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다시 용기를 내라 (신명기 31장 3-7절)

by 【고동엽】 2023. 1. 2.

다시 용기를 내라 (신명기 31장 3-7절) < 힘써 내일을 준비하라 >

 살다 보면 이별을 할 때가 생긴다. 때로는 사별을 하고 때로는 일터를 그만두고 때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야 한다. 그 이별하는 사람이 그 동안 크게 의지했던 사람인 경우도 있다. 그가 없으면 가게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 그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이 없어서 못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과만 이별하지 않으면 된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

 이별의 순간에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라. “나는 패배자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내가 이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 영혼이 처량해진다. 이별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승리자의 고백을 하라. “하나님! 이것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의 고백을 듣고 ‘이별한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다.

 본문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의 이별을 앞두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120세가 되었고, 출입하기가 힘들 정도로 노쇠해졌다. 민수기 20장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백성들이 불평한다고 분노를 가지고 바위를 지팡이로 때림으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새로운 리더인 여호수아를 준비시켰다(3절).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준비하는 사람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죽음의 때를 준비하고 땀을 준비해하라. 왜 사람 사이에 갈등과 문제가 생기는가? 가장 큰 이유는 땀을 적게 흘리고 단기간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땀을 찾아야 행복도 찾아온다. 땀이 없이 노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이다. 오래 놀아본 사람은 노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노는 것만 좋아하면 정말 오래 노는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소서.” 그런 기도는 사실상 불필요한 기도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내게 놀라운 축복의 기회가 수시로 주어질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내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기회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지 말라. 기회가 빨리 왔지만 놓치면 아쉬움만 커지고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 다시 용기를 내라 >

 모세는 어떤 대적도 이길 수 있다는 거룩한 낙관주의자였다(4-5절). 그런 거룩한 낙관을 확산시키려고 무엇을 강조했는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하나님 말씀이다(6-7절). 문제 때문에 너무 낙심하지 말라.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를 극복하며 전진하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건강이 무엇인가? 병균이 없는 것이 건강이 아니다. 누구나 병균이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큰 의미로는 다 병자지만 그 병균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기에 건강한 것이다. 믿음생활에서도 그런 영적 저항력이 있어야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

 어느 날 한 점쟁이가 어떤 처녀에게 점을 쳐주면서 말했다. “살이 꼈는데.” 그런 말은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데 그녀가 그 말을 물리치지 못했다. 그 후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면서 결국 그녀는 점쟁이의 한 마디로 인해 폐인이 되었다. 호기심으로라도 점을 치지 말라. 사실상 점을 칠 필요조차 없다.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는 아무리 용한 점이 맞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점은 치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 귀를 믿음으로 잘 지키라. 살다 보면 가끔 마음속에 마귀가 와서 두려움을 주며 가끔 속삭인다. “애들에게 사고가 나겠는데. 큰일이 생기겠는데. 실패하겠는데.” 그런 속삭임을 단호하게 물리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되고 정말로 큰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근심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근심은 대개 불필요한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베를 짜실 때 찬란한 천연색 실을 사용하면 “왜 제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라고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 반면에 고통의 검은색 실을 사용하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어떤 과정을 겪게 하시면서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다만 여러 색상의 실을 사용해 인생을 짜시다가 최종적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비단을 허락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신뢰하며 다시 용기를 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