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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6장1-8 /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13일(화)■
 
(스가랴 6장)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7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묵상/슥 6:1-8)


◆ 네 병거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5장에서는 온 지면에 두루 다니는 두루마리였는데, 오늘 본문은 온 지면을 두루 다니는 네 병거다. 이 병거들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다. 이 두 산이 어떤 산인지 알 수 없지만, 구리로 된 산이라고 했다. 구리는 네호쉐트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인데, 금, 은, 동(민 31:22)이라고 열거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단어다. 산 전체가 구리로 되어있다는 것은 햇빛이 비치면 번쩍거리는 그런 산임을 의미한다.


두 산 사이를 우리는 아주 좁은 골짜기로 생각하는데, 성경에서는 종종 넓은 평야에 이쪽에 산 하나와 저쪽에 산 하나가 있으면 그사이를 골짜기라고 한다. 므깃도 평야가 좋은 예다. 오늘 스가랴가 말하는 두 산 사이도 그러한 넓은 평원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번쩍이는 두 구리 산 사이 광활한 대지에서 네 병거가 바람처럼 달리며 나오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네 병거에는 색깔이 다른 말들이 메었는데,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네 번째 말에 어룽지고 건장한 말이라고 번역했는데, 한글킹제임스 성경에는 회색 갈기의 적갈색 말이라고 번역하고 표준새번역은 단순히 '얼룩말'이라고 번역했다. '건장한'이란 단어가 '적갈색'이란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색깔이 각 병거마다 다른 것은 한가지 사명을 홀로 담당하기 어려워서 넷이 나눈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명이 서로 다름을 의미한듯하다.


계시록 6장에서 언급한 네 말들은 붉은 말은 사람들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검은 말은 기근을, 흰 말은 전쟁을, 청황색 말은 전염병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심판을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네 병거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계시록에 언급된 말들과는 다르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실행하는 종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했다(5). 그런데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영(spirit)'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KJV, NIV등의 영어성경이나 표준새번역은 모두 '영'으로 번역했는데 RSV나 개역개정은 '바람'으로 번역했다. 문맥상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이들이 넷으로 표현된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에 병거라고 칭한만큼 심판과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네 병거는 사방의 네 영임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지 않았다. 북쪽에 검은 말과 흰 말이 나갔고, 남쪽에 어룽진 말이 나갔고, 건장한 말은 땅에 두루 다녔다. 여기에서 앞에서언급한 붉은 말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건장한'이란 말이 '적갈색'이란 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마도 동일하게 사용된 듯하다. 즉 붉은색 말은 어느 한 방향이 아니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도록 했다.


그런데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이 말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다.
"북쪽 땅으로 나간 말들이 북쪽 땅에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


북쪽 땅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벨론이 있다. 이스라엘을 패망케 한 바벨론이다. 이들이 하나님께 심판받아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될 것이다. 이것을 예언하심이다.


과연 스가랴의 이 환상 이후 대략 6년 후(BC 514)에 바벨론의 건물들이 전쟁으로 손상되기 시작했고, 얼마 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이 살지 않는다.


◆ 성경 해석할 때 유의할 점


나는 오늘 본문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말하고자 한다. 다소 딱딱한 내용이니 관심 없는 분들은 지나가도 좋다.


오늘 본문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바벨론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지 않고 동쪽에 있다. 그런데 오늘 예언에는 바벨론이 북쪽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성경의 오류일까, 아닐까?
아니면 오늘 본문의 북쪽은 애초에 바벨론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할까?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은 남쪽에, 바벨론은 북쪽에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언제나 북쪽에서 왔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끌려갈 때도 북쪽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예루살렘의 거의 정동 쪽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들어오고 나가는 경로가 북쪽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과 소통하려면 바벨론을 북쪽에 있는 것으로 말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할 때 아주 중요한 단서다.
즉 성경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상당 부분이 당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언어와 생각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모두 해가 뜬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해는 뜬 적이 없다. 지구가 돌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소통하시기 위해 '해가 뜬다'(말 1:11)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오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소통의 언어와 사실을 말하는 언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하셨다면 그것은 오류다. 그러나 해가 뜬다고 말씀하신 것은 오류가 아니다. 소통의 언어기 때문이다. 안티기독교인들은 이런 것을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하지만 어리석은 지적이다. 자기들도 해가 뜬다고 말하지 않는가?


반면에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사상을 극단적인 문자주의로 만든 나머지 사실은 천동설이 맞는데, 우리 모두 속고 있다고 주장해도 안 될 것이다.


어떤 형제는 예수님께서 요나처럼 '밤낮 사흘(three days and three nights)'을 땅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마 12:40)이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예수님께서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에 돌아가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제 삼일에 부활하셨다(눅 24:21). 엄밀히 말하면 이틀 밤, 하루 낮이다.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오류인가? 아니다.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말을 그런 것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류지만, 이런 것은 오류가 아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무수히 많다.


우리는 성경에서 소통을 위한 말씀과 사실을 말하는 말씀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과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만일 사실을 말하는 말씀이 오류가 있다면 우리는 성경은 오류가 있다고 말해도 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수십 번 성경을 읽고 연구했지만 단 하나도 그런 것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나 정확한 예언과 말씀에 전율을 느낀 적은 무수히 많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혹 성경에서 오류를 발견한 자가 있다면 나에게 알게 하라. 그러나 소통을 위한 말씀을 오류라고 트집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님,
성경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단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를 든든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모두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이 성경을 사랑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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