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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설교 71편~80편

by 【고동엽】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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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 목 :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히 10:35-39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쉽게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룩하십니다.

구약의 인물 아브라함이나 모세, 여호수아와 다윗은 모두다 적극적인 인물

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큰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낸

사람들은 한결같이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

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인 수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회당장 야이로,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 그리고 열두해를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 등은 모두

다 적극적으로 환경의 장애를 뛰어넘어 주님을 만났고 큰 기적을 체험한 사

람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사람들은 하나

님의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나

아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극적으고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간직한 사람은 내일을 가슴에 잉태한 사람들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

과 민족은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꿈이 없느

니 사람은 인생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

다. 꿈을 품은 사람만이 내일을 향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용기있게 전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꿈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5세에서 1백20세가

넘도록 꿈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5세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으 마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1-3)고 하나님의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꿈을 쫓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고 하나님은 적극적인 그를 통해 유대민족을 이룩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얻고 80세에 인생을 재출발한 사람이었습니

다. 모세가 꿈을 얻기 전에는 미디안 광양에서 양무리를 치던 목동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 떨기나무앞에서 하나님을 만나 꿈을 얻은 모세는

80세의 노장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적극적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에게는 한명의 군대도 없었고 오직 지팡이만이 유일한 그의 동반자였습

니다. 그러나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바로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 4백30다녀

동안 종살이 하던 자기 민족의 해방을 요구했습니다.

모세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었으면 유

 

 

 

대민족의 지도자로서의 모세도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

자들은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평범한 갈릴리 어부들이었고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을 받고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후 그들의 가

슴속에는 불타는 꿈이 잉태되었고 적극적인 마음이 창조되었습니다. 그 결

과 갈릴리 사람들에 세계 역사를 변화시켰고 온 세계에 희망의 등불이 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교회가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된 것은 저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불광동 천막교회에서 꿈을 심어 주시고 적극적

으로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천막교회 가마니 위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게서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꿈을 자꾸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꿈이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갈 수 있는 적극적인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전세계를 교루삼아

북남미, 구라파, 아세아 대양주, 아프리카 등세계 곳곳에 다니며 복음 전도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세게 최대 교회가 되엇

고 국내외적으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좋은 학교를 나왔느냐, 가문이 얼마나 좋으냐, 재산은 어느

정도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

니 너희와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내일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구해야 합니다. 작고 소박한 꿈도 좋

습니다. 크고 위대한 꿈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꿈을 잉

태시키시고 그것을 통해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심겨진 사람은 적극적으로 어떤 역경도 이기며 달겨가게 됩

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그리고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외쳐도 꿈의 사람은 꿈에 사로 잡

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갑니다. 꿈을 품고,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이 달라집니다.

 

2.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물질보다 명예나 지식보다 우선합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입니

까?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반드시 축복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고 고난의 십자

가를 지고 빈 손들고 천국에만 올라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일부분이고 신앙의 다른 일면에는 축복하시고

풍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

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1)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모든 일이

잘되고 강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 진리

를 깨닫는 사람들은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신뢰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탄생됩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

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

야 할 지니라"(히 11: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

수님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

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대한 끊없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

님은 우리 삶 속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곳에 환란과 역경의 자리에 그리고 기쁨과 소망의

자리, 어느 곳이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

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오히려 원수의 목전에

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발라 주시며 결국에는 우리의 삶이 승리하도록 역

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곤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해답을 가지고 계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적극적

인 용기를 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믿음의 결과는 적극적인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고단하

고 고통스러워도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환

경을 변화시키고 위대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역경과 환한 속에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망했다고 느껴지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으니

그것을 통해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

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 성공과 실패, 그리고 건강할 때와 병들었을 때, 있

을 때와 없을 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종국적으로 선하게 만들어 준다는 말

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항상 바라고 확신속에서 인내할 수 있

습니다. 눈에 아무 것도 안보여도 귀에 아무 소리 안들려도 인내할 수 있으

며 앞 길이 험해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캄캄해도 때가 되어 여명이 밝으면

아침이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함이란 용기있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물안 개구

리식으로 자신이 주위만을 돌아봐서는 안됩니다.

 

담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고 넓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게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나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해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

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해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자니 말

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

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햐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4

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웨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9)고 말씀하셨

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과 관계 깊어지고 담대

한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C.A. 고등부 학생이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밤낮을 불구하고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침묵하시고 들리는 음성

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으시니 답답해서 저에게 개인상담을 부탁한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하나님의 음성을 귀에 들리는 소리로 들으려 하지 말고

성경을 읽을 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창세기로부터 요

한계시록까지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해지고 고요하게

잠잠하게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

을 겁니다."

우리가 담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은 환경의 폭풍을 겁낼 필요가 없고 "동남풍아 불어라 서

북풍아 불어라 가시 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라고 찬양하며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담대하기 위해서는 모험적인 되어야 합니다. 흥하든지 쇠하든

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뛰어가는 모험적인 용기가 필요합니

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출발했고 모세

는 80세에 군대도 국가도 없는 종살이하던 백성을 구원하겠다고 최대 강국

이었언 애굽의 왕과 단판을 지으러 애굽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담대함이 있

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

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비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

서 새끼르리 움키면 따라가서 그것들을 치고 입에서 새끼를 건져낸 용기있

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을 때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사울왕의 신복 한 사람이 자신과 싸워 이기면 블레셋 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섬기고 자신이 이기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종이 되어 섬기자는 조건

을 내걸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심히 두려워 했습

니다.

 

 

 

 

그러나 골리앗의 도전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

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이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하 17:26)라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허락을 받고 골리앗과 대결하기 위해 출정을 했습니다.

성경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가

니 "삼상 17:4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그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했고 다윗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

승에게 주겠다고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찬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웨의 이름 곧 네

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 오늘 야웨께

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한

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5-46).

다윗은 담대한 배짱으로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자 그는 엎드

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의 승리요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4.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광야의 끝에 있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은 연단을

받고 깨어지고 탐욕을 버리고 시편을 통해 강한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스라엘 민족과 같습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난 후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은 광야의 끝에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을 지난 후 성공의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시련을 통과한 사람들이였습니다.아브라함은 75세에서 1

백세까지 25년 동안 인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음의

시련을 통과했고 야곱은 25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연단의 세월을 보냈으며

꿈의 사람 요셉은 17세에서 30세까지 13년동안 종노릇과 감옥에서 인내하며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욥의 인내를 보십시오. 욥은 하루 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잃

었으며 아내는 곁을 떠나는 처참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

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꿈과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욥은 끝가지 참

고 인내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0절로 11절에는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라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

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삶은 일종의 전쟁터입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열릴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나가는 안된다''나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지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믿음을 가지고 담대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 성공의 열매를 거두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918

분 류 : 설교

 

 

 
 
 

72

제 목 : 시련의 의미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신 8:11-20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들의 삶 속에 여러가지 시련이 다가옵니다. 어

떤 성도들은 시련이나 고난이 다가오면 신앙의 배가 난파되기도 합니다. 그

러나 어떤 성도는 오히려 시련과 고난의 풍랑을 만나면 순퐁에 돛을 단듯

신앙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일생을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시련과 고난을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는

우리들을 향한 숨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1.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자식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지 않은 이상 항상 잘못

된 일을 훈계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어두운 길, 잘못된 길로 갈

때 바른 길을 가도록 경고하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 부모는 징계의 채찍을 들기도 합니

다. 그러나 그 채찍은 사랑이 근원이 된 징계입니다.

 

하나님도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곁길로 갈 때 징계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

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

를 받기 위함이가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시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양은 목동의 말을 잘 듣고 목동이 인도하는대로 잘 따가오는데

그중에 고집이 센 양이 있다는 것이빈다. 그런데 그 고집센 양이 목동을 잘

따르지 않고 제 길로 가면 많은 다른 양들이 그 양의 뒤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동은 제 길로 마음대로 가는 양을 잡아서 많은 양이 보는 앞에서

무릎에 얹어놓고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버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 놓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리가 부러지고 나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곁길로 가지 않

고 목동의 가는 길을 순순히 따라온다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우리들도 고집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런 존재들은 아닌가'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이마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

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

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1-13) 고 명

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은 징계는 사생자에게 내

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미움이 아닌 사랑이 동기가 되

는 된다는 사실이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는 징계가 다가올 때 저항하거나

반항하지 말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가지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사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하고 마귀의 시험에 빠저 영원한 생명을 잃

어버리지 않고 거룩함에 참여케 하려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긍정적

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징계를 대해야 합니다.

 

2. 시련과 고난은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고 마음을 낮춥니다.

 

우리들은 성공과 축복의 고속도로만을 달리게 되면 자칫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자만에 빠져 자기가 잘나서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고

그 결과로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줄로 착각하고 하나님을 등한히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때 시련과 고난의 태풍의 불어오면 그 자만을 깨어지고 인간은 보

잘것 없는 존재요, 허약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요,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금방이라도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속에 살았던

사도 바울 선생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

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고

하려 하심이나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가후양더

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느 다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심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

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

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7-10).

 

사도바울은 선생은 자신이 너무 계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자고해질 때 싶어 하나님이 자신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사단의 사자 곧 가시를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 크게 축복을 받을수록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같은 육체의 가시를 주십니다. 그 가시가

우리를 찌를수록 우리는 겸허해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떠나가게 해 달라고 세번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는데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

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섭리를 깰다고 오히려 시련을 기뻐했습니다. 능욕과

핍박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난당한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냐

하면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부귀와 영

화를 누리고 성공과 출세의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부귀와 영화, 성공 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어느 미극 목사님의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합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

는 한 젊은이가 어느 노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피아노 수련을 받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수련을 마치고 여러 공쿨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유능한 피아니

스트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개인 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연

주회는 뉴욕에 있는 카네기 홀에서 열리게 되었었습니다. 입추의 여지없이

청중들이 모였습니다. 그 청년이 한곡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광을 하고

박수와 함성을 치고 심지어는 돈을 무대위로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청년

의 발 밑에는 돈이 수복히 쌓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돈을 바라보지도 않고 청중으리 바라보지도 않고 항상 2

층에만 시선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2층 발코니에는 노교수가 앉아 청년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노교수느니 "그래 항상 위만 쳐다보아라. 돈도 바라보지 말

고 박수치고 열광하는 청중도 바라보지 말고 항상 우만 바라보아라 그러

면 네가장구할 것이라"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 청년의 얘기를 들려준 그 미국 목사님으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더라도 돈도 바라보지 말고 지위와 명예, 칭찬도 바라보지 말고

항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 하

나님이 주시는 지위와 명예, 권세와 축복이 장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자신과 하늘 아래 것을 바라보는 순간 자만에게 되고

교만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사자인 가

시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 가시가 우리 옆구리를 찔러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3.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진짜와 가짜는 시련의 풀무를 지날 때 밝혀지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시

련과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 모래 위에 지으니 신앙인지 반석 위에 세운 신

앙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형제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족은 참 사랑하고 우애합니다. "그렇

게 말하지만 예를 들어어 물질적인 문제로 시련에 부딪쳐보면 형제우애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타산의 문제가 생길 때 본 모습으

리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꿀은 굉장히 단 맛을 냅니다. 그러나 꿀으리 불에 태우면 아주 고약한 냄

새가 납니다. 이처럼 평소에는 단맛을 내는 형제나 친구관계라도 시련의 불

에 태워 보면 단맛을 변함없이 내는지 썩은 맛을 내는지 쉽게 알 수 있습

니다. 시련과 고난괴 인격의 실제를 밝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시련의 불에 태워질 때 참으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좋을 때는 하나님

게 감사하고 열심히 믿는척 하다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하나님 말슴을

저버리고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그런 신앙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드락,메삭,아벱느고의 위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간 왕족과 귀족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방백과 수

령, 도백과 재판관 등은 신상의 낙성예식에 참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

포하는 자가 왕의 명령이니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등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엎드려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라고 외

쳤습니다. 만약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겠다고 소리쳤습

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들이 악기 소리를 듣자 금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드락, 메삭, 아벱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 사람인 그들을 참소했습니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왕이 세워 바벧론 도로를 다

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단 3:12)라

고 느붓갓네살왕에게 고했습니다.

 

이에 왕은 분개했습니다. 왕 앞에 끌려온 그들에게 느부갓네살왕으니 "사

드락, 메삭, 아벱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

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가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

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고 물었습니다.

 

그때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

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

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

서"(단 3:16-1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말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분이 가득하여 평일보다 풀무를 칠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가운데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세사람은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그때에 느부

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 모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사람이 아니었느냐"(단 3:24) 모사들이 그렇다고 답

하자 느북갓네살은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

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로 같도다"(단

3:25)라고 고백하고는 풀무 아구에 가까이 가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종 사득락,메삭,아벱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단 3:26)고 말했습니다.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불탄 냄새도 없이 풀

무불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시련이 왔을 때 단호한

신앙을 지켰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

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드락,메삭,아

벱느고 같이 우리도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금을 제련하고 은을 정련할 때 반드시 불 도가니를 통과합니다. 불순물이

위로 올라오면 은장색과 금장색은 그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녹은 은이나 금

에 은장색과 금장색의 얼굴이 비추일 때까지 합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의 불이 다가오면 우리 인격 속에 불순물과 찌꺼기가

제거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 인격이

나 삶 속에 시련과 환난, 고난의 불은 우리를 정금처럼 단련시킵니다. 이것

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4. 시련과 환난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그릇의 준비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을 귀찮게 하고 못살게 굴

려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좋은 것을 주기 위

함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진학을 위해 반복된 시험을 치르면서 학생들

의 실력을 테스트합니다. 시험이 많을 수록 학생들은 시험준비를 위해 노력

하고 자기 실력을 쌓기 때문입니다. 땀과 노력의 댓가를 많이 지불한 학생

은 거기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축복의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험과 환난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이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신앙을 인정하시

면서 우리는 시험과 환란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를

받기를 거부하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할 뿐입니

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같이 말슴하셨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

는 간주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

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

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5-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

나님 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구비시키시기 위해 광야을 지나게 하

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시험과 환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깨

어지고 변화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릇으로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라는 시험과 환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젖과 꿀이 흐

르는 물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의 광야를

잘 지나야 천국의 축복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시련이 없는 크리스천은 결코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향상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시련과 환난을 받아들이고 '더

놀라운 축복의 그릇으로 나를 준비시키시느니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

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불평과 불만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신앙의 재수생이 됩니

다. 우리는 결코 신앙의 재수생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시련이 고통과

연단을 잘 이기고 나면 우리는 주님 앞에 깨어지고 회개하고 더욱 순종하

고 감사하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 생명을 넘치게 얻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시험과 환난, 고난중에 낙심하지말고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

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성숙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발행일 : 940912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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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대 역전극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요 16:33

 

 

축구나 야구 혹은 농구경기에서 패색이 짙어졌을 때 최후의 일순간에 장쾌

한 역전 드라마가 연출돼 패비가 승리의 기쁨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 관중들은 함께 열광합니다.

 

일반적인 인생살이에서는 이와같은 대역전극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그

러나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우리들은 이같은 놀라운 역전극을 체험

하곤 합니다. 어둠이 변하여 광명이, 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며 낭패와 실망이 변하여 대성공을 가

져오는 이런 역전드라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항상 볼 수 있는 일

들입니다.

 

1. 대역전극의 주인 에스더와 모르드개

 

성경에는 BC 483년경 바사시대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사왕의 속민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왕의 이름은 아하수에로였습니다. 아하수

에로왕에게는 하만이라는 총리대신이 있었습니다. 왕의 극진한 총애를 받고

있던 하만은 왕의 권세를 힘입어 바사 나라를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하만에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눈에 거슬리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사람은 모르드개였습니다. 성경은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에스더 3:2)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만의 불만과 분노는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대권 문에 있는 바사왕의 신복이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 사실을 안 하만은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를 멸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

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붙여 왕의 부

고에 드리리이다"(에스더 3:4-9)라고 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자신의 인장반지를 빼어 하만에 주었습니다. 하만은 즉시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썼습니다. 그 조서에 내용은 "십이월 곧 아달월 십 삼 일 하루 동안

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

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에스터 3:13)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릎쓰

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에스터 4:1) 를 했습니다. 또한 각도에 있는

유다인들은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

에 누운자가 무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회한했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모르드개의

사촌 동생 에스더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살았기 때문에

왕후 에스더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모르드개는 삼촌이 죽은 후 삼촌의 딸인 에스더를 데려다가 자신의 딸같이

양육했습니다. 후에 왕의 조명에 의해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모이게 됐고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에스더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헤개는 에

스더를 기뻐했고 은혜를 베풀어 후궁에 자리에 오르게 했고 왕비였던 와스

디가 폐위된 뒤 에스더는 왕비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왕후가 된 에스어가 대궐 문앞에서 옷을 찢고 굵은베를 입고 재를

무릎쓰고 통곡하는 모르드개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 있는지 내시 하닥을 시

켜 알아오도록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할 계획을 세우

고 조서를 꾸며 방방곡곡에 보냈으니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구

하라는 말을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전달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당시에는 왕의 부름없이

왕 앞에 임으로 나가면 죽게 되었기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

다. 삼십일동안 에스더는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정이 모르드개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러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

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

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

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13-14)라며 에스더에게 강력한 도움을 요

청했습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이렇게 회답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 편에 서

있을 때 아하수에로왕이 바라보니 심히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왕은 금홀

을 에스더에게 내밀었고 에스더는 금홀의 끝을 만졌습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

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에스더 5:3).

 

에스더가 대답하기를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에스더 5:4) 라고 했습니다. 왕은

에스더가 말한 대로 급히 하만을 불러 에스더가 베푼 잔치 자리에 나아갔습

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술을 마실 때 에스더에게 다시한번 소청이 무엇이냐고 물

었습니다. 에스더는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

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에스

더 5:8)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날에 총리대신 하만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연회장을 나오다가 모르

드개가 대권 문에 엎드린것을 보고 심히 노한 마음이 들엇으나 참고 집에

돌아와 자신의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를 청하고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

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

함을 받았느니라"(에스더 5:12)고 자신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란 자가 대궐 문앞에 있는 한은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않다

고 불만을 토했습니다. 그러자 하만의 아내 세레스와 하만의 모든 친구들이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

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자신에 나아가소서"(에스더 5:14)라고 하만

을 부축하였습니다.

 

 

 

 

2. 역전패한 하만

 

그런데 그날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신하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읽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 그속에 기

록하기를 문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에스더 6:2)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왕은

이 일로 인해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는지 물었습니다. 시

신이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다고 대답하자 왕은 "누가 뜰에 있느냐"고

신하들을 찾았습니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구

하기 위해 왕궁 바깥뜰에 있었습니다.

 

왕의 명으로 하만이 들어왔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

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에스더 6:6)라고 물었습니다. 하

만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하며 생각하

고 아하수에로왕에게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

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

백 중 가장 존귀한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

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

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에스더 6:6-9)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만은 자신이 높아질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의 예우방법을 왕에게 말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

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

짐없이 하라"(에스더 6:10) 고 하만에게 명령했습니다. 순간 하만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만은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

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

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에스더 6:11)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사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습히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당한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중 지혜로운자와

그 아내 세레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엿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

러지리이다"(에스더 6:13)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그치기도 전

에 왕의 내시들이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갔습니다.

 

왕이 둘째날이 잔치에 술을 마실 때 다시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에스더 7:2) 왕후 에스더는 "

왕이여 내가 만일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

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

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에스더 7:3-4) 라고 대답했습

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냐며 흥분된 어조로 에스

더에게 물었습니다. 에스더는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에스

더 7:6)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만은 왕과 왕후 에스더 앞에서 두려

워했습니다.

 

왕은 노하며 잔치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후 왕이

후원에서 돌아와 보니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하만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하수에로왕은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

 

 

 

자 하는가"(에스더 7:8)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자 무리들이 하만의 얼굴

을 감싸고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때 내시 중의 하나인 하르보나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을 위하여 충성

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에스더 7:9).

 

아하수에로왕은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고 명했고 기세등등하던 하만은 결국

자신이 준비한 나무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왕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에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

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련됨을 왕께 고한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

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에스더

8: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에 유다인들은 해방을 얻었고 하만의 열 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시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

를 두려워하고 오히려 유다인을 도와 유다인을 죽이려는 그들을 오히려 진

멸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백성은 거대한 역전극을 체

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역사상 최대의 대 역전극

 

하나님은 인류를 대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우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

라"(마 4:17) 고 외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

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또한 굶주린 자를 먹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대역사

를 일으키셨습니다.

 

마귀는 이런 예수님을 로마의 법률과 유대인의 종교를 이용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

던 무리들에게 어둡고 캄캄한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형언할 수 없느니 처절

한 절망이었습니다.

 

마귀와 유대 지도자들, 로마제국의 지도층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환희도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줄

로만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삼일만에 대 역전드라마를 연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그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린 댓가로 누

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죽고 하나님의 영광

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악을 청산하셨습니다. 그 결과 과거,현재,미래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

만 하면 영생의 축복을 받는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대역전 드라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마귀의 무장해제를 알리는 청신호

입니다. 이제 마귀는 패배한 자요,무장해제된 자요, 세상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장차는 불과 유황에 타는 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주의 나라를 이땅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용서의 천국이 임하게 하셨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성령충만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치료와 건강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게 되었고 저주와 가난과 낭패가 변하여 아브라함과 축복이 임하는 나

라가 이땅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

하심으로 사망과 음부가 철폐되고 천국의 영광이 가득히 임하는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나라에서 건져내시고 사랑의 하늘나라를 옮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막연히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

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 고 했는데 그 천국

이 이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온 천하 만방에 전파되는 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

치게 얻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멸하려 하고 하

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하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역사는 십자가를 통해 대

역전되었고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를 안겨주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 속에 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역전 드라마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망이 변하여

빛이 되며 절망이 소망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한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할 우리가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기적이 산출된 거

대한 드라마가 연출된 것입니다.

 

4.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 살면서 환난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습

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그 환난을 오히려 승리와 영광으로 변

화시키는 위대한 역전극을 연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알

아야 합니다.

 

성경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15)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

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참고 견디면 고난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무

게를 가진 영광이 돌아오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

이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도비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고 약속하고 있습니

다.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인내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싸워 원수를 무너뜨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패배의식을 버리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환난을 변화시켜 영광을 만

드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어둡고 캄캄한

밤을 만나고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날지라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은 꿈

 

 

 

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환난을 당할 때 뜨거운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

와 유대인들이 삼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불평과 탄식을 뒤로 하고 뜨거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새벽기도,철

야기도, 금식기도 등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난을 당할 때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일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명령하시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순종해야 합니

다. 어려운 역경과 환경 속에서 주님이 일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며 주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시련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환경이 다

가오느냐에 관심을 갖기 보다 그 환경을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범

사에 감사하는 일이야 말로 모든 것을 이기는 지름길이 됩니다. 역전 드라

마를 연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승리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발행일 : 940904

분 류 : 설교

 

 

 
 
 

74

제 목 :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엡 2:10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

모두를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이십

니다.우주에서 하나님 이외에 선악을 판단하는 다른 권세자는 결코 있을 수

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시고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아시고 무엇이든

지 하실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십

니다.

 

이 크시고 광대하신 야웨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인간으

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에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우

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요 증명입니다.

 

우리들은 삼위일체 되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로 형성

되어 있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과 우리는 주인과 종 관계입니다.

 

주인은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을 소유하

지 못하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다 주인이

맡겨진 것이지 우리 개인의 실제 소유가 아닙니다.

또한 모든 일은 주인이 책임하에 있으며 주인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주

인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도 주인되신

야웨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지 자기 나름대로 행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주인이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하면 서쪽으로 가

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빈다. 종은 주인을 섬기고 사랑하며 주인은 종을 돌

보아야 줍니다.하나님의 소유된 우리가 죄악의 수렁에서 허덕일 때 예수님

께서 십자가 보혈로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값주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철

저한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오늘날 인본주의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

고 착각하면서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인

생이 공허와 허무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혼돈과 흑암 가운데 방황하다가 결

국 멸망의 낭떠러지고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과 1절과 2절에는 '하늘에 계신 주여 내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

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

리 눈이 야웨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

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이 주인을,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봄 같이 항상 하나님을 바라

보고 그분의 긍휼을 받아 살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종과 주인의 위치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요 우리

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여,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주를 앙망하고 기다리오니 주께서 인도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2.하나님과 우리는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목자는 양의 소유주입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항상 목자의 돌보심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목자의 손길을 떠난 양은 이

리에게 찢기고 사자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목자였던 시편 기자 다윗은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붙고함이 없으리

로다"(시편 23:1)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는데 양된 우리가 부족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목자께서 어떤 푸른 초장에 갈지 어느 쉴만한 물가로 갈

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목자가 소생시켜 주시고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

다.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목

자되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우리와 함께 계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공격하면 목자는 원수 앞에서 진수성찬

을 차려주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원수보다 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렇게 잔이 넘치도록 축복을 받은 우리들을 목자가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

하심으로 이끄시고 후에는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

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목자를 신뢰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목자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양이 목자를 앞서

뛰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것입니다. 선한 양들은 목자를 신뢰하고 선한

목자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목자만을 따라갑니다.

 

성경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도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

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2)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

고 도망합니다.

 

그러나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

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

숨을 버리노라"(요 10: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리에게서 구우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값주고 사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의 양들인 우리들은 죄의 수렁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된 위치에서

화목된 신분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길을 되찾고 목자에게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의 축복된 자리로 인도함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웨 하나님과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인도자이신 성령

님께서 절대 신뢰하고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과 우리는 토기장와 진흙의 관계입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려면 자신이 직접 산이나 들에나가 진흙을 찾스빈

다. 아무 흙이나 택해서 토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토기를 만들만한 진흙

 

 

 

을 택합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불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지 않스빈

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토기를 빚을 만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16)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 6:4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

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에수님품에 안기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는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토기를 만들만한 진흙으로 우리를 친히

택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진흙을 잘 씻기시고 더욱 부드러워 지도록 밟아 교만을

깨뜨리시고 토기장이신 자신의 손에서 토기를 만듭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깨뜨려 고집과

아집을 없애십니다.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다져진 진흙을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그릇을 만드십니다.

혹시 삶 가운데 환란이 다가오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환

란을 통하여 하나님은 토기를 빚기 위한 과정을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릇의 종류와 크기, 모양과 색채 등은 토기장이의 마음대로 정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 왜 저를 남자로 만드셨습니까? 아니면 여자로 만드셨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토기장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결정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를 만드셨고 또 장차 만들어 가시는 토기장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

에 우리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합니까? 그것은 절대 복종의 삶입니다. 흥

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토기장이가 인도하고 그릇이 놓이는 대

로 기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재 주어진 나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는 충성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 가정 등 모든 삶의 영역은 토

기장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과 운명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의 뜻이면 더나은 곳, 훌륭한 곳으로 옮겨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나친 탐욕을 가지고 발버둥치면서 토기장이의 주권에 도전한다면

그 결과는 허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두 수선공으로 부르셨습니

까? 그렇다면 구두 수선공으로 충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 최고의 구두 수

선공이 되십시오. 후에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구두 공장을 맡겨 주실지도 모

릅니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충성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맡긴 바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두 달란트는 네 달란트로

다섯달란트는 열 달란트로 주시지 한달란트를 주었다고 불평하고 감추어 놓

고 일을 안하는 사람은 그 한달란트 마저도 뺏기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

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순종하고 주어진 삶과 운명에 감사하며 주어진 직분

이 하나님 주신 천직으로 알고 충성을 다할 주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은

총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과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이는 것이지 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다면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하나님을 돌봐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붙어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초

에 붙어 있으며 보혜사 성령님께서 붙어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

을 할 때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포도나무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가지로 붙잡고 계십니다. 그

렇기 때문에 동남풍이 불고 서남풍이 불어도 쉽게 날려가거나 부러지지 않

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꺽어갈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9)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스

스로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하나님 스스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

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포도나무가 가지를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애씀이나 힘씀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빈다.

가지가 스스로 일해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까? 그렇지 않습

니다. 뿌리가 열심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수분과 양분을 모아서 줄기를 통

해 가지에 전달해주면 가지는 극서을 받아 꽃피고 열매 맺고 잎이 나는것입

니다.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는 이는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일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우리 가

지에게 전달하시고 일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우리 가지에게 전달하시고 성령

의 은혜를 전달해 주십니다.또한 치료의 은혜와 축복의 은혜,영생의 은혜를

전달해 주십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

히 일하셔서 우리에게 각종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웨 네 하나님이니 네 입

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만

넓게 열고 주님을 바라보기만하면 됩니다. 입을 연다는 것은 우리의 포도나

무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면 채우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은 야웨의 것입니다. 성경은 "일을 행하는 야웨,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야웨, 그 이름을 야웨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렘 3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웨는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일하셔서 그 열매를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이러므로 우리

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해

입을 넓게 열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뿌리와 줄기인 예수님을

 

 

 

통해 수고하고 일하셔서 우리가 그 진액을 받아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뿌리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뿌리 없는 나무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 없이 교회가 설수 없고 예수님 없이 크리스천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의지할 때 예수님이 일해 주심으로 그 은혜

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

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공급해 주

시는 은혜를 받아서 지상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

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5. 하나님과 우리는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몸을 움직이게 하고 삶의 계획을 세우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머리의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수족은 명령에 따르고 순종할 따름입니다. 수족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몸이 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

든 것을 계획하시고 생각하시며 움직이게 하십니다. 때를 따라 우리에게 지

혜를 주시고 총명과 지식,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머리이신 주님을 섬기며 따라가야 합니다.

 

머리는 몸을 소유하고 다스립니다. 몸은 여기에 절대 복종해야합니다. 머

리가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소유하시고 우리를 주장하셔서 몸의 생존과 안녕을 도모하고 몸을 보호해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믿음으로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순복하고 따라가면 머리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동하시고 인간은 따라가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능동적이며 인간

은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인간은 따라가며, 하나

님은 명령하시고 인간은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야웨는 일하시고 인

간으로 하여금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땅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섬기며 감사와 찬미 속에서 하나님의 은하혜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품안에 품고 계십니다. 하나님 품을 떠나 하나님을 배반

하고 자기 뜻대로 인생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하늘을 향해 매일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

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

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14-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늘문을 여시

고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고 주의 나라와 그 영광을 나타내며 살도록 역사

해 주십니다.

 

 

 

 

발행일 : 940828

분 류 : 설교

 

 

 
 
 

75

제 목 :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자료원 : 순복음소식 여의도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신명기 8장 11-18절

 

 

원수는 아무리 우리에게 좋게 해줘도 그 마음의 숨은 동기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리 나쁘게 대하여도 그

마음의 숨은 동기는 좋게 해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배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

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

나님을 반역하고 끊임없이 원망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는지, 왜 만나를 먹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의심한 그들은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

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사 광야를

지나게 한 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의 동기가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8장 15절로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

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

었느니라 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

가 네게 재물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

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을 고난과 시험을 통하게 하심은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시고 재물을 얻게하려 하심이라'고 성경

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가

지 삶의 고난과 시련은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익된 것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1. 고난은 인간을 낮추고 겸허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를 지나며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만들기 위

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이 항상 좋기만 하여 늘 평안하고 모

든 사람의 칭찬만을 받게 되면 교만하고 나태해져서 자기가 제일 잘날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센 고난과 시험, 환난을 통하게 되면 우리는 그 고난의 불

통이 튀어 깨어지고 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자기의 무능력과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예수 믿

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사람도 고난을 당하면 자신

의 무능력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

 

 

 

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유명한 의사 선생이 한분 계셨는데 저는 꾸준히 그분에

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차갑게 거절했습니다. 자신은유능

하니 무능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에게나 전도해서 위로를 주라는 것이

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그 무지와 오만함에 크게 실망하고 전도를 그

만 두었습니다.

 

수년이 흐른 후 그분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나를 만

난 그분은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분이라며 애원을 했

습니다. 사람이란 등 따뜻하고 배 부르고 모든 것이 편안할 때는 자기

의 실력을 믿고 교만해 하지만 심한 환난이 다가와 때리면 그 교만이

박살 나고 '자기' 라는 우상이 산산조각 깨져버리며, 하나님 앞에 무

릎을 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면 먼저 '자기' 라는 우상을 깨뜨리십니다. 자기를 우상화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

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가 신이 되어 있

고 자기를 우상화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수가 없는것입

니다. 이 때문에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2. 고난은 아집을 깨뜨립니다.

 

고집불통의 마음도 고난 앞에서는 깨어집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

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형이 4백명의 군대를 거느

리고 자기를 치러온다고 하니까 처자를 먼저 강을 건너게 하고 자기는

강 이편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만일 형이 자기 처자와 짐승들을 빼

앗고 죽이며 도망치고 그냥 두면 죽일 의사가 없는 것이니 자신도 강

을 건너가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건너가라 이 무지막지한

놈아, 연약한 처자식들을 형의 칼 앞에 내놓고 너 혼자 살겠다고 쪼그

리고 앉아 있느냐'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건너가라'고 명령했습

니다. 야곱은 '안가요, 못가요'하고 불복함으로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

니다.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밤새도록 씨름해도 굴복하지 아니하자 천

사가 야굽의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그러나 쓰러졌습니다. 일어나 보

니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리를 가지고 얼마나 달아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안 야곱은 천사를 붙잡고 '내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내 당신을 놓지 않겠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천사가 '네 이름이 무엇이

냐'고 묻자 그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이제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리라'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아침 해가 뜰 때 야곱은 절뚝절뚝 절면서 얍복 나루터를

건너갔습니다. 건강할 때는 도망갈 생각을 하고 절대로 굴복을 안했는

데 절름발이가 되고 나니 그럴 수도 없으니 어차피 일을 당하려면 용

감한 척하고 앞으로 나가보자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무서운 야

곱의 고집이 시험과 환난을 당하여 절름발이가 되었을 때에, 그 고난

으로 그의 아집이 깨뜨려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주

님 품에 암기었으면서도 주이릉 안지키고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주님

 

 

 

사업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그러나 고난의 태풍이 몰아닥치

면 그는 아집이 깨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이

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고난은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사가이 고난을 받기 전에는 돈,지위, 명예,권세,쾌락 등이마음 속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들만을 최고로 생각하고 이를 향해 뜁니

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 돈, 권세,명예,괘락이 다 날라가고 목숨이

위험에 처하기 되면 비로소 그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

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사라

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참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

생은 풀과 같고 그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허수아비 인생을 사는 것입니

다. 울긋불긋한 옷에 넓직한 모자를 쓰고 팔을 활짝 펼치고 논 한가운

데 서 있는 허수아비는 모든 사람과 날아다니는 새의 눈에 보입니다.

멋있게 보입니다. 굉장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만져보

면 그것은 지푸라기일 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

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외형을 아무리 찬란하게 치장해도 결국

은 지푸라기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푸라기만 있는 텅빈 인간에

불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오

시고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지 삶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돈과 지위, 명예나 권세를 거부하거나 포

기하는 것은 아니나, 삶의 중심이 되지 않고 삶의 액세서리에 불과하

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또 있어도 좋

고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올바른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가 있으면 그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올바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

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카아야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과 시간과 물질 등을 허탄한 데에 쓰고 있

습니다. 이들은 생을 다하는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께서 '너는 일생을

암 한 것 없이 다 소모해 버렸으니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라'고 하

셔서 이를 갈며 통곡하는 일을 당해도 도와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생명이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

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일하며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이러

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큰 고난을 당하면 세상의 헛

됨을 깨닫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젊은 날 고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목사가 되어 귀한

사역을 감당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꿈이 많고 야심

만만하고 실력에도 자신이 있어 세상 부귀영화를 취할 결심을 했었습

니다. 6.25전쟁의 고통으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혀 가던 중 페결핵

으로 쓰러졌을 때,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내 코 앞에 다가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

질, 권세, 생명을 다 잃은 시점에서도 잃지 않고 영원히 있는 것은 무

 

 

 

엇인가를 찾다보니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오늘날까지 35년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

지 마십시오. 그 환난과 시험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참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흔들어 깨워 일으키는 역사

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4. 고난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케 합니다.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는 아무래도 하나님만을 힘차게 믿기 어렵습니

다. 자기의 돈, 지위,명예 청춘, 실력도 믿스빈다. 그러나 고난은 그

것들을 하나하나 제쳐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빈손이 되었을 때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억센 고난으로 고독해질 때 진

짜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엔 '주여 믿습니다'하더라도

그것은 자기도 믿고 세상도 믿고 주님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서 모든 것을 제쳐 버리면 참 믿음의 훈련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든지, 천

지만물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나아갑니다. 오직 하나

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은 고난이 가르침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를 못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간은 세상과 자기를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

만 바라보게 되며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요, 위로와 소망, 능력과 힘이

되는 그 사람은 신앙깊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이 와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공

경해야 할 분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소홀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보면 하나님은 늘 좋게만 해주시는 분이 아니

라 불순종하면 채찍을 들어 때린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손자

귀여워 하니 수염까지 뽑으려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러

한 일이 있지 않도록 이모저모로 깨닫게 하시고 때리시기도 하는 것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하면서도 두려워 하고 공경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고난이 우

리에게 주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만나기 전에는 기도하기가 힘듭니다.

목사가 '하루에 한 시간 기도하라'고 하면 그렇게 기도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기도

를 드려도 끝쳐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불광동 개척교회 시절에는 전 교인이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왔습니다.

서대문에서도,여의도에 처음 나왔을 때도 새벽기도회에 성전이 가득하

게 성도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권면해도 예전

같이 참석하지를 않습니다. 생활이 부요하게 되니 기도할 의욕도 안생

기고 실제로 잘 하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대개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분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심정을 가진 분과 심각한 고난을

당한 사람으로 나눴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에도 '너희 중에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고난만큼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

 

 

 

를 해야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 기도하게 만

듬으로 하나님 앞에 깊이 들어가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좋은 선생이 됩니다.

고난은 우리가 더욱 주님을 믿고 순종케 하는 참으로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좋은

성도를 만드는 것이 고난이 하는 일입니다.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끝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찍어내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

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5. 고난과 영광

고난은 영광과 통합니다. 고난은 진리를 찾게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진리는 깊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도 깊은 것입니다. 고난의 깊은 길

을 통하면 진리의 깊은 곳에 들어갈 수가 있는것입니다. 진리란 평범

한 데 있지 않습니다. 금,은 보석같은 광물도 땅 밑에 깊이 파고 들어

가야 있지 길거리에서 돌처럼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도

깊은 곳에 있지 아무데서나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을 통하면 우리는 진리를 찾게 되고 진리를 찾게 되면 그곳

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십시

오. 심한 고난을 통하여 괴로움을 겪고 난 후에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

의 은혜를 받고서 옛날에 돈이 많고 여유가 있을 때는 기뻐하지 않았

는데 고난을 당해 다 잃고 난 후 예수믿고 은혜받고 난 다음 얼굴이

훤해져서 더 잘 웃고 옛날 보다 더 즐거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

이 넘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의 결과는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는 것입

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어지게 하고 변화받게 하고 우리를 낮추게 하

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편안한 길로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

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 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을 얻기 전에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겸허하게 하신

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에 복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때려서

변화시킨 후에 마침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고 가난한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고 깨뜨리신 후 마침내 복을 주셔서 재물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자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고난의 비에 젖어야

비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의 오솔길을 통해야 축복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여러분이 여러가지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께 축복을 주

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

사하고 기뻐하고 그 가운데서 깨어지고 변화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발행일 : 930627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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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해방선언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롬 6:1-23

 

 

지금으로부터 49년전인 1945년 8월 15일,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의

가혹한 통치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전국의

일장기가 사라지고 집지마다 태극기가 펄럭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도 서슬이 퍼렇던 일본 순사들과 헌병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일본신사가

파괴되었으며 곳곳에 서 임아던 일본의 간판들이 길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생명의 위협을 받아 피신해 있던 애국지사들은 만인의 추앙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징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갔던 우리 동포들이 하나 둘

씩 귀환동포란 이름으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한되어 함박 웃음을 웃었고 길거리고 쏟아져 나와 손에 손

을 잡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

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방과 자유가 가져다 준 기쁨과 감격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광복 49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영혼의 해방과 자유에 관하여 함께 생각하

면서 주님께서 2천년 전에 어떤 속박에서 우리의 해방을 선언해 주셨는지

여러분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마귀의 종이 되어 기나긴 세월동안 마귀의

발 끝에 짓밟히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 골고자 언덕 갈보리 십자

가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그 찢긴 몸과 흘린 피로서 우리들에게 해방을 선언

해 주셨습니다.

 

1.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자손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칸이 난다'는

속담처럼 아담으로 시어서 아담으로 태어난 것이 인간의 생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해 쫓겨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손들은 태에서부터

이미 죄악의 씨를 받아 죄인으로서 잉태되고 죄인으로 자라서 탄생했습니

다. 또한 죄의 사슬에 묶여서 이 세상에 사련서 일생동안 죄와 불의와 추악

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도 죄에 대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

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

라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1-24)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수양을 닦고 도덕을 쌓고 교육을 시켜도 그 지체 속에 있

는 죄악의 법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지체 속

에 있는 죄의 법이 일어니사 그 마음의 법과 싸워 우리를 포로로 잡아서 계

속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

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를 원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우리의 모든 자

범죄를 일생동안 다 씻어 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의 생명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죄의 사슬에서 해방된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저항할 때 죄는 다시 우리를 포로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죄의 종으로

자신을 내어 주기 전에는 죄가 우리를 이끌고 갈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

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 성령의 권세로 말미

암아 죄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사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법

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들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노

력과 수양과 도덕으로 하나님처럼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깨뜨

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를 계명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행위가 얼마나 계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

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

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비춰볼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에 모자라는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또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 죄성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

히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함으로 죄악에

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십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십계명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두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

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법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사라은 하나님의 심판

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십계명은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고 인간에게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

게 하며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아래 거하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로 나오도

록 해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올 때 보혈의 피로 우리 일

생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악을 도말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1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을 이기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성령과 더불어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을 들추

어 낼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율법은 우리를 도와주는 선생에 불과합니다. 우리

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지 율법 자체가 우리를 묶어서 심판하고 정

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육신의 정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인간 속에 있는 타락하고 부패한 성품입니다. 수양과 도

덕,노력과 교육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

다.

성경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

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

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

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

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

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롬 7:18-2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선하게 살려고 해도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악의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이겨서 포로로 잡아 언제나 죄와 악을 범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격적이고 교육을 시키고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도 이 세상은 부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부패와 죄악의 홍수가 사람들을

휘감아 타락한 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육신 안에 거하는 정욕과 죄악의

법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만 가능합니

다. 예수님은 친히 육체의 고난을 받으시고 육신 안에 있는 정욕과 죄악을

다 멸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

로 갑옷을 사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

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쫓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육체 속에 있는 음란과 정욕, 술취함과 방탕함

과 연락, 그리고 무범한 우상숭배들이 육체에 나타나는 것을 정복하셨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할 때 육체를 이기신 그리

스도의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육체의 정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

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정욕을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로마서 8장 3절로 4절에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

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

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

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율법을 주어도 육신이 죄악에 묶여 있기 때문에 율법이

도저히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

진 인간으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육신의 모든 죄를 다 책임지시고 십자가

에서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

령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법이 이루어지고 육신의 정욕을 이기도

록 역사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해방자로 오셨습니다. 성경

 

 

 

으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시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면 성령님께서 육체

의 일을 다 멸하시고 의를 이루도록 해주십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악의

몸은 죽고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 영이 의롭게 되어 살아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0절에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몬은 죄로 인하

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장16절에서는 "내가 이르노니 너하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

하면 육체의 욕시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마귀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귀의 종으로 태어났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

죄자입니다. 마귀는 인생을 꾀여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이 세상 종교를

따라가게 만듭니다. 마귀의 제1목표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아들 예수 그

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

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

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

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

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석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과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18-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저 높은

하늘과 수 많은 별들과 태양,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체들이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창조자는 분명히 계십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

상이나 금수나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잡신과 우상을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또한 마귀는 사람들이 세속을 좇아 살도록 미혹합니다. 에베소서2장2절로3

절에는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

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

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람들이 세상 풍속과 육신의 욕심을 따라서

제 마음대로 살면서 하나니을 저버리도록 유혹합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은 젊은시절 마약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

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회개의 간구를 드

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더니 더럽고 악한 영들이 튀어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순간 마약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간증을 들어 보았습

니다.

성경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

라"(골 2: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

게 되면 악한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마

귀의 권세는 십자가에서 무너졌고 우리는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을 얻게 되

었습니다.

 

5. 우리는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인간의 최대 공포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사망의 공포를 사람의 힘으로

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의 공포를 잔잔하게 하

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

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4-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공포 속에서 마귀의 종이 되어 죽기를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우리

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선물로 주셨고 영생과 소망의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

들의 첫 여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아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

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가 예수안에서 이제 사망을 이기고 살아나서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죽은 자와 살아서 부활을 얻는

자, 모두 사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1절에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

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

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죽음 앞에 두려워 할

필요와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51절로 55절에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

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

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

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영원히 철폐되어 버렸습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주시는 참된 해방과 자유를 통해 속박

하는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

다.

 

발행일 : 940821

분 류 : 설교

 

 

 
 
 

77

제 목 : 왜 기도해야 하나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행 6:4

 

 

인간에게 있어서 기도는 본능적인 것입니다. 본능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후천적으로 터득한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을 말합니

다. 사람들은 인생길에 역경이 다가오면 반드시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의 올바른 기도를

들어주십시니다.

성도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왜 기도해야 할까요?

 

1.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는 회개할 수 없고 회개하지 않고는 천국을 체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4:17)입니

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체험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천국의

은총을 체험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근본적으로 죄

인이요, 살아가면서 많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복음선포를 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나

타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 행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불신과 멸시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의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

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

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 4:25-2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불신이 있는 곳에는 기적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셨을 때는 놀라운 하나

님의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

를 기울였으며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권세있는 예수님의 말씀

에 놀랐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

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눅

4:31-32).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와 순종의 역사가 없는 곳에는 천국의 역사

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천국의 역사를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회개햐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기

도를 도와주십니다. 이는 마치 전선이 연결되어 있으나 스위치르리 올리지

아니하면 전등이 켜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성도

들과 함께 하십니다. 성도가 회개하며 기도할 때 성령의 전등이 환히 밝혀

져 죄의 어둠,저주의 어둠, 질병의 어둠 영벌의 어둠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란, 바로 우리를 회개시키고 천국의 은총의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린느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말씀하셨으며 "이

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편 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

까?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려면 제일 먼저 감사, 찬양해

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

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하도록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처음부터"...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

은 사람입니다. 성도는 기도할 때 절대주권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시요 만

주의 주되신 하나님, 인생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

고 찬양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는데 그럴때마다 먼

저 감사,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용서함 받고 하나

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하나님의 그 섭리의 은총을 찬양합

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이렇게 먼저 감사, 찬양을 드리면 세상의 염려,

근심이 물러나고 어느새 하나님께서 내 심령을 붙들어 주시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감사,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영화로움을 느끼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부모든지

자식이 "부모님, 고맙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하고

진지한 자세로 고마와한다면 영화로움을 느끼고 좀 더 잘해 주려고 애쓸 것

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처음 인사부터 불평하고 무조건 달라고만 한다면 어

느 부모가 도와주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셨는데(행

13:22), 다윗의 시편을 보면 감사와 찬양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

나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을 하는 성도를 기쁘게 여기시고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하고 소멸케합니다.이러므로,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축복을 받으려면 감

사, 찬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

게 구원을 보이십니다. 여러분은 감사, 찬양의 기도를 통해 영혼이 잘 됨같

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3.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충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령충만을 한번 체험했다고 해서 항상 그 성령충만이 지속되는 것

은 아니빈다. 죄악된 세상에 사는 성도는 성령을 소멸할 위기 속에 항상 살

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도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의 도전을 극복하고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되 몇 분 정도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성도가 성령충만을 지속하

려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신령한 세계와 육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기도할 때 우리를 자석처럼 이끌어 파멸시키려는 육신의 세

계의 그 힘은 무력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하면

성령이 점점 소멸되어 원수의 세력이 우리를 파멸의 세계로 이끌어 갈 것입

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육신의 사람이 되어 파멸을 당하느냐, 신령한 사람

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느냐는 끊임없이 기도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일심으로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오순절날이 이르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가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

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성령충만을 받은 후 좌절과 나약의 자리를 박차고 일

어나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

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

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

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이로소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슴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

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

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의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23-31).

 

그들은 핍박을 받아 고통스로울 때 뿔뿔이 흩어져 침묵을 지킨 것이 아니

라 함께 모여서 큰 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역사가 일어

나고병이 낫고 기사와 이적이 나타날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힘을 얻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나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도 기도를 통해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는 능력있는 증인이 되어 회개의 역

사, 치료의 역사, 소망의 역사, 능력 행함의 역사를 주의 이름으로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를 믿는 성도, 복음증거의 사명이 있는 성도는 모여서 기도해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성령충만할 수 있으며 성령충만해야 능력있는 증

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는 특별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오대양 육

대주에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게을리함으로 성

령을 소멸한다면 복음을 증거할 능력을 잃고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 것입니

다. 따라서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고 모일 때마다 이웃 복음화와 민족 복음

화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충

만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성령충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성

도가 신앙의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경지식, 신앙지식이 많다고 하여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런 요소는 필요합

니다. 그러나 성도가 생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생활 속에 실천하려면

근본적으로 성령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지식 이전에 체험입니

다. 어떻게 성령충만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외에는 없는 것이비다.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한 사람이라도 미혹시키려고 갖은

궤계를 다 부립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때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나약한 신잦

자 형식적인 신자, 낙오하는 신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늘

기도함으로 성령충만하면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어 마귀의 궤계를 무너뜨리

며 담대하게 떳떳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늘은 야웨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 115:16)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인간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할 수 있는 은총을 마

련하시고 이런 역사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

무런 이유없이 무조건 인간에게 이런 역사를 베푸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인간이 기도할 때 베푸십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관

여할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결혼한

자식에게 살림을 내준 다음에는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님, 이런 일좀 도와주세요"하면 여러분이 능력이 있는 한도 내에서 도

와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비로소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

는 것입니다. "네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도와줄 수 없었다."여러

분은 하나님께 이같은 책망을 듣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하시를 바랍니다. 사

무엘은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야웨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께서 역사하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구원

하시고 각 개인에게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유대 민족이 바벧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다니엘

이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던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

하여 신앙심이 두텁고 애국심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금식하며 철야기

도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리라"(단 10:2-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 20일이 되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1일째 되는 날 갑자기 이상중에 다니엘 앞에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띠를 띠고 번개빛 같은 얼굴을 가진 주의 사자가 나타나 하나님

의 승리의 약속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를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

엇이든지 땅에서 풀리리라"(마 1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

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역

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5.우리의 기도는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

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

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

이니라"(딤전 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혼란과 난리가 일어나면 단정한 중에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나라의 살림을 맡은 사람들

이 정도를 걸으면서 성실하게 임무를 다함으로 사회가 안정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갈 때 버스 운전사를 비난하고 욕하고 윽박지른

다면 불행한 결과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격려해 주고 용기를 주

고 힘을 준다면 우리는 목적지가지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운전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우리는 분명히 지적을 해야 합니다. 그러

나 그 방법은 평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나라를 운행하는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고 용기

를 북돋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길을 잘못 들어설 때는 분명

하게 지적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평화적으로 해야할 것입니다. 나라

의 운명을 짊어진 위정자들이 잘못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이러

므로 우리는 위정자들이 올바로 정치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기도해야 합니

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위정자들에게 지혜와 총명과 능력과 정의

감을 주셔서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으며 특히 김일

성 사후 김정일 체제의 안개국면에 있는 북한 현실로 남북대화가 연기되었

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핵폭탄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

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전 국민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

님께서 강한 오른편 팔로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변화시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기

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와 찬양을 하게 하며 성령충만과 하나님

의 역사를 체험케 하고 안정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

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렘 33:3)이르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곧 호흡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수분으리 잃은 화초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통해 위대한 체험

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발행일 : 940814

분 류 : 설교

 

 

 
 
 

78

제 목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자료원 : 순복음소식 여의도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에베소서 6장 10-18절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

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러 아말렉 군대와 싸우

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사막 행진에 지치고 고달픈 터

에 아말렉의 침공을 받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여호수아야 너는 군대를 거느리

고 아말렉에 대항하여 나가 싸워라 나는 내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이

잡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서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튿날 여호수아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합니다. 이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그 전선이 보이는 산

꼭대기에 지팡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손을 높이 들고 여호소아와 그 군

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드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셔서 여호소아

와 그 군대들이 크나큰 능력을 얻어 아말렉을 밀어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팔이 아파 팔을 내리니 하나님의 능력도 그쳐서 아말렉이 기세

등등 이스라엘을 밀어부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수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

을 내리면 지고 ... 할 수 없이 아론과 훌이 돌을 가지고 와서 돌 위

에 모세를 앉히고 각각 한폭 팔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계속 팔을

든채로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 임하여 여

호수아와 그 군대들이 힘을 얻어 아말렉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습니

다. 이스라엘 군대는 승전가를 부르며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우리의 씨름은 영적인 것이 먼저임.

 

아담의 타락은 영적인 것이 먼저였습니다. 육신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이미 영적으로 발생한 표현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군대들이 들판

에서 싸우지만 실제 전쟁은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전쟁으로 기도가

있을 때에는 이기고 기도가 없을 때에는 진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보

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씨름은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

적으로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는

육신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은 현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

니라 배후의 강력한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기 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삽니

다. 영적인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우리는 긍정적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

다. 반면 영적인 분위기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면 우리의 현실은 부정

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이 우리 보기에는 육신적인 일 같지만 실제는 영

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난 것

은 하나의 역사적, 현실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전에 영적인

 

 

 

사고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세계 속에서 마귀가 와서

아담과 하와를 끊임없이 꾀였던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 속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마귀의

꾀임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영적인 배후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 하나님이 예비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광야의 시함도 보십시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광

야에서 나오셔서 죄인을 용서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등 기

적을 행하니까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그 위대한 역사에 감탄하고 감동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있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에서의 싸움에서 그리스도가 이겼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모든 행하 다

일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주 40야를 아무도 없는 광야에 들어가서 금식하고 기도하

며 먼저 영적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온갖 것으로 시

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등 마귀의 유혹에 끌려가지도 항복하지도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그의 3년 반 동안의 사역이 성령의

분위기 속에 싸여서 그 능력으로 마귀의 일을 모조리 멸할 수가 있었

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

은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계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욥의 시험을 보십시오. 욥이 당한 고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맏아들의 집에서 잔치를 하고 있던 7남 3녀가 큰 바람이 불어와 몰사

를 당했습니다. 또 갑작스런 공격으로 짐승 떼를 다 빼앗겼습니다. 약

대 3천, 소5백,암나귀 5백 마리를 다 잃었습니다. 또 갑작스런 폭풍우

와 벼락으로 3천 마리의 양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 배후를 보면 마귀가 하나님께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받은 후에 일

어킨 일이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일의 원인자가 되었다는 것을 성

경은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이기지 못하면 현실적인 면에서

도 이지기 못합니다. 영적인 면에서 심지 아니하면 현실세계에서 거

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세계의 싸움에서 이겨

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속한 사람은 영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믿고 회개하여 영의 눈이 열렸기 때문

에 현실적으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먼저 영적인 세계에서 승패가 결정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2. 마귀와 귀신의 제압은 금식과 기도뿐

에수님께서 세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가 기도드리실 때 예

수님은 변화를 받아 그 옷이 빨래한 옷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찬란하게

희어졌습니다. 얼굴은 태양같이 빛나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위대

한 장면을 체험했습니다. 그러고난 다음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산 아래 남겨두었던 9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한 아

버지와 논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많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서서 흉을 보고 있는데 9제자

가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상황인즉 한 사람이 아들의 귀신

들린 것을 쫓아달라고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귀신들

을 쫓아내려고 애를 써도 쫓겨나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통찬을 하고 모든 다른 사람은 비웃고 조롱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시자 그 아버지는 즉시 뛰어나 발 앞에 엎드려 간청

했습니다. "주여 귀신들린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당신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쫓아내지 못하였나이다."예

수님께서는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시면서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

께 있으면 너희의 불신앙을 참을 수 있을 것이냐"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니 그 아이가 땅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귀신이 소리쳐 나가매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나 아이를 일

으키니 완전히 나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시자 제자들이 조

용히 여쭈었습니다. '주여, 우리는 왜 귀신을 내어쫓지 못했습니까?'

예수께서는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이러한 유가 나가지 아니하시느니

라 너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금식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힘을 의지하

여 영의 세계를 극복하려고 하니 그것이 되겠느냐?' 라고 반문하셨습

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육신적으로 살면서 영의 세계를 제압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와 금식, 이러한 것들

이 마귀와 귀신을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에 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

니엘은 그 나라와 민족을 염려하며 장래를 알고자 하여 강가에 나가서

금식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와 함께 많은 동료들이 마음을 합해 일주일

을 금식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낙심

하여 물러갔습니다. 그는 2주간에 걸쳐 기도를 드렸습니다. 역시 효과

는 나타나지 않았고 또 많은 친구들이 낙심하여 물러갔습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20일째 되는 날도 아무런 효과가 없더니 21일째 되

자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광명한 천사가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을 합

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사랑받는 다니엘아 네가 첫날 기도드렸을 때 그 기

도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을 주어 보내셨다. 그러나

공중권세 잡은 파사국군, 파사의 영적 군대들이 나를 막음으로 20일간

밀고 당기고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군장 미가엘을 보내주셔서 오

늘 이 시간 귀신의 진을 무너뜨리고 응답을 가지고 왔다.'

 

다니엘이 한 주일이나 두 주일 기도하고 낙심했다면 그는 응답을 받

지 못했을 것입니다. 3주일 간, 원수의 진이 무너질 때까지 그는 기도

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다니엘은 자기가 지상에서 기도를 드리면

천상에서 그 기도를 받아 마귀와 싸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버

티고 버티어 기도했고 그 결과 이겼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다니엘의 기도를 모범삼아 '다니엘 기도'라고 해서

21일간 금식하며 철야하며 기도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

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역사상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전쟁과 분쟁, 모든 고

통 등에 대해 육신에 속한 사람은 혈과 육을 바라보고 싸우지만 영적

인 세계를 보는 사람은 그 배후에 이것을 결정짓는 것은 영적인 것이

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기도로써 원수의

세력을 정복하고 기도로써 하늘 문을 열어놓아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

리를 일하도록 만드신 현실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긍정

적인 세력과 축복과 하나님의 영광의 세력에 둘러싸여서 승리할 수 있

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오늘날 기도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

로, 성령으로 만귀의 정세와 권세를 벗어버린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써 우리를 무장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무장으로 우리가 불퇴전의

기도를 드리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중권세잡은 귀신과 마귀들은

쫓겨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마귀는 무

장해제가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면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요8:32). 우

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가 된 것을 알고 물러가지 않고 끝

까지 기도로 밀고 나가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물러갑니다. 주님께서는 물러가

지 않는 기도를 드리라고 강권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와서 거듭 자기의 억울한 사정

을 들어 달라고 호소할 때 그 재판관이 당분간은 듣지 않다가 나중에

는 번거로워 견딜 수 없다며 들어 주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

습니까? 그러면서 내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있는 자를 보겠느냐, 밤낮

부르짖는 백성에게 아버지께서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느냐고 말씀하

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끊임없이 부르짖어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해 말씀

하시면서 한 예화를 드셨지요. 한 밤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가 왔

는데 줄 떡이 없으니 꿔달라고 다른 친구네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러나 그는 나와 내 자녀들이 잠자리에 들었고 지금은 떡을 줄 수 없으

니 내일 오라고 했으나 그는 이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문을 두

드렸습니다. "떡을 주시오, 떡을 주시오."

 

그는 단순하게 떡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장엄한 웅변이나 거창한 설

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미사여구, 연설다 필요치 않

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계속해서 돌았듯이 하루,이틀,

사흘... 계속해서 우리 원하는 바를 아뢰면 문이 열립니다. '내가 친

구로 말미암아 떡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부르짖어 나를 괴롭히매

떡을 주겠다'고 한 그 사람의 말을 하시면서 예수께서 우리도 기도드

릴 때 끈질기게 불퇴전의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

게 해야 마귀와 귀신을 제압하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산 위와 산 아래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위에서 기도로써 영적 싸움을 했습니다. 그것

은 영화로움도 화려함도 즐거움도 없고 고통만이 있는 외로운 싸움입

니다. 기도란 중노동인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든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지칩니다.마귀가 저항하고 기도

를 못하게 함으로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모세도 지쳐서 쉬고 또 기도

하다가 지쳐서 쉽니다. 기도는 혼자 드리면 지치고 피곤할 때가 많습

 

 

 

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훌과 아론이 각각 한쪽 팔을 들고 함께 기도했

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너희 두, 세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들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혼자 기도드리는 것

이 더 효과를 발생하는 것은 이 르비딤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의 산 위

기도 모습을 통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합심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로 낙심될 때 서로 힘을 주게 됩니

다. 서로 약해질 때 서로의 기도가 상승작용을 해서 힘을 주는 것입니

다. 성경은 '한 사람은 천을 쫓고 두 사람은 만을 쫓는다'고 말씀합니

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드리는 합심 통성기도는 크나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북통일 문제도 그렇습니다. 북한 김일성이 아무리 원자탄,

미사일을 개발하고 온갖 정치적 술수를 써도 그들의 이기고 지는 것은

배후의 영적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그들을 밀어주어도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열고 주의 사자들을 보내어서 치면 견딜 수가 없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기도로써 이 문제에 접근하고 다

음으로 실제적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위에서 기도로써 영적인 싸움을

했지만 여호수아 군대는 산 아래서 실제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실제적

인 싸움의 성패는 배후의 영적인 기도 싸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

도로써 패한 사람은 현실적으로도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주일의 첫날인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모세와 아론

과 훌처럼 산 위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곧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것

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 기도드리면 월.화.수.목.금.토

요일이라는 세상 들판에 나가 싸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으로 원

수 아말렉을 물리치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주님께 나가서 예배를 잘 드린다는 것은 한 주일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배후에 지니고 나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의 기도 이후, 들판에서의 여호수아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한 주일에 첫날인 주일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나머지 엿새 동안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시기를 바랍니

다.

 

또 새벽기도는 하루의 맨먼저 시간을 산위에서 영적으로 싸우고 종일

남은 시간은 산 아래서, 세상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인 기도

로 이기지 못한 전쟁은 생활전선에서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

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많이 기도하여 영적으로 평안과 확신을 얻은

후에 실행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하여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의 중대한 잘못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배에 그

치고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 패배하고 낙심

하며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살고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천국 삶을 살려면 첫째도, 둘째도,셋째도 먼저 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바울 선생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

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

 

 

 

자들과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씨름은 인간적인 씨름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며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

여 흑암의 세력을 묶어버리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라고 바울 선생

은 권면합니다. 성도님들 힘껏 기도하여 승리의 삶 사시기를 기원합니

다.

 

 

발행일 : 930620

분 류 : 설교

 

 

 
 
 

79

제 목 : 중생의 의미

자료원 : 순복음가족 여의도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요한복음 3장 1-15절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의 높은 관원 중 한 사람으로 니고데모라는 사

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산헤드린의 존귀한 관원이었는데 산헤드

린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유대인을 다스리는 오늘날 국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이라는 것을 보고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이 함

께 하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낙인찍고 반대했습

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온 분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행한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역 주민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랍비여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런 일은 할 수가 없습

니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

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놀라서 '사

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다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말하는 것은 육신의 어머니 배에 다시 들어갔다

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제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대

답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무슨 수수께끼로 듣는 것 같았습니다. 알 수가 없었습니

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것을 압니까?' 하고 또 질문하자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해

도 네가 모르거든 하물며 내가 하늘 일을 말하면 알겠느냐 하늘의 일

은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나밖에 없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광야에서 뱀

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외국말이나 수수께끼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잘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중생

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생에 대한 의미를

밝히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예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물

과 세례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변화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외면적으로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어떠한 종

교나 이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존재적인 신분에 변화가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한 후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 변화를 외멸거으로 표상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물에 들어가서 목사님의 손에 의해 물속에 잠긴 바 되고 다시

물속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물무덤 속에 들어가 장례지내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의해서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외면

적으로 표시하는 것자비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새로 태어나는 획기적

인 내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옛 사람 즉 아담의 사람이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존

재를 끊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의 삶에서 완전히 단절됩니다. 오늘날

육의 사람은 모두 다 육의 조상 아담의 혈통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데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로서 그 아담의 삶의 모든

연결에서 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해서 새 삶을 받아 살도록 성령

께서 우리의 삶 속에 위대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리

에게 깨닫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종

교를 믿는 것이나 하나의 의식이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침례 받을 때에 우리가 외면적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완전히 죽고

장사지낸바 되어서 아담의 삶에서 단절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상과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천국백성이 됨을

확실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를 마귀의 세상

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볼 수없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세상과 마귀의

지배 하에 있고 하나님의 아들나라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의아들 나라와는 아무런 관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여러분께서 마음문을 활짝 열고 예수 그리스

도를 구주로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과 여러분 속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는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수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옛 사람은 완전히 죽어 장사 지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부활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수양과 도덕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

님의 성령께서 이같은 변화를 여러분 속에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천

지만물을 지으신 성령의 창조적인 역사가 우리 속에 임하여 위대한 변

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과거를 청산시키고 묻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셨으므로 이제 여러분은 세상의 지배 하에 있지 않습니다. 마귀의

지배 하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

다. 천국의 지배 하에 놓여 있는 것이빈다. 이러므로 다시는 세상과

마귀를 향해서 돌아가면 안됩니다. 세상과 마귀와 짝을 해서도 안됩니

다.

 

그 세계와는 이미 영원한 단절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

님, 예수님이 계시며 우리의 속사람은 천국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담과 불병거 안에 있으며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자고 깨고

숨쉬며 사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

 

 

 

암아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만 그는 이 진

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장사 지낸 후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 진리를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오늘

날 중생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성찬을 통한 중생의 의미

물과 성경으로 거듭난 사람을 위해서 아버지께서 차려주시는 천국 식

탁일 바로 성찬입니다. 이 성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승리에 동참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참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이 거룩한 식탁을

예비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찬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자

믈 먹고 그 흘리신 피를 마실 때에 우리의 삶속에 거대한 변화가 다가

온 그 진리를 우리의 몸을 가지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용서와 의를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성찬

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그 흘리신 피

를 마실 때에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출생시부터 죽을 때까

지의 모든 죄, 원죄의 자범죄를 다 청산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 들

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떡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천하에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 속에 중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거대한 변화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죄의 포로가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공표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찬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는 죄악 세상

에서 정결함을 받아 거룩함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선고하

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로 33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

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

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

을 때에 예수께서 모든 죄의 힘을 깨뜨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의 권

세를 깨뜨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에 나의 생애를 주장하던

모든 죄악의 힘은 깨뜨려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죄를 짓밟아버리고 승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찬을 통

해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

신 피,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자기 죄를 이미 젖혀 버리고 만 것입

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

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

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2-3).

 

중생을 통해서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

서 벗어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죄가 걷혔습니다. 이러므로 이

 

 

 

죄를 우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철회해 버려야 합니다. 죄가 우리에

게 다가올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결하여 쫓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다시는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하빈다. 예수 그리

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인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시

키는 것입니다.

 

성찬과 떡과 잔을 마실 때에 우리는 치료의 축복에 참여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릴 때에 우리의

모든 병을 대신 짊어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찢어진 살점마다

흘리신 핏방울마다 모든 질병을 청상하기 위한 대가가 되고 그를 통해

치료가 넘쳐납니다.

 

또한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 중생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깊고

넓고 놀라운 축복의 은혜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

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성찬의 떤을 먹고 피를 마실 때에 나의 모든 저주,낭패와 실망과 가난

은 예수 그리스로 말이마아 청산되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요와 축복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장차 부활의 영광스런 날에 나도 부활할 것을 확신한

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서 주님은 "내 살

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찬을 대할 때에 우리는 이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이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이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그리

스도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상속으로 받게 된다는

확실한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한 결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축복의 의미인 것입니다.

 

3. 결혼의 비유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

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

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게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에 되지 아니하느니라"(롬7:1-3).

 

여러분 우리가 중생하기 전에 육신의 사람으로 살 때에는 율법과 마

귀를 남편으로 섬기고 사는 것으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이 마귀와 율

법이라는 남편은 언제나 정죄하고 언제나 부정적이고 우리를 도적질하

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삶은 바로 지옥과 같은 삶

입니다.

 

우리 육신도 못된 남편을 만나 살게 되면 사는 것이 죽는 것 같을 수

있듯이 우리가 중생하기 전에는 마귀와 율법 아래서 고통을 당하면서

죽지못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놀라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우리는 죽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셔셔 장사지낸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으로 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가 세상에서

죽어버리고, 세상의 남편인 마귀와 율법에서 죽어버리고 그리스도 안

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

다.

 

오늘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마귀 남편에게서 죽어버리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지고 마귀에 대해서 자

유롭게 놓여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세상에 대해서 죽

어버린 우리들은 장사지내고 그 자리에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좋은 사랑이신 예수님의 신부로서 시집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마귀 신랑에게서 죽고 장사지내 버리

고 부활해서 예수 신랑에게 시집을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 삼고 시집을 간 사람들인 것

입니다.

 

성경은 결혼한 여인들에게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경

외하'고 말씀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경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라'고 하셨으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희생을 요구하

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에수님을 존경하

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예수님께 복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므로 희생적으로 우리를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

다.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저주를 청산해 주셨습니다. 우리

의 죽음까지도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주셔서 우리 안에 있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렇게 좋은 신

랑이 천하에 어디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신랑을 만나서

이제 그와 함께 살게되므로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

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

된 바와 같이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롭게 되었으며 성찬을

통해서 새롭게 된 것을 확인했으며 그리스도와 결혼함으로 새로운 믿

음 소망 사랑 안에서 살게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중생한 사람의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신 것이 바로 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

어 하늘나라에 속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

입니다.

 

여러분은 다 예수의 사람, 예수 신부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서 살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

습니다.

 

 

발행일 : 930614

분 류 : 설교

 

 

 
 
 

80

제 목 :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죄들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렘 5:1-13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각종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

로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기후 변화는 사라지고 급

작스스런 기후의 변화는 인간과 자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불볕 더위에 가뭄이 지구 여러 지역에 일어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때

아닌 호우로 물난리를 겪고 있으며 한여름에도 냉기가 돌아 농산물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촌 여러곳에서 지진과 기근이 계속되고 민족과 동족 간의 싸움이

발발,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최첨단 의학기술

로도 감당 못할 괴질이 발생하고 지금 르완다 내전으로 피난민들이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의 유행병에 걸려 하루 3천명씩 죽어가는 생지옥 같은 현

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 상황 등을 접하면서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한 말슴이 우리 눈

앞에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 많은 사람이 내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도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

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

라"(눅 21:8-11)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인본주의로 살아온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

님의 경고요,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상 유래 없는 한발과 무더위로 신음하고 있으며 수온 상승으

로 생태계에 이상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 천지의 주인이시요,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시고 다스리시

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잘못을 통회하고 자복해야 될 것입니다. 지

금이 바로 하나님을 노하게한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 자신과

민족을 위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때입니다.

 

1. 우상과 사신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출 20:5)는 것은 십게명 중 2계명에 속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고 우상숭배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주전 869년, 이스라엘의 7대 왕에 오른 아합이란 인물이 있습니

다. 아합은 두로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벧을 왕비로 삼았습니다.

이세벧은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여자였습니다 .이세벧은 이스라엘

에 이방 제사장들을 두었고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산당을 세우고 바알예배와

이교문화를 이스라엘에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웨 신

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도록 강요했습니다.

 

아합왕과 이세벧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우상 제단을 처처에 세

워 놓고 하나님께 반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

리야를 통해 "...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말씀하

시고 아합에게 고하게 했습니가.

 

한해가 지나도 두해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아니했습니다. 우물도 마르고 산

천초목도 마르고 온 천지가 기근으로 시달렸습니다. 제삼년에 야웨의 말씀

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

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

게 이스라엘에 기근이 온것은 야웨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둘을 좇은 대가라

고 경고하고 "...이스라엘과 이세벧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왕

상 18:19)라고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아합은 바알의 선지자 4백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백명을 갈멜산에 모았습

니다.거기서 엘리야는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

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으 다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

르라 나는 야웨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

니라.."(왕상 18:23-24)고 선포했습니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한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아무

소리가 없자 그들은 단 주위에서 뛰며 놀았습니다.

 

오정에 이르러 엘리야는 저들을 조롱했습니다. "... 큰 소리로 부르라 저

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

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왕상 18:27)그러자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고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

나 저녁 소제를 드릴 때까지 이르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등장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이 오

게하고 무너진 야웨의 단을 수축했습니다. 엘리야는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

수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고 야웨의 이름을 의지해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

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었습니다.그리고

송아지 각을 떠 나무 위에 놓고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었습니다.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 물이 가득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해 물을 부었습니다.

 

저녁 소제드릴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야웨께 나아가 "....아브라함과 이삭

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

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슴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야웨여 내가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야웨는 하나님 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37)라고 간구하자 야웨의 불이 내려서 번제

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아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 야웨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라고 고백했습니다.엘리야는 바알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저들을 기손 시내로 데려다가 모조리 죽였습니다.

 

엘리야는 우상 섬기던 제사장들을 멸절시키고 갈멜산에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구했습니다. 사환에게 "바다 편에 무

엇이 있는지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반복이 연속되다가 일곱번째 간구한 후 바다에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

습니다.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 비가 내렸습

니다.

 

3년 6개월만에 이스라엘에 폭우가 쏟아졌고 가뭄이 해갈되고 비로서 땅이

열매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하는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십니다.우리가 철저히 우

상숭배를 근절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전통문화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처처에 우상이 세워지고

미신과 무당굿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새롭게 거듭나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회개가 필요합니

다.대통령르로부터 정부당국,국민 모두가 우상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

다.

 

2. 하나님은 성적인 부도덕을 미워하십니다.

 

예레미야 5장 7절로 9절에 보면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자녀가 나

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

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을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

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나 야웨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

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

하신 윤리와 도덕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서는 그일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

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

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성전으로 지으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성령이 거하시

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처처에 창기의 소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치가 좋

은 강변마다 소위 '러브호텔'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곳에 음란의 독버섯

이 자라고 있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또한 어떤 사람들

은 남의 아내르리 범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렘 5:8)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사람이었지만 옥상에서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

인을 보고 그를 탐해 간음을 했습니다. 그 어앤의 남편은 우리아였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과 다윗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 잉태한 것을 알고 우리아를 불러다가 아내 밧세바와 동침

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를 전쟁터 최일선에 나가가 하라는 편지를 썼고 우리아는 적의 화살

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후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진노하셨고 그때로부터 다윗의 집안에 칼이 떠

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

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으니라"(유다서 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간음하는 개인이

나 가정, 민족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동성애를 하나님은 미워하시고 진노하십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남

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

가 남바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로마서 1:27)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동성애나 부도덕한 성관계를 통해 에이즈(AIDS)가 유행하고 있습니

다. 이 병은 치료약도 없는 죽음의 병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더러

우을 자행한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입니다.

 

우리는 부도덕과 불륜, 더러움을 하나님앞에 청산하고 하나님게 회개하는

거국적인 국민회개운동이 필요합니다.

 

3. 불의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불의를 미워하십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

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하사

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게서 공의를 행하는 한사람이라도 찾으

면 예루살렘성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기 전에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아브라함

은 야웨 앞에 가까이 나아가"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가"(창세기

18:24)라고 여쭈었습니다.

"야웨께서 가라시대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창세기 18:26)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은 다시 의인 45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대답은 역시 용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또다시 사십인을 찾으면 어찌하시겠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었습

니다. 야웨의 대답은 한결같이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

함은 삼십인, 이십인, 자꾸 수를 줄여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

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창세기 18:32)라

고 하나님께 아뢰자 야웨께서는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

라"(창세기 18: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끝내 소돔과 고모

라는 멸망했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천하에 불의함을 심판하신다는 표

증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의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매

일매일의 삶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

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약속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

의와 타협없이 사업을 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직한 자

를 축복하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자리와 현실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선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시고 은총과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4.교만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악의 죄악이 교만죄입니다. 교만죄란 마귀가 하나님처럼 되

려한 죄요,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죄인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만든 주체사상은 마귀의 사사이요 교만의 극치인 것입니

 

 

 

다.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주의 절대 주권자는 야웨이십니

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자신을 우상화하고

처처에 동상을 세워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다가 어둠의 그늘로 사라졌습니

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우리는 자아를 자랑하지 말아야 됩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께서 당장 3분 정도만 호흡을 중단시키면 인간들은 이내 흙으로 돌아갈 뿐

입니다.

 

요즘같이 한발이 온 한국을 뒤덮고 가뭄이 극심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 총명함도 자연의 재해 앞에 아

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지식

과 지혜 총명도 휴지처럼 버려질 따름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언16: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

에 겸비해 우리를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5. 탐욕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로마서 12:3절에는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중 각 사람에게 말하

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사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

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복수를 알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탐욕은 우상

숭배이며 탐욕은 마귀의 낚시 미끼와 같습니다. 탐욕에 빠지면 마귀에게 이

끌리고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분수를 뛰어넘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죄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믿

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

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편 50: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고급 공무원들이 명예와 영광을 잃고 감옥에 들어가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탐심이 들어가 불의를 범하고 분수를 뛰어넘는

사치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릴 때 우리의 죄악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

다.하나님은 거룩함과 정결함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얼마나 미우시기에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죄없는 아들을

보내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겠습니까? 하나

님은 죄와 타협하시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죄를 미

워하십니다.

 

우리가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님 앞에 우리의 죄과를 회개하고 십자가 은총의 그늘에 거해야 합니다. 오

늘 여러분이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807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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