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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십자가를 지는 삶의 축복(고린도전서 1장 18-25절)

by 【고동엽】 2022. 12. 9.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 십자가의 능력 >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쓸 때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고(1-9절), 인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고린도 교회의 뼈아픈 분열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나는 바울파이다! 나는 아볼로파이다! 나는 게바(베드로)파이다! 너희들 다 물러나! 나는 그리스도파이다!” 하고 서로 분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분파가 있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을 십자가가 없는 삶에서 찾고 있습니다(17절). 오늘 본문은 십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길이 미련한 것 같지만 거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건물 위에 왜 십자가를 세웁니까? 교회는 십자가 밑에서 존재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교회에 문제가 많고, 십자가가 있는 교회는 평안합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안달하면 불안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고 하면 평안합니다.

십자가와 가장 반대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랑입니다. 바로 그런 자랑 때문에 자기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우월적 위치에 서려고 하기에 갈등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그것에 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없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랑이 많으면 교회에 갈등은 끊이지 않고 십자가가 많으면 교회의 갈등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지는 삶’은 너무 어리석고 미련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처럼 표적을 찾지 말고, 헬라인처럼 세상 지혜를 찾지 말고 미련해 보여도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본문 25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 십자가가 말해주는 교훈 >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십자가는 축복의 방해물이 아니라 축복의 촉매제입니다. 빠른 지름길에는 평탄한 대로보다 잡초도 많고 돌멩이도 많은 것처럼 인생길에 잡초와 돌멩이가 많으면 하나님의 축복 받는 길에 들어섰다고 보십시오.

둘째, 십자가는 영적 부요함의 원천입니다. 수고가 많이 들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영적 체험을 깊어집니다. 삶에 십자가가 있거든 나를 쓰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성공은 몸은 편하게 해도 삶의 보람은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주실 때 값지게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가끔 고난의 십자가도 허락하십니다.

넷째, 십자가는 죄와 관련 없이 선한 인생에게도 찾아옵니다. 악인에게 항상 나쁜 일만 생기지 않듯이 성도에게 항상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고민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일을 모색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다섯째, 십자가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고, 성도가 극복하지 못할 십자가는 없습니다. 삶은 고난보다 소중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는 십자가의 고난보다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는 인생과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고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 중간에는 더욱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외롭고 서러운 길이지만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 십자가를 의지하는 삶의 축복 >

오늘 본문은 주의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고, 미련한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잘 붙들고 가는 것이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만 바라보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뜻을 하늘에 두고, 우리의 삶에 활기와 탄력성을 주는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인생에는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이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할 때에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힘차게 뛰어다녔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과 활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왜 새벽마다 기도합니까? 금과 은으로 상징되는 축복을 얻으려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다급한 기도제목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제목의 응답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탄력성과 활기를 주는 십자가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금과 은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지식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낙심과 좌절에 빠져 설 기운마저 다 잃어버렸을 때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은혜의 복음을 주는 것이 바로 교회와 목자의 가장 큰 일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가슴에 빨대를 들이 대고 꿀을 빨아먹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나의 행복이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 잠시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위해 십자가의 부담을 흔쾌히 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삶에 한없는 탄력성을 주시는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갑절로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보다 더 정확하게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어떤 때는 답답합니다. 어떤 때는 고통스럽고, 어떤 때에는 분하고, 어떤 때에는 억울하고 괴롭고, 어떤 때에는 힘들고 약한 모습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십자가를 붙들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힘을 의지하며 넉넉하고 행복하게 목회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고난의 십자가가 있어도 그 십자가 안에 행복하게 사는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믿음의 선배와 조상 역할을 잘 감당하고 최종적으로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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