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후퇴는 전진이다 (사도행전 14장 4-7절) < 지혜로운 믿음 >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자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었다. 그때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다. 지역 관리들까지 두 사도를 박해한 것을 보면 그 박해는 단순한 방해가 아닌 조직적인 박해였다. 심지어는 돌로 치려고도 했다. 그러자 두 사도가 알고 도망해서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 장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믿음을 오해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니! 사도라는 사람들이 이고니온에서 그냥 돌에 맞아죽는 길을 택하지 어떻게 치사하게 그렇게 도망가나?” 그러나 믿음이 만용은 아니다. 피할 때는 피할 줄도 알고 물러날 때는 물러날 줄도 알라. 순교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순교는 순교할 때에 해야 좋은 것이다. 무조건 순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때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순교하겠다고 하는 것은 순교 콤플렉스다. 보다 더 큰일을 위해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때는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가 유익이 없고 오히려 무모해 보인다. 그런 식의 죽음은 칭찬받을만한 순교가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한 분별없는 죽음이 될 수도 있다. 말씀의 지식을 잘 닦아 2가지의 차이를 잘 구분하라. 믿음이 주는 담대함을 오용해서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이 많다. 교회를 건축할 때 교회의 형편도 살피지 않고 큰 건물을 무작정 계약하는 것이 담대함이 아니라 믿음을 앞세운 욕심이 될 때도 많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사상을 무조건 믿음으로 여기지 말라. 어떤 일에 대해 끈기 있게 버티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 무익하고 때로는 해롭다. 그때는 잠시 물러나라. 믿음에는 지혜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게 하시고 포기해야 할 것은 일찍 포기하게 하소서. 그 두 가지 차이를 잘 분별할 능력을 주소서.” 욕심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별의 능력을 주실 것이다.
< 지혜로운 후퇴는 전진이다 >
‘겁이 없다’는 말과 ‘용기가 있다’는 말은 다르다. ‘겁이 없다’는 말은 적을 모르고 나아가는 것이고 ‘용기가 있다’는 말은 적을 알고 나아가는 것이다. 겁 없이 나아가도 잠깐의 성과는 있을 수 있다. 고스톱 판에 초보자가 끼면 고수들도 처음에는 약간 긴장한다. “고!”를 할 때와 “스톱!”을 할 때를 모르고 좌충우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처음에는 어쩌다가 따기도 하지만 그 상황은 얼마 가지 않고 곧 고수들에게 다 잃는다.
영적인 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겁 없이 믿음의 지팡이를 휘둘러대니까 처음에는 당황해서 마귀도 잠시 물러선다. 그런데 마귀가 보니까 믿음이 기초가 하나도 없이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도 잘 모르고 그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마구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임을 알고 작전을 세우고 즉시 반격한다. 그러면 어느새 마귀의 전략에 넘어지고 심지어는 마귀의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씀에 굳게 서서 “고!”를 할 때와 “스톱!”을 할 때를 분별하라. “못 먹어도 고!”라고 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퇴각 순간은 비참해도 그 순간을 감수하는 것도 참된 용기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위대한 계책 중 하나가 마지막 36계인 ‘도망치는 계책’이다. 왜 ‘도망치는 것’도 병법인가?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잠시 물러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퇴각도 필요하다. 퇴각할 줄 아는 용감성이 무조건 전진하는 무모성보다 더 귀한 성품이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자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한 발 물러서서 말했다. “조카야, 다투지 말고 서로 헤어지자. 네가 먼저 선택하라. 네가 좌로 가면 나는 우로 가고 네가 우로 가면 나는 좌로 가겠다.” 그때 롯은 버릇없이 먼저 좋게 보이는 곳을 덥석 선택해 소돔과 고모라로 떠났다. 그때 롯은 전진한 것 같았고 아브라함은 후퇴한 것 같았지만 결국 롯의 전진은 후퇴였고 아브라함의 후퇴는 전진이었다. 지혜로운 후퇴는 전진이다. 때로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가만이 있는 것도 전진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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