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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의 의미! (마 10:34-39)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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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의 의미! (마 10:34-39)

 

1964년 그러니까 꽤 오래 전 이야기가 됩니다. 제가 미국 유학시절에 YMCA에 서 운영하는
청소년 여름 캠 프에 회목으로 잠시 참여했 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나름대로 미
국 젊은이 들의 세계에 또 그들의 신앙 구도, 이런 것을 많이 보고, 깨닫고, 공부를 많이 할
기 회가 되었습니다만은 특별히 그 일주일 동안에 캠프 생활 을 끝내고 마지막에 촌극을 하
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일주일동안 이렇게들 준비
해가지고 몇팀 으로 나누어서 맨 끝날 연극 을 하는 것입니다. 그 연극 중에 한 장면은 제
게 많은 교훈을 주고 충격을 주었습 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이 야기입니다. 무대 위에 많
은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수십개의 십자가라! 큰 십자 가, 작은 십자가, 또 보기 좋 게
만든 십자가 어떤 것은 흉하게 아주 흉물스럽게 만 든 십자가 그리고 어떤 것은 아주 화려
하게 장식물로 만 든 것 뭐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이 수십 가지가 널려 있 습니다. 이제 그
학생들 하 나 하나가 나름대로 여러 가 지 색체의 옷을 입고 나와서 십자가 하나씩을 고릅
니다. 큰 것을 찾아보다가
"아이고 이것은 너무 크다!"
좀 작은 것을 하였다가
"이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는 들었다 놓고 들였다 놓고 하다가는 맨 마지막에는 거 르는 것이 뭐냐하면은 가장
작은 것, 화려한 것, 목걸이 십자가, 십자가 반지, 그리고 모자 위에다가 이렇게 장식 으로
만들어 놓은 면류관 같 은 그런 십자가 이런 것들만 하나씩 다 들고 나가더란 거 에요. 아
무도 그 크나큰 십 자가는 진 사람이 없어요.
맨 마지막에 예수님으로 분장한 청년 하나가 나와서 돌아보고 가장 흉물스럽고, 가장 무거
운 십자가를 예수 님이 다시 지고 그리고 갑니 다. 그것으로 연극은 끝입 니다. 그러나 우리
에게 시 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지고 있 는 십자가가 못 마땅해 합니
다. 너무 무겁다고 내 체질 에 맞지 않는다고, 내 분수 에 넘친다고, 때로는 이건 내가 져야
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져야될 건 데, 이게 무슨 팔자가 잘못 되어 가지고 내게 왔다
고 뭔가 운명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분 명 내것이 아니라고, 내가져 야 될 것 이 아니었다는 거 지요.
그래서 이건 벗고, 다 른 것 또 가벼운 것 또 작 은 것 또 작은 것 아니면 아 무 것도 안
지면 좋겠다. 그렇게 그렇게 부르짖으며 한 평생 살아가고 있는 것입 니다. 여러분, 십자가
라는 것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사람이 죽었으면, 땅에다 묻고 거기 에
다 비석 대신에 십자가를 거기에다 딱 박아 놓습니다. 나무가지 같다가 십자가를 만들어서
여기 시체가 있다. 뭐 그런 뜻입니다. 또 때로 는 자비에 상징으로 십자가 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 십자가 뭐 공산주의자들도 국경없이 봉사하는 기관이 다. 그래서 적십자사 청 십
자 뭐 이런 얘기가 또 역시 십자가는 자비에 표식으로 사용되는데 대한 인식이올시 다. 그
다음에 십자가가 보 이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에 몸 된 교회가 거기 있다. 그래서 십자가
가 교외를 상 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본질은 아주 원초 적 십자가는 예수그리스
도께 서 지시는 십자가입니다. 놀라운 기적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 니다.
이 십자가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뜻을 바로 깨닫 기만 하면 그에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고
자유가 있는 것 올시다. 예수의 십자가 그 것은 속죄에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
는 것은 예수의 죽으심은 바로 대 제사장에 재물이라는 것 이지요. 속죄의 재물이요. 자기
자신의 피를 가지고 나 가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 된 것이다. 속죄의 재물이다. 그래서 이것
은 하나님이 우 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죄인을 영접하시기 위해서 지불하는 하나님 자
기 자신 의 희생에 대한 계시다. 그 래서 하나님 자기 자신의 고 통, 하나님 자기 자신의 완
전한 사랑에 대한 계시가 이 십자가 안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공의와 사랑이 완성 을 이루
는 바로 그 결정체가 십자가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주는 총 주제 올시다. 이제
예수님의 십 자가가 있고 또 그리고 우리 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 리의 십자가는 예수님
의 십 자가처럼 그 누구를 위해서 대신 지는 그런 십자가에 성 격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
자가를 내가 지는 것처럼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십자가라는 것은 죄 인으로서 그
리스도를 영접하 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 되 기 위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고통과 손해
를 지칭하 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행 이라는 것은 언제나 다 가질 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양자택일 쪽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술 꾼에게 묻기를
"술을 먹겠느 냐? 떡을 먹겠느냐? 밥을 먹겠느냐?"
하고 물었더니
"술에 밥 말아 떡 안주해 먹 겠다."고 그건 안 되는 것이 에요.. 어느 것 하나만 택해 야 됩
니다. 이것을 잊지 말 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도 적인 결단을 요합니다. 다 시 말하면 노예
상태에서 끌 려 가는것이 아니고, 남 하 는데로 따라가는 게 아니고, 타인 지향적인 그렇게
물거 품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생명도 없습니다.

주도적으로 나 스스로 하나 를 선택합니다. 선택하기 위해서 나머지는 버려야 합 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딸 하나를 앞에 놓고 아버지는
"동쪽 사람한 테 결혼해라."
"어머니는 서 쪽 사람한테 결혼해라."
이 외동딸을 놓고 자꾸 괴롭히 니까 딸이 마지막에 하는 말 입니다.
"동가식 서가숙 하 겠다."

"동쪽 사람하고 먹 고, 서쪽 사람하고 가서 자 겠습니다."
그 되는 일입니 까? 여러분, 연애 해보셨으 면 알지요. 언젠가는 부득 이 결단을 해야 됩니
다. 한 사람 좋게 하면 나머지 사람 슬프게 만들어요. 어느 순 간에는 끝맺는 결단이 없이
는 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거에요. 그런 일이 진짜로 있습니다. 제주도 신혼여행 가서 옛날
에 애인하고 전화 걸다가 들켜서 이혼 당한 사 람이 있더라고요. 이런 여 자는 사랑할 자격
이 없는 거 에요. 그 동안에 애인이 몇 이 되었던 간에 결혼식 날 '땡' 하고 다 잊어버려야
지 거기에 대고 몰래 전화 걸다 가 맞아 마땅하지요. 비행 기장 앞에서 두들겨 맞고 있 더
래요. 얘기 듣고 아무도 안 말려요.
"잘했다."
그래 요. 제주도 가면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여러분, 그 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거지 요.
그러면 십자가가 뭡니 까? 진리를 찾기 위해서 거 짓을 버리고 참 사랑을 위해 서 나머지를
다 버려야 그게 바로 그 아픔의 십자가란 말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 씀 가운데는 밭에
감춰진 '보화'란 비유가 있지 않습니 까? 이 유명한 얘기지요.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
하는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 하여 자기에 소유를 다 팔아 서 샀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 요.
다 팔 때 아까웠겠느냐 말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 가요. 크나 큰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저
것을 얻기 위 해서라면 이것 파는 것 어렵 지 않아요. 이걸 알아야 합 니다. 그런고로 절대
적 가 치에 것을 찾았다면 상대적 으로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거지요. 또 잊어버릴 수 있
는 것이에요. 미래적 가치가 분명하다면 현대적 가치는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것 이에요.
신령한 세계를 바 로 포착한 사람이라면 물질 적인 것이란 초월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영원
한 가치에 것을 찾았다면 사실로 현재 적인 것이란 꾸벅꾸벅 지나 가는 건데 그것 뭐 별 것
아 니잖아요. 거기에 그렇게 마음을 많이 쓸 필요가 없다 그 말이요. 어짜피 가는 길 이요.
어짜피 떠나야 할 세 상이요. 결국은 참된 가치, 절대적 가치가 아직도 이해 되지 않아 그걸
소유하지 않 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마 태복음 10장 전장에 걸
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열둘을 불려놓고 제자를 임 명하고, 그에게 훈시하시는 이
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제 자 되는 길, 그의 제자 됨에 대하여 그 조건과, 비상한 각오와, 결
단을 말씀하고 있 는 것이에요. 아주 궁긍적 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 자 세를 요구합니다.
한 교육학 학자가 자기 아이들을 놓고 시험을 해봤 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벌벌 기어다닐
때 그 아이들 기어다니는 앞에다가 장애물 을 놓아 봤대요. 어떤 아이 는 장애물만 딱 앞에
있으면 기어가다가 멈추는 거에요. 그건 체념형이래요. 한 평 생 그렇게 살더랍니다. 또 기
어다니는 아이 앞에 장애 물을 놓았더니 어떤 아이는 비껴 가더란 말입니다. 이 건 도피형
이요. 어떤 아이 는 장애물을 놓으니까 딱 치 워놓고 직행하는 거에요. 가고 싶은 데로 가
요. 이것 이 진취형이요. 그거 하나 가 쓸만한 아이가 되더란 말 입니다. 여러분, 장애물이
있다고 거기 앉아서 팔자 신 세 타령 하겠습니까? 비껴 가겠다고 비겁하게 이리저리 피하겠
습니까? 정면대결을 해야 되는 거에요. 그것이 제자에게 요구하는 말씀이에 요. 그래서 오늘
본문 가운 데 보면 우선 세계관을 바꿔 라. 세계는 오늘 34절에 보 면 난해한 구절이 있습
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화 평이 아니고 검이로라. 세 상
을 너무 안일하게 보지 마 라. 화평, 안일, 평안, 무사 이것만 기대하지 마라. 나 는 그런 것
을 위해 오지 않 았다. 많은 독재자마다 평 안과, 번영과 자유와 안일을 주겠다고 약속합니
다만은 준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예 수님 은 말씀하십니다. 검 을 주러 왔노라. 전쟁 상황
을 말씀하시고요. 또 가정 에 대해서도 가정에 화목, 그래요 가정에 '평화 가정이 잘되는
것, 아이들 잘 되는 것' 이것만 열심히 위합니다 만은 그것도 아니에요. 오 늘 본문에 보면
가정, 화평, 잊어 버리라 이것이에요. 그보다도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좀 더 나
아 가서는 자기 목숨까지도 미 워해야 한다.
"현세적인 출세, 또는 세속적인 것, 욕 망 다 잊어버려라. 이런 포 기가 있고서야 주님에 제
자 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 니다. 결국은 사랑에 문제 입니다. 자, 사랑을 놓고 보 세요.
이거 양자택일이요. 주님을 사랑하려면 버릴 것 이 많아요. '아가페' 적인 절대적 사랑 그건
단독적이 고 독단적이에요. 그런고로 참 사랑을 위해서 끊어 버려 야 되요. 자기 사랑, 자기
명 예, 자기 지혜, 자기 판단, 인간적인 지식도 다 버려야 됩니다. 미련없이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야 예수에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 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 말 씀은 지기 십자가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건 내 몫에 대 한 십자가요. 누구나 지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가끔
개혁을 한다는 분들이 뼈를 깍는 아픔. 뭐 그런 얘기 합 니다만은 깍는다고만 하지. 안깍더
라구요. 뼈를 깍는 아픔이 없어요. 그러니까 개혁이 없는 것이에요. 정 말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이 없이 개혁은 있을 수가 없어요. 모두에게 좋게, 모 두에게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이야기에요. 내 포기를 요 구합니다. 큰 희생을 요구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 합니다. 이제
오히려 미워 해야 된다는 말로 표현합니 다. 덜 사랑해야 된다는 거 지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습니 다. 자! 순교해야 될 시간 에 이 가족 때문에 순교 못 하는 사람
있어요. 뭐 아내 가 과부 된다고 슬퍼하고 아 이들이 고아가 된다고 하니 까 자식 사랑 때
문에 그만 순교해야할 결정적인 시간에 순교 못했어요. 그 다음에 보니까 본인은 부끄러운
삶 을 살지요. 아이들도 잘될 수가 없지요. 오히려 그럴 때에 자식들을 놓아두고 순 교했던
사람들이 그 자식들 은
"우리 아버지는 순교자 요."

"내 남편은 순교자요."
오히려 그들이 더 활발하게,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어찌 해야 되겠습니
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 는 것이겠습니까? 이걸 잊 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께서는 지금 전쟁 상황을 말 씀하시고 있습니다. 젊은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 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 수님께서
"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쫓으라"
이 사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근심하면 돌아가리라."
성경은 이렇 게 유감스럽게 설명합니다. 정말로 영생의 생을 얻는 것 이란 그까짓 재산이
뭐 문제 입니까? 어짜피 버려야 될 건데 이걸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했다.' 그것입니다. 전쟁 상황이에요. 여러분, 혹 일선에서 그런 고생을 해 봤습니까?
저는요. 전쟁 때 한번 겪어봤는데요. 보 세요. 총 소리가
"땅"하고 포 소리가 쿵쿵 날 때 그 일 선에서도 잠이 잘 와요. 얼 마든지 잘 수가 있는데
총 소리가 나면 아내가 정신이 아찔합니다. 그때는 군화가 어떻게 가벼운지 그 배낭이 총이
얼마나 가벼운지 몰라 요. '펄펄' 납니다. 왜 사느 냐? 죽느냐? 하기 때문이 에요. 전쟁이란
"잘 산다. 못 산다."

"마누라 생각 이 사느냐? 여보, 내 생각 납디까?"
그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세요.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나밖에 없어요. 생명, 오로지 생명,
오로지 영생, 여기다가 초점을 맞추 는 바로 전쟁 상황이에요. 이것 예수님의 말씀이요. 그
런고로 여기에 가족 자기 생명, 이 세상에 평화, 번영, 쓸데없는 생각 말아요. 다 잊어 버려
요. 그래야 참으 로 얻을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순교 상황입니다. 순교자가 순교하려고
할 때 자 가족 생각하고 할 수 있 습니까? '아내 사랑' '아이 들에 사랑' 이것 다 효도해
야 될 부모가 계시는데, 순 교 상황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 원수요. '원수' 오늘 성 경에 가
족이 원수라고 그랬 어요. 그래서 원수에요. 가 족이 내 출세에 길을 막는 다는 것이 아니에
요. 내가 주님께 사는 순교 상황에서 는 가정이 원수요. 그런가 하면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추상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것이올 시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 야 합니
다. 이제 예수님께 서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한 번 보십시다. '바야바'에 음 모가 있지요. 빌
라도에 정 치적 그 만행이 있지요. 바 리새인 교인, 사교도 교인들, 가롯유다 의 배반, 많은
것 들이 엉키고 엉켜서 예수의 십자가가 지금 다가오고 있 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이 복 잡
한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풀었어요.
요한복음 18장 11절에
"아 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겟 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기도 하고 그가 얻은 응답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 사
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이것 이 십자가에 대하는 예수님 의 기본
자세입니다. 우리 역시 비록 작은 십자가요. 내 목에는 작은 십자가로되 지는 자세는 마찬가
지요. 누구도 원망하지 마세요. 누구 때문도 아니요. 세상 을 탓하지도 말고 오로지 아 버지
께서 내게 주시는 십자 가 내게 주시는 잔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것이요. 여 러분 갈라디아
서 6장 2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리라. 여러분 마 음속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
아 버려요. 그리고 나서야 주님을 만날 수 있어요. 주 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어요. 우리의 모든 근심은 '십자가를 안지 겠다' 는 거지요. 십자가가 내게서 비켜가기만
을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능하면 '십자가 조그만 것, 목걸이 정도만...'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여러분에게는 참 생명 력 참된 구원에 능력을 체험 할 수가 없어요. 그걸 꼭 잊지 말
아야 합니다. 그러 므로 우리의 신령은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내 몫에 대인 십자가, 오! 이것을 내 게 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주에 뜻입니까? 이것이
주 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입니 까? 그러면 그 길로 가겠습 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찬 송하면서 갈 것이에요. 그 러면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의 능력이 함
께 하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 의 영혼은 무한히 자유 할 것입니다. 신비로운 능력
을 체험하며, 승리하게 될 것입 니다.

 

 


📌 1. 전체 내용 요약

설교자는 미국 YMCA 캠프에서 본 ‘십자가 선택’ 연극을 통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작은 십자가만 선택하려는 모습을 비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속죄와 사랑·공의의 완성이며, 우리의 십자가는 그 절대적 가치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자기 희생과 결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시며,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생명, 세상의 평안을 절대적 가치보다 앞세우지 말라고 하신다. 진정한 사랑은 양자택일이며,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단 없이는 제자도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처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감사히 받는 태도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진정한 제자이며, 십자가를 회피하는 동안 참된 생명·자유·능력은 체험될 수 없다.


📌 2. 설교용 개요(간결/전개 가능한 형태)

I. 서론 – 캠프에서 본 ‘십자가 선택’의 장면

  •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벼운 십자가만 선택한다.
  •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무겁고 흉한 십자가를 지셨다.

II. 본론

1)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

  • 속죄의 재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완성
  • 구원·영생·자유가 그 안에 있다.

2)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 예수님의 십자가와 동일한 대속은 아님
  •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고통·손해·포기
  • “둘 다 가지려는” 마음(세상과 하나님)은 불가능

3) 제자도는 양자택일과 결단이다

  • 진정한 사랑은 선택과 포기에서 온다.
  • 가족·생명·현세적 평안보다 더 높은 절대적 가치를 붙드는 것
  • 장애물을 마주했을 때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진취형 태도

4) 십자가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
  • 원망이 아니라 감사로 받는 순종

5) 십자가 회피는 영적 무력함을 가져온다

  • 목걸이 같은 십자가만 들고 싶어 하는 마음
  •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비로소 자유와 능력이 임한다.

III. 결론

  • 자기 몫의 십자가를 주님의 뜻으로 알고 감사히 질 때
  • 참된 생명, 영생, 자유, 능력, 승리가 주어진다.

📌 3. 묵상 포인트 (개인·소그룹 나눔용)

  1. 나는 어떤 십자가를 선택하고 있는가?
    • 작은 십자가만 고르는 신앙인가,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받는 신앙인가?
  2.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면하고 있는가?
    • 양자택일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붙들려고 하는가?
  3. 십자가를 감사로 받고 있는가, 원망으로 받고 있는가?
  4. 내가 지는 십자가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 상황 탓·사람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5. 내 삶의 절대적 가치(보화)는 무엇인가?
    •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가?
  6. 정(情)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실천은 무엇인가?

📌 4. 주제별 정리

① 십자가의 본질

  • 죽음·희생·속죄의 상징
  •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집약
  • 교회의 표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② 우리의 십자가

  • 대속적 십자가가 아닌 제자도를 위한 포기와 희생
  • 절대적 가치를 얻기 위한 상대적 것의 버림
  • 자기 부인, 결단의 상징

③ 제자도의 조건

  • 양자택일: 세상과 주님을 동시에 붙들 수 없음
  • 가족·생명·평안보다 주를 우선
  •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는 진취성
  • "아버지의 잔"을 감사히 받는 순종

④ 신앙의 위험 요소

  • 작은 십자가만 선택하려는 태도
  • 도피형·체념형 신앙
  • 세속적 가치 집착
  •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상태

⑤ 십자가를 질 때 주어지는 것

  • 참 생명과 영생
  • 영적 능력과 성령의 동행
  • 자유와 승리
  • 신비한 하나님의 임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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