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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를 벌거벗게 하는 것
자료원 : 순복음가족 조다윗목사
구 절 : 창세기3장1-11절
아담과 하와가 원래 벌거벗고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들을 둘러싸서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를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
나 그들이 마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탐욕의 노예가 되자 즉
시 그들 자신을 바라보니 벌거벗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수치와 곤욕이 따르고 두려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광의 옷만 벗기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에덴 낙원도, 하나님의 그 모
든 예비하신 축복도 다 벌거벗기움을 당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
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한번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이 있었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는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자기 이익
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기 이해에 집착하자 하
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수치와 곤욕과 수고와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버
렸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들의 삶을 깊이 살펴보는
동기로 삼아야만 하겠습니다.
1. 탐욕은 우리를 벌거벗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있는데 탐욕은 우리를 벌거벗깁니다. 아담은 탐욕이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다가 탐욕이 들어오니 그만 자기를 바라보게 되
었습니다. 이처럼 탐욕은 인간을 인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 되게
하여 하나님보다 자기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탐욕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들어 버립니
다. 탐욕 때문에 왕의 지위를 잃어버린 사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
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해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올 때에
아말렉이 그들을 막아서 진행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을 쳐서 진
멸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의 마음에 탐욕이 들어와 그는 자기 자랑
을 위해서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 포로로 데려오고 살찐 소나 양이
나 염소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끌고 왔습니다. 탐욕이 들어와서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을 바
라보고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다가 탐욕이 들어오니까 하나님을 바라
보지 않고 자기를 바라봅니다.
성경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
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
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
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
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는 왕의 지위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탐욕이 들어온 사람을 벌거벗깁니다. 그는 여러가지 변명을 했지만 그
것은 거짓말입니다. 결국 사울은 탐욕 때문에 벌거벗김을 당하여 왕권
도 재산도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적군에게 맞아죽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보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만 쳐다보고 살아
서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만성천
자로 세워주심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에 탐욕이 들어오자
그의 영광과 명예는 벌거벗김을 당했습니다.
어느날 그는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어
떤 한 여인이 자기 집 뜰에서 목욕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탐욕이 생겼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데려오라고 명했습니다.
알아보니 그녀의 남편은 군인으로서 다윗을 위해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여인을 추해 동침을 한후 그가 잉태하자 이 사실을
감추기 의해 그의 남편을 전선에서 불러왔습니다. 다윗은 그 남편에게
집으로 가 아내와 편히 쉬도록 강권했으나 그는 동료들이 일선에서 고
생하는데 어떻게 홀로 집에 가서 편히 잘 수 있겠느냐면서 사양했습니
다. 결국 그 아내와의 동침이 이루어지지않자 다윗은 이 군인을 최전
방에 보내어 전사하도록 하라는 편지를 요압 장군에게 보냈습니다.
다윗의 계획대로 그녀의 남편 우리아는 죽었습니다. 철면피하게도 다
윗은 그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께서 진노하셔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
다. 다윗은 물론 그 자리, 보좌에서 내려와 조복을 벗고 삼베옷을 입
고 엎드려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를짖어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
고 탐욕의 노예가 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대가를 요구하셨습
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칼이 당신의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 아
버지의 처, 첩을 소유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아버지의 군대와 격전을
벌이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명
예가 벌거벗김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축복이 벌거벗김을 받는 비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탐욕이 들어오자 마자 하나님을 보는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고 인본주의와 이기주의로 서게 되었습니
다. 그렇게 되자 자기의 벌거벗은 수치를 면할 수가 없어서 자주 자기
를 변명하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으나 곧 말라버리자 그들
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탐욕의 결과는 불안과 공포와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느 크리스천
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먼저 바라
보고 자기에게 손해냐, 유익이냐를 앞세워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를 벌거벗게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예수님은 2천년전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예수님의 삶 전체는 자기를 완전히 비우
고 하나님만 쳐다본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하는 말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수님은 자기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
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
님을 쳐다보지 말고 자신을 쳐다보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옛날 아담과
하와를 꾀었던 경험으로 예수님을 꾀었습니다. 40주 40야를 금식하셔
서 매우 시장하신 예수님께 마귀는 ' 이 돌들을 떡덩이로 변하게 하여
먹으라 하나님의 능려과 권세를 이용해서 너의 공복부터 채워라'하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을 통해서 살 것이지 배가 고파 죽을지언정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정욕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안목의 정욕으로 시험합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높은
종탑 위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서 뛰어내려라. 네가 뛰어
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발을 받쳐서 돌에 부짖치지 않게 하
지 않았느냐. 만약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너를 존경하고 추종할
것 아니냐?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영광을 얻으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시
면서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뿐 자기의 인기
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네가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유혹했
습니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의 기쁨과 자랑을 위해
내게 절하고 제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이 뭐라
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라'고 하시면서 단호하게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권
세 등을 물리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마귀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으로 아무리 예수
님을 유혹하려고 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는 눈을 돌이키지 않았습
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자기를 바
라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요구를 단호히 떨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애의 가장 위대한 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
귀의 꾐에 빠져 당장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를 바라보매 탐욕이 들어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벌거벗게 되고 말았는데 예수님은 벌거벗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마귀가 예수님을 벌거벗기려 해도 끝가지 자
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경 빌립보서 2장 5절1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
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되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
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
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가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
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푸어서 우리를 낮추어 자기를 보지도, 자
기 정욕의 포로가 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면 하나님
이 이러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고 기뻐하사 예수님을 오른팔로 높인 것
처럼 높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내가 환난에서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신 하
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결코 떠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영광으로 둘러 진치고 낙원을 예비하시는 것
입니다.
3.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우리의 신분은 달라졌습니다. 옛 아담의 자
손이 아닙니다. 옛 아담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 때에 우리
는 우리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내게 이익인가, 손해인가, 내게 좋
은가, 나쁜가, 선악과를 따먹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자기 중심으로 살
았습니다. 자기의 이해를 따라 회집하고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아왔습니
다.
이러한 삶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양심과 생활이 벌거벗
겨지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며 불안한 삶이 끝이 없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모신 후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이암아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어 장사한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해서 이제 하나님
이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우리들
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신분상 굉장한 변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옛 아담의 후손, 탐욕의 주체인 옛 사람은 완전히 죽
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
었도다"(고후 5:17) 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과 자기를
번갈아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에 와서는 나를 제치고 '주
여 나 주만 바라봅니다'하고 집에 가서는 '하나님 뒤에 서세요.이제
나 중심으로 서야겠어요' 합니다.이렇듯 하나님과 자기를 번갈아 쳐다
보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채찍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마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속에
탐욕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이미 탐욕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
다. 우리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
경은 그리하면 '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
가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섬기며 살 동안에는 이 모든 것이 더해졌습
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었고 무엇을 먹을까,입을까,마
실까는 하나님이 다 예비하셨습니다. 그들의 양심에는 하나님의 영광
이 가득하고 벌거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했
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쳐다보고 따라가면 하나님이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
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이끄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잔이
넘치게 하고 영원한 천국까지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바라봅니다. 그러
나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돌이키시고 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자기의 손익을 먼저 생각하지 말아
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날은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
다. 아무리 내게 돈이 필요해도 십일조는 도적질하지 않습니다. 이렇
듯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
리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
비하고 준비한 것을 더하여 주는 삶, 얼마나 좋습니까!
아브라함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출발했지
만 그는 하나님과 자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타협적인 신앙을 가졌습니
다. 신앙과 탐욕이 범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
함에게 불시험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으로 서서 가나안에 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다 잃어버리고 벌거
벗김을 당했습니다.
가뭄으로 그의 모든 재산도 종들도 벌거벗겼습니다. 심지어 애굽에
내려가서는 아내조차 빼앗겨 완전히 벌거벗은 알몸과 빈손의 적막강산
이 되었을 때 그는 회개하고 자복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설
것을 하나님께 고했을 때 하나님은 아내와 노비,은금을 주셔서 가나안
땅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와서 하나님만 쳐다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아브라함아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그러나 같이 돌아온 롯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저 요단들의 기름진 곳을 탐욕
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아내와 딸들
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곳의 전쟁으로 인해 그돌라오멜의
포로가 된 것을 아브라함이 구출한 적이 있고 나중에는 패역의 성 소
돔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큰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을 강제로
끌어낼 때에 빈손 들고 나오다가 롯의 처는 미련 땜누에 뒤를 돌아다
본 즉시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도망쳐 산 속에서
살게된 롯은 큰 딸과 작은 딸을 통해 아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의 수치
스러운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벌거벗김을 받
고 수치와 곤욕을 겪은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를 돌보는 눈을 그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
100살에 낳은 아들도 하나님 명령에 따라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하나
님께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들어서 인간
에게 축복을 주는 조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
다. 탐욕은 우리에게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을 다 빼앗아가고 우리
를 벌거벗겨 놓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을 늘 경계하며 하나
님만 바라보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 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영광으로 옷 입혀 주시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발행일 : 93080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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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크리스마스에 오신 임금님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절 기 : 성탄절
구 절 : 사 32:1-4
2천년전, 유대땅 조그마한 베들레헴 위에 나타난 별은 바로 크신 앙이 나
타나신 것을 보여주는 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동방박사들은 위대한 왕이
이스라엘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고 그 별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베
들레헴까지 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전 이땅에 오신 임금님과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해마
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전 세계가 소란스럽게 축하를 하고 즐거워하는 것일
까요?
본문은 이 땅에 오신 임금님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
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그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풍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광풍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지니
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크리스마스에 오신 왕은 우리 속에 일어나는
광풍을 피하게 해주는 처소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속에 광풍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먼저 죄책의 광풍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내 속 사람으
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
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롬 7:22-23)라고 탄식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
는 속 사람과 정욕의 종이 된 겉사람의 갈등에서 죄책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죄책의 광풍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한 사
람도 없습니다. 이 죄책의 광풍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불원간 영원한 지옥
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2천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죄책의 광풍에서 피할
수 있는 처소가 되시다고 말씀하신 것이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혼자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심으로 우리이
모든 죄를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죄악의 광풍이 우리 영혼 속에
휘몰아쳐 와도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즉시로 죄악의 광풍은 잠
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
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말씀하셨습
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죄책의 광풍에서 놓여남을 받을 사
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광풍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가을이 되면
낙엽들이 바람에 쓸려가듯 인간은 아무리 위대하고 아름답고 찬란한 존재라
고 할지라도 세월이 흘러 가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
은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
게 누워야 하며 고생의 떡과 물을 먹고 마셔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질문하
면서 허무한 인생을 탓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광풍에서 피할 수 있는 처소가 되시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
며 영원한 삶을 보장받으면 우리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인간은 죽음과 절대 無의 광풍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
리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누가 이 죽음의 처절한 절망에서 우리를 구언해 줄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분, 우리를 죽음과 무의 광풍에서 구해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부활이요, 생명의 영광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천년 전 풍랑이 이는 갈릴지 바다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우
리에게 휘몰아쳐오는 죄책의 광풍, 허무와 무의미와 광풍,죽음과 무의 광풍
도 잠잠케 해주시는 위대한 왕이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의 광풍이 휘몰아쳐옵니
다. 누구든지 생활의 문제, 습관의 문제, 마귀 억압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
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문제들의 광풍에 시달릴 때 주 예수 그리스
도 앞에 나아가 그 발 앞에 엎드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광풍을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알콜중독자였던 한 사람의 간증을 읽고 은혜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알콜에 중독되어 가족들을 돌보지도 못하고 직장생활도 할 수 없느니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뉴욕의 유명한 병원을 찾아가 의사 선생님에게 치
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치료를 맡았던 의사가 이 분은 눈을 조용히 들여다 보면 "
여보시오. 나는 아무리 의학적으로 당신을 치료하려고 해도 당신의 속 사람
이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군요.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알코중독
을 고칠 수 없고,그러나 당신의 병을 꼭 고쳐주실 의사 한 분을 내가 소개
시켜줄 수는 있소, 그런데 그 분이 요구하는 치료비는 너무 비싸단 말이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그 분이 누구십니까? 아무리 돈이 든다고 해도 나는 그분에게 치료
를 받아야겠습니다."
"그분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당신은 당신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를 예수님께 드리면 당신은 알콜중독에서 치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사와 면담을 마친 그분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온 전신이 술을 달라고
부르짖는 상황 속에서 겨우 어느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주일도 아
니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고 교회 문은 잠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교
회문을 마구 두드렸습니다. 그래도 교회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분
이 가만히 보니까 문 앞에 우편함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그 자리에서 명함
을 꺼내 명함 뒤에다 편지를 썼습니다.
"... 사랑하는 예수님 저는 알콜중독으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가정도
파탄에 이르렀고요 당신께 치료를 받으려고 왔는데 문이 닫혔군요. 그러나
저는 지금 이시간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를 드리오니 저를 치료해 주
옵소서..."
그리고 이 분은 명함을 우편함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집어넣
는 순간 이 분은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자신의 영혼을 감싸는 것과 기쁨
의 평화가 마음속에서 강물처럼 넘쳐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이 분은 알콜중독에서 놓여나 건실한 사회인, 자상한 가장이 되었던 것입니
다.
여러분에게 삶의 광풍이 다가옵니까? 여러분이 영과 마음과 생활과 전체를
구주 되신 예수님께 내어놓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면 예수님께서는 그 광
풍을 잔잔케 해주시고 여러분의 생애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2. 그 왕은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폭우는 하늘에서 쏟아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빈다. 하나님의
수레는 천천히 돌아가도 반드시 정의롭게 돌아갑니다. 이러므로 죄의 값은
사망이빈다. 성경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에스겔 18:4) 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첫째가 현세적 심판입니다. 성
경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
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
인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4-6) 고 말
씀하셨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폭군이나 하나님을 대적한 제왕들은 반드시 하나
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천천히 돌아가도 정확
하게 돌아가 죄의 댓가를 반드시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당장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
서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육체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인간은 선악관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지 않고 부인한 사람은 사후에 반
드시 불신과 악행의 죄의 댓가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산자와 죽은자가 받는 전 세계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
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
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
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이후부터 구원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은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살전 4:16-17) 누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해 주실 분은 오
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
들이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받고 처절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예
수님 앞에 나아가 예수님게 긍휼하심을 구하고 생애를 내어 맡기면 예수님
께서는 우리를 현세의 심판에서, 사후의 심판에서 전 세계적인 심판에서 구
해 주실 것입니다.
3. 그 왕은 마른 땅의 냇물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업화 되고 도시화 되고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은 인정이 메마르
고 고독이 가득찬 시대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마른 땅
과 같이 되어서 사람들은 점점 참된 마음의 위로와 동정과 사랑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관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
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면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
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
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마른 땅같은 세상에서 생명의 냇물이 되시는 분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본문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있으면 아무리 세상이 메말
라간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는 위로의 샘물, 기쁨의 샘물, 믿음의 샘
물, 소망의 샘물, 사랑의 샘물이 넘쳐나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4. 그 왕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막을 지나는 대상들은 모래 광풍을 무서워하빈다. 한번 모래 광풍이 불
면 지형지물이 다 변형되어 오늘 있던 언덕이 내일은 없어지고 맙니다.그런
데 사막의 큰 바위 덩이리는 아무리 모래 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남아 있습
니다. 그러므로 대상들은 바위를 표적으로 삼아 여행하며 바위 그늘에서 안
식하곤 합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정치,경제, 군사적으로 끊임없이 격동의 모래 광풍이 불
어옵니다. 그 때문에 나라도 정치도 경제적인 상황도 다 변화되고 맙니다.
그러나 오직 변치 않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그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이십
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늘날 사가들은 불확실한 이 세계에서 물질을 의지하고 권세를 의지하고
지위와 명예를 의지하다가 곤비하여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집니다.
이러므로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처소는 오
직 예수 그리스도의 품밖에는 없는 것이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늘에 있으
면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세월이 변하고 인걸이 변하고 경제가
변해도 안식을 얻으려 평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못자국 난 손을 내밀며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마 11:28) .
우리가 의지할 곳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영원히
쉴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영원히 남는 참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여러분이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좇아 살면 여러분
은 영원히 멸망을 받고 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쫓아 살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
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소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주가 되신
다는 소식입니다.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일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고 그러다가 낙엽처럼 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는 인
생은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너
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 때만이 비로소 우리는 의미있
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만이 우리는 광풍을 피
할 수 있고, 폭우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마른 땅에서도 생수를 마실 수 있
으며, 곤비한 땅에서도 큰 바위의 그늘에서 안주하며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인간에게 이런 축복을 주시려 2천년전 이 땅에 오신 것
입니다.지금 이 시간 여러분에게 이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발행일 : 941225
분 류 : 설교
53
제 목 : 야웨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자료원 : 순복음가족 조다윗목사
구 절 : 이사야40:27-31
모든 신앙인들은 일생의 신앙생활 중 수차례 신앙의 밤을 지나게 됩
니다.
최근에 어떤 훌륭한 목사님이 신앙의 밤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같은 참담한 심정과 자신의 신앙의 비참함
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제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면서 제게
눈물어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도 35년의 목회생활 중 많은 신앙의 밤을 지나왔습니다. 사람이 신
앙의 밤을 지날 때는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같아 온
세상이 캄캄하게만 보입니다.
최근 저는 심신이 지쳐서 마음이 푹 가라 앉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세월이 흘러 은퇴했으며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하나
님의 음성이 제게 임했습니다. '조 목사 내가 피곤치 않은대 네가 왜
피곤한가? 내가 낙심치 않았는데 왜 네가 낙심을 하는가?' 이 말씀을
듣자 마자 저의 마음에서 피곤의 안개 구름이 거두어지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신앙의 밤을 지나면서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
씀을 주십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
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
며 올라감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
치 아니하리로다"(사40:28-31).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길에서 지치고 피곤하여 낙심될 때, 기도가 나
오지 않을 때 하나님께 나와서 야웨를 앙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
으로 밤을 물러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밤을 오게도, 가게도 하시는
능력의 주님께 나와, 기도가 안나오면 아무 말도 안하더라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
운 생명과 생기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든가, 성령의 감동을 주시든가, 치료의 손길
을 나타내시든가,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하나
님의 역사가 반드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마
음의 태도를 가지고 야웨를 앙망해야 할까요?
1. '야웨 이레' 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이레' 는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키 전에 천지와 만물, 에덴 동산을
미리 예배해 놓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예배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찢고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와 불의 저주와 죽음을 청산,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거해야 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이미 다 예비
해 놓으시고 언제 우리가 부름을 받아도 그 처소로 우리를 안내해 주
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일생을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성
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
하였다함과 같으니라"(고전 2:9) 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신 이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
다. 하나님 나는 지치고 낙심되어 있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
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하나도 없지만 내 앞길은 주
님께서 다 예배하신 줄 믿고 염려와 근심을 버리며 기쁨으로 채움받기
를 원합니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리할 때 야웨 이레 하나님께서
는 우리의 심령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2.'야웨 라파'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라파'라는 이름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시는 의사되시는 하나
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치료자가 되산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병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괴
홉히는 질병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그 죄와 마귀의 역사로 온 것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가고 오는 길에 모든 병자를
고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 중 병 고치는 일은 아주 중
요한 일이었습니다.그래서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라' 하시
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역사를 베푸
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12제아와 70인의 제자들에게도 행하라고 하셨고 마지
막 떠나시기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채찍
에 맞음으로 그 흘리신 피값으로 오늘날 우리는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야훼라파'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야웨라파를 앙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나의 치료자
하나님이여 심신이 병들고 고달프니 고쳐주소서'하고 앙망하면 달음질
하여도 피곤치 않고 걸어가도 곤비치 않는 치료의 역사를 우리에게 베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야웨 닛시 ' 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닛시'란 ' 하나님은 우리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깃
발'이란 무슨 뜻일까요? 깃발은 축제일이나 명절 등 기쁜날에 높이 답
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신 것입니다.우리가 아무리 슬프고 고달
파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축제가 되시므
로 우리에게 잔칫상을 받는 것같은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깃발은 또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된 패
배의 심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승리' 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
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아 일어나라 내가 낙심 안했
는데 네가 왜 낙심하는 가? 내가 좌절하지 않았는데 왜 네가 좌절하는
가? 일어나라 나와 함게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승리
의 깃발되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깃발을 우리를 이끄는 선봉입니다. 군대가 행군할 때 앞에서 깃
발을 들고 나가면 그것을 보고 따라가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깃발을 펄럭이면서 우리를 이끌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눈에 아
무 증거 아니 보이고 귀에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어도 내 앞에서 깃발을 날리면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국에서는 환한 천지로 이끌어 가시는 것
입니다.
또한 깃발은 소속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깃발을 높이 들고 그 밑으
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극기 밑에 모일때 우리는 대한민국 국
민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야웨 닛
시, 우리의 깃발이신 하나님의 깃발 아래 모이면 우리는모두 세상 아
닌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요, 왕같은 제사
장이요, 이 세상 나라에서 옮겨나와 하늘나라 백성이 되고 천국 소속
시민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깃발도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다릴 때에 우리에게 승리의 영광이 넘쳐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되고 피곤할 때도 그 상황에 주
저앉지 말고 고개를 들어 야웨 닛시를 바라보고 부르며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4. '야웨 샬롬'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샬롬' 은 '하나님은 우리의 평강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
러분, 우리에게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버
림받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를 하는 데 마음의 평강이 있을 수가 없지
요. 성경은 대개 악인에게는 그 마음 속에 평강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죄있는 사람이나 악인은 이 세상의 지위, 명예, 권세 그 무
엇을 가져도 마음 깊은 곳에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마음의 평안인 것입니다.
사람이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고 깨며 평안하게 밥상을 맞이할 수 있다
는 것은 행복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평안
을 우리가 어더시 얻을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서 얻은 평안은 환경이
바뀌면 순식간에 불안과 공포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두려움
없이 전진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햇빛과 같이 따사로운 사랑을 우리
엑 비취주시고 소낙비처럼 성령의 단비를 부어 주셔서 우리 마음이 살
아나고 평화가 넘쳐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아무리 높이 일어나도 10미터 밑으로만 내려가면 그
곳은 고요하다고 합니다.이같이 우리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염려와 근
심이 폭풍이 지나간다 해도 야웨 샬롬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 마음 속은 평안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 마음에 다가오는 모든 염
려, 근심을 다 극복하고 승리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과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풍파를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명하시
어 평정케 하신 것처럼 우리의 임금이신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은 평화
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안과 공포, 마음의 고통이 없습
니다. 영원한 샬롬, 평화가 있다는 것은 곧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평화의 바탕 위에서 건설되는 것입니다.
5.'야웨 로이' 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로이'는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 '라는 말입니다. 야웨 로이를
앙망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싸브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그러나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나를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저는 길 잃은 양과 같이 어둡고 캄캄한 밤을 지나면
서 두려움에 떨고 있사오니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 내게 오셔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양을 치는 목자처럼 저를 먹여주시고 보호해 주셔
서 악한 것들로 부터 해를 당치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처럼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여,
저는 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고 또 공격할 수도 없으니 하나님께 저
자신을 내어맡깁니다.하나님의 그 강한 손과 편 팔로 나의 원수를 막
아주시고 나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야웨 로이를 앙망하며 이렇게 말할 때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
님은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
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을 사랑해서 늘 양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도 우리와 늘 함께 계시며 보살
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캄캄한 밤을 지날지라도 우
리의 목자되신 하나님을 늘 앙망하며 감사할 때에 우리의 소을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6.'야웨 찌드케누 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찌드케누'란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
습니다. 우리는 죄 중에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나 수많은 죄를 지으
며 삽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는 없
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의 의는 쇠패한 나무 잎사귀같고 그의 의는 저 넝마
와 같다'고 말씀하비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로운 행동을 한다 해도 하
나님 보시기엔 냄새나는 넝마를 주워입고 하나님 앞에 선 것과 같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웨 찌드케누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님을 보내어 우
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다 짊어지게 하사 우리의 죄를 보혈로써 다 사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인치심을 통해서 우리의 죄
가 영원히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와
구원과 은혜와 사랑과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 나의 힘과 능
르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몸차지
고 피흘러 나를 대신하여 모든 죄악을 속해주신 그 예수님을 통해 아
버지 하나님을 앙망할 때 우리 아버지는 친히 우리의 더러운 옷을 다
벗겨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의의 의복을 입혀 주
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다 의로운 의복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할 때 주님께서는 성령의 빛을 비춰주시
고 위로해 주시며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7. '야웨 삼마'하나님을 앙망해야 함
'야웨 삼마'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전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
님은 옛날 이스라엘의 광야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 광야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우리가 어디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예수 믿고 보혈로 씻기운 사람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
전이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에
서나 산에서나 들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무릎 꿇어 기도하면 바로 그
자리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
니다.
어느 곳에서나 성전된 우리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생
활해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
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캄캄한 밤을 지날 때 나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낙심하
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의 심정에는 캄캄한 밤을 지나
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야웨 삼마 하나님을 앙
망할 때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
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는 사람 속에는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점령
하고 계십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버림받은 심정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나는 아무 가치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에 큰 깊이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신앙의 밤을 허락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제게 편지한 목사님이 그런 신앙의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는 그 편지에서 구구절절이 말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나는 버림받았습니다. 나는 무능력하고 무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이 신앙의 밤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할 일은 야웨를 앙
망하는 일인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야웨를 앙망하십시오. 야웨께
서는 당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야웨를 앙망할 때 야웨의 능
력이 임하여서 신앙의 밤을 밝은 아침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야웨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치고 올라감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해도 곤비치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밤을 지날 때에 낙심하지 마십시오.신앙의 밤을 지날
때가 하나님께 엎드려 야웨를 앙망할 때인 것입니다. 야웨를 앙망하십
시오. 힘차게 앙망하십시오. 그리고 야웨의 7가지 이름을 기억하고 야
웨를 앙망하십시오. 야웨 이레, 야웨 라파, 야웨 닛시,야웨 샬롬, 야
웨 로이, 야웨 찌드케누,야웨 삼마 이 7가지 이름을 기억하고 야웨를
앙망하십시오. 야웨께서는 그 이름을 통해서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발행일 : 9300725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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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프로그램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시 139:13-18
성경 시편 139편 13절부터 18절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
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
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
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의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
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
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개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
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만세전에 이미 계획을 세우시고 프
로그램을 짜고 그 프로그램대로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지난 10월 3일
<10.3 세계기도대회>라는 거대한 기도회를 여의도광장에서 개최했습니다.
이 대회를 위해서 교회가 1년 전부터 목표를 정하고 상세하게 계획을 세우
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대로 진행해서 큰 기도대회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목표와 프로그램이 분명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주관해 가시면서 목표도, 계획도, 프로그램도 없이 진행하실 리가 없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
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섭리 중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개개인의 삶 속에
서 역사하시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프로그램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나이 75세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프로그램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시작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정확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내게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
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이것이 바로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프로그램입니다.'나는 너를 향
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너는 나의 프로그램대로 실천하
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그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자기
아내 사랴의 손을 잡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바를 모르고 출발했습니다. 그
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기근으로 황폐해 있었습니
다.
기근이 심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힘으
로 살려는 개인적인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스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
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프로그램
중에는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
함이 애굽에 들어가자 애굽사람들이 아내 사라의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왕
은 사라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벗어나 자신이 계획한 프로그램을 따라갔
기 때문에 비극을 당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사건을 겪은 후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벗어낫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고 그 결과로 바로가 아브라함
에게 사라를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애굽에서 나와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남방에 올라가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유가 많아 아브라함의 일행과 조카 롯이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축을 기르는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과롯의 분리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야웨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
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과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순종하자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따라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
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 만에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85세
가 되었는데도 아직 후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통해 나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하은 인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프로그램을 세웠
습니다. 그것은 여종 하갈을 통해 후사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것은 하나가의 프로그램 속에는 없
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큰 풍파가 생겼고 그 인간적인 프로그램의
결과로 오늘날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간에 처절한 대립이
계속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순종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잘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개인적인 프로그램을
세웠을 때는 그때부터 문제에 부딪히고 고난과 슬픔이 계속해서 다가왔습니
다.
2. 요셉과 하나님의 프로그램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무척 사랑했고 다
른 형제들의 시기의 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날 요셉에게 일생을 살아갈 프로그램을 공개하셨습니다.
요셉이 밤에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자 해와 달과 열한
별이 그에게 절하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 야곱에게 그 꿈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요셉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형들이 세겜에서 아비의 양을 칠때 야곱이 요셉을 불러"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창 37:14)고 말하고 요
셉을 세겜으로 보냈습니다.
형들은 오셉을 멀리고 보고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성경은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
따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20)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깨어
지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신 프로그램에 부딪히면 인간의
계획이 깨어지고 맙니다.
형들은 요셉을 마른 구덩이에 던져 넣은 후 약대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족속 대상에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형들
은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파괴하려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울며 애굽에 노
예로 팔려갔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
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자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고 보디발은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보디발의 아내는 동침하자고 요
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동침을 거절하고"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라고 신앙적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요셉이 시무하러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 보디발의 아내 외
에는 아무도 그곳에 없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
셉은 자신의 옷을 보디발 아내의 손에 놓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앙심을 품
코자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요셉을 모함했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모
두 무너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셉이 시위대 감옥에 갇히는 그것
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훼방을 해도
그 훼방은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한가지 도구로 작용할 뿐입니다.
요셉은 시위대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꾼 꿈을 해몽해주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은 다시바
로 앞에 서게 됐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
고 살찐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그 뒤에는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올라와 살찐 일곱 암소를 잡아 먹는 꿈이었습니
다.
바로가 꿈 해몽을 놓고 번민하고 있을 때 술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자신
이 시위대장의 감옥에 갇혔을 때 꿈을 꾸었는데 시위대장의 종이었던 히브
리 소년이 자신의 꿈을 해석했고 그 해석대로 자신이 바로 앞에 서 있게 되
었다는 옛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말을 들은 바로는 급히 요셉을 부르고 자신의 꿈 해석을 명했습니다. 요
셉은 바로의 꿈이야기를 듣고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
도 일곱해니..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는 빈 일곱 이
삭도 일곱해 흉년이니(창 41:26-27)라고 말하고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
버리게 되고 이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창 41:29-31)라고 해서
한 후 그 기근의 해결책으로 풍년때에 곡식을 성에 저장하고 일곱해 흉년을
예비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로는 요셉을 칭찬하고 애굽
의 총리대신을 삼았습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성취된 것입
니다.
3.우리와 하나님의 프로그램
우리들도 개인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성경은 "내 형질이 이
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시 139:16)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정한 날이 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쓰고 애쓰고 여러분 계획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생을 살아
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삶은 슬픔과 고통, 절망과 상처
투성이의 인생을 살게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
생을 얻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온 사람
은 눈물과 근심과 탄식이 없는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를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등진 사람은
슬픔과 고통 중에서 신음하다가 어둠의 지옥으로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
게 계획되어진 프로그램을 따라 사도록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
의사가 되겠다''목사가 되겠다'' 사업가가 되겠다'라고 결정해도 그것은 아
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4. 우주의 주권자는 하나님
하나님이 온 우주와 천지만물을 지으셨으니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
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주고 사셨으니
우리의 소유자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
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종은 결정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됩
니다. 주인이 지시하고 명하는 일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값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종된 우리
는 주인에게 절대순종과 충성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이
명하시는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인이 원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에
각오하고 시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본주의의 자리에서 서서 자기가 인생 삶
의 주인이며 자기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마음
대로 인생의 선택의 자리에서 결정하곤 합니다. 이것은 종의 자세가 아니빈
다.
우리가 할 일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아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 버립니다. 이것
이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은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야웨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
이다"(시 123: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항상 주님을 바라
보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어려움에 부딪혀도 우리 개인의 프로그
램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자신이 프로
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습
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인내하지 못할 때가 많습
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근이 오고, 광야에 몰리고 벽에 부딪치고 홍해수가
가로 막아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가지 기다려야 합니다.
5. 하나님의 프로그램의 결과는 축복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과정은 순탄하지만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의 프로그램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기근이 다가왔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종살이도 하고 모함도 받고 감옥에도 들어갔스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알고 절대복종하고 순종하며 충성스럽게 믿음
으로 나간 요셉에게는 놀라운 축복의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
지입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따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갈 때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소망과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따라갈 때 평탄한 길만이 있지 않았습니다. 시련도
있고 고통도 있고 오해와 박해와 모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결
과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가 생겨나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 이미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매일같이 "하나님이여 하늘에 나에 대한 프로그램이
작성된대로 나의 생애 속에서 프로그램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지 마십시오. 하늘의 프로그램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순종하며 사십시오.그렇게 살면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이
삭과 야곱처럼, 요셉처럼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선에 있고 악에 있지 않습니다. 복에 있고 화
에 있지 않습니다. 성공에 있고 실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프로그램 속에서 영광스럽게 사십시오.
발행일 : 941218
분 류 : 설교
55
제 목 :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마 11:12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
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시며 항상 진노하시
고 심판을 베푸시며 좀처럼 좋은 것을 주지 않는 분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에덴에
는 죄악과 미움,질병,죽음 그리고 가난과 저주는 그 존재를 찾을 수 없었습
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왜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할까요?
1.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극과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와 더러움, 미움과 가난과 질병, 저주와 죽음 등을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자 우리 안에 들어온
것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주권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에덴에
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도전하면 누구든지 축복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하신 세계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심판은 영
적인 죽음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
지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죽은 자는 살아있는 사람과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살아 있을 때 그렇게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관계의 사가도 죽고나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
다. 이처럼 죽음이란 교제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한 후 영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후
손들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교
통이 끊어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쫓아 버리고 자신이 주권자가
되는 인본주의적인 세계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죽음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
고 하나님 없는 물질적인 세계 속에서 살다가 심판의 바람이 불어올 때 지
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환경의 저주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
를 내고 얼굴에 땀이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도록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겨 피투성이가 되는 것
은 축복된 삶이 아닙니다.
또한 생활고로 하나님의 심판의 일부입니다.생활고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
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신앙은 돋보이지만
그 생활고 자체가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창 3:1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병과 저주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몸이 흙인데 돌
아가기 위해서는 병이 들어야 합니다. 병은 우리를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지켜보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을 죽은 나사로를 살리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가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 이런 일이 생
긴 후에 마귀는 이 하나님의 심판을 이용해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귀가 인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만한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를 마귀의 종으로 내놓았
습니다. 누구든지 순종하는 자는 그 대상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사단에게 순종했음으로 사단의 종이
되고 사단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조건으로 삼아 사람들을 도적질하고 죽
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 해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벗어나보려고 여러가지
애를 썼습니다. 르네상스 혁명, 18세계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이성과 과학
을 통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몸부림쳤지만 절대로 인간에게 참
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인본주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일으킨 막스 레닌의 공
산주의는 70여년 동안 더 비참하고 더 가난하고 더 저주받은 세계를 인류에
게 남겼습니다.
이러므로 이 비극적인 실락원의 슬픔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겠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천국
이 세상과 인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2천년전, 예수님을 동정녀
몸을 통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
생자를 주신 것이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시자 그는 광야
에 이끌려 40주 40야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나오셔서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낙원, 그리고 마귀가 세상 임금이 되버려 마귀의 고통 속에서 인류가 사는
이 세계 가운데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천국을 이 세상 가운데 건설하시겠
다는 말씀이십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먼저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죄악을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가지 살아온 관행과 생각을 완전히 바꾸라는
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늘나라 임금으로 오셔서 천국을 우리 가운데 세우
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윤리나 도덕적
인 부흥운동만을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근원적인 목
적은 천국을 이 땅에 건설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여의 공생애 기간 동안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는 곳마
다 용서와 사랑, 치료와 해방을 주셨고 평화와 영생을 주셨습니다. 수많으
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국을 눈으로 보
고 귀로 듣고 맛보고 만질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가지 그들이 살아온 마귀
의 나라 속에서의 고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유대인과 로마병정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통하여 이땅에 천국을 도래하게 하는 수단으로 삼으신 것입니
다.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
속에 천국을 세우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천국은 2천년전 갈보리 십자가에서부터 몸과 흘리신 보혈을 통하여 용서와
의와 생명의 천국이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노예
가 되어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 밖에없고 태어날 때부터 죄속에서 태어났는
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청산하심으로 사망을 철폐하시고
용서와 의로움과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아무 조건이 없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를 통하여 용서와 의로움과 영생을 얻
게되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용서와 사랑, 성령 충만의 천국을 우리
에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됐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으로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충만한 축복으로 인해 하나님
의 사랑이 우리 속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되면 거룩
한 삶의 열매가 우리에게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자유와 해방의 치료의 천국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귀에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했으며
고통을 당했습니다. 더러운 마귀에게 더러움으로 묶이고 악한 마귀에게 악
으로 묶이고 점치는 귀신에게 거짓으로 묶였으며 연약함과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했스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게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과
치료의 천국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예
수님께서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묶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 하와 이후 심판을 받아서 이 세상이 저
주와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이고 가난과 고통을 당하는 인류를 대신해 십자
가에서 죽으심으로 축복과 은혜와 부요의 은총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죽음으로서 죽음을 멸하시고 죽음을 장사지
내셨으며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생과 하늘천국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야말로 그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해서 엄청
난 변화를 우리에게 준 사건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영적인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구만리장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
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합니다. 이
것은 우리가 있는 이곳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하늘
나라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임하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눈에 보이도록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통
해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고 이 진리에 계시
를 받아들이면 그로 말미암아 천국이 우리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에수님을 믿고 거듭나자 마자 천국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가 되었습니
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셨으면 천국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주님께서 세우신 천국의 역사가
우리 마음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나라를 세우러 오셨지 종교를 주로 오신 것
은 아닙니다. 마귀의 세력을 무찌르고 주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종교적인 시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도덕을 가르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천국을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에
서 못박혀 죽으시고 마귀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면 천국도 함께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
다. 왕이신 예수님과 그 나라의 권세인 성령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게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떠난 우리의 존재는 상사할 수도 없습니다.
3.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성경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가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 속에 하늘나라를 세우셨고 우리는 그 천국에
서 성령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와 함게 일하는 자로서 마
귀의 권세를 무찌르고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역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
애 속에 마귀의 모든 나라 흔적을 없애버리고 우리의 삶 속에 하늘나라 역
사가 넘쳐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노하여 다른 나라를 빼앗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어놓고 전 국민이 힘을 합해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천
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나라를 침노하고 마귀를 내어 쫓고 점령해
야 하는 것이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보냈을 때
그곳에 있는 가나안 일곱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점령하라고 말씀하신 것
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을 우리가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듯이 우리
도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천국 십자가를 통해 그 나라를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점령하기 위해서는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침노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시애틀에서 어느 성도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 성도
는 성남지역에서 30만평의 땅이 자신의 할아버지 소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
습니다. 6.25 사변 후 미국으로 무작정 이민을 했기에 자신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셨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기꾼들이 서류를 변조해 그 땅을 매매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성도는 그 땅이 합법적으로 할아버지의 땅이요, 상속권이 자기에게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것을 찾기 위하여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법
적으로 그 성도의 땅엔데 다른 사람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되찾기 위해서
는 싸워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찾아준 천국은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상속재산입니다. 그 천국은 용서와 의와 생명의 천국이요,
화해와 사랑과 성령충만의 천국이요, 자유와 해방과 치료의 천국이요, 축복
과 은혜의 부요의 천국이며 영생과 영원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
리의 것임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가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는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 믿었으니 이제
되었다. 할렐루야"라고 외쳤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위해서는 침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천국에 속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복음이야말로 천국의 실체를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확실한 믿음으로 천국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
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
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해야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여 의와 영원한 생명은 내것입
니다. 자유와 해방과 치료를 주시고 악한 영들을 다 쫓아내고 자유와 해방
을 주옵소서. 저주를 물리쳐 주시고 축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
다.
악한 마귀는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려고 공중의 권세를 잡고
우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천국을 침노해 들어
가야 합니다. 힘있고 강하게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몰아내야 합니다.마귀는 이
스라엘을 가로막았던 가나안 일곱족속과 같습니다. 우리는 악한 영을 쫓아
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귀산아 물
러갈찌어다"라고 강하게 대적해야합니다.
물리치지 않으면 악한 영들은 그곳에 집을 세우고 끈질기게 버립니다. 전
쟁하는 군사의 마음으로 강력히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조금도 의심없이 입으로 시인하고 강력
히 내 것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함을 주장해야 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라고 믿음으로 주장해야 합니다.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 건강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계속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고백
을 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이브라인 목사님의 아들이 뇌성마비로 태어났지만 바라봄의 법
칙을 사용해 건강한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너는 예수님 이름으로 치료
받았다. 너는 뇌성마비 환자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깨끗이 치료하셨
다"라고 강력히 믿음을 주장했을 때 3년만에 뇌성마비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뇌성마비 환자였다는 조그마한 흔적도 남지않고 깨끗이 치유되
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상황,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을 통해 천국
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많은 민족의 조상이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
꾸고 자신의 의지를 입으로 시인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을 주장하십시오. "축복은 내것이다. 저주는 물러갔
다. 축복과 하나님 은총을 방해하는 악한 원수 마귀는 물러갈찌어다"라고
강력히 믿음을 주장하십시오. 천국은 침노한 자가 빼앗습니다.
믿음과 기도로 침노하면서 마귀를 물리치고 입술로 주장하십시오. 강력히
내것으로 휘어 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리
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환경과 삶 가운데 천국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
다.
오늘날 이 세계는 영적인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흑암의 나라와 그
리스도께서 갈보리 죽으심으로 이루신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
음으로 천국 백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천국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강력히 마귀를 대적하고 입술의 고백과 긍정적인 시인을 통해 천국
이 우리의 삶과 가정, 이 사회와 이 나라와 온 세계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발행일 : 941211
분 류 : 설교
56
제 목 : 돌을 옮겨 놓으라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구 절 : 요 11:38-44
예루살렘에서 약 5리쯤 되는 곳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베다니
라는 예루살렘에서 낙향한 사람들, 실패와 낭패를 당한 사람들, 그리고 가
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
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무척 사랑하셨고 베다니에 가실 때마다 찾
아가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께 요단강 저편에 계실 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
이 전해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하려 함
이라"(요 1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계시던 곳에서 이
틀을 더 유하시고 유대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아셨습니
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
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
로 가자"(요 11: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서 예수님 유대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마리아는 집에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원망
이 함께 교차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슬픔 가운데 예수님을 반기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
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
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21-22) 라고 마르
다는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
11:23) 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시지 않고 마르다가 반기던 곳에 계셨습
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 계신 곳으로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께서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하자 예수님께서는 심령에 통
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다가 가셨습니다. 그 무덤은 큰 돌로
입구가 닫혀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뿐만 아
니라 예루살렘과 베다니에서 온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실제적으로 우리 눈 앞에 전개해 보
여주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
대 주권자이시며 친히 원하시는 그것을 뜻대로 이루십니다.우리 인간이 "이
렇게 마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
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지켜보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을 죽은 나사로를 살리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등 인간의 믿음을 강조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어떤 이들은 '목사의 아들 아니냐''저의 누이 동생들도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느냐'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지역적인 인간으로만 이해
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는 큰 일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편에서 중요한 것
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나
타내시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자신의 뜻을 믿음으로 승화시켜 하나님의 위
대한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말씀을 간절히 읽고 묵상할 때 마르
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으로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
라"(롬 10: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
을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의 마음속에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믿음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예수님 말씀에 대한 마르다의 반응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르다는 인간적으로
반응 했습니다.
성경은 "야웨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
희 생각보다 높으리라"(이사야 5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갹은 우리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
는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온 우주만물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
다.
하나님의 생각과 같은 사람의 생각과 길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
리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길을
알아서 그 길을 좇아가야 우리의 삶에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자신의 생각대로 반응했습니다.예수님께서
는 돌을 옮기는 것이 주님의 뜻인데 마르다는 자기의 뜻대로 돌을 옮겨 놓
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이성의 갈등에 부딪쳤습니다. 인간적 이성의 계산법으로 죽은 자
가 장사한지 나흘이 되어 살아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상식적인 갈등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마르다가 살아
오면서 무덤에 장사지낸 자가 살아 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생경험의 갈등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 사람이
무덤 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의 명
령이 너무 동떨어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또한 군종들의 비웃음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
다니에서 온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마르다를 쳐다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니..." 유
대인들은 무언의 암시를 통해 마르다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으
면 마르다처럼 마음 속은 심한 갈등에 허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갈등
에서 하나님을 멀리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성을 따르고 상식과 인생경
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믿
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길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을 좇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
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갈등하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맞추어야
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훈계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
였느냐"(요 11:40) 라며 마르다를 엄히 훈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믿음은 결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무리 크게
나타날 수 있을지라도 인간의 믿음이 없으면 그 영광이 나타날 자리가 마련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르다에 대한 훈계는 바로 믿음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또한 믿음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오직 나사로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은 마르다
의 믿음과 연합될 때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멀리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가까이 계셔
서 우리를 돌보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
나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우고 인간상식이나 경험이 앞선 삶을 살
기 때문에 믿음의 열매가 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훈계를 마음에 새기고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항상 우리에게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접목시키는 순수한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음이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말씀을 선택하길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어떻게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까? 다윗은 윤리나 도덕적으로 존
경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 부하의 아내와 동침
하고, 잉태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 여자의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한 인물
이었습니다.
다윗의 위대성은 도덕이나 윤리성에 있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즉시 회개
하는 마음과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에 있었스비다. 그는 나단 선지자로부
터 죄를 지적받고 눈물로 회개했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눈에 보이는것 없
었지만 말씀에 의지해 사자와 곰에게 덤벼들어 승리를 이룬 인물이었습니
다.
또한 골리앗 앞에서도 만군의 야웨 이름을 의지해 물맷돌을 들고 승리를
이룬 용사였습니다. 다윗은 이성보다 말씀을, 이성이나 경험보다 말씀을,
그리고 군종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이란 행위의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면 이성
적, 경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씀에 의지해 순종할 때 기적이 일
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외적인 것이 아닙
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안에 기쁨과 소망이 있었
겠습니까?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지만 말씀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못합니다.마리다와
마리아에게도 도움을 주는 손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돌을 옮기
려고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믿음의 행위를 돕지 않으셨습니
다.
오직 마르다와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
음이란 증명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외쳐도 행위의 열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5천명,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만명이 있는데 주
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직접 기적을 베푸셔서 주
실 수도 있지만 인간의 믿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역사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믿음의 증거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져오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수만명의 사람 앞에서 오병이어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
까? 그러나 그것은 안드레의 믿음의 표적이었습니다. 안드레의 믿음의 증거
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태산같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빌립은 이성적인
계산으로 믿음의 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한 안드레의 작
은 믿음의 배는 많은 사람들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면에는 믿음있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마
르다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돌을 옮기려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는 것,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행위, 또한 부르짖어 기
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4.열린 무덤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제는 믿음과 절망의 경계선에 놓여 있습
니다.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돌을 옮겨 놓는 것이었지만 나사로를 살릴 수
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약속을 받았다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께서 요구하시는 행위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역사는 하나님
이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바다위로 손을 내밀었습
니다. 그것은 모세가 자기의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지만 모세는 홍해를 향해 믿음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항상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능과 물가능의 경계선에 서야 합
니다. 우리가 믿으면 기적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 8:13)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과
저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
다. 믿음이 적으면 적은대로 믿음이 크면 큰대로 역사하신다는 약속이십니
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큰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말씀에 의지해 돌을 옮겨 놓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
님께서는 눈을 들어 우러러 하늘을 보시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
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이 있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살아났지만 수족이 베로 동여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
을 믿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을 얻고서도 죄악의 베에 동여 있
는채로 냄새를 풍기며 인생을 살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동인 베를 풀어 놓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죄와 사
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의 새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나 아직까지 세속에 속해 죄악의 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습
니다. 살아났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스빈다.
우리는 새생명을 얻고 사망의 굴에서 나왔지만 병의 베에 동인채로 슬픔과
불안, 낙망 속에서 살 때가 있습니다. 또한 저주의 베에 묶이고 슬픔과 불
안, 세상 염려의 베에 쌓여 하나님의 복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
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병의 베에서 저주와 슬픔, 세상 염려의 베
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동인 베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3서 1:2) 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불신앙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믿음을 가
지라""너를 묶은 베를 벗어 버리라"
발행일 : 941204
분 류 : 설교
57
제 목 :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들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절 기 : 추수감사주일
구 절 : 시 23:1-6
우리가 지금 살아서 존재하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입
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태양의 은혜를 받고 있습
니다. 햇빛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물과 공기, 하나님 주신 각종 음식물의 도움을 받고 살아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형제의 은혜, 이
웃과 국가의 은혜 등 헤아일 수 없는 많은 은혜를 받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 여정 가운데 이미 받았고, 또 지금 받고
있는 은혜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당연지사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성품이 악한 사람은 은혜를 받고난 다음 그 은헤를 악으로 갚고 은혜에 대
한 감사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은 은혜를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
고 그 은헤에 보답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앞
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많이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로 하
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으로는 다윗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 것자니가를 깨달아 되겠습니다.
1. 평상적 생활에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다윗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백이며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만드신 푸른 초장은 갈보리 십자가 밑입니다. 예수님께
서는 갈보리 산 십자가 위에 높이 매달려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
암아 아담과 하와 이후로 잃어버린 에덴 동산과 이 세상에 들어온 모든 슬
픔과 고통, 절망과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길 잃은 양들은 우리가 푸른 초장
에 누워 안식을 누리고 쉴만한 물가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
으신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는 죄사함의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 수고하
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불의의 노예가 되었더라도 갈보리 십자가 아래
있는 용서와 의의 초장에 들어올 때 해방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믿음
으로 말미암아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의와 생명 풀을 먹고 기쁨과
소망, 사랑과 영생으로 넘치게 됩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으며 성령충만과 성결의
삶을 얻을 수 있는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또한 갈보리 십자가에서 영도 마
음도 몸도 생활도 치료받게 되며 모든 마귀의 훼방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치
료가 강물이 넘쳐납니다.
갈보리 십자가 아래에서는 저주가 사라집니다.가시도 엉겅퀴도 사라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넘쳐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
건한 축복의 초장이 펼져져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는 사망도 음부도 사라지고 천국의 영광의 빛이 비춰집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아래에서 푸른 초장뿐 아니라 쉴만한 물가를 발견하
게 됩니다. 옛님게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
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
7: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보혈을 의지해 기도할 때 하
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를 마신 우리는 마음속
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셔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서 생명 속에서 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영혼이 힘을
잃어 버리고 잠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더불어 기도하고 성
령충만을 얻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의롭게 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의롭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잠들기 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너의 삶에
대해 기뻐하지 아니한다. 너는 오늘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고 성내는
것은 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성을 낸 죄를 용서하여 주
시옵소서. 예수님이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의 길로 걸어가는 나의 모습을 기뻐하
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번은 성도와 장로님들과 같이 이야기하다가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
다. 이것 저것 이야기하면서 희희낙낙하고 웃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 저녁 기도시간에 기도하는데 기도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오늘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목사,오늘 농담 많이 했지? 성경을 봐라.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하지 않았니? 나는 농담하는 네 모습을 보고 수치스럽게 생각
했다."
나는 그것을 인해 회개기도하고 나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는 입에서 농담을 그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겠습니다."
이 일은 평소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나를 의의 길
로 인도하기 위해서 양심의 가책을 주고, 회개시키고 저를 올바른 길로 가
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처럼 성령께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를 푸른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만
한 물가에서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이런 서영의 역사는 우리가 회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
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시련과 환난을 통과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
이다"(시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
는다고해서 시련과 환난의 터널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의 터널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시련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위로가 없이는 환난과 시혐을 이기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로 5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버림을 당하고 짓밟히고
혹은 낭패와 실망을 당해 환난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위로의 손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게 되면 울면서 웃고, 절망 가운데
소망하며, 슬픔 중에도 찬송하며 고통중에 즐거워하는 역설적인 역사가 우
리 삶 속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시험과 환난의 배에 타고 있
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해 주십
니다.주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인도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광야를
통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을 알지 못했습
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머물 때에 그들도 머물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머물 때에는 그들도 머물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와 교통하
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둡고 캄캄한 절망의 길을 걸을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통해, 우리의 소원을 통해 그리고 어떤
때는 환경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주의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주의 막대기는 주의 권능을
말합니다. 이 막대기로 주님께서는 원수를 치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저는 얼마전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대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곳에서
텔렉 이브라인이라는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수라바야에서 가
장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1만8천명 수용의 메머드한 교회를
건축중에 있습니다.
이브라인 목사는 몇년 전 한국에 왔다가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금요철야
기도 시간에 강사로 참석했다가 수리바야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사역
을 해야한다는 마음의 소원과 꿈과 환상을 가졌다고 합니다.그것은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원리를 바탕으로 전도하기 시
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역사로 교인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삼
만여 명의 교인들이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브라인 목사는 목사가 되기전 대지주였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어린아이를 다치게 했고 그 아이는 생명이 위독했습
니다. 회교국가에서는 어린아이를 죽이면 자신도 그렇게 죽게되는 법이있습
니다.
다급해진 이브라인 목사는 아이를 살려달라고 밤새도록 부르짖어 기도했습
니다. 기도의 결과로 그 아이는 살아났고 그 은혜에 감사한 이브라인 목사
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수라바야 주번에 1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일푼의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막
내아이가 뇌성마비로 태어났습니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사지가 모
두 뒤틀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
르짖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도움으로 교통사고난 아이가 살아났고 저
는 은혜에 감사해 전 재산으로 교회를 18개나 건축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들이 뇌성마비로 태어났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이의 뇌르리 네가 새롭게 하라 그 아이가 완전히 고
침받는 것을 꿈과 환상을 통해서 보고 계속해서 기도하며 입으로 시인하라"
그는 그때부터 꿈과 환상을 가지고 기도하며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 아들
은 깨끗해졌다.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 아들의 뇌는 새롭게 되었다"라고 입
으로 계속 시인했다고 합니다.
이브라인 목사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아들이 완전히 고침받은 것을 바라보
면서 3년동안 아들이 뇌성마비에서 치유됐다고 시인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막내 아들은 3년만에 깨끗이 치유됐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이브라인 목사의 막내 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장가들어
부인과 자식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뇌성마비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브라인 목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힘을
얻어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시련과 환난을 지날 때 그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 깨어지고 회개하며 변화받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 뒤에는 그와 동
등, 혹은 그 이상의 큰 축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원망, 불평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환난이 영화로움으로 변화되는 그런 역사를 베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원수 앞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5절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
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
니다.
수라바야 이브라인 목사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가 만팔천석의 교회
를 지으려 하니까 모슬렘교도 수천명이 정부 청사 앞에서 데모를 했습니다.
어찌하여 모슬렘 국가에서 만팔천석이나되는 거대한 교회를 지을 수 있느냐
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교회건축은 중단되었습니다.
이브라인 목사는 정부 당국자를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모슬렘교도들 뿐만 아니라 반대자의 30%정도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브라인 목사는 저에게 모슬렘들이 교회 건축을 방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반대할 수 있느냐며 고통스러은 고백을 했습니
다.
저는 그에게 "원래 반대는 집 안에서도 있고 밖에서도 있는 법입니다. 당
신이 성공을 해서 성도 수가 삼만명이나 되고, 만팔천명 수용의 거대한 교
회를 지으니까 목회에 성공 못한 목회자들이 열등감과 좌절감 때문에 반대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원수가 공격을 하면 하나님이 진수성찬을 차리시고 원수의 목전
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머리에 발라주시고 당신의 잔을 넘치게 하실 것
입니다. 원수들이 치면 칠수록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욱 큰 진수성찬을 차
리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좋은 장소에 거대한 교회를 건축할 수 잇
는 축복을 하나님의 진수성찬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위로를 삼으십시
오"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통한 시련과 환난이 오면 반드시 그 뒤에
도 하나님의 진수성찬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7절로 9절에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면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
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보배는 하늘과 땅
으리 지으시는 위대한 권세자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답
답한 일을 당하고 우겨쌈을 당하여도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
라 우리의 잔이 넘치게 하시게 때문에 고난 당할 때도 감사하시기 바랍니
다.
4. 우리가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제가 얼마전 어느 잡시사와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의 인생관과 신앙관이 무엇인
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생이란 밥먹고 살다가 죽음을 맞는 것이빈다. 정치, 경제,사회, 문화
등 이런 거창스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액세서리입니다. 그것이 허망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먹고 삳가가 죽어버릴 단순한 인생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인생관
이요, 신앙관입니다."
우리 인생은 행인과 나그네의 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는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님게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
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웨의 집에 거하는 엄청난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
신 아버지 집에는 눈물도 근심도 탄식도 죽음도 그리고 이별하는 것이나 곡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먼훗날에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
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
상을 닮아 하나님의 세계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고 예수님을 거역
한 사람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빈
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이유가 있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발행일 : 941127
분 류 : 설교
58
제 목 : 다니엘의 시련과 승리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단 6:5-24
오늘날의 중동지역인 바벧론 제국을 정복한 메대 사람 다리오는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들 위에는 세명의 총리가 세워졌는
데 그중에 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다리오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에 시기심이 생긴 총리와 대신들은
국사에 대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도 허
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참소하려는 무리들은 다니엘을 고소하려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틈을 찾
아야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왕을 찾아가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
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
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만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둘에 던져 놓기
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
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단 6:7-8)라고 고했습니다. 다리오는 조서에 어인을 찍고
금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들어가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
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 무리들은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왕
에게 다니엘이 금령을 어기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고 있으니 사자굴에 넣어
야 한다고 참소했습니다.
다리오왕은 참소하는 무리들의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며 다니
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리들은 왕에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라며 다니엘을 향한
왕의 마음을 꺾어 버렸습니다.
다리오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도록 했습니다 왕은 다니엘
에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단 6:16)고 했습
니다.
왕은 궁에 돌아가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했습니
다. 이튿날 새벽 왕은 사자굴로 급히 갔습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
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
기 능하셨느나"(단 6:20)고 물었습니다.
그때 사자굴 안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
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
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6:21-22).
다니엘의 소리를 들은 왕은 굴에서 올리라고 명했습니다. 굴 밖으로 나온
다니엘은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의뢰한 결과였스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스빈다.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그
들을 움켜서 그뼈까지도 부숴뜨렸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시련과 승리의 모습 속에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서로 상반될 때 이렇게 하십시오.
베드로전서 2장 13절로 14절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
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에게 세운 모든 제도와 법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왕을 공경하고
왕이 보낸 방백들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
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로 그러므로 권세
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르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
하리라"(롬 13:1-2)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로 3절에도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
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법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우리 신앙인은 단호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한국의 모든 교회에 일
본의 태양신을 십자가 위에 세워놓았습니다.성도들에게도 그것에 절하게 했
습니다. 타협하는 목사와 성도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목사와 장로, 성도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끝내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정치권력과 사회 조직이라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요구를 할 때
는 우리는 단호히 저항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 5: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어
오라는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성경이 남편에게 복종하
라고 했다고 해서 그 남편의 요구가 정당히 받아 드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남편의 요구는 하나님이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에베소
서의 말씀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 하나님의 법에 벗아나지 않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은 명령을 할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은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대신이었지만
나라의 법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날 때에 그는 단호히 하나님의 법을 지켰습
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고한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로 세
상의 법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이 나라와 사회의 법에
충실해야 하고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회지도자들을 존경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정부가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는 당연히 그법에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성수주일하고 하나님을 영화럽게
하는 예배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법과 세상의 법
이 조화를 이룰 때는 기쁘게 세상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2.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 없는 문화 속에 인간이 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
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만든 문화는 인본주의적 문화입니다. 어느 곳을 들여다 봐도 하나
님의 이름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흔적도 없습니다. 사단의 문화는 사람
들이 마음의 욕심대로 살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 명령에 불순
종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늘나라는 하나니을 섬기는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살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 까
죽었고 너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 우리 생명
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
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
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시
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
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
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문화를 따라 살지 말고 하늘에 것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며 하
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또한 마음과 욕심과 육신의 정욕, 음란
과 방탕,부정을 버리고 거짓말과 불의, 분을 내어 버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함을 좇아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문화는 수평적 문화입니다. 하늘을 향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그러
나 주님께서 창조하신 문화는 수직적 문화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의 문화,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문화입니다.
저는 어느 목사님의 감동적인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사되기
전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옛날에는 수리조합이라는 곳에서 물을 순차적으로
받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물을 받을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
런데 그날이 주일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토요일 내내 고민고민했습니다.
'만일 주일날 물을 받지 못하면 1년 농사를 지을 수 없을텐데, 그렇다고 주
일을 범할 수도 없고...'
주일날 아침, 동네 품앗이하는 사람들이 마당 가득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는 부인과 함께 교
회로 항했습니다.사람들의 휘둥레졌습니다. 그래도 그 목사님 내외는 '1년
농사는 못지어도 교회에 가야해'라고 다짐하면서 유유히 교회로 향했습니
다. 동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심지어 욕까지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돌아와 물 한방울 없는 자신의 논에 조를 심었습니
다. 조는 물이 메마라도 잘 자라는 곡식입니다. 그런데 그해에 가뭄이 들어
모를 심은 사람들의 모가 모두 말라 비틀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논에는 조가 무럭무럭 자라 큰 수확을 건져낼 수 있었
다는 얘기였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자 하면 반드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가 있
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문화가 사회 속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이 적지만 중동이나 동남
아, 아피카 등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히 전파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그리스
도의 문화를 좇아 산다는 것은 핍박을 동반하는 행위입니다.
다니엘도 이방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결국 시기와 질투, 모함을 당해
사자굴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군대와 우리의 승리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천사가 와서 사자
의 입을 막아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다리오왕의 질문에 다니엘은 하나님께
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봉하셨다고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
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될 것은 주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게 만들어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란 어떤 존재입니까? 히브리서 2장 6절로 7절은 "오직 누가 어
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
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간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
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천사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올라
가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사의 지위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
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 6:2-3)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군과 천사를 데리고 있습니다.
천군은 하늘나라 군대이며 군대장관은 미가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군을
통해 사단의 저항을 물리치고 사단의 일을 훼파시키십니다. 서기장관 가브
리엘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가엘과 가브리엘의 밑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으며 그들은 하나
님을 섬기는 하늘나라의 군대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절에 보면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
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기
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천사에 관한 기록들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는데 히브리
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구원 얻을 후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을 섬기고 돌보기
위해서 천사들이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1절로 2절에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천사가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부지 중
에 우리를 찾아와 우리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91편 11절로 12절은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딛치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사의 실존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
곁에 밀접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사를 섬기거나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 기도해서는 안됩니
다. 천사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일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찬양의 대상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뿐입니다. 천사가 영적
인 존재라고 해서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범
죄행위입니다.
제가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로 말씀드린 것은 천사가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주변에 존재하나는 사실을 가르쳐 드리기 위한 것 뿐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셔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 생활 속에서 세밀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와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이 크리스천의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했다고 고백하지 않았습
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부리시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의 주권자는 하나님이
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
적인 눈이 열려 있다면 우리 주위에 빽빽히 둘러쳐 있을 천사들을 볼 수 있
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구원을 본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다
리오 왕은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
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
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
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한
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 6:25-2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단호하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곳이든 승리
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종국적인 승리는 우리의 것이빈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뒤흔드는 나라를
만들었던 바베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왕 같은 사람이나 메대와 바사와 다리오
왕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기적의 역사를 베푸는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다니엘과 같은 담대한 믿음의 신앙 용사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1120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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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신앙생활과 환경
자료원 : 순복음가족 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
구 절 : 마가복음 5장 35절-43절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한 환경의 산물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장, 먹고 마신 음식, 그곳의 생호라과 문화등이 우리들의 사고와 인
격을 형성하는 보금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후에도 인간은 자기
삶의 주변 환경에 끊임없는 영향을 받으며 생활 형태가 형성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
는 환경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 환경의 좋고, 나쁨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
신이 어떤 환경 속에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마귀는 영적 환경의 오염을 가져옴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
도 좋은 아름다운 실과나무를 많이 나게 하시고 상함도 해함도 없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사상도 할 수 없는 그 낙원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
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 동산
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되 그곳의 하나님 주권만은 절대로 존중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에덴의 그 많은 처소를 다 제쳐두고 선아과 남누
밑으로 아담과 하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다음 '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이 시기 질
투애서 먹지 못하게 한다'고 미혹했습니다. 아마도 매일 아담과 하와
를 그 나무 밑으로 데리고 가서 쳐다보게 하며 유혹하였을 것입니다.
마귀는 선악과의 영향력이 미치는 환경에 아담과 하와를 가져다 놓은
것이빈다. 그들은 에덴 동산 그 어느 곳에라도 가 있을 수 있으련만
마귀의 꾐에 빠져 늘 선악과 밑에서 그 열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 그들은 선악과에 잡혀버리고 말았습니
다. 선악과에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는 그들 눈에 너무도 먹
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음직하게 좋아 보였습니다. 그 위에 마
귀가 자꾸만 그럴듯한 해석을 갖도 붙입니다.
이렇듯 오염된 환경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이 선
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비참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 밖
에 없게 된 것입니다. '환경' 이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인간을 포로로
잡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엄하게 명하신 것이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아가거든
그곳 7족을 멸하라' 그 이유는 가나안 땅 백성들은 우상숭배가 심하고
음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가
살면 별 도리없는 그 환경에 물들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일 하나님께서는 막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환경을 먼저
정하게 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7
족을 완전히 멸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멸하고서는 타협해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경고 그대로
그들은 가나안의 분위기와 환경에 물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있
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음란과 방탕의 생활로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잔학한 바벧론과 앗수
르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처참한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든 지배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 인물 중에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현명한 사람이 있
었습니다. 솔로몬입니다. 그는 잠언의 거의 대부분과 전도서,아가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토록 현명하고 축복받은 그가 말년에 많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데려
왔습니다. 그 중에는 애굽 왕의 딸과 두로와 시돈 왕의 딸도 있었습니
다. 이 여자들은 자기들의 잡신과 우상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지혜롭고 현명하기로 유명한 솔로몬은 그 아내들에게 둘러싸여 살면
서 그만 유혹을 받아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의 성전에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절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같이 지혜로운 사람도 환경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같은 보
통 사람들이 나쁜 환경에 들어가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잘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이 만드신 믿음의 환경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택한 제자들은 모두가 그 땅에
서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나 세리 등으로 배움도 없고 사회
적인 배경도 없는 평범 이하의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는 3년 반 돼
안 함께 잡수시고 주무시고 생활하시면서 친히 가르치시고 함께 전도
하셨습니다. 별로 보잘 것 없는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
리스도의 분위기 속에서 위대한 인물들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들의 생각이 변화되고 말이, 생애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 함께 한 후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행동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 이름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모두 감탄했습니다. '저들은 어부가 아니냐! 세리들이
아니냐!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느
냐!'
사람들은 저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하게 되었다
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분위기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환경이 평범한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경이 변화될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서 원수들에게 잡혀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이후의 제자들의 생활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환경을 떠나 그들 홀로 그리스도 없
는 삶이 되자 그들은 너무나 무력하고 형편없는 옛날 그대로의 사람으
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조그만 계집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
인하고도 겁이나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담대하고 신앙
도 투철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그 환경을 벗어나자 마자 이렇듯 나약
하고 비열한 존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 50일 이후, 오순절 날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중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
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 거
하셔서 성령의 분위기 속에 들어가자 마자, 성령의 환경에 잡히자 마
자 그들은 능력있는 기도자,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한번 외치면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튿날에는 5천명을 회
개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그들을 줄줄이 따랐고 그들은 죽음조차 두려
워 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저들의 세대 이후의
전 유럽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분위기 속에 들어
오자 마자 전보다 더 위대한 인물들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위기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나약하고
미지근한 신자일지라도 능력있고 권세있고 뜨거운 교회에 나가면 그대
로 권능있고 열렬한 성도들로 변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
며, 매일 성령충만한 가운데 있으면 우리들은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나 능르로 되지 않고 나의 신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죽게 되자 예수님께 뛰어와 '내 딸에게 손을
얹어 살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
구를 듣고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다가 혈루병 앓는 여인을 만나 고
쳐주시느라고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회당장의 집에 가까이 이르자 그 집 종이 뛰어나와 야이로에게 '이제
선생을 더 괴롭히지 마소서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하고 고했습니다.
그의 집에서는 통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이 죽으면
통곡을 많이 해야 큰 초상이 되어서 전문적으로 울어주는 울음꾼들을
사용했습니다. 이 울움꾼들이 이미 회당장 집에 와서 진을 치고 천지
가 떠나가도록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위로
하신 후 집에 들어가 울음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비웃었습니
다. '죽은 아이가 잔다니...' 그때 예수님은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그 아이에게로 가시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무리들을 모두 내어 쫓으셨습니다. 불신앙의 분위
기를 일신시키신 것입니다.
분위기는 중요합니다. 불신앙의 분위기 속에서는 하늘나라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자란 곳 나사렛에 가니 모두
배척하여 불신앙의 그곳에서는 큰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지 않
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도 믿음이 강한 베드로와 야고
보,요한만 데리고 어린 아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방은 이제 믿음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땅의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 딸아 일어나
라'하시니 즉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불신앙의 분위기를 추방, 신앙의 분위기를 조성하셨다는 것을 우
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의심과 냉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
고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는늘 회개하며 생활의 정리정돈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라면 교회의 분위기
를 일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청산하고 긍정적이
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으로 굳건히 서야하는 것입니
다. 우리 마음속의 분위기를 바꿔야 됩니다. 불안과 초조, 절망과 의
심이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우는 자들을 쫓아낸 것처럼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마음속의 불신앙적인 것을 쫓아내고 온전한 신앙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주님께서 와서 일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분위기 및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믿음의 분위기 및 환경 속에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
경은 '너희가 모이기를 힘써 모여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모이
는 것'은 놀라운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고 하셨는데 이 얼마나 놀라운 분위기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두, 세사람이 모이면 예수님도 그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에
믿음의 분위기 속에, 믿음의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천을 쫓고 두 사람은 만을 쫓는다'고 했습니다. 혼자의
믿음이 천의 원수를 쫓으면 두 사람의 믿음이 합치면 만의 원수를 쫓
는 위대한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를 보십시오. 한번 예배에 수만 명의 성도들이 모여
함게 기도드리고 찬송 부른다는 것은 굉장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입니다. 한 사람 보다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 열 사람이 낫고 열 사
람 보다 천 사람, 천 사람 보다 만 사람.. 수가 많을 수록 그 신앙은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 불신앙을 쫓아내고 마귀를 쫓아내고 신앙의 뜨
거운 열기를 가져온느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이 약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드리는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그 분위기가 나를 변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이기를 폐하면 안됩니다. 꼭 성수주일하고 수요 성경공부나 구역예
배 모임 등에 최대로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늘 이런 분위기를 만들
면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나 사업장에서도 불신앙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
운데 신우회를 조직하고 함께 모여 찬송부르며 말씀공부를 하는 것입
니다. 이렇듯 분위기가 조성되면 신앙을 보존할 수 있는데 분위기를
떠나 버리면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보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의인 롯이 가족과 함게
그 성에 들어가사는 동안 그들은 그 성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완전히 소돔 고모라를 사랑해서 떠날 수가 없가 없었습니다.
롯의 딸들은 그곳의 음란, 방탕한 습관에 젖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하
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성을 멸할 때에 롯의 아내는 이곳을 너무 사랑
해서 떠날 수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그 딸들은 아버지와 함께 도망해 나왔으나 산 중에 숨어있을 때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잠자리를 같이하여 두 딸이 모두 아버지로써
모압과 암몬이라는 자식을 낳아 이스라엘을 끝가지 괴롭히는 족속을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의인 롯과 그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분위기 속에 살다가
완전히 패가망신하고 만 것입니다.아무리 의인이라도 나쁜 환경에 들
어가니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에 처하게 되어도 그곳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분위기인 기도 모임
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빈다. 우리는 기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참석,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영의 생활을 보존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 한 주일 동안 세상에서 있으면서도 신앙의 불을 끄지 않
게 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구역모임을 조직해 함께 모여 말씀공부하며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
두 구역에 가입하셔서 적극적으로 구역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롯의 가
족들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해 성령의 불을 지피는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봉사하는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주일날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봉사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이렇듯 하나
님을 위해서 관심을 집중하고 애쓰는 동안에 그 분위기 속에서 신앙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불타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
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신앙 및 세속적인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친
구들과 모임은 술, 담배,도박, 세상 잡담 등 거칠게 몰아치는 세속적
인 분위기로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 함게 희희낙락하
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우리의 심령에 꽉 차고 마는 것
입니다.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세속적인 친구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아
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세상에서의 친구는 다 떨어져
버리고 믿는 친구들과 교제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분위기 때문에 도저히 합쳐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과 기름같
이 되는 것이빈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은 떠나가고 믿는이들은 서로
합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체의 향락을 도모하는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육체를 이용해 유혹하는 처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드렁가면 육신의 정욕에 취해 영적인 세계로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을 적극 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TV나 저속한 프로그램이나 저속한 음악,잡지 등을 피해
야 합니다. 저속한 음악같은 것은 사람을 흥분시킵니다. 요사이 사단
음악이 많은데 사단이 이 음악을 통해 젊은이들을 미혹하고 타락시킵
니다. 이 더러운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저속한 것은 듣지도 보
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원수 마귀는 분위기 만들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단의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그 속에 몰아놓으려고 하고
성령은 성령의 분위기를 만들어 그속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십니다. 우
리는 어찌 하든지 주님편에 서서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서는 항상 십자가 중심에 서고 지속적인 말씀공부와 기도, 찬미를 하
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찾아가며 젖어 살때 너
도 살고 나도 살고 하늘나라가 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발행일 : 930718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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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의식 개혁
자료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기하성
구 절 : 롬 12:1-2
예수님께서는 처음 복음을 증거하시기 시작할 때부터 외쳐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고 하셨습니다. 먼저 회개가 앞서
야만 천국이 거기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회개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잘못
을 뉘우치고 자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법
을 거스린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하고 그 죄를 버리고 돌아가
서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참된 회개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회
개란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의 생각, 즉 의식을 바꿔 전혀
새로운 의식과 생각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죄악을 통회하고 자복하고 버
리는 것 뿐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참 회개의 의미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오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얻
어온 옛 사고방식과 생활의식을 개혁하고 하나님 안에서 전혀 새로운 사고
방식과 생활의식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의미
가 갖는 참뜻이며 그렇게하면 천국이 임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와같은 의식개혁의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
까요? 그 의식개혁이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깊이 조명해 봄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것을 깊이 묵상
하고 우리 마음속에 진실로 종교와 의식이 차원을 넘는 정신혁명과 의식개
혁, 사고방식의 변화가 일어나서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실제로 임하도록 해
야합니다.
1.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단손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한 공동의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고 쉽게 2천년 전
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셨다가 생각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심겨 놓
고 싶어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혼자서 죽은 것이 아니라우리
모든 사람과 함께 공동체적인 죽음을 가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
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라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
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
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
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
장하지 못할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게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5-11)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옛사람과 그의
관게된 모든 것으로 더불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마음속에 인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가에서 예수 죽음 내죽음, 예수부활 내부활, 예수천당 내천당,
예수영광 내 영광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공동체적인 운
명에 놓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셨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
도와 함께 죽고 장사 되었다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마음속에 깊이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은 죄의 종된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
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죄만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난 옛사람이 하나님 앞에 법적으로, 그리
고 성령 안에서 실제적인 체험으로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고 부정하고 부패한 옛사람, 악한 영의 영향
을 받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는 것은
참된 해방을 알리는 청신호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그때에 너희가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나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
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
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공중의 권세잡은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도 믿기 전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낸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옛사람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더이상 노예가 아니요 악한 영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심신이 병든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병이 와서 우리의 육체를 점령하고, 우리의 심신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와같은 옛사람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법적으로, 실제적으로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사
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저주의 가시에 얽힌 옛사람, 낭패와 실망의 피투성이 속에 살아오
던 옛사람 아무리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도 안되는 옛사람,이 저주의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지은 아담과 하와는 저주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
람은 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
가자 형벌을 받아 그들은 가시와 엉겅퀴에 찔리고 찢기며 저주받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저주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함께 죽어서 장사됨으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에 깊이 인식
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사망과 지옥의 종된 옛사람이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예수님 없이는 죽은 사람은 그 죄값으로 지옥으로 가게 됩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지
내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면 이제는 마귀와 세상과
는 인연이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우리를 죄의 함정에
빠뜨릴 수도 없고 우리를 부정과 부패, 병든 심신의 길로 끌고 갈 수도 없
습니다. 그것은 옛이야기인 것입니다. 옛사람이 체험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편과 사별한 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어떤 자매님과 신앙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몇년째 남편이 입던 잠옷을 입고 남편이 사용하던 이불과 배게를
사용하면서 남편과의 사별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자매님!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오늘 당장에 남편의 이부
자리와 잠옷을 불태워 버리십시오. 왜냐하면 현재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의 흘러가는 역사 속에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보고 사십
시오. 옛날에 묶인 사람은 우울과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권면
하고 기도해 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버
렸는데 옛날을 자꾸 생각하고 "나는 못해요. 나는 안돼요. 나는 할 수 없어
요. 나는 늘 저주받았어요"라는 말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실패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옛 사람에 묶였을 때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옛 사람이 이미 십자가에서 청산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와 함께 한 공동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거듭거
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이렇게 쉽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깊은 뜻과 의미를 지닌 부활입니
다.
골로새서 2장 12절로 15절에 보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한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저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르
리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
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
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영생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가 마귀의 노예였지만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부
활한 후에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져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시
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광야에 천막성전을 지었고 솔로몬시대에는 솔로몬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회와 함께 움직이는 성전인 우리 자
신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장소에, 어느 시간이든 '야웨 삼마'로 그 성전에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24시간 함께 거하는 그런 존
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시간이나 공간의 차이가 없스빈
다. 어느 곳이나 어느 시간이든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
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
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옛사람은 다 청산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의
롭다함을 얻은 사람이 된 것이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
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함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움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모든 부정과 부패는 사라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룩
함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때 이미 건강하고 치료받은 사람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축복의 사람이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제는 저주와 상관없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된것입니다. 매일같
이 여러분은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라고 입술로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복
받은 사람이 들에 가면 들에 복이 임하고,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이 복을 받
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까지라도 복이 임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약
속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후 받은 변화는 천국인이 되었다는 사실입
니다.이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인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자아의식으로 우리의 생각과 의식이
근본적으로 혁신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출석해 종교적 의식의 문제입니다. 옛사람
이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적인 근본적 바탕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생
존의 뿌리가 변화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세상과 마귀에게 삶의 뿌리가 있었는데 이제 그 뿌리가 다 뽑히
고 그리스도에게 접붙힌 바 되어 하나님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의식변화가 일어난 사람에게는 천국이 임하고 그 천국에서 살게 됩니
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 찢기고 피를 흘려 이 세상에 천국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심어 놓은 천국이란 바로 죄 사함의 천국이요, 성령
충만과 치료의 천국이며 아브라함의 축복과 영생복락의 천국인 것입니다.
이제 회개하고 의식이 변화된 사람에게는 이 천국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
리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대주권적인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
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천국 속에 임하여 계심으로 예수님을 우리
가 왕으로 모시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으리 믿고 그에게 순종
하여 살 때 천국 백성으로서 주님의 돌보심과 다스림을 받고 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천국에는 성령님께서 보혜사가 되십니다.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서 우리를 돌보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 어
디서나 여러분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교통하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
문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여, 예수님의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예수
님이 평안으로 나를 안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나를
의롭게 하시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라고 고백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입
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취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
도 우리에게 기름이 부어집니다.
마음이 불안하십니까? "성령이여, 그리스도의 평안을 내게 주시옵소서."라
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까? 성령께서 의탁
하십시오. "성령이여, 그리스도의 기쁨과 만족으로 내 마음을 채워주시옵소
서."
성령이라고 말하니까 무슨 형이상학적으로 공중에 뜬 구름같고 지나가는
바람같이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성령께서는 인격을 가지신 존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
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
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7-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가정교사요, 안내자
요, 선생이요, 보호자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치는 자요, 우리
를 깨우치시는 자요, 우리를 회개시키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는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천국 안에 들어오면 성령 안에서 종노릇합니다. 천국
안에 들어오면 믿음, 소망, 사랑과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하고 죄와 부패
가 사라지고 병과 저주가 다 척결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직 천국에는 하나
님에 대한 예배와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
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마귀의 세계에서 옮겨져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이니라, 즉 천
국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잇으며 천국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갸이 깨달아 새
로운 피조물이되고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되고 하늘나라가 우리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또한 우리가 하늘나라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 안에서 왕노릇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참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의식이 개혁되고 우리의 사고방식
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국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늘나라의 큰 열매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한 종교인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천국백성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발행일 : 941113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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