 주었나' 질문하지 말고'내가 국가를

의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실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강과 질서가 바로 잡힌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우리가 전하는 그

리스도의 말씀도 올바로 증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잘못

살면서 남에게 복음을 외친들 무슨 효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 가운데서 복음을 증거해야만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

의 말씀대로 잘 지키고 관리해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이래야만 그리스도와 참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돛단배는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에 관계없이 돛의 방향대로

나아갑니다. 강풍이 불고 바다가 요동을 쳐도 돛의 방향에 따라 물을 거슬

러 올가기도 합니다. 물이나 바람이 배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돛

이 배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세상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마음의 돛의 방향대로 살아가게 되

는 것입니다. 배가 목적지 항구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 돛을 놓는 것처럼

우리도 한해를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

는 것입니다. 방향 설정없이 바람부는대로 산다면 그 인생은 아무것도 성취

하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금년 새해에는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목표를 세우고 살아

가십시다.

 

첫째, 성숙한 성도의 생활을 할 것을 결심하며,

둘째,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의 은혜로 살며

,

셋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최우선에 두며,넷째, 조국과 민족을 사

랑하며 늘 기도하며 작은 일이라도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이러한 마음의 돛을 확실하게 세우고 이 한해를 살아가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제목 : 야웨를 대적한 일들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3월 06일

 

하나님을 슬프시게 해도 복을 받을 수가 없을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진노하시게 하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같은데 실상은 그렇

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 어

떤 것인가를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 그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일

이 일어나기를 바라겠습니다.

 

1. 십계명중 네 계명을 어길 때

십계명 중 네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 계명입니다.

이 계명들을 어길 때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하나

님을 대적하는 일이 디고 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를 맺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를 맺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대적합니

다"하는 선전포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 중 네 계명의 첫째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는 것입니다. 결혼한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당신은 나 이외에 다른

남자와 교제하지 마세요"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다른 남자와 비밀리에 교제한다면 그것을 알고난 다음에도 그 여자와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간음하고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인

느 곧 간음한 여자는 버려도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영적인 간음을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반드시 버림

을 받습니다. 그 행동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계명은 '우상에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 조차도 가나안 땅

에 데려와 복을 주신 후에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섬기자 그들을

더럽게 여겨 앗수르와 바벧론의 포로가 되어 잡혀가도록 허락하시고

이스라엘 땅을 황폐케하셨습니다.

 

제가 십수년 동안 일본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지만 일본 사람들이 회

개하는 것을 좀체로 보기 어렵습니다.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도

그 심령에 성령의 불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냉랭합니다.

 

14년 동안을 다녀도 몰랐던 그 이유를 저는 이번에 발견했습니다. 일

본의 가정에는 거의 모두가 불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

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목사님까지도 집에 불단을 그대로 가지

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큐슈에서 목회하는 우리 선교사 김일목사님이 예수를 믿으면 집에

있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전하자 일본목사님들이 이

는 일본문화를 파괴흔 짓이니 이목사를 내어 쫓아야 한다고 들고 일

어났다고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교회가 성장될 턱이 없는 것입니

다.

 

예수믿는 가정에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집에 불상이나

 

 

 

가미다나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대적하는것인데

여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실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부르지말라'고 했는데 이를 어기고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는것

입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 대한 대적행위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께서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주일로 변화시켰는데 이에 관

히 이사야58장 13절로 14절에 다음과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

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을 일컬

어 즐거운 날이라, 야웨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

기고 네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물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야웨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과 업으로 기르리라 야웨의 입에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이 성일을 우리는 잘 지켜야 합니

다. 잘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 얼마나 큽

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날을 무시하고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하

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시

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십계명 중, 하나

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 이 네계명만은 철저히 지켜야 되는것입

니다. 우리가 무의식 혹은 의식 중에 이 계명들을 어기면 하나님을 대

적하는 행위가 됨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으니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에 어찌 하나

님께서 응답하시겠습니까?

 

2. 십일조와 헌물의 도적질

성경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

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 우

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돌아오라고 하십니까?어떻게 돌아갑니까?" 하

고 여쭙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함으

로 온 나라가 내게 저주를 받암아다. 내게 돌아오려면 십일조와 헌물

을 드리고 네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의 중여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같습니다. 적

당히 도적질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

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는 너는 나와 상관없다. 너는 나를 떠났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 앞

에서의 도적질로 규정을 짓고 계십니다. 그리고 도적질한 사람과는 같

이 있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이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

나님께로 돌아갈까요? 말라기 3장 8절에 그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

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를 헌물이라"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여유가 있으면 십일조를 드리고 없

으면 안드리며 내게 좋은 것이 생겼을지라도 적당히 자기 생각대로 처

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크게 슬프시게 하고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적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기도는 응답될

리가 없고 심판만 있으리라고 성경 말라기 3장 9절은 말씀하고 있습니

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

았느니라"성경에 보면 일반 죄인도 주님께서는 저주하지 않으시고 더

욱이 성도들은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희 온 나

라가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일조 헌물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므로 저주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대단히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 것이 있

으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십일조와 헌물

을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서 12절에 보면 "만군의 야웨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웨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

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발에 포도나무의 과실

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웨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에 곡식이 끝까지 열매를

잘 맺게 해주시겠다는 것이고 산업사회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어서 잘

팔리게 해주심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보고 복되다고 칭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반론을 펴는 분들이 많이 계실것입니다. '일본은 기독인이 전

국민의 1%로,50만 명도 안되는데 얼마나 잘 사는가, 그들은 십일조를

안드려도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는가'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가 일본에 가서 그곳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

그분들이 크게 가슴을 치고 애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일본

은행은 60조 엔, 한국돈으로 약 462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지구촌의 땅값이 높았을 때에 은행에서 융자를 내어 미

국, 혹은 유럽에 가서 골프장과 부동산을 많이 샀습니다. 물론 이 부

동산들을 담보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후 부동산 값이 형편없이 떨어지자 그 부동산들을 헐값으로

처리하고 돌아옴으로 은행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국민 한사람이 '응애' 하고 태어날 때부터 7천7백만원의 빚을 지고 태

어나는 처지가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일본

이 이 빚을 갚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도 10년이 걸려야 된다는 것입니

다.

 

그동안 잘 벌었다고 자랑하며 세계를 누볐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간

드리지 않았던 십일조를 복리계산까지 해서 내놓으라 하시니 다 내놓

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일본은 오늘의 경제 현실을 좀처럼 회복하기 여

럽다고들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일본목사님들은 탄식을 합니다. "일본이 하나님을 믿

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던 십일조를 다 계

산해서 가져가셨다. 이제 이 빚을 일본의 힘으로 갚기는 너무 벅차다

"하며 가슴을 칩니다.

 

일본은 현재 국민들의 월급을 깎아내리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일

본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을 섬

기며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

성도들이 전도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제가 일본인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즉각즉각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셨다가 심판하십니다. 하

나님은 좀처럼 사람을 저주하는 분이 아니시지만 십일조와 헌물을 도

적질할 경우, 개인과 나라를 저주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이

러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잘 섬김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예비하신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 대한 망령된 말들

여러분, 입의 말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힘이 될 수도 부

정적인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한 경고가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잠언 13장 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

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언 21장 23절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

서 보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잠언 13장 2절은 "사람은 입의 열매

로 인하여 복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을 잘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그 결과 화를 자초하

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

님을 대적하는 말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오래 전에 예수님을 잘 믿다

가타락한 분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분은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

다.

 

"예수 믿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 불

쌍한 사람들이지 .. 세상에서 살려면 좀 자기 자랑도 하고 선전도 해

가며 우쭐대야 해요 그리고 약삭빠르게 굴어야 하는데 늘 겸손하고 옳

게만 살려고 하니 복을 받을 수 있나.. 예수 믿는 것 다 헛것이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적당히 내세워 부귀영화를 얻어야지..

 

적당히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잇속을 취하라는 말이었습니다.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행했던 이분은 얼마 잘 살지도 못하고 병들어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사

단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만났을 때 했던 말과 같습니다.

 

"이 돌들로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어라. 곧 하나님을 이용해

서 네 구복을 채워라"꾀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높은 뾰족탑 위로 예수

님을 데리고 올라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여기서 뛰어내려랴

네가 돌에 부딪치지 않고 사뿐히 내리면 모든 사람들이 너를 추앙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이용해서 명예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을 시험하라고 사단이 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

리가 언어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곧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그러므

로 "예수 믿어도 헛것이다. 불쌍할 뿐이다.세상적으로 적당히 살며 하

나님을 이용만 해서 네 잇속을 차려라 진심으로 예수믿는 것은 헛일이

다."하는 말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이 되니 장난으로라도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대

속의 죽음을 죽게 하셨고 예수님은 "그 아들을 주신 자가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며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

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하

였습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잘 믿었으면 반드시 복을 주실터인데 우

리가 거역하고 나서"하나님을 믿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잘 섬기는 사람을 어떻게 축복하실 것

인가를 성경에 공적으로 선언해 놓으셨습니다. "그때에 야웨를 경외하

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며 야위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야웨를 경

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

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라기 3장 16절).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고넬료 가정을 구원하시려 보낸 천사는 "

고넬료야, 네가 열심히 기도하고 많이 구제한 것이 하나님께 기억한

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이 일거수일투족을 바

라보시면서 선행을 기록해 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기록만 해 놓고 계시겠습니까? 때가 오면 특별한 대우를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특별대우에 관하여는 말라기 3장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

다. '만군의 야웨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

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없이 내가 그들

을 아끼리니"

 

또한 말라기 3장 18절에는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읜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말씀하시

어 악인과 의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나

님께 구별되는가를 사람들 눈에 보이도록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의 아니게 하나님께 대적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저

주를 자초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하나님

을 대적해서 그 결과로 저주가 다가오면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해 탄식

할 때가 많은데 늘 경성하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잘 믿고 섬겨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만일 하나님

을 대적하는 삶을 사셨다면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기 전

에 응답하시고 우리가 외칠 때에는 "내가 여기있나이다"하시며 능력의

오른 팔로 우리를 이꿀어 내사 만인앞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이

어떠한가를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13

제목 : 새로운 정사와 권세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2월 27일

 

한 국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스리는 정치단체인 정부가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정부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정사'란 말을 쓰고

있습바니다. 그리고 권세란 정부를 받들고 있는 권력기관들, 쉽게 예

를 들자면 경찰과 군대와 같은 기관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 골로새서 1장 13절에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셨으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우리가 과거에는 마귀의 정사와 권세에서 마귀의 지배를 받

고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정사와 권세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의 정사와 권세 밑으로 옮겨주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옛 정사와 권세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새 정사

와 군서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옛 정사와 권세

옛 정사와 권세는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천

사장 루시퍼가 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해 하나님의 보좌을 찬탈하려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쫓겨난 존재입니다. 그는 쫓겨날 때 하늘

의 천사 3분의 1일 끌어들여 공모, 반역하여 함께 공중으로 쫓겨났습

니다.

 

이 쫓겨난 루시퍼는 공중에서 자기의 정부를 세우고 그 공모한 천사

들을 권세자들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

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10절로 12절에 보면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

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

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게 대함이라"고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그 정부를 세우고

그 밑에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을 병사로 거느리고 도처에서 하나님

의 사역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휘방하는 제일 첫째 목적은 하

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반역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좌절되게 하

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 동산에 두었지만 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 에덴에서 쫓겨나고 마귀의 정세와 권세

밑에 들어가서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의 그

후손들은 자진해서 마귀에게 항복하고 그의 백성이 되고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와의 그 후손인 우리들은 별도리없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

가 지워주는 죄짐을 짊어지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저항하며 죄를 지었

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법에 정면 도전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고통을 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는 영적, 정신적,육체적으로 병들도록 해서 그 병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리고 또 가난과 저주 속에 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했습니

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사람이 죽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일들을 마귀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땅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보고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

다. 사람들은 인생의 이 슬픈 문제들을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해결해 보

려고 온갖 몸부림을 쳤습니다. 지식을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달시키며

사회와 국가의 개혁을 시도해 보고 주의, 주장을 세워보는 등 온갖 일

을 다 해도 죄와 저주, 질병,가난,사망에서 해방될 수 없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종교가로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나 철학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정사와 권세를 세

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거나 또 어떤

사람들을 일으켜서 종교나 철학을 가르치게 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종교나 철학을 주는 것이 아니고 마귀

의 정사와 권세 가운데에 하나님의 정사와 권세를 세우시려는 것입니

다.

 

이 정사와 권세에는 임금이나 대통령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서는 하늘나라의 임금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신의 몸

을 입게 하시고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종교나 철학,이념, 의식을

주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하늘정

부를 세우고 하나님의 권세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

다.

 

2.새 정사와 권세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오신 목적을 말씀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

이 가까왔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의식이 가까이 왔다, 철학이 가까

이 왔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하

늘나라를 세우기 위해 내가 왔다"고 하시면서 가시는 곳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성경 요한일서 3장 8절 후반절에는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니신

것은 이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가시는 곳에서마다 마기가 세운 모든 정부와 권세를 허물어뜨리셨습니

다. 죄를 허물고 질병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내어쫓으

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환난을 평화로 채워주셨습니다.

생명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에 정면도전을 하신 것

입니다.

 

자기의 정사와 권세를 침략당하는 마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

다. 그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저항 전이 바로 갈보리산의

십자가 전쟁인 것입니다. 마귀와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전

투를 한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갈보리에서 격전을

한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처절하며 치열한 전쟁이었습니

다. 이 전투에서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 임금인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와 유대 사람을 동원해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리고 만것입

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전혀 없으므로 마귀의 행정권한에 있

지 않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마귀는 체포, 심판해서 십자가 처형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계기삼아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마귀를 심판

했습니다. 우주의 지배자요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마귀

가 죄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불법 중의 불법인 것입니

다. 마귀에게는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고 죽일 권한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그 불법에 대해 우주적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 전쟁의 손익계산를 따져보니 마귀는 3일동안만 승리를

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3일 동안 죽은 바 되셨을 때 온 천하는 마

귀의 정사와 권세하에 있었습니다. 그동안 죄인은 해방되지 못했으며

마귀나 귀신은 쫓겨나지 않았고 병은 낫지 않고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

고 더 이상 죽은 자가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천하 지배

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아서 박수를 치며 공중에서 대축제를 벌였

을 것입니다.

 

율법은 '너는 죄인이다'하며 늘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이 율법 하

에서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이 율법

의 사슬로 사람들을 꽁꽁 묶어서 죄인으로 정죄하여 끌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 일생의 죄악을 다 청산해 버리

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되고 만 것입니다.

 

모든 빚을 다 갚아버리면 빚증서가 필요 없습니다. 정죄하기 위해 있

는 율법은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율법을 지키므

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기만 하면 그 피값으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스러운 소

망중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정사를 해

체시키고 무장을 해제해 버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일어나서 원수 마귀의 정부와 군대를 다 해산시켰기 때문

에 오늘날 마귀는 정식적인 정부도 군대도 없습니다. 그래서 게릴라전

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보혈의 능력을 통해 하나

님의 아들나라를 이 땅에 세워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나라가 상

징적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정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권세인 성령과 천사들이 임하여서 하늘나라가

정부가 교회에 있고 우리 속에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임하신 하늘나라는 우리 개인의 생활 속에서 가정,사회,국

가, 세계에서 마귀의 일을 멸해버립니다. 죄악을 멸해버립니다. 질병

과 저주, 귀신을 멸해버리고 사망을 철폐하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늘나라를 건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3.하나님의 아들나라 선포

누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나라의

의미를 선포하신 것이 아들나라의 의미를 선포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

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지상에 임한 하늘나라는 성령의 권세와 천사들의 능력으로 많은 백성

들을 마귀의 정사와 권세에서 구원해 내셨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에주

님께서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

도께서 성령으로 더불어 천사와 함께 하늘 나라의 정사와 권세를 교회

를 중심으로 세우셔서 교회를 통해 온 세계 만방에 전파하고 계신 것

입니다.

 

그러면 이 하늘나라는 어떠한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

나서 영적으로 버림받고 내적으로 가난하며 마귀에게 눌리어 저주와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그리고 예수를 모시어 성령이 오심으로 영적으로 의와 평강,희락을

누리며 내적으로 부요하며 현실적인 삶을 저주, 가난에서 해방시켜서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축복된 세계를 주님

께서 가져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임한 하늘나라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겠다

고 외칩니다. 죄와 마귀는 우리를 잡고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한 생각

과 말과 행동을 하며 살도록 했으나 하늘나라가 임하면 불의 대신에

의를 거짓 대신에 진리를, 더러움 대신에 거룩함과 깨끗함을 주어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답게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역사는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는 것

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눈이 밝아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와 성령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며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짓자마자 영이 죽어 영안이 어두워

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눈만 가지고 육신의 세계만 바라보게 되자 영

적 세계는 알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에만

붙잡혀 살았습니다. 이렇게 눈먼 자에게 하늘나라는 와서 예수를 믿음

으로 말미암아 다시 영안이 열리면 성령을 알고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란 것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

번 마드리스 성회에서 강단에 서기만 하면 성령이 제게 임하는데 마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듯이 내영에 가득히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붙잡아 주신느데 마치 공중에 뜨이는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말씀 한마

디 마디에 하나님의 능력의 생수가 강같이 넘쳐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산인해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 그렇듯 말씀이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많은 사람들이 조금도 움직임이 없이 말씀을

경청한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제입을 통해서 말씀의 생수가 강같

이 흘러가서 그들이 생수의 강에 취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제 눈

으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눈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

의 눈, 육의 눈을 다 뜨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성회에서의 한 여성도

의 간증을 스크린으로 보신바와 같이 그는 회개하여 영의 눈이 뜨이자

어둡던 시력도 밝아져서 작은 글자까지도 잘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간증하겠다는 분이 너무 많아 나와 강단이 무너질까봐 간증을 중단했

습니다. 하늘나라의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능력이 하늘나라에 속해 있는 것

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의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

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며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

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려 벙들고 고통받는 자를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는 반드시 치료가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역사입니다.

은혜란 우리가 율법을 지키고 어떤 행위를 함으로 그대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아무 행위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

면 값없이 구원을 받는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로 그리스도 강림때까지 오늘날은 은혜

의 해를 전파하는 때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

게로 오라고 주님께서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와 회개하면

모든 죄를 보혈로 씻음받고 무조건 값없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와 회개하면 모든 죄를 보혈로 씻음받고 무조건 값없이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이 우리를 의롭게 살

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된 소식을, 포로된 자에겐 자유를 눈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는 자유케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전파되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온 천

하에 다니며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바로 이 역사를 전파하여 마귀

나라 백성들을 구출하는 위대한 역사를 베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세상에는 두 정사와 권세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이미 무저

진 정사와 해체된 무장집단인 마귀의 정부와 권세입니다. 이것들은 아

직도 불신앙의 사람들 속에서 게릴라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이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임금은 예

수님이시고 권세는 말씀과 성령님과 천사들인 것입니다. 이 나라는 우

리 안에 우리는 이 나라 안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새 정사와 권세를 힘

입어 매일매일 마귀의 무너진 정사와 권세를 척결하면서 하나님의 영

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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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2월 20일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

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

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

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

라"(롬 4:17).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담 안에서 다 죽었습니다. 아

담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죄를 짓고 쫓겨나자 그는 영적으로 죽고 생활

도 저주받고 만 것입니다.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영육간에

병들고 저주받은 땅에서 육체는 죽고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환경에 놓인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비극적인 운명에서 헤어나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써봤습

니다.정치적으로 노력해 보고, 경제적으로 노력해 보고, 사회적, 군사

적, 과학적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오늘날 인간의 힘으로 성취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곳 인도에는 근 10억의 인구가 삽니다. 그런데 생활여건이 너무나

열악해 이곳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매일매일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것인가를 탄식할 정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헤매이는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2처

년전에 이땅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1.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

입니다. 주님께서도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

입니다.

 

본문 말씀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고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 모든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

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든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배고픈 자에게 먹이시고 사람들에게 소망과 영원

한 천국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살리는 사역을 담당하시기 위해

서 아담이 지은 모든 죄악을 친히 당신의 것으로 하여 책임을 짊어지

신 것입니다.

 

변호사는 의로인을 위해 법정에 나가서 대리권 행사를 합니다. 의로

인을 대신해 모든 변호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대리권 행

사를 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인류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범죄하여 받

은 저주의 청산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대리

권을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없이 태어나셨습니다. 그후 3년간의 공생애를 보내시고

33세 때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바니다. 여러분의 죄,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주님은 몸찢고 피흘리시며 처참하게 죽으셨

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

 

 

 

님의 살리시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린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우리 인

류를 대신해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

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받

고, 용서받은 의인으로서 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님을 구

주로 모셔들일 때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살리시는 능력에

의해서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높이 달리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

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그 보배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속에 거하시고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질병에서 치료하심으

로 살려 주신 것입니다. 영이 병들고 미움, 불안,초조, 절망으로 마음

과 몸이 병들어 고통당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님이 친히 병을 짊어지

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을 청산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시켜 살리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저주를 받았지 않습니까?

저주를 받아 땅은 엉겅퀴와 가시를 낼 것이고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인도에 오니 하나님의 그 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태어나고 길거리에서 살다

가 길거리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평생을 삽니다. 또 매일 끼니

를 잇는 것이 하나의 큰 과제로 몸부림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이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머리에 저주의 가시관을 쓰고 온 몸은 쇠

가시에 찔리신 채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

리는 저주 안에서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축복

으로 살려주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이라아에서 아무리 부귀영화

공명을 누리고 살았다 할지라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때 그의 영혼은

영원히 버림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

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사망과 음

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영생의 자녀로, 천국 시민으로 살려

주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

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메시지,이 복음이 2천년전부

터 온 천하에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저도 이곳을 살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여기 인도

마드라스까지 왔고 여러분도 이 성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

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 살아난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

랑을 받고 사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고 사

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

의 넘치는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은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영원히 천국백성이 되어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살아나는 역

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찬미해야 할 것

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아무리 죄와 질병, 저주

와 절망으로 죽었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하나

님께 들어오면서 하나님은 전지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데에 차별이 없으십니다. 동서양, 한국 사

람이라 인도사람의 차별이 없고 유식, 무식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계급적인 차별도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만 하면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

하여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니다.

 

2.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경본문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꿈과 환상이라

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눈에 안보입니다. 귀에 안들립니다. 냄새를 맡을 수도 맛 볼 수도 만

질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4백3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

라엘 백성을 불러내실 때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정말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흘렀나요? 전

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상은, 산은 높고 골은 깊으며 땅은 황무하여

백성들을 삼키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을

까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

다. 현실적으로는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것을

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황무지를 꽃동산으로 옥

토로 개간해서 젖과 꿀이 흐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3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서 가데스바네아 광야에 나왔을

때 모세는 12명을 취해서 가나안 땅을 40주 40야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구석구석까지 정탐한 후 귀가 나팔처럼 되어서 소

식을 기다라고 있는 백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10명은 현실적으로 본 그대로를 편견없이 보고했습니

다. 절대로 잘못된 보고가 아닙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한 줄 아십니

까?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 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 광활한 황무지였다. 그리고 산

은 높고 골은 깊어 평지는 별로 없으며 성벽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

그곳 거민은 네피림의 후손으로 대장부들이라, 우리가 그땅을 점령할

 

 

 

수 없음은 물론 우리의 처자는 다 포로가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땅을 치고 울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

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와서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진정하라. 우리가 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우리가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하자"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의 현실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꿈으로

품고 말한 것이지요. 점령할 수 있다는 것도 꿈이었습니다. 그러니 사

람들이 돌멩이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나타나 "열사람을 불러내라"고 말슴하셨

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오자 청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그들을

새까맣게 태워 죽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남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꿈이

없는 백성은 제하십니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하셨습

니다. 아무리 거민을 삼키는 황무지라도 꿈이 있는 백성에게는 그 꿈

을 통해서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가 있지만 꿈이

없는 백성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으므로 살아보았자 소용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로 회진시키셨습니다. 그들은 40년 간 그들이 현실인 광야에서 허덕였

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서 허덕이다가 현실 속에서 죽습니

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을 가지고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후손들과 더불어 가나안 따에 들어갔고 꿈

을 따라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과 손에 복

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황무지였던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 교훈에서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유럽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젖과 꿀, 황금을 구하기 위해 남대륙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젖과 꿀, 황금도 얻지 못하고 영혼들도 죽고 말았습니

다.

 

그러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 국가 건

설이라는 꿈과 환상을 품고 미대륙으로 항해했습니다. 그들은 황금을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황무지에 도착했

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

서 3백년이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고만 것입니다.정치,경

제,교육,문화,군사,종교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똑같이 유럽에서 출발했지만 황금을 찾아 남미에 간 사람들은 그곳에

서 황금도, 그들의 신도 잃어버렸지만 올바른 꿈과 환상을 가지고 미

국 대륙에 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도 받고 황금도 얻고 살게 된 것

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

고 성령을 받아 꿈과 환상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오순

 

 

 

절날에 임한 성령을 받은 일백이십 문도는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이었

습니다. 그들은 어부나 세리로서 천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꿈과 환상을 부어주시자 그들을 통하여

3백년 이내에 대로마제국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구주로 모셔들이

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볼때는 보잘것 없는

광야같은 사람이엇지만 그들의 꿈과 환상을 통해서 오늘날 온천하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그중의 한 사람,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꿈과 환샹을 안고 머나먼 인

도에까지 와서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꿈과 환상

이 있기에 그 바통을 이어 인도의 10억 인구를 구원하기 위해 여기까

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모든 사람에게 꿈과 환상을 줍니다. 성경은 '말세에

내가 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세례 받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쓰임받고 복 받는 사람

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꿈과 환상은 한 자리에서 정체된 것이 아닙니

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나갑니다. 성령은 우

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꿈을 주시며 발전하고 창조하는 꿈, 공격적인

꿈, 전진하는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만드는 백성들입니다. 현실만을 바라

보는 열명의 정탐꾼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현실

위에 하나님이 주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영화로운 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을 가지고 없는 것을 있는것 같이 바라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면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곳마다,발로 밟는 곳마다 젖과 꿀이 흐르게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은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넣어주시는 그 꿈과 환상

속에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현실의 포로가 되지 마십시오. 마음속에 꿈과 환

상을 가지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받는 꿈, 치료받는 꿈, 축봅

받는 꿈, 천국의 꿈을 가지십시오. 그 꿈을 마음속에 품고,바라보고 ,

감사하며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그리고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는 믿음으로 밀고 나가면 하나

님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앉고 일어서는 곳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는 곳

마다 가나안 땅, 곧 기적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구주로 모시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고 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하나님께 보여드

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여러분의 내일을 창조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꼭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십시오. 예수님께 의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인르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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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앙의 3대 요소

자료원 : 조용기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발행일 : 95년 08월 08일

 

우리는 감각을 통하여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는 물질 속에서 태어나

서 그속에 살아오며 자연히 감각과 환경에 익숙해지며 그것들의 노예가 되

어서 살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감각으로도 체험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대단히 결단과 마음의 훈련이 필요한 것

입니다. 본적도 없고 마음에 음성을 들은 적도 없으며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간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1.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지 감각으로 살아서는 안된

다는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다른 무엇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운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채찍의 하나님,

늘 괴롭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

여 에덴동산을 마련해 주셨는데 이곳은 상함도 해함도 없고 풍요로운 곳이

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와 짝을 이루어서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며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위하여 새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셔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죽는 것이

없는 천국을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9절은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

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

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모든 것을 미리 작정하시고, 예비해 놓으신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

자가에 달려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것은 어떤 과거의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요 나를 위해서 고통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달리 제 길로 갔거

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5-6)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내 죄가 사함받고 치료받고 저주

에서 해방을 얻고, 성령을 받고,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을 얻어 천국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 위대한 기적을 우리는 마음속에 믿어야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에는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로울

때나 슬플때, 아플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읽으면 그 속에서 기록된 약

 

 

 

속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다가오고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우리는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

이 죽고난 후에는 천국과 지옥 중에 한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

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

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

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볼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 곧 불못이라"(계

20:12-14)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

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21:1-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원히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2.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감각과 환경을 뛰어 넘는 길은 담대함 밖에 없습니다. 담대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이 75세가 되었을때 그에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

도록 하셨습니다. "야웨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진척 아

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

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

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세기

12:1-3).

 

아브라함은 자기의 고향과 생업을 버리고 아내와 함께 담대하게 순종하였

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적지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서 양무리를 칠 때에 하나니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서 이

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애굽은 당시 세계 최대의 대국이었습니다. 그런 나라의 왕 앞에 나가 3백

만 이스라엘 백성을 4백30년동안 종살이에서 구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

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인에게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

님을 믿는 담대함을 가지고서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줄 것을 담대히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

님은 모세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4백30년동안 종살이에서 구출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를 보십시오. 왕이 우상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우상에게 절하라고 할 때 그들은 담대하게 타협하지 않고 우상에 절하지 않

았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풀무불에 던지움을 받았어도 하나님께 같이하셔

서 그 불꽃 가운데서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 또한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여덟형제중에 막내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가정

에 기름부으러 갈 때 다윗의 일곱 형들이 참으로 잘나 보였습니다. 다윗은

형제 중에서도 제일 키도 작고, 잘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덟형제 중에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바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을 훔치려 온 곰이나 사자에게

달려들어 맹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이름을 의지하고 마음속

에 담대함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함이 없는 사람을 겉으로 보기엔 아무리 잘나고, 근사하

게 생겼고, 지식과 총명이 있다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담대

함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이 택한 왕이었으며 이스라엘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였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리앗 앞에서 담대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강하고 담대하게 물맷돌 다섯개를 가지고서 대장군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그는 담대한 믿음으로 "만군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무엘상17:45)고 담대한 선언을 하고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쳤던 것입

니다. 이러한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열두 사도 중에 제일 담대한 사도는 베드로였습니다. 어느날 한밤 중에 배

를타고 바다로 건너가는데 풍랑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

다 위로 걸어오자 고함을 치고 모두 놀라 엎드렸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14

장 24절로 28절은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

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며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내니 두려

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

로 오라 하소서 한대"라고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베드로는

다른 제자보다 마음에 담대함을 가졌기 때무에 풍랑이는 바다위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담대하게 믿음의 실천을 행한 인물

들입니다.

 

저도 지난 38년동안의 목회생활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이 저의 삶 속에 가

장 큰 역사를 한 때가 저가 굉장히 담대했을 때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 지라도 강하

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항상 큰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면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약속의 말씀이 이룰 때까지 인내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약속의 말씀을 받기 위함이라고 가르

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교육과정도 보면 국민학교에서 대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외국

어 공부를 많이 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

는 가를 깨닫곤 합니다. 외우면 잊어버리고 또 외우면 잊어버립니다. 문장

을 금방 이해했는데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합니다. 제가 옛날

에 영어를 공부할 때는 단어 하나를 외운 후 평균 8번 정도 잊어버렸습니

 

 

 

다. 그러나 끊임없이 인내하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눈에 환하게 열리고 귀가 트여지더군요. 이처럼 목표는 끊임없이 인내를 가

지고 노력할 때 비로소 성취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 여름동안 땡볕

아래서 제초를 하고 벌레를 잡고 끊임없이 돌보아 주면 비로소 가을에 추수

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오래참지 못하면

그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75세에 자식

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75세에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85세가 되어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1백세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75세에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받은 아

브라함은 무려 25년의 세월동안 인내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

는 온전히 인내하지 못하고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오늘날 아랍민족들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피흘리는 전쟁을 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야곱

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외아저씨 집을 떠난 이후에 복을 주시겠

다고 하셨는데 그 복을 받기까지는 20년의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의 백성을 구원하려고 40대에 나왔으나 40년의 긴 세월을

기다린 후 나이 80이 되었을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

니다. 요셉도 애굽에서 10년동안 종살이, 감옥에서의 2년등 장장 13년 동안

그는 완전히 버림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포기하

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13년전에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보여주신 대

로 모든 형제들 앞에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당당하게 쓰임을 받게된 것입니

다.

 

4. 이렇게 인내하십시오.

 

성경에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

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

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

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

일하시니라"(히브리서13:5-8)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님 앞에 나가서 약속을 받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3장10절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

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

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계속해서 읽으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고 인내를 가질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인내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는 환경만 바라보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도해서 하나님의 성령

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이

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도 기도하면서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속으로 바라

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

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우리 마

음속에 늘 바라보면서 그것이 늘 이루어지는 사실을 마음속에 기뻐하고 감

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입술로 자기의 삶을 부인하면 안됩니

다. '나는 이제 버림받았다.나는 못한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다.나는 패배

 

 

 

자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가'이렇게 자기를 비하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

느니라"(막9:23)"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

라"(빌4:13)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두 것인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긍정적인 말씀으로 자기에

게 용기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연단과 훈련이 쌓이면 쌓일수록 믿음의 길은

쉬워지고 익숙해 집니다.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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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전신갑주

자료원 : 조용기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발행일 : 95년 07월 30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하여 엄청난 영향을 받고 우리의 생각

이나 생활태도가 변화되어 가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후의 세력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는 것이

든지 또한 악한 사탄의 영향력이든 인간은 영적인 세계를 벗어나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영향력 속에서 태어나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현실환경에 나타난 수많은 죄악과 파괴와 절망적인 그 배후

에는원수 마귀와 그지배하에 있는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

면 깜짝놀랄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 거짓말하는 귀신, 점치는 귀신, 우리

를 허약하게 하는 귀신, 여러가지 질병을 가져오게 하는 귀신 등.. 여러종

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귀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의 은혜 가운데 사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해

야 우리가 이 악한 날에 이 악한 마귀와 귀신들을 대적하여 이기고 승리하

는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성경은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

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

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인 것입니다.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온 우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참이요, 그속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허리띠로

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중심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허리를 상하면 그 사람은 일어나지도 못하고짐도 들 수 없고, 정상적인 생

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허리가 바로 우리의 중심기둥인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고, 우리 삶의 기둥으로 삼아야 되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제물로

올라가셔서 몸찢고 피흘리고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

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당신의 일을 대신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우리 배후에 기도하고

게시며 장차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실 하나님이신 것이빈

다.

 

2. 의의 흉배를 붙이십시오.

 

요사이 방탄복을 조끼로 입는 것처럼 옛날에도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이

가슴에 구리로 만든 흉배를 붙여서 적의 창이나 활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는 우리에게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지만 이 계명을 통해

서 의롭게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과 계명은 죄를 기

억나게 할 뿐 의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여러가지 헛점이

생각나지 거울이 우리를 씻어서 치장해 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율법이

 

 

 

나 계명은 우리 인격속에 잘못된 것을 지적해서 심판하기는 하지만 우리를

절대로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교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

자가 보혈을 통하여 우리의 일생의 죄가 용서함 받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

미암아 용서함을 입고 주님의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아서 우리 가슴에 간직

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3장 21절로 25절에는"이제는 율법외

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

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

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

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몸찢고 흘리신 그 피로 인해서 우리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의 모든 죄를 주님이 다 청산해 버리시고 그리고

주님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3. 평안의 예비한 복음의 신을 신으십시오.

 

맨발로 가시밭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발을 신은 사람은 험한 산

길을 지나고 자갈 밭길을 지나고 가시밭길도 걸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으시라 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

를 위해서 일생을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수

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겠다

는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신발을 예비

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불안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 이루어 놓으신 평안의 복음을 받아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의 죄사함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

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보혈로 화평함을 이루어 놓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도 다 청산해 놓으셨습니

다. 에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우리의 일생의 죄를 주님이 다 감당하

시고 가시의 영겁길을 다 제해 주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예수님

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천국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에 위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우리의 삶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은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

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

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은 은혜로서 주님께서 예비해 놓은 것을 우리가 평안의 신을 신고 생 위

에서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신발이라는 것은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발을 신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나가면 돌에 찢기고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우리가 올바르게 걷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예비한

은혜를 입고 그것을 신발로삼고 나아가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

는들리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으로 나가는 길에 주님의

영광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믿음의 방패를 가지십시오.

전쟁하러 나가는 군사는 도끼나 창을 막고 적이 쏘는 화살을 막는 방패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마귀는 여러가지 공격을 해옵니다. 마

귀는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와 좌절, 절망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끊임없

이 던져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것에 우리가 다 맞서서 그 마귀가

내리치는 도끼나 찌르는 창이나 쏘는 화살을 막고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방

패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환경에 동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

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내 환경이 무섭게 요동할지라도 그 환경

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잠언 30장 5절에 "하나님의 말슴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

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세게 서서 입술로서 끊임없이 긍정

적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방패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와 불의 화살

을 쏠때 그의 의심과 불안과 절망의 화살을 쏠때 우리는 믿음의 담대한 입

술의 고백으로 이를 중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너는 죄인이다. 너는 아무 자격도 없다"라고 공격할 때 "나는 예

수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방패로 막아야만 되는 것이빈다.

또한 "너는 버림받았다"라는 도끼를 던지면 "성령이 내 속에 와서 계신다

"라는 방패로 막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마귀의 공격에 말씀에 서고 입술의 신앙의 고백

에 담대하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방패를 사용하고 마귀에게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귀가 공격하면 말씀에 서지 않고 눈

에 보이는 환경에 의지해서 불안해 하고 우왕좌왕하고 입술로 부정적인 고

백을 함으로 마귀의 화살을 다 받아들여 그때부터 시험에 들고 낭패에 좌절

하고 버림받은 상태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머리속에 생각을 언제나

구원해 두라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죄나 병이나 낭패와 실망 위험에

서 건져준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나는 망한다,

나는 패배한다,나는 절망이다, 나는 죽는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말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언제나 '나는 죄에서 해방을 얻었고 하나님 성령이 함

께 계시며 나는 건강한 사람이며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

는 천국의 시민이다.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사는

사람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

이고 생산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꽉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머리 속에 부정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마귀의 공격에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오중복음과 삼중

복음에 두고 굳세게 긍정적인 자세에 서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6.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검이라는 것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다 방어용이었지만 최

후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라고 말하고 계시는데 검은 바로 원수를 찌르

는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마귀의 진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것들을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진을 침노해 공격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히브리서4:12)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

혈로 값주고 사주신 가나안의 복지를 우리가 다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을 잃었습니까.그것은 그들이 마귀가 유혹할 때

말씀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유혹하자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

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9창세기 3:3)고 대답했습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죽

을까 하노라며 안 죽을 수도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가 절대

로 죽지 않으며 그 실과를 먹으면 너의 눈이 밝아져 너희도 하나님처럼 된

다고 유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서는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주렸을 때 마귀의 유혹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이라는 올무를 예수님께 던

졌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호히 대처하고 마귀

를 공격함으로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마귀가 다가오면 우리는 언제나 성경말씀을 가지고 대적하면 마

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7. 이렇게 사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허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꽉 묵어 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에 서야 되고, 우리의 가슴은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되며, 발에는 예수 그리스도

의 예비한 오중복음과 삼중복음의 신발을 신고서 믿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또한 머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그러한 생각으로 꽉 들어차

야 되고 하나님 말씀 검을 가지고 마귀가 오면 말씀으로 찔러서 싸워서 물

리치고 이겨야 되는 것이빈다.

 

그런데 하나님의 무장이 우리의 마음속에 활발하게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

리는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

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과 우

리와의 깊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잠들어 버리며

잠들어 있는 사람이 아무리 무장을 다 해제시켜 버리고 도적질하고 죽여

멸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매일같이 최소한도 한시

간 이상씩 하나님 앞에서 기도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할 수 있으

면 집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새벽기도도 해야 되고, 또 필요하면 철야기도

도 하고 금식기도도 하고 혹 산기도도 하고 뜨거운 기도를 통해서 영혼을

무장해서 잠에서 깨어 있으면 언제 어느때 원수 마귀가 들어와도 우리는 마

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영의 세계에 영향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끊임없이

 

 

 

영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믿음 소망 사랑을

넣어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

와 절제를 우리 가슴 속에 부어 넣어주시고 우리를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마귀의 영향력을 받아서 이 세상의 풍속을

쫓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을 따라서 살게 되고 미워하고 시기

하고 질투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러한 일들

을 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게 하고 하는 것이 사람 스스로 우연히 되게 한

것인줄 아는데 실제로 그 배후에서 원수 마귀가 작전을 써와서 사람에게 영

향을 미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하고 결국

에는 멸망을 당하게 하려고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

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잘 분별하고 살아야 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알고 성령님을 인정

하고 환영하고 모시고 의지하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우리에게 다가오고 죽

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마귀를 우리는 밝히 분별하고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

서 마귀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상처와 가정적인 상처, 생활의 상처 파괴와

절망에서 벗어나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무기로서 완

전히 무장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용서받은

의인으로 가슴에 꽉 채워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의 은혜로 믿음의 신발을 신고 믿음으로서 행동하고 살아나가며 그리고 구

원의 투구를 쓰고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사고

로 머리를 꽉 붙잡고 그리고 말씀의 검을 가지고 마귀와 말씀을 가지고서

대적하고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고 나가면 우리는 언제나 넉넉히 승리하고

살아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17

제목 :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자료원 : 조용기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발행일 : 95년 07월 16일

 

인생은 만남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전체를

'만남의 연속'이라는 어휘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 인생의 다섯 만남

 

처음 우리는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서 인생을 출발합니다. 부모를 잘 만나

면 그 인생이 평탄하여 살아갈 수 있고, 부모를 잘못 만나면 인생을 험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풍요로움 속에서 태

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컴컴한 지하실에서 태어나는 사

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해다 보면 어떠한 아이들은 참 교양이 있고,말할

때 착한 말을 하고 행동이 바릅니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는 교양있는 부모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행동이 거칠고 야만적이며 말솜씨도 나쁘면 그 부모가 그러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인격형성의 출발은 부

모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만남이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선생과의 만남으로 말미암

아 우리는 지식을 믿게 됩니다. 또한 인격적인 교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세번째 만남은 부부의 만남인 것입니다. 부부의 만남을

통해서 참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가정이 무엇인지를 알게되며 부부의

갈등과 인내 그리고 화해와 사랑이 이 모든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사회에 나오면서 우리는 인생의 생존경쟁

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먹느냐 먹히느냐? 눈물과 피와 땀의 생존경쟁의

장, 이것이 우리의 사회현실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사회와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생존 경쟁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만남인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좋은 부모를 만

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고, 또한 사회에 나가서 생존경쟁 터에서 늘 승리하

고 수용하는 그런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갖지 못

하면 그 인생은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낙엽처럼 삶이 지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오로지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그 비극밖에 남

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만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인 것입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서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죽으셨습니다. 로마정

부는 예수님을 극악한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고 유대인의 제사장들

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이단으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일반 군중들은

궁중심리에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힘없이 매달려 있는 위대한

변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우리의 유익

 

첫째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인으로

마시고 삽니다. 사람들마다 그 양심의 죄악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그

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일생의 죄를 대신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피를 흘려서 칭찬해 주신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알아야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만나면 내 죄가 다 씻음을 받고 그 대신 예수 그리스

도의 의로움을 옷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

받은 의인이었다는 이 놀라운 의식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

리는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

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

나님 앞에 쫓겨난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해로운 피를 통해서 하나님

과 화목하게 되고 이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성령

께서 친히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기

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하늘나라의 지식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처

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예수님

이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알게 되며 하늘나라와 여러가지 지식과 생각을 우

리 마음속에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임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우

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거룩하게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를 지도하시고 깨닫게 하시

며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

리를 징계도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

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매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

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거하시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가진 사람은 인생이 외롭다

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손에는 잡을 수 없지만 공기가 눈에 안보이고

잡을 수 없지만 공기는 눈에 안보이고 잡을 수 없어도 우리가 숨쉬고 사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마시며 성령과 함께 호흡하고 살고 있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치료를 깨닫게 되는 것입

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질병을 짊

어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의 군인들에게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얻어맞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었습니다. 성경은 말

씀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하고 계신 것

입니다. 우리의 몸이 병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치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환경적인 저주에서 해방되

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에덴에서 쫓

겨난 인간은 저주받은 땅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막고 사는 비극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저주받고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라 속량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삶속에 모든 저주가 다 벗

어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요, 하나님

의 사랑을 받았으며, 은과 금이 풍부하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큰 축복

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이렇게 시인해야 됩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저주받은 사람 아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직장에 갈

때도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야웨의 말씀을 순종하는

복받은 사람이 가는곳마다 그곳에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

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

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3-6).

 

우리의 의식이 확실히 변화를 받으면 그 변화받은 의식에 입각해서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이 변화디기 위해서는 그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유없이 마음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몸찢고 피를 흘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을 깨달을 때 우리들은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의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

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죽음을 묻어 버리고 영원한 고통의 장소 음부를 청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삶 속에 종말이나 죽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지만 우리들은 죽음이

다가와도 죽음에서 해방된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이 다가와서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릴지라도 참으로 죽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망을 보고 비웃을 수 있습니다. 사망을 보고 높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는 죽음이 우리를 떼어 갈 수 없고, 음부도 우리를 파멸시킬 수가 없

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우리를 위

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만남

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남녀 노소 빈부 너나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

가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 매달린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옛 사

람을 벗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우리의 변화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수양과 도덕

으로 교육을 통해서 형벌을 통해서 사람은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서만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옛 사람이 아닙니다.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청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

니다. 우리는 항상 새사람이 된 것을 힘차게 바라보고 이 사실을 입으로 강

하게 시인해야 합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나는 성령이 같이 계시고

성결한 사람을 사는 사람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

에서 놓여 남을 받은 사람이다.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병에서 해방을 얻

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라이다. 나는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받은 사람이

다. 나는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그렇게 의식을 변화시킬 이유가 있으며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

가 있으며, 또한 우리는 입으로 그렇게 시인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 못박혀서 모든 인류를 위하여 몸찢고 피흘려

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의 피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이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 피의 부르짖음이 우리를 듣고 우리의 의식이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는데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형태는 육신

의 노동력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장 고통을 많이 당

하고 생산성도 적습니다. 두번째 종류의 사람은 정신 노동을 하고 사는 사

람입니다. 교육을 받고 그리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서 정신적인 노동을 가

하고 사는 사람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사는 사람보다 더 월등한 대접을

받습니다. 세번째 유형의 사람은 영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

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사람인 것

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사는 사람도 아니요 정신적인 노동으로만 사는 사람도 아닙

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

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하셨습

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셔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육적 사람에서 정신적인 혼의 사람

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사람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섬기며 성령님을 나의 보

혜사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교회 나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들어가며

나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삽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삶을 살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믿음을 더하여 육적으로 사는 사람이나 혼으로 사는 사람, 정신노동을 하고

사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삶을 살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사는 사람들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위

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하십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한때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였습니다. 온 천하에 복음

을 증거했습니다.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 목사는 우리나라에 셔만호를 타고

대동강에 왔다가 하나님 말씀 한마디 증거하지 못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흘린 피가 부르짖어서 우리 한국에 1200만명의 성도들이 탄생된 것입니

다. 이와같은 복음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영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곳은 해적의

나라였습니다.영국이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요한

웨슬레의 거대한 부흥운동을 통해서 영국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고 그리고

그들의 생활이 변화되어 사회와 국가가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세계 일등국가로서 살아왔으며 지금도 일등국가로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만남을 가지고 삽니다. 인간의 삶은 만남

 

 

 

의 관계 속에서 인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의 만남, 선생님

과의 만남의 관계 속에서 인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의 만

남, 선생님과의 만남과 관계, 그리고 부부와의 만남과의 관계, 사회와의 만

남과의 관게, 이런 관계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나중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관계가 모두 완전해지려면 하나님과의 만남의 관계가 있어

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선생과 만남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갈등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치료받을 수 있고 부부와의 만남에서 겪는 인격적인 갈등과 고통 그리고 문

제도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은혜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만남을 통해서 패배하고 절망에 처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

에 짓밟혀 있을 지라도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넘치는 은

헤를 통해서 이모든 것이 치료받고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영

적으로 거듭나고 이제는 믿는 사람이 되고 신령한 삶을 사는 영으로서 사는

삶이 다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 여러분 우리가 어떠한 역경도

이겨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이제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과 기쁨으로 넘쳐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정적인 인생을 다 불살라 던져 버릴 수가 있는 것입

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담대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이끌어 주

시는 것입니다. 죄에서 미래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가난에서 부요로 이

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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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방언하는 것이 유익이 무엇인가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2월 13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만남을 통하여 많은 체험을 갖게 됩

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체험은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선물

로 받는 것입니다. 방언은 방언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방언하는 것을

보고 듣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거

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특별히 통

역의 은사가 내리기 전에는 방언은 하는 자나 듣는자나 모두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은 무엇자 때문에 합니까?""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오늘 저는 여러분께 대답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신학

생 때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후 지금까지 36년동안 줄

기차게 방언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방언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1.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께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임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

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용

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대화할 수 있도록 주신

기도의 언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은 사람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 내가 방언

은사를 받았으니까 사람들이 다 듣게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사람드 마

들으라고 요한스럽게 방언을 하는 것은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

다. 방언은 사람을 향해서가 아닌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많은 대화가 이루워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말로써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는 사람은 방언을 하면 오

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자기 힘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 입술로 혀를 붙잡아서 말씀하게 하는 것이어서 조금도 힘들

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방언은 알아 듣는 자가 없고 비밀을 말한다고 했습니

다. 여러분, 비밀은 친한 사람들과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

언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깊은 비밀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방언기도는 천사도, 마귀도 주위에 있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알아 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며 교통

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제 개인의 경험에 의하면 웬지 마음이 억압되고 하나님이 내게 멀리

계시다는 감정이 생길 때에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순식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마음 가득히 임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 속에 들어있다는 것

을 곧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비밀을 말하게 됨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격

 

 

 

이 좁아지고 깊은 친말함이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움

'덕'은 헬라어로 '호이코 도매오라고 하는 이는 '호이코스'에다가

'대모'란 말을 보탠 말입니다. '호이코스'는 집이란 말이고 '대모'란

집을 짓기 이해서 벽돌을 한장,두장, 쌓아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

니다. 즉 '집'+''벽돌쌓기'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신앙의 덕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목회자가 설교

를 잘하면 듣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덕이 끼칩니다. 믿음이 커지는것입

니다.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덕이

있어야 합니다. 방언을 많이 말하면 할수록 신앙의 벽돌이 한장한장

쌓아올려서 신앙의 집을 크게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특히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이나, 우리 지,

구역장님들께서 말씀을 증거하러 갈 때에는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것

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필요없는 방언을 우리에게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스스로 신앙이 약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세례 받으

시고 그 표적으로 방언을 선물로 받아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이 놀랍고 장성하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

다.

 

3. 방언은 통역할 수 있음

고린도전서 14장 13절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통역의 은사

를 주셔서 통역하면 그때야 천사도, 마귀도, 사람도 알아듣게 되는 것

입니다.

 

저는 여러차례 방언 통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에 엎드려서 기도만 하면

방언만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통역해 주시기를 "너는 온 천하 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터임으로 지금부터 준비하라. 너는 은빛 날개를

타고 온 천하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하셨습니다.

 

그때 그 방언 통역을 듣고 저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왜냐하

면 당시 비가 철철 새는 천막에 다 떨어진 가마니를 깔고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에 내가 무슨 수로 온 천하에 나가 복음을 증거하랴 하는 생

각에서 였습니다. 그래도 방언 기도만 나오면 똑같은 통역을 해주셨습

니다. "너는 이제 성경도 영어책으로 읽으라 생각도 말도 영어로 하

라"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말씀을 좇아 영어성경을 읽고 영어로 생각하고

말도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후보니

성령께서 방언 통역해 주신 것이 그대로 맞았습니다. 지금 저는 온천

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4. 방언은 개인예배에 큰 축복이 됨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지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또 지치면 아는 말로 찬송하고 또 방언으로

찬송하기를 되풀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방언 찬송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구라파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성회를 인도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

로 찬송을 부르면 저 혼자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어요. 곡조도 가사

도 다 다르니 나는 방언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방언찬송을 부

르면 희한하게 성령께서 내가 배우지도 듣지도 못한 그들의 곡조를 따

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내가 영으로 차고 아는 말로 찬미하고 영으로 기

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행하면 우리의 예배

가 굉장히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의 예배에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5.방언은 마음의 안식을 가져 옴

이사야서 28장 11절에서 1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

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

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

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듸지 아니하셨으므

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

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면 잡히게 하시리라..."

 

사람들에게는 엑스타스(ecstasy)즉 황홀감의 체험이 절대로 필요합니

다. 우리가 축제같은 것을 벌이는 것은 평범한 생활에 지쳐 있는 마음

에 온 동니나 도시가 한마당이 되어 축제를 벌임으로 엑스타시를 통해

지루함과 피곤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삶의 바퀴에 기름이 되어서 잘 굴러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와서 교훈에 교

훈을 더하고 율법에 율법을 더해서 늘 꾸짖는 말씀만 들으면 그만 지

쳐서 넘어지고 맙니다. 신앙생활 속에는 황홀감이 있어야 합니다. 엑

스타시, 즉 끌어오르는 기쁨과 평안, 소망이 있어야 하는 거인데, 이

것이 어디에서 주어집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가 떨리운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

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였으나 저들이 듣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

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안식을 듣지도 않

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율법에 율

법을 더하고 더하다가 피곤해서 중도에서 낙심해 버리고 만 사람이 많

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 방언기도는 여러분

의 마음속에 굉장한 안식과 휴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깊은 잠재의식에까

지 들어가서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씻어냅니다. 우리가 비를 들고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아는 의

식 세계뿐 아니라 잠재의식 속,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떤 슬픔과 고통

과 억압과 침울함 등 먼지와 티끌처럼 쌓여 있는 것들을 싹 소재해 버

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쾌하고 가볍고 평화롭고 즐거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우울증이 없어지고 정신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재의식

속의 상처들로 인해 불안,초조,공포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억압된

 

 

 

스트레스를 방언을 통해서 모두다 풀어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방언을 많이 사용하시기를 빕니다.

 

6. 방언은 성령님의 대신 기도임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

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

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6-28).

 

방언기도는 우리를 통해서 성령이 직접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날에 일어날 것을 전혀 모릅니다. 앞날에 다가올

위험도 모르고 고통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장차 다가올 여러가지 시험

과 환란들을 방지해 주는 역할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자매님 중에 남편이 버스 기사로서 시골에서 일하시는 분

이 계십니다. 어느날 그 자매님이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낮부터

교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위기감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기도하라.기도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

다.그러나 무엇을 기도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은

눈물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부흥강사가 와서 설교하는 것

도 듣지 못하고 교회에 엎드려서 계속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약 1시간쯤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 지면서 '이제는 괜찮다'라

는 심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은 시계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쓴데, 남편이 퇴근시

간도 아닌 이른 시간에 부들부들 떨면서 집에 들어왔더랍니다. 자매님

이 남편에게 '왜 이렇게 떨어요?'라고 물으니 남편이 말하기를 '오늘

나는 정말 죽을 것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살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남편이 차를 운전해 가다가 경사진 곳에서 엔진이 꺼져서 뒷바퀴

에 돌을 받쳐놓고 승객들을 다 내리라고 했는데 그만 돌이 빠지면서

차가 뒷걸음질을 해서 벼랑에 가서 앞바퀴만 매달려서 대롱대롱했습니

다. 그가 핸들을 잡고 앉아 있었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기절초충할 정도로 놀래서 벌벌 기어나왔습니다. 그후 크레인 차

가 와서 버스를 끌어올렸는데 이런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느냐고 모두들

감탄을 했더랍니다.

 

그 시간을 보니 그 자매님이 교회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방언기

도하던 시간과 일치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 구역장님이 지역에배 인도하러 가던 중 종로 네거리에서 강

하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주저앉아 30분간 방언기도를 하니

까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교통경찰이 교통위반이라고 경찰서

로 끌고 갔답니다. 왜 그렇게 기도했는지는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배 인도 후 집에 가보니 그 시간에 강도가 드러와서 온 집

안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옷가지를 마당에까지 흩어놓았는데 서랍에

있는 돈과 금붙이에 손을 재지 않았답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방언

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그 도둑의 눈을 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그것들을 모두 잃었다면 불신 남편에게 온갖 구박

을 받았을 터인데, 오히려 남편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계기가 되

고 지금은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남편은 경찰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인 것입니

다.이러므로 기도 목적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간절히 기도

시킬 때는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7. 방언은 믿는 자의 표적이 됨

마가복음 16장 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

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

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와 표적

이 따르는데 그중에 첫째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

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

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다는 표적으로써 새 방언을 주셨다는 것입

니다. 내가 방언을 알아 듣던 못알아 듣던 구원받고 사랑받는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를 받았으니 그 증거가 없는 것보다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20살에 처음 신학교에 들어왔을 때 저는 방언을 못했습니다. 그

런데 42세에 신학생이 된 최자실목사님은 늘 방언기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시기와 질투가 나는 나머지 공연히 비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최집사님은 늘 예수믿는 기쁨을 가지고 지내셨는데 저는 이따금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만약 안계시다면 잃어버린 내 청춘을 누가 보상

해 주지? 하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학생회장이고 최 집사님은 전도부장이였는데 매주 토요일 파고

다 공원에 나가 전도하면 최집사님의 서투른 설교에 많이 사람이 회개

를 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바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지식적인

설교를 해도 사람들이 비난과 질문 공세만 퍼부었습니다. '야! 나보다

훨씬 무식한데 나이 든 여자라고 봐주나보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성령받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의 증거를 가지고 확

신있게 설교하는데 나는 지식으로 설교하되 확신이 없었습니다. 후에

제가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니 두 날

가진 검보다 예리한 말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므로 방언은 신자 개인의 신앙적 성숙과 축복을 위해 주신 것으

로 공중예배 용은 아닌 것입니다. 공중예배시에는 아는 말 깨달은 말

로써 설교하고 대화해야지 방언으로 말하면 알아듣는 자가 없어 아무

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내 개인기도에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질서있게 사용

하면 신앙에 크나큰 이들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내가 신앙에 덕과 능

력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이 아는 말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설교할 때에

크나큰 위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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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세례란 무엇인가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2월 06일

 

예수께서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당

신의 살아계심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과 대화도 나누고 식사

도 같이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소상히 설명해 주셨습니

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져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예수님의 부활과 천국보다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조국이 이스라엘의 광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주님, 이스라엘이 광복할 때가 이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

문에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

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너희가 할 일은 예루살렘을 떠나

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

니와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

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1:8).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 이전에 먼저 이땅에 하늘나라가 전파

되어야만 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

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3년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직

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주님께서는 천국 전파를 위해서는 성

령세례를 받아야 하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을하셨

습니다.

 

하물며,주님 부활 승천 2천년 이후에 사는 우리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반드시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곧 성령 세례를 받아

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을 통해 성령세례에 관하여 알

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성령세례의 체험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열심히기

도했습니다.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하는데, 열흘

후 오순절 날이 임하자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임

하자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위에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

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

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상상도 못한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자기들의 혀와 입술이 성령께 사로 잡혀서 자기들의 의지를 떠나 성령

의 말하기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고함쳐 통성으로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주민들

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가서 담대하게 설교했습니다.

성령세례 받기 전, 조그마한 소녀 앞에서도 예순미을 모른다고 세 번

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이제는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명의 남자들이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의 제

자가 되었습니다. 부녀자들까지 합하면 더 많은 수일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제자들이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기도드리러 올라갈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40세쯤 된 남자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하은 그에게 "우리를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얻

을까 하여 열심히 바라보는 그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명령했습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며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

미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충격이 얼만 컸던지 성전에 예배드리러온 사람들 중

에 5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 받기 전에는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어부들이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식간에 성령

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변화되고 만 것입

니다.

 

2. 두번째 성령세례의 체험

두번째 성령세례의 체험은 오순절 첫 성령세례 체험 1년후 주후 31년

경에 빌립의 사마리아 성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성령세례 체험

1년후 성령이 충만한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예수 그리스도

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귀신이 크게 소리지르

며 나가고 많은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나아서 그 성에 기쁨이 충만했

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무도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지라 그는 즉시 예루살렘에 소식을 보내어 베드

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내려오게 했습니다. 그들이 내려와서 회개하

고 예수 믿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안수하매 그들이 곧 성령을 받기 시

작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에 시몬이라고 하는 유명한 마술사가 있었는데 그는마술

을 이용해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쳐서 그곳 사람들은 그를 '신의 사

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조차 빌립의 복음증거와 이를 통해 나

타난 큰 이사와 기적을 보고 감탄하며 따라다녔습니다.

 

이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 회개한 사람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에게도 그런 은사를 팔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노해서 "네게 사단이 꽉 들어차 하나님의 은

사를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했으니 돈과 함께 너는 멸망할 수밖에 없

다"고 책망했습니다.

 

마술사는 놀라서 자기를 용서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

고 빌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볼 때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

에게 안수하여 그들이 성령을 받을 때 외적인 증거가 나타난 것이 확

실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나타난 증거없이 "성령을 받으라"고 말만

한 것을 보고 자기도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돈 주면서 팔라고 할 사람

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마술사 시몬이 제자들이 귀신을 쫓

아낸 것이나 병고치는 것을 보고 은사를 팔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기도 가끔씩 그런 일은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그것은 틀림없이

방언받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에 알지 못하던 말로써 하나님께 기도드리

고 찬미하는 것이니 그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에는 여러가지 표적이 따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나타나는 외적 표적이 방언임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세번째 성령세례의 체험

주후 40년경, 첫번째 성령 체험 10년후 가이사랴의 로마 주둔군 백부

장 고넬료의 가정에서 세번째 성령세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고넬

료는 로마 사람으로 이방인었으나 야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근느 하

나님을 열심으로 섬겨서 기도와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오후 3시 기도시간에 기도를 드리는데 환상중에 천사가 나타

나 그에게 마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많이 구제한

것이 하나님께 기억된바 되었으니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는 베드로라 하는 사람을 청하라 그가 네게 구원의

도리를 전해 줄 것이라"

 

여기서 노라운 사실 하나를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저금하면 은허에

예치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위한 사업을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

의 기업에 예금해 놓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진실한 군인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해 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말미

암아 어떠한 죄인이든 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전했습니

다.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씀을 증거하자 갈급한 심령으로 있

던 고넬료와 그 가족들이 순식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심

으로 그들은 큰 소리로 기도하며 방언을 말하여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

했습니다.

 

요사이 어떤 사람들은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비난하며 조용하게 기

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통성으

로 크게 기도할 수 박에 없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고함을 쳐 기도했던지 온 예루살렘 사람들

이 몰려 나온 것을 보고도 알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로 48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

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

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라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

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

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증거한 것을 보십시오. 이방인 고넬로의 집에 성

r령이 역사하신 것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유대인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

사와 똑같다고 말한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고넬료의 가정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 보배로운 피로 씻음을받

으면 오늘날 하나님은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4. 네번째 성령세례의 체험

네번째 성령세례의 체험은 주후 53년 오순절 이후 23년만에 에베소에

서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가보니 교인 12사람이 있는데 예수

 

 

 

님을 믿는 제자라고 하면서도 죽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신앙생활에 아

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

했습니다. 그들은 눈을뜨고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

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회개케 하여

물로 세레를 베풀고 난 후 안수하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언도 하고 에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그들은 뜨겁고 열렬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

을 중심으로해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석달 동안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복음을 증거하자 성령받은

이 열두 사람이 뜨겁게 복음을 전파하여 성도수가 자꾸 늘어 하나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에베소 도시를 흔들었습니다. 수많은 이사와 기적

이 일어났는데 얼마나 에베소에 신앙이 충일했던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지고 가서 미친 사람이나 병자에게 얹어도 귀신이 쫓겨가

고 병이 나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히 나타나자 에베소의 마술사들은 모두

바울에게 나와 회개하고 마술책들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앞에서 불지르

니 그 책값이 은 5만냥이나 되었습니다. 에베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나기 전에는 12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어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

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와서 그 12사람에게 성령을 받게 하자 그들의

열렬한 복음증거로 에베소가 진동하고 온 아시아 사람들이 에베소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사도시대의 위대한 복음증거의 성공은 당시 성도들

이 성령세례의 체험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는 체험은 오늘날도 우리가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레를 받아야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신앙이 담대해지고 능

력이 임하여 듣는 이의 영과 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권세가 따라서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

고 병든 자가 고침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 것을 더 뚜렷이 알게 되고 그리스도

를 더욱 힘차게 믿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되

고 됩니다. 그리고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

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등 각양의 은

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하늘나라는 소설이지 살아있는 천국의 역사는 아닌 것입니다. 성령세

례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로 무장해서 원수의 진을 훼파하고 살

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살아서 역사하는 하늘나라를 사람들에게 나

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진실로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생일 때 성령을 받고 싶어서 토요일 밤에 삼각산 꼭대기에

올라가 나무를 끌어안고 12시까지 기다렸는데 마음이 맨숭맨숭하고 성

 

 

 

령님이 도무지 임하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로 내려가고

싶으나 너무 어두워서 못내려 갔습니다.

 

그래서 이왕 올라왔으니 성령을 받아다겠다고 결심을 하고 회개기도

를 시작했는데 좌우간 어린 아이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때까지 살아오

면서 지은 죄란 죄를 모두 회개했습니다. 국민학생 때인 일정시대에

학교갔다 오다가 배고 고파 남의 밭에 들어가 수박 따먹은 것까지 전

부 회개를 했습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더군요.

 

그러자 불같은 성령이 임하시기 시작하는데 제 혀가 꼬부라지고 입술

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방언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함을

치고 기도해도 방언만 유창하게 나오는데 생수가 뱃속에서 강같이 넘

쳐나는 것입니다.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저는 많은 시간을 방

언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36년간의 방언기도를 통해 이 기도가 하나님

과 나 사이에 교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며 영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치는 가를 절실히 체험해 알고 있습니다.

 

둘째로,성령을 받고 싶은 갈급한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심정

이 없으면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오시면 오시고, 안오시면 안오시고...'하면 평생 성령 충만함

을 못받습니다.

 

성경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

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고 했는데 부르짖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성령을 받겠습니까? 마음이 절실하고 갈급하면 체면

볼 것 없이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받기 위해 기도하라면 "하나님 나는 고함치거나

몸이 진동하지 않고 성령받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쓸데없는 조건을 많

이 세우는데 마음이 갈급하고, 절실하면 그런 조건은 다 사라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미 성령 충만을 받은 주의 종들이나 지.구역장들이 함께 안

수하고 도와주면 성령을 빨리 받을 수가 있는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

게 충만히 임하시면 외적 증거로서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방언을 말하려고 해

서는 안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자연적으로 방언을 하게 됨으로 성령

충만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통해 우리들

의 신앙이 성장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삶 가운데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개인의 신앙무장과 교회의 부흥, 복음증거의 성공은 바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세례받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행 1:1-8).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10년,20년 믿었다는 신앙 연조도 중요하지만, 성령없이 믿은

세월은 그저 내 신앙만 간수했을 따름이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역사를

베풀지 못합니다.

 

중생은 속에서 넘쳐나는 우물에 비교한다면 성령세례는 속에서 흘러

나오는 거대한 강물에 비교되는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의 우

물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한강과 같이 넘쳐흘러 나

오는 강물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금년도에는 반드시 성령세례, 성령 재충만을 받고

 

 

 

성령의 권세에 잡혀서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20

제목 : 좌절,축복인가 절망인가?

자료원 : 조용기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발행일 : 95년 07월 09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좌절, 축복인가 절망인가란 제목으로 은혜의 말

쓰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아집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욕심대로 살며

자기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된 이후에도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합니다.정말 하나님께 자

기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신앙의 자세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자아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

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깊은 좌절과 시련을 체험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의로운 사람이

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셨고 아브라함

은 하나님을 친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께서 갈대아에 나타나셔서 찬란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

절로 3절에 보면 '야웨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

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따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

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실지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마음에 흥분이 되고 가슴에 찬란한 꿈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자기의 아내의 손을 잡고 조카를 데리고 가

나안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문제를 만나 좌절되

는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처절한 비련이 다가왔습니다. 산천 초

목은 다 불타 버리고,물은 없고, 짐승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어가

고,일가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

브라함은 별 도리없이 하나님이 명하지도 않은 애굽땅을 향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깨로 받은 거대한 꿈과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

지고 큰 좌절감을 맛보고 말았습니다. 갈대아 땅고 하란 땅에서 얻은 재산

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아내와 조카를 이끌고 애굽 땅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얼마나 마음이 빈궁했던지 아내 사래에게 "그가 애

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

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창

12:11-13)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 가족이 애굽에 도착하자 마자 아닌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라의

미모를 보고 전부 다 감탄하였습니다."아브라함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

굽사람들이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

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들인지라"(창

12:14-15).

 

 

 

 

애굽의 바로왕이 사라를 아내로 삼아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산천도,

재산도 잃어버리고 애굽으로 내려와서 아내조차 바로왕에게 시집보내버리고

처참한 좌걸가운데 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마 사람이 좌절한다 좌절

한다 해도 이 이상 더 좌절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내를 시집보내고 사는

처지가 되면 좌절 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자기를 의

지하던 모든 자만심도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마치 그릇이 박살 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살든

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만 살겠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셔서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선 아

브라함을 위해서" 야웨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

를 이렇게 대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

였으니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

냐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창12:17-19절)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옛사람 모습이 이난 깨

어지고 낮아져서 하나님 중심으로 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의 아내를 다시 찾게 하시고 많은 종과 재물을 모아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오게 하셨습니다.

 

큰 일을 역사하기 위해서 바라봄의 법칙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3

장 14절에서도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웨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

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여 가나안의 모든 땅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

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나이 85세 되어

서 자식이 없어 고민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밤중에 불러 내어서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리게 하셨습니다. 또 다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에게 자

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5절에서 6절에 보면 "그를 이

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

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웨를 믿으니 야웨께서 이

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매일같이 바라봄의 법칙으로 살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나안 땅을 바

라보며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음에 그리고 믿었었습니다.

 

14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

을 바꾸게 했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아내의

이름은 사래에서 사라 '우주'로 바꾸어서 바라봄의 법칙으로 마음속에 믿을

것을 입으로 강력하게 시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계속 시

인하고 있을 때 1백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좌절을 통하여 자

기 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된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하시고 그 믿음을 강

하게 입술로 시인함을 통해서 그 꿈을 이루어 주시고 자식을 허락하여 주셨

습니다.마침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고 아들 이삭을 통해서 하

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아 진실로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

명을 얻게 넘치게 얻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2. 이삭의 생애

 

하나님께서 1백세에 주신 이삭을 아브라함은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야웨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라는 청천벽력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브

라함은 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말하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장작과 칼을 가지고 불을 준비해서 들고 사흘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갔습

니다. 이때에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

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라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

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7).

 

아브라함은 그말을 듣고 가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삭을

제물로 데려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

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22:8)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산중에 올

라가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제단을 쌓고 장작을 그 위에 펼쳐 놓고 아

버지를 쳐다 보니까 아버지가 진지한 모습으로 내려보더니만 눈물을 주루루

흘리면서 말합니다. 이삭아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

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잡아야 겠다. 네 손발을 내주어라 내가 너를 묶어

서 장작 위에 얹어 놓고 너를 칼로 죽여서 각을 떠서 불을 질러 제물로 드

려야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삭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모시고 제사드리려 왔는데 자기를 잡아서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이

삭에게 있어서 엄청난 갈등이었습니다.

 

이삭은 순간적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종 해야 되겠다

그러한 심정이 안 생겨 날리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히시

기 전에 할 수 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마음의 갈등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꼈는데 이삭이야 그 마음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삭의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매일같이 아버지의 예배드리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아버지가 대화하던

신실한 그 신앙이 잘못될 수 없다는 것에 마음속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

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죽자 내가 하나님 버리고 살아서 뭐하겠느냐

내 중심으로 살아서 뭐하겠느냐 내가 제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쁨이 된

다면 내가 죽어야지 아버지 내 손을 묶으십시오" 아브라함은 이삭의 손을

묶어서 장작 위에 얹었스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칼을 뽑았습니다. 눈만

멀뚱멀뚱하게 떠서 쳐다보는 아들을 향해서 머리를 칠려고 달려들 때 하늘

에서 천사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웨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 아들 네 독

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의 경외하는 줄

을 아노라"(창22:11-12).

 

그 즉시로 수양 한마리가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삭 대신에 제물로

드리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야웨 이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순종한 이삭을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얼마나 착

하고 좋은 아내를 맞이했던지 상상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된 것

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무 수고 없이 아브라함이 일생에 모든 재산을 고

스란히 상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일생토록 복을 주는데 창

세기 26장12절로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야웨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라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깨어져서 하나님

중심에 서 있는 이삭을 위해서 모든 삶을 예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하나님

을 섬기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우리의 아집이 깨어지고 주님의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기필코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3. 야곱의 생애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혀의

뒷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야

곱이라는 이름은 "뒷발꿈치를 잡다","빼앗았다","사기꾼"이라는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사기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있었으나 육신

적인 신자였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겠

다는 오늘날 소위 말하는 차자가 된 것이 못내 안타까왔습니다. 하루는 에

서가 사냥을 갔다가 와서 배가 고픈데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

하니 그 붉은 것을 나도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

더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

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

을 야곱에게 판지라"(창25:29-33)고 성경에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당시 장자의 명분은 아버지의 모든 축복을 상속으로 받는 것이었습니

다. 그런데 팥죽 한 그릇으로 상속권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에는 때가 와서 이삭이 세상을 뜨기 전에 장자에게 축복하고 상속을 축복으

로 줄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에서는 짐슴을 사냥해서 잡아 와 드렸지만 야

곱은 부엌에서 어머니가 요리하는 것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 옷을 입히고 에서처럼 온 몸에 양털로서

털을 붉게 하고 요리를 잘해서 아버지 야곱을 접대했습니다. 그 결과로 모

든 장자의 축복을 다 받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후 에서가 사실을 발견하

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울면서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리브가가 야곱을 친정

으로 도망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크게 좌절했습니다. 복을 받으려 하다가 오히려 화를 당

해가지고서 형이 죽이려고 하여 외아저씨 집으로 도망을 치는 형편이 되었

습니다. 인생의 석양길 광야에서 벧엘의 체험을 한후 이삭은 하나님께서 내

게 주시는 모든 것에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바치는 서약을 하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난 다음 야곱은 큰 좌절감을 가지고 외아저씨 집에서 사

는데 외아저씨가 또 야곱을 속입니다. 그는 외아저씨의 집에서 라헬을 사랑

하였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는 대가로 7년 동안 뼈가 빠지도록 외아

저씨 집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7년이 하루와 같았는데 "야곱이 라헬

을 위하여 칠년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

일같이 여겼더라"(창29:30) 사랑을 하면서 세월가는줄도 몰랐습니다. 칠년

이 지나서 야곱은 혼례식을 올렸는데 라헬이 아니라 시력이 나쁜 언니 레아

였습니다. 외아저씨의 계략에 빠져 또 크게 좌절했습니다. 야곱에 외아저씨

한테 찾아가서 아저씨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항의하자 앞으로 칠년간을 무

보수로 일하게 되면 라헬을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

시 칠년, 14년동안 중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아저씨가 6년동안 계속 해

서 자꾸 속입니다. 이러한 처절한 절망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야곱은 많은 짐승을 선물로 얻고 야밤도주를 해서 고향을 향

 

 

 

해 오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에서는 과거에

속임을 당한 보복으로 사백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생을 잡으려 출발했습니

다. 이 소식을 듣는 야곱은 오금이 저려지고 간장이 녹고 정신이 아찔하고

온 몸의 피가 다 밑으로 쏟아지고 어지럼증이 생겼습니다.

 

이때에 야곱은 꾀를 서서 짐승과 종과 온처자를 둘로 나누어서 넘게하고

자기는 얍복강 나룻터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죽일

의사가 있으면 자기의 처자까지 쳐 죽일 것이고 그러면 튼튼한 두다리를

이용해서 도망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나님을 믿으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잡힌 아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밤

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예수님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

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

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창

32:24-25),

 

야곱은 이제 절름발이로 스스로도 도망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스빈다. 그

래서 야곱은 "그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도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

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9창32:26)라

고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 아닙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

니다.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

하고 살자 처자가 있는 곳을 향해서 절뚝절뚝 건너갑니다. 절뚝거리며 다가

가자 4백인의 군대를 질풍같이 몰고와 동생을 죽이려던 에서가 그만 그 동

생을 보자 마음이 달라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에서 뛰어내려서 그 동생

을 끌어앉고 "야이놈아 형을 속이고 도망쳐서 20년만에 돌아오는 네 형세가

절름발이라 되서 돌아오냐 이놈아 너를 용서한다. 이제 군대가 너를 호위할

테니까 이제 군대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4절에서 15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

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야웨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

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

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인본주의

의 위에 서서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능력을 의지해 나갈 때는 그는 버림받

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좌절감을 체험하고 인생의 허

물을 깨닫고 완전히 깨어지곤 회개하고 비로소 주님께만 의지하게 될 때는

지렁이를 주님 들어서 이가 날카로운 타작 기계를 만들어서 큰 산과 작은

산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병기로 삼아주는 것입니다.우리의 인생에

크고 작은 좌절이 끊임없이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좌절을 통해서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가서 그 보혈

로 죄를 사함받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주님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친히 도우셔

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성령이 삶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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