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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설교 1편~10편

by 【고동엽】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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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활의 메세지 (부활의 영광)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발행일 : 96년 04월 07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마귀와 죄와 죽음과 싸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마귀가 가져온 죄의 결과인 질병을 고쳐 주셨고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사람을 살려주시므로 마귀의 세계에 일대 혼란을 일

으키셨습니다.

 

이렇게 개전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개전을 종결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 십

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아담 이후로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모든 죄 값을 청산하시

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는 우리의 죄를 사했음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마귀에게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으셨습

니다. 마귀에게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으신 후에야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럽게 부활하

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증거인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부활 승천하

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펀에 계시면서 부활의 증거로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부르는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오늘날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성령

을 부어 주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

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마귀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사망을 철폐하시고 음부를 철폐하시고 우리의 참 구주

로서, 부활의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2

제목 : 부활은 우리의 희망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6년 03월 25일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

리면 그대로 자멸하고 맙니다. 런던의 랍비인 휴고 그린 씨는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겪었던 뼈아픈 고난의 체험담을 전후 독일의

[데르 모르겐]잡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그날은 1944년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사실 집단 수용소에 달력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감금되어 있었던 저의 아버지께서 저와

몇 친구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 구석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는 그날이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우습게 생긴 진흙 주발을 내어 놓으시더니 수용소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귀한 버터 기름을 녹여서 심지를 적셔 촛불을 대신하여 불을 켰습니다. 아

버지가 송축 기원을 말씀하시기 전, 저는 아버지께 그 귀한 버터기름을 먹

지 않고 낭비하는 데에 대하여 항의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가만히 보시더

니 버터 기름을 가지고 초를 만들어서 붙여 놓은 불빛을 보신 후에 [네가

알고 내가 알듯이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을 살 수가 있어, 우리는

한때 물을 먹지 않고 3일동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알다시피 사

람은 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아 몸부

림 칩니다. 사람은 가슴 속에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헤쳐나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에게 영원한 희망을 준 사건

이었습니다. 이 지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희망을

상실하고 말았을 것이요 인류 역사는 깊은 어둠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을 것

입니다.

 

절망을 체험했던 제자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고 외치신 후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들린 사람

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

니다. 그러자 절망에 처해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모여 들었

습니다. 초자연적인 권능과 하나님 나라의 진리로 예수님의 인기는 이스라

엘을 진동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선택받은 자긍심과 그것으로 한자리하겠

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독립되

고,성경의 예언대로 메시아 왕국이 건설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설레

임을 갖고 그들은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

순식간에 예수님의 죽음이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기가 막힌 사건이

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큰 충격을 받았습

니다. 크게 실망한 가롯 유다는 실망이 분노와 배반으로 변해 급기야는 예

수님을 팔아 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강도들과 함께 처형당했습

니다. 제자들은 여기에서 꿈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

은 앞날의 희망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런데다 서슬이 퍼런 로마군인

들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다 잡아서 멸하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바깥 출입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절망은 필설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절망이었습니다.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부활 그리고 희망 또 희망

 

과연 이 절망적인 제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비칠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미 죽었고 첫날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

은 희희낙락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지 이틀이 되었어도 아

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로마의 정예 군인이 창검을 들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틀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원수들은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은 이 땅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흘째 아침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슬픔에 꽉 들어찼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시체에다가 향유나 듬뿍 뿌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른

아침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 그리고 여러 명이

여자들이 새벽 일찍 예수 그리스도께서 묻히신 산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

했습니다. 산 언덕을 올라가면서 그들은 [무덤의 문을 막고 있는 큰 돌을

어떻게 옮겨 놓을 수 있을까]하고 서로 염려했습니다. 이런 걱정을 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놀랐고,그

들의 발걸음은 멈췄습니다.

 

그때 바위가 굴러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

기 섬광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산으로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장사지낸

곳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지고, 그 돌위는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는 보통 사

람 같지 않고 천사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덤 문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은 얼

굴이 창백하여 죽은 사람같이 되어서 창검을 버리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

었습니다. 여자들은 너무 놀랐습니다. 여자들은 영문을 몰라 무덤 가까이

나아가서 무덤안을 들여다 보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구나 예수님께서는 이 안에 계시지

않고 이미 부활하셔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

 

여자들이 그 안을 들여다 보니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기

쁘고 놀라 그길로 뛰어들었스빈다. 제일 젊은 막달라 마리아가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집으로 가고 다른 여자들은 또 다른 제

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뛰어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하자. 베드로와 요한도 무덤을 향하여 뛰었습니다. 요

한이 베드로보다 젊기 때문에 베드로보다 앞서서 뛰었습니다만 무덤가에 와

서는 겁이 나서 들어가지 않고 쭈뼛쭈뼛 들여댜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 안으로 곧장 뛰어 들어갔습니다. 가 보니 과연 예수님이 누

웠던 자리에 시체는 온데 간데 없고 수의만 포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일 누가 훔쳐갔다면 수의를 벗겨 깨끗이 포개 머리맡에 두고 갈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습

니다. 그럴때 막달라 마리아는 빈무덤에 혼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러자 뒤에 그림자가 홀연히 비쳤습니다. 동산지기로 안 마리아는 [선생님,

우리 주님을 어디다 갖다 놓았습니까? 갖다 놓은 곳을 알려 주시면 내가 그

시체를 가져가겠습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마리아여]하는데 음

성이 자기가 익히 듣던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예수님을 안

으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뒷걸음을 치면서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

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

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요한

복음 20:17)고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것을 보고 뛰어 내려가는데 예수님께서는 벌써 다른 여

 

 

 

자들이 가는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와서 [평안하뇨]

라고 말씀하시자 여자들이 놀라며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을 잡고

경배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두 제자는 낙향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엠마오로 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 가면서 [당신들은 왜 그렇

게 슬퍼합니까? 왜 그렇게 절망적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니

여보시오, 오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못 들었소? 예수님께서 사흘전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데 어떤 여자들은 말하기를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부활합니까?]라고 말

했습니다.

 

그러자 같이 가던 분이 성경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는데 그들의 마

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분에게 여관에 함께 유숙할 것을 청해 같이 지내기

로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는데 이 분이 음식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

어 주시는데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보니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들이 예수님이란 것을 알자 마자 예수님께서는 사라지셨습니다. 이 두 제자

는 엠마오로 가던 길을 멈추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흥분하여 들떠 있었습니

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

니다. 제자들이 놀라 무서워하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

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8,3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그 자리

에는 제자 도마가 없었는데 나중에 들어와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

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여드레 후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20:27

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에 예수님께서 또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를 비롯한 여솟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

고 있었는데 마음과 달리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밝아지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 [얘들아,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요한복

음 21;5)라고 물으셨습니다.제자들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요한복음 21:6)고 말씀하셔서 제자들

이 그렇게 하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때

에야 비로소 요한이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웃옷

을 걸쳐 입고 물 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나갔고,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고

해변가에 나오니 예수님께서 이미 숯불에 고기와 떡을 구워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한 베드로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그 일곱 제자를 모아 놓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산 위에서 열한 제자를 또 만나 천국에 대한 교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

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감람 산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5백여명

에 이르렀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

서는 그들에게 복 주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경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

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

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

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나라의 일

을 말씀하시니라](사도행전 1:1-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해받으신 후 사십일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

수님께서 어느 장소, 어느 때에 나타나실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왜 예수님

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로 수많은 사

람들에게 나타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초시간적, 초공간적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어느 곳에서나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어느 곳에서나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사

실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20)는 말씀을 확증하

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초시간적으로 초공

간적으로 초역사적으로 주님께서는 어느 시대든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주십니다.

 

부활의 현재적 의미

 

그러면 부활의 현재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부활의 현재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죄에

서 영원히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는 것입

니다.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뿐 아니라 어머

니 뱃속에서부터 이어받은 원죄까지도 주님께서 다 그 빚을 짊어지시고 죽

음의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신 것은 당

신의 죄 값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와 같은 죄인의 빚을 갚

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셔서 우리의 죄의 빚을 갚지 못하셨

다면 구세주가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소위 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 종

교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서 죄의 빚을 갚지 못했습니

다. 빚을 갚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위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서는 인류의 죄악의 빚을 다 짊어지시고 감옥에 들어가셔서 사흘 만에 그

빚을 다 갚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죄가 눈 녹듯이 녹아 버리고 맙니

다. 이 때문에 누구든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

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

대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용서

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죄의 채무를 벗어 버리고 의로

움의 의복을 받아 입고 하나님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확실한 은혜

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것 없이 모두 구원을 받아 하

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활의 현재적인 의미는 무의미의 삶에서 영구히 벗어 났다는 것

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입니

다. 인간은 모두 다 회의에 꽉 들어차서 삽니다. 자기의 부모나 형제, 가까

운 친지가 죽을 때마다 인간은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아무

리 부귀,영화, 공명이 많다 하더라도 죽어 버리고 난 다음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안개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인

간입니다. 생자필명이요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살아 있는 사람은 다 죽고,

만나는 사람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맙니다.

 

도대체 인간이 사는 의미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

함께 모여서 웃고,울고,손을 잡고 가는 것 가지만 실제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극히 고독한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 혼자 울면서 태어나고, 죽을

때 혼자 맥없이 두 손을 풀고 죽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혼자인 것입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천국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산다는 확실한 의미와 가치와 목표를 얻게 되었습니

다. 이러한 삶의 목표가 없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

님의 알게 되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의 의미가 살아나

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자고,깨고, 먹고,마시고, 일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

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

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종국적으로 우리의 모든 삶의 뫄

표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부귀 영화나

공명, 인간적인 목표 달성에 둔다면, 이것은 종국에 가서 무의미해지고는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만이 우리에게 영구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영원히 격파한 것을 증명합니다. 사도 바

울은 사망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고린도전서 15;55).

 

죽음을 보고 사도 바울은 비웃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을까

요? 이것은 인류 태고 때부터의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사람을 대표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

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

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사망을 영원히 정복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에 대

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부활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종교는 인간의 소

원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만이 죽음을 격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부활을 통해 죄

를 청산하시고 삶의 의미를 확립하시고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절망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소망밖에 없습니다. 죄와 무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죽음도

사라졌습니다. 천국과 영생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

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쁨과 소망,또 소망 가운데서 매일매일 하

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3

제목 :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본문 : 고전 15:12-20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인류 역사가 시

작된 이래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은 물어 보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떤 종교도 철학도 시원스럽게 대답해 준 적이 없

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땅에

태어나신 우리들의 구주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 오랜 질문에 대하여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처럼 시원스

럽게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1. 예수님의 빈 무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이 33세에 유대인들과 로마의 총독에 의하여 가

보리 십자가 위에서 공개 처형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과 아리마대 요셉에 의하여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장사한 지 삼일만에 막달라 마리아와 마링, 요안나와 야고보

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한 다른 여린들이 새벽 일찍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무덤에 갔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주

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은 파수하던 이

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

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천사의 말대로 무덤은 텅비어 있었습니다.

이를 본 여자들은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젊고 발이 빠른 막달라 마리아는 순식간에 달려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소식을 알리매 그들이 달려와 무덤에 들어가보니 과연 예수님의 시

체가 없어졌고 그의 입으셨던 세마포만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후 그들은 돌아가고 막달라 마라이만 무덤문 앞에 앉아 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마리아 뒤에 서 계셨는데 마리아는 동산지기인줄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옮겼으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부활

하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예

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신다는 것을 알리

라고 하셨습니다. 그 즉시로 예수님은 다른 일단의 여인들 앞에 나타

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 중 둘이 예수님의 돌아가심으로 낙심하여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되는 엠마오로 낙향하는데 길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그들

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예수님께서 저희와함

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니 저

희 눈이 밝아져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되었습니

다.

 

두 사람이 흥분하여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주께서 다

시 사셨다고 고할 때 홀연히 그들 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놀라고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못자국 난 손과 발을 보이시고 그래도 제자들

이 너무 기뻐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니 그곳에서 구운 생선

한 도막도 잡수셨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나중에 돌아와서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사

실대로 믿지 않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일에 그들이 함께

모여 앉았을 때에 또다시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이

르시기를 '네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고 확인하라 그리하고 믿음없는 자

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매 도마가 크게 회개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그들은 모두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안개낀 아침

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예수님은 마음에

깊이 상처입은 베드로를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2.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성

이렇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당신의 살아나심을 확실히

증거하시고 오백여 성도들에게도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

막으로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이와같이 수많은 부활의 증거 앞에

어떻게 의심의 말을 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옛날이나 오늘이나 악한 사단은 교묘한 간계로 의심과 불신을

심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반대하는 자들은 예수님

의 부활이란 거짓이라고 이렇게 궤변을 토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께서는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기절

하셨는데 무덤 시원한 곳에 옮겨 놓으니 다시 깨어났고 이것을 부활이

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억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분명히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고 그것을 확인한 로마 군인들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심장이 터져 물과 피가 흘러 나왔습

니다. 그리고 빌라도도 예수님께서 사망하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시신

을 제자인 아리마대 요셉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둘째는, 그의 시신을 제자들이 무덤에서 훔쳐가고 나서 부활하셨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 가소로운 말입니다.

 

세계 최강의 고마 정예군인들이 지키는 무덤에 이미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와서 그들과 일전을 벌이고 이겨 시신

을 빼앗을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고,

만약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제자들 중에서 몇명은 잡혔든, 죽임을 당

했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제자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탈락함이

없이 모두 참석했던 것을 보면 그러한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만의 하나 죽은 시신을 훔쳐갔다고 가정할리자도, 죽으

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살아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을 위하여

제자 중 단 한분도 예외없이 순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도 안된다는

소리인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시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을 너무도

흠모하고 사랑한 나머지 제자들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환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귀가 꾸며낸 거짓의 절정입니다. 인류 역사상 그 많

은 사람들이 그렇게 장기간 동시다발로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켜 거짓

된 한영을 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또한 그런 환영을 본 정신적 박약자

들이 인류의 역사를 뒤엎어 놓는 위대한 신앙혁명을 가져올 수는 더더

욱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를 아무리 뒤엎으려고 해도

이는 너무나 엄연한 사실이므로 부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예수 글스

도는 성경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3. 에수님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없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생명이 이 세상의 삶에서 끝나는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

로 지음을 받아 영혼이 육체 속에 거하는 존재로서, 육체의 장막을 벗

어날 때 믿는 천국에,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죽은 자의 부활을 가져오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인간의 경험

속에서 확실히 증명이 된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죄사함의

보혈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증거로서, 이제 그 피를 믿는

자는 남녀노유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죄사함과 구원을 얻게 되었

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넷째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아담 이후 인류를 지배하고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던 마귀가 십자가의 싸움에서 완전히 패전하여 그 모든 정사

와 권세를 빼앗겨 버렸고 그 무장이 해제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이기시고, 사망과 음부의 모든 권세를 이기시고

천국과 영생의 길을 활짤 열어 놓으시면서 부활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과 믿는 자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희망이 영원히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부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불원 장

래에 우리를 데리고 오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

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저희와 함께 구름 속에

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그날 이후 영원히 주님과 함

께 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고 죽으

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사 우리들의 영원하신 구주요 만왕의 왕, 만주

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4

제목 : 만남과 변화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본문 : 요 3:1-15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그냥 지나가는 피상적인 만남이 아닌 이상, 그

만남을 통하여 상호간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인

간은 영적, 정신적,문화적 차원에서 서로 만나게 될 때 서로를 변화시

키는 큰 영향력을 주고 받게 됩니다.

 

인간은 일생중 몇 번의 중요한 만남을 체험하게 되는데 그 첫째가 부

모와의 만남입니다.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부모의 슬

하에서 자라는 동안 인격의 기초를 이루게 됩니다.

 

두번째의 만남은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스승과의 만남을 통하여 학문

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인격의 큰 성장과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세번째의 만남은 부부의 만남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가정을 탄생시키

고 삶의 공동체의식과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과 사랑을 탄생시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만남은 종국적으로 죽음을 통하여 다 사라져 버릴 만

남입니다. 사람들이 참으로 삶을 삶답게 살고 가치와 목적을 갖고 살

며 영원히 살기 위하여는 제4의 만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

이 바로 예수님과 만남입니다. 이 제4의 만남을 통해 우리 삶에 어떠

한 변화가 다가오는지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님과 만난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스승이요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를 다스리던 종교재판소인 산헤드린의 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는 또한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관찰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을

눈여거 보고 예수님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리 뵙기로 결심을 하고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

갔습니다. 산헤드린 회원인 그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이 알려지면

파면을 당함은 물론 사회적인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하게 됨으로 이는

광장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날은 달이 밝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

수님이 서 계신 주위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니고데

모는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를 소개하고

난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않고는 선생께서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본 그 큰 기

적들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

를 볼 수 없느니라"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

수님께서 "주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

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리기 시작하자

예수님께서는 "바람이 임으로 불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리어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수수께끼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것이 무

슨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여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도무지 알 수

가 없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

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

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

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

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

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

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

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2-17).

 

예수님이 말씀 구구절절이 니고데모의 심령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

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생애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겉으로는 유대인의 선생이었지만 속은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었습니

다. 그는 산헤드린에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심판하려 할 때마다 반대해

무산시켰습니다.

 

훗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이 무덤에 장사지낼

때 그는 몰약과 침향 100근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썩지 않도록

방부하고 장사지내는 것을 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

해 그의 생애는 크게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2. 예수님과 만난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은 학자도, 스승도 아니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여인도

아니었스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매번 이혼한 슬픈 과거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는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

피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물을 길으로 나오는 아침을 피

해 대낮 햇빛이 쨍쨍 비추일 때, 인적이 없을 때에 물을 길으러 나왔

습니다. 그는 삶의 허무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정오에 물을 길러 나왔는데 우물가에 한 젊은이

가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

에서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기어코 사마리아를 통해 오셨습니다. 제

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간 동안 예수님은 이 여인의 구원계획을 실행하

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버림받은 더러운 여인이라고 생각했지

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

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위해

그 짐을 대신 져수지고 소외받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게 물을 좀 주시오"하고 청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유대인들이었으나 이방인과 결혼, 피가 섞임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로 취급,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

 

 

 

대 청년이 사마리아인인 자신에게 '물좀 달라'고 말을 하자 이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어찌 유대인으로서 나같이 천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계기로 대

화를 계속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과 당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

는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오히려 당신이 내게 물을 달라고 하였을

것이고 내가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며 "생수를 준다고요, 이 우

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만든 우물로 매우 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물

을 길을 두레박도 없는데 어디에서 생수를 길어 준다고 합니까. 이 물

들은 우리의 조상 야곱과 그 자손들과 짐승들이 다 마시는데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크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논쟁을 하려는 이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

마를 것이요. 그러나 내가 주는 다시 목마를 것이요. 그러나 내가 주

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요"하고 계속해서 말씀하

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기이한 듯 예수님을 쳐다보고 "그러면 내

게 그 물을 주십시오. 다시 목말라 하지 않고 또 여기 와서 물을 긷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조건

이 있습니다. 당신 남편을 데리고오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수님은 "당

신은 정직하군요. 당신이 다섯 남편과 살았지만 모두 이혼하고 지금은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결혼도 하지 않고 그냥 살고 있소"하고 말씀하

셨습니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서 "당신은 선지자시군요"하고 예수님께 말하더

니 종교적인 문제로 대화를 이끌어 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산에

서 예배하셨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더군

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니요, 이곳도 아니고 예룻라렘도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자가 오리니 바로 지금이요.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

인에게서 왔기 때문이요, 오늘날 하나님은 누구든지, 어디에서든지 신

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있어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

드리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서 잘 모르겠어요, 장차 메시야가 이따에 오시면 상세히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바로 당신이 말한 그 메시야

요"하시자 여자는 영의 눈이 활짤 열리며 자기같이 천한 여자와 대화

하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데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던져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자기가 기피하던 사

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와 보라. 여기 메시야가 나타났다. 그가 나의

한 모든 일들을 낱낱이 내게 말했다. 와보라" 사람들은 그 여인의 말

을 듣고 뛰어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병고침

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자기들과 함께 계시기를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천한 여자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

아 그의 생애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허무와 절망에서 소망을 얻고

삶의 가치와 목적을 얻게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노

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시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십자가 밑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죄악된 우리

들을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상세히 말씀하고 있습

니다. "그가 찌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

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

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웨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

도다"(사 53:5,6).

 

십자가에서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바라

보고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하여 위대한 변화를 체험할 수있는 것입니

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

암아 우리는 순식간에 내 일생의 죄가 다 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

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허물이 다 용서를 받고 죄악의 누더기 옷을 벗어던져 버리

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으신 의의 옷을 입혀주는 것을 체험하

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의인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예수님 십자가 우편, 좌편에는 똑같이

강도가 못박혔는데 좌편 강조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욕했으나 우편 강

도는 "주께서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했

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순식간에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또하나의 새로운 차원의 만남을 얻을 수가 있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만나자마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원수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는것입니다.

화해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성령이 우리에게 비같이 쏟아져 임

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성소가 우리 속에 드

러온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계시를 가지고 마음속에 들어온 것입니

다. 성령이 오시자마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천국의 영광을 얻게 되어서 보

이는 세계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슴에 안고 살 수있게 되

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보이는 세계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

던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얻어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살 수 있는 소망찬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또다른 차원에서 그리스

도와의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가셨습니다.예수님은 채찍에 맞음으로 우

리의 모든 질병을 다 청산했던 것입니다.

 

주니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말씀하십니

다. "이 사람들아 내가 너희 질병의 고통을 다 짊어지셨으니 나의 이

름으로 치료함을 받으라" 주님은 병을 미워하시고 그병을 멸하기 위해

서 우리 병을 짊어지고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

다. 치료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이 선물을 받은 성도

여러분은 모두 질병에서 놓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그리스도와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하였는데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저주

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죽을 수 밖에

있습니까? 주님께서 저주받은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

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립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

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

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아담의 자손들이 저주에

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

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만난 여러분은 절대로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

니다. '나는 못났다, 못산다, 안된다'하는 저주의 누더기 옷을 여러분

의 생각 속에서 벗어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최후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주

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하며 죽으시고 삼일 동안에 사망과 음부의 세

력을 멸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

리의 절망과 음부와 죽음이 철폐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영생과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니다.

 

우리는 음부에 가서 영원히 불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와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마

음속에 모셔들일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고

천국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만들어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

살렘의 시민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 소망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신 말씀 그대로 되어버

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 개개인에게 천지창

조의 기적만큼이나 크고 위대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의식도 아닙니다. 여러분

과 제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받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천국

을 상속받아 함께 살 자져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여러분께서 깊이 강직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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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화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본문 : 롬 4:17-25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산을 오르다보면 특별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소나무들은 소나무들끼리,자작나무는 자작나무끼리, 단풍나무는 단풍

나무끼리 모여서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새들도 마찬가

입니다. 참새는 참새끼리, 까치는 까치끼리 모여 움직입니다. 물고기

들도 같습니다. 명태떼는 명태 떼끼리, 멸치 떼는 멸치 떼끼리를 무리

를지어 함께 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무리의 법칙이라고 합니

다.

 

인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같이 세계의 각종 인종이 모

여사는 곳에는 백인촌이 있는가 하면, 흑인촌, 멕시코인촌이 있어 각

각 집단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과 그의 운명도 그

의 내적인 삶의 내용에 따라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것입

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의 마음판에 자화상을 그리며 삽니다. 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그린 자화상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용감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말과 행동을 용감하게 합

니다. 그러나 비열하고 비굴한 자화상을 갖고 있으면 비열하고 비굴하

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의 마음에 그려 있는 자화상을 따라 환경이 조성되고

운명이 형성됩니다. 즉 자기 자화상은 거기에 알맞는 환경을 자기 주

위에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또한 다름아닌 무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하여는 무엇 보다도 자

기의 마음판에 그려진 자화상을 좋게 바뀌야만 합니다. 나쁜 자화상을

가지고 좋은 삶의 환경을 기대하는 것은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나무 열

매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삶의 환경을 끌어들이는 힘은 내

마음속에 좋은 자화상을 갖는 것입니다.

 

1. 패배주의적 자화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죄인이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별 도리없이 죄의 종노릇을 한다. 나는 의롭게 살 수

가 없다'하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죄악된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법칙에 따라 동류인

각종 죄가 함께 거하기 위해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죄는 '야, 여기

우리 친구가 있다, 함께 모이자'라고 말합니다.

 

그 마음에 숨은 자화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힘을 발휘합니다.

자기는 더러운 사람,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더러운 생각과 말을 하며 거룩지 못한 생활을 합니다.

그것은 더러운 것이 집단을 이루어 그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자기의 자화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거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는것

입니다. 귀신들이 모여서 득실득실 끊게 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자기가 병자라고 자랑삼아 말합니다. '나는 병약하

다, 폐가 나쁘다, 심장이 나쁘다. 위장이 나쁘다. 우리 집안에는 이런

병력이 있다'등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자신을 언제나 병약한 자로

봅니다. 그래서 늘 보약을 먹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해봅니다. 그러

나결코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동류끼리 모인다고 자기 자화상이 병약한 사람은 모든 병을

다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병아, 오너라, 너희들은 내 친구다,함께 거

하자'쇠가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자화상은 자기와 똑같은 환경

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병약한 삶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또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

오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실패자요, 가난뱅이로 보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

습니다. '나는 무엇을해도 실패한다, 나는 가난뱅이다.' 제가 가난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한결같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러

한 가난한 의식입니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가난하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삽니다.

 

이것을 저는 동남아나 남미에서 강하게 느꼈습니다. 칠레에는 칠에와

아르헨티나를 경계짓는 '안데스'라는 큰 산맥이 있는데 이 산맥의 길

이가 우리 한국의 4-5배됩니다. 이 긴 산맥이 모두 동,구리입니다. 이

구리는 지구 종말 때까지 캐도 다 캘수 없을 정도의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가난합니다. 국민들이 가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

니다.

 

또 파라과이에는 산과 들에 자생하는 들풀같은 것이 있는데 이 뿌리

에는 고구마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삶으면 맛도 우리 고구마나 감

자와 비슷한데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아무리 캐어도 잘 퍼져서 산야에

깔려 있습니다. 파라과이는 식량 걱정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만나와 같아서 그날 캐서 그날 먹어야지 하루만 지

나도 말라서 못먹게 됩니다.파라과이 만나입니다. 이것의 자생력이 어

찌 강한지 심고 가꾸지 않아도 무진장 생겨납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

가 잘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가난의식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백인보다 연약하고 실패자라는 식의 패배의식이 얼마나 무서

운 것인가를 저는 이번에 남미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거지 근성을 버릴 수가 없고 거지

귀신들이 득실득실 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자기가 미움받고 버림받았다고 보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 나는 버림받았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가 친척이 주위 살마들이 날 사랑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화

상을 가진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싸우고 부딪치고 미움받고

소외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사람은 결혼생활을 해도 사회생활을 해도 어느 곳에 가도 그런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는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는 왜 이

렇게 기구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팔자가 기구한 것이 아니고 자화상

이 기구한 것입니다. 그 자화상을 바꾸기 전에는 그 운명과 환경을 다

른 것으로 개조할 수가 없습니다.

 

공포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그렇

게 잘 살면서도 늘 마음속에 자식과 재산을 다 잃고 몸은 병들고 부인

에게 버림을 당하는 자기 모습을 그리며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음속에 가진 부정적인 자화상 그대로 되었습니다. 자식들

을 다 잃어버리고 재산 다 잃고 몸은 병들고 부인에게는 버림받았습니

다.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 두려워 하던 것이 내게 임하고 내

무서워하던 그것이 내게 미쳤구나'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그런 자화상

이 있으니까 그런 운명과 거친 환경이 그의 생활 속에 다가왔다고 욥

은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암에 걸리겠지, 관절염에 걸리겠지, 아이고 심장병인가 보다,

죽으려냐 보다'고 자꾸 이렇게 부정적으로 모든 일이 안될 것을 생각

하고 그것을 그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그 속

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거기에 머물러 있어선 안됩니다.

 

열등의식과 좌절감 속에 잇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시

당하고 어려움만 당하는 그런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화상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끌어오고 또 자기가 끌려갑니다.

 

이러므로 패배주의적인 자화상에서 하루속히 벗어냐야 됩니다. 그리

고 사람이 자기 자화상을 새롭게 고치려면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와

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

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새것이 되는 그런 자화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

입니다.

 

2. 자화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와서 종교를 얻는 줄로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그

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대한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는 역사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내

가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이제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자

화상을 얻게 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 생애 속에 의가 둘러 진치고 의인끼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

다. 또 거룩한 자화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

를 씻고 성령이 내게 거하고 있으니 나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거룩함을

입었다. 이제는 음란하고 방탕하고 추하고 세속적인 곳에는 갈 수 없

다' 이러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자연적으로 추하고 더러운 것이 싫

어집니다. 거룩한 것이 좋아집니다.

 

옛날에 돼지 우리와 같은 곳에서 즐기며 살던 것이 이제는 기가 막힙

니다. 아예 담배연기도 맡기 싫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의 자화상이 달라질 때 그의 생애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병자들이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힘차게 가져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저는 칠레나 파라과이에서 설교할 때에 그들에게 이 사실을 굉장히

강하게 인식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남미 대중들은 지식이 많지 않고

단순하여 깊고 복잡한 설교를 하면 못알아 듣습니다. 아주 짧은 문장

으로 아주 간단하게, 그러나 그것을 기관총처럼 퍼부어야 되는 것입니

다.그러면서 자꾸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병과 상관이 없다. 병은 이미 십

자가에서 다 청산되었다. 당신은 이미 법적으로 병에서 해방된 사람이

다'라고 자화상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고 당신 마음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된 그 모습대로 행하라

고 할 때 목발을 던져 버리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못스던 팔도 올

라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본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간이 나빠 복수가 차서 몸

이 아이를 가진 것처럼 된 부인이 고침받은 일이었습니다. 기도를 하

자마자 그 부인의 몸의 복수가 빠지기를 시작하여 순식간에 홀쭉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한 부인은 이마에 혹이 달려 있었는데 기도하고 난 다음에 혹

이 사라지고 빨간 점만 남았습니다. 저 자신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

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병에서 해방되

었다는 자화상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게 나

타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마음속에 건강한

자기 모습을 확실히 받아들이고 믿을 때에 건강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

니다.

 

병은 떠나갑니다. 병은 '야, 여기는 우리 있을 곳이 못된다. 이제 우

리 친구가 아니니 가자'고 하고 건강이 '우리 친구에게로 돌아가자'고

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무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받고 형통하는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저주가 다 속량되고 우리는 저주의 여리고를 떠나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지옷을 다 벗어버리고 동냥하던 삶을 던져버리고 눈을 뜨고 그리스

도를 따라서 여리고를 떠나간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의 저주의 삶은 그

리스도를 통해서 떠나가 버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득히 받은 자가 모

습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

다.내 잔이 넘친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자화상을 바라보며"할렐루야"

하고 나갈 때에 끼리끼리 모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가 그

사람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천국을 소유한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

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 임금이 되시고 성령께서 하늘나라의 권

세가 되시고 천군천사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사는 이러한 모습을 늘

마음 속에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들이 장차에는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이러한 자화상을 굳세게 잡고 살 때에 우리는 이 세상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

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긍정적인 자화상을 고백하라

마음속에 가진 자화상은 강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

오. 나이 많아 늙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밤중에 깨워 일으키셔서 하

늘의 별들을 세게하고 주님은 "저 수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처럼 네 자

손도 그와같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

은 자신이 수엄 이 많은 자손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새로운 자화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이가 100살인 것과 사라의 나이가 90살이라는 것도 다 잊어버

렸습니다. 자기가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된 모습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으로 강하게 고백했습니다.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사래가 아니라 사라, 많은 자식의 어머니라는 하나

님께로 얻은 자화상을 입술로 강하게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비웃었지만 그들이 이 자화상을 계속 고백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결국 아들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자화상을 입술로 고백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욥은 완전히

패배적인 자화상을 입술로 고백했습니다. "내 무서워 하는 것이 내게

임하고 내 두려워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이러한 고백은 강도높

게 그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파멸을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고백은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마음에 믿어 의

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

했는데 우리가 매고 푸는 것은 입술의 말로써 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긍정적으로 묶으면 하늘에서도 그대로 묶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입에 이른말로 내게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 잡혔다'고

말하고 있는 입술의 고백, 이것은 자기 마음 속의 자화상을 어떠한 역

경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눈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흑암이 둘러 진

치더라도 내 입술의 고백을 부정적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긍

정적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설교는 일종의 고백입니다. 불신앙의 군중 앞에서 강하게 주의 말씀

을 고백하고 난 다음 기도할때 그 불신앙은 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병고침 받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강한 입술의 고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의심이 꽉 들어찼거나 부정적인 설교를 한 다음에 그런 긍정적인 결

과를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놀랄만한 강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

인 말씀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성령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강한 입술의 고백을 하고 매일 자화상을 새롭게 하

고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매일 기도할 때에 자기 모습을 고백하

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주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건강합니다. 주께서 나의 가난과 저주를 짊어

지셨고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셨으므로 나는 복의 사람, 영생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라고

 

인간은 자기의 가슴판에 새겨진 자화상을 따라 언어 행동을 하고 살

뿐 아니라 그 자화상은 자기와 같은 동류를 끊임없이 끌어 모읍니다.

그 때문에 환경과 운명은 밖에서 형성되는 것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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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 믿음을 어디에 있느냐?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3월 20일

본문 : 눅 8:22-25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 호숫가에 나가셨습니다. 날

씨가 좋았습니다. 햇빛은 쨍쨍하고 파도는 잠잠하고 조용했습니다. 예수님께

서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자기 이야기, 현재 바라는 것, 장래 소망

등 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배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완전히 잊

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하고도 대화하실 수 가 없으셨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는 동안도 제자들은 바다를 잘 항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먹장구름이 덮이며 바람이 불더니만 파도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호수

는 육지보다 600척이 낮기 때문에 헐문산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바닷물이 하

늘로 끌려 올라갑니다. 그래서 순시간에 온 바다에 거센 파도가 치게 됩니

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생활도 이와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

님과 함께 배를 타고 인생항로를 저어가지만 우리 자신의 생활,자녀,사업등

에 너무 관심이 집중되어 예수님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주일

예배 드리는 것도 소홀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일고 듣는 일에 등한히 할 때

도 많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예수 중심에서 떠나버릴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유컨대 예수님을 주무시게 해버리고 마는 것입니

다.

 

예수님이 주무시는 상황속에서도 당분간은 모든 것이 평안하게 지나가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곧 풍랑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도록 온갖 궤계를 부린후 일단 주무시게 되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

리의 삶속에서 주무시지 않도록 최대한도로 주님께 관심을 집중시키야 하겠

습니다.

 

1. 절망의 풍랑을 만난 인류

아담과 하와를 살펴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아름다운 에덴 동

산을 만등시고 그 안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한 좋은 실과를 많이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그들

이 늘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과만 교제했다면 절대로 마귀와의 대화는 일

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했고 그 틈을 타 마귀가 그들을 꾄 것입니다.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고,

왜 마귀의 꾀임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음에

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함으로 마귀가 틈을 타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자 인류 속

에 큰 풍랑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 에덴에서 쫓겨나 하나님을 떠나지 죄악의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장남이 차남을 돌로 쳐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에게 미움의 풍랑, 고통과 질병의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이

마에 땀을 흘려야만 겨우 먹고 사는 저주와 가난의 풍랑이 다가왔고 결국

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이 풍랑을

자기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자손대대 전 인류에게 상속으로 주고 떠난 것입

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자마자 자기들의 지혜와 총명을 다해 이를

잠잠케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배에 찬 물을 퍼내고 돛을 조정하는 등 안간

힘을 썼지만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들 뿐이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풍랑을 만나 인류는 인간의 힘으로 인류를 풍랑에서 건져 보려고

온갖 애를 다 썼습니다.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서 풍랑에 대처해 보았습니다. 또 과학과 철학, 정치,

문화를 통해서 풍랑에 대처해 보기도 했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인류는 이 풍랑에 대처해 보았지만 절망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허무와 무의

미의 절망, 죽음의 절망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절망

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처절한 절망에

처하게 되자 비로소 자기들 가운데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슴을 치며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의 죽는

것을 보살펴 주지 않으시나이까?"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절망에 처할 때에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들의 관심사를

예수님께로 돌리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지위나 명예,권세,돈,세상의 모든

환락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비로서 예수님께로 관심이 집중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주여 나를 살려주소서"하고 통회자복하며

철야기도 또는 새벽기도로 부르짖으며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찾으면 주님은 발견됩니다. 주를 찾

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하라 주실 것이

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님은 만나주십니다.

 

2.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

제자들이 자신들에게 향한 관심 집중에서 돌이켜 예수님께로 관심을 집중

하여 주님을 깨우자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

나 풍랑는 순식간에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제자들과 같이 인류는

종교,철학,과학,물질문명 등 어느 것을 통해서도 인간의 절망적인 운명을 해

결할 수 없었고 그 결과로 인류는 큰 낭패와 고통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이 세상에 오신 것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는 말씀 그

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절망에 처한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구원

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배에 함께 타기 위해 주님은 인간이라는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동

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30세에 요단강에서 물로 침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때로부터 3년간 주님께서는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하시며 인류에게 복음을 증거하신 후 갈보리 산

에 올라가서 마귀와 접전, 마귀를 멸하시고 풍랑에게 잠잠하라는 명령을 내

리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님이 오시기 600년전에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

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바다의 풍랑을 향하여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고

명령하여 잠잠케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 권세로 이 세상 죄악의 풍랑을 향하여 '죄악의 풍랑아 잠잠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미움을 향하여 잠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저주를 향하여 '너

희는 잠잠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향하여 '너희 사망아 잠잠하

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풍랑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

에 있지는 않으십니까? 인간의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 절망하고 계시지

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시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 제자들 처럼 예

수님을 깨우십시오.

 

지금까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살아온 죄를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을 자기 중심으로 가지고 있고 이기주의적으로

살아온 죄를 회개하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

오. 그리고 '주여,주야, 내가 죽게 되었사오니 나를 건져 주옵소서!'라고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성수주일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간절한 마

음으로 찾으십시오. 그러면 오늘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생애 속에 찾아오셔서

죄악의 바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악의 바람은 잠잠하라' 죄악의

풍랑은 잠잠해질 것입니다.

 

주님은 또 '너희 질병은 잠잠하라 너희 원수 귀신은 잠잠하라 마귀의 일은

멸함을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육신의 고통, 마음

의 고통과 질병은 잠잠해지고 맙니다.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

망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마에 땀을 흘려도 먹고 살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 속에 허덕

인다면 주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가난아 물러가라, 너희 모든

저주는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

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환경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물질적인 환경의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지말입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

지지 않으신다면 왜 물질적인 세계를 만드셨습니까? 왜 하늘과 땅을 만드

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영적 존재로 만들

어서 이 육신 속에 살게 만들어 놓으신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그러므로 염려하며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

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고 말씀하

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

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렇기때문에 갈라디아서 3

장 13절에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

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

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

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의 풍랑이 사라지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어야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 드리고 물질 드리고 몸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 산티아고에 오는데 우리 실업인들과 뿔라 성가대와 많은 남미 선교

회원들이 응원하러 같이 따라 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올 수 있었습니까?

물질이 없으면 어떻게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

에 그 복을 가지고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려 하나님을 섬길 수

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나라와 그의를 먼저 구하고 신령한 삶을 먼

저 추구할 때에 신령한 삶을 잘 이끌어 갈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인 세

계는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 것자비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죽먹을 들

고,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여도.' 그 주

먹이 얼마나 갑니까? 사람은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그리고 난 다

음에는 모두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풍파가 다가오면 어떠한

부귀영화공명과 권세를 가진 사람도 이 세상을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께서 죽음의 자리에 오셔서 죽

음의 풍파를 향하여 잠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

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짖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전 15:55) 고 사망을

통렬히 조롱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면 죽은 자 가우데서 부활하신

예수님, 사망의 모든 권세를 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서 '사망아 잠

잠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마음

의 무한한 영광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사망이 다가오는 그 시간에도 우리

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고 주님이 예비한 처소로

가는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은

것이 없는 영원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란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세상의 삶이란 희미한 그림자와 같습니

다.그러나 그날에는 우리가 깨어나서 밝히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

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풍랑을 이기는 삶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풍랑이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수

님은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문제를 당했을 때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찾아서 믿

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어부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인

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물을 퍼내고 배를 바로 잡으려

고 애쓰다가 낭패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했을 때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주님

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고 또 찾으면서 주님 중심으로 서면 믿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과 자기 배경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문제는 점점 악

화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핫비니다. '네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미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

자들이 갈릴리 해변을 떠나기 전에 주님께서 '우리가 저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부여잡고 나갔으면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말씀핫비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

든지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귀한 믿음을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에 우리 속에 하나님이 다 주셨습니다. 이 믿

음을 가지고 우리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며 주님과 함께 행진해 나가십시다.

 

저는 이 산티아고에서 매일 밤 거대한 집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믿음의 간구가 하늘에서 성령의 비가 되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가서 이 성회의 모든 장면을 여러분께 녹화를 통해서 보여드리겠습니

다. 오늘 제가 구원으로 인도하는 모든 영혼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공로로

돌려주실 것입니다.

 

 

 
 
 

7

제목 : 무엇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인가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3월 13일

본문 : 마 6:30-32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

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고민되는 것은 '무엇이 그

의 나라고 무엇이 그의 의'인지 정확한 해석을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의 의와 그의 나라가'가 무엇인지에 관해 확

실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 그의 나라의 뜻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 마귀의 나라가

이 땅을 다스렸습니다. 예베소서 2장2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

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하소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하고 타락한 루시포가 공중에서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과

더불어 흑암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권세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다스렸

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 속에

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영이 들어와서 역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탄의 나라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

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오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한 바와 같이 사탄은 우리 육체의 욕심을 일으키고

또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

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

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온 세상은 지금도 악한 자 안

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 사탄의 나라에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중대한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마

태복음 4장 17절에 보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는데 이같이 주님은 구원이 가

까이 왔다고 하지 않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중대한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마태

복음 4장 17절에 보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는데 이같은 주님은 구원이 가

까이 왔다고 하지 않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0장 7절로 8절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

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

 

 

 

들에게도 천국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절 8절로 9절에도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

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

탄이 지배하는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친히 전파했고 제자들에게도 하늘나라를 전파

하라 하시며 함께 열심히 전파하자 사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일대 격전을 벌리게 된 것입니다. 이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두 나라가 동시에 조재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하늘나라와 사탄이 이끄는 흑암의 나라의 대결인

갈보리 십자가 전재에서 제1차 접전은 외견상 마귀가 이긴 것으로 나타났습

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예수님을 체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므로 하늘나

라는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사슬, 하늘나라의 역사는 사

라지고 흑암의 권세만이 세상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접전때에는 예수님께서 그 피흘리심의 댓가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정치적인

권력을 빼앗고 무장해제, 완전 승리로 드러나게 되신 것입니다.

 

이 결과로 예수님은 이 지상에 하늘나라를 성공적으로 세우실 수가 있었

습니다.

 

이르므로 오늘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 속에 사탄의 영

이 역사하고 권세를 행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기만 하면

사탄의 정권과 모든 무장은 즉시 해제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분, 한분은 막연하게 '구원받았다'가 아닙니다. 여러

분이 바로 하늘나라가 된 것입니다. 바로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

늘나라가 되었으므로 하늘나라를 지키는 성령과 천군천사가 우리를 빽빽히

둘러 싸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되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나라

를 지키기 위해 성령으로 임하여 계시고 천국 백성인 우리 속에 임하여서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그 나라를 구하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주신 하늘나라를 이 지상에 세우는 것, 이것이 그

의 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사탄과 싸워 이기시고 이 땅

에 세우신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이 나라는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그

리스도의 나라, 죄사함의 나라입니다.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피로 말미암

아 아담으로 인한 원죄와 우리가 지은 자범죄,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차의

모든 죄를 주의 보혈로 다 청산받은 나라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으라고 전파하는 것이 바로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는 곳에서마다 사람들이 듣든지 않듣든

지 죄사함 받고 구원받으라고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주

께로 인도하면 하늘나라가 전파디고 확장됩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를 구하는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늘나라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거룩한 나라란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부정 부패가 사라지고 거룩함과

깨끗함만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추구, 시행하는 일 이것이 바

로 하늘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부정부패, 음란 방탕한 생활을 그대로 계속한다면

그것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나의

삶 속에, 환경에 거룩함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거룩하게 되리

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이는 곧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이것이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의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폐하셨습니

다. 우리는 에수님이 하신 이 일을 계속하여 이미 패배한 마귀를 완전히 쫓

아내는 청결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8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니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야 물러가라, 원수 귀신은 떠

나가라'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

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대부

분의 병은 마귀에게 눌려서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시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마귀를 내어쫓고 병든 자를

고쳐주는 것이 바로 주의 나라를 구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병든자를 보고

도 '나와 무슨 상관이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한다면 그것은 그 나라

를 포기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임하게 하는 역사가 바로 하

늘나라의 역사입니다.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한게 되심은 그

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수께서 가난하게 사신 것을 가난을 제해 버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

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되

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

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

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게 하려는 의미로서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열심히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드리

며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간구해서 우리 삶속에서 가난과 저주를 다 추방

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

서 주의 나라를 위해 많은 물질과 시간을 드릴 수 있게 되는 이것이 바로

주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릴 수 없고 조그마마한

헌물도 드릴 수 없다면 이는 하늘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가난

과 저주에서 해방되어 많은 물질로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하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늘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재림과 천국완성을 가져오는 하늘나라를

확실히 믿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곧 재림하십니다. 이 주님 재림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널리 전파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게 하며 영원무궁한 천국을 맞이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그의 나라를 간절

한 마음으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죄사함의 나라요, 거룩함

의 나라이며 귀신을 멸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는 나라요 재림과 천국

완성을 가져오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의 일을 열심히 전파하고 추

진할 때 여러분은 그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의 의'란 예수님의 품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의의 근본이 되심으로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품성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

성은 겸손하신 품성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

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

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

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겸손하라.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종들이 하는 섬기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며 이는 곧 '그의 의'

를 구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으시대지 않고 섬기는 삶, 이것이 "그

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목사라고,장로, 안수집사라고 또는 지역장,구역장의 자리에 있다고 으시

대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이 아닙니다.'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높은 자가 겸비하여 낮은 자를 섬겨

그의 발을 씻겨주는 것과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용서와 사랑의 성품을 구하는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17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

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

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서 우리도 살마을 심판하기 보다 사람을

구원하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장로님끼리 심판하고 집사님은

집사님끼리 심판하고 목사는 목사끼리 심판하면 이는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

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는 삶

은 우리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품을 나타

내려고 노력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 다음,주님은 정의로우신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며 사리사욕, 탐욕으로 불의와 부정을 용납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탐욕이 바로 우상숭배인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거짓이 없으신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

다. 원수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진실되이 생

각하고 진실되이 말하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습니다. 자꾸거짓을 말하면 신

뢰를 잃고 버림을 받으며 인격적인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인간 세계란 계약의 세계입니다. 계약을 파기하고 거짓말을 하는 삶은 다

른 사람들과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버림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

품을 닮아서 우리 삶 속에서 거짓을 제하고 진리를 좇는 삶을 살려고 부단

히 노력하여 자기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충성스러운 성품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

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

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

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

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고 충성하셨습니

다. 충성심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자신의

삶에, 이웃에, 우리가 속한 단체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

교회에 성도는 이 교회에 충성을 해야지 오늘은 이 교회, 내일은 저 교회

로 다니다가는 신앙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직장도 내가 속해 있는

한 전력을 다해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배신입니다.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

하고 자살했습니다. 배신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과 자신이 속한 교회와 단체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성품을 가지고 곗비니다. 거룩한 성품이란

세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더러운 귀신은 더러운

생각, 말, 행동을 통해 들어옵니다. 돼지 소굴에 들어가서 함께 살면 병이

안들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추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모여 예배드리며 귀신 우리

곁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가는 곳마다 이 귀신들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

니다. 이러한 것이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무엇보다 먼저 관심을 가지고 시행해야 할 일은

'그의 나라와 그 의' 를 구하는 일입니다. 이 순서를 바꿔놓으면 큰 낭패를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하늘나라를 세우고 주님의 성품을 닮는데

정성을 기울이면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돌보아야 주십니다. 하나

님은 이러한 삶을 크게 기뻐하셔서 같이 계시면서 품에 품어 주시고 일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8

제목 : 삶의 가장 귀한 보배들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1월 30일

본문 : 고전 13:13

 

인간이 갖고 있는 자산을 평가할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동산, 부동산

그리고 학력이나 특수 기능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인간을 성

공시키거나 실패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동산, 부동산 학력등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

신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은, 눈에 보이

는 동산이나 부동산이나 학력이나 기능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지

라도 인생을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자산을 평가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있느

냐, 없느냐를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무엇일까요?

 

1.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보화는 영적인 자산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뿌리가 얕게 박혀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뿌

리가 얕게 박혀 있는 나무는 사나운 바람이 불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뿌

리가 뽑혀져 죽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어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서 심히 부딪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죄의식에 짓

눌려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이 정죄의식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이상 평안

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

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불의를 한 몸에 다 짐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

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일생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 마음속에 평안이 넘쳐납니다. 저

녁 잠자리에 들어갈 때도 용서받은 사람으로서의 평안함을 갖고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도 용서받고 용납받은 사람으로

서의 기쁨을 갖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고 할지라도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상실한 사

람은 하루살이 인생에 불과합니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

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텅빈 인

간'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쓰디쓴 허무와 무의미와 절망 가운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분명히 알

기 때문에 텅빈 인간이 되지 아니하고 알찬 인간이 되어 매일매일 보람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죽음 건너편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과 현실적인 생애를 주께 맡길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까지

주님께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간

에 속한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시간에 속하지 않은 속사람, 즉 영원의

사람은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둘 중에 한곳으로 가게 됩니다.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날르 믿으라 내 아버지 집

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

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

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

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 저 거민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삼중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죄와 저주와 질병과 절망을 벗어 버렸습니다. 십자

가 밑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래서 우리의 지식과 생각조차도 새로워져서 부정 대신 긍정을, 죽음 대신 삶

을 절망 대신 소망을, 저주 대신 축복을, 질병 대신 건강을, 지옥대신 천국

을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된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철학, 새로운 신념, 새로운 삶으

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삶을 성경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절)고 말씀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새로운 인생을 소유하게 되어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

니다.

 

그다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배인 소망이 있습

니다. 인간은 소망이 있을 때에 열심히 살게 됩니다. 소망을 잃어버리면 삶

의 열심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소망을 상실한 사람은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바로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경에는 죄인들에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고 말씀하심으로 소망을 주십니다. 또한 병자들에게도 "건

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고 말씀하심으로 소망을 주십니다.뿐만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심으로 수고하

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약속은 소망의 씨앗이 됩니다.그리고 이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 마음속에 소망은 더 타오르게 되어 긍정적이고 창

조적이며 생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자산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망이 다끊어지고, 극한 절망에 처

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끝없는 소망을 얻을 수 있습

니다.

 

나아가서 눈에 안보이는 귀한 자산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

혜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과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기쁨이 넘쳐납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기

쁨이란 사랑 가운데서만 생겨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 사랑의 기쁨이

 

 

 

넘쳐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자학이 사라집니다.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열등의

식과 좌절감으로 짓눌린 자아가 용납을 받습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내 스스로를 사랑하며 용납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붙

잡아 줄 수 있고 따뜻한 말로 위로를 줄 수 있고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를 사랑함으로 남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보화, 이 신앙적인 보화는 눈에 보이는 동

산이나 부동산이나 학교 졸업상이나 무슨 기능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에게 이 믿음, 소망, 사랑이 있을때 우리는 굳세고 밝은 자니간이 되며 이해

와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보하는 인격적인 자산입니다.

 

홍콩 하얏트 호텔 정면에, 홍콩에 오는 수많은 외국사람들이 꼭 들러서 양

복을 맞추는 이름난 양복점을 경여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는 누가봐도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언젠가 그는 내게 이런 말

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중국 피난민으로 일본에 있다가 홍콩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입니다. 홍콩에 들어올 당시 세상에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부모

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

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복점에 들어가 양복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처럼 성공하게 된 것은 저에게 귀한 자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은 정직과 충성과 근면입니다. 저는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도 없었고, 교

육도 못 받았기 때문에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근면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이 세가지 자산 때문에 경쟁이 심한 홍콩 사회 속에서 지금 이처럼 올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인생에 정말 필요한 것은 정직,

충성,근면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면서 정직을 저버리면 안됩니다. 오늘날 사업가들이

사업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중의 하나가 '부정직' 때문입니다. 어떤 수

출업자 한 분이 수출업을 하다가 망해 우리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난다음

내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동남아로 인삼 수철사업을 하고 있었습니

다. 그가 처음 인삼 수출을 주문받았을 때에는 정직하게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삼을 포장할 때 맨 위에는 좋은 인삼을 얹고 밑에는 썩고 곰팡이 핀

인삼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까런데 클레임을 당하지 않고 통과되자 계속 그

런식으로 했다가 결국에는 그의 부정직이 탄로 나, 많은 액수의 클레임에

걸리게 되어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거지가 되다

시피 방황하다가 전도받고 회개를 한 다음 교회에 나와 새생활을 하게 되었

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정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중대

한 재산목록입니다. 또한 충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인간관계에 얽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충성심을 버리면 안됩니다. 그 때문에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

서도 굳게 신뢰받을 수 있도록 충성해야 하고, 종사하는 일에 있어서도 하나

님께서 주신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일본 사람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본 사람들은 맡은 바 직무에

대해 전심으로 충성하며 자기가 만드는 물건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완성시키

기 위해 전력을 다 기울입니다. 그 결과 일본은 세계적인 기술우위 국가가

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근면해야 합니다. 제 아무리 지혜있고 총명한 사람이라도 게으

르면 절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노력

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정직과 충성과 근면을 인격적인 자산으로 개발해야 합니

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동산 부동산이 많고, 학력이 높고,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

으로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 이 내적자산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3.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보화는 건강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일하며 살다가 죽을 때까지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자산은

바로 건강입니다. 인간이 건강을 잃고 나면 이 세상의 무엇을 갖다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건강에 관하여 깊

이 유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먼저 일과 휴식에 대해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 5:12-15).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쉬도록 하셨는데 이 규

례를 어기고 계속 무리를 한다면 우리의 육체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

적으로 보면 인간은 120세까지 살게 되어 있습니다 (창 6:3).

 

그러나 여러분 오늘날 120세를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인간은 대부분 평

균 칠,팔십 년을 살다가 죽고 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의 법

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일하고 난 후 휴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무입니다.

 

또한 식생활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건강을 돌보지 않고 과

식, 편식하거나 음주 흡연하기 때문에 암이나, 당뇨병, 고혈압 같은 성인

병에 걸려 요절하고 맙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식생활을 잘 관리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육체를 파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위생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위생은 특히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깨닫고 자연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서 주신 귀한 육체를 잘 관리하며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

다. 자기에게 아무리 특출한 기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그

기능을 갖고 인류와 하나님께 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보배만 취하려고 애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

배를 닦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보배는 잠깐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매가 풍성해지면 눈에 보이는 보배는 자연

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9

제목 : 한나의 기도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1월 23일

본문 : 삼상1:1-18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일반적인 기도로

평범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리고 또 일상생활 중 시

시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두번째 기도는 삶의 큰 위기를

당하여 하나님께 응답받지 않으면 파탄에 이르게 될 상황에서 부르짖는 절

대절명의 기도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두번째의 기도 즉 위기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에 관해 말

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한나의 기도

 

이스라엘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부인 한나는 자식을낳지 못했고 두번째 브닌

나는 자녀를 많이 낳았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에게서 많은 조롱을 받았습니

다. "자식도 못낳는 처지에 무슨 낯으로 여기에서 사는가! "한나는 매일 브

닌나에 의해 격동해야 했습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1년에 한번씩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 하

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는 한나를 사랑해서 언제나 제물의 분

깃을 브닌나와 그 자식에게 주는 것보다도 갑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나

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나는 울고 음식도 먹지 않았습

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위로하여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먹지 않는고?" 내가 그

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하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사랑과 배

려에도 위로를 받지 못한 한나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

니다. 한나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한나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신 것입

니다. 여러분,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결단을 하게 합니다. 이 결단의 결과로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내 주위에는 나를 가시로 찌르는 사람이 많은가'하고 탄식

합니다. 남편이,아내가, 때로는 부모가, 자식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릅니다.

이들이 약대가 되어서 물먹여 달라고 자꾸만 고함을 칩니다. 이러한 것이

오래 계속되면 우리의 마음은 지치고 번뇌스러워 눈물이 앞을 가리며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 결단은 기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금식하거나 철야하며 목이

터져라하고 기도하면 문제의 해결을 얻으리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실은 이러한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환경 가운데서 여러 고난의 가시가 찌르는 것은 하

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절대절명의

결단 아래 기도해야 하며 이러한 기도는 마귀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위대한 힘이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란 단호한 결단없이 응답이 와도 좋고 안와도 좋다는 생각으로 형식

적, 의식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만큼 위대

한 역사를 기대하며 결사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열두 해 혈루병을 앓은 여인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병이 나으리라는 확고한 결론을 내리고 병으로 지친 몸을 간신

히 이끌고 주님께로 나왔습니다. 사생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는 절대절명

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하에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을 때 사력을

다해 그리스도에게 다가가 그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마자 하나님

의 능력이 임하여 12년간을 앓던 병이 순식간에 나아버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돌이켜서 '누가 내 옷자락에 손을 대었는가'고 하시면서 그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많은 사람이 주님을 밀고 당기며 손

을 대었는데 어느 특정인을 찾으십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자신에게서

이미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주위를 둘러보아 그 여인을 찾으시

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나와 같이, 혈루병 앓는 여인과 같이 절대절명의 결단

을 내리고 주님께 나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우리는 한나를 통해 기도의 비결을 배웠는데 이를 시행하려면 다음과 같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2.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죄악과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가

득한 우리의 기도는 상달될 수 없스빈다. 먼저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여야

하나님께 나가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 나가기전에 하나님의 계명 앞에 우리를 비춰

보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가 있으면 그것을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

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뱀을 집으

며..."라고 말씀하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원수 마귀가 들어와서 똬리를

틀고 있으면 그 뱀들을 다 잡아내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회개와 자

복을 통해서 감추인 죄악을 다 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

나님의 계명을 늘 마음속에 비춰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씀합니다.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부르면 안됩니

다. 존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을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날

을 내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또 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과 뜻이 맞지 않을 수 있겠으나 공

경은 마땅히 해야 합니다. 얼마전 국민일보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생활비 지

급 청구소송을 제기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가 생활 능력이 전혀 없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살인하지말고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도둑질하지 말고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것을 탐내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

람을 죽일 마음을 가지고서야 무슨 응답을 기대하겠으며 하나님의 성전인 몸

을 더럽히면 어떻게 그 속에 성령이 거하시며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고 구원받은 형제의 것을 도적질하

거나 형제를 모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

 

 

 

니 어떻게 그 기도가 상달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웃이 잘되기를 축복해 주며

또 잘되면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고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청소해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나중심이나 이기주의가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지 않고서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기도를 받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 눈이 멀어 보지 못함이 아니요, 귀가 둔하여 너의

기도를 듣지 못하밍 아니며 내 손이 짧아 너희를 도와 주지 못하는 것이 아

니라 너와 나 사이에 죄악의 담이 가리워 있으므로 내가 너희 기도를 들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고 외치신 그대로 하늘나라와 회

개는 분리 할래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가

기 전에 우리는 죄악의 담을 헐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서원을 하라

 

우리가 간절히 응답을 소원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하나님께 서원을

해야 합니다. 이 서원기도는 결정적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

시면 제 품에서 제가 키우지 않고 젖만 떼면 하나님 전에 바쳐서 성전에서

주를 섬기게 하겠습니다.

 

한나는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서원기도의 위력적인 응답으로 아들을 낳은

후 그 아들이 젖을 뗄 때까지만 품에서 키우고 그 다음에는 성전에 데리고

가서 엘리 제사장을 섬기는 몸종이자 성전지기로 바쳤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형 에서를 두려워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칠 때에 한데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문이 열렸는데 보니 야웨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천사들이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날 내리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난 그는 '두렵도다 이것이 하나님의 문이로다'하면서 그 자리

에 돌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가는 길

을 지켜주시고 무사히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은 내 하

나님이 되실 것이며 지금 기름을 부은 이 자리가 하나님 성전이 될 것이며

내가 얻는 것 중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서원기도를 들어 응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20년 만에 한떼, 두 떼 큰 짐승의 떼를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그

가 서원한 대로 벧엘에 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이

렇게 서원을 지켰기 때문에 그와 그 후손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것입니

다.

 

또 성경에는 입다의 서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의

침략을 받아서 나라가 위경에 처하자 장로들이 입다에게 가서 '우리 민족

을 대표해서 암몬과 싸워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입다는 이 간청을 수락해

싸움터로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셔서 암몬 족속을 물리쳐 이기면 귀가할 때 맨 먼저 마중을 나오는 사람

을 하나님께 돌리겠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다급했던지 그는 하나님께 강한 서원기도를 드렸던 것입니

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족속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개선장군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무남독녀 외딸이 그를 맞이하려 손에

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제일 먼저 달려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습니다. '왜

네가 맨 먼저 나오느냐'하면서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딸에게 말했습니

다.

 

그러자 딸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께 서원하셨으면 그대로 이

행하셔야지요.다만 두 달만 말미를 주시면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처

녀로 죽게 됨을 슬퍼하며 실컷 울고 오겠습니다.' 입다는 그것을 허락한 후

딸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 서원한 데로 행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은 엄중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

내 병을 고쳐주시며, 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무엇 무엇을 바치겠습니

까'하고 서원기도를 드려서 응답받은 후 전혀 서원을 갚지 않습니다. 서원

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파멸을 당합니다. 서원은 꼭 지켜야 합니다.

 

서워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작

정한 서원기도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께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드릴 때는 크고 작은 서원을 하십시오.

서원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일반기도보다 큰 힘이 있는

것입니다.

 

4. 결사적인 기도

 

한나는 성전에 나와 통곡하고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지

쳐서 나중에는 입만 달삭달삭 했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고 '이 사람아,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는가. 포도주를 끊으리라'고

책망했습니다.

 

한나는 엘리에게 '나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너무 원통하여 하나님께 부

르짖다가 지쳐서 이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평

안히 가라. 네 기도를 하나님께서 답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자, 한나는

'이 여종이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고 말한 후 가서 다시는 걱정을 하지 않았

습니다. 응답의 확신이 왔기에 그는 평안했던 것입니다.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던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아

합 왕을 청하고 바울 선지자 4백 50명, 아세라 선지자 4백명을 불러모아 제

단에 불이 내리는 것을 통해 참신이 누구인가를 시함하여 이겼습니다. 하나

님이 제단에 불이 임하여 참신이심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참패한 이방신의 선지자들을 다 잡아서 기손 냇가로 데리고 가 목

을 베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정과 같이 갈멜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엘리야가 땅

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는데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드렸던지 배창자가 땡기어서 허기가 굽어져 얼

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간 것입니다. 창자가 오그라질 정도로 하나님께 부르

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종에게 산에 올라가 비가올 징조가 보이나 보고 오라

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까지,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기도하며 종을 올려보냈습니다. 일곱 번째 다녀와서 손바닥만한 구름 한 점

이 나타났다고 하자 엘리야는 종에게 '왕이요, 비가맞지 않도록 빨리 마차를

 

 

 

타고 산에서 내려가소서'하고 전하라고 일렀습니다.

 

잠시 후 큰 비가 쏟아질 때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

를 동이고 아합 앞에서 시내까지 달려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엘리야도

그렇고 한나도 그렇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결사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런 증거도 받지 못한채 기도를 중단하는 일이 많습니

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내 가슴 속에 든, 환경

에든 임하여 나타날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증거는 반

드시 나타납니다.

 

저의 경우, 제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다가오는 증거는 한없는 평안

입니다. 그리고 '응답 받았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하는 말씀이 뱃속에

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가 올 때까지 저는 부르짖어 기도합니

다. 여러분들도 응답의 증거가 올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도 큰 통곡과 눈물로써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히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

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

간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가 응답받지 않으면 나는 파멸당한

다는 절대절명의 위기의식 속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은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절명의 기도는 역사와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위력을 가지고 옵니

다.스코틀랜드의 요한 낙스는 그의 나라의 복음화를 위하여 '하나님이여, 스

코틀랜드를 주시든가 아니면 내 생명을 거두소서'하고 절대절명의 기도를 드

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스코틀랜드가 복음화되

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내 목숨을 거두든지 아니면 기도 응답을 해 주시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시옵소서'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의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이와 같이 기도를드렸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간절한 심정과 죄를 청산한 기도, 예물을 작정한 서원기도는 하나님의 보

좌를 움직여 하나님께 여러분 개인의 생활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변화시키

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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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국은 어떤 곳인가

자료원 : 조다윗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발행일 : 94년 01월 16일

본문 : 계21:1-7

 

옛날 서대문교회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 이른 아침에 최자

실목사님과 제가 걸어서 교회로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좁은 골목

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분이 양지 바른 곳으로 뛰어가 서더니 음지에서 장

사하는 친구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리로 오게, 여기는 천국일

세.'

 

목사님과 저는 그 말을 듣고 함께 웃었습니다. '천국치곤 너무 초라하군'하

는 생각에서 였지만 그 사람의 그말이 저의 뇌리에 남아서 지금까지 잊혀지

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이란 말을 '기쁜 것,평안한 것,행복한 것,풍부한 것,진실된

것'등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이 모

든 것을 포함함과 동시에 그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나라'라는 것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주권과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쉽게 말하면 통치권자인 대통령,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는

군대와 경찰이 있어야 하며, 이는 기초적인 필요 요건인 것입니다.

 

천국도 이뤄지기 위해서는 절대주권자인 한님이 계셔야만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란 신화적 단어

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시는 권세가 우리 인간 사회 속에 직접 들어와서

임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가 어느

곳에 어떻게 나타날까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고

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람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반역 이후로 에덴에서 쫓겨나서 완전히 마귀의 종

이 되었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고 병들고 미움과 시기,질투,저주, 가난,죽

음 등 지옥의 세력이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가운데서 살

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흑암의 권

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벌써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가 우리 가운데, 우리 마

음에 와 있고 우리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나라의 주

권자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권세인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주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르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이 바로 하늘나라요,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교회가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

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의 나라는 성령이 임하여서 점령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속에 용서받은 의가 가득하고 빼앗길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도 못하리니,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우리 속에 천국이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먼 장래, 미래만 바라보지 말고 현재 내속에

주권자인 예수님이 계시고 그 권세인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의와 평강과 희락과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차 있습

니다. 이러한 심령천국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곳, 교회

에 천국에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환경에 이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있습니다. 오늘날 완

전한 천국이 우리 환경에 임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

음을 통해 우리의 환경 가운데도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계십니다.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시고는 죄인의 죄를 사하시고 병

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환경을 평안으로 채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

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면서 천국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여

러분, 믿음을 통하여 병든 자가 고침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바로 환경

에 임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주에서 해방을 받는 것, 이것 역시 환경에 나타난 천국

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던 곳

에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해서 천국의 역사가 나타나 가시와 엉겅퀴,저주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는 것은 바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을 얻는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

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악하고 더거운 귀신을

쫓아냅니다. 점치는 귀신을, 거짓말하는 귀신을 내어쫓아냅니다. 이 모든 귀

신들에게서 해방을 얻고 우리의 마음속과 가정과 주위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채우는 천국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천국의 역사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역사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믿는 자의 심령 속과 생활과 가저아 이들이 모인 곳인 교회에만 임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오늘 적은 부분의 천국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임하

여 성령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

님의 종교나 의식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

들이 성령으로 오셔서 왕으로 계시고 성령의 권세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위

대한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소망.사랑을 우리 심령에 채워주시고 우리 환경

가운데서 미움과 저주와 죄를 제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리고 질병을 고치시

고 기적을 행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고 평화를 가져오는 천국의 역사를 우리

의 주변에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서 분명한 해답을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요한복음 14장1절로 4

절을 통해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

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지금 낙원에 계시며 '너희가 육체의 장막짐을 벗으면 나 있는 곳

에 함께 있기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덤 속에 있으라고 말씀하

시지 않으셨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실체로서 사는 것일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

러분 우리의 실체가 없다면 처소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살집이 있으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은 실체적인 인간이지, 안개나 구름같은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경은 우리는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

도 분명한 실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 집에 거하면서 그

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바울 선생이

루스드라에서 전도중 반대자들에게 잡혀서 돌로 맞아 죽었을 때의 체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

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화샹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

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

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 선생은 자신이 확실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온 사람을 말하고 있습

니다. 이 체험 후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강하게 증거했습니다.'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

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이어서 그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8,9)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천국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그러나 천국을 체험한 바울 선생은 육

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이 더 좋다고 담대히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는 육신의 장막집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면서 살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1절로 23절에 그의 간절한 소원을 기록하고 있습니

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

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

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세상에 살고 있으면 더 많이 전도하고 교회도 세우니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다고 말했습니다. 바

울 선생에게는 죽음이란 하나의 이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온갖 핍박 끝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기 직전,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겨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르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내가 죽지만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의 재판관 앞에 나가서 의의 면

류관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여러분 천국은 확실히 있는것입니

다.

 

3.지상 천년왕국의 천국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들려 공중에 올라가서 7

년 혼인잔치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중 재림인 것입니다.

 

천상에서 칠년 혼인잔치가 있을 때 지상은 칠년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

칠년 환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신부인 모든 성도들을 거느리고 백마를

타고 지상에 강림하십니다. 이것이 지상 강림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로 16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

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다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

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

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

르더라 그의 입에서 利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칠년 혼인잔치를 마치고 백마를 타고 강림하시면 그 신

부들인 부활한 성도들도 모두 다 그 뒤에 백마를 타고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 강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상 강림을 하자마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고 마귀는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가두어 놓습니

다. 그후 야곱의 자손들과 이마에 666인 을 받지 않는자들과 7년 환난 동안

의 순교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에 천년 동안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

이 없고 가난과 전쟁도 없스빈다. 주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이것

이 지상 천년왕국 천국인 것입니다. 그때 부활한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지상에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4. 새로운 나라  영원무궁의 세계

 

천년이 차면 주님께서는 마귀를 무저갱에서 풀어내십니다. 이때 마귀의 꾀

임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그리스도와 하늘나라를 대적하고 예루살

렘을 둘러싸고 치려고 할 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利한 검으로

그들을 다 멸해 버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흰 보좌를 배설, 그 위에 앉으시고 모든 부활

한 성도들은 그 뒤에 선 후 역사 이래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

들이 부활해서 그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책을

가지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심판하시는 것입니

다.

 

나중 심판 받은 사람들은 그때까지 지옥에 있었는데 그후에는 영원한 심판

장소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마귀와 그 사자와 함께 던져 넣어서 세세토

록 불타며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드십니다. 이 새하늘과 새 땅 외에 하늘

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치 신

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좌

가 있고 그리스도를 믿어 부활한 성도, 신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보좌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에는 열두 실과

를 맺는 나무들이 나 있고 길은 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신부들이

함께 거하며 지구를 다스립니다.

 

지구에는 천년왕국 후에 살아남은 주로 야곱의 후손인 유대인을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 육의 선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생

육하고 번성하여 지구가 가득차면 수성,화성,금성 등 우주로 무한히 퍼져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온 우주를 통치하는 왕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앓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최후의

천국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을 잃은 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가장 큰 소망은 천국

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좋아도 '천국이다.천국같다'고 말하

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를 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

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먼저 마음 천국, 다음 교회 천국, 천년왕국, 새로운 영

원무궁한 세계의 단계를 거쳐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주와 함께 세세무궁토

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

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육으로 한번 죽고난 다음에 영으로 또다시 죽여 영

원히 버림받는 것이 불신자의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나 어리

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 영광 아니면 영원한 형벌, 두

길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은 예수님이

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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