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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설교 81편~90편

by 【고동엽】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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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예지.예정.그리고 예비하심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롬 8:29-30

 

 

몇주전 우주에는 일대장관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언론매체들은 우주 최

대의 쇼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슈메이커 레비 혜성과 가스층과 유체로

존재한다고 알려진 목성과의 대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슈메이커 레비 혜

성은 강력한 목성의 인력에 이끌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목

성과 거대한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슈메이커 레비 혜성이 목성의 인력권 안

에 들어가자 혜성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결코 목성의 강력한

인력을 피해 자기 마음대로 궤도를 찾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삶도 여기에 비유해 말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결코 저항

할 수 없는 예정의 인력권에 들어가면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야웨 하나님의 예정에 저항한다는 것은 자멸을 뜻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아시며 절대적

의지를 가지고 원하는대로 예정하십니다. 또한 그 예정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생애와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예정을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

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으로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는 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1-3).

 

하나님께서는 '재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내가 너에게 이

렇게 결정하고 명령한 것이니 이대로 행하라'라는 단호한 선포와 약속을 하

신 것입니다. 절대 주권자로서의 강력한 의지와 결단을 아브라함에게 나타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인 것입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

고 아브라함의 갈길을 이미 예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야웨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따

라 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기근이 다가왔

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예정해 철저히 순복할 뜻이 있는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먹으 마양식이 없을지

라도 하나님의 뜻이 가나안 머무르는 것이면 예정을 좇아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니의 예정 속에 있겠다고 믿음

을 세우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예정에 벗어나 인본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

습니다. 가뭄과 기근이 있으니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나님의 예정의 이정표를 따라가

지 않고 곁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와 조카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에정

의 길을 벗어난 아브라함은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기고 수치와 곤욕, 고

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예정의 이정표를 따라 가지 않는 인생에게 얼마나

 

 

 

무서운 파멸과 시련이 다가오는 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은 크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예정의 길에 들어서 자기 아내를 찾아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벧엘에

이르러 야웨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서 또다시 당신이 예정한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

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

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 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브

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정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85세가 됐을 때 아

내 사래가 잉태치 못함을 이유로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 밖의 일이었습니다. 85세가 되든 1백세가 되든 하나

님이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면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정하시는 하나님은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정을 벗어난 일은 가정의 파탄을 가져왔고 오늘날까지 이스

라엘과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과의 대립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

와 이슬람교의 투쟁은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밖으로 나가면 반드시 가시와 엉컹퀴가 납니다. 수치와 곤

역, 모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99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새롭게 받았고, 1백세때

에는 아들 이삭을 낳아 하나님의 예정과 예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 요셉의 생애와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은 어린 시절부터 요셉에게 자신의 여정을 선포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7)라고

형드에게 꿈이야기를 했습니다. 형들은 "..내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

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창 37:8)라며 꿈과 그 말을 인하

여 요셉은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 놓았습니다.

 

요셉은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

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

라"(창 47:9)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형과 아버지 야곱의 반응은

대답했습니다.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은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당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 37:10).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다른 형제들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기 때

문에 '하나님의 예정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요셉이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하나님의 예정을 보여주신 이상, 하나님은 그 예정을

시행하십니다. 예정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의 길에는 반드시 실크로드 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예정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요셉은 17살 때 양떼가 잘 있는 여부를 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세겜으로 떠났습니다. 요셉을 만난 형들은 구덩에

그를 던져버렸고 후에는 이스마엘 족속인 아라비아 대상에게 은 20개에 요

셉을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에게는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형덜은 요셉을 영원히 버리려고 작정했

고 요셉은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의 예정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알면 그 이후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환란은 하나님이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

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하인으로 팔렸고 요

셉을 통해 보디발의 집에서 복이 내리므로 요셉이 신뢰감을 받아 가정 총무

가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예정인 것입니다.

 

또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갔으나 모함으로 요셉은 보디발

의 노를 받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에 갇히기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을 입은 사람은 안되는 것

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에는 합력해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시위대 감옥에 들어간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요 그곳에서 술 장관은

요셉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2년동안 요셉의 존재를 잊고 살았습니다.

 

어느날 바로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성경에는 "..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

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

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쇠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창 41:2-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로의 꿈을 해석해내는 애굽의 술객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술 장관이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이라는 히브리 청년이 꿈을 해

석해 주었다"며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에게 고했습니다.

 

바로는 즉시 요셉을 청했고 요셉은 그 자리에서 왕의 말을 듣고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올 것을 나타내는 꿈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꿈 해몽과

기근을 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들은 바로는 요셉의 지혜를 칭찬하고 애

굽의 총리로 임명하고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국무총리가 되었고 기근을 만난 형들이 요셉

을 찾아와 절을 하고 양식을 사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처럼 시험과 환란이

다가와도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기 때문에 정하시고 정하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환경을 예

비하십니다.

 

3.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모세를 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예정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의 길에 막힌 담과 저항세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인데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홍해수가 이스라엘의 앞을 막았습니다.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습니다. 뒤에

는 바로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통곡하며

모세를 원망하면서 울부짖기도 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예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예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바닷물을

가르고 마른 땅이 나오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진 홍해

길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건너갔고 뒤따르던 애굽 군대는 모두 수장되어 버

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에게는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3

백만 명이 한꺼번에 출애굽했는데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가나

아에 들어가야 하는지 그들에게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

정 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길을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수르 광야에서 사흘동안 갈증에 시달리다 마라의 못을 발견했으나 쓴물이

라 먹을 없게 됐을 때 하나님은 이미 나무가지를 예비하셔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배가 고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쏟

아졌고 40년 동안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와 광야생활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고기가먹고 싶어할 때는 메추라기를 보내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하

나님의 예정을 반역하고 불평과 원망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

다. 하나님은 예정을 변화시키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예정을 굽혀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과 여리고성에 부딪혔을때 인간의 힘으로 그 요단

강을 건널 수 없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경우라도 하나님이 예비

하셔서 요단강은 갈라지고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가나안 땅도 정복되었습니

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위해서 위대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

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빈부귀천,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

는 사람은 모든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천하 인간

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천국의 길로 갈 것이요 예정을 반역하는 사람들은 멸망

의 수령에 빠져버릴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엔 우리 살아 남

은 자도 저희와 함게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

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고 성경은 말

씀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이루시고 성도들에게

이것을 상속으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알고 그 예정에 순복하는 삶을 사는 지혜를 가져

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시므로 당신의 원대로 모든 일을

예정하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야웨께서는 우주의 주권자일 뿐 아니라 인생의 주관

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

 

 

 

권적인 결정에 따를 때 참된 행복을 누리고 하나님이 친히 인생을 예비하시

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1994년도에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은 하

나님이 예정하셔서 오천년 우리 역사 가운데 이 시점에 한국에 있기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시편 139편 16절에서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샐이 이미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는데 내가

그 기록을 바꾸어 버리고 내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것으니 하나님의 예

정에 도저하는 행위입니다. 그 결과는 파멸의 길 뿐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우리는 진흙입니다. 하나님께서 진흙을 옹기로 만들

고 화병이나 밥그릇, 국그릇으로 만드는 것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마음입

니다.

우리는 늘 기도하면서 예정하신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예정을 뛰어 넘어 내 마음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

리의 인생 예정을 주신 이상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환란이나 고통이 다가

와도 감사하며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의 예정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

다. 예정을 이루는 길은 언제나 꽃길 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도 지

나고 가시밭도 사막도 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

정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예비하면 큰 실패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은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이 친

히 아셔서 모든 필요와 환경을 예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성공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예정의 길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예정은 불가항력

적입니다. 마치 슈메이켜 레비 혜성이 목성의 인력권 안에 들어온 다음 절

대로 자기 마음대로 궤도를 찾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예정

의 인력권을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

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가라는 말

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우

리 주 에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삶의 모드니 과정에 하나님의 예비, 예정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

이고 하루하루의 일에 충실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

다.

 

발행일 : 940731

분 류 : 설교

 

 

 
 
 

82

제 목 : 인격이신 성령님

자료원 : 순복음가족 조다윗목사

절 기 : 성령강림절

구 절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구약 4천년 동안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면에 나오셔서 일하셨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

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구약 4천년 동안 인류 구원을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준비를 완성하시고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예수님

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셔서 아들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2절에는 "이 모든 날 마지막 아들로 우리에게 말

씀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초기 33년동안은

아들의 연대였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50

일만에 성령께서 강림하시므로 성령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서는 당신 다음에 성령님께서 오실 것을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

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부터 8절을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

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

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 못되

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횝고하심이 이때이니까 하니

가사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

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시대는 바로 성령님의 시대인 것입

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아버지의 역사는 완성되었고, 예수님의 사

역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아버지의 완성하심과

예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버지는 보좌에 앉아 계시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

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성령은 오늘 이 지상에 오셔서 교회 가

운데 와 계시고 예수 믿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임재하여 계셔서 하나

님 아버지와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역사를 베풀고 계

신 것입니다.

 

1.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

 

성령강림에 대하여 사도행전 2장1절로 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에 이르러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있

더니 갑자가 하늘에서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각 사람 머리에 임하였으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

령의 말하게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성령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날이요, 오늘 이날

이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주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실 때, 불로 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

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이란 태우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시면 우리의 모든

 

 

 

죄악을 태웁니다. 모든 불신앙을 태웁니다. 모든 세속을 태우는 역사

를 하시는 것입니다. 울어도, 힘써도, 애써도 안되나 성령의 불이 임

하시면 세상이 우리 가운데서 불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성령이 불로 임하시는 이유는 불은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

날에 우리는 천국에 대해선 너무나 어둡고 캄캄했습니다 세상 죄악의

어둠 속에서 살았으나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마음을 밝혀서 천국의 광

대한 진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불로 임하신 이유는 불은 뜨거워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뜨거워지는 길은 성령이 임하시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불로 임하셔서 우리의 신앙을 펄펄 끓게 만들

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뜨겁고 예배가 뜨겁고, 뜨거운 마음으로

전도하고 영혼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리 신학공부를 하고 성경공부를 해도 그저

냉랭한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구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 속에 임하셔서 불이 활활 타면 우리

가 배운 조그마한 지식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뜨거운 마음으로 영혼구

원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불은 동력원이 됩니다. 비행기도 불의 힘으로 가고 자동

차도, 큰 기선도 불의 힘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이 불로

임하는 것은 여러분 신앙에 동력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

하면 무능력한 신앙이 아니라 능력과 권세가 따라오는 신앙이 되는 것

입니다. 오순절날 임한 성령은 바로 불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 우

리 가운데 임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은 바람으로 임하셨습니다.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람이 힘차게 불어오면 오염된 공기를 정하게 합니다. 서울 시내에

꽉들어찬 오염된 공기에 바람이 불어닥치면 오염된 공기가 다 물러가

고 맑은 공기가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주위 환경 가운데의 마귀와 귀

신의 오염을 물리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이 더럽고 악

하고 추한 일들로 채워놓지만 성령바람이 불어오면 이 모든 마귀의 오

염 하나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미움,시기,질투,분

노,음란,방탕,도적질 등 모든 악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성령은 오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

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성령의 열매로 가득하게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령님이 바람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마음이 상쾌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이

역사하는 우리의 심령은 상쾌해져서 모든 염려, 근심, 슬픔,고통, 괴

로움이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즐거움

이 넘쳐납니다.

 

그뿐 아니라 바람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바람은 가만히 침체된 공기

가 아니라 움직이는 공기입니다. 성령 바람이 불어오면 운동력이 생

겨서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

마리아로 또 사마리아에서 땅 끝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0년 동안 35개국 이상의 나라에 나가 복음

을 증거하게 된 원인은 우리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인 것

입니다. 성령 바람이 불어오매 운동력을 얻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한국에서부터온 천하만국에 선교사를 보내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실 때에는 방언으로 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

을 높이고, 하늘나라를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

다. 보통 때 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말을

잘합니다.

 

방언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입을 열면 성령께서

우리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말할 줄 모르는 사람도 성령이 붙잡아서 방언으로 말

하듯이 성령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방언을 말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말로만 전도하지 말고

온천하 만국의 말로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바로 선교의 영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

라 나아가 이웃나라,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렇기 때문에 오순절날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앙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성령은 불과 같이 임하시고 바람과 같이 임하시고, 방언의 능력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

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란 모두 어부요, 세리요, 별로 교육을 받

지 못한 사회의 하층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

하자 온 천하를 뒤엎어 버리고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사간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사도행전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 여의도순복

음교회 성도들만 힘을 모아도 복음으로 온 천하를 뒤엎고도 남음이 있

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

령의 능력에 의해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2. 인격이신 성령님

 

인격이 형성되는데는 육체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지식이 있

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그는 인격자인 것입니다. 성령을 바람

같은 분, 불같은 분, 혹은 기름같은 분, 비둘기같은 분, 물같은 분이

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령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같이 사는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인격적입니다. 자녀들보다 더 인격적입니다. 성령은 인격

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면 안됩니다.

 

이제 과연 성령이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

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다 통달하고 계

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식을 가진 하나님인 것입니다. 지식이 없

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사정을 알겠습니까!(고린도전서 2장 11절)

 

그 다음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에베소 4장 30절에 "하나

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

지 말라고 했습니다. 감정이 없으면 왜 근심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히브리서 3장 7절로 11절에 보면 성령님의 진노에 관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늘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진노하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은 희노애

락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또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

시느니라"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 예언 등 각종 은사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원대로가 아닌 성령의 뜻대로 나누

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듯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친대로 하나님의 성령은 지정의를 가지

신 인격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역시 남편과 아내도 인격이니 인격으로 대해야지, 동물같이 대하면 그

가정은 깨어집니다. 인격은 무시당하면 모욕감을 느끼고 소멸됩니다.

인격은 인격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

다.

 

성령은 인격자로서 교회와 여러분 속에와 계셔서 구원의 날까지 가르

쳐 주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돌보아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거룩하게 하시고 은사를 주시고 능력과 신앙을 부어주시는 것입니

다. 이와 같은 지혜의 영, 성령의 영, 모략의 영, 지식으 영, 하나님

의 경외하게 하는 영이 인격적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이 성령은 우리

의 선생이시요, 변호사시요, 안내자이요, 위로자시요,돌보아주시는 하

나님이신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기도할 때마다 성전 기도를 하고 그때마다 일곱 금촛

대 앞에 서서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보혜사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

고 모셔들이고 의지합니다. 성령님을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의 영, 그

리스도의 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이요, 경외케 하는 성령님, 저

를 가르치시고 깨닫고 기억나게 하옵소서. 인도하고 이끌어 주시며 능

력과 위로 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시고 도우소서. 성령님께 예배드립니

다. '성령님은 인격자이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환영하면 성령이 여러분

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절대

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성령님과의 교통

 

교통이 끊어진 삶은 삭막한 삶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서로 빈번

한 교통이 있어야 친해지고 삶의 내용이 풍부해 집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님과의 교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통의 헬라오는 코이노니아

이며 여기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펠로우십(fellowship) 즉 친목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

격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친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다. 성령님이 우

 

 

 

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성령님과 대화도 없고 친목도, 교통도 없

으면 성령과 우리는 관계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신앙을 냉

랭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헤가 깨달아지거나 느껴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

도의 은혜를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들은 성령님과 교통하고 친목이 있어야 됩니다.

저는 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합니다. 오늘도

저화 함께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드립니다. 설교하러 나갈 때는 '성

령님 저는 부족하니 붙들어주시고 같이 가세요' 합니다. 특히 외국에

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만큼 더 어려워서 더 크

게 성령님을 의지하게 되면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왜? 성령님과의 친

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교통이라는 것은 파트너십(partnership) 즉 성령

과 동업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인생동업, 천국사업 동업

자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선배이시고 우리는 후배동업자입니다. 그러

므로 성령은 우리 생활 모든 면에 간섭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업을 할까,이것을 살까 말까 등 모든 것을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

면 성령님은 꿈이나 환상으로 지식과 총명을 주셔서 우리가 알게 모르

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추수꾼의 주인이기 때문에 성령과의 동업없이 하늘나라의 사

업을 하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마음이 뜨거

워 성령께 묻지 않고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려다가 성령께서 막

으셔서 복음을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

려고 할때, 성령께서 막으셔서 완전히 실패하고 드로아에 와서 캄캄한

밤에 자기 힘으로 복음전파하려던 것을 회개하고 기다릴 때 환상이 나

타났습니다.

 

마케도니아인이 그곳으로 오라고 환상중에 부른 것입니다. 이렇듯 성

령님의 인도를 통해서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간 것이 오늘날 유럽

복음화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동업하기 위해 우리 가

운데 와서 역사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과 동업하고 살 때,

때로 손해나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크게 성공한 일로 변화되고 마

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과 동업하는 것을 우리는 쉬어서는 안됩니

다.

 

그 다음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유니티(unity), 일치라는 말입니다. 성

령님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매는 띠로 우리를 하나되게 합니다. 비방과

분열은 마귀의 행사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구역, 교회, 직장에

서나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는 일치운동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요 분

열시키고 상처입히고 비방,공격하는 것은 마귀의 일인 것입니다. 이러

므로 성경에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2천년 전 오순절 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오늘 이시간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 모두

불같은 열심으로 바람처럼 힘차게 온천하에 나가 복음을 증거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발행일 : 930606

분 류 : 설교

 

 

 
 
 

83

제 목 : 하나님의 뜻과 꿈과 믿음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롬 12:1-3

 

 

최근에 저는 희한하고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기이하고 영롱

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꿈에 제가 절경을 가진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파도를 벗삼아 하얀

모래사장을 얼마쯤 걸어가니 깎아 지른듯한 바위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

었습니다. 아주 험한 바위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아름다운 호텔이 건

축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안간힘을 쓰며 바위벽을 타고 아직 미완성된 호텔

로 올라갔습니다.

 

넓직한 홀에 들어서자 백발의 머리와 흰수염을 가진 노인 한분이 저를 반

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그 호텔으 주인이었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굉장히 거대한 공사를 하십니다. 정말 훌륭

한 호텔이군요.경치도 아름답구요"그러자 그 노인은 "조목사님,오늘날 인류

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꿈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없''못한다''안된다'고 말하면서 꿈

을 갖지 않죠.꿈과 환상을 잃어버린 사람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과 같습니

다. 제가 백발이 성성한 나이인데도 이런 어려운 공사를 하는 것은 꿈을 잃

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꿈을 가지면 나이든 노인이라도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려고 이곳에 호텔을 짓는 일입니다."그러

시면서 저를 보시더니 "꿈을 가지세요. 꿈과 환상을 잃어버리면 개인도, 사

회도,나라도 망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나 '그렇다, 불가능은 꿈과

환상이 없을 때 불가능으로 남아있지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

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을 주셔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꿈과 환상을 가지고 위대한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야

웨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는 한 사람,한사람, 우리 사회와 국가,그리고 온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불변하며 인간의 힘으로 그의 뜻을 바

꿀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쉬운가요?"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고자 간절한 소원을 가질 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시고 하나

님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뜻을 가르쳐 주옵서서"라고

기도할 때 마음 속에 파도치듯이 성령이 지식을 가져오셔서 깨닫게 하십니

다.

 

둘째로, 마음의 뜨거운 소원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빌립보

서 2장 13절에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뜨거운 소원이 솟아 오릅니다. 이

처럼 하나님은 소원을 통하여 자신의 기쁘신 뜻을 나타내십니다.

 

 

 

 

셋째로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네

료가 오후 기도시간에 온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

서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

10:5) 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환상을 통해서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뜻

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

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

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니다. 한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

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1-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이것은 이방인을 불결하게 여기지 말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하라는 하

나님의 뜻을 환상을 통해 게시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으니 "내

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호세아 11:4) 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또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

를 이끌어 주십니다. 미움을 통해 이끌 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섯째로, 환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이길도 막히고, 저 길도

막히고 동서사방이 캄캄한데 오직 한길만이 열릴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환

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도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

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우

리들은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과 함께 인생 항해길에 노를 저어가는 것입니

다.

 

우리는 하나님과 뜻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인지를 확인해야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뜻을 알고 그분과 함

께 손을 잡고 출발할 때 어떠한 난관과 역경이 있어도 승리하는 위대한 삶

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가슴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품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75세 되었을 때 그를 불러서 그 마음 속에 꿈을 심

어 주었습니다. 꿈이 심어지기 이전에는 아브라함은 늙은 노인에 불과했습

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꿈이 심겨지자 새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느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

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

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2-3)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꿈입니까? 노인인 아브

라함의 가슴 속에 힘이 솟아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비전과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꿈을 잉태시켜 주시고 그 꿈이 불타오르

 

 

 

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4백3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

킬 때 무작정 이끌어 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라고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사용하

는 언어 중에 이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언어는 없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는 하나님의말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었고 백성들의 마음은 흥분과 희망에 찬 꿈으로 가득 채워지기 되었습

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

십니다. 꿈과 환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4장 17절에는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

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이란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이 고통스럽고 괴로울지라도 꿈과 환

상은 미래의 일인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미 마음 속에 이루어진 모습을 밝히 바라보는 것이 꿈과 환상입니다.

 

꿈은 소망과 정열을 일으킵니다. 마음속에 꿈과 환상이 있으면 내일을 향

한 힘찬 발돋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지성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꿈과 환상이 마음 속에 심겨진 사람은 목표를 향해 시

간과 물질과 모든 노력을 그 꿈을 향해 쏟아 놓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꿈은 내일을 산출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따라서 꿈이 없는 사람은 내

일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습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는 내일이 없고 꿈이 없는 가정과 국가도 내일이 없습니

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살았다'하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의 삶이 매일매일 크고

작은 영롱한 꿈으로 가슴 속에 가득차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 믿고 행하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믿음과 현실은 상반될 때가 많습니다. 현실은 타산적이고 이성적이며 손익

계산이 분명하고 감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과 환경을 뛰어넘

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꿈이 이루어짐을 믿고 현실을 극복

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을 계산해 넣지 않는 사람은 꿈을 성취할 수 있는 믿

음이 없습니다.그러나 현실이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삶의 자리에 계산

에 넣는 사람은 꿈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을 증거하신 후 저녁이 되어 오천명의 남자와 부

녀자들이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빌

립에게 말했습니다. "...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

느냐"(요한복음 6:5) 빌립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현실을 바라볼 때

타산적이며 이성적이며 분명한 손익계산을 했습니다. 빌립은 ".... 각 사람

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 라

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타산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자중의 한사람인 안드레는 절망적인 현실 상황을 보지 않고

그 현실 가운데 예수님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광야같을지

라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무엇이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면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안드레는 믿었습니다.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졌나

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요 6:9) 라

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의 현

실에 예수님을 플러스 계산해 넣었습니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받아 축사하

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

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11)라고 말씀하고 있

습니다. 얼마든지 떡과생선이 넘쳐났습니다. 배불기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도 불가능은 가능케되며 절망은 소망으로 변

화되며 가난은 풍부와 부요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을 하는데 어찌 불가능이 있겠습니

까?

 

믿음은 초인적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물 위로 베드로가 어떻게 걸을

수 있었겠습니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 주여 만을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성경은 "오

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29)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

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에 서서 물 위를 걸은 것입니다. 성경은"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4. 입술의 말로 담대하게 믿음을 시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을 잘못해 인생의 파탄을 가져오게됩니다. 요즘 야당의 온 국

민들이 "김일성 조문을 가자"고 말했다가 온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지 않

습니까?동족 3백여 만 명을 죽이고 1천여만의 이산가족을 있게한 전쟁 책임

자 김일성에게 조의를 표하자고 하는 것은 양심상, 도의상 있을 수 없는 것

입니다. 6.25때 전상을 입은 사람들이 아직도 40여년간 보훈병원에서 치료

를 받고 있는데 그들 앞에 동정과 사랑과 민족적인 애정도 없이 전범인 김

일성에게 가서 조의를 표하자는 것은 망발인 것입니다.

 

입술의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

의 사역도 말씀으로 죄를 사하고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고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또한 말씀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했고 파도가 잔잔해 졌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말씀은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구

원받은 것도 의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도

의식이나 형식이아니라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

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

에 이르느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술의 시인이 있어야 우리 마음속

에 믿음이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99세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

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

브라함이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얼굴의 아비

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하나님은 새루운 생각, 새로운 믿음을 아브라함에게 넣어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

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생각과 믿음을 넣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엎드려 웃었습니다. 그럼에도 붉두하

고 하나님은 그 입술의 고백을 바꾸시고 나이나 환경을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믿음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려면 국민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사상과 믿음과 언어를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적인 차원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배

워야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꿈을 가지고 하나

님과 함께 믿음의 차원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

며 꿈을 향해 전진할 때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

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724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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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뿌리있는 신앙생활

자료원 :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요한복음 15:1-8

 

 

뿌리가 죽은 나무는 봄이 되어도 잎이 나지 않습니다. 뿌리에서 양분

을 공급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겨울 내내 죽은 것같던 앙

상한 나무가지라도 뿌리가 살아 있으면 봄이 올 때 파란 잎이 돋고 꽃

도 피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삶의 뿌리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과 수단을 다해도 천국의 향기나는 꽃도

피울 수 없고 싱그러운 열매도 결코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뿌리와 줄기가 하나가 되어 포도나무가 되어 있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포도나무의 뿌리요, 줄기이며 주님을 영

접하고 믿는 사람은 바로 그 뿌리와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이시간 저는 우리의 뿌리되신 예수님과 그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들의 삶의 연관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가지와 뿌리와의 관계 I

가지의 근본은 뿌리에 있습니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바람이 불고 창

수가 날 때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맙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는 죽은

나무요 죽은 가지인 것입니다.

 

세계적인 미국 북 캘리포니아의 요세믿공원에 레드 우드라는 나무가

있는데 하늘로 100미터 가까이 치속은 굉장한 크고 우람한 나무입니

다. 그런데 그 뿌리는 땅밑으로 5,60미터 깊이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이렇듯 깊이 뿌리가 땅에 박혀 있기 때문에 키가 100미터나 되도록 크

고 우람하게 자랄 수 있지만 아무리 비바람이 치고 창수가 나도 끄떡

없습니다. 그 나무는 수백 년을 견디고 있습니다. 뿌리가 깊고 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의 뿌리입니다. 예수님의 뿌리는 천국보

좌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보좌에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사 다시 하늘에 올라가 아버지 보

좌 우편에 앉아계심으로 예수님의 뿌리는 바로 천국보좌에 미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뿌리를 흔들 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온 우주가 흔들리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연대는 태고 시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이 세

상에 어떠한 풍랑과 창주, 환난이 다가와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 뿌리가 망하지 않기 때문에

뿌리에 붙어 있는 가지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망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가지인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를 붙잡고 있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뿌리인 예수님이 그 나무줄기를 통해서 우리를 붙잡고 계신

이상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

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붙잡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

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뿌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창조주요, 우주와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가 나의 뿌리요 내가 거기에 붙

어 있는 이상,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패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다 넘어지고 뽑혀버리

고 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뽑히지 않습니다. 역사상 제국이, 나라

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들

은 다 망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전세계에 지금도 활기차게 전

파되고 있습니다.

 

2.가지와 뿌리와의 관계 II

가지와 뿌리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면,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서는 가지가 일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일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뿌

리는 이른 봄부터 열심히 수분과 양분을 흡수, 줄기를 통해서 가지에

보내고 가지는 그것을 받아서 잎나고, 꽃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지는 그저 뿌리에 붙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지만 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뿌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지금 우리 눈에 보이시지는 않지만 오늘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생명의 영양분을 친히 일하셔서 공급해 주시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은 예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뿌리에 붙

어있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삶의 모든 활력소를 공급해 주

시며 대신 짐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구속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서 30세의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성령충만하셔서 홀로 광

야에 들어가 40주 40야를 금식하여 마귀를 이기고 나오신 이후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33세에 십자가에 올라가 죽으셨습니다. 그

는 우리를 위해서 혼자 일하셨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뿌리가 혼자 일하는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에 올라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질병과 저주, 가난과 낭패, 죽

음과 지옥도 짊어지고 혼자 몸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온갖 수모와 고

통 가운데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오중복음

과 놀라운 은혜를 공급할 수 있는 표준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의 뿌리에 붙은 가지인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는 죄용서라는 은혜를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

서 용서받고 의롭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뿌리를 통해서

오늘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공급해 주심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며 능력있게 전도하고 능력있는 기도를 하게 하

시는것입니다.

 

그 뿌리에서 치료의 능력도 공급해 주셔서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뿌리

에서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형통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심으로 우

리가 모든 면에 항상 모든 일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

도록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또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도 열매맺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생활을 주관하셔서 승리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일하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낭패와 실망을

홀로 감당하시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성공과 승리와 복을 은혜로 공급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홀로 죽으셔서 음부에 내려가시

고 사흘만에 승리해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공급해 주십니

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우리는 사망도 이기고 음부도 이기고

주의 영광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홀로 일하셔서 우리의 배후에서 기도드릴 때 우

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고생하며 일

하신 분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짜로 받아서 이땅에서 우리는 열매맺고 사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를 깨우치시고

의지하게 하시고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주님께서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지이 우

리가 할 일은 열심히 기도하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주님

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신령한 은혜로 공급해 주시

고 모든 삶의 필요한 것을 구하는 능력도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을 행하시는 야훼'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가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 하였는데 주님은 배후에서 일하십니다. 뿌리가 보이지 않

는 땅속에서 일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

시는데 그 보람이 가지인 우리들을 통해서 날마다 나타나는 것입니

다. 기도를 통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

되 넘치게 얻는 열매맺는 보람이 매일같이 나타나고 있고 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예수님이 고난받으신 결과로 맺게 하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중대한 잘못이 있는 것자비니다. 우리가 회개

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예수께 붙으면 즉시로 그리스도가 십자

가 고난을 통해서 일하시고 값주고 사신 성령충만의 은혜, 치료와 축

복, 영생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열

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열매를 아니 맺을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가 참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

다.

 

3. 가지와 뿌리와의 관계 III

뿌리가 확실한 가지는 비바람 혹은 천재지변을 통하여 부러지거나 상

처를 받아도 곧장 새싹이 나고 상처가 복구됩니다. 이는 뿌리가 튼튼

한 나무는 곧 뿌리에서 진액이 활발히 올라와 부러진 곳에 새싹이 나

고 가지고 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살아 있는 이상, 나무의 등

허리가 잘려도 가지는 또 납니다. 아무리 나무를 쳐내도 또 줄기가 자

라서 푸르청청하고 꽃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을 뿌리로 삼고 사는 사람은 어떠한 환난과 고난, 시

련을 당하여 상처입고 쓰러질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님께 의지하면 곧장

복구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력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

 

 

 

다. 뿌리가 있는 나무는 아무리 모진 겨울을 지나고 비바람을 맞아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곧장 푸르게 자라서 생명력을 과시합니다.

 

예수님을 삶의 뿌리로 삼는 사람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어떤 환

경에 던져져도 뿌리없는 사람처럼 망하거나 떠내려가지 않고 곧 삶의

표준을 잡고 성령의 생명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

수믿는 사람을 낯설로 메마른 그 어느 곳에 던져 놓았을 때 그 사람이

곧 망할 것 같아도 곧장 다시 살아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뿌리가 보

좌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뿌리가 붙잡고 있고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

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않고 핍박을 당해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고 말씀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뿌리에 있는 사람

들이 망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뿌리없는 인생이 아니며

떠돌이 인생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뿌리에 붙어 있는 가지이므로 뿌

리있는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4. 가지와 뿌리의 관계 V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가지없는 뿌리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을지라도 예수님은 뿌리요 나

무 등 허리입니다. 가지인 우리들을 통해야만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들을 통하지 않고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같은 사람을 누가 알아줄까'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알

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러분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뿌리는

나무가지를 극진히 사랑합니다. 아무리 뿌리가 애를 쓰고 힘을 써서

수분과 양분을 모아도 가지가 없이는 잎도,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

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우주를 창조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시는 말할 수 없는 고

난 당하심을 통해 많은 은혜를 예비해 놓았어도 여러분을 통하지 않고

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여러

분이 지극히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일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을 돌

보시고 깨끗게 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열매 맺으려고 애를 쓰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귀중한 존재

요,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지는 뿌리를 통하여 통로를 활짝 열어놓아

야 합니다. 가지가 병들면 뿌리의 양분이 전달되지 못합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항상 회개하여 죄악과 불신앙, 불순종을 버리고 주님을 향

해서 우리의 통로를 확 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통로를 열어놓지

않으면 주님이 아무리 양분을 공급하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하며 열심히 기도해야 될 것은

우리를 정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흘러들어오는 성령의 은혜와 역사가

막힘없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도록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서는 끊임없이 말씀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 자기 스

스로를 활짝 열어놓아 죄악과 세상이 우리 통로를 막아버림으로 말미

 

 

 

암아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채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은 별들로 채워놓으시고 바다는 물고기로

채워놓으십니다. 땅 밑은 여러광석으로 채워놓습니다. 주님은 빈그릇

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채우기를 원

하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신령한 은혜로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소

망,사랑으로 채우시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열매로 채우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

니다.

 

이러므로 '네 입을 넓게 열라, 채우는 것은 내가 채우마'고 말씀핫비

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의 입을 넓게 열어야 되겠으며, 기도의 입,

믿음의 입, 기대의 입을 넓게 열어야 되겠으며 큰 꿈의 입을 넓게 열

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해요, 나는 안돼요, 나는 할 수 없어

요, 나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 하는 부정적이고 뒤로 물러가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아무것도 공급할 수

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음에도 불구

하고 그들은 '우리는 못들어간다, 우리는 그곳을 점령할 수 없다. 어

서 돌아가자' 하는 부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주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

해 나타날 수 없으므로 그들을 광야로 회진시켜 40년간 방황하다가 다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할 수 있다. 믿

음으로 들어가자'고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능력

을 주셔서 80세가 되어도 40대의 젊음을 가지고 후세들을 이끌고 가나

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입을 넓게 여십시오. 큰 믿음을 회개하십시오. 크

게 믿으십시오.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도, 나라도

그리스도가 사용하는 그릇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받아 온 천

하만국에 그리스도의 구원과 능력고 사랑을 나누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중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뿌리요 줄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붙은 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수도 없고 열

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을 깊이 살아하고 믿고 의

지하고 따라가면 우리의 일생은 예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

러분은 여러분 혼자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뿌리

에 붙어있는 나무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체운명체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

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나의 뿌리가 되어 있는 이상 우리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는 이상, 예수님은 끝까지 영원히 우리

들을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을 통하여 매일 매

일 놀라운 열매를 맺고 계신 것입니다.

 

발행일 : 930530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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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이너스 인생 플러스 인생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요 10:10

 

 

어느 아버지 한 분이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

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의 말씀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설교 내용

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아들의 모습은

진지해 보였습니다.강단을 똑바로 쳐다보고 목사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무슨 설

교를 하셨는지 말해봐라","아버지,목사님 말씀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어

요.""뭐야! 그런데 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강단을 쳐댜보고 있었니""강단

뒤에 플러스표가 있잖아요. 목사님의 설교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예수님

을 믿는 것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생각했어요"아버지는 무릎을

치면서 "그래 맞아 ! 예수님 믿는 것은 플러스 인생을 사는 것이고 안 믿는

것은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것이지" 이런 말을 했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

다.

 

우리 하나님의 삶 속에는 마이너스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모든 것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지어놓고 보시기에 좋았고 육지가 생겨나고

산천초목이 생겨나는 것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공중

의 새와 물고기를 보시고 기뻐하셨고 짐승과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

셨습니다.

 

1. 마이너스 인생을 가져온 마귀

하나님께서는 마이너스 의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플러스 의지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이너스 의지를 가져온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마

이너스 존재인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꾀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게로부터

독립해 인본주의로 인생을 살라고 유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꾀임에 빠

져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스스

로 선악을 판단하는 인본주의적인 주권을 가지고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그때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인생은 처참하게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밝은 빛 대신에 어두움

이 그들의 삶을 점령하였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지 못하고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가치,목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적 무질서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후 자니간

들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서로 물고 찢고 싸우며 양육강식의 원리로 살면서

미움과 투쟁과 살생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 마이너스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

다.

 

또한 인간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더러

워졌습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풍요로움 대신 가난과 궁핍이 다가왔습니

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풍요로움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을 만

드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온 인류의 가장 중심적인 관심사는 경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입

고 잘먹고 잘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도 경제

문제입니다.주민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들이

 

 

 

경험하는 풍요가 마이너스된 삶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생명 대신에 사망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

인데 생명의 원천을 버리자 영은 죽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육체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사망의 마이너스가 인생에게 다가왔습니다.

 

원수 마귀는 그 자체가 강렬한 마이너스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강렬한 마이너

스를 가지고 사람들 속에 들어와 좋은 것은 다 빼앗아 버립니다. 영혼을 안

되게 하고 범사를 망하게 합니다. 건강과 내일의 소망 또한 도둑질해 갑니

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궤계를 끊임없이 세우고 있습

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사는 사

람은 영적,정신적,육체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현실 속에서도 마이너

스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들이 지불하는

무서운 대가입니다.

 

2. 마이너스를 메꾸려는 인간의 노력

 

인간들은 이 마이너스 인생을 인간의 힘으로 메꾸려고 유사이래 지금까지

온갖 힘을 다해왔습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마이너스를 메꾸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

사를 볼 때 종교가 인간의 마이너스 상황을 바꾸어 놓아나요? 그렇지 않습

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오히려 평상적인 생활 속에 멍에 하나를 더 목에

걸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저버린

이방 종교들은 인간들에게 무시무시한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자체도 중세 암흑시대에 그리스도를 버렸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종

교적인 멍에를 가해왔습니까?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인간을 종교적 노예

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종

교는 오히려 무거운 멍에가 됩니다. 주일날 교히에 의미없이 출석할 때 멍

에가 되고 종교적 의식도 멍에가 될 뿐입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종교가 인

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발한 처참한 종교전

쟁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한 교육을 통해 마이너스 인생을 만회하려고 애를 썼습

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사람들은 계몽주의 사상과 인간의

이성,과학발전을 통해 완전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장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이성으로 문제를 해

결하지 않았습니다. 무력과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온 유럽

이 유혈참극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전쟁을 없애기 위한 전

쟁이었다. 비이성적인 것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히틀러와 그를 둘러싼 나치주의자들은 비이성적이고 비지식

적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전쟁이요,파괴요,

절망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나라

 

 

 

마다 분열이 되고 민족마다 나누어지는 아픔을 겪어여만 했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을 통해서 인간이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도

아니고 지식적인 존재도 아니며 인간 속에 치료할래야 치료할 수 없는 심각

한 부패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과학발전을 통해 인간의 마이너스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러

나 오히려 더 큰 마이너스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여러가지 편리를 가져다 준 것도 있지만 대량학살을 가져

올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북한은 과학 발전을 통해 원자탄을 만들어 대량학살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

니다. 또한 과학발전은 오존층을 파괴했습니다. 구멍난 오존층을 통해 인간

에게 유해한 각종 물질이 지구를 향해 내려와 나무도 죽고 곡식이 메마르고

인간에게는 각종 질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오존층이 파괴된다면

이 땅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탄산가스의 과다 방출로 지구의 온실화 현상이 일어나 지구가 점점

따뜻해져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이제는 해면의 수위가 높아지고 생태

계의 거대한 변화와 파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나온 각종 매연을 통해 대기가 오염되어 비가오면 산성비가 내려

동식물과 인간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심각한 공기 오염으로 신선한 산

소가 상품화되어 팔리는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낙동강과 한강수계가 중금속으로 오염된 실태

를 접했습니다. 이제는 아무데서나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그리

고 아름다운 강산은 산업폐기물로 겹겹이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에게 플러스 삶보다는 마이너스의 인생을 들여왔고 지구를 파

괴해 가는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우리의 살길은 어디 있겠습니까?

 

3.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원한 플러스

 

우리의 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밑에 나아가 영원한 은총의

플러스를 얻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

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에

수님이 양들에게 생명을 주되 플러스 인생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의 십자가가 플러스 모양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가 가져온 마이

너스를 플러스로 바꾸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산에서 인류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고 하시면서 가

시는 곳마다 마귀가 가져온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죄

를 깨치시고 용서와 의를,질병을 제거하고 치료를,마귀의 억압에서 자유를

주셨고 가난이 변하여 배부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불안의 벽을 허무시

고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마귀는 이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플러스 행진이 계속되면

자신의 마이너스 행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을

충동질해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실수였습니다. 플러스 인생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던 플러스의 위대한 힘

을 온 인류에게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에게 마이너스를 영원히 제거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플러스 인생을 사는 은혜의 큰 강물이 수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나고 버림받아야 마땅한데도 마이너스 인생

속에서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리스도 안에서 넘쳐 흐르는 용서와 의의 플러

스 강물에 잠겨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하나님 앞에 새삶이 되는 것을 거쳐

영원까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미움이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이 되어버립니

다.

 

우리 인생이 상처 입은 마음과 추하고 더러운 문제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

으면 사랑과 거룩함의 플러스 강물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

로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 그늘 아래서 우리의 영혼이 치료받고 마음이 믿음,소망,사

랑으로 치료받고, 우리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를 받습니다. 또

한 우리의 생활과 환경이 치료를 받습니다.

 

병은 마이너스지만 치료는 플러스인 것입니다.예숴님은 말씀하시기를 "믿

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

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16:17-18) 고 말씀하셨습니

다.

 

또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

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2절) 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플

러스 인생을 가져다주기를 원하십니다. 마귀가 가져온 마이너스를 깨뜨리시

고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되 넘치도록 얻도록 해주십니다.

 

주님은 저주에서 해방과 축복의 플러스 강물을 우리에게 흘러 넘치게 하셨

습니다.

온인류는 아담,하와 이후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

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

주를 받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그 저주의 마이너스 가시를

제하시고 은혜와 축복의 강물 안에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입을 넓게 열고 이 강물을 드십시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네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

리라 "(요 8:37-38).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기도와 찬미를 통하여 우리마음에서 저주의 마이너

스 가시를 제하고 플러스의 복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주님은 부활과 영생 천국의 플러스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김일성은 죽었지

만 마이너스 속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플러스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빼앗길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오히려 영생과 천국의 플러스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고전 15:55)고 바울선생은 사망을 통렬히 비난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

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

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고가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

복음 14:1-3)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플러스를 가

져옵니다.

 

에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천국 저수지 수문을 열어 놓으시고 인생

들에게 천국 생명의 플러스 삶을 살도록 예비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언제나 십자가를 메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

하여 죄를 완전히 물리치고 의와 용서를 플러스하고 살아야 됩니다. 또한

미움과 모든 추함을 십자가 플러스를 통해 사랑과 거룩함을 마음속에 플러

스해 살아가야 합니다. 질병과 고통의 마이너스를 깨치고 치료의 플러스를,

생활의 저주를 무너뜨리고 축복의 플러스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

음의 멸망의 마이너스를 이기고 천국과 영생의 플러스를 갖고 살아야 합니

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플러스 인생을 누리고 살면서 이

플러스 인생을 마이너스로 가득찬 세상 속에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도록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게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생명

을 나누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말씀핫비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너의 마이너스 인생을 걸머진 사람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넘쳐나는 하나

님의 영원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즉 누

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

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은 플러스 인생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것이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이 말씀

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한 영원한 플러스 인간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플러스 인

생을 살고 이웃과 나라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717

분 류 : 설교

 

 

 
 
 

86

제 목 : 기쁨의 샘

자료원 : 순복음소식 조다윗목사

구 절 : 빌립보서3장1절

 

 

사도 바울은 칠흑같이 어두운 로마감옥에서 발목을 쇠사슬에 묶인 채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사도 바울이 이처럼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 속에 분수

처럼 솟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쁨은 우리들의 삶의 활력소입니다. 기쁨을 잃은 사람은 삶의 가치

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환희를 체험하려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얻으려고 하거나 금전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모두 '허무한 행위'입니다. 권력이나

금전이나 향략추구에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에 불과합니다.

 

1. 기쁨의 원천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1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허므로 하

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은 사람은 진정한 기쁨을 상실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

에는 죄악의 담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기쁨을 잃고 슬픔과

절망 가운데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기쁨을 잃은 아담의 첫아들 가

인은 자기의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상실하고 이혼하는 이유가 어디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기쁨을 잃고 미움과 원한 사

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

서는 기쁨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이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입니다.

 

기쁨이 있는 주부는 어떠한 생활의 역경도 이겨나갑니다. 기쁨이 있

는 남편은 신념을 가지고 경쟁사회를 이겨나갑니다. 기쁨이 있는 사람

은 만난을 무릅쓰고 삶을 승리로 이끌어 갑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하

나님께 기쁨을 공급받으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죄악의

담을 청산해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죄악을 청산할 수 있는 길을 열

여놓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

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죄없이 태

어나시고 죄없이 33년을 사신 후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

리셔서 하나님 앞에서 몸 찢기시고 피 흘리렸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

 

 

 

님께서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청산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죄 지은 그대

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남녀노유, 빈부귀천할 것 없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모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떳떡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

며 따라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죄악을 청산받고 영원한 삶을 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버림을 받을 것이냐는 바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

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여러분은 하

나님과 홧고할 수 있는 은총을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넘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빈다. 이 기쁨을 체험한 바울은 "주 안

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 영혼을 안전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절실한 만남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영혼 속에 넘치는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 그 기쁨을 체험함으로 이 땅

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 교히에 나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과 기쁨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있지못한 크

리스천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 반면 얼굴에 언제나 걱정이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었떤 사람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기쁨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무척 내성적이서 대중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도 못하였던 여학생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기쁜 얼굴로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그 여학생의 환한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그 여학생은 주위의 조소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쁜 얼굴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

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

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은 곧 성령이요, 기쁨이빈다. 사도행전 2장 46절로 47절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

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쁨이 넘쳐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웃을 사랑하며 지냈다고 성경은 기쁨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쁨을 잃고 어두운 삶을 사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우리가 인생을 힘있게 가치있게 살아갑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은 질병을 극복하고 절망을 극복합니

다. 염려와 근심은 심령을 병들게 하고 육체를 마르게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충만하여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이 세상

을 맑고 밝고 환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을 통해 얻는 기

쁨이 영원한 기쁨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3. 말씀의 연구와 기쁨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쳐 납

니다. 예레미야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

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

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얻습니다. 옛 성현

도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함이 없다'고 말했습니

다. 하물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에게 어찌 기쁨이 넘쳐나

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서 염려와 근심의 어둠을 몰아내고 기쁨

의 환한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때문에 성도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집에서도 계속 말

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성도가 넘치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기쁨은 환경의 자극

에 의한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극이 끝나면 기쁨도 끝나고 맙니다. 더

구나 이 세상의 자극은 점점 큰 자극을 요구합니다. 그 때문에 이 세

상에서 쾌락을 추구하며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원하고도 가치있는 기쁨을 얻어야 합

니다. 이 기쁨을 얻는 사람이 가정의 화목을 이루고 이웃과 사회에 평

화를 줍니다. 이 기쁨이 인류를 살립니다. 이 기쁨이 창조적인 기쁨이

요 위대한 기쁨입니다.

 

4. 기도 생활과 기쁨

 

또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은 죄와 불완과 미움과 공포가 가득찬 세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시시때때로 염려와 근심에 묶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

며 염려와 근심을 다 맡길 때 마귀의 억압에서 벗어나 샘솟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것은 의와 희락과 평강입니다. 그러나 마

귀는 우리에게 정죄의식과 불안과 근심을 줍니다. 나는 이따금 내 마

음이 답답하고 용기와 희망과 평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

다. 그때마다 나는 즉시로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

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면 억압의 고통이 물러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기쁨을 체험하려는 성도는 어리석은 성도입니

다. 제가 C.G.I. 서울대회에서 세계 각지에서 참석한 3천여 교역자 및

성도들을 인도해 기도원에 간 일이 있습니다. 5분 내지 10분정도면 끝

 

 

 

납니다. 저는 그들에게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사진도 찍지 말고 오직

기도만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30분 지나서 보니까 그들이 힘겨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

니다. 나는 그들을 격려하며 다시 기도에 전념할 것을 권고한 후 계속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난후 그들의 얼굴을 보니 환

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처음엔 고통스러웠으나 그것을

극복하자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했노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들은 한국을 떠나면서 기도원에서의 기도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약속이나 한 듯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기쁨이 유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시간 이상의

기도를 통해 죄를 회개하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때 여러분은

물질로는 살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5. 성도와의 교제와 기쁨

 

혹자는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고 무엇 때문에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느냐, 혼자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 되지"라고 합니다. 그러

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교제를 나눌 때 흑암

의 세력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말세인 오늘날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서로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교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

니다. 성도의 교제없이 혼자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없습니다. 저는 많은 성도에게서 "교

회에 오기 전에는 마음에 기쁨이 없고 염려와 근심으로 짓눌려 있었는

데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다 보니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마귀의 역사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구역예배에도 참석하고 이웃에 있는 성도들과

자꾸 만나 서로 교제합시오.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고 적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작불이 하나 타는것과 두 세개

가 모여 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교제할 때

신앙의 불꽃이 활활 타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라고 하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고 하셨스

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서로 대인관계를 유지

하며 살듯 신앙생활도 성도들과 교제를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

고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6. 주님의 사업과 기쁨

 

성도가 주의 사업을 하지 않으면 기쁨을 상실하고 맙니다. 주님의 사

업을 하지도 않고 그냥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기쁨을 얻

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

히 하면 피손을 잊고 넘쳐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추운 겨울 주일 아침에 손을 비벼가며 교통정리하면서도 기쁨에

넘쳐 환한 얼굴로 봉사하는 집사님들을 봅니다. 또한 엿새 동안 생활

에 전념해 피곤할 텐데도 주일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피곤한 줄 모르

고 기쁜 얼굴를 하고 있는 교회학교 교사들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날의 확장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성도를 결코 방관하시지 않고 하

늘나라의 기쁨을 넘치도록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이 사실을 교훈하셨습니

다. 주인의 말을 듣고 열심히 충성하여 두배를 남갠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주인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

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성하지 않아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있던 종은 주인으

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책망을 받아야 했습

니다.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받은 직분을 그대

로 두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업을 충실하게 감당해서 이 땅에서 즐거움을 얻고 후에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나님께 상급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기쁨을 잃은 사람의 '사람의 삶은 가뭄으로 메마른 산하처럼 삭막합

니다. 그러나 기쁨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의 삶은 단비를 맞아 빛나는

산천초목처럼 윤택하빈다.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

이니라"(느8: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우리

심령에 기쁨이 넘쳐나고 힘이 생깁니다. 이 기쁨이 진정한 기쁨입니

다.

 

부귀는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없고 권력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

나 이 기쁨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

리려면 기쁨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성령충만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사업에 충

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기쁨을 얻으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을 얻은 사도 바울은 캄캄한 감옥 속에서

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화요초가 둘러싸인 정원을 만들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기쁨을 얻지못한 사람은 삶의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없스빈다. 그러

나 이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초가삼간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며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이 기쁨을 얻게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30523

분 류 : 설교

 

 

 
 
 

87

제 목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골 2:8-17

 

 

우리가 집을 지을때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 자체가 안전합니다. 학문도 마

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확실히 잡혀 있지 않으면 어떤 발전이나 성과, 업적

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부산공업학교 기계과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노력 동원으로 매주일

부산 조병창에 가서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 한 선반 숙련공의 멋진 일솜씨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기술자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일찌감치 이곳에 와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좋

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기술자는 "아니, 그렇지 않아요,우리가 비록 기술로는 숙련되어

잇지만 더 이상 발전은 없어요.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론 공부를 잘

해 놓으면 나중에 기술 습득하기도 쉬울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할

수가 있는 거예요."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

십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면 그

신앙은 얼마든지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신앙

기초가 잘못 놓이면 신앙은 파산하고 맙니다.그러므로 이 시간에 예수님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갖도록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에수님은 삼위일체 중 제2위의 하나님이심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이었다. 철학자였다, 또는 혁명가였다

고 말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서 각각

독자적인 인격과 사역을 갖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세 분 하나님이 아니시고

한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는 성령에 계시로 나타난 것이므

로 이론상으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나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체험으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2위인 하나님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셨지만 아

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으매 죽기까지

아버지께 충성해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 예수님과 우주 창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1절로 3

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

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

로 천지를 지으십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예수

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으 마통해서 빛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궁창을 지으시고 육지와 열매맺는 나무와 풀을 지

으셨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공중에 나는 새와 물고기,

모든 짐승을 다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과 손을 잡고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 속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게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7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

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

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상의 정치,권세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

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을 못보았지만 아버지와 성령께서 보이도록 나타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역사상에 나타난,

보이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로 11절에도 보면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

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잃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

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고 하심으로 아버지를

보려고 하지 말라,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나셨을 뿐 아니

라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기도 하고 곗비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

에는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시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

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

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예수님이 가지고 곗비니다. 그리고 우

리가 예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하늘나라를 세우는 이상 예수님이 세상 끝날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는 1천3백만의 크리

스천들이 있고, 우리가 다 열심히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 이 나라를 쳐서 전복시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

무나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그들은 유물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 건너편에 있는 배후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 배후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한

도전을 예수님이 그대로 내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구원 사역

 

우리 주 예수님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눈에 보이는

형상이십니다 (히브리서 1:1-3) 우리 주예수님이야 말로 성육신하신 하나님

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만

물을 만드시고 만물을 붙들어 운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히브리서 2장 14절로 18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

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

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

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

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

들을 능해 도우시느니라."

 

이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셔서 오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친히 세사에서 고난당하셨으므로

우리가 고난당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능히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말

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하늘에서 내

려와서 인류를 도와주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종교가들이 여

러 가지 종교와 철학을 인류에게 주었지만 하늘에서 직접 내려와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종교 통

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몇몇 잘못된 사람들이 모든 종교는 다 같으

니 종교가 단합을 하자는데 이런 거짓에 우리가 속아서는 안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분, 우리 위해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

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신 그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

아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로 15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

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

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

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

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좀 복잡하고 이해하기 곤란하지만 간단히 풀어서 말하면 구약의

그 무시무시한 계명과 그 계명을 어길 때 내리는 하나님의 형벌과 인간들의

속죄를 위한 제사의식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다 없애버리셨다는 것

입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저를 믿으

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신약의 계약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남여,노유,빈부,귀천할 것 없이 행함으로 구원받

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은혜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성

령을 주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천당까지 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즉 신약은 주님께서 피로써 우리에게 맺게 해준 약속

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8절에 이 새 언약에 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이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

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구원을 결정짓

는 것이지 행함이 구원의 심판자가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

이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마귀의 정세와 권세, 모든 무장을 해제해버렸습니다. 이제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이빨 빠진 사자같이 되

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마

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저가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때 우리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죄악과 죽음, 부정,부패,미움,질병과

저주,가난에 포로된 옛 사람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용서받은 의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안에서 성령받고 하나님 사랑을 받았습니다. 치료함을 받고 아브라함

의 복과 천국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5중 복음과 3중 복음을

받은 새것이 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은 재림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주의 백성들을 환난 전에 피난시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먼저 방주를 만들어 피난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

라 성을 멸하실 때도 의인 롯과 그의 가족들은 먼저 안전지대로 옮겨 놓으

셨스빈다.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할 7년 환난 때도 주님은 줘의 백성들을 먼

저 공중으로 피난시켜 놓은 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0절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

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

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노하심

에서 건지겠다고 하셨지 통과시키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심으로 우리에게 환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로 36절도 같은 뜻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

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

하여지고 뜻밖의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

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온 세상에 환난이 다가올 때 이것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기도하라

고 하셨지 통과하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날 대부활의 연출을 할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

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이러므로 우리는 공중에 피난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하늘과

땅을 아버지께로부터 상속을 받아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사실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 9절로 14절에 보면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펴 놓였더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

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상속으로 받는 장면을 주님 오시기 약 7백년

전에 다니엘은 환상 중에서 이미 밝히 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 중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눈

에 보이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영이시며 성령

하나님도 영이시라 우리 육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시고 오직 아들을 톼아여 일하시며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도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님도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야 말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

이되시고 참 구주요, 심판자가 되시고 재림주,만왕의 왕,만주의 주가 되시

며 우리의 하나님이요,신랑이 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발행일 : 940703

분 류 : 설교

 

 

 
 
 

88

제 목 :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

자료원 :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조다윗목사

구 절 : 마태복음 8장5-13절

 

 

인간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을 크게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습

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크신 기적을 베풀어 보답하여 주셨는데

우리는 이 일들을 살펴보아 배워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시인한 백부장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주권자로 시인한 로마의 백부장의 이

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철학자나

지도자 또는 위대한 개혁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정도의 분이 아닙니다. 에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절대주권자로서 이것을 시인할 때 주님이 크나큰

기쁨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들어가셨는데 로마의 백부장이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식민지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 주둔군인

로마의 백부장이 만인의 눈앞엔 길거리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예사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상부에 보고되면 백

부장에게 큰 문책이 내릴 위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백부장은 서슴지 않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께 무릎을 꿇고 내 집에 중풍들린 종이 있는 큰 괴로움을

당하니 고쳐주소서'하고 절하며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이 행동으로 보

아 백부장은 상당히 사랑이 많은 군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그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누추한 저희 집에 오실

수가 있습니까? 한마디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도 남의 수하에 있고

제 밑에도 군사가 있으니 저들 보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예수님

은 둘러선 사람들에게 '내가 온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

을 본 적이 없다. 장차 하늘나라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동

서에서 많은 사람이 이르러 천국을 즐기겠지만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

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

다. 그리고 백부장에게는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고 하시자 즉시로 중

풍을 앓던 종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하고도 굉장한 것을 보여줍니다. 권세가 어

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권세'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백부장이 가진 권세의 배후에는 로마

정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로마의 권세란 로마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

치,경제,군사력을 총 집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의 명령을 거역하면 로마의 권세에 항거하는 것이 되

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가 이런 사람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권세를 대

적할 때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권세

는 말로써 그 위력을 나타냅니다. 폭력으로 밀고 당길 필요가 없습니

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

님을 그저 지도자나 개혁가 정도로 알았지만 백부장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기에 예수님의 권세야말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위

대한 창조주의 권세라는 것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님께 '예수님, 주의 말씀 한마디면 천지만물

이 다 만들어지는데 저희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습니까? 말씀만 해주

시면 병이 깨끗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

세에 대한 위대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어떠한 권세를 가지고 계실까요?

 

먼저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로 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

셨으니'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

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

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지만물 중에 하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미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과 땅과 세

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만물의 보존주이십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절로 3절

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

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

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

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

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

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

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만물을 다 상속으로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권능의 말씀으로 지금 천지만물을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해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

자들을 불러놓고 주님의 실상을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

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삼아 아버지와 아들

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

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

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

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말씀의 배후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할 때에 권세있게 말해야 한느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길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

 

 

 

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

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능력과 권세라는 말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

란 '두나미스'라고 해서 힘을 말합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에는 두나미

스가 있습니다. '권세'라는 것은 '익수지아'인데 이는 '두나미스'인

힘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경찰관은 힘이 없지만 힘이 있는 자동차를 호루라기 하나도 중지시킵

니다. 경찰드은 힘보다 더 강한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늙

어 몸이 약해졌을지라도 힘있는 자식들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갑니다.

자식들은 '두나미스'즉 힘이 있지만 부모님들은 '익수지아'즉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세를 주

셨다는 것입니다(눅 10:19).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권세있는

자로서 모든 마귀와 귀신을 말 한마디로 내어 쫓을 수가 있는 것입니

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실상을 알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어 영광 가운데 살도록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백부장이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고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믿었기에 그리스도는 크게 기뻐하셔서 그의 종의 병을 고쳐주신 것

자비니다. 오늘 이 시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와 '주여

말씀 한마디만 하옵소서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라는 확신을 찬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

시돈 지바에서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자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뛰어

나왔습니다. 그는 고함쳐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

서 내 딸이 흉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한 마디도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까지 간청했지만 예수

께서는 오히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전에는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이제는 직접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며 간청했습니

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냉정히 말씀하셨습니

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럴

때에도 이 여인은 마음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주여,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

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예수께서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 여자여 네 믿

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주

님께서는 멸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그리스도는 슬퍼하시는 것입

니다. 그러나 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끈질기게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가질 때 주님은 감동하신 것입

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주님께서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쌀쌀하게 거부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

뜨겁게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개라는 소리를 듣고는 '치료 안해주면 안했지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

뭐?개라고, 사람 잘못 봤어'라고 말하고 시험에 들어 가버릴 수도 있

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난이 다가와 눈에는 아

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

'오, 주여! 우리를 왜 이렇게 내버려 두시나이까?'라는 생각이 마음속

에 파도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

주님은 절대로 나를 사랑하신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

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주의 사랑을

나는 믿고 따른다.'고 하면 주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하

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이성을 초

월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하고 끈질긴 신념을 가지게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행동하는 믿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모

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곳에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도움으

로 들것에 실려 주님께 오려고 했지만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

나 이 중풍병자가 말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거

기를 통해서 나를 줄로 예수님 앞에 내려라'

 

남의 지붕을 헌다는 것은 남의 살림을 다 망치는 것인데 주인이 가민

히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내가 다 물어 주겠다. 만족

할 만큼 물어줄 터이니 지붕을 헐라'고 말했습니다.

 

이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치료를 그냥 믿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희생

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낫는다는 신앙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험하게 들것에 실려 지붕에서 내려올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또 그만한 행동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집 주인

에게도 충분한 값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허니 사람이 빽빽한 그 위로 그대로 먼지가 쏟

아집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 머리 위의 지붕을 헐다니 이게

웬 난리냐?' 고 고함을 치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고 계셨습니다.

 

모두가 먼지로 세례를 받고 더구나 예수님 바로 위로 구멍을 뚫었으

니 예수님도 먼지를 듬뿍 쓰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 먼지를

다 덮어쓰시고 가만히 계셨습니다. 주님은 행동하는 믿음을 볼때는크

게 감동하시는 것자비니다.

 

이 사람은 입술로만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을 실

제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라고 이 사람은 산 믿음으로 모든 위험과 불만을 무

릎쓰고 예수님앞에 줄에 매달려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속에 숨은 믿

음은 가능적인 믿음이지 실천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큰 믿음이나 작은

믿음이나 눈에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 어떻게 눈에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믿음을 보신 다음 즉각 말씀하셨습니다. ' 이

사람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동하는 믿음을 가

지고 나갈 때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과 교법

사들, 바리새인들이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사

람이 어떻게 감히 사랑의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참람하구나

'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사람보고 죄 사함 받았느니라 하는 것과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는 말과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로 하니 눈에 안보여 거짓말같지?그러나 이 사람이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눈에 보이므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겠지? 내게 죄를 사해 주는 권세가 있으니 증명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너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는 순식간에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가니 모든 사람들

이 길을 환히 비켜주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

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던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교법사들의 입을

철통같이 닫혀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죄사함과 병고침을 한데 묶어놓은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반드시 죄사함과 병고침이 같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면서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귀신을 좇아냄과 병고치는

것은 죄 사함과 똑같이 주는 은혜로 손바닥과 손등과 같은 것입니다.

 

치료는 죄 용서함의 복음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다음 사망이 와서 병이 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 용서함을 받게 되자 이제는 치료와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용서와 구원과 치려와 평강이 반드시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 중풍병자는 행동하는 신앙으

로 주님 앞에 나왔기 때문에 주님이 크게 감동하사 그를 축복하고 치

료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행동이 예수님의

반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절대주권자인 예수님, 의심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그리고

실천하는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살펴보고 믿음의 발자취를 따

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십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불신앙을 내어쫓고 무지를 내어쫓고 행동하지 않는 신

앙을 내어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오늘도 주님은 그 위대한 기사와

이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발행일 : 930919

분 류 : 설교

 

 

 
 
 

89

제 목 :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대하 20:1-23

 

 

6.25 사변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마흔 네해가 됩니다. 전범자 김일

성이 저지른 민족과 역서에 대한 범죄 행위는 금번 김영삼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전해 준 전쟁문서에서 밝히 드

러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과 더불어 어

떻게 6.25라는 전쟁을 계획해서 발발시켰는가가 온 천하에 공개된 것

입니다.

 

그후에도 그는 청와대 기습사건, 아웅산테러, 중동 근로자 귀국 비행

기 폭파사건등 헤아일 수 없이 많은 만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이제 와

서는 원자탄을 만들어 무력으로 남북통일을 기도하다가 온 세계의 지

탄을 받고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급기야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느니, 남한을 가만두지 않겠다느니 전쟁을 불사하겠다느니 하면서 온

갖 위협과 협박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공포에 떨면서 우왕좌왕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단호

하고도 의연한 자세로써조금도 당활자하지 말고 삼레 전짐선력 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 기독구니들은 이러한 때에 유다 왕 여소하

밧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해 유다 여호사밧 왕이

국가적인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었는가를 알아봄으롬써 현 상황에서의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고자 합니다.

 

1. 국가적 위기이 대처한 유다와 여호사밧 왕의 자세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흥왕

하고 국민들이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압과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해왔습니다. 유다 왕이 미처 반격을 가하지 못하

는 사이에 유다의 철벽성들은 하나,둘 무너지고 적군들은 예루살렘 가

까운 곳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유다 왕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가지 있었습니다. 우방으로써 늘 도움을 주던 애굽 군

대를 돈자르 주고 청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들의 군사력에 의지

해침략군에게 결사적으로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

은 애굽이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았고 자기나라의 군사력으로 대항하려

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하나님의 전이었습니다. 왕은 전국 국민

에게 금식령을 내리고 성전에 나가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점이 여호사밧 왕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

과 역사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에 위기를 맞자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적은 연합군이 물밀듯이 진격해 오는 다급한 상황에서 하나

님을 찾아 성전으로 나갔다는 것은 오늘날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너무나 어리석고 어린 아이의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 왕의 신앙을 높이 평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들이 취해야 할 길도 바로 이 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모

두 다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간구해야 합니다. 이 길이 최

선의 길인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30만 대군이 독일 기계부대에 쫓겨서 프랑

스의 작은 어촌 덩커크에 포위된 적이 있었습니다. 공중에서는 독일

비행기가 폭탄 세례를 계속 퍼붓고 바다에서는 그 유명한 독일 잠수함

들이 영국의 군함들을 모조리 폭파시켜 버렸습니다. 30만 영국 대군들

을 구할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영국군 30만 이 그곳에서 포로로

잡히면 구라파 대륙은 무너지고 영국까지도 독일의 손에 함락될 수밖

에없는 기막힌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영국 왕실과 수상 처칠은 중대 결단을 내렸습니다.하루동안 전 국민

이 모든 일손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회를 선포한 것입

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처칠 수상도 그날 온종일 웨스티민스터

성당 성가대석에 앉아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민들의 부르짖음에 기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덩커

크에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도일 기계 부대의 기계와 탱크들이 진흙창

에 빠져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비행기도 뜰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바다에도 파도가 너무 심해 모든 배들은 다 철수 할 수 밖에 없었습니

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쏟아지던 비가 어느날 저녁 갑자기 멈추었습니

다. 주위 전선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덩커크만은 비가 그치고 별

빛이 보이며 잠잠했습니다. 영국은 재빨리 모든 군함, 개인 보트까지

르리 동원해 30만 대군을 안전지대로 실어냈습니다. 그후 주위 전역에

비가 그치자 독일군 부대는 순힉간에 밀고 들어왔으나 덩커크는 텅비

어 있었습니다.

덩거크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철수한 영국 30만 대

군은 곧 재편셩돼 아프리카로 진격, 몽고 메리 원수의지휘로 아프리카

전투에서 연전전승,결국 독일을 패망시키고 만 것입니다.

 

이르므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때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하늘의 하나

님을 찾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현재의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대통

령 이하 국민 전체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리의 육신의

팔이나 오늘날의 애굽인 강대국 등 인간의 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등을 돌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2. 여호사밧의 왕의 기도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 우리 열조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

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

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그가 왜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나왔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 뚜렷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통치하시고 이 땅에서도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이방나라도 다스리시는 즉 하늘과 땅과 세계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절대주권자라는 사실을 그는 인식한 것입니다. 권세

와 능력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연합군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면

그들은 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

님에 대해 여호사밧왕처럼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신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

을 허락하셔서 이스라엘이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생

각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이 약속을 강하게 가지고 나왔습니

다. 그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하나님께 헌당할 때, 하나님의 성령의 권

능이 성전에 충만했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입니다.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

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대

하20:9).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드릴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고 나와야 합

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부르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사가

육법전서에 따라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사용해서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의 말씀을 저버리시지 않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설교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서

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깊이 간직하시고 이 말씀에 의지해 하

나님께 기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통일하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약속하신 이 말씀대로 어제

귀신을 내어쫓고 병을 고치고 가난한 자를 먹이신 것처럼 오늘날도 우

리가운데서 동일하게 역사하시며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낸 다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선을 악으로 갚은 모암과

암몬과 세일산 거민들을 하나님 앞에 고소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에서

의 자손인 세일산 거민은 침공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들을 피해 돌아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지금 저들이 우리를 침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을 보옵소서."

그리고 또한 적을 대적할 능력이 없음을 아뢰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는 적을 대적할 만한 능력도 없고 방도도 없사오니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이여,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그는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했고, 두번째는 하나님

의 약속의 말씀을 강력하게 시인,제시했고 세번째는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말씀대로 현재의 위기에서 건져주시기를 명료하게 간구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장황하게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같은 순서로 명료하게 도우심을 간구하고 탄워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부옅바고 하나님

께 간절히 탄원하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레위인 야하시엘을 통해서 응답하셨습니다.

"..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가바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이 얼마나 노라운 응딥입니

까?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약

속과 같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남북한 간의 위기의 문제도 우리가 거국민적

으로하나님께 나와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외교를

통해서든,전쟁을 하든지 이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야지 우리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 6월 25일 오후 4시에 여의도광장에 모여서 기

도하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을 베풀어서 문제

를 해결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 말씀하기를 "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너

희와 함께 한 야웨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7) 고 하셨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줄 뿐만 아니라 싸워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가서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

니까?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내어 맡기면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께

서는 당신의 양떼인 우리를 위해 곰과 이리와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희는 두려워하면 놀

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야웨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군대를 보내는 등 전쟁의 형식은 다 취하라

그러나 싸움은 내가 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은 군대를 정렬하고 그 앞에 찬양하는 사람

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는 하나

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리고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전쟁터에 나가는 군대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은

성가대를 세워 찬양케 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유다 군대는 성가대를 앞세워 찬송을 부르며 적진을 향해 나갔습니

다. "야웨를 찬미하라 그는 지극히 크시고 영화롭도다"하고 찬송을 시

작하자 마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매 적의 연합군들이 서로 살륙하

여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군인과 백성들은 구경하고 성가대들

은 찬양하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찌르고 싸워 진멸해 버리고 만 것입

니다. 유대인들이 한 것은 적군의 금은보화를 노획하는 일 뿐이었습

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싸워서 원수를 진멸하신 역사적인 위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

지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우리의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 백

성들을 위하여 전쟁도 불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

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구하기 우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들

과 함께 싸우시며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 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요엘은 요엘 2장 15절로 20절을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

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

게 하고 야웨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

를 야웨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

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그때에 야웨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

휼히 여기실 것이라 야웨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

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

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

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

리라."

 

여러분,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6.25일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도,장로님,권

사님,안수집사님,집사님,우리 지역장,구역장,일반 성도님들 할 것 없

이 모두다 모여서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 하나님이여, 공산주의자들이 또다시 우리를 침략하는 일이 없게 하

여 주옵소서. 우리나라가 열국의 수치거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

서. 우리의 강토가 초토화되고 우리의 노 부모나 어린 자녀들이 극심

한 곤란중에 거리를 헤매이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합심하여 우리의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부르짖음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시게 해야 합니

다.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전쟁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께서 능력과 권세로써 우리 조국과 민족을 보호해 주시며 오히려 복을

부어 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

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나라가 열국 중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으며 위

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으며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백성이

되고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

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첫재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세째도 기도로써 하나

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발행일 : 940626

분 류 : 설교

 

 

 
 
 

90

제 목 :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자료원 : 조다윗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시 139:13-18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또한 낯

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여간 낭패스런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사람이 자기 삶의 길을 잘못들거나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정

말 비극적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가야만 할 길을 빗나가 잘못된 길을 가거나 하나님께

서 정해 놓으면 길을 저버리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 가기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삶은 모두 다 종국에 가서는 파탄에 이르게 되

고 일생이 실패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때 가서 아무리 후회한득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정싸하신 뜻을 좇아 우리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그래야

훗날 후회함이 없을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일생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예비하신 하나님, 인간을 위해 에덴 동산을 지으

시고 예비하신 하나님, 인간의 구원을 위해 2천년 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사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예비하신 하나님, 장차 우릭 들어가 살 곳

을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시고 예배해 놓으신 하나님,이 예배하시

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일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해 놓으시고 예배해

놓지 않을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가바은 그 성품상 모든 것을미리 정

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39편 16절에 보면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

었나이다"라고 하여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나기 전에 나의 일생이 이미 주

님의 책에 다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여

러분 한분, 한분에 대해서 무한한 관심을 기울이시고 여러분의 일생을 이미

작정해 놓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로 5절에로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

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

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므로 하늘과 땅과 세계를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

서 하나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도록 예정해 놓았다고 말씀하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란 무궁하고 영원하십니다. 이

미 세계를 짓기 전에 벌써 하나님 계획 속에 여러분이 계셨고, 여러분의 이

름과 일생을 아시고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정말 우리의

상상으로는 미치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가슴이 떨리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와같은 사랑을 믿음의 선조들의 생애 속에 분명히 나타

내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그의 일생 미

래의 삶을 예정해 놓은 것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2절에 "야웨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벌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내가 너를 모든 일을 하

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그리고 너를 복의 근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의 선언이지 네가 잘 하면 내가 돌봐주겠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요셉의 미래도, 요셉이 어릴 때 하나님께서 이미 다 보여주셨습니다. 꿈으

로 그의 미래를 예언하셨습니다. '밭에서 밀단을 베는데 열한 단이 자기단

을 중심으로 서서 절을 하더라','해와 달롸 연한 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하더라'하는 꿈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 형제들이 요셉에게 절할 것을 분명

히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을 통해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성도는 이미 그 삶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태어난 그날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길을 저버리고 내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간다

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예정하신 길은 우리가 어떻게 찾아 나갈 수 있겠습

니까?

 

성경은 '너의 길을 야웨께 맡기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너의 길을 야웨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일생을 계획해 놓았기 때문에 야웨께 맡기는

자는 계획대로 이끌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잠언서 3장 5절에서 6절에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웨를 의뢰하라 그리하

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는 여러가지 방법을 쓰십니다. 주님

은 계시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히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여러 사람이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가바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나의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드로아에서 엎드려 기도할 때 마게도냐인이 나타나서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언이나 꿈,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리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종종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를 예정된 길로 인

도하실 때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 제가 의사가 되기 위해서 부산 대청동의

어느 병원에서 일할 때 켄 타이스라는 목사님을 만난 것이 하나님께서 예정

하신 길로 인도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오후 저는 대청동 네거리를 내려가다가 우연히 역 앞 컨센

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해병대로 6.25때 참전했던 분이 다시 한

국에 나와 열심한 복음을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날 전도를 받고 또

그분께 기도를 받았는데 그분이 제게 자기의 통역관이 되어달라고 청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켄 타이스 목사를 보내서 저를 만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부산

에 있는 순복음 윌드미션으로 인도하시어 그곳에서 리차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통해 은혜를 받고 그 손에 이끌리어 서울에 있는

순복신학교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또 순복음신학교에서는 잊을 수 없는 우리 최자실 목사님을 동기동창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자실 목사님과 손잡고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

 

 

 

하고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존 허스튼 목사님을 만남으로 그와 손잡

고 서대문으로 나와 큰 교회를 이루고 그곳이 발판이 되어 여의도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해서 그를 통해 우리를 이

끌어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 줄 때도 많이 있습니

다. 죠지 뮬러 같은 사람은 독일 사람으로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위해

영어를 배우러 런던에 갔는데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고아들이 거리를 방황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산업혁명후 경제 곤란으로 빈민과 고아들

이 많았던 것입니다.

 

많은 고아들을 보면서 깊은 연민의 정을 갖고 있던 뮬러가 어느날 성경을

읽던 중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변호자"라는 말씀을 대하자

그 말씀이 그의 영혼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께

서 돌보아 주소서'하고 기도하면서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사로 가지 못하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서 런던에서 수천명의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고 기뻐하고 계신 우리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를

써야지 스스로 내가 내 길을 만들어 가려 하면 한없는 고통과 슬픔을 당하

고 허망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길에 순종하라

 

아브라함의 순종과 불순종, 그 삶의 시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며 그의 정한 길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이 흉년으로 양

식과 물이 없자,하나님께서 다시 인도하실 것을 그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

만 하나님이 길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으로 길을 만들어 애굽으로 내려 갔습

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내르리 바로에게 보내어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는 환난과

고통과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깨어져 크게 회개

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아내를 다시 찾아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돌아오자 하

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이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도록

기도하며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목회자

로서 이 교회를 잘 돌보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맡긴 길이요, 일인 것입니

다. 그 다음은 국민일보를 주셨으니 이를 잘 경영하여 한국 사회에 그리스

도의 등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세계선교의 길을 예배하셨으니 그 일에 충실한 것이 나의 길이

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들을 위해서 저 스스로 계호기하지 않

습니다. 그 대신 저는 '주님께서 이미 계획해 놓으신 저의 일생의 길에 들

어서서 살기를 원하니 그 길로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늘 기도하며 삽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버리면 하나님은 나를 버리십니다. 사울 왕의 실패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하나님께

서 정한 길을 버리고 자기 길로 갔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때 아말렉이 대적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사람과 짐승을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을 친 후 왕 아각과 살찐 소와 양,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선지자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밤새도록 기도한

다음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야웨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

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

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

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야웨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야웨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저버린 사울은 결국 버림을 받고 왕권은 다윗에게

로 넘어갔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알았으면 그길에 서서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정하신 길은

내게 가장 좋은 길이니 잘 따르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기를 늘 간구

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길을 갈때 하나님의 기적을 믿으라

 

하나님의 길을 갈 때 인간으론 상상할 수 없는 벽에 부딪칠 때가 많이 있

습니다. 그때 낙심하고 방황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

와 나이 85세가 되었으 마때 방황했습니다. 기력은 소해 가는데 자식이 없

으니 하나님께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이 헛되어 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기적을 기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수단으로 도와야 겠다고 생각, 아내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 이

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역사를 통해서 이삭의 자손들인 이스라엘과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자손인 아랍 민족이 철천지 원수가되어 사워서 중동

의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을 통해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에 대해 이스마엘을 통해서 나타난 이슬람교가 전 세계에 걸쳐 도

전, 대결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한번 실수로 말미암아 그때이후 인류 역사의 종말까지 이스라

엘과 아랍, 기독교와 유대교 및 이슬람교 간의 대결이 끊이지 않게 된 것입

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기적

을 베푸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후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

의 기적으로 역사하셔서 90세된 아내에게서 아들 이삭을 낳아 하나님이 원

하시는 혈통을 이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길을 좇

아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홍해수가 앞에 막혀 뒤좇아온 애굽군대

에게 도로 붙잡혀 갈 절망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통해 홍해수를 가르사 무사히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면 하나님은 기적을 예비해 놓는 것입니다. 3백만 명이

광야를 지날 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매

일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습니다. 고기도 주시고 바위에서 물도 터지게

하셨습니다. 야웨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길을 가는 이들

에게는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핵문제로 남북 간의 위기 상황이 고조되고 있지만 우리가 하

 

 

 

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해결의 길과 방법이 열릴 것

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

한 일을 보여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승리와 구

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는 6월 25일 오후 4시에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나

라와 민족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대회를 갖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여서 매스컴을 통해 우상과 사신을 섬긴 민족의 죄악을 회개하고 전

쟁의 참회를 면하게 해주십사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남북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 남북한

합해서 50만 명 이상의 생명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말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참하게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 있고 이런 짓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사 우리 나라와

민족을 구출해 주시도록 이웃들에게도 권유, 함께 모여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나의 일생을 다 정해 놓으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면 우리는 조바심을 버리고 크고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꽃들도 장미,벗

꽃,진달래,며느리밥풀꽃 등등,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져 이 세상

에 피어나게 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여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들도 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해 주신 삶이 있습니다. 이

미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남자로 혹은 여자로, 한국사람 혹은 서양사람으로 주신 이 삶속에서 순종

하고 믿고 살아갈 때 참으로 자기의 분수껏 인생을 살게 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결코 나의 삶과 이웃의 삶을 비교하여 우월감이나 열

등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기 때문에 늘 아버지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발행일 : 940619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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