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을 베푸는 일에 대한 상반된 의견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은 당연히 선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이 긍휼을 베푸는 일에 찬성하고 동조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긍휼 베푸는 일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며, 그 일을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플라톤은 병들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사람은 빨리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그는 공동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불쌍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로마 철학자 Plautus는 거지를 도와주는 것은 물질을 허비하는 일이며,
거지가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차라리 그의 절망적 삶을 단축해 주는, 그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로마 사회는,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나라를 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이런 견해를 가진 ‘일부’ 사람들은, 정복전쟁과 물질적 번영을 숭상하고,
반대로 약자를 도와주고 긍휼을 베푸는 것을 도리어 나쁘게 본다.
▶예수님의 긍휼사역
그러나 예수님은 “되갚지 못할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라고 가르치셨다(눅 14:12-14).
예수님은 당시 세상 지식인들과 정 반대적 생각을 갖고 계셨다.
여기서 “되갚지 못할 사람들”이란, 당시 지식인들에겐 ‘죽어야 도움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복음전파와 더불어 항상 긍휼사역을 동시에 베푸셨다.
말로 전하는 복음과 더불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에 눌린 사람을 고치시고, 필요할 때는 굶주린 군중을 먹이셨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교회는 복음전파와 더불어 병원 설립, 각종 재활 및 구제 사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성경적이다.
①병원hospital의 기원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된 지 얼마 후인 AD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는
<모든 도시에는 성당과 더불어 hospital을 세울 것을 결의, 명령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리스-로마 사회에는 병원의 역할을 하는 치료기관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인들이나 돈 많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세운 hospital은 서민과 나그네를 위한 것이었다.
특히 나그네(순례객)가 거기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야말로 hospitality(손님을 먹이고 재워주는 식의 대접, 환대)하는 곳이었다.
이런 hospital은, 세월이 점점 지나면서, 자체적으로 의료 기술을 연구 계발하면서
오늘날의 현대적 병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병원으로 불리는 hospital이 생기게 된 것은 순전히 교회 덕이요, 기독교의 유산이다.
②고아원의 기원
옛날에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를 도와줄 것을 계속해서 권면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고아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초기에 박해받을 당시에는, 숨어 지냈으므로 고아원을 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시작된 것이 ‘대부(代父)제도’였다. 교회에서 아기가 영아 세례를 받을 때
그 아기의 대부가 임명되었다. 그래서 부모가 혹시 죽게 되는 상황이 발생되면, 대부가 대신 맡아 키웠다.
다행히 부모가 살아있으면, 대부는 그 아이의 영적 성장과 발달을 뒷바라지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교회가 고아원을 세우기 이전에, 세상에는 고아원이 생기지 않았다.
서민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병원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병원을 세우기 이전에,
세상에 서민을 위한 병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고아원과 (서민)병원은 세계 도처에 널리 퍼져 있는데,
만약 기독교가 없었더라면... 병자와 약자가, 사회를 위해, 빨리 사라져 죽기를 바라는 철학이
온 세상을 지배했더라면...
세상의 관심
그리스는 크고 아름다운 신전들을 많이 건축했다. 그러나 병원은 한 곳도 짓지 않았다.★
로마도 신전과 놀라운 크기의 대형 경기장들을 건축했지만 병원은 한 곳도 안 지었다.★
그것은 지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도 의학 발전, 해부학 등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일반 서민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가진 않았다.
③간호 제도와 적십자 운동
간호 제도는 수도사/수녀에게서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이 전통이 내려와 수녀간호사가 많다.
오늘날의 현대 간호사 제도를 시작한 사람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인데, 그녀는 말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는 계속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앙리 듀냥은 국제적십자사를 창설했고, 1901년에 노벨평화상 까지 받았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고 고백했다.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십자가 모양을 혐오하는 회교권에서는,
‘적십자’가 그 이름을 ‘붉은 초생달’(Red Cross→Red Crescent)로 바뀌었다.
그래서 여전히 박애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독교 긍휼사역’과 ‘인본주의 긍휼사역’의 차이점
오늘날, 기독교 바깥에서도 긍휼 사역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humanistic 긍휼사역은 그 근거를 이성과 헬라 철학에 두고 있다.
예를 들면,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는 길은 그를 빨리 죽여주는 일이다(안락사).
또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자를 도와주는 길은 낙태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기독교 긍휼사역은 그 근거root를 예수님의 철학과 성경적 사상에 두고 있다.
이성적 판단도 존중하지만, 생명이 소중하다는 성경적 계시를 더욱 존중한다.
하나님이 주시고/거두어 가시기 전에, 사람이 생명에 손을 대는 것은 살인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안락사, 낙태 등을 여하한 이유로도 반대한다.
특별히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 기형아 낙태 등을 반대한다.
한국과 제3세계는 불구로 태어난 아기를 버리지만, 서구는 도리어 그들을 찾아서 입양한다.
또한 그 규모와 지속력에 있어서도 확연히 다르다. 오늘도 세계에서 긍휼사역에 앞장서는 나라는
대부분 기독교 국가요, 교회들이다. 기독교는 광범위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 행한다.
세상 끝날까지. 반면에 불신자들이 행하는 긍휼사역은 상대적으로 간헐적이며, 그 규모도 작다.
그 뿌리가 예수님이 아니라, 단순히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①가치관의 변화와 정립
그리스-로마로 대표되는 세속 인류 문명은, 적자생존의 원칙 가운데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자, 가난한자, 약자들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철학을 주장해 왔다.
한 마디로, ‘긍휼 사역’이란 어리석은 짓이란 가치관을 가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긍휼 사역은 고상한 일이다>는 가치관이 세워지게 된 것은,
순전히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불신자들도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②믿음과 긍휼의 상관관계
물론 긍휼 사역을 열심히 베푸는 등 인간의 공로를 통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불쌍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게 된다.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처럼 동정심을 갖게 되어 있다.
③선교지의 필요
오늘날 제3세계 선교지는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곳곳에 삶을 포기한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들이 널려있다. 이것은 큰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현지 정부는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관심조차 없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서 기독교 복음 전파는 긍휼 사역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복음만 전하는 선교사는 현지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 한다.
*위에서 compassion을 ‘긍휼사역’, 또는 ‘동정심’으로 다르게 번역했으나 원래는 같은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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