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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당신의 가정은 건강하십니까?
자료원 : 순복음소식 순복음중앙교회 조다윗목사
절 기 : 가정의 달
구 절 : 에베소서 5장22절-6장4절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상처입은 인간은 따뜻
한 사랑과 이해와 동정과 치료가 있는 가정을 원합니다. 가정은 삶의
안식처요,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상처투성이의 가정이 날
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과 기쁨이 넘
치는 가정을 가꾸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수많은 가정이 무덤화되고 있
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가정을 가꿀 수 있을까요?
1. 부부가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이 참으로 아름답고 건전한 가정을 가꾸려면 하나님의 은총을 통
해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이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
적'입니다. 혼인잔치에 예수님의 첫 기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서 인간의 가정, 부부의 행복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강력
하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처음 출발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손님들을 위한 포도주
가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었스니다. 이 사실을 안 예수님의 어머니 마
리아가 예수님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는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하시며 기적을 베풀 것을 거절하셨으나
조금 후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결례통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하인들이 그대로 하니 그 물은 최상품의 포도주가 되어 사
람들을 기쁘게 했고 신혼부부가 당한 위기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기사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부부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결레통은 인간의 심령을 상징합니다. 부부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인격과 인생을 심령에 잘 수용하고 조
화시켜야 합니다. 결혼은 서로 다른 인격체의 만남입니다. 부부느 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인격적인 형성이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관도 정서도 꿈과 희망도 성품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보통 모험이 아
닙니다.
이 때문에 가정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서로의 인격과 인생을 어떻게
수용하고 조화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
해 실망합니다.만일 이런 실망을 빨리 해결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미움
과 멸시와 경멸과 무관심과 이기주의를 낳게 되고 결국 이런 것이 심
화되면 가정이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가 참으로 복된 가정을 이룩하려면 먼저 에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령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결례통의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빈
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
럴 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무미건조한 인생이변화여 기쁨과 행
복이 넘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인격의 변화'를 주십니다. 이
때문에 어떠한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
스도를 영접하고 변화를 간절히 구하면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인격이 변
화를 받고 조화돼 아름다운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가정과 부부의 관계 - 아내
구체적으로 크리스천 부부는 서로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
해 본문을 통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먼저 아내의 태도에
관해 밝히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엡 5:22-23,)
성경은 남편을 '머리'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의 머리는 남
편입니다. 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아내가 남편
을 '머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내 여러분, 교회가 그리스
도에게 하듯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교회는 끊임없이 예수 그
리스도를 예배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주 안에서 아름답게 가구어 가
려면 남편을 머리로 인정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일보 자매님들은 성경의 이 명령에 크게 반발합니다. '남편이나 나나
똑같지 누군 머리가 되고 누군 수족이 될 수 없다'라는 자세는 성경에
위배되는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로는 결코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가꿀
수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예배하듯 존경해야 합니다. 아내는 근원
적으로 남편을 머리로 모시로 존경하고 순종해야 기쁨과 행복이 넘치
는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이 사라진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듯 아내는 남편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
양하라는 것은 남편의 장점을 칭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
다.
남편과의 극한 불화로 고통중에 있던 어떤 자매님이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란 나의 설교집을 읽고 난 다음 변화를 받고 나에게 장
문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인생관의 큰 격차를 느끼는 가운
데 항상 남편을 경멸하고 대항했던 이 자매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심령의 변화를 받고 나의 설교집을 읽다가 남편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
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남편의 어떤 점을 칭찬할까를 골똘히 생각했으나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결점 투성이었습니다. 고
민에 빠진 자매님은 '성령님, 남편의 장점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주
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날 저녁,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시청하
는데 그 모습을 보니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윤기있어 보이며
오렌지 색 티셔츠가 돋보였습니다. 자매님은 '이거구나'생각한 다음 "
여보 오늘 목욕 갔다 왔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텔리
베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시큰둥한 어조로 "응, 사우나 갔었어,
왜?" 하고 되물었습니다.
"당신, 얼굴이 훤해 보이는데요. 티셔츠도 잘 어울려요, 한마디로 핸
섬하네요." 자매님의 이 말에 남편은 마치 바늘에 찔린 사람처럼 놀란
모습으로 자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항상 헐뜯는 얘기
만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남편은 "별 소리 다 듣네" 라고 하면
서 껄껄 웃었습니다.
순간 자매님은 늘 냉랭하던 가정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온화하게 바뀌
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알았어요.'
자매님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후부터 자매님은 하루에 한 가
지씩 남편의 장점을 찾아 칭찬했습니다. 그 결과 10년 가까이 차디차
게 얼어붙었던 이 가정의 분위기가 풀려 행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의 돋보이는 점을 칭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
오. 이렇게 할 용기나 지혜가 생긱지 않거든 성령께 간절히 구하십시
오.
나아가서 아내는 남편을 신뢰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
도만을 신뢰합니다. 아내가 무슨 일이든 의심을 하고 꼬치꼬치 캐물으
면 남편은 점점 거짓말장이가되고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포근하게 감싸주어야 합니다. 남자는 어머니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어머니의 다정함을
워합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이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고마움을 느끼고
더 잘 할려고 노력합니다. 탈무드에 "왕으로 대접하라 그러면 왕후의
대접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이 아내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복종입니다. 순종에는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으나 복종에는 전혀 개입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아내
여러분, 불의한 일이 아니거든 남편에게 지혜를 나누어준 후 남편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복종하십시오. 남편의 과오나 단점을 들추어 내
어 심판하는 아내는 그 당시에는 우위에 처할 지 모르나 남편의 사랑
을 잃는 불행을 당하고 맙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이해하고 감싸주었는데, 나는 사랑받으며 커왔
는데 무엇때문에 시집와서 종살이를 한단 말인가' 아내 여러분들이 이
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큰 잘못이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면 하나님의 성령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십시오. 신앙을 통해 자아가 깨
어진 여러분의 복종은 마치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되듯 무미건조한 가
정생활을 행복과 기븜이 충만한 가정생활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3. 가정과 부부의 관계 - 남편
성경은 아내의 역할 강조와 함께 남편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
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
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머리가 몸을
책임지듯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고 안식을 제공해야 하는것입
니다. 성경은 이런 역할을 비유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
를 사랑하시듯'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셨습니까? 그리스
도께서는 먼저 교회를 위해 죄사함의 은총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러므
로 남편은 먼저 아내의 허물을 덮어주고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남
편 하나 믿고 자기 집을 떠나 시집온 아내는 여러가지 점에서 잘못을
범할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정죄하고 심판하는
남편은 머리의 자격이 없는 '인격의 미숙아' 입니다.
가령 몸 어딘가가 다치면 머리는 급히 손에게 상처를 싸매라고 전합
니다. 몸이 당장 상처를 입었는데 '왜 다쳤나? 왜 미리 예방조치를 못
했나?몇시에 다쳤나? 하는 것을 먼저 따지는 머리는 없을 것입니다.
머리인 남편은 몸인 아내가 좀 잘못했다고 해서 정죄와 심판의 칼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우선 허물을 덮어주고 용납해 주고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화해의 은총을 마련하셨스빈다. 크리
스천 남편은 언제나 화해의 선봉에서야 합니다. 한국 국민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뿐만 아니라 집안 간의 결합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남편은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화해자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화해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런 역할
을 소홀히 함으로 가정과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남편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크리스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화해자의 역
할을 다 하셨듯이 가정의 평화와 아내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먼저 화
해자의 역할을 충싫하게 감당해야 하는것입니다. 이런 노력없이 한 가
정의 평화와 행복을 유지도리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남편 여러분, 어떤 일로 아내와 갈등이 생겼다면 먼저 화해
의 손을 건네고 화해의 말을 하십시오. 화해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여
러분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가정엔 기쁨과 행복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
릴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치료의 은총을 마련하셨습니
다. 여자는 남자보다 심성이 섬세하고 유연하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아내가 상처를 입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남편은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상처를 돌보지 않고
오히려 자존심을 짓밟고 심판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통해 상처를 치료받고 용기를 얻은 아내는 큰 감격을
느끼고 남편을 위해 전폭적으로 헌신하며 어떠한 환경도 극복하게 되
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재산이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축복의 은총을 마련하셨습
니다. 남편은 전력을 기울여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 아내를 복되게
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물질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 흥청
망청 물질을 허비하는 남편은 스스로 불행한 인생일 뿐만 아니라 가정
도 황폐케 하는 가족의 '원수'가 됩니다. 이런 가장이 있는 가정이 행
복과 기쁨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건강과 생활을 돌봐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여러분은 크리스천 남편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
내를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삼고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
내의 범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남편이
해야 할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탐욕이 아닌 아
내의 소원을 얼마나 들어주었습니까?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내의 소원,
자신의 일생을 가꾸고 싶어하는 아내의 소원을 묵살하지는 않았습니
까?
크리스천인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복된 몸'으로 가꾸듯 최
선을 다해 아내를 복된 존재로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천국의 은총을 마련하셨습니다. 남
편은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 저는 정말 이 가정에서 천국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이
런 고백을 들을만큼 최선을 다해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정을 천국으로 느끼느냐 그렇지 않
느냐는 우선 남편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을
초월합니다. 생명의 근원, 천국의 근원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기 때문
입니다.
이처럼 남편은 아내를 용서해주고 평안한 가운데 지켜주고 치료해 주
고 복된 존재로 가꾸어주고 아내가 가정을 천국으로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무조건 복종하기를 강요하거나
아내에게 일방적인 요구만 하고 남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남편은
비정상적인 남편이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축복을 받을 수 없는
불행한 남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라고
남편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의 이 가
르침을 가정에서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고 이웃에
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반려자가 되기를 주님으로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부부가 서로 수용과 조화를 등한
히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령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절실하게 만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아를 깨어뜨
린 사람이 인격의 변화를 받아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무미건조한 가정이라도 행복
과 기쁨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있었던 기적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
분은 지금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합니
까? 혹시 기쁨과 사랑에 메말라 버린 황폐한 가정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변화를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
우십시오.
아내 여러분은 교회가 주님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섬기십시오. 남편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헌
신적으로 사랑하십시오. 이런 변화가 있어야 여러분의 가정은 복된 가
정, 건강한 가정,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발행일 : 930516
분 류 : 설교
92
제 목 :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삶
자료원 : 기독교선교신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마7:12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
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으
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질문하신즉 그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
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고 했습
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므로 우리의모든 일이 다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웃도 섬겨야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섬길 수 있
을까요?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는 죄
를 용서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 찢고 피흘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십자가로 인해 값없이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았
으니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줘야 할 것은 마땅한 것입
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늘 죄를 짓고 살기 때문에 매일같이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도 늘 이웃을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리고 이 용서의 바탕 위에서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
을 해야 합니다. 온유란 하나님 말씀으로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길
들여 대인관계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갖고 옳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웃을 섬기려고 하면 마음에 이와같은 온유함을 가져야 합
니다. 누구에게 가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겸손하게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
기를 낮추고 남을 나보 낫게 여기는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둘째로 이웃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생각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모토는 하나님을 섬깁시다. 이웃을 섬깁시다 가 되어야
하겠스니다.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항상 감사하는 자세로 살 때 여러분의 생애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어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이 임하게 되며 우리의
신한국은 창조될 것입니다.
발행일 : 930519
분 류 : 설교
93
제 목 :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고전 13:1-8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항상 두 사람 이상 집단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인
간관계는 대개 의무적인 관계와 이해관계로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계에 사랑으로 기름을 치지 않으면 인간대 인간의 관계는 너무
나 냉정하고 살벌한 관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과 인간사이의 관계가 의무관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의무를 어
길 때면 언제나 형벌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사랑의 관계입
니다. 사랑의 관계는 용서와 긍휼이 따릅니다.
사랑이란 항상 이웃을 생각하고 섬기기를 원하고 이웃과 성공과 행복
을 기뻐하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방언과 천사의 말은 공허
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웃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
는 예언이나 지식,믿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스빈다. 혼자 잘난체하는
데서 무엇이 산출되겠습니까! 또한 사랑이 없는 의무적인 구제나희생
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만이 딱딱하고 냉정한 의무와 이해관계의 살벌한 생존경쟁터에서
사람들을 훈훈하고 인정이 넘치는 띠로 묶어주고, 이 가혹한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랑을 성령
의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름답게 분석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
금 우리는 성령을 통해 분류된 사랑을 살펴보고 우리 자신이 이 사랑
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분별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사랑의 프리즘
햇빛을 프리즘이란 유리를 통하게 하면 일곱가지 색깔로 분해되어 나
옵니다. 비가 온 후 공중의 물방울이 프리즘 역할을 하여 하늘을 가로
질러 햇빛이 분해되어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색의 아름
다운 일곱빛깔 무지개가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의 프리즘을 통해 사랑을 15가지의 아름다운 색깔
로 분해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
습니다. 내가 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과연 내속에는
어느 정도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사랑의 요소
성령의 프리즘을 통해 분류된 15가지의 사랑의 요소는 어떠한 것들일
까요?
(1) 사랑은 오래참습니다.
사랑은 황홀한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오랜 인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서는 똥,오
줌을 가려내주고 자라면서 온갖 말썽을 피워도 참고 돌봐주며 훌륭한
성인이 될때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며 참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러
한 사랑과 인내가 없이 생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가 스승이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배우지 못하고 잘 따라오지 못해도 선생은 제자를 사랑하기 때
문에 오래 참으며 다시 가르치고 훈련시키며 깨우쳐 주려고 애를 씁니
다. 이는 스승과 제자 간에 사랑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스승은 끊임없
이 참게되는 것이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참지 않습니다.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오래 참으면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부모자식관계,형제관계,이웃관계
에서 쉽게 판단하고 언어나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사랑
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여러가지 허물을 덮고 오래오래 참으며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을 기대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2) 사랑은 온유합니다.
율법과 의무의 관계를 냉정한 관계입니다. 율법과 의무를 다할 때는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율법과 의무의 관계가 깨어지면 냉혹한 심
판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계약인 십
계명을 어겼을 때는 그들이 비록 선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냉혹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앗수르와 바벧론의 포로로 잡히게 하시고 땅은 황무
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과 의무의 관
계로만 맺어져서 산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따뜻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과 의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겼을 때에는 형벌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용서와 긍휼의 관계이므로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용서를 합니다. 용서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용서와 긍휼
이 있는 곳에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유한 마음으
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부부관계에서, 부모자식관게에서 남편이 아내와 자녀들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 아내가 남편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남편은 집에 빨리 들어오고 싶어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인 가정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가 상호간 율법과 의무의 관계가 되어서 서로
판단하고 심판하면 둘 사이는 살벌하고 냉정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서로 용서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
지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하면 잘못을 회개하고 사랑을 느껴 변화받
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빈다.
이렇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냉정하고 딱딱합니까? 아니면 부드럽고 따뜻합니
까? 오늘날 사람들은 이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 하며 찾아 방
황하지만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대해 줍니까?
오직 의무와 경쟁의 관계만 있고 용서와 긍휼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세상 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온유하고 우리를 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서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고 또 계
속 용서해 주시면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
다.
우리가 회개하고 깨어져서 돌아오면 주님은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
하고 아버지 품에 품으사 죄악을 사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은혜로써
구원해 주시며 성령으로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셔서 하나님 푼
안에서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보리의 계약인 것입니다. 용서와 긍휼과 사랑의 이 계
약이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새 언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이 많은지 형언할 수 없습
니다.
(3)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관계에서는 이웃이 잘되면 투기하게
됩니다. 서로 이해관계에 있기 때문에 남이 잘 되면 내가 손해난다고
생각하고, 또 열등감을 느끼기때문에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투기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이해
관계 속에서 생존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사랑하는 상대가 잘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며
잘되는 것을 투기하지 않습니다. 또 참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해 주며, 잘되면 함께 기뻐해줍니다. 이러한 아
량이 있을 때 이사람은 사랑의 사람인 것입니다.
(4)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서로 경쟁적인 관계 있을 때는 서로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상대를 칭찬해 주되 자기를 자
랑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어찌하든지 상대를 돋보이게 하고 자랑해
주는 것이지 상대에게 열등감,좌절감을 갖도록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으시대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높여주고 사람
앞에 돋보이게 하셨고,예수님은 자신을 감추고 아버지만 높이신,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라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5)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경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교만하고 오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속에서는 겸비하여 자기를 낮추고 나
타내지 않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사랑은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언제
나 자기를 낮춥니다. 자기를 겸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인
것입니다.
(6)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때는 무례한 언
어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불
쾌감을 주는 행동을 삼가하고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기쁨을 갖게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항상 예의를 지켜야 하며, 무례히 하면 사이
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부간,부모자식간,형제 간에도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참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7)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합니다. 자기 유익보다는 상대의 유익을 추구해서 자기의
먹을 것, 입을 것을 먼저 취하지 않고 상대를 도와줍니다.
(8) 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율법적인 인간관계 속에서는 의무관계가 손상되면 견제하고 까다롭게
따지면 성을 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에서는 항상 용서와 불쌍히
여김이 따르기 때문에 잘못을 안타까와 하지 견제하거나 성내지는 않
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돌로 맞아 죽게 된 여
인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수가성 우물
가에서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고 여섯번째 남자와 사는 여자를 만나셨
으 마때도 그를 정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
에 어찌하든지 사람들이 잘못을 깨닫고 변화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
다.
(9)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의 삶에서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본위로만 생각하기 때
문에 악한 생각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방의 선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악한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자식이나, 애인에 대해 악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사랑
은 악한 것을 마음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10)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탐욕은 인간을 불의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탐욕이 마음에 들어오면
어떠한 불의와 부정도 다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므로 상대에게 손해가 가는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11)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임으로 마귀의 지배하에 있으면 항상 거짓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가운데 사는 사람
은 하나님의 성품을 갖고 살므로 당연히 진리를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이 아니고 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
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12)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독일인
들에 의해 강제 감금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비록 구름이 끼어 태양이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그 구름뒤에는 찬란
한 햇빛이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암당하지만 이 현실 위에
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노
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신 것을 아는 이상 우리는 모든 것
을 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그들이 선하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마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건강
도,질병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합력하여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고 이와 같은 믿음을 내 이웃에게고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합력하여 유익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14)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고통만,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
므로 결과는 좋아진다는 것을 믿고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을 저
버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15)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고난중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또 고난에는 의미가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내가 헐벗고 굶주리며 당하는
고통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합
니다. 생을 포기하고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무서운 고통을 당한 유대인 철학자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한 사람은
쉽게 죽어갔다. 그러나 나는 신혼 초에 신부를 두고 끌려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 나가서 아내를 만나야 한다는 삶의 의미가 뚜렷했기에
온갖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삶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미만 있으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미를 잃어버리면 삶은 포기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
랑하시고 함께 계신 것을 알게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
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 하지 않
는다'그리고 '하나님게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는데 이것은 다윗에게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
에 나는 어떠한 고난도 견딜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
이 있으면 우리는 흑암에서 빛을 발할 수 있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가
져올 수 있으며 죽음에서 삶을, 추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낼 수가 있
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무소부
재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
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게까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던 것은 바로 우리를 자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만이 인간 삶의
바퀴를 잘 굴러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부귀,영화,공명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할 뿐인 것입니다. 사랑이 첨가되어야 비로소 빛을 내고
아름다와지며 의미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섬기고 사는 것만이 영원하고도 유
일한 가치요, 기쁨이요,소망이요 또한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원동
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발행일 : 940612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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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선교사역의 내용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눅 4:16-21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그 자
라나신 고향 땅 나사렛에 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선교의 내
용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은 3년 여의 공생애 동안 이 선교
선언의 내용 그대로 실행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선교 선언의 내용을 만민
이 다같이 누리도록 그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교선언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우리가 잘 알아보고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서도 그 선언이 실천되도록 해야만 될 것입니다. 오
늘 본문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선교의 내용이고 그것은 곧 복음입
니다. '복음'이란 헬라원어로 '유앙겔리온'인데 이는 복된 소식, 좋은 소식
이라는 뜻이빈다. 이제 이 복음 선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선교사역은 가난 퇴치운동이다.
본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려
오셨습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심령이 한없이 가난해지
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풍부하고 부요한 것
인데, 하나님께 범죄하고 쫓겨나서 사망이 그 심령을 점령했으니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이유도 방향도 목적
도 없이 살아가니 그 마음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도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도 없습니다. 사람
들의 질투같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들만 차있습니다. 있어야 할 부요는 없어
텅 비었고 없어야 할 쓰레기만 꽉 들어찬 것입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가난한 심령에 주님께서 부요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
다. 어떻게 가져오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심으로
인류의 죄악을 청산하여 정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 아버지
와 교통케 하시고 주의 성령이 임하게 하셔서 이 세상에서의 삶의 이유와
목적, 가치를 깨달아 부요한 심령을 갖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심령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채워주시며 믿음, 소망 사랑이 강물처럼
넘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 품에 안길 때 심령의 가난은 사라
지고 하나님의 축복과 부요가 가득차게 되며 천국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심령만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가
시와 엉컹퀴가 나는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삶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인류 역
사 이래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들의 큰 숙제가 되었고 이때문에 인간은 몸부
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가난을 주신 적도 없고 하나님 스스로가 가
난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 동산은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가 풍성한 낙원이었고 장차 하나님이 주실 새 하늘과 새땅, 새 예
루살렘도 눈물이나 근심, 탄식,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
죽는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곳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을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비난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
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이 가난과 저주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에게 저주에서 해방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선언이 갈라디아서 3장 13-14
절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
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의 말씀 아닙니까!
또한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
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
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우리 주예 예수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환경적인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도록 하기 위해 오신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선언은 바로 가난 퇴
치운동이요, 성령운동 역시 가난 퇴치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적인 가난에서의 해방뿐 아니라 물질적인, 환경적
인 생활의 가난과 저주에서도동시에 해방되는 해방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선교사역은 포로된 삶에서 해방되는 운동이다.
주님은 마귀와 죄의 종이 되고 불신앙과 불의의 종으로 포로되어 있는 인
류를 해방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렇기 때문
에 선교운동은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주는 해방운동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6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더니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
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
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
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바로 이 말씀은 우리를 마귀와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 주는 해방선언인 것
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종교 의식이나 철학적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해방을 주는 것이다. 죄와 불의, 마귀의 묶임에서 해방을 주고 자
유를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습관과 담배,술,마약, 세속 등의 중
독에서 실제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복음선교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에 관해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이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그리스도으 은혜를 체험하면 은혜속
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고 참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어 자유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러한 운동이 진실한
선교운동인 것입니다.
3. 선교사역은 천국문맹 퇴치운동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한다고 하셨는데 큰 슬
픔 중의 슬픔이 보지 못하는 슬픔 아니겠습니까?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지으신 산천초목, 아름다운 꽃을 보는 즐거움은 매우 큽니다. 또 우리의 사
랑하는 부모형제와 애인, 자녀들을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이 보는 즐거움을 빼앗긴다면 우리 행복의 많은 부분들을 상실하
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육신의 눈이 어두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큰 불행인데 영적인 문맹이 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슬픔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의 천국문맹 퇴치운동을 전개하러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영이 죽어서 영안이 닫힌 우리에게 천국복
음을 통하여 영안을 뜨게 하십니다. 영적인 문맹을 퇴치해 주시는 것입니
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심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와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하심과
사랑, 하늘나라의 역사를 깨달아 알아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 사망의 세력에
서 벗어나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
다.
지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 잡혀서 육신의 일밖에 돌
보지 않는 사람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을 빼앗겨 버리고 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혈의
능력을 통해 영안이 살아나 신령한 세례를 바라볼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
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놀라운 은혜 속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고 그리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의 모든 삶은 꿈꾸
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인생은 불과 100년
이 지나기전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모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냐"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안이 열려서 영생
천국을 바라보고 우리 생명을 이 천국으로 연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의 종착점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날개를 타고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선교사역은 질병 퇴치운동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병 고치는 일에 무섭게 열심을 다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증거하신 후에는 곧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동안의 3분의 2는 병고치는 일에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계신 곳에서는 병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병자가 오면 오는대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주위에 병이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의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
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는 말씀을 통해 질병에 대
한 예수님의 태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에게도 질병 치료에 대한 특별 명령을 거듭
거듭 내리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전한 뒤에는 꼭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말씀했습니다. 70명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
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자에게 손
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침에 관해 뜨거
운 정성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운동,선교운동은 병 퇴치운동입니다. 모든 교히는 예수님 이
름으로 직접 병을 고쳐주어야 하며 직접 못고치면 병원이라도 세워 고쳐주
여야 하며 직접 못고치면 병원이라도 세워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교회는 이 치료의 운동을 전개하는 곳이어야 되는 것입니
다.
이렇기 때문에 야고보서 56장 13절로 16절에 주님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
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
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
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조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
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신 것입
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주님께서 병을 고난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생
활 속에서 여러 환란과 고난을 당하면 회개하고 변화받아 순종하는 사람으
로 훈련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병은 당장 퇴치하라고 하셨습
니다 질병에 대한 주님의 태도는 단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병에 대해 우유부단합니다. 교회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도 하지 않고, 기도하면 오히려 이단사실이라고 고함을 칩니다. 그러나
진실한 성령의 사역은 질병 퇴치운동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그
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야 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건강한 데 있지 병든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담대한 믿음으로 마귀와 병을 대적
하여 물리치고 해방얻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선교사역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운동이다.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옛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
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시내산 계
약을 맺을 때 천둥벽력이 나고 온 산에는 화염이 충천했습니다. 사람들은
벌벌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주시면서 이것을 잘 지키면 구원과 복을 받을
것이고, 지키지 아니하면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리고 율법을 어길 때마다 짐승을 잡아 속함을 얻을 제사 의식을 주신 것입
니다. 이것이 구약이요,시내산 계약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계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
판을 받아 앗수르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 갔고 땅은 황무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율법을 지킨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이 갈보리산 계약을 우
리와 맺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약 하에 지은 인
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영원히 청산해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인류의 과거, 현재.미래의 죄를 다 청산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갈보리산 계약은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인 것입니다. 이 신
약의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도 형벌도, 제사의식도 구원의 조
건이 됴 아니하고 대신 그 위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셨습니다.
이 언약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3:16)고 하신 말씀대로 남녀노유, 빈부귀천 ,동서양 차별없이 예수를 믿
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위대한 은혜의 계약인 것입니다. 이를 전
하는 것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운동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
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
씀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워을 주신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자고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선교운동의 내용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비와 같이 쏟아집니다. 그 십자가에서 흐르는 보배피가 우리 일
생의 죄악을 다 청산해 하나님과 화해케 하고 의를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이 은혜를 해를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야 됩니
다.
우리의 복음선교는 가난 퇴치운동이요,장케 하는 운동, 천국문맹 퇴치운
동, 질병 퇴치운동이요 은혜의 해 전파운동입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끊임
없이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이요,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발행일 : 940605
분 류 : 설교
95
제 목 : 성령강림의 의의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행 2:1-4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 40일만에 승
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
습니다. 그러는 중 열흘 후 오순절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
람 머리위에 임하였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
게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날로부터 온 천하 만국으로
전파되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지 아
니하셨더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의 순교적인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순교적인 사명을 가
지고 왔다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었다'라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날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 사건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일어난 하나의 서간이 아니라 전 우주
적인 구속의 사건으로 비약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강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1.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세계적인 구원으로
변화시킨 기적적 사건이다.
성령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온 세계적인 구원으로 변
화시킨 위대한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땅끝까지 전
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성령이 임하지 아니하셨으면 예수 그리
스도의 죽으심은 2천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에 불
과하고 지금쯤 세상사람들은 그 사건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온
우주적, 전 세계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이 전 역사를 통해 우주적인 구속
의 사건으로 변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여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2천년 전
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입니다. 성령이 없는 복음 성령 없는 교회는 십자가 사건을 하나의 골
동품적인,역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뿐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모셔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날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일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온
천하 만국에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전 인류의 구주로서 흠모되고
찬양을 받으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2. 성령의 임재는 십자가 구원을 항상 현재적으로 체험케 한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항상 현재적
인 체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은 2천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 아득한 옛날의 사건이 우리에게 현재
적 사건으로 부딪혀 오며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은 성령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2천년전 사건을 현재 내가 체험
하는 사건으로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설 때 성령은 내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갈보리에서 못박혀 피흘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현재 내 앞에 서 계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현재 나는 그 앞에서 그 흘리신 보배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습니
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영적인 담이 너
지고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이
내 마음속에 임하시어 마음속 마귀의 세력을 무너지게 하심으로 해방
되어 거룩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서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현재적
사건으로 나의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엄아다"는 말씀이 현재적 사건으로 내게 체험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모든 저주와 가난과 낭패, 실망을 다 짊어지시고 대신 아브라함
의 복을 내게 부어주셨다는 사실을 마음소기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몸찢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
스도의 죽음이 현재 나의 죽음과 음부와 사망을 멸하고 현재 내게 천
국과 영생과 영광의 문을 열어놓은 사건으로 체험될 수가 있는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지금 내가 체험할 수
있는 위대한 현재적 사건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
년전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이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
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
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와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
다."(사53:5-6).
이 예언된 사건이 현재 우리가 체험하는 사건으로 변화되는 것은 성
령의 임재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나 크리스
천들이 현실적인 그리스도의 구원의 체험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성
령이 같이 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여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십자가 사건을 현재적인 것
으로 체험하도록 우리 앞에 놓아 주십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현재적인 큰 은총을 얻게 되는 것이빈
다.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체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성령은 환상과 꿈을 주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가슴 속에 강력한 환상과 꿈
을 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는 꿈을
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꿈이 없는 백성
은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꿈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슴에 품은 꿈은 내일을 생산하는 모체가 됩니다. 현재
잉태하지 않은 사람이 내일 아기를 해산할 수 없는 것처럼 오늘 가슴
속에 꿈을 잉태하지 않는 사람은 찬란한 내일을 산출할 수가 없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내일 창조하게 하
기 위해서 언제나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꿈을 잉태하게 만들
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나이 75세 때 팔레스타인에
가서 위대한 유대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는 이
꿈을 받고 담대히 팔레스타인에 나가 오늘 이스라엘을 세운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늙어 80세가 되어서 호렙산 가시덤불에서 하나님께로부
터 꿈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출하려는 위대한 꿈을 받자 그는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노구를 이꿀고 애굽 동족에게로 내려간 것입니
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을 구출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낼 때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위대한
가나안 땅으로 가자'이 꿈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광야의 시련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1958년에 불광동에서 천막교회를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
에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교회가 한국 최대의 교회가 된다
는 꿈이었습니다. 현실은 천막에서 비가 새고 가마니는 썩어가는, 좌
절할 수 박에 없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꿈을 심어 주셨습니
다. 저는 그 꿈을 안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서대문교회로, 여의도교회로,세계를 향한 성장
과 발전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에 나간
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는 제 마
음속에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꿈을 심어 주셨습
니다.
저는 기도드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활짝 펴고, 마치 비행기가
공중을 나는 것처럼 천막 안을 돌며 '너는 장차 은빛 날개를 타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할 것이다'하고 외쳤습니다. 하나
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받아들이자 그 꿈
은 저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고 오늘날의 현실을 낳게 했습니다. 그
때 그 꿈을 마음속에 잉태한 것이 오늘날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빈
다.
그러므로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께서 입을 넓게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
령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 꿈과
환상을 마음속에 받아들인 후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나가면 그 꿨은
여러분을 내일이 위대한 성취자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택한 열두제자들은 대개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교육도 못받
았고 사회적인 지위나 부도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을 보
내사 충만케 하시고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
시에는 비행기나 기차도 없고 전화, 전신 등 교통 통신시설이 아무것
도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
로,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실현 불가능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꿈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300년 이내에 전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들도 강하고
담대하게 꿈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삶
을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의 입
을 넓게 여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소망
으로 넘치는 꿈을 주시도록 하십시오. 성령은 지금 여러분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4.성령은 권능을 주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권능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또
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진리를 깨달을 수는 없습
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해력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에 대한 진리, 말씀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실로 회개하게 만
들어 주십니다.회개가 자기 마음대로 되나요? 마음대로 안됩니다. 그
러나 하나님의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우리를 깨뜨려서 통회 자복하
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여러분의 인생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러분을 갈보리
십자가 밑으로 인도하고 예수께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에 있
어서도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인도하여 승리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우리 마음에 깊은 위로를 갖다 주십니다. 우리가 낙심했을
때, 상처 입었을때, 슬프고 외로울 때 하나님의 성령은 오셔서 우리를
따뜻하게 품고 우리와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담대함을 주십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있고 초조와
절망이 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시
는 것입니다. "너희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산을 얻는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영분별의 은사,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믿음의 은사, 기적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들을 주셔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신앙생
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오셔서 봉사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
에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주시어서 남여선교회
에서 일하게 하시며 어떤 이들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주시어서 교회
학교에서 봉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권유하는 은사를 주셔서 심방하면서 낙심한 사람들
을 권면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구제하는
은사를 주시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구제하게 하십니다. 은사받
지 않고는 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다스리는 은사를 주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행정적인 일을 하고 다스리게 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주셔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
게 하시는 것이빈다. 이렇듯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서
주의 몸된 교회를 받들고 성장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5. 성령을 인격적인 성장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보혈 공로로 죄씻음 받고 구
원을 받았지만 곧 성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우리를
성자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아무리 몽둥이로
나무를 두들겨도 몇개 밖에 떨어지지 않지만 가을비가 내리면 깨끗이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거룩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령의 단비가 임하셔야 죄악의 누더기가 다 벗겨지고 새롭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 권세에서 해
방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것
이 아니라, 그의 삶과 그의 행위가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5만 교회가 있고 1천3백만 성도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
광이 한국 사회에 꽉 들어차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
람들의 생활 속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
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식적, 의식적 신앙은 가지고 있으되
그리스도의 형상이 살아 있는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는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이끌어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습을 닮도록 만
드십니다. 죄와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오순절날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은총이 온 우주와 역사에 춰
만하게 되는 것이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상관없이 항상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화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면 오순절 날은 교회의 탄생일입니
다. 성령이 강림하셔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성장,발전하고 온 천하에 전파되며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
암아 변화받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되는것
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령시대입니다. 구약 4천년은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
요, 신약초기는 아들 예수님의 시대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
활, 승천하신 다음 오순절날 이후 그리스도 재림시까지 성령의 시대인
것입니다.
성령없는 개인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성령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
니다. 교회도 성도 개개인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심으로 성령으
로 충만하십니다.
발행일 : 940522
분 류 : 기타
96
제 목 : 제26회 연례국가조찬기도회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절 기 : 국가조찬기도회
존경하옵는 대통령각하,3부 요인, 국회의원,여야 정치지도자 및 사회
지도자 외국귀빈 그리고 성직자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존경하옵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한구교회에 주신 빛난 과
거 역사와 그 업적을 잠시동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1885년 4월 5일 미국선교사 아펜셀러와 언더우드의 인천
상륙을 기점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한반
도는 세계 열강의 세력확장과 침략 위협 속에서 역사적 변화의 거센
풍랑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처럼 우리 민족에게 개화와 개혁이 절실
히 필요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이때 기독교회는 복음전도와 함께 신교
육을 통한 새 사회건설,여성해방과 교육,선신제도의 도입 및 과학문명
의 전달이라는 거대한 개화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에 의해 한일합방이 맺어지고 불행해도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고,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그때 교
회는 바로 조국광복의 기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애국자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기미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의 최선두에 서서 자주 민족
독립의 기수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의 불법 남침으로 빚어진 민족적 수난
의 때, 한국교회는 격려하고, 조국의 생존을 위해 맹렬히 기도드렸습
니다. 그 당시 대통령이셨던 이승만 박사께서 부산 피난지 지사 공관
에서 피난온 목사님들과 현지 목회자들을 초청해 조국의 운명이 풍전
등화와 같으니 결사적으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여, 목사님들이 함께
모여 한 열흘동안 금식하며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사실은
애국 기독신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0년대 불어닥친 산업화와 공업화는 한국사회의 크나큰 변화를 가
져왔습니다. 도시는 거대화되고 슬럼화했으며,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모여든 소위 실향민들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방
황하게 됐습니다. 이때 교회는 이들을 따뜻하게 영접했고, 마음의 쉼
터를 제공하여 저들의 불안과 공포와 불안정한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 것은 한국교회가 이룩한 산업화 과정의 기여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
다.
만일 교회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온 이들에게 마음에 의지할 처
소를 제공하지 못했더라면,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가난하
고 소외된 군중은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입니
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한국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빛난 과거의 성취와 발자취만 바
라보고 만족하기에는 너무나 허역하고 병든 체질을 갖게 되고 말았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일어나, 이 시대적 사명을 다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언제고 다가올 남북통일의 날에 김일성을 하나님
으로 섬기고 믿던 북한동포들의 가슴속에 순식간에 불어닥칠 공허를
메꾸어 주어 구원의 따뜻한 손길을 펴 주는 일은 우리 교회 밖에 할
수 없는 역할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중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이제 한국교회는 변화되고 거듭나야만 합니다. 이제 1994년이 시점에
서 우리는 우리 교회의 현주소를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보아야만 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교회는 5만에 가까운 교회당과 약1천3백만의 수를 헤아리는 성도
를 포용한 세계선교 역사상 초유의 기적을 산출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부의 실상은 그렇게 자랑할 수 없는 처지임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교파분열로 지리멸렬 상태에 있고, 또 교파
이기주의의 오염 때문에 통일된 힘도, 목소리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독버섯처
럼 일어난 각종 이단 사교들은 교회와 사회에 큰 충격과 상처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대결의 진통 속에 잃어버린 지도력과
영향력은 이제 우리 사회의 지탄과 조롱을 받을 정도까지 되어지고 말
았습니다.이제 말로 한국교회는 살을 베고 뼈를 깎는 회개와 자체 개
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슬프게도 한국교회는 하
나님과 민중에게 매를 맞는 아픈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첫째로, 정의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아우성만 있고 생활에 정의를 실
천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무속신앙으로 전락하고 맞니다. 저는 얼마전
남미 복음성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남미에서 만난 현지인 및
정부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한국은 크게 경제적으로 발전
하고 세계적인 교회와 수많은 크리스천이 있는 나라인데 왜 이민온 사
람들이 일본이나 독일 이민과 달리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어기고 탈
세, 밀수, 범법행위를 이처럼 저지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민간 동포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바로 한국 성도들의 현주
소가 아닌지요,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신앙에 열심이 있고, 모이기를
힘쓰며,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로 세계적인 명성이 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체인구의 25%에 가까운 크리스천 인구는 한국사회 각 분야에
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복음의 영향력은
교회 밖에서는 느끼기가 힘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밝혀 보여주
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요.부패를 방지하
는 소금으로써, 정의의 실천을 포기하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는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집단이기주의,
기복주의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사회정의실천의 선봉이 되어야
만 합니다.
둘째로 한국교회는 진리의 등불을 밝혀야만 합니다.
진리의 빛이 어두워질 때 온갖 거짓이 난무합니다. 사회에 물의를 일
으킨 이단이란 병리현상도 진리와 사랑이 결핍된 곳에 돋아난 독버섯
에 불과합니다. 한국교히가 대개 진리보다는 현실 안이를 택하고 과고
진리보다 정치사회의 관행을 눈감아 주고 혹은 타협하고, 무저항주의
로 살아온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가 고난 받는 대중을 위하여 십자가를 걸머지고 탐욕과 거짓
으로 어두워진 세상에서 밝은 진리의 빛을 비추지 아니하면 세상이 지
탄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선을 선이라고 하고 악을 악이라고 하며,
불의에 담대히 저항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적
위치로 다시 복구해야만 합니다.
셋째로, 한국교회는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교세확장에만 애를 쓰고, 경건함과 거룩함의 삶에 무관심할
때 교회는 세속화되고 맙니다. 신앙은 있고 계명은 없는 삶에서 신앙
이 계명을 실천함으로 온전케 되는 경건운동을 새롭게 전개해야 합니
다.
오늘날 교회는 가장 큰 병폐는 윤리와 도덕이 상실화되어 가고 있다
는 것입니다. 국가든 사회든 도덕성을 상실하면 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하여는 엄한 도덕재무장
을 해야 하며, 그 길은 하나님의 십계명을 확실히 지키며 사는데 있습
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구원 얻은 백성들이 그들의 일상 생활
중에 하나님의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넷째, 한국교회는 섬기는 종의 자세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교회가 하나의 기업화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
는 생각을 버려야만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이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내 몸같
이 섬기는 종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중세 구라파 교회가 정치와
손을 잡고 민중 위에 군림하여 섬김을 받는 자리에 앉게 되자 타락하
고 부패하고 결국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대속제물로 내어주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마당히 힘없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봐 주고 용
기를 주고, 섬기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다섯째, 이제 한국교회는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한마당을 열어야만
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교파 간서로 반목질시하고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왔
습니다. 교회와 교파간에 화합과 연합은 가져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
북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민족통일과 화합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겠
습니까?우리는 이제 더 늦기 전에 용서와 사랑과 대 화합의 장을 열어
야만 합니다. 이제 개교파가 이기주의를 무너뜨리고, 눈을 높이 들어
조국의 복음화와 민족통일을 그리고 세계선교라는 명제를 갖고 대동단
결해야만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빛난 전통을 따
라 계속 이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 민족에게 버림받고 세계 교회의 기대에
어긋난 물거품처럼 팽창했다 가라앉는 존재가 될 것이냐는것입니다.
독일 부흥의 정신적 초석을 놓은 경제 윤리학자 A.List는 말하기를
정신적인 자원없이 경제적인 부흥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선진조국의 건설과 남북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
습니다. 이 일을 위해 능히 성취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다시 한번 일어
나 빛을 발하고 개혁의 소금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교회가 영적, 정신
적 자원의 보고가 될 때 민족중흥과 조국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
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자체의 성찰과 회개와 함께 조국과 민족의 현재와
장래를 위하여 뜨겁게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 역사의 흐
름은 신속히 아시아 태평양시대로 옮겨 오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
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사령탑적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위로 손을 뻗으면 광할한 중국대륙과 러시아가 있고 옆으로 손을 뻗치
면 일본과 북남미와 동남아와 유럽, 밑으로 발을 뻗으면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이 모든 나라들의 관심이 아시아로 쏠리고 한국은 그 사령탑적 위치
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에는 기필코 우리 민족의 도약의
때가 다가 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민족적 거대한 꿈이 있어
야만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젊은이들에게는 환상을 늙
은이들에게는 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개인과 민족은 멸망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민족이 이 위대한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
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의 번영과 평화와 구원에 절대적
기여를 하는 한국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조국은 깊은 시련의 골짜기를 통하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집단은 원자탄을 만들고 있고 명년을 통일원년으로 선포한
후 군인들의 제대를 중지시키고 삭발하며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습
니다. 그리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UR 협정 이후 우리의 농촌이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의 국제 경쟁력
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터전인 우리의 강산이 오염으로 뒤덮여가고 있
습니다. 강물도 썩고 하천도 썩고 도덕적인 양심도 썩어가고 있습니
다.
지금 우리 문민정부는 국가사회의 개혁과 부정부패척결의 기치를 높
이 들고 새 국가건설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무리 정부가 이 일을
할려고 해도 국민적 합의와 협력이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러
한 때에 우리 대통령과 우리 교회는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 역대하 7장 14절에서 1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이
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
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우리는 참으로 오랫만에 문민정부의 대통령으로 교회장로님을 선출했
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그 얼마나 기도드리고 노력을 했는
가를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되신 대통령을 위하여 더
욱 힘써 기도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국가와 민족이 도약하느냐 주
자 앉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이때에 우리 대통령께서는 하나님
의 지혜와 총명과 인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제 바라옵기는 한국교회의 자랑이요 사랑의 대상이신 대통령께서
진실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
시고 하나님을 찾고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예수님의 향기를 만천하에
나타내시도록 우리 교회는 더욱 힘을 합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를
드리십시다.
이제 3.1운동 당시 암울했던 한국을 향해 던져주신 인도의 시성 타골
의 시를 음미해 부고 말씀을 끝내고자 합니다.
"너 옛날 동방의 황금시절에 등불이었던 코리아 다시 일어나 그 등불
밝혀라 그 때는 온 세상을 비추는 밝은 빛이 되리라."
발행일 : 940503
분 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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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이 만드시는 가정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절 기 : 가정의 달
구 절 : 창 2:18-25
가정의 달 이 5월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시는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정은 사람의 생각이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그
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
을 내조해 가정을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지혜와 가르침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하
신 가정이나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돌봐 주실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상처를 입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본주의적으로 기적을 이루기 때문입니
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가득해서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상처를 입
고 입히는 삶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속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가정과 가족관계 전
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가정과 부부관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동물적인 요망 달성을 위한 관계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
하면 곧장 헤어져 버리고 맙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전혀 가정을 신
성시 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라파에 선교여행을 가서 타고 가던 택시의 젊은 기사에게 나
이와 결혼의 여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난 "나이는 서른 다섯이구
요, 결혼은 했기도 하고 안했기도 합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래서 제가 "그게 무슨 말이요?" 하고 물었떠니 한 여인과 5년 동거하
다가 헤어지고 지금 또 새 여자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질문하니 그는 가정이나 결혼이 무슨 소용
이 있느냐고 하면서 좋으면 함께 살고 싫으면 헤어지면 그뿐이지 법적
으로 얽혀 매어 살 필요가 무엇이냐고 오히려 제게 물었습니다. 요즈
음 유럽 젊은이들 중 결혼해서 얽매어 살려고하는 이는 없다고 덧붙였
습니다.
여러분 가정이란 생물학적인 필요 이상의 신성하고 순결한 사랑과 관
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었다
는 것은 그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서 가장 친밀한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으니 하와도 흙으로 만드셨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아담의 갈비뼈를 취했다는 것은 가장 친
밀한 사랑의 관계가 가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육체적인, 그리고 동물적, 생물학적인 관계 뿐 아니라 영,영과
혼이 통하는 유대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항구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잠시 만
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일시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하나의 깊은 협동관계로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성경에서 '남자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돌봄없이 살아갈 수 없는 보완관
계로서의 한 가정을 주님께서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부부의 위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
다. 성경은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과 수족이 된다고 말씀하빈
다. 머리가 몸을 이끌어 가지만 그러나 수족이 머리를 받들어 주어야
됩니다. 머리도 감겨주고 세수도 시키고 머리의 명령에 따라 옷도 입
는 등 모든 것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머리의 생각을 실제로 행동화하
는데는 수족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에서 남편이 머리가 되고 리더가 되지만, 그러나 남
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수족인 아내가 있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머리는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
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빈다. 타락한 인간은 사랑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희생하고 주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것과
같이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머리는 몸을 사랑함으로 먹이고 씻기고
아름답게 입히고 평안하게 하고 보호하고 치료시키고 행복하게 만들며
올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것처럼 한 가정의 가장이요 리더인 남편은 그
의 수족이요 몸된 아내를 돌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비를 주어야 됩니다. 어떤 남편은 부인에게 생활비도 주지 않고
밤낮 때리기만 합니다. 가정은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닙니
다. 부인은 가정의 화초와 같습니다. 부인을 아름답게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여러 어려움과 위험에서 보호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이 병들면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몸이
병들 때 치료하지 않는 머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도력을 발휘해
생활을 하고 잘 인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태
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인 남편이고 우리는 아내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남편되신 예
수께서는 신부인 우리들을 먹이시고 씻기시고 아름답게 입히시고 평안
하게 보호해 행복하게 해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천국에까지 이끌어주시
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멋있는 신랑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의 남편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서 멋있는 남편으로서의 자기의 위상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몸은 또한 머리를 받들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내된 사람
은 남편을 리더로 받들고 살게 됩니다. 수족이 머리를 받드는 것처럼
받들어야 됩니다. 머리를 받들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마음대로 행하려
고 하면 병든 가정이 되고 마는 것이빈다.
세상에서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심리적으로 남편은
리더로 태어나지 종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을 안
해주어 집에서 짓밟힌 남편은 회사에 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
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인은 못된 머리라도 머리로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
머리에 복종하고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으로 만들어 주고, 머리로 만들어 주고, 리더로
만들어 주고, 그리고 남편을 공경하고 복종하며 따라간다는 것은 굉장
히 현명한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기도 행복하고 가정도 행복하고
자녀 교육도 잘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하나인 것처럼 남편과 아내는 항상 마음으로 함께 있고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머리는 머리대로, 몸은 몸대로 움직이면 그것은 벌써 죽은 몸인 것이
빈다. 이러므로 항상 남편과 아내는 일체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
다.
2. 가정과 부모자녀 관계
자식은 야웨의 주신 기업이요,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결합으로 우연히 얻은 생물학적인 산물이 아니빈다. 자식은
나님께서 천국백성을 양성하기 위하여 맡겨 놓으신 하나님의 사업입니
다. 자식은 개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성을 기울여 하나님의 사업으로서 자식을 길러야
됩니다. 학자들은 어린이가 한 살에서 여섯 살 때에 그 인격의 기초가
다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부모 밑에 있을 때에 말을 배웁니다. 특별
히 어린 아이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북 남자하고 경상도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사는 집에 심방을 가보
니그애들이 전부다 경상도 말로 '목사님,오이소'라고 합니다. 아버지
는 그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고 애들은 늘 어머니와 생활했
기 때문에 어머니의 언어를 배운 것입니다. 말은 그 인격을 지배합니
다. 그 언어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주장하는 큰 힘이 있는 것입니
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집에서 사랑과 미움을 배웁니다. 사랑은 사람
이 줄줄도 압니다. 저는 과학자들이 원숭이 새끼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없이 우유를 먹여 자라게 하고 부
모의 사랑없이 자라게 한 원숭이를 나중에 수컷과 짝을 지어주니 새끼
를 낳아도 새끼를 늘 두들겨 패지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원
숭이에게 매달려 자란 새끼 원숭이를 나중에 결혼시켰더니 새끼들을
역시 끌어안고 살며 사랑을 주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할 줄 알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문제아들은 왜 생깁니까? 가정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빈다.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 때
그들은 사랑을 베풀줄 모르고 사회를 적대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긍정적,혹은 부정적 삶을 배웁니다. 부모님들이 밝
게 인생을 살면 밝은 인생관을 갖게 되고 부모님들이 어두운 인생관을
가지고 늘 불평, 원망,탄식 속에서 살면 그와 같은 인생관을 배우게
되는 것이빈다. 윤리와 도덕관도 집에서부터 배웁니다. 학교 교육은
가정 교육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은 가장 중요한 것이빈다. 어린아이 때
부터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고 기본 신앙 실천과 사랑을 가르쳐야 합
니다.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수주일하고 헌금
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됩니다. 성경은
어린 아이에게 가르친 것은 백발이 되어도 그 어린 아이에게 남아임아
다고 말한 것이빈다. 이르므로 어린아이들에게 신앙적인 교육을 시키
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 어떠한 재산을 남겨주는
것보다도 귀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어느 한 남자가 제게 이런 고백을 했습
니다. 그가 중학교 시절에 학교 대학교 야구시합을 했는데 열심히 응
자원으리 하고 고함을 치고 그러다가 자기 학교가 아슬아슬하게 한 점
차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흥분해서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식구들과 이야기 하는 중인데, 그
가 "아버지, 오늘 우리 학교가 야구시합에서 이겼습니다. 아주 치열한
경쟁으로 이겼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시끄럽다.어른들 말
씀하시는데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그는
일생을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개와 고양이와 한가지
다. 나의 지극한 관심사에 대해서 아버지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는 생
각으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돌아섰고 40대가 되었는데 그 나이먹은 아
버지에 대해서 추호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른
들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사건이지만 자기에게는 굉장한 사건이기 때문
에 그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삶에 참여의식을 갖게 해서 가정의 크고 작
은 일들을 아이들과 같이 의논을 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이빈
다. 그것 뿐만 아니라 제가 부모인 여러분들께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
은 어린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 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어디스 퀴너 목사님은 아버지가 90이 다 되셨는
데 토요일이면 꼭 아버지가 집을 찾아가 자동차로 아버지를 모시고 함
께 골프를 치러 갑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서 당신은 매주 토요일이면 아버지께 그렇게
합니까?"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대답하시기를 "목사님,
우리가 자랄 때 우리 아버지가 바쁘실텐데도 토요일이면 반드시 우리
와 함께 낚시하고 등산하고 야구를 가르쳐 주시고 골프를 가르쳐 주시
고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장성한 사람이 되었으니 토요일이면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야겠다는 의
무감이 생기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추억을 통해
서 끊임없이 솟아납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과 잊을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교회를 세운다
고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놀아준 적이 없는 것을 참으로 후회하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막내를 데리고 설악산에 놀러가서 함께 일주일을 지
낸 적이 있습니다. 저희 막내는 저와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아버지하고
설악산에 갔다온 것이 참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와의 추억이 있어야 그것이 기초가 되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종
경이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3.가정과 일가친척과의 관계
부모와 결혼한 자녀 부부와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는 좋은 면도 있지만 가정에 깊은 시름을 가져왔습니다.
왜 입니까?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알력이 생겨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제가 신앙상담 중 가장 괴로운 상담이 고부간의 갈등 문
제인 것입니다. 이 갈등이 매우 심각하여 아들이 마음의 평화를 잃고
집에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
으면 남자는 그 부모를 떠나 아내된 여자와 함께 살게 되더라도 심적
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 역시 아들을 장가보내면 그 자식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일일이
간섭하고 지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
젼인 것이지만 자식은 부모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성
경은 자식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며 상급으로 그렇게 하면 이
땅에서 복되고 장수하리라고 축복까지 예배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하면 자기 처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
한 사랑이나 공경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고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자식은 부모
를 도와드리려고 애를 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정상 함께 살아야 할
때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에 의한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찌니"하신 말씀
대로 부모와 아들은 마음의 탯줄을 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하에 있는 관계에서 자연발생적인 부모 공경을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고 시어머니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흉이나 보고
미워하지 말고 따뜻한 말로 칭찬해 주고 이해해 주어 며느니가 시어머
니를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진심으로 대하며 공경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자신도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그만한
대접을 받게될 것입니다. 자신이 시어머니 섬기는 것을 본 며느리가
그대로 본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해와 동정, 사랑으로 잘 지내야 내 아들, 내
남편이고 고통없이 평안하게 지냅니다. 이점을 잘 생각해서 이번 가정
주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같이 살든지, 따로 살든지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의 정하신 뜻으로 받
아들이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하나
님의 은혜 가운데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삶 전체가 파탄이 납니다. 행복한 가정은 생명체와
같습니다. 정원사가 꽃밭을 가꾸는 정성보다 더한 정성으로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하늘가정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
고 예수님은 신랑, 우리는 신부이고, 우리들은 다 형제가 되는 것입니
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크신 사랑을 기억하고 지
상 가정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 신랑 예수님을 지성으로 섬
기고 사랑하며 형제간인 성도들과 우애있게 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사랑하시고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
발행일 : 940515
분 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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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탕자의 귀환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눅 15:11-24
어느 집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권위와 규율 아래 살기가 싫어서 자
기 몫의 재산을 요구해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술과 여자, 도박
등 쾌락을 좇아 살다가 재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그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돼지 치는 자가 되어 고생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의 규율
은 결코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참 행복을 주기 위한 것
이라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버지가 따뜻하게 맞아 아들
의 자격을 다시 주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설비를 아름답게 표현해
주고 있는데 이 내용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
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에덴 동산과 하나님의 권위와 법
본문 이야기는 인류의 창조와 타락에 관한 것을 비유적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돌보아 줍니다. 이
아버지의 권위와 규율하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먹고, 입고,마시는 것,
사는 방법들을 다 돌보아 주고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원래 하늘과 땅은 아버지가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진
선미의 에덴을 지으시고 직접 다스리시며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를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 한가운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
실을 두시고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이 에덴 동산에서 모든 자유와 풍성을 누리되
이곳의 주권자는 아버지인 나다, 내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것이
고 사람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주권자
가 생겨서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너는 아버지의 주권에 절대 순종하
고 규율에 복종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버지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규율을 지켜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아
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에 빠져 아버지의 주권에 저항했습니다. 자시
도 선악을 판단하며 마음대로 자기 기준대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규율을 어겼습니다. 그
리고 아버지를 그들의 생애 속에서 쫓아 내버리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
다. 우리 아버지의 권위와 아버지의 규율이 싫어서, 우리의 운명은 우
리 스스로가 결정해야지 하면서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 탕자가 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규율이 미치지 않
는 나라로 떠난 탕자는 곧 허랑방탕하게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규율과
돌봄이 없는 곳에서 절제없는 방탕을 계속한 그는 비참하게 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꾐에 빠진 아담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법을
무시하고 인본주의적 독립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저버린 나라, 먼 나라
로 떠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
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금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위도,법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와 탐욕과 정욕의 노예가 되
어서 삽니다. 그 결과는 바로 기근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 인생 여정에 참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고 부유함이 있는 곳
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는 곳마다 의의 기근이 있습니다. 죄악이 꽉
들어차서 아무리 질서를 지키려고 해도 죄악이 그것을 다 파괴합니다.
의의 기근은 오늘날 온 세계 처처에 있습니다.
또 거룩함의 기근이 있습니다. 더러움이 이 세상에 꽉 들어차서 생각
이 더럽고 말이 더럽고 행동과 생활이 더럽습니다. 거룩함의 기근이
이세상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랑의 기근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로써'사랑,사랑'
하지만 이것은 부패된 이기주의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내게 속한 분
깃을 내게 주소서'하고 달라고만 하는 사랑은 탕자의 사랑이지 진실
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 까지한 희생의 사
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소유하고 내 손에 쥐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이 불화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암투
가 그치지 아니하고 부모 자식 간의 암투,부부 간의,형제 간의 싸움도
있습니다. 이웃 같의 끊임없는 대결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근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믿음의 기근이 있습니다. 서로 속이고 속으니 누가 누구
를 신뢰할 수 있나요? 소망의 기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뭣
니까?매일같이 먹고 자고 일어나고, 먹고 자고 일어나고, 살아보겠다
고 애를 쓰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보겠
다고 애를 쓰다가 40대 이후가 디고 50이 되니 친구들이 한 두사람 순
식간에 이 세상을 작별하곤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찬바람이 붑니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그렇게 살겠다
고 바득바득 애를 쓰더니 순식간에 사라져서 한 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니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그와 같은 소망의 기근이 꽉 들어찹
니다.
건강의 기근도 있지요. 스트레스로 몸부림치는 오늘날의 삶의 경쟁
속에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병들어 갑니다. 물질의 기근도 있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그 자체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에다가 가장 큰 기근은 영생의 기근인 것입니다.
오늘날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절제없이 사는 삶속에 다가오는 것은
오직 절망적인 기근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젊은 청년은 기근에 처하자 이제는 올데갈데 없어 가장
천한 직업인 돼지를 치는 노동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
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릴 때는 우리는 타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와 탐욕과 세속이 들어오면 육신적으로 방종하게 되는 것입
니다. 육신적으로 방종하게 되는 사람치고 기근이 안 다가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기쁨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사랑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고통이 다가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벌써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의 어느
부분에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인본주의
와 이기주의와 탐욕과 세속으로 살게 되면 거기에는 기근과 고통이 다
가오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서 "네게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
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
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
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저버리고
계명을 저버리면 바로 이 고통하는 세계 속에 살게 되고 이 고통이 영
혼속에 들어가서 영혼을 뒤흔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회개의 과정
아버지를 떠난 것이 곧 고통의 시작인 것을 알게 된 이 젊은 청년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회개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회상하기를 '아, 나는 이제 여기서 굶어 죽는다. 그러나우
리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를 섬기는 날품팔이라도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풍족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야 되겠다. 하
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다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은 없
고 날품팔이꾼이라도 아버지의 권세와 계율 밑으로 들어가야겠다'고결
심했습니다. 자아의 중심을 깨뜨리고 회개하고 돌아올 각오를 했습니
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
는 하나님이 섭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서는 현
실의 삶의 고통과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비교로써 깨달음을 얻어야 하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대신에 빛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무질서 대신 질
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추함 대신 아름다움을, 가난 대신에 부요
를,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
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
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고통의 세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세계로 돌
아가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데 그 마음의 결
단은 먼저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여서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으니 종중이 하나로 보아주시옵소서'돌아가는 마음 자기가 과거
에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마음,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입술로만 말을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돌아가는 것입니다.자기 중심의 삶을 버리고 종의 삶으로 돌아
오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 중심으로 아버지의 종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간절한
마음의 회개를 가지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절대로 내버리시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을 지은 죤 뉴턴같은 사람을 보십시
오. 그는 흉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정말 좋은 신자였고 매
일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그는 돈벌이를 위해서 노예상인이 되었습
니다.그는 총을 들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짐승처럼 사냥해서 잡아 화물
선에 가득가득 채워가지고서 대서양을 건너서 북미와 남미에 가 팔아
먹었습니다.
그는 대서양을 건널 때 술기운이 돌면 노예를 끌어내어 배 뒤에 따라
오는 상어떼에 던져서 상어가 산 사람을 물고서 요동치는 것을 보며
잔인하게 웃고 즐겼습니다. 인간 중에서 가장 흉악하고 악마하된 인간
이 바로 죤 뉴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파선 직전에 놓였습니
다.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하
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부르
짖었습니다.
"나의 어머니의 하나님여, 나는 너무 크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
나 잘 믿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으니 우리 어머니 기도를 보셔서
나를 구출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나를 살려주시면 내가 아버지를 섬
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파선을 면하고 불란서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
노예선에서 나와서 일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그
는 평생 자기 집에서 팔았던 노예들처럼 신발을 신지 않고 눈물로써
회개하며 전도자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은 시가 지금
도 우리에게 노래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떠한 흉악한 죄인이라도 용서를 받을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3. 환영하시는 하나님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우리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 아들이 돌아오니 기다리던 아버지
가 뛰어나가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는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돼지
우리에서 지내 냄새나고 더러운 그 아들을 아버지가 끌어안고 입맞추
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
를 끼워라, 신발을 신겨라,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먹지 즐기자, 내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잃었다가 얻었다.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바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심정을 우리
가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지은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초청장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목박아 찢고 피를 흘리고 무자비
하게 심판하셔서 우리의 지를 다 청산시키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아버
지께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대문 밖에서 밤낮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
다.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천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빨리 저 더러운 죄의 누더기를 벗겨라. 그리고 그 아들 예수가 피로
씻어 만든 의의 옷을 입혀라"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옛날 중동에서는 가락
지에 온 가족의 이름을 다 새겨 놓았습니다. 이 반지를 낀다는 것은
바로 그 가족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나오면 주님께서 반지를 끼워주라고 하십니다. 이것
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를 베풀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족
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을 쳐주시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옆사람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친자녀입니다"라고 말씀하
십시오.우리는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발을 신기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복음의 평안
의 예배한 신을 신기겠다고 말했는데 맨발로 인생을 걸어가는 것은 피
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로 살라, 내가 모든 것
을 다 예비해 놓았으니 이제 나를 믿고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즐
기자고 말씀하신 것이비다. 하늘나라는 언제나 잔치입니다. 하나님 아
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함께 거하면서 우리는 구원받은 그 기
쁨의 잔치 속에 살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절
대주권과 권위를 인정해야 되는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
데 모든 것을 지으신 유일무이한 주인되시는 절대주권자 아버지를 중
심으로 모시고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계명을 지
키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법을 지키고 살아야 되는 것입
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평안하게 살고 아버지의 큰 은총
속에 살게 되며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돌보아 주
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친히 돌보아 주시는 그 세계 속에 들어와서
사십시오. 아버지가 돌보아 주시는 세계는 아버지의 주권의 확실히 성
립되고 아버지의 계명이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곳이 귀찮다고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곳을 떠난 곳에는 오직 방탕과 기근밖에 없는 것입
니다.
발행일 : 940501
분 류 : 기타
99
제 목 : 성령님과의 교통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고후13:13
지난 주간 동안 제가 성회를 인도한 노르웨이 교회는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국교는 루터란 교인데 그들의 교회는 아름답고 장
엄하며 종교의식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출
석성도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신앙의 열정은 얼음장같이 차갑게 식어 있
었습니다.
노르웨이 목사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제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조 목사님
보시기에 노르웨이 교회의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어떻게 해야 노르웨이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노르웨이 교회에
는 성령의 역사가 사라졌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니 기도가 없고,
기도가 없으니 회개와 변화가 없습니다. 노르웨이 교회가 살아나기 위해서
는 기도의 불이 붙어야 하고, 기도의 불이 붙자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만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동안 예수님의 12제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
아 넘쳐나오는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서 능력있게 기도할 수 있었고 또한 다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나가서 천국복음을 증거하고 귀
신을 쫓아내고,병든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내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못하고,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한 제자들은 형편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전도도 하지 못하고 귀신도 쫓아내지 못했으며 한
사람의 병자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에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전
혀 기도에 힘쓰던 중 열흘째 되는 오순절날에 이르자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이 각 사람 머리에 임하였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
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히기 시작한 연후에 놀라운 권세와 능력
이 임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용감하고 담대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교
회를 세우며 천하에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의 신앙이 살아날 수 없고 우리
교회가 불붙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우리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의 성장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성
령이 임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오순절날 이 땅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아들 에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
만 성령은 그때의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2천년동안 교회에 머물러 계시고
또한 이 세상에 임하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성령님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
는 것은 성령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지시깅 없어
망한다"고 한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처럼 오늘날 사람들이 성령에 관한 지
식이 없기 때문에 성령과의 교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교회들에게서 절감한 것은 그들이 성령신학은 갖
고 있으나 성령과의 교통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있음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므로 개
인의 신앙도 잠들고 교회는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사긴에 성령님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고 성령과의
깊은 교통을 이루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성령님의 인격성
바람같은 혹은 불같은 성령이라고 성령에 대해 상징적인 표현을 하니까 사
람들이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인격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
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분명한 인격체이십니다. 인격에는 지성과 감성,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의 요소인 지성을 갖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다 통달하시는 성령은 탁월하고도 무한
한 지성을 갖고 계십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성을 가진 지적인 존
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3장 7
절로 11절에"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말
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
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라고 기록되어있습
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감정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께서는 분
명히 감정을 가지셨기 때문에 무시하면 진노하고 슬퍼하시며 소멸되는 것입
니다.
또한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당신의 뜻대로 은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도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일을
시키시는 결단의 의지를 가지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이 인격자인 것을 알면 인격자로 대접해야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시
니 이 성령니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감사하고 모셔들이지 아니하고 무시하면
성령께서 슬퍼하시고 소멸당하시고 진노하시며 떠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
니다.
오늘날 서구 교회의 결정적인 잘못은 성령을 인정도 환영도 아니하고 모셔
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와계셔도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
고 무시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없고 인본주의적인 교회가 되어 제도와
조직만 살아 있는 냉랭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오순절날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 땅에 강림해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신 성령님은 우리처럼 육신은 가지고 있지 않으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임으로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삶을 살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2. 성령님과의 교통
성령님과의 교통은 여러 면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먼저는 지적인 교제가
이루어져 대화가 가능해야 합니다. 지적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과 우리와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감동으
로 쓰여진 성경을 통해야 가능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과의 지적인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성령과의 정적인 교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는 늘 성령께
감사하고 성령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끊임없이 찬미함으
로 이루어집니다.성령이 곁에 계셔도 기뻐하지도, 사랑하지도 찬미하지도
않으며 무시해 버리면 정적으로 성령과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감사하여 따뜻한 교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지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여야지
내 마음대로 행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다고 원망해서는 안되
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우리 곁에 와 계심으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 뜻을 찾고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할 때 성령
과의 의지적인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총체적으로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게
성령께 감사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씀의 젖으로 먹이시고 장성케 하여 천당까지 데려가는 책임을지
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 없이는 교회가, 성도가 살아남
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성령님과의 동업
성령은 공연히 이곳에 와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삶
을 살아가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를 빌려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난다음에 베드로의 동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
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고는 친히 베드로와 함께
그물을 잡아 당기고 가득히 잡힌 고기를 온 손에서 비린내가 나도록 만지시
며 같이 일을 해주신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구주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동업자이기도 하십
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인생 동업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반드시 성령님과 동업을 했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에서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게 해야 될 것이냐 아닐 것이라냐라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을 통해서 우리가 새 언약에 들어왔음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옛 언약의 율법
이나 의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그 결론을 편
지로 써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이방인에게 보냈습니다.
그때 그 편지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행 15:28). 그들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그들만 의논한 것이 아니라 성령
이 그들 가운데 함께 계서서 이러한 진리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기도회에서도 보면 사도행전 13장1절로 2절에 "안디옥 교회
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
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모든 회의는 성령과 결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교회는 성령께서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텅텅 비고 많은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령의 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회피하며 하는
사역은 육의 일에 불과하고 아무런 결과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로 10절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
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
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을 인정함이러라."고 말씀
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이 없이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종국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무도 없고 인간으로서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기다리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의 갈길을
환하게 보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꿈을 환상을 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성령을 기다리면 성령은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을 이끄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소원을 일으켜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을 이끌어가고
도와주기 위해서 와계시는 인생 동업자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시기를 주의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4. 성령님의 사역
성령이 이 지상에서 종국적으로 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을 구주로 나타내시
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 복음의 중심이 되지 아니하
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역사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인간이나 어떤 단체
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시는 일은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임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성령은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려고 하
십니다. 성령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혹은 방언, 방언 통역,예언의 은사,믿음,기적 병고치는 은사들을 주셔서 그
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려 하십니다.
성령은 또한 사역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십니다.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유하는 일,구제하는 일,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을 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교회를 세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생활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사 우
리의 죄를 지적해서 회개시켜 주시고 우리 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하여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일은 선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사마리아
에서,땅끝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버리시면 선교 사역도 떠나버립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가면서 온 세게에 선교사를
보내고 선교 사역에 힘을 쓰는 것은 한국 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계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이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선교 사역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세계 선교 사역을 통하여 확실하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신학을 발전시키고 많은 사회 참여와
구제사업을 한다고 해도 성령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것들은 구제사업을 한다
고 해도 성령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것들은 모두 육의 일이요, 종국에는 예
수님 없는 하나의 인간 자랑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없는 사람은 비없는 구름이요, 물없는 우물이요, 불없는 화
로이며, 열매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형식은 있으나 내용은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
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인격적으로 반갑게 모셔들이고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성령의 손에 이끌리어서 인생을 살고 성령의 손에 이끌
이어 천국까지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529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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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자료원 : 순복음가족 조다윗목사
구 절 : 골로새서 1장13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제도적 변화
를 세 번이나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제도는 에덴의 낙원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
을 지으신 후 에덴을 창설하시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실때 낙원제도를 제정하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두번째 제도는 세상제도입니다. 이는 아담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
나님을 배반하고 낙원제도를 벗어버리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마귀와
인간은 합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제도를 만든 것입니
다.
세번째 제도는 천국제도입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로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를 외치시면서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왔
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흑암의 제도에 사는 사람들을
건져내사 당신께서 창설하신 천국제도 속으로 옮기려고 하신 것입니
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세상에서 경험한 이 세가지 거대한 제도적
변화에 관해 살펴 봄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제도하에서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에덴의 낙원제도
낙원제도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과 사람
을 지으시고 동방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낙원을 만들어서 사람으
로 하여금 낙원의 제도 속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 낙원제도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절대신뢰, 절대순종의 의무만 가지면 영원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낙원제도 안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
었습니다. 그러므로 병드는 것이나 아픈 것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마귀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눈물과 고통, 시련과 괴롬도 없고 죽음도
물론 없었습니다. 사람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졌으며 낙원제도 속에는 죄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이란
없었습니다. 낙원제도 속에는 오직 행복과 아름다움과 풍부가 가득했
습니다.
그리고 낙원제도 속에는 율법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 법이란 이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
법만 지키면 그들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
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전 인간에게 세운 사회적 제도인 것
입니다.
2. 세상제도
세상제도의 주권자는 원수 마귀입니다. 마귀가 낙원에들어와서 아담
과 하와를 꾀었습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너희도 하나
님처럼 선악을 불별하게 되고 주권적인 독립적 존재가 된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꼬임에 빠져 낙원제도의 율법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
고 독립을 선언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 났습니다. 낙원제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셔 마귀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인 것입니다. 세상제도 월드 시스템(world system)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세상의 여러가지 고통과 괴로움, 슬픔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
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제도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
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 세상제도는 하나님을 등진 아담이 마귀와 짝을 지어 합작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주권자이고 모든 것은 마귀의 지배하에 있
습니다.마귀의 지배 하에 인간이 만드는 이 세상은 미움이 꽉 들어차
고 상호불신하고 경쟁하고 물고 찢고 싸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세
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존재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덕적 상실에 대해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 상세히 기록되 있습니
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
하시는 자요 능룐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저안 자요
무자비한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
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
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마귀의 지배 하에서 인간은 인본주의적인 세상을 만들었는데, 인본주
의 세상은 근원적으로 부패한 세상인 것입니다. 누룩이 빵을 부패하게
만들 듯이 죄악이 인간의 인격속에, 사회속에 들어와 철저히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 이 세상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세상제도 속에 사는 사람들은 존재적인 상실 속에 삽니
다. 세상에는 죄가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은
즉 의인은 없아니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먼저 털어 안날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법으로써 사람을 재면 의인으로 드러날 사람이 아무
도 없는 것이 오늘날 이 세상의 죄악된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미움이 꽉 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정에서 가
인이 아벧을 쳐죽인 이후로 인간의 역사는 살상의역사입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하는세월 이것으로 인간 역사가 만들어져 있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피의 신학을 이루고 기록되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세상은 병과 저주가 휭행합니다. 가는 곳마다 병과
저주가 있습니다. 가난이 있고 낭패와 실망, 실직이 있고 고통이 있습
니다. 그리고 부패와 죽음이 이 세계를 다스립니다. 개인이 부패하고
생활과 국가와 제도가 부패하고 그리고는 죽음이 종국적으로 이 세계
를 지배하고 있는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이 오늘날 세상입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만든 적이 없으시니 세상 살
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은 낙원제
도를 만드셨지 세상제도를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세상제도는 바로 마
귀와 인간이 합작해서 만든 것입니다.
3.천국제도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세상제도를 폐
하고 천국제도를 세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제도 속에
서 도둑질당하고 죽임당하고 멸망당하며 고통과 슬픔에 싸여 부르짖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셍상제도 속에
천국제도를 심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경으로 잉태하셔서 죄없이 탄생,
30년동안 수련하시고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문이
열리고 소리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버하는 아들"이
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제도를 심기 위해 왔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주 40야를 금식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이
세상에 나와 비로소 천국제도를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다' 하나님의 아들이 천국의 역사를 베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멸하시고 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환난당한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지옥가는 자에게 천국문을
여시면서 세상제도를 파괴했습니다. 세상제도를 내어쫓았습니다. 이렇
게 되자 세상제도의 주관자인 마귀와 인간이 예수님을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마귀의 지시 하에 로마의 병졸과 유대의 종교가 손을 잡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처헝'을 하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소속된 분이 아닙니다. 세상
제도 하의 다스림을 받을 분이 아닙니다. 죄없는 의인이며 세상제도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을 죄의 근원인 마귀가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마귀와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바로 마귀와 세상제도의 파멸을 의미한 것입니
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사 마귀를 심판하고
이 세상을 심판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보상을 요구합니다. 하
물며 죄없는 하나님의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과 마귀에게 하나님
이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보상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천국제도를 심어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심
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보배피의 공로로 2천년전부터 성령을 통해 천국
제도가 심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제도의 주권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
가의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을 청산하고 믿는 자들을 세상제도 즉
마귀의 흑암에서 건져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즉 천국제도 속
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두가지 제도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만드는 인본주의적 제도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댓가로 심어놓은 천국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천
국제도는 어떠한 역사를 베풀고 있을까요? 천국제도는 현실 세상제도
를 물리치고 그안에 세워진 것이므로 세상제도와 끊임없는 전쟁상태에
있습니다.
마귀와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제도에 대해 무섭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는 일어나서 마귀와 세상제도를 물리쳐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 개
인적으로, 가정단위로 교회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복음,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천국제도를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의 나타남을 통해서 하늘나라가 전파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 예수님 앞에 나오면 십자가의 보해로운 피로 모든 과거의 죄가 용
서를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천국제도의 놀라운 점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던져 버리는 것
이 아니라 죄를 짓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
하고 홰개하면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어 의의 삶을 사는 천국제도 속에 들
어오게 만드는 것이 세상에서의 천국제도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과 사랑과 성결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
도 에수의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은 바 되어 서로 사랑하게 만듭니
다. 또한 모든 더러움과 추함을 제하고 맑게 씻기는 거룩함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영.혼,육의 질병과 일그러
짐을 가져오는 귀신을 내어쫓고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제도의 나타남은 성공은 축복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불도
저가 황무지를 갈아서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성령이 오셔서 천국
제도를 통해 모든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을 몰아내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제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
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고 천국의 영광이 마음 속에 가득하게 만드
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강한 자가 집을 지킬 때는 그 재산이 안전하
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 강한 자를 묶어 버리면 그 재산을 늑탈해 간
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세상제도를 주관한 원수 마귀가 인본
주의와 더불어 강한 자가 되어서 사람들을 꽉 묶고 있었는데 2천년 전
에 더 강한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고 더 강한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고 더 강한 자 성령으로 나타나셔서 마귀를 묶어
무장해제시켜 버리고 원수 마귀의 세상제도에 잡혀 있는 모든 사람들
을 풀어 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는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2천년전부터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예
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가 임하여 있
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강한 자를 가시는
곳마다 무장해제시켜 버린 예수의 은혜에 의지해서 묶어버리고 이 강
한 자에게 잡혀 있는 사람들을 빼앗아서 천국제도 속으로 이끌어야 하
는것입니다.
천국제도 안에는 의가 넘쳐나고 성령충만과 사랑과 성결이 가득하며
치료와 생명과 건강이 있고 축복과 성공의 역사가 있으며 천국 영광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제도에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 속
에 살지만 세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 임하여 있는 하나님
의 사랑의 아들나라 속에 들어와서 천국제도를 따라 살고 있는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과 말,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삶에 대한
우리가 기대가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옛사람이 아닌 처국에 들어와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의 영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계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
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 땅에 심어놓은 천국제도
의 그 축복 속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삶은 낙원 시스템, 즉 낙원제도에서 살다가 타락해
서 세상 세스템 즉 세상제도에서 존재하던 중 예수님께서 구원받아 오
늘날은 천국 시스템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 안에서
는 천국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은 우리를 통하
여 끊임없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의 나타남과 열매를 체험해야 하고 맺어야만 하
는 것입니다. 천국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우리가 천국 속에 들어와
있는 이상 천국제도에서 베풀어 지는 그 열매를 우리는 삶속에서 맺어
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의 열매를 보라!'하고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외치고 계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천
국제도 속에 들어오는 입문은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
시면 우리는 천국제도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
들나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
합니다. 우리는 매일 회개를 통하여 세상제도를 우리 마음, 생각,행동
속에서 쫓아내고 씻어내야 합니다.
또 성경은 '천국이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지 못하나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가 여러
분 속에 지금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을 새롭게 해야 합
니다. 나는 뿌리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천국이 이미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천국제도가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합니다.
'세례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
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침노한다'는 것은 '전쟁한다' 는 것
입니다. '빼앗는다'는 것은 안 빼앗기려는 것을 물리쳐내고 강제로 빼
앗는 것을 말합니다. 빼앗는 운동은 바로 기도운동입니다. 우리는 결
사적으로 기도해서 죄악과 귀신, 질병, 저주 사망을 물리치고 그 속에
천국의 역사를 빼앗아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공부함으로 말씀의 실탄을 가지고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가지고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수주일자하여 천국의 넘치는 은혜를 받아서 천
국의 역사가 우리 속에 강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천국을
얻고, 천국의 우리 앞에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음의 역사로써 침노
해 들어가서 강한 믿음으로 원수 마귀와 세상을 내어쫓고 그 가운데서
천국의 제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셨으니"하신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늘 강하고
담대하게 천국을 소유하고 천국의 역사를 매일매일 나타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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