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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사람! (고후 12:5-10) / 곽선희 목사
세계적인 잡지인 뉴스위크지가 2000년 신년호에 특집으로 다룬 인물이 있습니다. 1999년에 올해의 아시아인이라고 하는 그런 타이틀로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혼다나 미쯔비시나 소니 같은 이러한 큰 회사들을 제치고 일본의 5대 기업으로 부상된 소프트방크의 손정의 회장님을 뽑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아시아의 사람으로, 아세아인으로 유명 하게 선발되게 된 이유는 권위주의와 연줄에 매여서 헤매고 있는 일본의 사회를 그 낡은 풍토를 부수고 인터넷 제국을 일구는데 크게 기여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숨은 비밀이 있습니다. 일반으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어쩌면 우리만이 알 수 있는 독특한 숨은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은 한국계의 일본인입니다. 한국사람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도 못되고 선거에 출마하지도 못하고 일류 기업에 입사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우수하지만은 한국계라는 것 때문에 그는 길이 꽉 막혔습니다. 할 수없이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하게 되고 미국에서 인터넷을 공부 하고 인터넷사업을 구상하였습니다. 소프트방크를 설립해서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손정의 씨에게 만일 길이 잘 열렸다면 우리 식대로 사법고시를 보고 또 출마를 할 수도 있고 일류회사에 취직도 되고 이랬다면 그는 오늘의 손 정의 회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작은 과거의 성공이 큰 미래를 망친다는 겁니다. 어쩌면 길이 앞뒤로 꽉 막혔기 때문에 그는 이 시련을 딛고 오늘의 명예로 운 올해의 아시아인이 된 것입니다. 그 시련은 이제서야 생각하니 확실히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혹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해서 왠지 사람들과 만나는 게 싫고 스스로 고독을 느낍니까? 혹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영 마음에 안 들어서 허무하고 허전하고 무가치한 생을 사는 것 같이 자기를 비하시키고 있습니까? 세상이나 혹은 이 세상 되어지는 많은 사건, 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사 건 속에서 나는 초라하고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잘못된 겁니까 이웃이 잘못된 겁니까? 도대체 나의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혹 그것이 나의 교만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모든 해결의 길이 내가 조금만 더 겸손하면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해보셨습니까? 언젠가 한 번 제 후배 되는 가르친 제자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저는 요새 용 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 해도 아무리 몸부림쳐도 교회도 부흥되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해서 아주 실망입니다. 낙심입니다. 이제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정말 빨리 어떻게 뭘 좀 고만뒀으면 하는 그렇게 이렇게 허약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 그때에 후배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 다.
"겸손을 배우라! 좀 더 겸손해 보라. 당신의 낙심의 원인이 교만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 또 하나 성취욕을 포기하라! 뭐 이제까지 못한 거 이제 앞으로 하겠냐. 이미 다 끝난 건데 뭘 좀 굉장하게 굉장 하게 하고 되고 업적. 뭐 그런 거 다 잊어버려. 성취욕으로부터 깨끗이 자유하라! 그러면 소생함을 얻을 것이다"
그랬어요. 가만히 생각하더니요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내가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여러분, 성 베르나도라고 하는 유명 한 분은 그 분이 생각하기에 덕 중 에 가장 높은 덕이 겸손이다 생각하고 겸손하면 능할 수 있고 강할 수 있고 용기도 있을 수가 있고 조금이라도 어느 구석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면 아주 망친다는 걸 깨달았어 요. 그래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점검해서 이것이 겸손이다 이 프레임에서 떠나면 안 된다 이 범주에서 꼭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자기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그 첫째가 자기 죄를 알고 비천에 처하라. 이 세상에 모든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큰 죄인이다 그렇게 알고 자기를 가장 낮은 비천한 존재로 생각하라!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죄를 통회하고 사실로 고백하라! 죄가 드러나는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마라! 잘못한 거 잘못했다는 데 뭐 잘못이요. 실수해서 실수했다는데 뭣이 부끄러우냐 그거요. 죄가 노출되는데 대해서 절대로 변명하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라.
회개에 진실하고 정직하라! 이것이 겸손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또 한가지는 누가 내 결점을 알고 나를 업신여길 때 그 굴욕을 달게 받아들이라! 잘못한 거 잘못 했다고 하는데 이상할 것 없잖아요. 그리고 나를 충고하는 사람을 고맙게 여기라 그랬어요. 어제 저녁에 TV프로 가운데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아주 꼬마 초등 학교 1,2학년 되는 꼬마가 나와서 어른들을 상대로 자기들이 쓰는 은어를 말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쓰 는 말을 수수께끼처럼 하는데 어른들이 알아맞추나 못알아맞추나 그겁니다. 너무 재밌더라고요. 열 가지를 하는데 그 중에 하나만 말씀 드리는데
"싸운 다음에 하는 게 뭐냐?"
하고 물어요. 싸운 다음에 하는 거, 그러니까 어른들은 가만 있자 이게 무슨 용서하는 건가
뭐 어떻게 사과 하는 건가 뭐 어쩌고 화해하는 건가 이러고 있는데 애는 하는 말이
"반 성이요"
그러더라고요. 싸운 다음에는 반성하는 거예요. 또 하나가 아주 재밌어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거?"
그래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장가가나 시집가나 출세하나 일 하나 뭐 많은 생각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하는 거 하는데요 꼬마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정답은요 실수요"
그러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실수해요. 나도 실수해요. 그렇다면 실수를 무서워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실수 안 하겠다고 맹세할 것도 없고 그것이 겸손이요. 실수하는 존재로 나타나는 거요. 그런고로 남의 실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 실수도 용서받아야지요. 어떻게 실수가 없는 생을 살겠다고 건방진 소리를 할 수가 있나? 이 마음 자체가 교만이라는 거죠. 또 한가지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때 그리고 모욕을 줄 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거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조용히 참아 넘기고 모욕을 당할 때 모욕당 한다고 비굴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나를 욕하는 사람을 미워하지도 말고 이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를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물론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을 생각하며 비굴해 지도 않는 것 이것이 겸손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요. 또 한가지는 모든 전쟁과 공포와 역경과 고민과 많은 사건들이 몰려오는데 그 앞에서 나는 의연 해야 돼요.
근심도 말고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 어차피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과거도 미래도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니까 오직 은혜로 사는 것인데 내가 뭔데 걱정을 하노. 걱정하는 게 그것이 교만이요. 겸손한 마음은 아무 걱정도 않고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겸손의 덕을 스스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참으로 소중한 은혜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인물 중에 대표적인 분이 은혜의 사람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은혜를 신학적으로 정립했고 또 복음적으로 은혜의 의미를 해석해준 대단히 소중한 성경에 나타난 은혜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그 는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주의자들의 대결에서 "오직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 거저 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혜,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긍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은혜로 얻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역설하고 있고 그 신학을 정립했고 또 한 가지는 모든 형식주의로부터 벗어나 요. 외식주의, 형식주의, 업적, 이런 거 다 소용없고 내심, 하나님은 중심을 아시니까 그 내적인 자세, 내 적인 영적 자세 그 속에 은혜가 있는 것이죠.
그래 은혜란 결코 외적인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이다. 그 깊은 면에서 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은혜중심적 세 계관을 말합니다. 은혜 받은 자, 구원받은 자, 은혜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은혜로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별히 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그는 구원받은 것, 은혜요 자기가 사는 것도 은혜요 오늘까지 살아온 모든 생애가 은혜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 15 장 10절에서 말합니다.
"나의 나 됨은, 나의 나 됨은 이 존재 자체가 은혜다"
오직 은혜를 말하고 그래서 은혜로 해석하고 은혜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은혜로 이해하게 됩 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태어난 것, 갈라디아 1장에서 보면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은혜였어요. 출생이 은혜고 그의 살아온 생애가 은혜일 뿐만 아니라 선택 받은 것이요. 내가 하나 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그가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적 은혜, 특별히 하나님의 일 하는 거 은혜 요, 주의 사람으로 일하는 것, 이방 인의 사도가 된 것, 이건 철두철미 하게 은혜라고 받아들여요. 그 은혜가 나를 강권적으로 붙들어서 내가 있고 또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제가 사도바울을 이해하면서 가장 귀하게 여기 는 구절이 바로 이겁니다.
"내게 주신 은혜"
바울은 언제나 내게 주신 은혜라는 독특한 말을 사용합니 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간증적입니 다. 내게 주신 은혜! 이건 철저한 신앙 고백입니다. 로마서 12장 3 절, 고린도전서 15장 10절, 갈라디아 2장 9절, 에베소 3장 7절,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 독특한 표현을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 나만이 아는 은혜, 그 은혜가 어떤 것이냐 이 말 입니다. 이것이 헛되지 아니해서 은혜의 결과로 오늘 내가 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이것은 큰 사역을 할 수 있게 하신 은혜도 있지만은 특별히 계시 받은 것, 하나님이 내게 큰 계시를 주어서 오늘 성경 거슬러 올라가면서 읽으면 그는 삼 층 천에 올라가서 천당을 구경하고 온 사람이요. 희한한 능력을 많이 받았고 또한 능력을 행사하기도 했어요. 많은 계시를 받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성경을 엿보니까 이거 좀 자랑하고 싶거든요. 그거 자랑하면 또 효과가 괜찮거든요. 이걸 자랑하면은 모든 사람이 얼마나 사도바울을 높이 보겠습니까 우러러보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 자랑을 하지 않았어요. 오늘도 보니까 하고 싶지만 내가 한다고 해도 잘못이 아니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지나치게 생각할까 해서 그만 두노라. 딱 끊었어요. 가끔 우리는 그런 경우를 보지 않습니까. 누가 기도해서 병이 낫던가 특별한 은혜 받은 분들 있어요. 뭐 폐결핵 3기가 돼서 피를 토하다가 의사가 다 못산다고 했는데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그 다음에 피를 토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병이 나았어요. 돌아다니면서 간증을 해요. 아 정말 그건 희한한 일이에요. 그런데 간증을 많이 하다보니까 같은 간증을 여러 번 들을 수가 있더라고요. 내가 들어보니까 점점 과장되더라고요.
점점 그 간증 내용이 점점 커져요. 그리고 어느 사이에 자기가 높아져요. 여기 문제가 있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랑하기 시작 하면 걷잡지 못할 사람이요. 곧 교만해 질 수 있는 사람이요. 자기 실수를 아는 사람이요. 자기 약점을 알아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나를 겸손하게 지킬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드신다고. 그것이 바울이 받은 은혜입니다. 은혜로 은혜 되게 하시는 은혜, 은혜를 지켜갈 수 있게 하시는 은혜, 은혜로 능력 되게 하시는 은혜, 이 은혜는 바로 나를 겸손하게 하는 것이요. 은혜를 보전하게 하는 것이요. 어느 순간에라도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삐꺽해서 교만해지면 은혜 다 버리고 말 거요.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고로 나를 겸손하게 하신 은혜, 그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은혜, 최고의 은혜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은혜요. 내가 못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게 만드시는 거죠. 그래서 그는 감옥에 들어가는 거 그걸 은혜로 받아들였어요. 예수의 이름으로 매를 맞고 능욕을 당하고 비판을 당하고 많은 욕을 먹어도 이것도 은혜요 환난도 핍박도 은혜요. 그러나 가장 귀한
은혜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은혜요. 그는 그걸 생각했더라고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성경 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육 체에 가시가 있었어요. 이 육체의 가시가 뭔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 서 그렇게만 알고 있지만은 사탄의 사자라고 부르는 거 보니까 하나님 의 일을 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는 거예요 이거 지금. 그게 뭘까 해서 제가 한때에 5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써 보았습니다. 이거 하나 가지고. 근데 제가 연구하고 짐작하는 대로는 뭐 사실은 사도바울 만나서 물어봐야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은 연구한 대로는 이게 간질병이에요. 그걸 사탄이 주는 병이라 고 옛날 사람들은 생각을 했어요. 성경을 자세히 미루어보면 갈라디아서에 보면은 그가 갈라디아 교회에서 설교하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 일도 있는 거 같아요. 어쨌든 이 간질병 때문에 문제요. 사도바울이 다른 건 몰라도 건강은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역사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 때문에 참 문제 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세 번 이나 기도를 했는데 특별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습니다.
"네게 있는 내 은혜가 족하다(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만족한 게 아니요. 충분한 거예요. 충분하다! 네게 있는 은혜가 충분하다, 할 때에 그는 이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맞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는 겸손합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 자랑도 할 수 없었어요. 이대로 쓰러지니까. 자 그런데 하나님은 또 이상합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 그 아픈 병은 고쳐주시지 않고 한평생 '누가'라고 하는 의사를 동반 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시 손해보고 싶지 않으셨던 거 같아 요.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 있는 거예요. 자 바울은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요새 다 감기들 때 문에 고생하시지요. 저희 집에도 온통 다 결렸어요. 제 손녀아이가 나더러 우리 집에는 언제든지 할아버지만 감기 안 걸리고 다 걸린대.
"할아버지는 왜 안 걸리죠?"
그래 제가 하는 말이
"바쁘다. 나 바빠 서 못 걸린다"
그랬는데 여러분 목사라고 감기 걸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목사라고 병들지 말라 는 게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병 들어서 콜록거리면 영 은혜가 안되거든요. 그렇다고 하나님 나는 절 대로 병 걸리지 말게 해 주세요 그런 기도도 안 되는 거죠. 이걸 여러분 잊지 마세요. 바울은 매 맞는 거 고생하는 거 병드는 거 다 합해 서 심지어는 육체의 가시까지도 나를 겸손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 의존하게 만들고 오직 주의 강함만 의뢰하도록 그렇게 나를 강권으로 역사하신다 이 말이에요. 그런고로 나를 겸손하게 하신 은혜 그것이 최고의 은혜요. 바울이 생각하는 네게 주신 은혜의 핵심 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은혜. 그래야 그 많은, 그 받은 바 모든 은혜가 은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은혜. 전 늘 '겸손'하면 꼭 생각나는 것이 성 프랜시스입니다. 프랜시스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 나라 구경을 했답니다. 많은 보좌 들이 있는데 높은 빈 보좌가 있는 것을 보고
"저건 누구 것입니까?"하 고 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을 의자다"
아무리 자기 선생이지만 너무 높아진다는 게 좀 시기 질투가 생겼어요. 그는 조용한 시간에 프랜시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그저 척 대답하시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생 각하지"
제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생님 그건 교만입니다 그건 위선입니다. 선생님을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강도, 살인 뭐 갖은 죄인들이 다 많은데 어떻게 선생님이 가장 악하다는 말이요 그 건 위선입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내가 사실로 악한 놈이거든. 그리고 하나님이 네게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은혜가운데 오늘 내가 있는데 네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나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라고 진지하게 말할 때 그 제자가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장 겸손한 게 뭡니까? 그게 바로 가장 강한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를 알았기에 은혜에 충만한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세요 은혜의 사람이기 에 은혜를 끼칠 수가 있었어요. 내가 행복하지 않고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은혜에 충만하지 않고 누구도 은혜 받게 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리스도 닮게 하는 것,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 닮게 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모든 것이 은혜요. 그래서 겸손의 은혜를 가장 큰 은혜로 알고 이제 겸손해서 은혜가 은혜 되고 은혜가 능력 되고 은혜가 보전되고 그래서 또한 은혜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모쪼록 신년벽두 여러분 무엇을 생 각하십니까? 금년은 가장 겸손한 사람으로 그리고 가장 큰 은혜의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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